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100 카눅

 

'''Avro Canada CF-100 Can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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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본 제원
2. 소개
3. 캐나다의 첫 국산 실용 전투기
4. 원형기와 개량
5. 생산과 실전 배치
6. 운용과 수출
7. 각 형식


1. 기본 제원


승무원 : 2명
전장 : 16.5 m / 전폭 : 17.4 m / 전고 : 4.4 m / 익면적 : 54.9 m²
중량 : 10,500 kg ~15,170 kg~16,329 kg
동력 : Avro Canada Orenda 11 터보제트 엔진(추력 7,300 lbf) 2기
최대속도 : 888 km/h
항속거리 : 3,200 km
상승고도 : 13,700 m
상승률 : 44.5 m/s
무장 : 2.75인치 29연장 마이티 마우스 로켓 런처 2기
초도 비행 : 1950년 1월 19일
운용 시기 : 1952년~1981년
운용처 : 캐나다 공군, 벨기에 공군
생산수 : 692대

2. 소개


캐나다 출신의 항공기 설계자 잭 프로스트가 고안하여 애브로 캐나다에서 개발, 생산해서 캐나다 공군의 주력 전천후 요격기로 29년 동안이나 사용된 기종이다. 카눅(Canuck)은 캐나다인을 가리키는 의미로 붙여진 명칭이지만, CF-100을 모는 조종사들은 자신들의 기체를 가리켜 크렁크(Clunk)라는 의성어를 별명으로 붙여주었다. 1950년에 첫 비행한 이래 1952년부터 1981년까지 냉전 시대 캐나다 영공을 지켜냈다.
승무원은 조종사와 항법사 2명이 탠덤 배치된 좌석에 타고, 강인하게 쭉 뻗은 직선익에 터보제트 엔진 2기를 동체 나란히 날개 위에 배치하여 한쪽 엔진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 최대한 안정성을 확보하게끔 고안되었다. 수평 미익은 수직 미익 중간에 붙여진 십자형 꼬리를 지녀 요즘은 흔히 보기 어려운 형태이다. CF-100는 수평 비행에서 음속을 넘을 수 없는 아음속 전투기였지만, 1952년 12월 18일에 애브로의 주임 테스트 파일럿인 야누즈 즐라콥스키(Janusz Żurakowski : 1914~2004 / 6킬)가 CF-100 Mk4의 시제기를 몰고 30,000피트(9,000 m) 고도에서 완만한 강하를 통해 음속 장벽을 돌파하기도 했다.

3. 캐나다의 첫 국산 실용 전투기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냉전의 막이 열리자, 캐나다 북쪽의 광막한 영공은 북극베링 해를 마주하고 지척에 그어진 소련 국경을 넘어 침투해오는 폭격기의 침공에 대한 최전선이었다. 특히, 베링 해협 건너 축치 반도에서 발진한 폭격기는 알래스카를 거치면 곧바로 캐나다 북서부에 닿게 되었는데 이 코스야말로 미국 본토를 공격하기 위한 대권 항로이기도 했다. 이러한 위협을 마주하게 된 캐나다 공군은 만에 하나 소련의 폭격기 대군이 침공하는 경우를 대비해야만 했고, 넓디 넓은 영공 수호를 위해서는 먼 거리까지 진출하여 초계 비행을 할 수 있는 장거리 전천후 요격기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 기체는 조종을 맡은 파일럿과 레이더 조작과 항법을 도울 후방관제사가 탑승하고 강력한 쌍발 엔진을 갖춘 기체에, 기수에는 원거리의 목표를 탐지하고 추적할 능력이 있는 첨단 레이다와 화기 관제 장치를 갖추고 있어 주야간 전천후를 가리지 않고 작전 가능한 요격기가 될 것이었다. 캐나다 공군 사령관 윌프레드 커티스(Wilfred Curtis : 1893~1977) 중장은 이 요격기가 되도록 짧은 이륙 활주거리와 높은 상승 성능도 함께 만족시키기를 원했다.
캐나다 공군은 이 차세대 전천후 전투기에 대한 작전 요구사양서 XC-100 계획을 착안하여 1946년 10월부터 애브로 캐나다(Avro Canada) 사에서 개발이 시작되었다. 애브로 캐나다의 설계주임 에드거 앳킨(Edgar Atkin)은 전체적인 각 사항들을 검토한 뒤 영국드 해빌랜드(de Havilland) 사에서 근무했던 잭 프로스트(John Carver Meadows Frost : 1915~1917)와 애브로 본사의 공기역학 전문가인 짐 챔벌레인(James Arthur Chamberlin : 1915~1981)에게 인계해주었다.

