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우가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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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河ゆん

1. 개요
2. 이력
3. 에피소드
4. 혐한 논란
5. 작품
5.1. 자체작
5.2. 참여작
6. 기타


1. 개요


일본만화가 겸 동인작가. 순정만화 쪽을 주로 그린 한편 소년만화로 분류되는 쪽도 그렸다. 본명은 야마다 리사(山田 理沙, 결혼 전의 성은 키무라). 윤이 한국인 성씨처럼 보여서 이름 때문에 헷갈려하는 사람이 있지만, 재일교포는 아니다.
1965년 7월 9일 도쿄도 시나가와구 출생. 남편은 에로만화가 타츠네코.
원래 절대적인 인기를 자랑하던 동인작가였다. 동인작가 시절 주로 다룬 장르는 은하선풍 브라이거, 캡틴 츠바사, 세인트 세이야, 마왕전, 신기동전기 건담 W 등. 현재는 만화가 생활과 동인작가 생활을 겸하고 있다. 하지만 미완 작품이 많아 악평을 듣기도 한다.

2. 이력


어린 시절부터 만화에 관심이 깊어 쿠루마다 마사미(세인트 세이야의 작가) 공식 팬클럽에 가입. 1982년 처음 코믹마켓을 경험하고 동인지를 접했다. 17세였던 1983년부터 은하선풍 브라이거로 동인 활동을 시작.
동인 활동 초기부터 오오테[1]가 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원고 의뢰를 하고 자신이 그린 컬러 일러스트집을 무료로 뿌리기도 했다고 한다.
동인 활동 중 출판사에 스카웃 되어 1986년, 20세의 나이로 데뷔하였다. 프로로 데뷔한 직후에도 동인계쪽을 절필한 것은 아니어서 지속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스스로는 인도어파고 그림 그리는 것과 망상하는 것을 제외하면 남는게 별로 없는 사람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83년에는 아르바이트와 동인 활동을 양립하기 위해 자진해서 학교까지 휴학했을 정도(…). 1987년 윙즈에 지구인 연재 개시와 함께 동인계에선 캡틴 츠바사와 마왕전의 붐을 동시에 일으킨 장본인. 때문에 오덕계에선 현재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전설급 에피소드와 당시 동인계 사이의 갖가지 소문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었다고도 전해진다.
1988년 겐지 연재 개시. 아름답고 절절한 BL을 특유의 감성적인 필치로 그려내어, 대히트를 거듭하였다.
1990년 잠시 붓을 놓았으나, 1991년부터 다시 연재 개시. 이 때부터 그림체가 대폭적으로 바뀌기 시작하며, BL이 아닌 작품(게슈타르트, 요정사건 등.)도 연재하기 시작한다. 남편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거유 미녀도 멋지게 그려내는 모습을 보이며, 그 때까지 그녀의 이름을 모르던 남성 독자들에게도 지지받기 시작한다.
완전히 판타지 작가로 바뀌는가 싶던 2001년, LOVELESS를 연재하면서 탐미적이면서도 담백하고 절절한 감성적 터치로 자신의 최대 장기를 다시 한 번 발휘하며, 다시금 인기를 얻는다. 소프트 BL 노선을 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러브리스는 많은 인기를 얻어 이후 애니화 되기도 했다.
2008년, 감독 미즈시마 세이지의 권유로 기동전사 건담 더블오의 캐릭터 디자인의 오디션에 응모, 당선되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여담이지만 티에리아 아데의 경우 미즈시마가 제시한 것은 '미소년 캐릭터'하나로, 디자인 자체는 본인의 오리지널로서 전혀 터치가 없었다고 한다(단, 안경을 씌운 것은 감독의 의향으로 처음부터 안경을 씌울 캐릭터와 그렇지 않은 캐릭터가 정해져 있었다고 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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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루마다 마사미 데뷔 40주년이 되는 2014년을 기념하는 일련의 기획 중 하나로 "쿠루마다 수호전 ~히어로 오브 히어로즈~"라는 작품을 만들 예정이다. 쿠루마다의 대표작인 링에 걸어라의 타카네 류지, 풍마의 코지로의 코지로, 세인트 세이야의 세이야를 한데 크로스오버시키는, 기획부터가 충격적인 작품인데다 코우가 윤 특유의 그림체 때문에 설왕설래하는 중이다.

