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만화
1. 개요
여성들을 주 독자층으로 하는 여성향 만화. 소녀만화라고도 불리는데 국내에선 순정만화란 말이 많이 쓰인다.
2. 상세
여성을 대상으로 한 로맨스물이라는 편견과 달리, 실제로 따지면 장르 학원물, 직장물, SF나 판타지 등 매우 다양한 장르를 다루며, 로맨스 소재가 매우 적거나 거의 존재하지 않는 작품도 부지기수다. 당장에 전설적인 순정만화로 여겨지는 에이스를 노려라!, 바람의 나라, 유리가면, 베르사이유의 장미 등부터가 로맨스 소재가 적은 편이다. 순정만화 잡지에서 연재되었을 뿐더러 나무위키에서도 순정만화로 분류되는 아기와 나, 나츠메 우인장도 연애 요소는 찾기 힘들다.
실질적으로 장르로써 분류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만화들을 '순정만화'로 장르로 묶어 분류하는 것은 한국, 대만, 일본 등 동아시아권에만 존재하는 관습이다. 그나마도 대만은 대부분 한국과 일본의 순정만화를 수입한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한국과 일본에서만 존재하는 장르이다.[출처]
한국에 순정만화라는 장르명이 탄생한 것은 1950년으로, 당시에 만화의 분류는 활극만화, 명랑만화, 가족만화로 크게 나눠졌는데, 순정만화는 가족만화 분류가 변화한 것이다. 활극만화는 영웅적인 주인공의 활약상이 강조됐고, 명랑만화는 코믹한 전개로 웃음을 주는데에 주력했고, 가족만화는 이야기의 전개를 통한 감동의 전달에 주력했다. 가족만화는 가족의 구성원 중 하나를 구성원으로 내세웠고, 특히 활극만화, 명랑만화가 남성을 주로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과 달리 가족 만화는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울 수 있었다. 그에 따라 소녀팬들의 인기를 끌 수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가족만화는 소녀팬을 겨냥한 소녀취향 만화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순정(純情)’이라는 용어는 <만화세계> 1956년 10월호에 실린 정파의 <흰구름 가는 곳>의 타이틀에서 최초로 발견할 수 있다(손상익, <한국만화통사 하>, <미스터 블루> 97년 11호).
일본에서는 '''소녀만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좀 더 나이 많은 독자층을 대상으로 하는 레이디스 코믹이란 분류를 덧붙인다. 그리고 한국의 순정만화와는 분류 기준이 일치하지는 않으며, ebookjapan 등의 일부 전자서적 사이트에서는 이토 준지의 작품이 소녀만화로 분류되어 있다.
순정만화 중 18금 성적 묘사가 들어가 성인향이 된 종류는 틴즈 러브, 줄여서 TL이라고 부른다.
여성 만화가들이 많이 그리는 편이다. 드물게는 남자들도 이를 접하는 사람들이 있고 남자 만화가가 순정만화를 그리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서도 《달려라 하니》의 이진주, 《요정 핑크》의 김동화, 《영심이》의 배금택, 그리고 김영하, 허영만도 이곳에 참여했다.
