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영화)
1. 개요
조정래 원작 태백산맥을 영화화한 임권택 감독의 94번째 연출작으로 1994년 9월 17일 개봉했다.
2. 등장인물
- 김범우(안성기)
좌우익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을 지키는 민족주의자 지식인.
- 염상진(김명곤)
- 염상구(김갑수)
강경한 반공주의자로 벌교 경찰서의 감찰반장.
3. 줄거리
영화는 1948년 10월 20일 오전 1시 10분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 경찰서부터 시작한다. 벌교 경찰서에 걸려온 전화는 다름아닌 여수 반란 소식. 때문에 벌교 경찰서를 비롯한 주변 경찰서의 경찰들을 순천 경찰서에 집결시켜 반란군에 맞서게 되지만 그 날 아침에 반란군이 순천역전에서 경찰들을 쓸어버려 결국 벌교 경찰서는 비어버리고 염상진이 이끄는 빨치산 부대가 경찰서를 장악하고 벌교를 손에 넣는다. 그 후 인민재판을 열어 지주들을 살해하는데 김사용은 소작인들에게 후하게 대하고 아들 김범준이 독립운동가다보니 만장일치로 살게 된다.'''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반도의 분단은 아시아에서 마주친 미국과 소련이 만들어낸 가장 비극적인 세력 균형물의 상징이었다. 미•소의 냉전구조는 한국 민족 내부의 이기적 갈등을 조장했고, 두 개의 정부로 갈라진 남과 북은 적대의 이빨을 들이댄채 서로 다른 이념의 골짜기를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못 가고 22일에 여순지구에 비상계엄령이 선포, 23일에 순천이 탈환되어 빨치산은 결국 야음을 틈타 산으로 도주하고 24일에 국군이 벌교를 되찾는다. 길거리에서 이런저런 소동을 지켜보던 김범우는 아버지 김사용을 찾아뵙는다.
새로 부임한 토벌대장 임만수는 벌교 경찰서가 작성한 부역자 명단을 믿지 못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강경하게 나오며 의심되는 자들은 잡아내 학살한다.[1] 이 때 염상구는 몰래 빼내준 강동식의 처 외서댁을 강간하고 만다.
염상진의 명령으로 벌교에 잠입한 정하섭은 무당딸 소화에게 부탁해 은신처를 제공받게 되고 소화를 통해 어머니에게 자금을 받거나 벌교의 이야기를 전해듣는다.
순천으로 가려던 김범우를 염상구가 말리며 다방에서 이야기를 하던 중 좌익에게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이 결성한 멸공단이 다방을 나가는데 김범우는 멸공단이 좌익 가족들을 테러하고 통금시간에 몰려다녀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고 경찰이 뒤를 봐주고 있음을 직감한다. 결국 이들 때문에 하대치의 아버지가 사망하고 만다.
보다못한 김범우가 지주들과 임만수가 모인 자리에서 마을 사람들을 온건하게 처우할 것을 부탁하지만 임만수는 지주였던 아버지가 빨갱이 손에 죽었다며 호통을 치고 자리에 모인 지주들에게 빨갱이 편들면 빨갱이니 몸사리라고 협박한다. 결국 김범우는 돌아가는 길에 멸공단에게 린치를 당하고 만다. 그 후 마을에 국회의원 최익승이 오게 되고 술도가 정현동이 잡히게 된다.[2] 과거 최익승을 편들어줬던 염상구는 청년단장이 된다.
직속상관 박두병의 명령으로 김범우를 만난 계엄사령관 심재모는 그에게서 벌교에 좌익이 많은 이유가 토지 사업을 벌인 일제와 거기에 붙은 지주들 밑에서 7할을 소작료로 내야 했던 소작농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좌익이 이를 파고들어 무상몰수 무상분배로 꼬드긴 것임을 알게 된다.
한편 안창민은 경호원 둘을 데리고 마을에 잠입해 세포[3] 문기수에게 지시를 내렸고, 돌아가던 중 훈련중이던 계엄군과 총격전 끝에 경호원들을 잃고 본인은 도망치다가 병원으로 이송되어 병원 원장이 부른 이지숙의 수혈로 목숨을 건진다. 한편 내통자의 수작으로 서운상 밑에서 일하던 소작농들이 몰려가 소동을 일으켜 서운상을 중상입히는 사건이 발생. 이 소식은 심재모에게 알려져 소란을 일으킨 범인들 중 일부는 산으로 도망가 빨치산이 되고 나머지는 체포된다. 그렇다고 저들을 손해배상선에서 끝내자니 지주들의 압력이 문제라 김범우의 도움으로 탄원서가 작성된다.
