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그-에르겐센
1. 개요
1886년에 노르웨이의 올레 헤르만 요한네스 크라그(Ole Herman Johannes Krag)와 에리크 에르겐센(Erik Jørgensen)이 개발한 5연발 볼트액션 소총.
외래어 표기법상 본 총기의 이름은 ~'''요'''르겐센이 아니라 '''에'''르겐센이 정확하다. 자세한 내용은 노르웨이어 표기법 제12항 참고.
2. 역사
2.1. 개발
19세기는 개인화기의 개발이 아주 활발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 금속 탄피가 개발되어 금속 탄피를 사용하는 소총은 기존의 화기보다 장전이 용이하고 강한 화력을 가졌다. 그러고 얼마 후, 무연화약이 발명되었다. 무연화약은 기존 화약과는 달리 훨씬 강한 폭압을 가져 더 적은 양으로도 우월한 탄속을 자랑했고, 포연도 거의 없어 사격후 시계가 흐려지는 문제도 없었다. 따라서 많은 국가들이 이 화약의 확보에 주력하고 앞다투어 신형 소총을 만들었다.
노르웨이 또한 그 중 하나였는데, 노르웨이의 군인이었던 올레 크라그(Ole Krag)는 기존의 야만(Jarmann) 소총을 대체할 새로운 소총을 설계했다. 크라그는 노르웨이 국립 조병창의 총기 기술자인 에릭 에르겐센(Erik Jørgensen)과 함께 이 새로운 총의 설계를 하였다. 기존 야만 소총과 이전에 제작된 크라그-페터슨 소총의 튜브식 내장 탄창은 우월한 장탄수를 자랑했지만, 장전이 매우 번거롭고 작동성이 원활하지 못했다. 따라서 튜브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의 장전기구를 도입해, 신형 소총은 야만 소총을 기본으로 하여 신형 10발들이 탄창을 직선형이 아닌 볼트 작동기구에 말리는 방식으로[1] 제작되었다. 1886년 이 소총은 노르웨이 군에 테스트를 받았는데, 신형의 탄창이 너무 크고 거추장스러운데다 전체적인 무게 또한 너무 무겁다는 평을 들었다. 이에 개선을 거쳐, 장탄수가 10발에서 5발로 줄었고 기존 야만 소총의 구조를 모방하여 폐쇄 돌기를 하나만 두고, 노리쇠의 가이드립, 볼트 손잡이가 각각 폐쇄돌기 역할을 겸하게 하여 내구력을 높였다.
2.2. 덴마크식 크라그-에르겐센
Forgotten Weapons의 리뷰 영상
덴마크 군은 노르웨이군에서 제작한 이 소총에 큰 관심을 보였고, 1889년 6월에 정식으로 몇 가지 요구사항을 포함하여 이 총을 주문한다. 따라서 덴마크의 크라그 에르겐센은 다른 모델들과 외형에서 몇 가지 차이를 보인다.
덴마크 군은 크라그-에르겐센의 특징적인 장전 기구를 상하 개폐식이 아닌 전후 개폐식으로 바꿀것을 요구했는데, 더넓은 장전 면적을 확보해 빠른 재장전이 가능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또한 총열을 2중으로 제작하여 실제 총열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였다. 독특하게도 초기형은 수동 안전장치가 없고, 하프콕 안전장치를 지원했다. 이는 이후 개량되어 수동 안전장치가 적용되게 바뀐다. 그들은 덴마크제 8x58mmR 덴마크 크라그 탄을 사용했으며, 카빈형을 포함한 몇가지 형식으로 제작되며 덴마크가 독일에 공격당한 1940년까지 사용되었고, 이후에는 독일군이 일부 사용했다고 한다.
2.3. 미국식 크라그-에르겐센
hickok45의 스프링필드 M1898 리뷰 영상
덴마크와 유사한 시기 신형의 소총을 찾고 있던 미국 또한 이 소총에 관심을 보인다.
미군은 당시 군 규모가 매우 작았고, 그 규모를 유지할 만한 능력도 없었던데다 심지어 관심도 없었다. 따라서 매일 투닥거렸던 유럽에 비해 군사기술의 발전속도가 매우 더뎠다. 그들은 여전히 스프링필드 M1873 계열의 트랩도어식 소총과 레밍턴 롤링블럭 계열의 단발총을 사용했다. 당시 미군의 보병교리는 잘 훈련된 사수에 의한 정밀한 사격으로 다수의 적을 효과적으로 제압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단발소총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고, 정밀도를 향상시키는 개량 정도로 만족했다. 문제는 신형의 무연화약이 발명된 것이었다. 미국은 이 신형 화약을 사용하는 소구경 소총탄약에 대해 매우 무지했다. 다행히 미국은 스위스의 에드워드 루빈[2] 의 신형 탄약을 확보했고, 이를 이용하여 신형의 소총탄의 구경을 7 mm 대인 .30 구경으로 정한다. 그렇게 신형 탄약의 컨셉은 정했지만, 정작 총이 없었다. 다양한 신형 소총들을 물색하던 미국은 뉴욕에서 신형 소총을 선정하기 위한 테스트를 실시했다. 수백개의 소총을 테스트 했고, 결국 최종적으로 채택된 소총이 바로 크라그-에르겐센 소총이었다.
