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모토 요시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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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오른쪽''')
貞本 義行(さだもと よしゆき)
트위터
1. 개요
2. 약력
3. 작풍(作風)
5. 기타
6. 작품 목록
6.1. TVA
6.2. OVA
6.3. 극장판
6.4. 만화
6.5. 그 외
7. 작화 샘플
8. 관련 문서


1. 개요


1962년 1월 29일 생. (62세) 일본 야마구치현 토쿠야마시(현 슈난시) 출신.[1] 혐한 성향[2]의 애니메이션 캐릭터 디자이너이자 만화가, 애니메이터. 대표작은 가이낙스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신세기 에반게리온.
간단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의 캐릭터들로 정평이 있으며, 특히 가이낙스의 대표작들이 성공하는데 그의 캐릭터가 크게 일조하면서 큰 명성을 얻었다. 다만 에반게리온으로 크게 성공한 이후 순탄한 길을 걸은 것과 대비되게 그 이전까지는 꽤 힘든 시기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사다모토는 애니메이터 중에서도 그림은 잘 그리지만 작업 속도가 느리기로 유명한데 그림 매수 만큼 돈을 받는 애니메이터의 세계에서 그가 얼마나 고생했을지는 얼추 짐작할 수 있다. 그리면 엄청난 게 나오는데 안 그리기로 유명하다. 애니메이터는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월급제로 일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작업 속도가 느리면 그림 매수가 적게 나와서, 돈을 적게 받아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친한 감독으로는 안노 히데아키, 츠루마키 카즈야, 호소다 마모루, 야마가 히로유키가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안노 히데아키와 사다모토의 관계가 많이 틀어졌다는 의혹이 있는데, 사다모토는 지금 안노와 가이낙스 문제로 대립한 야마가 히로유키 편에 붙어 있다고 한다. 안노는 야마가 히로유키의 온갖 쓰레기같은 짓거리 때문에 곤혹을 치른 적이 많고 2019년에는 가이낙스와 가이낙스 IP와 관련된 문제로 야마가의 얼굴 같은건 두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며 의절을 선언 했는데, 그 야마가 편에 사다모토가 붙어 있다고 한다. 2020년 에바 신 극장판 파이널의 3차례의 키 비쥬얼에서 사다모토가 그린 그림은 하나도 사용되지 않았을 뿐더러, 이제까지의 극장판 스태프 명단에서 캐릭터 디자인에 이름을 올리고 있던 사다모토가 2020년 극장판의 디자인 워크스 스태프 명단에서는 제외되어 있다.
사다모토는 2019년 이전 스튜디오 카라를 퇴직한 것으로 보인다. 카라의 홈페이지에선 아직도 사다모토 요시유키를 상담역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 본인은 그만두었다고 말하고 있으며 # 스튜디오 카라 명의 없이 그레이트 프리텐더 같은 다른 회사 작품에 참여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상담 역은 퇴사한 임원에게 붙이는 직책이다. (임원 항목 참조) 이로 미루어 퇴사를 하긴 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향후 몇 년간은 회사와 계약한 내용이나 회사에 대한 공적 인정에 따라 봉급을 받게 된다.

