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닐
1. 개요
트로이 닐은 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오릭스 블루웨이브, 두산 베어스에서 뛴 미국의 우투좌타 내야수이다. KBO 등록명은 '''"니일"'''
2. 메이저리그 시절
원래 농구 선수였으나 20살때 야구에 두각을 나타내며 야구를 시작했다.
1992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였으며 3시즌간 230경기를 뛰면서 0.280 37홈런 120타점을 기록했다.특히 '93년에는 19홈런 63타점을 기록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으나 다음 해 부진하며 주전경쟁에서 밀렸다. 그래도 3시즌간 OPS 0.8을 넘게 기록한, 백업으로서는 매우 훌륭한 백업이었다.
3. 일본 프로야구 시절
그뒤 1995년부터 오릭스 블루웨이브로 가게되는데 거기서 엄청난 전성기를 맞게된다. 6시즌 동안 614경기에 출전하며 136홈런, 435타점을 기록했고 96시즌에는 홈런-타점 2관왕에 올랐다. 같은 해 팀을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며 시리즈 MVP[1] 를 수상했다.
하지만 노쇠화 영향이 있었는지 조금씩 성적이 하락했으며 2000년을 끝으로 전력 외 통보를 받으면서 오릭스 유니폼을 벗고 만다.
4. 한국 프로야구 시절
그러던 중 타선 강화를 원하던 두산 베어스에서 2001년 시즌을 앞두고 그를 영입하게 되는데 그는 '''돈보다 야구를 사랑해서 한국에 왔다'''라는 희대의 개드립을 펼쳤다(…). 뭐 사실 맞는 말인 것이 일본시절 큰 활약으로 거액의 연봉을 받아 이미 큰 부자였기에 2001년 당시 한국같은 별볼일 없는 리그에서 여태까지 받던 금액과 비교하면 푼돈을 받으면서 굳이 힘들게 뛰느니 그냥 은퇴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기 때문에, 돈보다는 진짜 야구가 좋아서 온 게 맞긴 했다.
여담으로 2001년 초 스프링캠프에 테스트차 들어왔을 때 기존의 두산 외국인 타자였던 타이론 우즈가 그를 꽤나 견제했다고 한다. 이 당시 우즈는 그를 꽤 경계했는지, 아무도 모르는 그린 머레이라는 선수를 칭찬하며 구단에 추천하기도 했다.하지만 두산은 닐을 영입하게 된다.
닐은 훈련이 끝나고 가끔씩 공을 주웠는데 그것이 김인식 감독에게는 마음에 들었는지 닐을 엄청 좋아하게 된다. 사실 지금도 훈련 끝나고 공 줍기는 볼보이와 막내들이 하는 것인데, 이걸 지금보다 더 선후배관계가 엄격했던 20년 전 그 시절 비싼 몸값을 받고 온, 고참축에 들어가는 용병이 솔선수범해서 했으니 감독 입장에선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 그는 그렇게 감독의 총애를 받으며 덕아웃에서 '''나 정도 선수는 해도 된다.''' 는 말을 남기며 덕아웃에서 '''담배'''를 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거기에 그는 뉴질랜드에 리조트를 소유했을 정도로 엄청난 갑부였었다. 말 그대로 '''고급''' 용병이었던 것.
그의 기량에 대해 의구심을 품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시범경기에서 18안타 2홈런 11타점으로 수위타자에 오르며 그의 기량논쟁은 끝났다. 개막전에서 몸맞는볼로 부상을 당해 10일 동안 1군에 제외되었던 그는 돌아오자마자 삼성전에 마수걸이 홈런을 쳐냈다.[2]
하지만 그 뒤로 엄청나게 부진했으며 두산이 우동수 트리오가 해체되자 구상했던 우동닐 트리오는[3] 닐 혼자 나가리가 되었다. 성적면으로는 부진하긴 했지만 고작 17경기 치른 상태라 반등을 기다려볼 수도 있었는데, 결정적인 사건 하나가 그를 퇴출시키고 만다.
당시 두산의 용병투수였던 마이크 파머가 퇴출되자 송별식으로 둘이서 술집에 술을 먹으러 갔는데 거기서 한국인들과 시비가 붙어서 싸우게 된다. 한 한국인 여성이 닐의 엉덩이를 만지자 이에 닐의 부인은 여성에게 술병을 던졌고 그것이 싸움으로 번지게 된 것이다. 닐은 당구큐대를 휘둘렀으며 결국 경찰서로 가게 된다. 그리고 이건 '''용병 1호 사건'''으로 기록에 남는다(…).
두산 입장에서는 퇴출이 확정된 파머는 그렇다 쳐도 성적도 좋지 못했던 닐을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골치를 썩어야 했는데, 결국 퇴출되었다. 나중에 그는 '''구치소에서 신었던 고무신이 마음에 들어서 가져갔다고 한다(…).'''
5. 연도별 성적
6. 그 외
- 일본에 있었을 때 많은 싸움을 일으켰으며 심판판정에 많은 불만을 가졌다고 한다. 또한 경기 출장에도 의욕적이어서 휴식을 줘도 나간다고 했다고. 다혈질적이고 소위 말하는 승부욕이 강했던 타입.
- 은퇴 후 바누아투의 에리코아 섬을 임대계약으로 구매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리조트 사업을 했다.
- 2005년 양육비 지급을 피해 국외로 도피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2009년 샌안토니오 지방법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했고 77만 9천달러를 지급하라고 했으나 2010년 11만 6천만 달러를 주는 것으로 합의했다.
- 대단한 일빠였으며, 1999년 시즌 도중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홈구장인 고베 스타디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실패한 메이저리거였지만 일본에서는 홈런왕까지 먹고 거액의 연봉과 큰 인기를 누리며 인생의 전성기를 맞았으니 일본에 대해 호감이 안 생길 수가 없었을 것.
7. 관련 문서
[1] 닐 이후로 일본시리즈 MVP에 오른 외국인 선수는 한동안 나오지 않다가, 2015년 일본시리즈에서 이대호가 일본시리즈 MVP에 오르며, 19년 만에 일본시리즈 MVP를 받은 외국인 선수가 되었다.[2] 삼성의 감독이었던 김응룡 감독은 어디서 저렇게 고급용병을 데리고 왔냐고 말하기도 했다.[3] 본래 표기는 현재식으로 하면 닐에 가까운데 당시는 외래어 표기법상 니일이라고 등록했다.[4] KBO에서의 성적만 기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