한국과 일본에는 순정만화와 소녀만화라는 장르가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여성 만화가가 다른 국가들보다 많은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만화가들의 대부분은 남성이고, 여성작가의 숫자가 상당히 적은 편이다. 일본의 쇼죠망가(소녀만화) 덕분에 어쩌면 일본에는 여성만화가들이 많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마찬가지로, 이 소녀만화가 서서히 정착하고, 197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상당히 대중적인 인기를 끌게 되면서, 이 만화들의 향유자가 미래의 여성 창작자를 배태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순정만화라는 유령 - 순정만화라는 장르의 역사와 감성만화의 정의, 2016년
3. 특징
주로 남성들을 주 독자층으로 하는 소년만화가 보다 직관적인 형태의 자극적 묘사에 집중하는 편이라면[1] 순정만화는 보다 심리적인 측면에서의 인간관계에서의 자극적 묘사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른바 한 성별의 캐릭터가 다른 성별의 여러 캐릭터와 관계를 맺는 하렘 구도를 예로 들면 대체적으로 소년만화에서는 이러한 캐릭터들간의 관계로 발생하는 갈등을 메인 스토리에 있어서 일종의 양념처럼 처리하는 경향이 강하다면[2] 순정만화에서는 캐릭터 자체의 개성 묘사도 묘사지만 심리 묘사에 막대한 비중을 할애함에 따라 대부분의 스토리가 이 갈등 묘사를 집중으로 확장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순정만화 특유의 이러한 인간관계 구도를 가져와 남녀 성별을 바꾸어 적용해서는 남자 취향으로 바꾼 《미유키》와 《오렌지 로드》 이후로 이런 류의 장르가 소년만화 쪽에서도 많아졌지만 원조가 원조다 보니 순정만화들에서는 이런 장르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편 연애적인 요소가 있으면서도 소녀로서 혹은 성인 여성으로서의 자아를 돌아보며 고민하는 내용을 다루는 경우도 제법 되는 편이다. 한국의 강경옥, 문흥미, 이진경, 일본의 아시하라 히나코, 사쿠라자와 에리카, 오사카 미에코 등등의 만화가들이 그린 작품이 이런 경우. 이 외에도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나가는 여성을 중심에 놓고 주인공의 극복담을 다루는 식도 예전부터 지금까지 많이 쓰이고 있다. 그 밖에 연애 요소가 첨부되긴 하지만 가족 혹은 여러 인간들 사이에 엮이는 정을 주요 소재로 하는 작품 또한 자주 인기를 끄는 편.
이런 다양한 경향 때문에 순정만화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논의가 자주 벌어지기도 한다. 남녀 연애가 나오면 순정만화라고 하자니 연애요소의 비중이 천차만별인 데다 연애 요소가 약한 경우도 있는 등 장르 전반을 딱 정의하기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라이트 노벨의 정의에 대한 것과 비슷하다 볼 수 있는데, 그래서 아예 라이트 노벨처럼 순정만화 잡지에 연재하면 순정만화라는 식으로 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순정만화라고 보기 어려운 《바나나 피쉬》 같은 작품들도 어쨌든 순정만화로 분류된다.
이야기나 플롯 면에서 드라마화에 어울리는 편이기도 하다. 최근의 《노다메 칸타빌레》나 《오토멘》 같은 경우 외에도 일본에선 예전부터 순정만화를 드라마화 한 경우가 자주 있고, 한국의 경우 《풀하우스》 같은 인기작이 있으며, 2009년엔 《탐나는도다》가 드라마화되기도 했고, 2010년에는 《매리는 외박중》이 드라마화되었다.
이 계열의 만화 심의는 소년 만화와는 전혀 다른 심의 기준을 지닌 듯하다.[3] 소년 만화라면 진작에 빨간 딱지를 붙이거나 잘렸을 심히 에로한 장면이 버젓이 등장한다. 규제가 덜한 일차적인 이유는 직접적인 성기 묘사를 '''아예''' 안하기 때문 일 것이다. 실제로 《애완소녀》 보면 할거 다하지만 성기는 투명하게, 아니 아예 공기로 묘사한다. 그외에도 컷연출로 교묘하게 하반신을 묘사하지 않거나 옷이나 소품으로 다 가린다. 직접적인 성적묘사보다는 감각적인 성적묘사가 여성독자에게 더 어필되기 때문. 그렇다고 모든 순정만화들이 야한 건 아닌데, 《연애지상주의》와 《애완소녀》, 《패왕애인》 같은 일본의 Sho-Comi에서 연재된 만화들이 막 가는 경향이 다분하고 그걸로 팔아먹는데 성공해 놓으니 체감상 심하게 느껴지는 듯.