2. 약력


도쿄조형대학 조형학부 미술학과 회화 영역을 전공했으며, 1981년 대학 2학년 재학 중에 오토바이를 사기 위해 주간소년 챔피언에 응모, 만화가로 데뷔하기도 했다. 같은 해, 만화연구회 동아리 후배였던 마에다 마히로[3]가 부탁해서 TV판《초시공요새 마크로스》의 원화를 아르바이트로 그렸고 , 여기서 안노 히데아키야마가 히로유키를 알게되고, DAICON FILM의 멤버가 되어 오사카에서 열린 일본 SF 대회인 DAICON 4 행사에서 상영한 오프닝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한다. 그리고 이 오프닝 애니메이션 영상에서 훗날 두고 두고 화제가 되는 바스트 모핑을 선보였다.
이후 1984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도쿄무비신사의 자회사인 텔레콤 애니메이션 필름에 입사하고 오오츠카 야스오 밑에서 일을 배우게 되고, 꽤 실력을 인정받았다.[4] 텔레콤 애니메이션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일을 한 적이 있어서 미야자키 하야오 밑에서 일하고 싶어서 지원 입사했는데, 그는 이미 퇴사하고 없었다. 미야자키는 1981년에 텔레콤을 떠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를 제작하고 스튜디오 지브리(1985)를 설립하기까지는 소속한 회사가 없는 프리랜서였다. 사다모토는 이 때 자신이 이미 원화를 그린 경력이 있다는 걸 숨기고 들어갔으며, 얼마 안 가서 친구 안노 히데아키 등이 설립하는 가이낙스로 이적할 작정이었다. 오오츠카 야스오는 이를 간파하고 추문하였으며 사다모토 요시유키는 결국 이 사실을 말하고 얼마 안가 그만두었다고 한다.[5] [6][A]
텔레콤에서는 동화/원화맨으로 9개월간 일하다가,[7] 가이낙스가 극장용 애니인 <왕립우주군~오네아미스의 날개>의 제작하게 되면서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감독를 맡는다. 당시로서 무명의 애니메이터가 캐릭터 디자인을 맡는 것은 이례였다.[8] 하지만, 왕립우주군이 흥행에서 실패하고 나서 높으신 분들은 사다모토는 안된다...라는 선입관 때문에 기분이 상하기도 했다. 이후, 톱을 노려라!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에서 가이낙스의 핵심 멤버로 활약한다. 그러나, 나디아 이후에도 세간의 평은 좋지 않았고 에반게리온으로 성공하기 전까지 생활고와 장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나디아 이후 안노의 새 기획안인 에반게리온이 수 년동안 승인이 떨어지지 않았고, 월급도 끊긴 사다모토는 외주와 화집 등을 내며 근근히 버터야 했다.[9] 심지어는 아내 쪽의 가업을 이을려고 도자기 수업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마침내 에반게리온의 제작은 시작되었고, 사다모토는 배수의 진을 치고 신주쿠에서 하루종일 여성 패션을 관찰하기도 하는 등 전력을 다했다. 그리고 에반게리온의 만화를 자청해서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사다모토의 생각으로는 안노의 애니메이션이 끊겨도 만화라면 혼자 연재해서 먹고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10] 그 말대로 애니메이션이 끝난 17년 후에야 만화가 완결되었다. 그리고 이 것을 아내(타카하 마코)에게도 마지막 기회로 생각하고 실패하면 가업을 잇겠다고 약속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95년 방영개시한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무지막지한 명성을 얻었다. 당시 에바 붐 덕에 내는 세금도 엄청 많아져서, 타카하마시 관청(아내의 고향인 아이치현 타카하마시에 본적을 두고 있다)의 공무원이 '도대체 뭘 하는 사람이기에 이렇게 많이 납세를 하나?'라고 충격받았다는 루머가 있는데 말 그대로 루머인 것이 일본 소득확정신고용지에 직업을 쓰는 란이 있어서 일부러 거짓으로 직업을 속이지 않는 이상 공무원이 세금내는 사람 직업을 모를 순 없다.[11]
가이낙스 입사 후, 거의 모든 가이낙스 작품의 캐릭터 디자인을 도맡았다. 왕립우주군의 캐릭터도 이 사람의 작품. 이외에도 .hack 시리즈나 아랑전설 등 다수의 게임에도 참여했고 천원돌파 그렌라간에서는 최종화 원화를 맡았고, 2009년에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신작 썸머 워즈의 캐릭터 디자인과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캐릭터 디자인 작업을 맡았다.
에릭 클랩튼의 1998년 앨범 Pilgrim 표지도 이 사람 작품이다. 클랩튼이 이 사람 그림을 보고 의뢰했다고 한다.「R20 톱니바퀴가 있는 거리」라는 만화를 만든 이후엔 만화가 겸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 중이다.
기동전사 건담 00는 '메카스러운 기체와 미려한 그림체의 대비'를 목적으로 했었는데, 그 원화는 코우가 윤이 아니라 이 사람이 될 뻔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각본가 쿠로다 요스케는 사다모토 요시유키를, 미즈시마 세이지는 코우가 윤을 각각 추천했었다고 한다.

