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 야스히토

 



'''아시아 축구 연맹'''
'''올해의 선수'''
}}}||
'''2008년'''

'''2009년'''

'''2010년'''
세르베르 제파로프
(FC 부뇨드코르)

'''엔도 야스히토'''
'''(감바 오사카)'''

사샤 오그네노브스키
(성남 일화 천마)
'''MVP'''
'''2009년'''

'''2008년'''

'''2009년'''
나가이 유이치로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엔도 야스히토'''
'''(감바 오사카)'''

노병준
(포항 스틸러스)
[image]
''' 주빌로 이와타 No.50 '''
'''엔도 야스히토 (遠藤 保仁 / Yasuhito Endo)'''
'''생년월일'''
1980년 1월 28일 (44세)
'''국적'''
[image] 일본
'''출신지'''
가고시마 현 가고시마 시 사쿠라지마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신체 조건'''
178cm / 75kg[1]
'''등번호'''
'''7번'''
'''학력'''
가고시마실업고등학교
'''소속팀'''
요코하마 플뤼겔스 (1998)
교토 퍼플 상가 (1999~2000)
'''감바 오사카 (2001~ )'''
주빌로 이와타 (2020~ / 임대)

'''국가대표'''
'''152경기'''[2] 15골
1. 개요
2. 선수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여담


1. 개요


일본축구선수. 2001년부터 감바 오사카에서 뛰고 있다. 2020년에는 [J2리그]의 주빌로 이와타로 임대이적해 뛰고 있다.
사무라이 블루를 대표했던 중원의 핵이었으며, 감바 오사카캡틴이자 에이스. 별명은 얏토(ヤット)이다.

2. 선수 경력


일본 U-20, U-23 대표팀을 거쳐 성인 국가대표로 활약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수. 안드레아 피를로와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
J리그 데뷔는 1998년 요코하마 플뤼겔스[3]였고, 이후 교토 퍼플 상가로 이적했으나 팀이 J2로 강등되자 2001년 감바 오사카로 옮겼다.
미드필더로 J리그 감바 오사카프랜차이즈 스타이다.[4] 2001년부터 시작해서 10년 이상 감바 오사카에서 뛰고 있다. 2018년 현재 일본에 7명밖에 없는 FIFA 센추리 클럽(A매치 100경기 이상) 가입자이다.[5][6] 한국에 비해 일본 쪽이 선수 풀이 커서 대표팀 주축 선수들의 대체 선수 기용이 많은 점을 감안하면, 한국에도 없는 A매치 150경기 돌파라는 기록은 이례적인 편이다. 한국 축구팬들은 매년 AFC 챔피언스 리그때마다 질리도록 보는 일본 선수 중 하나. 2009년 AFC 올해의 선수이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덴마크전에서 기가 막힌 프리킥 골을 넣었다.
해외파가 아님에도 나카무라 슌스케, 혼다 케이스케, 카가와 신지 등의 해외파 속에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중심을 맡아왔는데, 이는 엔도의 스타일이 일본 축구가 지향하는 일명 스시타카차비 에르난데스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선수였기 때문.[7]이 때문에 전성기 때는 일본 대표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선수. 그러나 2012년 이후에는 노쇠화가 뚜렷하여 점차 풀타임 소화가 버거워지고 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이후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이 부임하면서 잠시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했지만, 2014년 11월 대표팀에 복귀하여 2015년 AFC 아시안컵에 출전했다.
국대에서나 클럽에서나 페널티킥 키커로 나서는 경우가 많은데 임팩트 전 동작이 상당히 특이하다. 천천히 전진하다가 일순간 템포를 빨리 해 볼을 왼쪽 또는 오른쪽 구석으로 느리게 깔아차는데 피치에 통통 튀기며 굴러가는 모습 때문에 일본에선 이를 '''코로코로 PK'''(한국어로 번역하면 데굴데굴 PK)라고 주로 부른다. 일반적인 키커처럼 골키퍼의 반응속도 이상으로 볼을 꽂아넣기보단 최대한 임팩트를 늦춤으로써 키퍼의 템포를 죽이고 행동 예측을 통해 PK를 성공시키는 타입인데 당하는 입장에선 상당히 뒷맛이 안 좋을 뿐더러[8] 성공률도 무척 높다. 이운재2007년 AFC 아시안컵 3-4위전 승부차기에서 엔도의 코로코로 PK에 당했다.[9] 물론 꼭 이런식으로 차는건 아니라 그냥 대놓고 강하게 차기도 한다. 2010년 EAFF 동아시안컵 한일전에서는 그냥 강하게 차서 선제골을 넣었다. 이처럼 한일전에서도 활약도가 정말 좋은 선수이기도 하다.
J리그에선 PK를 몇 번 놓친 적이 있지만 클럽 국제대회나 국대에서는 아직까지 단 한 번밖에 PK를 실패한 적이 없다. 국대 전담 PK 키커는 한동안 나카무라 슌스케였고 이후 혼다 케이스케로 넘어가 생각보다 PK를 자주 차진 않았지만 2010년 월드컵 16강 파라과이전 승부차기에서 1번 키커로 나섰을 만큼 PK에 관해선 신뢰를 받고 있다. 유튜브 등지에서 엔도의 PK만 모아놓은 동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2012년 12월 1일, 감바 오사카가 J2로 강등되면서 엔도의 거취가 초유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감바 사장은 엔도를 반드시 잡겠다는 입장이지만, 일단 엔도 자신이 강등을 이유로 팀을 옮긴 전적이 있는데다가, 태국 촌부리. 중국 항저우. 그밖에 중동 팀들이 매의 눈으로 엔도를 노리고 있는만큼 지켜내기 쉽지는 않으리란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결국 감바 오사카에 남아서 다시 1부 리그로 승격시켰다.
일본 선수 중에서 한국에 팬이 많은 선수이기도 하다. 팀에 대한 충성심, 탁월한 자기관리, 특유의 프리킥 및 페널티 킥 능력, 졸린 듯한 눈을 하고서는 중원에서 미친 존재감을 발휘하며 할 거 다 하는 그라운드에서의 모습 등이 주 이유다.
2017년 6월 17일 빗셀 고베와의 경기로 J1리그 통산 550경기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일본 역대 J리그 선수 가운데 통산 3번째의 기록이다.
2018년 11월 10일 쇼난 벨마레와의 경기에서 '''J리그 역대 두번째, 필드 플레이어로는 J리그 최초'''로 600경기 출전을 기록했다.
[image]
2019년 8월 2일에는 '''공식전 1000경기 출전'''을 달성했다. # 일본 선수로는 최초다.
2020년 7월 4일 세레소 오사카와의 더비전에서 선발 출전하여 J리그 역대 최다 출전 선수가 됐다.(632경기)
출전 기회를 찾아 2부리그인 J2리그주빌로 이와타로 임대 이적했다.