3. 에피소드


당시의 인기를 상징하는 에피소드 중에 후덜덜한 이야기가 많다.
  • 한달에 400페이지를 그렸다(동인지 한 권이 대략 24페이지나 32페이지이니, 한달에 동인지만 열 권을 넘게 그려낸 셈이다.).[3]
  • 그렇게 그린 동인지들이 각 권당 1만부 이상 팔렸다(10만부가 넘는다!).
  • 한 때 어시만 10명 가까이 됐다. 물론 월급 다 줬다.
  • 그 어시들 전부 재울 수 있는 집에 살고 있었다.
  • 갑자기 차가 사고 싶어져서 차를 사고, 하와이 가고 싶어서 어시들 데리고 하와이 갔다.
  • 하라주쿠에 자기 가게(CYC LAND)를 갖고 있었다(압구정동에 자기 가게 열었다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
  • 코미케에서 당시의 인기 동인 작가들(코우가 윤 포함)끼리 온갖 명품 브랜드를 걸치고 서로 으스댔다는 소문도 있다(…).
  • (코미케의) 동쪽의 코우가 윤, 서쪽의 CLAMP라 불릴 만큼 80년대 동인계의 대표적인 작가였다.
이는 코우가 윤의 실력이나 오오테의 위치였던 탓도 있지만 금전적인 측면이나 판매부수는 일본이 버블 경제에 있었던 것도 한몫했다. 이 때 코미케는 멜로디 북으로 된 동인지가 나오거나, 젊은 나이의 동인작가가 자신이 내는 장르의 원화가나 성우들을 초대해 초호화 파티를 여는 게 일반화되어있는 등 현재는 상상할 수도 없는 굉장한 상태였다고 한다. 당연히 돈 벌기도 쉬웠다고. 참고로 코우가 윤은 1986년 동인계 최초(?)로 댄스 파티를 열기도 했다.
이러한 붐을 일으켰던 코우가 윤이었으나 LOVELESS의 연재 전까지는 활동이 잠시 주춤하였을 뿐, 연재를 시작하고 건담 더블오의 캐릭터 디자인도 맡으면서 현재는 시대에 뒤처지지 않고 오랫동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만화가이다. 같은 시절 동인 활동을 했던 나루시마 유리와도 친분이 깊어 공동 원화전을 열기도 했다.
최근에는 듀라라라!!에 푹 빠져있는 모양이다. 트위터에 듀라라라 팬아트를 올리고 나리타 료우고에게 칭찬받자 좋아하는 등... 근데 이게 자기 그림체로 팬아트를 그리는 게 아니고 야스다 스즈히토의 그림체가 좋아서 따라하는데 안 돼서 아쉽다고 한다.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는 오리하라 이자야라고. 급기야 10월, 코믹 시티 스파크에서 뭔가 수상한 책을 내는데... 그 외에도 마마마관련 회지도 내는 등, 열심히 동인활동을 하고 있다.
그것 말고도, 세츠마리(세츠나X마리나)를 좋아해서 그런지 세츠나와 마리나가 같이 나오는 일러스트를 그릴 때면 힘을 빡 줘서 그린다. [4]
2009.12.27에 자신의 블로그 일기에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 다시 태어나고 싶다.[5]라는 요지의 글을 올리기도 했었다.
2010년 코미케 78에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퍼지고 있는 구제역 피해 자선 동인지 제작 기획에 참가하였다.
'코우가 윤' 이라는 필명과 요정사건 국내정발판 1권 마지막 페이지의 '한국 독자 여러분께'로 시작하는 장문의 한글 후기(사실은 18금씬 페이지 삭제에 대한 양해의 이야기)를 '''직접''' 손으로 쓴 일(중간 일본잡지-일븐잔지로 잘못 쓴 부분은 있지만 상당히 깔끔한 한글)로 인해 일본국적을 가지고 있는 재일교포 2세라는 루머가 돌았지만 일본인이다.

4. 혐한 논란


사다모토 요시유키/혐한 논란과 관련해 '아줌마가 되어도 사다모토의 작품이 좋다'는 멘션을 보냈고 문제의 소녀상 트윗에 마음에 들어요를 눌러 사실상 혐한임을 인증했다.# 상황을 보면 업계에서 겪었던 고충을 늘어놓으며 자조하는 사다모토에 대한 개인적인 존경과 격려를 표현하려던 것 같지만 문제가 되는 정치적 발언에까지 동조해버리는 것은 도무지 생각이 없는 행동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6]
다만, 사건이 일어난 이후 2020년 1월 1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사건에 대한 언급없이 정치적 발언은 일절 하지 않다 보니, 그녀가 혐한 인지 그저 사다모토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그런 발언을 했는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5. 작품



5.1. 자체작



5.2. 참여작



6. 기타


  • 혐한 논란을 기점으로 성 상품화에 대한 취향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 성 상품화 비중이 높은 그림과 만화 소식을 리트윗하고 있었는데, 혐한 논란에 휩쓸린 이후 성 상품화 비중이 낮은 그림과 만화 소식만을 리트윗하고 있다.

[1] 큰 손, 인기 동인 작가를 이르는 말.[2] 참고로 기동전사 건담 00는 '미려한 그림체와 메카스러운 기체의 대비'를 목적으로 했었는데, 캐릭터 디자이너가 이 사람이 아니라 사다모토 요시유키가 될 뻔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각본가 쿠로다 요스케는 사다모토 요시유키를, 미즈시마 세이지는 코우가 윤을 각각 추천했었다고.[3] 하루 평균 20시간을 작업한다고 쳐도 한 시간 반마다 한 페이지를 그려내야한다.[4] 이런 커플 성향때문에 당시 더블오의 각본가인 쿠로다 요스케와의 의견충돌이 있었다. 자세한 것은 쿠로다 항목을 참조.[5] 人生いろいろ라는 제목으로 된 글이다. 30초 정도 후에 새 홈페이지로 리다이렉트 된다.[6] 우익 혐한적 사상에 동조하는 그녀의 행동은 이오리아 슈헨베르그를 연기했던 오오츠카 치카오의 얼굴에 침을 뱉는 거나 마찬가지인 행동이다. 왜냐하면 오오츠카 치카오는 우익 혐한들이 그토록 그리워하는 일본 제국 때문에 형과 사별했어야 했을 뿐더러 자신의 꿈인 댄서마저도 단념했어야 했다. 때문에 그는 죽는 날까지 우익이나 혐한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야 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