3. 작풍(作風)


조금 기형적이지만 늘씬해서 매력적인 골반이 특징으로, 굉장히 가는 몸의 캐릭터를 그리는데 능숙하다. 다만 너무 마른 캐릭터들이 많이 나와서 현실과 좀 동떨어진 느낌이 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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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지를 그리는 방법'. 나디아와 매우 닮았다.'''
게다가 그리는 캐릭터는 얼굴이 차이가 부족하고, 머리 모양이나 복장을 바꾸는 것으로 밖에는 차이가 전혀 안 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본인도 자각하고 있는지, 나디아의 머리 모양을 바꾸고 속눈썹을 없애는 것만으로 이카리 신지가 되고,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조연 마미야 치아키도, 방심해서 그리다 보면 나기사 카오루가 되어 버리고 만다"고 인터뷰중에 언급했다(…). 작가 자신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진노우치 와비스케에게 꽁지머리를 달고 껄렁한 정장을 입히고 피부를 미백하면 신세기 에반게리온카지 료지가 되고, 표정을 편안하게 만들고 낡은 셔츠를 입히면 늑대아이의 그이가 된다. 왕립우주군에서는 그나마 덜 두드러졌지만 신세기 에반게리온부터 두드러지는 특징.
그래도 특유의 그림체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있다. 그리고 그가 작업한 썸머 워즈를 보면 아직 실력은 죽지 않았구나라는 말이 나온다.[12]
애니메이터로서도 상당했는데, 오오츠카 야스오가 칭찬했을 정도. 작화보루사다모토 요시유키 작화 포스트들 그러나 그림은 잘 그리는데 손이 '''극도로''' 느린 것으로 유명했으며 그가 그린 애니메이션 작화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실질적으로 애니메이터로서 제대로 그린 작품이 왕립우주군 딱 하나 밖에 없다. 심지어 만화책 판 에반게리온도 생계가 걸린 작품인데도 완결에 10년이 넘게 걸렸다. 애니메이터보단 디자이너나 일러스트레이터의 재능이 있는 인물.
아래에 언급된 혐한 발언 사건에서 예전부터 ADHD를 투병해와서 가끔 자신도 모르게 헛소리를 한다며 은근슬쩍 빠져나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아마 이거 때문에 작업 속도가 극도로 느렸던 것으로 보인다. ADHD가 있으면 한 자리에서 오래 집중해서 작업하기 힘들다. 또한 오카다 토시오 말로는 일을 못하겠다며 일을 냅두고 갑자기 귀가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도 ADHD 환자들이 종종 보이는 증상이다.
비슷하게 그리는 인물로는 스즈키 슌지, 쿠보오카 토시유키가 있다. 특히 사다모토는 손이 느렸기 때문에 그의 애니의 그림은 대부분 다른 사람이 그린 경우가 많다. 다만, 사다모토는 세월이 지나면서 펜선이 거칠게 변했으나, 쿠보오카는 지금도 예전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4. 혐한 성향



트위터로 평화의 소녀상을 향한 혐한 표현을 하면서 논란이 되었다.
스즈키 슌지히라마츠 타다시 같은 기존에 우익으로 알려졌던 애니메이터들이 전향하면서 현존 우익 애니메이터의 끝판왕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한국이 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하자 스즈키와 히라마츠는 이 건에 대해 아무 성명도 내지 않고 가만히 있었는데 반해 사다모토 혼자만 비난하는 뉘앙스의 트윗을 올렸다.

