캐나디어 세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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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adair Sabre'''
1. 배경
현재 캐나다의 봉바르디에(Bombardier Aerospace)는 미국의 보잉(Boeing)과 유럽의 에어버스(Airbus)에 버금가는 규모를 가진 항공기 제작사이며, 이는 2차 대전 기간 동안 영연방의 일원으로 군용기 제작을 담당했던 빅토리 항공기(Victory Aircraft) 시절부터 그 기초가 다져진 것이다. 몬트리올에 본사를 두고 있는 캐나디어(Canadair)는 빅토리 항공기가 영국의 호커-시들리(Hawker-Siddeley)로 매각되어 아브로 캐나다(Avro Canada)로 명칭이 바뀐 후 재탄생한 국영기업이었는데, 아브로 캐나다와 함께 전후 캐나다 항공 산업의 중추로 성장하게 되는 기업이었다. 캐나디어사는 1986년에 민영화된 후 봉바르디에 사에 흡수, 합병되었다.
바로 이 캐나디어가 미국의 노스 아메리칸(North American)으로부터 F-86 세이버의 생산 면허를 따낸 뒤 자국산 오렌다 엔진을 장착시켜 캐나다 태생의 세이버가 탄생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빌려온 도면으로 만들어진 세이버는 강력한 엔진과 적절한 개량으로 인해 원래의 미국제 세이버보다 훨씬 우수한 성능을 보여주게 된다. 물론 당시나 지금이나 미국이 캐나다에 비해 훨씬 많은 항공기를 생산하고 있었지만, 한국 전쟁의 수요를 충당하고 나면 자국군을 무장시키기에 급급한 상황이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과 우수한 성능이 맞물려 캐나디어 세이버는 NATO군의 일원으로 유럽의 하늘을 지키는 선봉이 되었고, 독일과 이탈리아 등 많은 국가들에 판매되어 세이버가 서방세계 공통의 주력 전투기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2. 개발
1949년에 캐나다가 나토에 가입함에 따라 캐나다 공군(Royal Canada Air Force)의 조직을 확장하고 근대화하는 사업이 시작되었다. 소련과 북극해를 맞대고 있던 캐나다 공군에게도 제트 시대에 걸맞는 전투기가 필요했는데, 당시 서방권의 제트 전투기로 가장 우수한 성능을 보인 것은 노스 아메리칸 세이버였다. 하지만, 영연방 국가인 캐나다로서는 미국보다는 영국으로부터 장비를 도입하고자 하는 정서가 강했는데, 당시에는 호커 헌터와 같은 고성능의 영국제 전투기가 완성되기 전이었다.
결국 그 절충안으로써 미국제 세이버를 도입하되, 미국으로부터 직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캐나디어가 면허생산을 통해 캐나다 공군에 공급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1949년 8월 캐나다 공군은 우선 100대의 세이버를 발주하였고, 캐나디어는 노스 아메리칸으로부터 100대분의 반조립 상태의 기체와 도면을 공급받았다. 캐나디어와 노스 아메리칸은 과거 T-6 하버드 훈련기 같은 기체를 합작 생산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3. Canadair Sabre Mk.1
캐나디어의 첫 번째 세이버인 Mk.1은 단 1대만 생산된 프로토타입이자 선행 양산형이었다. Mk.1은 노스 아메리칸으로부터 공급받은 부품을 단순히 조립만 하고 제네럴 일렉트릭 J47-GE-13 엔진(추력 : 5,200 lb)을 장착한 모델로 노스 아메리칸의 F-86A-5-NA와 완전히 똑같은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캐나디어는 자사의 세이버에 CL-13이라는 프로젝트명을 부여했으나 이 명칭은 사내에서도 널리 쓰이지는 않았으며, 대신 영국의 장비 체계와 같이 Mk. 숫자가 사용되었다. 이 기체는 캐나다 공군의 일련번호 19101로, 1950년 7월에 출고되었다. 캐나디어 공장에는 제트기가 이착륙할 만큼 충분히 긴 활주로가 없었기 때문에 공군의 도벌(Dorval) 비행장으로 옮겨졌다. 1950년 8월 9일 캐나디어의 수석 테스트 파일럿이자 후에 캐나다 최초로 음속을 돌파하게 되는 알렉스 릴리(Alexander John Lilly : 1910~1985)에 의해 처녀비행이 이루어졌다.
