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브리시오 콜로치니
1. 소개
아르헨티나 출신의 중앙 수비수. 현재 소속팀은 아르헨티나 리그의 CA 산 로렌소다. 스페인과 잉글랜드에서 커리어 대부분을 보냈다.
데포르티보에서 네 시즌 동안 수비의 핵으로 활동했다. 2008년 여름 1,300만 유로 거액의 이적료를 데포르티보에게 안겨주며 뉴캐슬로 떠났다. 이는 데포르티보가 필리페-과르다도로 대표되는 중흥기를 여는데 큰 도움을 줬다.
뉴캐슬에선 두말할 필요 없는 레전드이자 카리스마 넘쳤던 캡틴.
2. 커리어
2.1. 유망주 시절
유망주 시절부터 팀을 아우르는 리더십, 탄탄한 수비력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비에르 사비올라, 막시 로드리게스, 니콜라스 부르디소, 윌리 카바예로 등등 그야말로 황금 세대의 일원이자 주장으로서 U20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참고로 당시 멤버들은 유망주에 그치지 않고 모두 성인 무대에서 비교적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뛰어난 선수들 사이에서도 콜로치니는 주장직을 맡았을 만큼 특급 유망주였다.
풍성한 곱슬머리 때문에 보급형 푸욜이라 불렸는데 유망주 시절 성급한 플레이, 크고 작은 실수로 욕만 먹던 푸욜에 비해 침착성과 리더쉽 등에서 확연히 높은 클래스를 가진 선수였다. [2]
이후 AC 밀란으로 이적해 알레산드로 네스타와 포지션 경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밀란은 당대 최고의 팀이자 역사적으로도 손에 꼽혔던 시절이라 임대를 다니기에 바빴다.
네 시즌 동안 주로 강등권 팀으로 임대를 떠났다. 데포르티보 알라베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비야레알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AC 밀란의 수비진은 여전히 건재했다.
수비 불안에 시달리던 레알 마드리드의 관심을 받기도 했으나 부상 이후 경기력이 많이 떨어지면서 04/05 시즌 겨울 이적 시장을 통해 데포르티보로 이적했다. 이적료는 약 520만 유로, 계약 기간은 6년이었다. 계약 기간에서 볼 수 있듯 데포르티보가 콜로치니에게 거는 기대는 매우 컸다.
2.2. 04/05 시즌: 새로운 희망
04/05 시즌 데포르티보는 총체적 난국에 빠져있었다. 수비진에 대해서만 설명하자면 오랜 시간 데포르티보의 후방을 책임졌던 누르딘 나이베트가 토튼햄으로 떠났다. 여기에 조르제 안드라데도 서서히 고질적인 무릎 부상을 앓기 시작했던 시점이었다. 리그 정상급이었던 센터백 두 명 중 하나는 떠나고 하나는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성적이 나오지 않을 수 밖에 없던 상황.
백업도 불안했는데 유망주 시절 스페인의 수비를 이끌 것으로 평가를 받았던 세사르 마르틴은 데포르티보가 기대했던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물론 세사르는 유로 2004에 참전할 정도의 퀄리티는 있었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잔실수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콜로치니는 영입 즉시 붙박이 주전으로 자리매김했다. 22라운드부터 최종 라운드까지 2번을 제외하곤 모두 풀타임을 소화했다. 28라운드 알바세테 원정에선 결승골을 넣으며 팀의 승리를 견인하기도 했다. 안드라데와 상당히 좋은 호흡을 보였고 데포르티보의 수비진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2.3. 05/06 시즌: 무난했던 시즌
05/06 시즌에도 콜로치니는 여전히 주전이었다. 안드라데가 부상으로 많은 시간을 결장했지만 중앙 수비의 핵심으로 제 몫을 해냈다. 활약상을 인정받아 동료 리오넬 스칼로니와 함께 아르헨티나 대표로서 2006 월드컵도 밟았다.