3. 플레이 스타일


본래 플레이 스타일은 정확하고 간결한 패스를 통해 공격활로를 만드는 패스형 플레이메이커 타입이었다. 쉽게 말해 몸이 아닌 머리로 축구를 하는 타입의 선수. 본인 왈로도 공이 오는걸 보고서 달려가는게 아니라, 예측과 빠른 결단을 통해 공이 올 위치로 미리 가 있는 플레이를 했다. 본인 스스로 반농담 삼아 '고등학교 시절부터 어떻게 하면 달리지 않을 수 있을까만 생각하면서 플레이했다'라고 말했을 정도.
한마디로 체력온존형이라 불릴 수 있는 플레이 스타일이었지만 2010년 월드컵을 앞두고 당시 일본 대표팀의 감독이던 이비차 오심의 '팀을 위해 달리는 플레이를 해라'라는 조언을 받아 볼 키핑과 드리블을 통해 좀 더 공을 소유하고 수비가담도 비교적 적극적으로 하는 선수로 바뀌었다. 그 결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는 일본 팀 내 활동량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10]
그래서, 특유의 활동량이 많은 선수라서 한일전에 출전했을때는 한국을 상대로 피지컬이 열세인데도 불구하고 비교적 공중볼을 잘 따냈던 선수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노쇠화로 인한 운동량 저하로 인해 2013년부터는 일본 대표팀의 양날의 검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 2015년 아시안컵 때까지는 꾸준히 대표팀에 뽑히긴 했으나 별다른 활약은 하지 못했고, 체력과 주력 등 선수들의 피지컬적인 측면을 중요시하던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 부임[11] 이후부터는 대표팀에 더 이상 뽑히지 못하고 있다.
2018~19 시즌 감바에서 함께 뛰었던 황의조의 말에 따르면 넓은 시야와 좋은 패스, 경기 완급 조절 능력을 바탕으로 감바 오사카의 빌드업에 큰 역할을 한다고 한다. 황의조의 플레이 특징을 잘 파악해서 좋은 타이밍에 순도 높은 패스를 보내주는 선수라고 한다. https://www.fmkorea.com/best/1293006878