4. 원형기와 개량


원형기인 CF-100 Mark 1(No 18101)은 번쩍번쩍하는 유광 검정색으로 온통 새카맣게 칠해진 상태로 공개되었다. 동체와 엔진 측면에는 수평으로 흰 번개가 그려진 모습으로 공장에서 굴러나온 CF-100 프로토타입은 글로스터(Gloster Aircraft) 사의 선임 테스트 파일럿인 빌 워터톤(Bill Waterton : 1916~2006)이 조종을 해서 1950년 1월 19일에 첫 비행을 시도했다. 원래 설계대로라면 CF-100에는 애브로 캐나다에서 새롭게 개발된 국산 엔진인 오렌다(Avro Canada Orenda)를 장비하려고 했으나, 의견이 맞지 않아 예정에서 한참 밑도는 2,950 kg의 추력을 내는 롤스로이스 에이본(Rolls-Royce Avon RA 3) 터보제트 엔진을 2기 달고 있었고 레이돔에는 레이더 대신 무게추가 실린 상태였다.
하지만 10대가 만들어진 선행 생산형인 CF-100 Mk 2부터는 자국산 오렌다 2(추력 2,720 kg) 엔진을 장비하고 있었다. 그 중 1대는 복조종 장치를 갖춘 훈련기 형식의 Mk 2T로 제작되었다. 첫 번째 양산형인 CF-100 Mk3는 AN/APG-33 레이다를 장비하고 12.7mm 중기관총 8정을 동체 아래에 마련된 곤돌라에 장착했으며, 엔진은 오렌다 8(추력 2,720 kg)이 설치되었다. 여기에서도 복조종 장치를 갖춘 Mk3 CT와 Mk3 DT가 만들어졌는데, 이 기체들은 캐나디어 세이버 전투기를 몰던 조종사들을 기종전환 훈련을 할 수 있도록 교육 부대로 인도되었다.

5. 생산과 실전 배치


1950년 9월부터 캐나다 공군은 양산형 Mk3를 124대 주문하고 1953년부터 실전 배치를 시작했다. 그러나 Mk3 생산은 70대(No.18113~18182)가 완성된 후 일단 중지하고, 무장에 공대공 로켓을 추가한 CF-100 Mk4로 전환했다. Mk4의 시제기는 Mk2의 10호기를 개조한 것으로 1952년 10월 11일에 처음 비행했다. 이 형식의 더 크고 길어진 레이돔 내부에는 더 강한 출력을 내는 AN/APG-40 레이다가 내장되었고, 자동 탐색 / 사격 능력을 가진 화기 관제 시스템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동체 밑에 무장 팩은 브라우닝 M3 12.7mm 중기관총 8정에 더해 FFAR 마이티 마우스 공대공 로켓 48발 중에서 선택할 수 있으며, 또한 주익 양 끝에는 마이티 마우스 로켓 29발이 장전된 무장 포드가 장착되었다. 이 로켓 포드는 장거리 임무에 나설 때는 간단하게 표준 사이즈의 보조 연료탱크로 교환할 수 있었다.
이 형식에다 추력이 2,945 kg으로 조금 더 보강된 오렌다 9 엔진을 장비한 타입을 Mk4A라고 하며 추력 3,400 kg의 오렌다 11 엔진을 갖춘 형식이 CF-100 Mk4B로 되었는데, Mk4 형식은 모두 합쳐 510대를 조달했다. CF-100 카눅의 마지막 개량형은 1955년부터 배치를 시작한 CF-100 Mk5이며 이것은 날개 끝을 1.8 m 늘리고 미익을 더 넓혀 고공 성능을 확보한 것으로, 무장도 기관총은 아예 폐지하고 로켓만 갖추도록 했다. Mk5는 Mk4의 발주 분량을 중간에서 인수하는 형태로 합계 332대가 만들어졌다.
카눅 요격기는 그외에도 애브로 캐나다가 야심차게 모든 능력을 결집시켜 빚어내고 있던 CF-105 애로우 전투기가 배치될 때까지 중간다리 역할을 하게끔 AIM-7 스패로우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장착하고 후연기가 추가되어 추력이 3,740 kg까지 늘어난 오렌다 11R을 장착한 CF-100 Mk6도 제시되었으나, 공군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렌다 엔진의 추력이 점증되고 그 무렵 전투기 설계에서 유행하게 된 후퇴익 이론을 받아들여 주날개와 수평 미익에 25도의 후퇴각을 준 CF-103도 1951년에 목업을 만들 단계까지 설계가 진행되었지만 역시 생산은 되지 않았다.