2.4. 06/07 시즌: 최다 무실점
06/07 시즌부터 콜로치니의 어깨는 상당히 무거워졌다. 데포르티보는 황금기를 함께 했던 베테랑들을 모두 떠나보냈기 때문. 더군다나 파트너 안드라데는 무릎 부상으로 적지 않은 시간 출전하지 못했고 월드컵 또한 나서지 못했기 때문. 호아킨 카파로스 감독과 사이도 좋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콜로치니에게 센터백이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 오른쪽 수비수로 뛰길 원했기 때문. 결국 감독과 불화를 빚으며 시즌 중반엔 한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이 시기에 데포르티보는 심각한 재정난으로 선수 주급도 제대로 못 주던 시점이라 이적설이 모락모락 뜨기도 했다. 그러나 알바로 아르벨로아가 겨울 이적 시장을 통해 리버풀 FC로 이적했고 후반기엔 다시 주전으로 나섰다. 콜로치니 개인적으론 우여곡절이 꽤나 있었지만 수비진은 라 리가 최다 무실점을 기록했다.
2.5. 07/08 시즌: 구세주
07/08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데포르티보는 수비진이 완벽히 붕괴되었다. 조르제 안드라데는 유벤투스로, 조안 카프데빌라는 비야 레알 CF로 이적했기 때문. 여기에 라 리가 정상급 수비형 미드필더로 성장하며 수비진 보호를 톡톡히 해줬던 알도 두셰르도 라싱 산탄데르로 떠났다. 세 명 모두 자유계약으로 이적했기에 데포르티보는 핵심 선수를 모두 떠나보냈음에도 제대로 보강을 단행하지 못했다. 여기에 기존의 센터백 알베르트 로포와 파블로 아모까지 장기 부상으로 전반기를 결장하게 되었다.
콜로치니 곁엔 퇴물 소리 듣던 마누엘 파블로, 검증되지 않은 유망주 안토니오 바라간, 필리페 루이스 그리고 2군에서 급히 승격시킨 피스쿠까지, 프리메라 리가 레벨이라곤 보기 힘든 선수들을 이끌고 수비를 해야했던 상황이었다.
04/05 시즌 이후로 데포르티보가 하향세를 탔던 이유는 바로 공격진 때문. 빈공 속에서도 수비진이 잘 버텨줬기에 1부 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07/08 믿었던 수비진마저 무너지기 시작했고 예상대로 강등권으로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데포르티보는 첫 라운드부터 승격팀 알메리아에게, 그것도 홈에서 0:3 완패를 당했다. 이후 시즌 초반 지난 시즌 최다 무실점 타이틀을 가진 팀이라곤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 없는 수비를 펼친 끝에 데포르티보는 일찌감치 강등권으로 떨어졌다. 콜로치니도 덩달아 정신을 못차렸다.
다행히 미구엘 앙헬 로티나 감독은 수비수 조련에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었고 일단 수비 조직력은 가다듬는데 성공했다. 10월부터 필리페-콜로치니-피스쿠-마누엘 파블로 4백을 고정시키며 호흡을 끌어올렸다.
17라운드 바르셀로나 원정에서 콜로치니는 마침내 정신줄을 잡으며 클래스있는 수비를 보여줬다. 필리페 루이스와 함께 리오넬 메시를 완전 봉쇄했다. 하지만 팀은 이니에스타의 매직에 무너지며 1:2 패배했다.
18라운드 사라고사 전에선 천금같은 동점골로 팀을 패배의 위기에서 구해냈다. 이 골 이후로 콜로치니는 각성하기 시작했다.
잠시 위기가 찾아왔지만 후반기 접어들며 수비진은 완벽히 안정을 되찾았다. 필리페 루이스가 포텐셜을 서서히 폭발시켰고 마누엘 파블로도 UEFA 유로 2008 승선설이 돌 정도로 철벽으로 변모했던 것이 주요했다.
1월 중순 5백으로 시스템을 바꾼 후 데포르티보는 수직 상승세를 거듭했는데 콜로치니는 역시 탄탄한 수비력은 물론 21라운드 에스파뇰 전 선제골, 32라운드 아슬레틱 전 추가골, 33라운드 라싱 산탄데르 전 역전골까지 득점했다. 5백으로 변환 후 팀의 경기력이 올라가자 콜로치니 특유의 시원한 전진 패스도 빈도도 늘었다.