사실 미국은 이미 크라그-에르겐센에 매우 관심이 많았다. 미군은 정밀한 사격이 가능한 단발소총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기에, 탄창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그냥 연발이 가능하고, '''단발'''장전이 가능한 소총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많은 국가들이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탄창 차단장치'''라 불리는 탄창에 의한 탄 공급을 차단하는 장치를 설치하곤 했다.[3] 현대에는 이해할 수 없는 장치이기는 하지만, 당시에 장거리 단발의 정밀도에 더 관심이 많았던데다 연발사격의 개념이 희박했던 미군은 이런 '''여유'''있는 단발사격 기능을 원했다. 특히 이 부분에서 크라그-에르겐센이 더욱 빛났는데, 크라그-에르겐센은 다른 소총과는 달리 단발 장전을 한 상태에서 노리쇠를 개방하지 않고 탄창장전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기능은 마우저와 같은 상부장전식 소총들은 절대 불가능한 기능이었기에 사실상 미군은 이 총을 점찍어 두고 있었다. 1892년 마침내 크라그-에르겐센은 스프링필드 사에서 라이센스 생산되어 '''M1892'''의 제식명으로 미군에 채택되었다. 하지만, 앞서 선정과정중의 미군의 편애 때문에 많은 발명가들이 불만을 가졌고, 소송에 휘말렸다. 때문에 미국은 1893년 또 한번의 소총 선정과정을 다시 거쳐 어디까지나 공정한 결과임을 증명해야 했다. 때문에 신형 소총의 채용은 1년정도 늦어져 실질적으로 생산이 시작된 시기는 1893년부터였다.
1893년 제작이 시작된 M1892 소총은 신형의 .30-40 크라그 탄을 사용할 것으로 예정되었다. 이 신형탄은 미군 최초의 무연화약탄이었다. 때문에 이런 쪽에 경험이 없던 미군은 이 탄약의 선정에도 상당한 시간을 잡아먹었다. 어쨌거나 탄약도 완성되었고 총도 완성되었다. 이제 잘 사용하는 일만 남았지만, 미군은 곧 이 총에 상당한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일단, 무엇보다도 비쌌다. 구조가 복잡하여 손이 많이 들어가고, 부품 제조에 가격이 많이 나가 전 군에 보급하기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또한 안전장치는 콕킹되어 있지 않을 시에는 작동되지 않아 무심고 안전장치를 작동시키려고 했던 군인들이 무리하게 힘을줘서 부숴먹곤 했다. 총 하단의 꼬질대는 슬링과 간섭하여 불편했으며, 직선형상의 개머리판[4] 형상은 총을 내려놓을때 개머리판이 바닥에 찍히면 총몸 전체에 충격을 분산해 버려서 총몸이 쉽게 갈라졌다. 노리쇠는 후퇴고정이 되지 않아, 단발 사격을 위해서는 총구가 위를 향해야만 하므로 말위에서 장전해야 했던 기병대가 특히 불편해했고, 새로만든 가늠자는 성능이 엉망이라, 조준하기도 조작하기 힘들었다. 총구는 크라운[5] 가공을 하지 않아 강선면이 쉽게 손상되어 정밀도를 떨어뜨리곤 했다. 이 외에도 수 많은 작동상의 문제로 월단위로 십수개의 문제가 개선되어야 했기에, 생산량은 더 낮아지고 수많은 형식의 소총들이 생기자 보급이나 훈련상에도 차질이 생겼다. 때문에 미군은 여전히 트랩도어 단발총을 사용해야만 했다. 이런 개선판들 때문에 남아있는 M1892 모델 일부는 M1894 각인의 리시버를 달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던 1896년 수많은 개선판들을 한데 모아 새로운 형식의 크라그 소총을 제작했다. 기존의 것들 또한 대부분 M1896 수준의 개량을 받았다. 노르웨이의 에리크 에르겐센의 노르웨이 크라그 M1894를 참고한 덕분에 '''M1896'''은 기존 물건보다는 훨씬 우수한 편의성을 보였다. 노리쇠는 완전 후퇴 시 거대한 이젝터에 장치한 돌기를 통해 고정되었고, 안전장치는 디콕킹 시에도 작동되었다. 개머리판 끝은 둥글게 변해서 더 이상 충격으로 갈라지지 않았다. 총구 밑의 꼬질대는 3개로 분리되는 형태로 바꿨고, 개머리판에 수납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바로 가늠자였다. 기존 형태에서 개선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장거리 명중률도 형편없었고, 측풍에의한 좌우 조정도 불가능한데다, 기존의 계단식이었던 가늠자 하단을 경사식으로 바꾼 것 밖에 없었다. 그 밖에도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산재한 문제들 때문에 또 년단위로 자잘한 개량이 가해졌다.
