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케 로즈버그

 


'''핀란드의 前 F1 드라이버'''
''' 이름 '''
'''케케 로스베르그'''
'''Keke Rosberg'''
''' 본명 '''
케이요 에리크 "케케" 로스베르그
(Keijo Erik "Keke" Rosberg)
''' 출생 '''
1948년 12월 6일 (75세)
스웨덴 스톡홀름 주 솔나
''' 국적 '''
'''핀란드''' [image]
'''신체'''
키 170 cm
''' 소속 '''
선수
(F1)

시어도어 레이싱 홍콩 (1978)
ATS 레이싱 팀 (1978)
시어도어 레이싱 홍콩 (1978)
ATS 레이싱 팀 (1978)[1]
올림푸스 카메라 울프 레이싱 (1979)
피티팔디 오토모티브 (1980~1981)
'''TAG 윌리엄스 레이싱 (1982~1983)'''
윌리엄스 레이싱 (1984)
캐논 윌리엄스 레이싱 (1985)
말보로 맥라렌 인터내셔널 (1986)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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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횟수'''
128경기
'''월드 챔피언'''
1회 (1982)
'''그랑프리 우승'''
5회
'''포디움'''
17회
'''폴 포지션'''
5회
'''첫 경기'''
1978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그랑프리
'''첫 그랑프리 우승'''
1982년 스위스 그랑프리
'''패스티스트 랩'''
3회
'''마지막 경기'''
1986년 호주 그랑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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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호주 그랑프리

[image]
아들 니코 로즈버그와 찍은 사진. 이제는 아버지와 아들 둘 다 F1 챔피언이다.
1. 개요
2. 기타


1. 개요


'''포뮬러 원 역대 부자 (父子) 챔피언'''
1대
2대
그레이엄 힐(1962,1968)
데이먼 힐(1996)
케케 로즈버그(1982)
니코 로즈버그(2016)
2016년 포뮬러 1 월드 챔피언인 니코 로즈버그의 아버지 이기도 하다.[2]
1982년 챔피언으로 시즌 중 단 1승만을 거두고서 챔피언이 된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1958년의 마이크 호손과 함께 둘만 있는 기록인데 호손은 2위라도 5번 한 반면에 로즈버그는 경기수가 많아졌는데도 포디움 갯수를 다 합쳐야 5개가 된다. 이렇게 된 이유는 사실 시즌중 1위를 달리던 디디에 피로니[3]가 5경기를 남기고 호켄하임에서 예선에서 폴까지 따놓고 데릭 데일리의 차에 박고 두 다리가 부러져 강제 은퇴를 당했기 때문이다. 만약 사고가 없었다면 피로니가 챔피언이 되었을 확률이 90% 이상이었지만 스포츠에 만약은 없는 법.[4]
운빨로 챔피언이 된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당시 케케 로즈버그는 염연히 80년대를 대표하는 드라이버였으며 윌리엄즈의 대들보 같은 인물이었다. 세나가 등장하기 전 나이젤 만셀, 니키 라우다, 넬슨 피케, 질 빌르너브와 함께 8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드라이버이다.
2016년에 아들 니코 로즈버그가 F1 챔피언에 등극하며 그레이엄 힐, 데이먼 힐에 이은 F1 역사상 두번째 부자(父子) 챔피언이 됐다.

2. 기타


  • 현재는 F1 그랑프리에 간간히 스튜어트로 참가하고 있다.
  • -berg로 끝나는 성씨 때문에 유대인으로 아는 경우도 있지만, 전혀 상관없다.

[1] 2번 표기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시어도어->ATS->시어도어->ATS 순으로 소속되었다. 순서대로 각각 5, 3, 4, 2경기를 뛰었다.[2]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있는 모습도 보이곤 한다.# [3] 1997년 챔피언 자크 빌르너브의 아버지 질 빌르너브와 라이벌전을 펼쳤던 인물로 그 당시 가장 빠른 드라이버중 한 명이었다. 빌르너브와 피로니는 페라리에서의 팀오더 사건으로 사이가 매우 안좋았다고 한다. 은퇴 이후 디디에 피로니는 보트 레이싱에 참가했다가 사고로 사망했다.[4] 1961년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챔피언 필 힐, 2위 볼프강 폰 트립스) 점수차를 갖고 리드하던 폰 트립스가 몬차에서 짐 클락과의 충돌로 사망해버린 것. 1970년에도 요헨 린트가 사망하며 같은 상황이 벌어질 뻔 했지만, 이 경우엔 살아남은 경쟁자들이 끝내 린트와의 점수차를 좁히지 못했다. 애초에 점수차가 2위와 20점이었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던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