4. 여담


명탐정 코난 극장판 11번째 스트라이커 편, TV 오리지널 J리그의 경호원 편에서 엔도 자신의 캐릭터의 목소리 연기를 했다. 한국 더빙판은 김명준이 맡았다. 공교롭게도 엔도와 김명준 둘 다 1980년생 동갑. 소년 탐정단에게 프리킥 시범을 보여주었다.
일본의 공룡 인형 가챠핀(ガチャピン)과 닮았다 (...) ~ 덕분에 감바 오사카의 캐릭터 상품으로 엮여 구단 홍보 겸 자신을 상징하기도 (...) 소수 의견으로는 G-DRAGON의 중장년 버전이라는 설도 있다(...).
긴 헤어스타일에 헤어밴드를 착용하는게 그의 트레이드 마크로 인식될 만큼 오랜기간 같은 스타일을 유지해왔다. 그 때문인지 킥을 차거나 롱패스를 하고 나서는 꼭 머리를 가다듬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 2010년 5월 24일 사이타마에서 벌어진 남아공 월드컵 출정식 한일전에서 이 습관 때문에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박지성과 공중볼 경합 후 바로 압박을 하는게 아닌[12] 제자리에서 습관인 머리를 만지다 프리해진 박지성이 볼을 몰고가 첫 득점을 성공했다. 일본에서는 관련 기사도 나오고 2ch에서 관련 스레드도 세워지는 등 꽤 비판을 받았다.
묘하게 배우 장혁 혹은 정우성과 닮았다는 말이 종종 나오곤 한다. 사실 코미디언 이상구와 많이 닮았다.
20세가 된 다음부터 경마를 즐겨 본다고 한다. #
가고시마 실업고교 1년 후배인 스기우치 토시야에게 축하 문자를 보내고서 답장을 못 받았다는 안습한 일화가 있다. #
박지성과는 교토 상가에서 한 시즌 동안 동료로 뛴 이력이 있어 친분이 있다. 한일전 국대경기에서는 경기전후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카메라에 자주 잡혔었다. 감바 오사카 시절에는 팀 동료였던 이근호에 대해 호평하기도 했으며, 서로 호흡도 잘 맞는 편이었다고 한다.

[1] 감바 오사카 공식 프로필[2] 일본 대표팀 A매치 역대 최다 출전 1위.[3] J리그의 강호 가운데 한팀이었지만, 재정난 때문에 이 시즌을 끝으로 요코하마 마리노스와 합병한다. 현재 '요코하마 F. 마리노스'라는 팀명은 이를 반영한 것이다. 엔도는 플뤼겔스 성인팀으로는 2020년 현재 마지막으로 남은 현역 선수이다.[4] 출신지는 가고시마현. 그것도 활화산섬인 '사쿠라지마'다.[5] 이하라 마사미, 가와구치 요시카쓰, 나카자와 유지, 엔도, 하세베 마코토, 오카자키 신지, 나가토모 유토.[6] 참고로 2018년 현재 한국은 FIFA 기준으로 아시아 축구 연맹에서 가장 많은 10명의 센추리 클럽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7] 일본 대표팀 진형인 4-2-3-1의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 하세베와 호흡을 주로 맞췄는데, 하세베가 수비에 중점을 두고 아래 DF와의 연결고리 역할을 맡았다면 엔도는 위의 MF, FW들에게 공을 배급하며 공격의 시작 스위치 역할을 맡았다. 또한 강하고 정교한 오른발 중거리 능력도 갖고 있어 왼발슛이 강력한 혼다와 함께 프리킥을 주로 맡았다. 2010 남아공 월드컵 때 엔도와 혼다가 프리킥만으로 2골을 넣은 것이 대표적.[8] 물론 느릿느릿한 킥의 특성상 이게 막히면 응원하는 팬 입장에서는 더욱 더 힘이 빠지는 역효과도 있긴 하다.[9] 물론 말이 통통 굴러간다는 거. 맞고 뒈져라 슛을 쏘는 키커도 많고 보통으로 차도 어쨌든 약하게 차는 경우는 드물기에 비교가 돼서 카메라 화면상으론 매우 느리게, 심지어 통통 튕기며 천천히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긴 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보여도 선수의 킥은 기본적으로 일반인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와 묵직함이 있고 엔도는 국대급 선수다. 또 도움닫기는 킥력이 강하다는 장점 대신 임팩트 순간은 비교적 정해져 있는 반면 엔도의 산보는 도움닫기에 비해 킥 타이밍을 훨씬 자유자재로 잡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때문에 키퍼는 몸을 날리는 타이밍 잡기가 어려우며 엔도는 이 때 키퍼의 밸런스를 관찰하고 키퍼의 밸런스가 쏠린 반대편으로 차는 것이다. 설령 움직임이 없어도 한쪽 사각지대로 정확히 툭 차면 그만.[10] 다만 실제 경기를 보면 그렇게 열심히 뛰어다니는 선수라는 인상은 받지 못하는데, 기본적으로 발이 느린 탓도 있지만 전력질주를 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넓은 활동량도 열심히 달려서 경기장을 가로지르기보단 조깅하듯 천천히, 그리고 끊임없이 경기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닌 덕분.[11] 부임 이후 대표팀 공개 미팅에 선수들 각자의 체지방율 리스트를 들고나와 공개하며 체지방률 12% 이상인 선수는 뽑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또한 같은 자리에서 미드필드진에게 강조한 것이 '''전력질주 횟수가 너무 적다'''는 점이었는데, 늙어가는 나이로 인해 체력과 주력의 저하가 진행되고 있던 엔도가 결국 감독의 눈 밖에 난 듯. 엔도를 대체할 선수들이 발굴되기도 했고.[12] 볼이 누구의 소유도 아닌 애매한 자리에 떨어졌고 끝까지 집중력을 가지고 바로 달려간 박지성의 소유가 될 가능성이 크지만 일본 수비의 견제가 들어오던 상황에 엔도가 머리를 가다듬는게 아닌 바로 따라붙었으면 슈팅까지 나오긴 힘들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