5. 기타


취미는 영화감상, 자동차, 오토바이, 아이돌[13], 영향을 받은 만화가로 마츠모토 레이지, 나가이 고, 후쿠야마 요우지(福山庸治)[14], 좋아하는 영화감독은 테리 길리엄이란다. 그리고 일러스트레이터 아마노 요시타카의 광팬이다.[15]
DAICON IV 오프닝 애니메이션에서 세계 애니메이션 역사상 처음으로 바스트 모핑을 의도적으로 대놓고 노리고 선보였다는 썰이 있다. 한 때는 '''乳揺らしの貞本(가슴 흔들기의 사다모토)'''라고 불리기도 했다. 본인 말로는 평소 여자 가슴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는데 톱을 노려라!에서도 노리코가 정면을 향해 가슴을 출렁 출렁거리면서 걸어가는 장면[16]도 걸어가면 가슴 정도는 흔들리겠지하며 원화를 그렸는데 우루시하라 사토시가 있던 동화를 그리는 팀이 가슴에 집착해서, '''おっぱいアニメーター( 가슴 애니메이터)'''의 대명사처럼 돼버렸다고 억울해했다. 실은 안노 히데아키도 '가슴흔들기'에는 집착해서, 일부러 가슴 흔들리는 씬을 프레임 밖으로 벗어나게 원화를 그렸는데, 안노가 가슴 흔들리는게 안보이는 것이 아깝다고 원화를 수정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키덜트 취향"으로 좋아하는 작품은 우메즈 카즈오표류교실, 데자키 오사무감바의 모험, 마츠모토 레이지은하철도 999라고 한다.「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서 여행을 하며 원하던 것을 얻고도 돌아오지 않고 또 여행을 계속하는 점이 근사해요」라고 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만화(이하 만화판 에바)에 이 작품들의 오마쥬가 있다고 한다.
코믹스판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각권 앞날개를 살펴보면 십년만에 어디까지 사람이 삭을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꽤나 일찍 결혼한 유부남인데[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한 말을 자주한다. "레이 코스프레를 보고 싶다."[18]라든지, "연애를 하고 싶다.", "인생의 원동력은 자동차, 여자, 만화", "마리의 플러그 슈트 디자인은 가슴 뒤에서 움켜잡는 느낌으로..." 등등.
아야나미 레이를 편애한다는 말이 꽤 퍼져있다. 신지에게 연인으로는 레이가 있고 친구로서는 토우지가 있으니 아스카는 에반게리온에서 필요없다는 발언도 했었고, 만화판에서 아스카의 분량을 대폭 삭제하고 그걸 죄다 레이와 카오루에게 밀어준데다가, 최후에는 아스카가 카지의 환상을 보면서 LCL화했기 때문에 사다모토의 레이 편애설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게다가 신극장판에서 발디엘에게 발리는 파일럿 역할을 토지에서 아스카로 바뀌는 아이디어를 제공한게 사다모토라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아스카빠들에게 욕을 무지하게 얻어먹었다. 게다가 만화판 마지막까지 만화의 테마표현과 히로인으로서의 역할을 한 건 아야나미다. 마지막화에서 아스카의 히로인의 가능성을 제시해주긴하지만, 원작 애니메이션에서 아스카가 보여주던 정신적 성장과 상징성을 모조리 거세해 버린 주제에 에필로그에서 트로피 와이프 취급이나 해줘봤자 아스카 팬들의 화가 풀릴 리가 없다.
같은 가이낙스 출신으로 이후 자이언트 로보 OVA 지구가 정지하는 날, 루나 시리즈, 아이돌 마스터의 캐릭터 디자인을 맡은 쿠보오카 토시유키와 그림이 비슷해서 종종 혼동되기도 한다.
모구단, 노노무라 히데키, 이즈루미[19]와 함께 2002년 12월 30일 63회 코믹 마켓에서 N2 BOMB!이라는 에반게리온 에로 동인지를 그린 적도 있다. 동인지에서의 펜네임은 Y.S・イレブン.정확히는 카츠라기 미사토, 아야나미 레이,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 호라키 히카리의 에로화보 수준의 표지 포함 일러스트 5장이다.
2013년 11월 10일에 부천 국제 학생 애니메이션 영화제에 가이낙스 30주년 기념으로 방한했다. 그리고 힙합 비둘기와 대담을 나눴는데 '''장인어른'''이라고 불렸다. 덕분에 나 혼자 산다 11월 29일 방송분에도 잠시나마 등장했다.[20] 데프콘의 에바 블루레이에 싸인해주면서 말하길, 요즘 자신의 딸이 EXO에 빠져있다고 한다.
그러나 2019년에 위의 혐한 발언을 하는 바람에 데프콘도 결국 아스카 벽지를 찢으면서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탈덕을 선언했다.[21]
혐한 발언 이후 그의 일화가 재조명되면서 원래 인성에 좀 문제가 있고 눈치 문화에 취약한 사람이 아니었나하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 텔레콤 프로덕션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는지 시간을 달리는 소녀 작업 때 현장에 텔레콤 프로덕션 출신의 애니메이터들이 많자 캐릭터 디자인만 하고 도망갔단 일화가 있으며, 오카다 토시오의 발언에 따르면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제작 당시 한국에서 온 원화가 마음에 들지 않자 화를 내고 일거리를 내팽개치고 그냥 집으로 가버린 적도 있다고 한다. 프로로서 뭔가 문제가 있는 태도라고 볼 수 밖에...[22][A]
  • 혐한 발언 이후 에반게리온 제작진이 그를 손절하는 추세임에도 그가 사과 없이 두 번이나 에반게리온 공식 매체를 홍보하는 등 눈치가 부족한 모습이 보이고 있다. 한 번이라면 작품에 대한 애정을 참을 수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어도 두 번이나 홍보했다는 것은 자신의 홍보가 에반게리온을 죽이는 일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거나 무시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
내한 당시의 멤버를 살펴보면, 사다모토에 더불어 야마가 히로유키, 아카이 타카미가 부천에 방문하였다. 이들은 현재 스튜디오 카라와는 관계 없는 가이낙스 쪽 인원이다. 애초에 가이낙스 30주년 행사겸으로 내한한 것이긴 하나, 에반게리온을 이야기하는데 현재 에반게리온을 만드는 사람들이 안 온 것이 의미심장하다.