6. 운용과 수출


CF-100은 미국과 캐나다 영공을 방어하는 북미 항공우주 방위사령부(NORAD)와 협력해 미국의 북쪽 영공을 소련의 핵무장 폭격기의 침입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활동했다. 이에 더해, 캐나다가 NATO의 일원으로서 1956년부터 1962년까지 4개의 카눅 비행대가 캐나디어 세이버를 대신하여 유럽에 주둔했다. 극지방에 가까운 캐나다 북부 영공을 밥먹듯이 비행한 경험을 쌓은 카눅 조종사들은 종종 다른 비행부대가 도저히 임무를 수행할 수 없는 시계 제로의 악천후 속에서도 비행을 하곤 했다. 캐나다 국내에 배치된 카눅 요격기들은 별다른 위장 도색을 하지 않은 은빛 무도장 상태였으나, 그들처럼 해외에 전개한 기체들은 상면은 어두운 진녹색에 하면은 그레이라는 영국 공군의 위장 도색이 칠해진 채로 활동했다.
앞서 언급한 애브로 캐나다의 수석 테스트 파일럿 야누즈 즐라콥스키는 일반적인 통념으로는 둔중한 요격기라는 평가를 받던 CF-100으로 깜짝 놀랄 만한 곡예 비행을 여러 차례 선보였는데, 특히 1955년 판보로 에어쇼에서 관중들 앞에서 펼친 낙엽 기동(Falling leaf)은 실로 입이 떡 벌어질 압도적인 장관이어서 많은 항공 관계자들로부터 그레이트 주라(Great Zura)라는 별칭이 주어지면서 칭송을 받았다. 그들은 무게가 15톤에 달하는 그런 대형 전투기가 그토록 다이내믹하고 놀라운 곡예 비행을 해내는 것을 직접 자기 눈으로 보고도 좀처럼 믿을 수 없었다. 사실, 벨기에 공군 같은 경우는 그 시범을 참관한 후에 마치 무엇에 홀린 듯이 CF-100 Mk5를 구입하는 계약서에 사인하게 된다.
CF-100은 각 형식 합계 692대가 생산되어 그중에서 53대가 벨기에 공군에 수출되었다. 원래 설계 수명은 불과 2,000시간으로 설정되어 있었지만, 카눅의 강인한 동체 구조는 20,000시간을 넘게 거뜬히 견딜 수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CF-100은 이렇게 튼튼했던 덕분에 캐나다가 1961년부터 미국에서 F-101 부두를 수입한 뒤로 최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온타리오주 노스베이 공군기지에 주둔하는 캐나다 공군 제414비행대(RCAF 414 Squadron)에서는 1981년까지 정찰, 훈련 및 전자전 임무를 맡으며 노익장을 과시하였다. 지금도 상당수의 CF-100이 캐나다 국내 및 기타 장소에 전시되어 있다.

7. 각 형식


CF-100 Mark1 : 2대만 제작된 시제기 형식.
CF-100 Mark1P : 사진정찰기 형식이었으나 제안에 그침.
CF-100 Mk2 : 10대가 생산된 선행 생산형.
CF-100 Mk2T : CF-100 Mk2의 훈련기 형식으로 Mk2 중에서 2대가 이 사양으로 롤아웃.
CF-100 Mk3 : 캐나다 공군을 위한 첫 번째 양산형이며, 복좌 전천후 전투기 형식으로 70대 생산.
CF-100 Mk3A : CF-100 Mk3에 자국산 오렌다 2 엔진을 장비한 형식. 21대 생산.
CF-100 Mk3B : CF-100 Mk3에 자국산 오렌다 8 엔진을 장비한 형식. 45대 생산.
CF-100 Mk3CT : CF-100 Mk3 중에서 1대를 전용 훈련기로 개조한 기체인데, 나중에 CF-100 Mk3D가 되었다.
CF-100 Mk4 : 복좌 전천후 장거리 요격 전투기로 Mk2중에서 1대를 개장한 테스트 형식.
CF-100 Mk4A : CF-100 Mk4에 오렌다 9 엔진을 장착해 137대가 생산된 형식.
CF-100 Mk4B : CF-100 Mk4에 오렌다 11 엔진을 장착해 141대가 생산된 형식.
CF-100 Mk4X : CF-100 Mk4의 개량형으로 제안된 형식.
CF-100 Mk5 : 복좌 전천후 장거리 요격 전투기로, 오렌다 14 엔진을 장착하여 332대가 생산된 주력 생산기.
CF-100 Mk5D : CF-100 Mk5에 전자전 능력과 EW(경계) 능력을 추가한 기체로 소수만 개조됨.
CF-100 Mk5M : AIM-7 스패로우II 공대공 미사일 운용 기능을 추가한 개조형.
CF-100 Mk6 : AIM-7 스패로우II 공대공 미사일 장비형이지만 제안에 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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