후반기엔 카를레스 푸욜도 부럽지 않을 정도. 이는 절대 과장이 아닌 것이 데포르티보 후반기 성적은 19전 11승 2무 6패로 리그 4위에 해당했다. 당시 리그 우승 경쟁을 펼치던 레알 마드리드에게 1:0, 바르셀로나에게 2:0 세비야에게 2:1 승리를 거뒀고 발렌시아 원정에선 2:2 무승부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편 콜로치니는 07/08 시즌 리그 전 경기 풀타임 소화라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맹활약은 당연히 빅 클럽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고 프리메라 리가, 세리에 A 명문 클럽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행선지는 EPL의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였다. 데포르티보 구단주였던 아우구스토 렌도이로는 뛰어난 협상가였는데 과거 알베르트 루케의 이적처럼 ‘지금 명문 클럽들이 콜로치니를 원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뉴캐슬이 이적료를 더 지불한다면 단독 협상에 들어가겠다.’라고 딜을 내걸었고 이에 뉴캐슬이 응했다고 전해진다.
콜로치니는 데포르티보에게 UEFA 컵과 적지 않은 이적료를 안겨주며 아름답게 이별했다.
2.6.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2008-09 시즌 시작 전, 케빈 키건 감독에 의해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에 입성했다. 당시 뉴캐슬은 3B로 대표되는 막장수비가 맹위를 떨치던 상황이었고, 콜로치니는 재앙에 가깝던 수비라인을 안정시켜줄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시즌이 개막되고보니 수비라인의 안정은 커녕 '''자동문 하나가 더 늘어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장점인 전투적인 수비스타일과 강한 피지컬은 카드를 수집할때만 빛을 보였으며 타이터스 브램블만도 못한 민첩성으로 프리미어리그의 빠른 스피드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빠른 공격수만 나왔다하면 처절할 정도로 털리고 또 털렸다. 결국 프랑스 리그 2에서 데려온 세바스티안 바송에게 밀리며 앨런 시어러 감독의 신임을 잃는 모습까지 보이며 라리가 복귀설이 돌았는데..
뉴캐슬이 강등된 09-10시즌, 콜로치니는 서서히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며 리그 최소 실점을 이끌었다. 그러나 2부리그에서의 모습이었기에 재승격하면 다시 이전의 모습을 보일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으나, 10-11시즌 그런 우려따위는 말끔히 씻어버리며 '''벽'''이 되었다. 엄청나게 상승한 위치선정 능력으로 부족한 민첩성을 커버하는 중.
11-12 시즌에는 캡틴으로 임명되었고, 10-11시즌보다 훌륭한 활약을 보이며 뉴캐슬의 '벽'으로 군림했다. 스피드는 여전히 빠르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컷팅과 훌륭한 태클, 위치선정, 리더쉽으로 팀 전체를 지탱했다. 시즌 중에 콜로치니가 부상으로 못 나온 경기에서 뉴캐슬은 한 번도 이기지 못했고, 대패가 많았을 정도로 콜로치니는 뉴캐슬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었다.
11-12 시즌에는 4년 재계약에 서명하기도 했고, 훌륭한 활약으로 뉴캐슬을 UEFA 유로파 리그로 견인함과 동시에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도 뽑혔다. 이제는 명실상부한 프리미어 리그 톱 레벨 센터백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12-13 시즌 중반인 12년 12월 즘 부터 아르헨티나 리그의 산 로렌조로 돌아가기 위해 뉴캐슬과의 '''계약해지'''를 원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발단은 산 로렌조 에서 코칭 스탭으로 활동하는 콜로치니 부친의 인터뷰에서 비롯되었으며, 콜로치니는 아르헨티나로 돌아가고 싶어하고 있기 때문에 뉴캐슬과 계약해지 수순을 밟고 한 때 몸담았었던 클럽인 산 로렌조로 돌아와 남은 선수 경력을 이어가려 한다는 것이다.
처음엔 찌라시 취급을 하던 뉴캐슬 팬들이었지만 갈수록 들려오는 소식과 어느정도 신빙성 있어 보이는 소문[3] 이 돌기 시작하며, 결정적으로 콜로치니 본인이 뉴캐슬 수뇌진과 회담을 가졌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콜로치니가 아르헨티나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는 이야기가 사실로 밝혀졌다.