4. Canadair CL-13 Sabre Mk.2
남은 99대 분량의 세이버 부품들은 Mk.1과 달리 수평미익 전체가 승강타로 작동하는 올 플라잉 테일(all-flying tail)을 채택하고 V자형 방풍창을 가진 F-86E-1과 같은 모델로 완성되었다. 세이버 Mk.2는 본격적인 양산형으로 1951년 1월 31일 처녀비행을 실시하였다. 당시 유럽에 대한 나토군의 본격적인 배치와 한국전의 발발로 제트 전투기의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었고, 캐나디어는 이 형식을 251대 추가 생산하게 된다. 덕분에 Mk.2 는 1952년 8월까지 생산되었고, 먼저 생산된 99기가 캐나다 공군에 의해 19102에서 19199까지의 일련번호를 받은데 비해, 나중에 생산된 251기는 19201에서 19452까지의 일련번호를 받았다.
캐나다 공군은 세이버 Mk.2를 1951년 4월 10일부터 도벌 비행장의 410 비행중대에 배치하였으며, 이어 그해 여름까지 411과 413 비행중대에도 배치를 완료하였다. 하지만,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토 가맹국들은 아직 후퇴익 전투기를 보유하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들 비행대는 유럽으로 건너가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 재배치되어 나토군의 주력 제공 전투기로 사용되었다.
영국 공군은 헌터가 배치되기 전, 글로스터 미티어와 드해빌랜드 뱀파이어를 쓰고 있었는데, 직선익을 가진 이 기체들의 성능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대량의 캐나다제 세이버를 도입하게 된다. 영국이 도입한 세이버는 대부분 Mk.4였는데, 3기의 Mk.2가 포함되어 있었다.
세이버의 본가인 미 공군조차도 한국전에서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캐나디어로부터 60대의 세이버 Mk.2를 구입하였으며, 이 기체들은 캘리포니아로 옮겨져서 미군 사양으로 개장된 후 한반도에 투입되었다. 미군은 이 세이버에 F-86E-6-CAN라는 형식번호를 불이고 일련번호 52-2833~2892를 매겼다.
대부분의 Mk.2는 유럽에서 사용되었지만, 일부는 캐나다 본토에 남아 전환 훈련용으로 사용되었다. 캐나다 공군의 Mk.2는 후에 Mk.5로 교체되었으며, 남아있는 200대의 Mk.2는 영국에서 완전히 오버홀을 거친 후 그리스와 터키 공군에 제공되었다.
5. Canadair CL-13 Sabre Mk.3
캐나다 정부는 자국에서 생산되는 세이버에 자국산 오렌다 제트엔진(Orenda jet engine)을 장착하기를 원했다. 이러한 시도는 미국의 노스 아메리칸에서도 프로젝트 NA-167로 1949년 8월 16일 실시되었는데, 이 기체는 F-86J로 명명되었으며 49-1069의 시리얼을 부여받았다. 이 개조형은 괄목할만한 성능 향상을 보여주었으며, 이에 고무된 캐나다 정부는 1950년 8월 100번째의 세이버 Mk.2 (일련번호 19200)를 개장하기에 이른다.
오렌다3 엔진은 추력 6,000 lbf로 J47 엔진에 비해 더 나은 성능을 보이고 있었다. 오렌다 엔진은 J47 보다 직경이 약간 컸기 때문에 동체 구조에도 약간의 변경이 가해졌다. 세이버 Mk.3는 부족하지 않은 성능을 보여주었으나, 아브로는 오렌다 엔진의 대량 생산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에 단 한 대의 시제기만 제작되었다.
1952년 6월 3일 미국의 여류비행사 재키 코크런(Jacqueline Cochran)은 캘리포니아의 에드워드 공군기지 상공에서 100 km를 1,050.15 km/h로 비행하면서 여성 속도기록을 세웠다. 그녀는 15 km를 1,078 km/h로 비행하기도 했으며, 강하 비행에서 1,270 km/h의 속도를 기록함으로써 여성 최초로 음속의 벽을 넘어선 인물로 기록되었다.