더불어 그린 만화가들이 여성이 많지만 남성도 적지 않게 있었다. "만화의 신"으로 불리는 테즈카 오사무, "만화의 철인"인 요코야마 미츠테루도 초기 작품 중에 순정만화 작품들이 있으며, 명랑만화가로 알려진 김진태만 해도 순정만화를 10여 작품이 넘게 그린 바 있었으며 김형배도 여러 편 단편으로 순정만화를 그린 적이 있다. 그 밖에 이상무나 이우정도 단편으로 순정물을 그려 연재하기도 했다. 다만 일본 순정만화를 베껴서 억지로 그리던 남성 만화가들도 있는데, 이는 합동출판사라는 거대 출판사의 강압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어처구니없게도 이런 강압으로 순정물을 그리던 만화가 중 하나가 무협만화가로 유명했던 이재학.
6~70년대 무렵에는 소녀 코믹과 마가렛 소녀 프렌드가 주간으로 나오면서 주간 잡지가 일본 순정만화 잡지의 대세가 되기도 했으나, 월 2회 간행이나 월간 연재가 더 효율이 좋다는 점이 나타나면서 주간으로 나오던 잡지들도 격주간이나 월간으로 전환, 주간으로 나오는 순정만화 잡지는 사라지게 되었다. 현재 일본에서 격주간(실제로는 월 2회간)으로 나오는 순정만화 잡지는 소녀 코믹(Sho-Comi), 마가렛, 하나토유메(이상 소녀만화 잡지) YOU, 키스, BE・LOVE(이상 레이디스 코믹 잡지) 정도. 참고로 일본의 소년만화 잡지는 현재 주간은 4개밖에 없으며 격주간은 아예 없고 나머지 대다수는 월간. 청년만화나 성인향 만화잡지 쯤 가면 주간이나 격주간이 꽤 많다.
《명탐정 코난》은 논란이 많이 오간다. 남성독자보다 여성독자가 훨씬 많고, 원작자가 스스로 "살인 러브코미디"라고 정의했기 때문. 하지만 보통은 '''소녀만화로 보지 않는다.''' 일단 주역들이 대부분 남성이고 주간 소년 선데이라는 소년만화 잡지에 연재가 되었기 때문에 대부분 여성팬덤이 많고 소녀만화스러운 소년만화로 본다.
4. 일본 순정만화의 시초
순정만화하면 생각나는 눈이 유달리 크고 둥근 작풍은 다름 아닌 만화의 신 데즈카 오사무에 의해서 시작된 것이다. 1953년 데즈카 오사무의 <리본의 기사>가 <소녀클럽>에 연재되며 일본에 는 소녀팬을 겨냥한 소녀만화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일본의 소녀만화는 데즈카가 개척한 동그란 얼굴에 커다란 눈을 작화의 기본으로 채택한 뒤 이를 더욱 심화시켜 조형적 아름다움을 강조한 소녀만화적 화풍을 정착시켰다.
이후 1970년대에 하기오 모토(일본 순정만화의 신이라고 불리는 인물)·다케미야 케이코·오오시마 유미코 등이 등장하며 소녀 만화사를 바꿔버린다. 이들은「꽃의 24년조」라고 불리며, 소녀 만화를 개척한다. 꽃의 24년조는 현재의 일본 소녀만화계의 방향성을 확립하였으며 일본 소녀 만화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로 평가받는다. 꽃의 24년조는 귀여운 소녀들의 사랑을 그리던 천편일률적인 소녀만화를 탈피해 새로운 형식의 만화를 발표했다. 순정 만화의 SF를 접목시킨다던지 소년애(BL)를 넣는다던지 미스터리 스릴러 요소를 넣는 등 혁명적인 작품들을 발표한다. 처음으로 소녀만화의 다양한 장르를 시도한게 이들이다. 이들의 영향력은 한국 순정만화계까지 영향을 미쳤다.
5. 클리세
순정만화/클리셰 참고.
