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노 야스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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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빌로 이와타 No.2 '''
콘노 야스유키 (今野 泰幸, KONNO Yasuyuki)
'''생년월일'''
1983년 1월 25일 (41세)
'''국적'''
[image] 일본
'''출신지'''
미야기현 센다이시 타이하쿠구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수비수
'''신체 조건'''
178cm, 73kg[1]
'''학력'''
토호쿠 고등학교
'''소속팀'''
콘사도레 삿포로 (2001~2003)
FC 도쿄 (2004~2011)
감바 오사카 (2012~2019)
주빌로 이와타 (2019~)
'''국가대표'''
93경기 4골
1. 개요
2. 선수 경력
3. 국가대표
4. 우승
5. 플레이 스타일
6. 여담


1. 개요


'''일본의 2011년 아시안컵 우승을 이끈 수비의 스페셜리스트'''
일본의 프로축구선수. 포지션은 미드필더수비수

2. 선수 경력



2.1. 프로 데뷔 전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축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일본 토호쿠 지역의 축구 명문고인 토호쿠 고등학교 진학을 노렸지만 체육 특기생으로는 뽑히지 못하고, 일반전형으로 진학했다. 그러나 이후 축구부에서 두각을 느러내며 미야기현 대표로 선발되어 전국 체전까지 출전하게 된다. 고등학교 졸업후에는 지역 실업 축구팀에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전국대회에서 콘노를 눈여겨봤던 콘사도레 삿포로의 스카우터의 추천으로 콘사도레 삿포로의 훈련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여기서 감독의 눈에 든 콘노는 콘사도레 삿포로와 프로 계약을 맺게된다.

2.2. 콘사도레 삿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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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단 첫해인 2001 시즌부터 감독은 콘노의 압박 능력과, 볼을 따내는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출전 기회를 주었고 시즌 19경기에 출전했다. 천황배 경기에선 본인 프로 데뷔 골을 신고했다.
2002시즌 부터는 주력멤버로 인정받아 등번호 4번을 받았고, 시즌25경기에 출전했지만 팀은 최악의 시즌을 보내며 J2리그로 강등된다.

2.3. FC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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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시즌 말, FC 도쿄로부터 이적 제의를 받았고, J1리그에다 출전 기회가 더 많을 팀이었기에 FC 도쿄로 이적하게 된다. 등번호는 6번.
2004 시즌은 삿포로 시절보다 많은 출전 기회를 받았고, 리그컵 결승에서는 동료 센터백이 퇴장당한 상황에서도 혼자서 중앙 수비를 맡아, 연장전 끝까지 무실점으로 지켜내며 FC 도쿄 역사상 첫 우승 타이틀을 획득하는데 공헌했다.
2005 시즌 말, 수비력을 인정받아 당시 이탈리아 세리에 A팀이던 US 레체로부터 관심을 받았지만, 12월 천황배 경기에서 무릎내측인대 부상을 당해 정식 오퍼까지는 이뤄지지 못했다.
2009 시즌 시즌 도중부터 센터백으로 포지션 변경하여 나서기 시작했고, 중앙 수비수로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2010 시즌, 국가대표 경기에서 얻은 부상때문에 출전 경기 수가 줄긴했지만 시즌 전체에 걸쳐 중앙 수비로 꾸준히 나왔고, 팀이 공격의 비중을 높일때는, 전진 패스 능력이 떨어지긴 하지만 포지션을 미드필더로 올려서 쓰는 기용도 있었다. 팀은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J2리그로의 강등을 면치 못했다.
2011 시즌, 처음으로 주장을 맡았다. 이젠 일본을 대표하는 수비수였지만, 옥의티로 여겨졌던 수비진 조율 능력이 주장을 맡으면서 크게 향상되었고, 팀이 J2리그 최소 실점으로 우승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천황배 결승전에서는 동점골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공헌했다.

2.4. 감바 오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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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29일 J1리그 상위권 팀이었던 감바 오사카로 완전 이적했다. 우승을 노릴 수 있는 팀이라는 것이 이적을 결심하는데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새팀에서 우승을 목표로 시작한 시즌이었지만 팀은 시작부터 연패에 빠지는 등, 심각한 부진에 빠졌고, 팀실점은 뒤에서 2등을 기록하는 등, 콘노 본인도 제대로 수비진을 이끌지 못하고 팀 창단사상 최악의 성적을 거두며 J2리그로 강등된다. 콘노의 커리어에서 세번째 경험하는 강등이었다.
2013 시즌 중앙 수비와 수비형 미드필더를 오가며 경기에 나셨고, 두 포지션에서 다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감바 오사카의 1부리그 복귀에 공헌했다.
2014 시즌 클럽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섰지만 예전 같지 않은 폼으로 부진했고 팀성적도 리그 초반 16위까지 떨어지는 등 좋지 못했다. 이때 인터뷰에서 '혀깨물고 죽고싶다'라는 발언을 하는 등 정신적으로 상당히 몰려있었다고 한다. 월드컵 휴식기간이 끝난 뒤부터는 엔도 야스히토와 팀 중원을 맡으며 폼이 살아나 팀도 엄청난 반전 성적을 내며 국내 3관왕에 공헌했다.
2015 시즌 초반 AFC 아시안컵 조별리그에서 햄스트링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하였고, 콘노가 부재한 동안 팀도 저조한 성적을 냈다. 4월, 콘노가 복귀한 이후로는 수비가 안정되며 팀 성적도 좋아졌다. 리그 포스트시즌 결승에서 1,2차전 모두 득점을 기록했지만 결국 산프레체 히로시마에게 패배하며 리그 준우승에 그쳤다. 천황배 결승에는 측면 수비수가 갑작스런 부상으로 교체당하면서 풀백 포지션으로 옮겨서 플레이 했고 실점하지 않으면서 천황배 우승에 공헌했다.
2017시즌 7월 29일 리그 19라운드 세레소 오사카전에 출전하면서 J1리그 통산400시합 출전을 달성했다.
2018시즌, 시즌 전부터 다리 부상으로 전열을 이탈했고, 이후에도 잔부상이 계속되면서 복귀와 이탈을 반복했다. 팀도 부진의 수렁에 빠져 강등권을 해맸고 시즌 도중 감독이 교체되기 까지 했다. 월드컵 휴식기가 끝나고 다시 본격적으로 팀으로 복귀했고 엔도 야스히토와 팀의 중원을 책임지며 팀 성적 반등에 기여하고 있다. 9월부터 이어진 팀의 5연승에 기여하며 본인 커리어상 처음으로 J리그 월간 MVP를 수상했다.