병원에서 회복된 안창민은 염상진과 하대치가 와서 데려갔는데 강동식이 아내가 강간당했다는걸 알고 염상구 집으로 쳐들어가고만다. 도망치는 염상구를 어떻게든 쐈지만 다리를 명중시키는 선에 그쳤고 목숨은 부지했지만 단독행동을 죄목으로 처벌을 받고 만다.[4]
산에 숨어있던 빨치산은 율어면을 점령하는데 성공하고 토지개혁으로 농민들의 지지를 사고 안창민과 이지숙의 결혼식도 올려준다. 하지만 결혼식날 밤 계엄군의 습격으로 빨치산은 또다시 산으로 퇴각하고 만다. 이 사건 후 벌교에 잠입한 하대치는 주막집을 은신처로 삼고 조사를 시작한다.
한편 염상구는 소화가 빨갱이와 연관이 있단걸 알고 정하섭의 은신처를 습격하지만 정하섭은 도망치고 만다. 결국 소화는 염상구의 고문으로 아이를 유산하고 만다.
퇴각하던 빨치산은 계속되는 계엄군의 추격으로 괴멸적 타격을 입고 소수만이 살아남아 산의 동굴에 은신한다. 일전에 하대치가 은신처로 삼던 주막집의 주모를 이용해 폐가에서 보급품을 전달받고 옆집의 세포를 통해 동태를 감시하지만 주모와 세포 둘 다 계엄군에 붙어 실패로 돌아간다.
이렇게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분노한 부대원들은 우린 이 고생하는데 북은 대체 뭘 하냐고 불만을 성토한다. 강동식은 식량을 구할 셈으로 민간인으로 위장해 인근 농가로 내려가 물물교환을 청하다 농부에게서 38선이 무너진지 열흘이 지났다는 말을 듣는다. 이에 강동식은 놀라 한참을 멍하니 걷다 흥분해 만세를 하며 북한을 찬양한다. 근처에 숨어있던 다른 부대원들도 이를 듣고 나와 다같이 환호한다.
강동식의 처 외서댁은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한다.[5]
빨치산 부대는 벌교 인근으로 내려와 일전에 배신한 주모를 처형한다. 주모는 하대치에게 "그동안의 정과 내가 해준 것들을 생각해달라"고 빌지만, 배신 행위에 열이 뻗쳐있던 하대치는 직접 주모를 쏴 죽인다. 한편 벌교 읍내에서는 보도연맹원들이 며칠째 공산주의를 규탄하는 가두행진을 벌인다. 김범우는 이를 기이하다 생각하나, 염상구는 "다시 배신할까 무서워서 저런다. 어느쪽이던 간에 신뢰를 받지 못하는 저들이 불쌍하다." 말한다. 그리고, 7월초 보도연맹원들이 대거 학살되었다는 자막이 나온다.
그 후 벌교는 북한군에게 점령 당했다. 염상진을 필두로 공산주의자들은 벌교로 온 북한군 간부들을 만나 벌교 개혁에 관해 논의하려 한다. 먼저 서로 통성명을 하지만, 간부들은 염상진과 공산주의자들을 하대한다.[6] 이에 개의찮고, 염상진은 인민위원 선거 및 각종 개혁에 관해 화두를 꺼내지만, 간부들은 반동분자 숙청이 최우선임을 통보한다. 염상진과 공산주의자들은 간부들의 압력에 기가 죽어 간부들의 말을 따르겠다 답한다.
이후 공산주의자들은 조선로동당 입당 심사를 받는다. 이 때 최호길, 민광남 둘의 입당이 불허되는데[7] 간부들은 이들을 어중이떠중이라 비하하며 아무나 입당시킬 수 없다고 못을 박는다. 이에 참다 못한 하대치가 "발가락 잘라가며 투쟁했고 상전 몰아내겠다는데 상전 마냥 거드름을 피워?" 라고 불만을 성토한다. 이에 간부가 권총을 꺼내들려하던때 염상진이 심사실로 들어와 대원들을 나무란다. 그렇지만 간부들은 여전히 화를 냈고, 간부는 이에 "당기 위원회를 소집하겠다" 통보하고, 심사실을 떠난다.
하지만 낙동강 전선이 남한의 우세로 접어들자 빨치산은 벌교에서 퇴각하기 전 복수라는 명목으로 학살을 벌이게 되고 이들을 말리다가 실패한 염상진에게 김범우가 "사람의 분노를 토대로 한 당신들은 실패했다"고 일침을 가한다.
폐허가 된 벌교에서 김범우는 굿을 끝내고 돌아가는 소화와 이야기를 나눈 후 경찰청을 바라보고 자막에서는 6.25의 종전을 알리며 영화는 끝난다.
4. 평가
- 제 33회 대종상 영화제 - 심사위원특별상, 남우주연상(김갑수), 음악상, 조연여우상(정경순) 수상
- 제 30회 백상예술대상 - 영화부문 대상(안성기) 수상
- 제 15회 청룡영화상 - 작품상, 남우조연상(김갑수), 여우조연상(정경순) 수상
- 제 5회 춘사영화제 - 새얼굴 남자연기상(김갑수), 작품상, 여성 우수연기상(정경순), 촬영상, 조명상 수상
- 베를린 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
5. 흥행
영화에 대한 애매한 평가와 이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으로인해 흥행은 실패했다.