덕분에 뉴캐슬 팬들은 가뜩이나 시즌 중반, 좋지 않은 성적으로 강등을 걱정하는 판에 클럽의 주전 수비수로 주장까지 겸하고 있는 팀의 대들보를 이적료 한푼 건지지 못한 채 잃게 생겼다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1월 29일, 며칠에 걸친 팀 운영진, 스탭과의 협의 끝에 최종적으로 팀에 남기로 결정했다. 인터뷰를 통해 집안 사정으로 인해 고민했던 것은 사실이며, 산 로렌조로 돌아가고자 했다는 루머에 대해서는 아르헨티나의 지역지의 스페인어가 영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라고 밝혔으며, 남은 기간 동안 뉴캐슬의 잔류를 위해 100% 헌신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사우스햄튼 FC와의 경기에서 뜬공을 오버헤드 킥으로 걷어내다 등부상(...)을 당해 전열에서 이탈했고, 그가 없는 동안 뉴캐슬은 정신없이 털리며 강등의 문턱까지 이르렀다. 시즌 막판 복귀하여 팀의 잔류를 성공시키며 스스로의 다짐을 지켰다.
13-14 시즌에도 변함없이 주장으로 헌신하며, 주축선수 요앙 카바예가 떠나간 악조건 속에서도 묵묵히 팀의 후방을 책임졌다. 시즌말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그를 힘겹게 했던 개인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었음을 밝히며 다음 시즌도 뉴캐슬과 함께 할 것임을 천명했다. 하지만 콜로도 늙은 것인지 실수가 13-14 후반기부터 부쩍 늘고 있다.
14-15시즌 초반에는 팀과 함께 무력한 경기력을 보였으나 레스터 전을 시작으로 아주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뉴캐슬의 컵경기를 포함한 5연승에 아주 큰 기여를 하였다. 웨스트 브롬 전에서는 득점까지 기록했으나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부상 이후 시즌 후반기 들어서는 실수도 많아졌고 에버튼전에서는 퇴장까지 당해 팀이 나락으로 떨어지는걸 구경하게 되었다. 또다시 무력한 모습을 보이는 중. 콜로치니의 부진에는 후반기 극도로 부진했던 센터백 파트너 마이크 윌리엄슨의 영향도 컸다.
15-16 시즌을 시작하며 앨런 파듀의 크리스탈 팰리스가 콜로치니를 원했지만, 1년 재계약에 사인하며 16-17 시즌까지 뉴캐슬에서 뛰게 되었다. 조금씩 노쇠화 기미를 보이는 콜로치니였기에 이 재계약을 우려하는 팬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러나 정규 시즌에 들어서자, 3라운드 맨유 원정전 0-0 무승부를 견인한 1등공신이 바로 콜로치니로, 부상에서 돌아온 스티븐 테일러와 찰떡궁합을 과시하며 상대의 움직임을 미리 파악하고 몸을 날리는 등 클래스를 증명하며 아직 뉴캐슬에는 콜로치니만한 수비수가 없음을 보였다. 올드 트래포드에 뉴캐슬 원정팬들의 콜로치니 응원가가 울려퍼졌고, 이 경기에서의 맹활약으로 콜로치니는 BBC가 선정한 라운드 베스트 11에 오랜만에 뽑혔다. 다만 이후에는 부상과 기량 저하로 그다지... 팀도 강등권으로 밀려버렸고 결국 강등의 쓴맛을 또다시 맛보고 말았다.
시즌이 끝나고 계약이 만료되어 팀을 떠난 뒤 아르헨티나로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많았고, 결국 8년동안 정들었던 뉴캐슬을 떠나게 되었다. 이후 CA 산 로렌소에 입단했다.
3. 플레이 스타일
프리메라 리가에선 주로 피지컬을 이용한 수비를 펼쳤다. 미리 예측하고 끊어먹는 수비가 돋보였다. 큰 키는 아니지만 재공권도 좋았던 편. 아무래도 프리메라 리가가 피지컬적인 요소가 타 리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고 기술적, 전술적으로 수비를 하기에 이런 스타일이 잘 먹혔다.