6. 작품 목록



6.1. TVA



6.2. OVA



6.3. 극장판



6.4. 만화



6.5. 그 외



7. 작화 샘플


선을 많이 넣어서 그려도 선이 뒤틀리지 않고 움직임이 자연스러우며 사람, 메카닉, 이펙트 작화를 혼자서 다 하는 괴물이다. 오오츠카 야스오가 사다모토는 미야자키 하야오 급 천재라고 한 게 과장이 아니란 것이다. '''하지만 작업 속도가 극도로 느린 탓에 잘 안그릴 수 밖에 없다.'''

왕립우주군 - 오네아미스의 날개 PV 총작화감독 사다모토 요시유키

톱을 노려라 중 슈퍼 이나즈마 킥
연출 안노 히데아키,히구치 신지 / 작화감독 사다모토 요시유키 / 원화 오오바리 마사미

톱을 노려라 2 OP
연출 마사유키 / 작화감독 사다모토 요시유키
원화 시바타 유카, 하야시 아케미

8. 관련 문서



[1] 여담으로 안노 히데아키도 야마구치현 우베시 출신이다.[2] 2013년에는 그래도 방한까지 했으나 그 때의 모습이 그저 단순한 사탕 발림이었다는 게 드러났는데, 그 증거로 사다모토는 소녀상 망언 사건이 터지기 훨씬 전부터 극우 혐한 성향의 경제평론가들인 미츠하시 타카아키(三橋貴明)와 죠넨 츠카사(上念司)의 계정을 팔로우 하거나, 스스로를 그 두사람의 팬이라고 떠벌린 적도 많았다. 지금도 팔로우 되어 있으니 확인이 가능하다. 그런데 웃긴 점은 미츠하시는 경제 정책건으로, 죠넨 츠카사는 아베노마스크 건으로 아베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는지, 최근에는 혐한 발언은 거의 안 하고 있고, 주로 아베에 대한 비난 위주의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리고, 사다모토 요시유키도 최근의 아베 정책의 실망했는지, 아베를 까는 트윗도 꽤 보이기 시작했다. [3] 나중에 애니메이션 제작사 곤조를 창립했다.[4] 이전에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했던 경력을 숨겨서 같이 입사한 동기들은 그의 재능을 보고 좌절했다는 일화가 있다. 또 오오츠카 야스오는 자기보다 뛰어나다고 탄복을 했고, 신인 시점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 츠키오카 사다오와 견줄만 하다고 절찬을 했다. 참고로 오오츠카 야스오는 이 둘에게 애니메이션의 기초를 가르친 토에이 선배이자 선생님.[5] 미야자키 하야오 밑에서 일하고 싶어서 텔레콤에 지원한 것은 사다모토 본인이 한 말이다. 그런데 입사 하기 전부터 가이낙스로 이적할 생각이었다는 것은 사다모토 본인이 한 말이 아니라 제3자이자 가이낙스의 창립 멤버이자 초대 사장이었던 오카다 토시오가 한 말이다.[6] 오오츠카 야스오의 말을 들어보면, 사다모토가 워낙 실력이 뛰어나서 주변 동기의 애니메이터들이 좌절을 하니까 그를 불러서 도대체 어떤 일이냐고 물어봤는데, 사다모토 요시유키가 이 전에 애니메이션 제작에 경험이 있다고 고백한 정도의 이야기이다. 나무위키를 편집하는 사람들은 사다모토가 혐한 발언을 한 후에, 이 사람은 그 전부터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몰아가려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사다모토가 한국에 악감정을 가지게 된 계기는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제작 과정에서 부터다.[A] A B 단, 나디아 제작 과정 건은 가이낙스쪽의 잘못이 더 큰 편이며, 오카다 토시오 또한 최종적으로는 가이낙스 쪽의 잘못을 인정하는 제스쳐를 보여주었다. 