서울 관객은 23만명이 집계되었는데, 본작의 제작비 30억을 충당하려면 적어도 서울에서는 100만이 봐야 했다고 한다.
6. 원작과 다른 부분
- 시작 부분이 다름 - 원작은 정하섭이 소화의 집으로 향함. 영화판은 벌교 경찰서가 시작.
- 백남식이 등장하지 않고 초반에 임만수가 등장한다.
- 좌익에게 가족을 잃은 자식들로 구성된 멸공단의 배후가 염상구가 아닌 경찰이다.[8]
- 심재모에게 벌교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서민영이 아닌 김범우다.
- 서운상을 습격하고 산으로 도망쳐 빨치산이 된 소작농이 민기식, 최영선, 김달호로 바뀌었다. 사실상 민기식이 강동기의 포지션인 셈.[9]
- 피보길이 안창민을 업고 가던 염상진과 하대치를 보고 아는 척을 하는데 입막음을 목적으로 하대치에게 살해당한다.
- 강동식이 염상구 습격에 실패하지만 무사히 도망쳐 생존. 아내인 외서댁이 자살한다. 원작에서는 강동식은 죽고 외서댁이 입산하여 빨치산이 된다.
- 안창민과 이지숙이 율어면 점령 후 결혼하게 된다. 원작에선 지리산으로 올라가서 투쟁하다가 하산 직전 결혼하고는 나란히 체포된다.
- 논에 염전을 대는 사람이 정현동에서 윤 초시로 바뀌었다.
- 김범우는 중도적 입장을 고수하며 좌익의 편에 서지 않는다. 사실 원작에서도 빨치산이나 공산당 가입은 끝까지 거부했고 오히려 미군 통역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판에서처럼 공산주의자들을 두고 증오에 기반한 사람들이라고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포지션보단 미군과 공산당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심정적으로 공산당에 더 쏠리지만, 가담은 않는 사람 정도였다.
7. 기타
- 대한민국으로 귀순한 전 주영 북한공사 태영호가 밝힌 바에 따르면, 1997~8년 사이 덴마크에서 처음으로 한국 영화를 보았는데 그게 태백산맥이였고, 영화 후반부에서 후퇴하는 인민군이 주민을 학살하는 것을 본 김범우(안성기)가 공산주의자인 염상진(김명곤)에게 "당신들은 그런 식으로 하기 때문에 실패한 거요. 아주 철저히 말이오. 사람들을 수단으로 삼고, 사람들의 증오에 토대하는 한 그 어떤 사상도 사람들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고 일갈하는 장면을 보고, 북한 체제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훗날 "한국으로의 귀순을 결심하는 계기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정작 본작은 물론 원작 소설이 우파 단체들에게 '빨갱이' 소설로 몰리는 것을 넘어 국가보안법으로 고발당하는 고초를 겪기까지 했다는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태 공사는 영화에 대해 공산주의자들이 도덕적으로 건전하고 반공분자들이 불결한 사람으로 그려지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용공영화인지 반공영화인지 구분이 안 갔"지만 영화가 흐르면서 (좌우익을 막론하고 제각기) 정의로운 이상을 표방하면서도 자기의 사상과 대치되는 모든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없애버리는 것이 북한의 실상과 매우 유사했다며 "영화가 흐르면서 느낄 수 있었던 사상(메시지)은 참으로 심오한 것이었다"고 평가한다. [10] 심지어 6.25 전쟁이 남침이었다는 것도 태백산맥을 보고 나서 알게 되었다고. #
- 어린 시절의 지드래곤이 단역으로 출연한다.
- 개봉일 일부 우파 단체에서 극장을 둘러싸고 상영을 중지하라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 블루레이가 출시된 상태다.
- 염상구 역의 김갑수가 이 작품 출연으로 주목받게 되었는데 임권택 감독은 흥행은 망했어도 김갑수라는 배우를 찾아서 만족한다고 했고 원작자인 조정래는 김갑수의 염상구가 주인공이라고 할 정도로 엄청난 열연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 계엄군이 벌교에 진입할때 군가가 나오는데, 이거 국내판으로 개사한 혈서지원이다.
[1] 이 와중에 염상진의 아내 죽산댁이 임만수에게 심문받는데 결국 싸움이 나고 만다.[2] 일전에 최익승이 도와달라는 요구를 거절한 것에 앙심을 품은 것.[3] 내통자다.[4] 원작에서는 염상구 죽이려다 본인이 죽었다.[5] 그 후 빨치산이 벌교를 점거했을때 강동식이 소화에게 굿을 해달라고 부탁한다.[6] 간부들 다음으로 공산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직급과 이름을 말하자 '당신들 직급은 당에서 다시 정해줄 것'이라고 통보한다.[7] 최호길은 비밀 세포 활동, 민광남은 47년에 남로동당 입당자다.[8] 영화에서 염상구가 멸공단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김범우는 멸공단이 통금 시간에도 마음대로 돌아다녀 배후가 경찰임을 직감한다.[9] 강동기는 강동식의 사촌 동생이다.[10] 태영호 <3층 서기실의 암호> 108~1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