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 그랜트

 


[image]
'''이름'''
케리 그랜트 (Cary Grant)
'''본명'''
아치볼드 알렉산더 리치 (Archibald Alexander Leach)
'''국적'''
영국 [image], 미국 [image]
'''출생'''
1904년 1월 18일
잉글랜드 브리스톨
'''사망'''
1986년 11월 29일
미국 아이오와 주 대븐포트
'''신장'''
187cm
'''직업'''
배우
'''활동'''
1932년 - 196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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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사생활


1. 개요


'''모든 사람이 케리 그랜트가 되고 싶어 합니다. 심지어 나조차도 케리 그랜트가 되고 싶다니까요!'''

- 케리 그랜트[1]

영국 태생의 미국의 배우. 1900년대생 배우들 중에서도 최고 스타 중 하나이다. 제임스 스튜어트, 그레이스 켈리와 함께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페르소나로도 유명했다. '''AFI(미국영화협회) 선정 가장 위대한 남배우 2위'''[2]로 선정되었을 만큼 큰 인기와 영화사에 인상적인 업적을 남긴 배우이다.

2. 상세


본명은 아치볼드 알렉산더 리치(Archibald Alexander Leach)로 영국에서 태어났다. 평범한 중류층에서 자랐지만, 어린 시절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수용되었고 가족들이 이걸 철저히 숨겨서 평생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한다. 14살에 학교를 중퇴하고 코미디 극단에 들어가서 1920년에 브로드웨이에 진출한다. 1932년부터 할리우드 활동을 시작했는데, '케리 그랜트'는 영화사에서 지어준 예명이다. (당시 인기있던 게리 쿠퍼와 비슷한 어감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속사포같이 내뱉는 말솜씨, 탁월한 운동신경, 세련된 매너, 매력적인 옷차림 때문에 곧바로 스타가 되었고 은퇴할 때까지 슬럼프 없이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하워드 혹스가 그랜트를 뻔뻔스러워도 미워할 수 없는 플레이보이로 묘사했다면, 앨프리드 히치콕은 그의 내면에 숨어있는 어두운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
007 시리즈 원작자 이언 플레밍로맨틱 코미디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서스펜스물 모두에 능한 케리 그랜트가 1대 007이 되어주길 바랬지만 그랜트는 시리즈 1편 《살인번호》가 제작된 1961년 이미 57살[3]이어서 이 제안을 거절했다. 이언 플레밍이 영화 속에서 제임스 본드 역으로 원했던 배우 중 한명이지 '''제임스 본드의 실제모델이 아니다'''. 대신 이 취향의 영향으로 케리 그랜트 이미지처럼 키 180 중반 이상의 미남 배우를 쓰는 게 한동안 원칙이었다. 나중에 바뀌었지만... 제임스 본드의 실제모델은 피터 스미더스(Peter Smithers)와 패트릭 댈즐조브(Patrick Dalzel-Job) 2명이다!
그는 80이 다 된 나이에서도 미노년을 유지했는데, 나이가 들자 KFC 마스코트인 샌더스 대령과 외모가 비슷해졌다.

3. 사생활


영화 속 신사 모습과 거리가 있는데, 결혼을 5번이나 했으며 심리치료 목적으로 LSD를 복용했다(당시에는 LSD나 기타 마약의 유해성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으며, 노년에 접어든 그랜트는 LSD를 훌륭한 치료제라고 주장했던 자신의 과오를 인정한 바 있다.) 이혼사유가 구타와 동성애 성향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본인과 유가족은 극구 부인하지만 일부 전처와 주변사람들은 그랜트가 게이 또는 양성애자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호텔에서 룸 서비스로 식사를 한 다음 "나는 머핀을 3개만 먹었으니 4개 값을 내는 건 부당하다"고 항의하거나, 집에 손님이 오면 냉장고에 있는 우윳병에 금을 그어서 마셨는지 확인할 정도로 구두쇠였다고 한다. 그가 게이라는 의심을 받은 이유 중 하나가 동료 배우 랜돌프 스콧과 생활비를 아끼려고 12년 동안 동거를 했기 때문인 데, 이 정도로 돈에 민감했다면 진짜 경제적 이유로 그랬을 지도 모른다. 찰리 채플린의 아내였던 폴렛 고더드는 둘이 사는 집을 방문한 뒤, "청구서가 오면 랜돌프는 수표를 썼고, 캐리는 그 수표를 우편으로 부쳤다"고 비꼬았다.
물론 위의 사례만으로 영화 속 모습과 사생활이 거리가 멀다고 단정짓는것은 금물이다.
일례로 잉그리드 버그만이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와의 사랑으로 - 둘 다 가정이 있는 상태였기에 큰 비난을 받았다 - 헐리웃에서 추방당하다시피 쫓겨났다가 다시 복귀하였을 때 오직 케리 그랜트만이 버그만과의 우정을 지켜주었다고 한다. (그랜트의 전처 중 한 명인 벳시 드레이크의 영향으로 최면요법을 공부하게 되었고, 오명을 촬영하던 당시, 스테레스가 극심했던 버그만에게 최면치료를 시술해서 영화촬영을 순조롭게 끝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랜트의 전처였던 버지니아 셰릴은 그가 '과음을 하면, 자신의 목을 조르고 때리면서 죽여버리겠다'고 했다며 고소한 바 있다.
[1] 전엔 알프레드 히치콕이 한 말이라고 씌여있었지만, 이건 사실 캐리 그랜트 자신이 한 말이다. 실제로 케리 그랜트는 예명이였고, 당시 인기 스타는 실제와는 다른 스타 페르소나를 구축하였기 때문에 여러가지를 시사하는 말.[2] 출처[3] 공교롭게 로저 무어가 본드 역을 은퇴 할 때 나이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