왜냐하면 그 건이 일본의 입장에서야 한국에 대한 비판요소가 될지 몰라도 한국을 포함한 세계 보편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노동력을 갈취하려다 실패했다며 징징대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7] 미야자키 하야오가 빠진 명탐정 홈즈 등에 참여했다. 다만 노 크레딧이다.[8] 가이낙스의 주축멤버였던 오카다 토시오가 나중에 말하기를, 사다모토의 그림 실력은 그림 잘 그리기로 한 가닥 한다는 사람들이 모인 가이낙스에서도 최고였다고 한다.[9] 1991년에 애니메이션 잡지 뉴타입에 만화 <R20 歯車のある街>를 연재하면서 9년만에 만화가로 재개한 것도 이 시절이다.[10] 애니메이션 업계에선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캐릭터 디자인으론 저작권료를 받을 수가 없다. 사다모토는 만화를 그렸기 때문에 만화책 인세라도 받아먹었던 것이다.[11] 어느날 갑자기 소득이 확 불어나면 국세청에서 감사가 나오니 모를리가 없기도 하고. 이런식으로 어느날 갑자기 연봉이 확 뛰어오르는 직종은 운동선수, 연예인, 작가 정도인데 운동선수는 연봉이 구단에 의해 공개되고 가수 등 연예인은 TV에 나오는 직업특성상 모를 수가 없다. 그래서 이름만으로는 누군지 모르는데 갑자기 소득이 수십배 이상 불어난 사람은 만화가든 소설가든, 어쨌든 작가겠거니 하는 편이고 실제 직업란을 확인해보면 거의 맞아떨어지니 충격받았다는 건 루머가 맞다.[12] 13명의 대가족 캐릭터를 전부 혼자서 작업했으니 당연하다.[13] 데프콘에게 사인을 해줄 때 자신의 딸이 EXO의 팬이라고 했으며, 트윗에서도 "한류 아이돌도 좋아하고, 예쁘다는 건 솔직하게 말합니다"라고 말했다 혐한이긴 하나 한류는 상당히 좋아하는 듯 하다. 만약 그러지 않았으면 자신의 딸이 EXO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겼을 테니...[14] 대표작은 모차르트가 여성이었다는 설정의 희비극 <마드모아젤 모차르트>. 여성은 유명한 음악가가 될 수 없다고 남장여자로 길러진 천재 소녀 모차르트와 그에 반해버려서 자신이 동성애자가 아닌가 고민하는 살리에리와의 애증이 주내용이다.[15] 나중에 천사의 알에 참여하게 되는 계기로, 컬러 잉크 사용법 등의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다.[16] 제1화 4분 47초부터다. 명장면(?)으로 이후 아니메 팬들에게 회자된다.[17] 아내 역시 만화가 겸 만화원작자인 타카하 마코. 아이는 1남 1녀를 두고 있다. 장남인 토타는 1992년생, 장녀 린코는 1995년생이다.[18] 에반게리온 코믹스판 날개에서 한 말이다.[19] 모구단과 같은 나카요히란 서클에 같이 소속되어 있다 모구단이 야야나미 레이라면 이쪽은 아스카다.[20] 이때 대화가 압권이다. 한편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에 관련된 대형 떡밥이 던져졌다는 평도 있다. 데프콘: "장인어른! 왜 그녀를 애꾸로 만들었습니까!?" 사다모토 : '''"비밀입니다."'''[21] 본인도 마음의 상처가 꽤 컷던 모양인데, 그 증거로 아스카 벽지를 찢으면서도 "마음 아프지만 어쩔 수 없잖아",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라고 혼잣말을 하였다. 덤으로 사다모토에게 '''"뭘 안다고 지껄여..."'''라는 말을 남겼다.[22] 단, 한국에서 보낸 원화의 경우 높은 퀄리티가 아니어서 마음에 안 든게 아니라 당시 방영분을 보면 누가 봐도 질이 떨어지긴 해서, 쉴드칠 여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