6. Canadair CL-13 Sabre Mk.4
세이버 Mk.3의 성공과 더불어 캐나다제 엔진을 장착한 양산형 세이버 Mk.4가 계획되었다. 하지만, 아브로가 오렌다 엔진에 대한 본격적인 양산 체계를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세이버 Mk.4는 여전히 미국제 엔진을 장착한 채 생산되었다. 세이버 Mk.4는 노스 아메리칸의 F-86E-10과 거의 동일한 형식으로 제작되었고, 결국 세이버 Mk.2와 별 차이가 없는 기체가 되었다. 물론 후기형의 기체니만큼 약간의 개수가 이루어졌는데, 공조 장치나 캐노피 개폐 장치 같은 사소한 부분이 다소 개선되고, 조종 장치에 유압 시스템이 사용된 것이 Mk.2와 가장 큰 차이점이 되었다. 후에 약간의 Mk.2를 포함해서 다수의 Mk.4가 세이버 F형에서 처음 도입해 큰 효과를 보았던 6-3 wing이라 부르는 확장된 주익으로 개수된다.
세이버 Mk.4는 1952년 8월 28일 첫 비행을 한 이래 1953년까지 438대가 생산되었고, 이 기체들은 캐나다 공군으로 부터 19453에서 19890까지의 일련번호가 매겨졌다. 세이버 Mk.4는 이처럼 많은 생산량에도 불구하고 정작 캐나다의 하늘을 거의 날지 못했다. 10대를 제외한 428대가 미국의 자금으로 영국 공군에 대여되어 유럽의 하늘을 지키는 전투기로 사용된 것이다. 진정한 캐나다의 세이버라 할 수 있는 Mk.5가 양산되기 전까지 항공 선진국 캐나다의 하늘은 낡은 직선익을 가진 아브로 CF-100 카눅에게 맡겨졌다.
캐나다 공군의 세이버 Mk.2와 Mk.4는 유럽의 제공권을 장악하기 위해 나토군에 편성되었다. 410, 439, 441 비행중대로 구성된 제1전투비행단은 1952년부터 영국에 배치되었으며, 416, 421, 430 비행중대로 구성된 제2전투비행단은 1952년 8월에 프랑스의 고스땡뀐(Grostenquin)에 배치되었다. 413, 427, 434 비행중대로 구성된 제3전투비행단과 414, 422, 444 비행중대로 구성된 제4전투비행단은 1953년부터 독일에 배치되었다.
영국 공군의 세이버는 세이버의 유명세에 비한다면 그다지 잘 알려져 있는 편은 아니다. 글로스터 미티어나 호커 헌터와 같은 걸출한 전투기가 있기도 했지만, RAF에서 세이버가 활약한 기간인 바로 이 두 기종의 사이를 메꾸는 짧은 기간동안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1952년 8월부터 1956년 6월까지 운용된 이들 세이버는 영국 공군에 의해 세이버 F.2와 세이버 F.4로 불리워졌다. 1956년 이후에 영국의 주력 전투기는 호커 헌터로 대체되었으며, 교체된 세이버들은 자금원이었던 미 공군에게 되돌려졌다가 다시 다른 유럽 국가의 공군 현대화에 중요한 재산이 되었다. 이중 180대는 이탈리아 공군이, 121대는 유고슬라비아 공군에 의해 사용되었다.
7. Canadair CL-13A Sabre Mk.5
캐나디어 세이버 Mk.5는 진정한 의미에서 사실상 첫 번째 캐나다의 세이버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Mk.5에 이르러서야 캐나다의 숙원이었던 국산 엔진이 탑재된 양산형 전투기가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세이버 Mk.5는 6,500 lbf의 추력을 내는 오렌다 10 엔진을 탑재하였는데, 이는 원래 장착되었던 J47 엔진에 비해 현저하게 향상된 추력을 제공해 주었다.