6. 그림체
이쪽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순정만화'라는 말만 들으면 전형적인 극 고전 순정만화(70년대 순정만화로 대표되는 《유리가면》, 《베르사유의 장미》) 등을 떠올리며 순정만화 그림은 항상 변함없다며 까기도 하지만, 잘 보면 역대 소년만화 그림이 항상 대세에 따라 바뀐 것과 같이 순정만화도 대세에 따라 그림체가 바뀐다. 순정만화 업계에서 성인만화처럼 공장 작업을 하는 공장장들의 예로는 김영숙, 한유랑, 황미리, 나하란 등이 있다. 시리즈를 수십, 수백 권 냈으나 그림체가 똑같은 수준이다.
그림체 측면에서 보자면 전형적인 '순정만화 그림체'는 전반적으로 사물의 입체성(원근법 등)과 구조성(인체비례 등)을 대략적으로 표현하는 대신에 평면적인 디테일(옷의 무늬, 액세서리, 머리카락 등)을 섬세하게 그리는 경우가 많다. 순정만화 그림체 하면 뾰족한 턱이나 과하다 싶을 정도의 비율,[4] 커다란 눈에 덕지덕지 붙은 하이라이트가 연상될 것이다. 작가마다 다르지만, 보통 만화에선 없애거나 간단하게 그리는 입술도 꽤 자세히 묘사해주는 편이다.
7. 역대 일본 누계부수 순위
출처
아래 집계의 경우 완전판이나 문고본이 있는 경우 그게 판매량에 포함된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한데다 집계 시점에 따라서도 차이가 나는지라, 아주 정확한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편의상 작성된 참고용.
8. 한국 순정만화의 흐름
한국 순정만화의 선구자격 작품은 김정파(1924~1992)가 1956년에 지은 그림소설식 만화 〈흰 구름 가는 곳〉이다. 그러나 김정파의 만화는 그림이야기처럼 완전한 만화의 형태가 아니어서 오늘날의 순정만화 효시라기보다는, 과도기 단계의 최초 작품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김정파 이후, 1957년 4월에는 완전한 형태의 순정 만화 《영원한 종》이 한성학에 의해 창작, 발표돼 소녀들의 인기를 끌었다.
한성학의 뒤를 이어 곧바로 등장한 권영섭[6] 은 1960년대 초반 청순가련형 소녀 '봉선이'를 등장시킨 일련의 소녀 만화를 발표해 순정 만화 영역을 확실히 다져나갔다. 그는 <오손이 도손이>, <은색의 십자가>를 비롯 <울밑에선 봉선이>, <봉선이하고 바둑이>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 이범기는 1960년대 초반 <장희빈>, <강화도련님>, <단종애사> 같은 역사 소재의 순정만화로 인기를 얻었고, 김용도는 <인어공주>, <세공주>, <비엔나> 등 전형적인 여성 취향의 그림체로 1960년대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던 남성만화작가로 꼽힌다.
그리고 박수산(1940~1984)은 1960년대 정상의 인기를 확보했던 순정만화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단국대 법대 재학 중 꾸준하게 순정만화를 발표해 왔으며 남성작가이면서도 섬세한 여성 심리의 표현에 탁월, 페미니즘 작가로 분류해도 좋을 만한 작품들도 다수 남겼다. 엄희자의 스승이자 남편으로 알려진 조원기도 <섬아이> 등 깔끔한 그림의 순정만화체 작품을 많이 발표했다. 부호(본명 김성연)를 비롯, 《나미와 유령건반》의 조애리(본명 강휘모), 《코스카》의 장희정(본명 황정하)등도 여성 이름의 남성 작가로 당대 순정 만화계의 맥을 이었던 작가였다. 이렇듯 당시 우리 순정만화계는 남성들에 의해 주도된 것이 특징이다.
