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영(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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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동했던 선발 투수로, 크고 아름다운 키를 비롯해 여러가지 먼치킨스러운 스펙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젊을 적에는 '''6′10″(208cm)'''[1] 라는 우월한 신장을 바탕으로 농구와 야구를 병행하다가 야구 쪽으로 진로를 잡고 2000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피츠버그 파이리츠에 지명되어 $1.65m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다. 마이너리그에서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며 착실히 성장해 나갔지만, 2003년을 앞두고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트레이드되었고 2003년 이후 다시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되었다. 그렇게 암흑기를 보낼 적에 2004년 후반기에 드디어 빅리그로 콜업되었고, 3년 $1.5m의 계약을 보장받은 2005년부터 풀타임 선발 투수로 뛰면서 12승 7패 평균자책점 4.26의 괜찮은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따금 컨트롤에 난조를 보이며 볼을 많이 던지는 탓에[2] 이닝 소화력이 다소 떨어지는데다 플라이볼 피쳐라는 특성상 장타가 많이 나오는 아메리퀘스트 필드에 적합한 투수는 아니었고, 결국 2005년 이후 아드리안 곤잘레스와 함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트레이드되었다.[3]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친화 구장인 펫코 파크에 온 영은 2년 연속 내셔널리그 최저 피안타율의 기록을 세우는 등 준수한 선발투수로서 승승장구했고 2007년에는 올스타로까지 선정되었다. 그러나 2008년 발전 없는 그 분의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얼굴에 직격당하고 두 달을 개점휴업 상태로 보낸 뒤, 2008년부터 어깨 부상을 당하며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다.
결국 2010년 종료 후 파드리스에서 옵션이 거절되며 뉴욕 메츠로 이적, 데뷔전에서 콜 해멀스를 상대로 3타수 3안타 2타점을 치고 5.1이닝에 7K를 잡아내는 흠좀무한 활약을 펼쳤지만 이후 팔 부상으로 다시 주춤하며 4경기만에 시즌을 마감한채 FA가 되었다. 다행히도 메츠와 재계약에는 성공하며 2012년 중순에 복귀했지만, 20경기 4승 9패 평균자책점 4.15로 그다지 인상적인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다.
2013년에는 워싱턴 내셔널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으며 예비 선발의 임무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부상 때문에 빅리그는 올라오지도 못한 채 워싱턴을 떠나게 되었고, 2014년 초에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예상과 달리 꾸준히 로테이션을 돌며 7년만에 규정이닝을 소화하는 등 12승 9패 평균자책점 3.65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그러나 너무나도 큰 ERA와 FIP의 괴리[4] 로 나쁘지 않은 성적에도 어느 팀과도 재계약을 맺지 못하다가 2015년 초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거의 최저연봉 수준인 1년 0.675m의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2014년과 마찬가지로 ERA(3.06)와 FIP(4.52)의 상당한 괴리를 보여주며 11승 6패, 3.06의 평균자책점, 83탈삼진을 잡아내었다. 그리고 포스트시즌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했고, 특히 2015년 월드 시리즈에서는 1차전에서 연장전 3이닝 무실점, 4차전에서는 50여개의 투구수 제한이 걸려 있었음에도 호투를 하면서 생애 첫 우승반지도 획득한다. 그 활약을 인정받아 3년간 최대 18M이라는 계약에 사인하는데 성공했다.
그 첫 해인 2016년에는 41이닝동안 무려 17개의 피홈런을 뚜드려맞으며 방어율 6점대를 마크하고 있다. 7~8%대를 마크하던 HR/FB 비율이 갑자기 22%로 올라간 것이 그 비결(?). 40이닝 이상 던진 투수들 중 압도적인 1위로, 원래 플라이볼 피쳐인데 플라이볼이 9개가 뜨면 그 중 2개가 넘어간다는 무서운 수치이다.
2017 시즌에도 7점대가 넘는 ERA를 기록하며 부진했고 결국 팀은 네프탈리 펠리즈를 영입하면서 그를 지명할당 시켰다. 이후 6월 25일에 완전 방출.
이후 2018 시즌을 앞두고 친정팀들 중 하나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스프링캠프에 참가했지만 로스터 진입에 실패한채 4월 1일에 방출되었고 이후 5월 10일에 MLB 사무국에서 현장 운영·계획·전략 부사장으로 임명되어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그리고 21시즌부터 텍사스 레인저스의 신임 단장으로 선임되었다.
큰 신장에서 주는 이미지와는 달리 패스트볼의 스피드가 빠른 투수는 아니다. 특히 30대에 접어든 이후부터는 부상 등으로 인해 빨라야 80마일대 후반이 나올 정도로 구속이 많이 떨어졌다. 또한 커리어 초창기만 하더라도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의 변화구를 던졌으나 부상의 여파로 2012년부터 변화구는 슬라이더 1개 구종만 던지는 투피치 투수가 됐다.
