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리야마 히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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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No.80
쿠리야마 히데키 (栗山英樹)
'''생년월일'''
1961년 4월 26일
'''국적'''
일본
'''출신지'''
도쿄 도 고다이라 시
'''학력'''
소카고등학교 - 도쿄학예대학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양타
'''프로입단'''
1983년 드래프트 번외
'''소속팀'''
야쿠르트 스왈로즈 (1984~1990)
'''지도자'''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감독 (2012~)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역대 감독'''
나시다 마사타카
(2008~2011)

'''쿠리야마 히데키'''
'''(2012~)'''

현임 감독
1. 소개
2. 선수 커리어
3. 은퇴 후, 그리고 지도자 생활
4. 사생활


1. 소개


일본의 야구지도자. 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감독.

2. 선수 커리어


초등학교 시절부터 야구를 시작했으며, 중학교 시절에는 배구부에서 뛰었는데 그때 익힌 플라잉 리시브는 그 후 선수 시절 기막힌 호수비의 토대가 되었다. 고등학교에서는 3학년때 팀의 주장으로써 선수들을 이끌었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교사를 지망하여 도쿄학예대학 교육학부에 진학하였다.
대학교 시절에는 야구부에서 투수 겸 외야수로 활약하였다. 투수로는 1학년과 2학년에 리그 우승을 달성하였으나 팔꿈치 부상 이후로 주로 야수로 뛰었다. 대학에서의 통산 성적은 투수 : 25승 8패 타자 : 0.389.
대학교 재학 중 교원 자격증을 획득하였으나 야구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 1983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입단 테스트에 합격하여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1년차인 1984년에는 유격수로 뛰었으나 2년차인 1985년에 스위치 히터 겸 외야수로 전향하여 1986년에 주전 중견수 자리를 꿰찼다. 그러나 1985년 발병한 메니에르병[1]에 시달렸으며, 경기 도중에 어지럼증이 나타난 적도 있었다. 결국 1986년 시즌 종료 후 치료에 전념하였고, 그로 인해 1987년 시즌에는 팀 전력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그 후 시즌 후반에서 2군 연습에 주력하였으나 시즌 종료 후 스프링 캠프에서 왼발 근육 부상을 입었다.
1988년에는 왼발 부상으로 인해 시즌을 좀 늦게 시작하였으나 1번 중견수로 맹활약하며 .331의 타율을 기록해 야쿠르트의 4위 기록에 기여하였다. 1989년 시즌에는 2번 타자로 규정타석을 채우며 활약하면서 타율은 .255에 그쳤으나 넒은 수비 범위로 그 해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였다.
그러나 1990년에 노무라 카츠야 신임 감독에 의해 주전에서 밀려났고, 오른쪽 팔꿈치 통증과 메니에르병 대한 불안으로 인해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프로 통산 성적은 7시즌 494경기 1339타석 1204타수 336안타 7홈런 67타점 타율 .279.