당대 대표적인 순정만화 작가들로는 원로격인 송순히는 《재생》, 《생명》 등의 묵직한 내용의 순정만화를 발표해 여성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장은주는 《철없는 여자》로, 김기백의 부인 민애니는 《인어언니》로 우리 순정만화를 확고한 위치에 올려놓은 여성 작가였다. 그의 뒤는 이성희, 이해경(본명 이미라) 등이 이어 여성 순정만화의 계보를 형성했다. 특히 이해경은 하반신 불수의 신체적 결함을 극복하고 만화가로서 인간승리를 보여준 표본이었다. 최진희 도 《수선화》, 《뷔엔나 숲의 이야기》로 당대 소녀들의 인기를 끌었다.
1960년대의 우리 순정만화를 이야기할 때 엄희자를 빼놓을 수 없다. 엄희자는 한국 초창기 순정만화의 그림체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1960~70년대 초반 발표작품의 수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 이 분야 최고 작가로 손꼽혔다. 깔끔한 터치와 군더더기 없는 인물 묘사로 1970년대에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원작으로 한 《사랑의 멜로디》를 만들어 소화해 내는 등, 뛰어난 그림 실력을 발휘했다. 엄희자 문하에서 배운 차성진은 엄희자 이후 사실상 맥이 끊어진 우리 순정만화의 맥을 잇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엄희자의 전성기가 지난 1970년대 들어 우리 순정만화는 잠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만화 검열제로 소재가 제한된 데다 만화방 중심의 만화책 유통마저 합동출판사가 독점한 데다 당시 만화방을 독차지한 사내아이들의 등쌀로 인해 소녀들이 만화방을 가길 꺼리게 된 것이 큰 원인이었다. 민애니 가 남편을 따라 명랑만화가로 전향하거나 1981년까지 혼자 순정만화의 맥을 잇던 엄희자가 남편 조원기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간 것도 이러한 모습을 대변한다.
그럼에도 여중고생 잡지 <여학생> 등지에 《상급생》 등을 지은 이혜숙 등도 있었다. 그러나 이혜숙의 만화는 일본 만화를 그대로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아 독창적 작품성은 인정받지 못하나, 꾸준한 창작으로 우리 순정만화의 맥을 이었다는 점만은 높이 살 만하다.
한국에서 순정만화가 다시 등장할 기회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일본만화 《캔디캔디》가 한국 소녀들의 인기를 끌면서 다시 생겼다. 이후 《올훼스의 창》, 《베르사유의 장미》, 《안젤리크》, 《롯데롯데》, 《유리가면》, 《유리의 성》 등 전형적인 일본 소녀만화가 캔디캔디의 성공을 등에 업고 잇달아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거의가 국내 작가들의 창작품인 양 위장된 채 버젓이 작가의 이름까지 표지에 내세우고 시중에 팔린 소위 해적판 만화의 대표적 사례이다. 정영숙, 황수진, 김영숙 등이 이 시기 해적판 순정만화 표지에 단골로 나온 작가들이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온 순정만화들이 표절 시비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성공하자 아예 이러한 만화들의 그림체나 줄거리를 따라한 소위 아류 순정만화들이 우리 작가들에 의해 생산되기 시작했다. 그런고로 1970년대 후반 들어 우리 만화계에선 거의 비슷한 그림체와 내용으로 일관된 온갖 순정만화가 작가의 이름만 달리한 채 양산되는 진기한 현상을 낳기도 했다.
1980년 초중반에 들어 한국 순정만화는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1980년대 초반 들어 차성진, 김동화&한승원 부부, 이혜순, 이진주, 이보배, 황미나를 필두로 김혜린, 김진, 신일숙, 강경옥 같은 작가들이 도서출판 프린스에서 만화방용으로 발매한 만화들로 데뷔한 것이다. 《베르사이유의 장미》 같은 서사극 스타일의 일본 순정만화에 영향받은 이들 2세대 순정만화 작가들은 각기 서사극 스타일의 대 장편을 내놓으면서, 각 작품에서 단순한 답습이 아니라 작가 개개인의 주제와 개성을 강렬하게 선보여 큰 성공을 거둔다.