그의 패스트볼은 현역 최고급의 V무브먼트를 가지고 있기에 타자들 입장에서는 처음 봤을 때 정타로 맞추기가 정말 어려우며, 이는 빗맞은 뜬공을 양산해내면서 피안타율을 낮추는 효과를 낳았다. 그러나 그 특출난 패스트볼을 받쳐줄만한 보조구종이 부족한 편이라 타순이 한번 돌아간 뒤에는 공략당할 때가 많았다. 전성기였던 파드리스 시절에는 탈삼진도 그럭저럭 뽑아냈지만, 구속이 떨어진 후에는 탈삼진률도 많이 하락한 편.
평균에 비해 항상 낮았던 피안타율에 반해 플라이볼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평균보다 낮은 홈런/플라이볼 비율 때문에 평균자책점과 FIP 사이의 갭이 매우 큰 편이다. 2016시즌 종료 시점에서 통산 평균자책점은 3.87인데 반해 통산 FIP는 4.55로 대략 0.7 정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학창시절에는 농구와 야구를 병행했는데, 프린스턴 대학에서도 양 포지션에서 신인왕을 먹는 먼치킨스러운 활약을 펼쳤다고 한다. 그런데 '''공부'''까지 잘해서 2002년까지 학업을 병행하면서 결국 프린스턴에서 정치학 학위를 땄고, 마이너리그에서 한동안 고생하고 있을 때는 '''NBA''' 새크라멘토 킹스에서 2년 계약을 오퍼받았다고 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엠엘비바다 글 참조.[5] 또한 처가와 본가 양쪽 '''집안 배경'''도 빵빵하다. (이쪽은 위의 엠엘비바다 글 참조) 하여간 이 정도 스펙이면 할 말이 없다(...). 괜히 은퇴 후에 야구 행정가쪽으로 활동하는 게 아니다.
아쉽게도 2000년대 말부터 부상이 찾아온 것을 보면 신은 공평하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만.
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동했던 선발 투수로, 크고 아름다운 키를 비롯해 여러가지 먼치킨스러운 스펙으로 잘 알려져 있다.
2. 선수 생활
젊을 적에는 '''6′10″(208cm)'''[1] 라는 우월한 신장을 바탕으로 농구와 야구를 병행하다가 야구 쪽으로 진로를 잡고 2000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피츠버그 파이리츠에 지명되어 $1.65m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다. 마이너리그에서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며 착실히 성장해 나갔지만, 2003년을 앞두고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트레이드되었고 2003년 이후 다시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되었다. 그렇게 암흑기를 보낼 적에 2004년 후반기에 드디어 빅리그로 콜업되었고, 3년 $1.5m의 계약을 보장받은 2005년부터 풀타임 선발 투수로 뛰면서 12승 7패 평균자책점 4.26의 괜찮은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따금 컨트롤에 난조를 보이며 볼을 많이 던지는 탓에[2] 이닝 소화력이 다소 떨어지는데다 플라이볼 피쳐라는 특성상 장타가 많이 나오는 아메리퀘스트 필드에 적합한 투수는 아니었고, 결국 2005년 이후 아드리안 곤잘레스와 함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트레이드되었다.[3]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친화 구장인 펫코 파크에 온 영은 2년 연속 내셔널리그 최저 피안타율의 기록을 세우는 등 준수한 선발투수로서 승승장구했고 2007년에는 올스타로까지 선정되었다. 그러나 2008년 발전 없는 그 분의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얼굴에 직격당하고 두 달을 개점휴업 상태로 보낸 뒤, 2008년부터 어깨 부상을 당하며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다.
결국 2010년 종료 후 파드리스에서 옵션이 거절되며 뉴욕 메츠로 이적, 데뷔전에서 콜 해멀스를 상대로 3타수 3안타 2타점을 치고 5.1이닝에 7K를 잡아내는 흠좀무한 활약을 펼쳤지만 이후 팔 부상으로 다시 주춤하며 4경기만에 시즌을 마감한채 FA가 되었다. 다행히도 메츠와 재계약에는 성공하며 2012년 중순에 복귀했지만, 20경기 4승 9패 평균자책점 4.15로 그다지 인상적인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다.
2013년에는 워싱턴 내셔널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으며 예비 선발의 임무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부상 때문에 빅리그는 올라오지도 못한 채 워싱턴을 떠나게 되었고, 2014년 초에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예상과 달리 꾸준히 로테이션을 돌며 7년만에 규정이닝을 소화하는 등 12승 9패 평균자책점 3.65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그러나 너무나도 큰 ERA와 FIP의 괴리[4] 로 나쁘지 않은 성적에도 어느 팀과도 재계약을 맺지 못하다가 2015년 초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거의 최저연봉 수준인 1년 0.675m의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2014년과 마찬가지로 ERA(3.06)와 FIP(4.52)의 상당한 괴리를 보여주며 11승 6패, 3.06의 평균자책점, 83탈삼진을 잡아내었다. 그리고 포스트시즌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했고, 특히 2015년 월드 시리즈에서는 1차전에서 연장전 3이닝 무실점, 4차전에서는 50여개의 투구수 제한이 걸려 있었음에도 호투를 하면서 생애 첫 우승반지도 획득한다. 그 활약을 인정받아 3년간 최대 18M이라는 계약에 사인하는데 성공했다.