1898년 크라그-에르겐센은 '''M1898'''로 다시 개량되었다. 대부분 생산성 향상을 위한 개량이었는데, 한가지 독특한 개량을 했다. 바로 탄창 차단레버 작동방향을 바꾼 것이다. 1898년은 마우저사의 걸작인 Gew98이 나온 해인데다, 미국-스페인 전쟁을 겪어 연발총의 중요성이 커졌음에도 이런 개량이 가해진 이유는 순전히 기병대 때문이었다. 여전히 단발 소총을 애용하던 기병대는 소총을 탄창차단기를 작동시킨 상태로 많이 사용하였는데, 기존 탄창 차단기는 레버를 올려야 작동했다. 덕분에 이 작은 쇳조각이 여기저기 걸려댔기 일쑤였다. 따라서 이 작동방식을 변경했고, 그 외에 큰 개량점은 없다. 일부 모델은 미국 군인이었던 딕슨이 제작한 신형의 딕슨 가늠자를 달기도 했다. 이것은 측풍 조정도 가능한 물건이었고 조작과 사용이 간편했다.
hickok45의 M1899 카빈 리뷰 영상
1898년 이후에 대량의 개량은 없었으며, 1899년 필리핀 전쟁에 경비용으로 카빈형이 사용되었는데 새로운 총검을 달며 약간의 개량이 있었다. 하지만 1901까지도 자잘한 개량이 이어진다. 특히 가늠자 쪽이 많이 바뀌었으며, 92년식 96년식 98년식 01년식 02년식의 총 5가지의 다른 형태의 가늠자가 있었다.
이후 1차대전에 참전하게 된 미군은 신형의 스프링필드 M1903소총을 개발하는데 성공했지만, 갑작스런 팽창에 충분한 양의 총을 무장시킬 수 없었다. 때문에 크라그 소총은 1차대전 중에도 여전히 2선에서 사용된다. 보급상의 문제와 낮은 활용도[6] 로 현지에서 많은 수가 유기되었고, 이후 M1903 스프링필드 및 M1917 엔필드[7] 의 생산량이 늘어나고, 프랑스와 영국의 무기가 지원되면서 전선에서 완전히 퇴출되었다고 한다.
2.4. 노르웨이식 크라그-에르겐센
실질적으로 개발된 국가이지만 노르웨이는 갓 도입한 Jarmann 소총 때문에 크라그 소총의 도입이 늦어졌다. 노르웨이는 미국과 덴마크가 사용하는 것을 참고하여 1891년 신형 소총의 도입을 시작했고, 1894년 M1894의 제식명으로 신형 소총이 도입되었다. 에리크 에르겐센 주도하의 개량으로 미국의 M1893의 피드백을 받아 문제점들을 모조리 개선했고, 때문에 사용상에 특별한 하자 없이 잘 사용했다. 노르웨이군은 6.5 mm 구경의 6.5x55mm 스웨디시 탄을 사용했는데, 덴마크와 미국과는 달리 림리스 탄이었다. 동시기 스웨덴도 동일한 소총을 도입했으며, 노르웨이와 동일한 탄을 사용한다. 노르웨이군은 이 소총을 도입함으로써 그 동안 중구난방으로 사용하던 모든 소총들을 통합하였고, 보급을 일신했다. 노르웨이군은 1940년까지 지속적으로 개량하며 이 총을 사용했다.
3. 특징
3.1. 탄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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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크-에르겐센 소총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특유의 탄창이다. 당시 대부분의 소총들이 관형 혹은 박스형을 채택한것과는 달리 일부에서 캡슐형이나 로터리 탄창이라고 부르는 노리쇠를 감싸는 형태의 탄창을 설치하였다. 기본적으로 총을 받을때 생소한 장전방식으로 적잖이 당황스러울 것이다.