2.5. 주빌로 이와타


오랜 감바 오사카 생활을 정리하고 2019년 7월 17일 주빌로 이와타 이적을 확정지었다.

3.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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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FIFA U-20 월드컵에 일본 대표로 선발되었지만 대회 직전 부상을 입어 출전하지 못했다.
2002년, AFC U-19 챔피언쉽에 주장 완장을 차고 처음으로 국가대표로 데뷔했다.
2003년 FIFA U-20 월드컵에 선발되어 출전하였다.
2004 아테네 올림픽 지역 예선에 일본 대표로 전 경기에 출전하여 일본의 올림픽 진출에 공헌했고, 2004 아테네 올림픽 본선에도 참가했다.
2005년 동아시안컵에서 지코 감독이 이끄는 성인 대표팀에 처음으로 소집되어 중국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가졌다.
2006년 이비차 오심 감독이 이끄는 일본 대표팀에 소집되어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처음으로 선발 출전하여 풀타임을 소화했다. 11월 아시안컵 예선 사우디 아라비아전에서는 수비뿐만 아니라 엄청난 오버래핑으로 득점에도 기여하며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다.
2007년 AFC 아시안컵에 출전했다. 일본 대표팀의 최종 성적은 4위.
2010년, 오카다 타케시 감독이 이끄는 2010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되어 본인 커리어상 첫 월드컵 무대를 밟게 되었다.
이후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은 콘노를 주전 센터백으로 기용하기 시작했고,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에서는 수비진의 리더로서 전 경기에 출장하며 어린 수비진을 잘 지휘하여 일본 대표팀의 대회 우승에 기여했다. 같은해 11월에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 지역 예선 타지키스탄전에서 골을 넣으며 A매치 데뷔골을 기록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 일본대표로 그리스전과 콜롬비아전에서 선발로 출전했다.
2015 AFC 아시안컵 호주에서 일본대표로 출전했지만 조별 예선 이라크전에서 입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며 이후 경기 출전은 없었다.
2017년 할릴호지치 감독이 이끄는 일본대표팀에 뽑히며 2년만에 대표팀에 복귀했다.
2018년 니시노 아키라 감독의 2018 러시아 월드컵 대표팀 초기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결국 부상으로 최종 명단에선 탈락했다.

4. 우승


  • FC 도쿄 (2004 ~ 2011)
    • J2리그 : 2011
    • J리그 리그컵 : 2004 , 2009
    • 천황배 : 2011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2002 ~)
    • 2011 AFC 아시안컵 : 우승

5. 플레이 스타일


수비형 미드필더부터 센터백, 측면 수비등 수비 라인 전체를 아우르는 유틸리티 플레이어.
센터백으로는 큰 신장은 아니지만, 많은 활동량과 훌륭한 대인 방어, 태클, 커버링 능력을 지니고 있다. 원래 포지션이 미드필더인 만큼 빌드업 능력이나 패스 센스도 뛰어난 편이다.

6. 여담


  • 2009년 모델 경험이 있는 일반인과 결혼하여 2011년 장남이 태어났다.
  • 공교롭게도 본인이 있었던 팀들은 모두 본인 재적기간 중 2부리그로 강등 당했다.
  • 고등학교 시절부터 스쿼트 중량기록으로 전국 톱3에 들어갈 정도로 근력이 강했다고 한다.
  • 2011 AFC 아시안컵 결승 호주전에서 경기 후반 자케로니 감독으로부터 센터백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올라갈 것을 지시받았지만, 그 자리에서 양팔을 교차해 X자를 그리며 거부의사를 표시했다. 경기 이후 본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내가 미드필더로 올라가면 시합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꼭 이기고 싶은 경기였고 이길수만 있으면 이후에 받는 비난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호주를 꺽고 우승했고 감독에 대한 항명에 가까운 이 사건도 해프닝으로 일단락되었다.
  • 평소에 사람 좋고 진지한 성격 때문에 주변에서 그런 콘노에게 장난을 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유명한 일화로 2010 남아공 월드컵 귀국 기자회견에서 감독인 오카다 타케시가 갑자기 '그러고보니 콘노가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이 있다던데...' 하면서 마이크를 콘노에게 넘겼고, 콘노는 당황하면서도 애드립으로 국가대표 동료인 다나카 마르쿠스 툴리오의 흉내를 내는 개인기를 선보이며 현장의 분위기를 살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