그 첫 해인 2016년에는 41이닝동안 무려 17개의 피홈런을 뚜드려맞으며 방어율 6점대를 마크하고 있다. 7~8%대를 마크하던 HR/FB 비율이 갑자기 22%로 올라간 것이 그 비결(?). 40이닝 이상 던진 투수들 중 압도적인 1위로, 원래 플라이볼 피쳐인데 플라이볼이 9개가 뜨면 그 중 2개가 넘어간다는 무서운 수치이다.
2017 시즌에도 7점대가 넘는 ERA를 기록하며 부진했고 결국 팀은 네프탈리 펠리즈를 영입하면서 그를 지명할당 시켰다. 이후 6월 25일에 완전 방출.
이후 2018 시즌을 앞두고 친정팀들 중 하나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스프링캠프에 참가했지만 로스터 진입에 실패한채 4월 1일에 방출되었고 이후 5월 10일에 MLB 사무국에서 현장 운영·계획·전략 부사장으로 임명되어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그리고 21시즌부터 텍사스 레인저스의 신임 단장으로 선임되었다.
3. 피칭 스타일
큰 신장에서 주는 이미지와는 달리 패스트볼의 스피드가 빠른 투수는 아니다. 특히 30대에 접어든 이후부터는 부상 등으로 인해 빨라야 80마일대 후반이 나올 정도로 구속이 많이 떨어졌다. 또한 커리어 초창기만 하더라도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의 변화구를 던졌으나 부상의 여파로 2012년부터 변화구는 슬라이더 1개 구종만 던지는 투피치 투수가 됐다.
그의 패스트볼은 현역 최고급의 V무브먼트를 가지고 있기에 타자들 입장에서는 처음 봤을 때 정타로 맞추기가 정말 어려우며, 이는 빗맞은 뜬공을 양산해내면서 피안타율을 낮추는 효과를 낳았다. 그러나 그 특출난 패스트볼을 받쳐줄만한 보조구종이 부족한 편이라 타순이 한번 돌아간 뒤에는 공략당할 때가 많았다. 전성기였던 파드리스 시절에는 탈삼진도 그럭저럭 뽑아냈지만, 구속이 떨어진 후에는 탈삼진률도 많이 하락한 편.
평균에 비해 항상 낮았던 피안타율에 반해 플라이볼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평균보다 낮은 홈런/플라이볼 비율 때문에 평균자책점과 FIP 사이의 갭이 매우 큰 편이다. 2016시즌 종료 시점에서 통산 평균자책점은 3.87인데 반해 통산 FIP는 4.55로 대략 0.7 정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4. 먼치킨
앞서 설명했듯이 학창시절에는 농구와 야구를 병행했는데, 프린스턴 대학에서도 양 포지션에서 신인왕을 먹는 먼치킨스러운 활약을 펼쳤다고 한다. 그런데 '''공부'''까지 잘해서 2002년까지 학업을 병행하면서 결국 프린스턴에서 정치학 학위를 땄고, 마이너리그에서 한동안 고생하고 있을 때는 '''NBA''' 새크라멘토 킹스에서 2년 계약을 오퍼받았다고 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엠엘비바다 글 참조.[5] 또한 처가와 본가 양쪽 '''집안 배경'''도 빵빵하다. (이쪽은 위의 엠엘비바다 글 참조) 하여간 이 정도 스펙이면 할 말이 없다(...). 괜히 은퇴 후에 야구 행정가쪽으로 활동하는 게 아니다.
아쉽게도 2000년대 말부터 부상이 찾아온 것을 보면 신은 공평하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만.
5. 그 외
- 텍사스 시절 박찬호와는 함께 영화도 보러다닐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 2007년 올스타전에서 스즈키 이치로에게 인사이드 파크 홈런을 맞았다. AT&T 파크의 변칙적인 구조와 광고판의 불규칙 바운스로 인해 켄 그리피 주니어가 예상한 방향과 정반대로 튕겼다.
[1] MLB 역대 선수들 중 랜디 존슨 등과 함께 최장신 역대 2위에 올라 있다. 1위는 2013년 은퇴한 불펜투수 존 라우시(211cm). 마이너리그까지 포함하면 네덜란드 출신 불펜투수 록 반 밀(216cm)이 최장신 선수다.[2] 다만 2005시즌 BB/9는 2.5로 준수한 편이었다.[3] 결론적으로, 영 대신 데려온 선발투수 아담 이튼이 폭삭 망하면서 이 트레이드는 일방적인 파드리스의 승리로 결정되었다.[4] 평균자책점이 3.65인 반면 FIP은 5.02(!)를 기록했다.[5] 마지막이 압권이다. 트레버 호프만의 말에 따르면 영은 인터뷰를 할 때마다 놀림을 받았는데 놀림을 받은 이유가 '''영어를 너무 완벽하게 구사해서''' 재밌게 들렸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