세이버 Mk.5도 6-3윙 주익을 가지고 있어서 앞전 슬랫(leading edge slat)이 없고, 주익의 중간에 작은 경계판이 부착되어 있었다. 6-3윙은 노스 아메리칸의 F-86F-30에서 채용된 것과 동일한 것으로 특히 고속 영역에서 비행 성능을 향상시켰다. Mk.5가 제작되는 과정에서 세이버 Mk.4의 일부도 주익을 6-3 윙으로 교체하는 작업이 이루어졌고, 소수의 세이버 Mk.2에도 동일한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 형식의 첫 비행은 1953년 7월 30일에 이루어졌으며, 1호기에는 23001의 일련번호가 매겨졌다. 세이버 Mk.5는 향상된 추력으로 40,000피트까지 9분에 상승할 수 있었는데, 이는 세이버 Mk.2에 비해 두 배의 상승률이었다. 반면, 앞전 슬랫이 생략됨으로써 저속에서의 안정성이 떨어졌으며, 엔진 추력의 증가로 인해 연료 소모량이 많아짐에 따라 행동 반경이 20% 가량 줄어들었다.
세이버 Mk.5는 총 370대가 생산되어 23001~23370의 일련번호가 매겨졌는데, 캐나다 공군의 구형 세이버를 교체하면서 주력 전투기의 자리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또한 세이버 Mk.5는 1959년 캐나다 항공 역사 50주년을 기념하여 창설된 곡예비행 팀인 골든 호크(Golden Hawk)의 기체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후에 새로 창설된 서독 공군(Bundeswehr Luftwaffe)은 3개 비행대 분의 세이버 Mk.6를 구매하였는데, 캐나다는 서독군이 나토의 일원으로써 보다 빨리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1957~58년 우선 전환 훈련용으로 세이버 Mk.5를 75대 제공하였다. 세이버 Mk.6의 완성 이전에 제공된 세이버 Mk.5는 새로운 파일럿들을 훈련시킬 목적으로 1962년 3월까지 제10병기학교에서 훈련기로 사용되었다.
8. Canadair CL-13B Sabre Mk.6
캐나디어 세이버 Mk.6는 Mk.5에 비해 더욱 향상된 추력을 가진 오렌다 14 엔진을 장착한 기종이다. 티타늄을 도입한 신형 엔진은 오렌다 10 엔진에 비해 더 가벼우면서도 7,275 lbf의 더욱 강력한 추력을 제공하였으며, 이는 상승 속도와 최대 상승 고도를 획기적으로 높여주었다. 세이버 Mk.6의 최대 상승고도는 55,000피트로 이는 F-86F에 비해 7,000피트나 더 높았으며, 상승률은 11,800 ft/min에 달했다.
초기의 세이버 Mk.6는 Mk.5와 같은 경계판이 붙은 6-3 윙을 장착하였으나, 이후에는 경계판 없이 앞전 슬랫이 달린 6-3 윙으로 되돌렸다. 이 전투기에 전투폭격기로서의 기능도 함께 요구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앞전 슬랫과 연장된 에일러론이 있는 6-3 윙은 후기형 캐나디어 세이버만의 특징으로 이는 다른 세이버 모델에 비해 탁월한 저속 성능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앞전 슬랫은 세이버 Mk.6에 적용되기 이전부터 일부 세이버 Mk.5를 개수하여 장착하였기 때문에 세이버 Mk.6만의 특징은 아니다.
전술 핵폭탄 투하 기능까지 더해진 세이버 Mk.6는 1954년 10월 19일에 처음 비행하였고, 마지막 기체는 1958년 10월 9일에 생산되었다. 총 647기가 생산된 세이버 Mk.6는 캐나다 공군에 225기, 서독 공군에 225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34기, 콜럼비아에 6기가 인도되었다. 캐나다 공군은 1963년 CF-104를 채택할 때까지 세이버를 주력 전투기로 사용하였다. 세이버 Mk.6까지 캐나디어 세이버는 총 1,807기가 생산되었다. 이후 캐나디어는 후연기를 더한 CL-13C나 로켓 모터를 추가한 CL-13D, 동체에 면적법칙을 적용시킨 CL-13E, 그리고 복좌 훈련형인 CL-13G나 레이를 탑재한 전천후 형식인 CL-13H와 CL-13J에 이르는 여러가지 성능 향상 계획을 세웠으나, 실제로 완성된 것은 세이버 Mk.5를 개조한 CL-13C와 E형이 1대씩 만들어졌을 뿐 계획이나 제안에 그치게 된다. 어느새 성큼 다가온 초음속 공군의 시대에 발을 맞추기 위해서는 세이버의 진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