인기 좋은 만화는 빌려간 독자들이 자기들이 좋아하는 장면들을 마구 잘라내는 바람에 나중에 읽는 사람들은 보다가 중요한 장면들이 다 날아가 분통 터트리는 일이 마구 벌어지기도 했다만 뭐.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이렇게 순정만화판이 돈이 된다 싶으니 순정만화 공장을 차려 시장에 들어오는 인간들이 여럿 생겼고, 김영숙(이란 필명을 쓰는 영감)부터 해서 나하란, 한유랑 등 지금까지도 살아남아 있는 공장장들이 발을 들이댄 것도 1980년대부터다.
만화방에 있는 순정만화의 장면들을 오려가는 일이 자주 벌어졌는데, 점점 커져가는 순정만화 수요층과 이렇게 소장 욕구가 큰 여성들의 성향과 만화방용 시스템과는 다른 창작을 하고자 하는 작가들의 시도가 맞물리면서 순정만화 전문 잡지에 대한 요구가 나오게 된다. 그리하여 1988년 한국 최초의 순정만화 잡지인 르네상스가 나온다.
르네상스는 한국 순정만화계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렇게 등장한 잡지를 통해 작가들은 만화방용 단행본이란 방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작가들은 자신들의 창작욕을 충족시킬 수 있는 단편에서 중편 정도의 작품을 그려낼 수 있게 되었고, 한편 이런 환경 속에 기존 만화방용 단행본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던 현대의 일상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그리던 만화가들이 새삼 주목받을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이는 90년대 한국 순정만화의 중흥기로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르네상스는 처음으로 신인 공모전을 개최했고, 이를 통해 전통적인 문하생 출신이 아니라 ACA 등에서 아마추어 활동으로 능력을 단련하다 프로로 등장하는 3세대 순정만화 작가 집단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르네상스는 창간과 함께 순식간에 순정만화 독자층을 끌어들이며 큰 인기를 끌었고, 이를 본 사람들이 이 판에 뛰어들며 순정만화 잡지 창간 붐이 일어나게 된다. 모던 타임즈를 비롯해 하이센스, 미르, 요요, 투유, 터치, 미니, 실루엣, 화이트, 쿠키, 치치, 칼라, 윙크, 이슈, 화이트, 댕기, 나나, 펜팬, 밍크, 슈가, 파티, 나인, 아디 등 무수한 잡지가 쏟아졌고 발매일에는 서점 앞에 줄을 서는 광경도 간혹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등장했던 여러 잡지들은 연재중단작만 왕창 남긴 채 거의 사라졌고, 그 와중에 좀 더 어린 독자층으로 노리고 등장했던 잡지인 나나만 살아남아 어느 정도 자리를 잡는 데 성공한다. 또한 90년대 그야말로 '르네상스'를 이루며 일본 만화와 확연히 구분되는 독자적인 화풍과 작품 세계를 구축해나가던 한국 순정만화 역시, 이어진 대여점의 범람과 출판만화 시장의 몰락에 따라 침체기로 접어들었다.
여담인데 김형배나 이우정같은 만화가들도 단편이긴 해도 순정만화를 연재하거나 책을 낸 바 있다.
