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먼 힐

 


'''영국의 前 F1 드라이버'''
''' 이름 '''
'''데이먼 힐'''
'''Damon Hill'''
''' 본명 '''
데이먼 그레이엄 데버루 힐
Damon Graham Devereux Hill, OBE[1]
''' 출생 '''
1960년 9월 17일 (64세)
영국 사우스이스트 잉글랜드 런던 햄프스티드
''' 국적 '''
'''영국''' [image] (잉글랜드 [image])
''' 소속 '''
선수
모터 레이싱 디벨롭먼트 (1992)
캐논 윌리엄스 레이싱 (1993)
로스만 윌리엄스-르노 (1994~1996)
당카 애로우즈 야마하 (1997)
B&H 조던 그랑프리 (1998~1999)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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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횟수'''
122경기
'''월드 챔피언'''
1회 (1996)
'''그랑프리 우승'''
22회
'''포디움'''
42회
'''폴 포지션'''
20회
'''첫 경기'''
1992년 스페인 그랑프리
'''첫 그랑프리 우승'''
1993년 헝가리 그랑프리
'''패스티스트 랩'''
19회
'''마지막 경기'''
1999년 일본 그랑프리
}}}#000000,#e5e5e5 '''마지막 그랑프리 우승'''}}}
1998년 벨기에 그랑프리

[image]
선수 시절 사진
'''포뮬러 1 역대 부자 (父子) 챔피언'''
1대
2대
그레이엄 힐(1962,1968)
데이먼 힐(1996)
케케 로즈버그(1982)
니코 로즈버그(2016)
1. 개요
2. 생애 및 선수 경력
2.1. 챔피언
3. 여담


1. 개요


영국의 전 포뮬러 1 드라이버로, 니코 로즈버그가 2016년 F1 챔피언에 등극하기 이전까지 아버지 그레이엄 힐과 함께 유일한 부자 (父子) 챔피언이었다.
무려 32세라는 늦은 나이에 F1 데뷔를 하여 36세에 우승을 거머쥔 대기만성의 표본.

2. 생애 및 선수 경력


1960년 태어난 그는 2살때인 1962년에 아버지 그레이엄 힐F1 챔피언에 오르면서 어렸을땐 그야말로 풍족한 집안에서 아무 걱정없이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한다.[2]
그러나 15살이 되던 1975년 아버지 그레이엄 힐이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하게 되고, 이는 데이먼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만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집안은 궁핍해졌고, 데이먼은 학업을 위해서 공장에서 일을하기도 하고 오토바이 택배기사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다. 택배기사일을 하면서 피는 못속이는지 모터사이클에 흥미를 느껴 모터사이클 선수로 뛰다가 매우 늦은 나이인 23살에 포뮬러 경주에 뛰어들었고,[3] 1992년 32살이라는 나이에 브라밤 팀으로 F1에 데뷔한다.
당시 브라밤넬슨 피케의 우승 이후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고, 경쟁력 없는 레이스카로는 좋은 성적을 낼 수 없었다. 하지만 1992년 나이젤 만셀이 은퇴하면서 드라이버를 구하던 윌리엄즈팀은 그에게 계약을 제의했고, 그는 경쟁력있는 차량으로 실력을 발휘하여 이적 첫해인 93년에 3위를 하였고 다음해인 1994년에는 팀 동료인 아일톤 세나의 죽음으로 인해 얼떨결에 팀의 퍼스트 드라이버가 되었지만, 꾸준한 실력으로 미하엘 슈마허와 같이 챔피언에 도전하였으나, 최종전인 호주GP에서 슈마허의 고의성 짙은 충돌로[4] 1점 차이로 챔피언의 자리를 내주었고, 1995년에는 슈마허에게 그야말로 발리며...[5] 역시 2위를 차지한다.

2.1. 챔피언


1996년 슈마허 타도를 위해 윌리엄스개발진들을 굴리고 굴려 명작 FW18을 만들어냈고, 강력한 차량으로 데이먼은 팀메이트인 자크 빌르너브와 함께, 페라리로 이적한 후 베네통에 비해 비교적 후진 차에서 빌빌거리던 미하엘 슈마허를 발라버리면서 챔피언에 등극, F1 역사 상 최초의 부자 챔피언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데이먼의 나이를[6] 생각하여 노쇠했다고 판단한 윌리엄스는 팀메이트였던 슈퍼루키 자크 빌르너브[7]를 퍼스트 드라이버로 올리면서 데이먼을 방출한다.[8] 방출된 데이먼은 애로우즈 팀으로 이적했으나 하위권 팀의 차를 운전하면서 F1에 흥미를 잃게 되었고, 1998년 에디 조던이 이끄는 조던 그랑프리로 이적한 후 1회의 우승을 거두고 1999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였다.

3. 여담


  • 드라이빙 스타일이 매우 부드럽고 젠틀한 스타일이라 다른 드라이버들에 비해 타이어와 연료소모량이 적었고, 드라이빙 스타일에서 비롯돼서 서킷 위의 신사라고 불렸다.
  • 은퇴 후 방송 해설과 저서등을 집필하다가 2006년부터 영국 드라이버 협회(British Racing Driver's Club)회장직을 맡았고, 2011년 회장직에서 물러나 2012년 현재 스카이 스포츠 F1 채널에서 해설을 맡고 있다.

[1] 대영제국 훈장 4등급 수훈[2] 아버지 그레이엄 힐1968년에도 챔피언을 차지하였고 1966년에는 인디 500, 1972년에는 르망 24시까지 우승하면서 현재까지 전무후무한 모터스포츠 트리플 크라운을 가지고 있다.[3] 이때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F3에 참가하려 했으나 돈이 없어 전전긍긍하던 그에게 아버지와의 인연으로 연줄이 닿은 조지 해리슨이 선뜻 지원을 해주었고, 그 지원을 바탕으로 F3에 진출할 수 있었다. 훗날 그가 F1챔피언이 되고 당시 지원해준 돈을 조지 해리슨에게 주었으나 해리슨은 거절했다고 한다.[4] 이 충돌은 아직까지도 팬들 사이에서 의견이 많이 갈리고 있다. 슈마허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트러블이 생긴 차량의 예측을 거동하기는 힘들다는 것과 성능이 떨어지던 베네통 차량으로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던 윌리엄스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무리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측면에서 옹호하고, 비판하는 쪽에서는 트러블이 생긴 차량을 가지고 블로킹을 들어갔다는 것에서 충돌을 감수한 것이 아니냐는 것과 특히 데이먼 힐마저 리타이어 한 이후 슈마허의 반응을 문제시 삼아 비판하고 있다[5] 포인트 차이가 30점차... 지금 포인트 방식으로 치면 80점 정도의 큰 차이다[6] 35살이면 F1 드라이버 치고 절대 적은 나이는 아니었다.[7] 당시 자크 빌르너브는 데뷔하자마자 우승에 포디엄을 쓸어버리면서 슈퍼루키 소리를 들었었다. 마치 2007년루이스 해밀턴 같았다고 해야할까... [8] 후에 윌리엄스의 차량 디자이너였던 애드리언 뉴이의 회고록에 따르면 1995 시즌 "성적 부진"을 이유로 프랭크 윌리엄즈와 패트릭 헤드 둘이서 데이먼 방출을 1996년이 되기도 전에 결정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