3. 은퇴 후, 그리고 지도자 생활


은퇴 후에는 1991년 TV 아사히 출연을 시작으로 스포츠 해설가와 캐스터로 맹활약하였다.[2] 또한 모교 도쿄학예대학의 강사와 하쿠오 대학의 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했다.
2011년 11월 3일 나시다 마사타카의 후임으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감독에 선임되어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국립대학 및 대학교수 출신으로는 처음이고 코치 경험이 전무했다는 점에서 당시 언론에서 의문을 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감독 첫해인 2012년 시즌에 팀을 퍼시픽리그 우승으로 이끌면서 그 말은 쏙 들어갔다. 2013년 시즌에는 소포모어 징크스 때문인지 파리그 꼴찌를 했고, 2014년 시즌에는 다시 심기일전하여 리그 3위를 차지하여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했다.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오릭스 버팔로스를 2승 1패로 제압하고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하였으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3승 4패로 아쉽게 패퇴하면서 시즌을 마감했다.
2016년은 교류전까지 선두 소프트뱅크와 무려 11.5게임 차이가 나는 3위로 쳐지면서 3년 연속 A클래스 진입에 만족하는 듯 했으나, 교류전 이후 파죽의 15연승을 달리면서 2위로 부상, 8월 25일 자로 선두로 치고 올랐고, 이 후 1개월 여동안 소프트뱅크와 1, 2위를 주고받는 공방전 끝에 9월 28일 세이부 라이온즈 전에서 이도류 에이스 오타니 쇼헤이완봉승으로 매직넘버를 0으로 만들면서 '''개인 통산 2번째 리그 우승'''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룩한다. 그리고 이후 2016년 일본시리즈도 2연패 뒤 4연승의 리버스 스윕으로 우승을 거머쥐며 팀의 통산 세 번째 일본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말 그대로 쿠리야마 매직의 시대가 온 것.
그러나 2017년 오타니 쇼헤이가 시즌 초반부터 부상으로 이탈한 것을 시작으로 브랜든 레어드의 부진 등등 안 좋은 요소가 하나하나 누적되며 시즌 초반부터 10연패로 바닥을 깔더니 8월 말에는 하마터면 최하위까지 침몰할 뻔 했다. 롯데가 시즌 내내 폭망해서 그나마 꼴찌는 면했지만 결국 5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거기다가 다음 시즌부터는 오타니와 함께 핵심 불펜투수였던 크리스 마틴도 없을 예정이라 감독으로서 진짜 실력이 판가름날 듯 했는데...
2016년 11월 2일, 닛폰햄은 구단 홈페이지 2017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고 발표했다. 원문 \
부진한 시즌을 보냈음에도 2017년 10월 11일자로 다시 계약을 연장, 2018년에도 팀의 사령탑을 맡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2018년에는 지난 시즌의 부진을 만회하며 2018년 8월 현재 리그 2위를 기록중이며, 선두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리그 3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함께 다시 A클래스에서 포스트시즌 경쟁을 무난하게 하고 있다. 외국인 선수는 브랜든 레어드가 살짝 부진하고 있지만 시즌을 앞두고 영입된 외국인 타자인 오스왈도 아르시아가 나름대로 자기의 몫은 하고 있고, 선발 요원으로 영입된 닉 마르티네즈[3]가 2점대의 평자점으로 순항하고 있으며 전 미네소타 트윈스 출신의 마이클 톤킨이 뒷문을 확실하게 잡아주며 외국인 농사도 준수하게 한 모습이다. 현재까지의 모습은 2017년 시즌이 단순히 운이 없었던 시즌이라고 봐도 무방한 모습을 보여주는 중. 결국 2018년은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했고,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2019년에는 팀이 5위로 추락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어쨌든 재계약은 했지만. 사실 감독을 못했다기 보다는 타선이 스스로 개판이 나 버린게 커서 감독에게 책임을 묻기에는 좀 아닌 상황이었다.

4. 사생활


  • 신인드래프트 추첨 픽 뽑기를 더럽게 못 뽑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3년 신인드래프트 때부터 1차지명 5연패를 해서 결국 구단 측에서 2018년 신인드래프트 때에는 키다 마사오 GM에게 뽑기를 맡겼다. 결과는 대성공. 무려 7개구단이 지명한 올해 드래프트 최대어 기요미야 코타로의 교섭권을 얻는데 성공했다.
  • 결혼 경험이 없는 모태솔로라고 한다.
  • TV 아사히 해설위원 시절 성씨 덕분에(...) 홋카이도 쿠리야마쵸의 관광 홍보대사를 맡았는데, 홋카이도를 연고로 하는 닛폰햄 감독에 취임한 뒤 아예 도쿄의 자택을 팔고 쿠리야마로 이사, 그곳에서 자취를 하며 삿포로까지 출퇴근한다고 한다.

[1] 귀 속 평형기관인 세반고리관에 이상이 생기는 병[2] 2006년에는 요미우리 제70대 4번타자였던 이승엽과도 인터뷰 한적 있다.[3] 과거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추신수의 팀 메이트로 뛴 그 선수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