크라크-에르겐센 탄창 내부에는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없다. 단순히 약실로 올라가는 램프 형태의 형상만 있을 뿐이다. 실질적인 작동 구조는 그 커버에 달렸는데, 탄밀대가 커버의 개폐와 완전히 연동되기 때문에 덴마크 버전 외에는 어떻게 탄을 밀어넣는지 한눈에 알아보기 힘들다. 일단 탄창의 개폐부를 닫으면, 안쪽의 탄밀대가 완전히 펴지게 되므로 탄은 램프를 따라 자연스럽게 밀려 올라가게 된다. 탄창 차단기를 작동시키면 올라간 탄의 림 부분을 눌러 공급을 차단한다. 탄이 들어가는 구멍과 추출되는 구멍이 다르기 때문에 장전 상태에서도 장전이 가능하며 실제로 이 점 때문에 미군에 점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3.2. 노리쇠 뭉치
이 총은 노리쇠 뭉치도 독특하다. 거대한 철판 형태의 추출기가 노리쇠 끝에서 전방까지 이어지며, 노리쇠 분해 레버를 겸한다. 이 추출기를 들어올리고 폐쇄돌기를 홈에맞추어 당기면 노리쇠가 분리되는 단순하면서도 재미있는 구조이다. 후기 생산품에는 추출기 끝부분에 약간의 가공을 하여 노리쇠가 완전히 개방되었을때 살짝 고정되게 해 놓아 단발 장전을 편하게 했다.
더욱 독특한 점은 이 총이 폐쇄돌기가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인 볼트액션 총들이 최소한 두 개 이상의 폐쇄돌기를 가짐에도 이 총은 하나밖에 없다. 실제로는 노리쇠의 가이드립과 볼트 손잡이가 폐쇄돌기 역할을 겸하는 구조라 그렇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미군 버전은 실제로 하나밖에 없다. 가이드립과 볼트 손잡이 고정 부분을 생략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리쇠가 측면에 하나의 고정돌기로만 고정되기 때문에 사격시 토크가 생겨 노리쇠의 비대칭적이 마모가 쉽게 일어났다. 때문에 오래된 총은 노리쇠의 좌우 흔들림이 제법 심한 편 이라고. 이 형태 또한 미군이 크라그 소총을 버린 이유이기도 한데, 덴마크제보다 약하고 노르웨이제와 비슷한 에너지를 가진 탄약을 쓰면서도 노리쇠가 잘 받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3.3. 총검
Forgotten Weapons의 M1892, M1900, M1902 총검 리뷰 영상
미군 버전은 세 가지 형태의 총검이 있다. 각각 M1892, M1900, M1902 총검들이며, 1892는 표준형태, 1900은 보위 나이프라 불리는 곡선형태이며, 1902는 볼로 나이프라고 하는 둥근 형태의 대검이다 1902는 M1899 카빈에 장착되어 필리핀 전쟁에서 사용되었다고 한다.
노르웨이군도 M/1894, M/1912, M/1913, M/1894/1943등의 총검이 있지만, 이쪽은 대동소이한 수준이다. 날 길이만 대부분 차이난다. 스파이크식 총검도 연구된적이 있다고 한다. 자세한 부분은 링크 역대 노르웨이군의 총검 참조
3.4. 기타
신형 소총들이 클립 장전을 시작한 만큼 이 총도 클립 장전 방식을 연구하기도 했다. 삽탄 부분에 클립 가이드를 만들어 곡선형 5발 클립을 장착하여 테스트 했으나, 더 좋은 총들이 많이 나오는데다, 대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사라졌다. 또한 반자동식도 연구된 적이 있다고 하며, 찰턴 경기관총과 같이 기관총으로의 개조도 시도되었다고 한다.
4. 둘러보기
[1] M1941 존슨 소총의 로터리식 회전 탄창인데 로터리 가운데에 작동기구가 있는 형식[2] 슈미트-루빈 소총의 그 루빈[3] 대표적인 예로 프랑스의 르벨 M1886이 있다. 또한 리-엔필드도 초기형은 탄창 차단기를 갖추고 있었다.[4] 원래 편의를 위해 개머리판 아래쪽은 둥글게 처리하는데 그걸 안했다.[5] 총구의 강선면 쪽이 약간 안쪽으로 들어가게 가공하는 것, 이렇게 할 경우 총구 끝의 강선면이 어느 정도 보호를 받을 수있어 유리하다.[6] 주로 포병이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포병은 실질적으로 공병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긴 소총은 매우 불편했다. 때문에 많은 포병들이 자신의 소총을 망실하곤 했다.[7] 원래는 M1903 스프링필드의 생산량 부족을 메꾸기 위해 찍어낸 준 제식소총이었으나, 정작 1차 세계대전 종전까지의 누적 생산량에서 M1917이 M1903의 약 2배를 찍어 버리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