9. 한국 순정만화의 왜색 시비
만화평론가 손상익은 1998년 저서 <한국만화통사> 하권에서 순정만화가 일본 만화의 한 아류로 창작되어 이 땅에 정착된 시기는 1970년대 중반 《캔디캔디》부터라고 말한다. 물론 이전에도 한국 만화 창작 경향에서 일본 만화에 대한 표절 시비는 공공연히 있어왔다. 다만 1970년대 중반 이후 순정만화의 일본 베끼기는 그 범위나 깊이에서 과거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한다. 손상익은 한국의 순정만화 작가가 일본 소녀만화를 단기간 또는 일부를 복제하는 것을 넘어 오랜 기간 동안 완전한 형태를 국내에 도입해 정착시켰다는 점에서 비판하고 있다.일본 대중문화의 합법적인 수입조치는 1990년대에 와서야 이루어졌다. 이 순간까지 쇼죠망가(소녀만화)를 읽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러한 표절에 의한 것뿐이었다. 유명한 작품들은 1977년 이후 계속 쏟아져 나왔다. 이케다 리요고의 <베르사이유의 장미>(1972), <올훼스의 창>(1975), 미유치 스즈에의 <유리가면>(1976), 아리요시 교코의 <스완>(1976) 등이 가장 인기가 많았던 작품들이었다. 당시 독자들은 실제로 이 작품들이 일본작품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일본 이름들, 주인공들의 이름들이거나 또는 저자의 이름들을 모두 출판사에 의해 가짜 한국 이름들로 바뀌었고, 페이지 중에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일본적 요소, 특히 기모노 같은 복장들은 전문가나 비전문가들에 의해 다시 그려졌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역설적에게도 바로 이런 다시 그려진 그림 때문에 조금 더 능숙한 독자들에게는 이 작품이 일본작품이라는 것을 지시하는 표시가 되기도 했다. 순정만화라는 유령 - 순정만화라는 장르의 역사와 감성만화의 정의, 2016년
《캔디캔디》 이후 《올훼스의 창》 등이 잇달아 한국에 소개되면서 한국 순정만화의 주인공들은 남녀 분간이 잘 안된, 소위 '여성화'된 캐릭터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당대 일본 소녀만화의 등장인물들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화려한 의상에 기다란 머리를 늘어뜨린 것이 그 원인이었다. 또 손상익은 전술한 저서에서 초기 순정만화에 유럽 배경이 꽤 있었다는 점을 들어 '유럽 콤플렉스'라는 비약적인 주장을 하기도 했다.[7] 이에 대한 반론으로 1960~70년대 일본 소녀만화에 유럽이 배경으로 종종 등장했던 이유는 꽃의 24년조 등의 만화가들이 당시 유행한 대체 역사물 등의 시대물에서 모티브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특정 시기(주로 근세~근대) 유럽 문화가 소녀만화의 하늘하늘한 배경과 비극적 감수성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인기를 얻은 것뿐이다. '유럽 콤플렉스'라는 집단적 의식이 존재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건 소녀만화가 쌓아온 문학적 가치를 생각하지 않는 확증 편향적 일반화일 수 있다. 그리고 소녀만화에 영향을 받은 순정만화를 병균에 감염된 오염물 정도로 취급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90년대에는 환상게임, 바람의 나라 등 고대 동아시아 배경의 작품이 유행했기에 단순한 유행의 문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1980년대 이후 한국 만화에 대한 왜색 시비가 거론될 때마다 순정만화는 도마에 올랐다. 그리고 순정만화는 황미나부터 시작하여 본격적으로 소재의 차별화와 그림체의 변화 등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소녀만화와는 다른 독자적인 모습으로 변했다.
순정만화의 왜색을 지적하는 의견에 대해 반박하는 연구도 있다.
일부 평론가들은 초기 문화제국주의적 입장에서 '왜색(倭色) 순정만화'를 비판한다. 특히 손상익(1998)은 우리 순정만화가들이 "일본만화를 단기간 혹은 일부를 복제한 것에 그치지 않고, 오랜 기간 동안 완전한 형태의 일본 소녀만화를 그대로 재현, 국내에 도입해 정착시켰다"고 주장한다. ...(중략)... 오늘날 한국 순정만화는 일본작품에 비해 독자들의 막강한 지지를 받고 있으며, 독자적인 입지를 굳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작가들은 일본만화와 관련된 과거에 연연해하기보다는 현재에 있어서 창작을 통한 독자와의 대화, 미래를 향한 순정만화의 발전가능성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또한, 그들은 일본만화가 한국만화와 전혀 "다르다"고 인식했고, 양국의 민족정서/문화의 차이로 인해 우리의 고유영역은 결코 침범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제 (한국의) 순정만화는 대만, 일본 등 해외시장에도 진출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문화의 활발한 상호작용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 순정만화와 일본 소녀만화의 관계 연구, 2000년
10. 순정만화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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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주요 작품
순정 만화 분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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