그러나 프리미어 리그에선 콜로치니 기존의 수비 스타일이 먹혀들지 않았다. 왜냐면 프리미어 리그는 피지컬적인 요소가 매우 크게 작용하며 경기 템포도 매우 빠르다. 라 리가에선 정상급 피지컬을 자랑했던 콜로치니였지만 프리미어 리그 기준으로 평균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4]
그렇기에 피지컬을 바탕으로 끊어먹는 수비는 이피엘에서 통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민첩한 편이 아니었기에 높은 확률로 끊어먹기를 실패하고 뒷공간을 헌납하는 등 첫 시즌은 눈물 없인 볼 수 없었다.
08/09 시즌만 보면 사실상 잉글랜드 무대에서의 커리어는 끝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클래스가 있는 수비수답게 플레이스타일을 수정하며 화려하게 부활에 성공했다. 피지컬로 밀어붙이기보다는 미리 공의 경로를 예측하는, 지능적인 수비를 펼치기 시작했다. 심각했던 단점인 섣불리 끊어먹을려다 벗겨지는 모습은 이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시즌 베스트 11에도 선정되었을 정도.
2000년대 수비수지만 빌드업에도 일가견이 있다. 남미 출신답게 발밑이 좋다. 높은 확률의 롱패스를 구사하기도 하고 직접 볼을 가지고 전진하기도 한다. 데포르티보 시절엔 끊어먹는 수비로 깔끔하게 볼을 뺏어낸 후 전진 패스를 건내는 모습도 간간히 보였다. 뉴캐슬 시절에는 팀 내에서 2위에 해당하는 패스 성공률을 보여준바가 있다. 수비형 미드필더, 오른쪽 풀백도 볼 수 있다.
파이터적인 성향의 수비수로 알려져 있지만 수비 조율도 상당히 잘하는 편이다. 사실 안드라데가 파이터형 수비수였는데 안드라데가 장기 무릎 부상을 당한 후 콜로치니가 파이터형으로, 안드라데 뒤에서 커버하는 스타일로 바뀌었다. 아무래도 이 시기부터 콜로치니가 유명세를 타다보니 파이터형 수비수라는 이미지가 굳혀진 듯. 07/08 시즌 데포르티보에서나, 09/10 시즌 뉴캐슬에서나 유망주들을 데리고 수비 주율도 잘하는 수비수라는 것을 보여줬다.
속력은 느리고 키도 작은 편이지만 좋은 피지컬과 빌드업 능력, 매우 뛰어난 축구 지능으로 커버한다. 태클 능력도 수준급.
4. 여담
성실하고 헌신적인 플레이로 거치는 팀마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나 유난스러운 뉴캐슬 팬들의 콜로치니에 대한 지지는 절대적이어서, 09-10 시즌 만들어진 콜로치니 응원가가 유명하다. 유명한 팝송 Can't Take My Eyes off You를 개사한 곡으로 가사는 다음과 같다.
Oh Coloccini, you are the love of my life. (오 콜로치니 내 사랑!)
Oh Coloccini, I'd let you shag my wife. (콜로치니, 내 마누라도 빌려줄 수 있다네(...).)
Oh Coloccini, I want curly hair too. (나도 곱슬머리 하고 싶어!)
[1] /faˈβɾisjo koloˈtʃini/. 스페인어에서 외래어 또는 차용어로 여겨지는 이름의 cc는 어원에 따라 발음된다. 선수의 성인 Coloccini는 이탈리아어식 성이며 이탈리아어에서 cc는 e, i 앞에서 /tˈtʃ/로, a, o, u 또는 자음 앞에서 /kˈk/로 발음된다.[2] 카를레스 푸욜은 당시 스페인 국대 주전이던 마누엘 파블로가 정강이가 두 동강이가 나버리는 부상, 바르셀로나 프리미엄에 힘입어 국가대표에 겨우 승선할 수 있었다. 스페인에서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가 갖는 프리미엄은 엄청 나다. 좋은 예가 2002 월드컵 당시 카를레스 푸욜, 유로 2004 당시 라울 브라보가 있는데 기량 미달임에도 국가대표에 뽑혔다.[3] 콜로치니의 아내가 중병으로 투병중이고, 본인을 제외한 가족들은 이미 아르헨티나로 돌아가 있으며, 콜로치니는 아내의 간병을 위해 아르헨티나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는 소식이다. 덕분에 이런 인간적인 이야기에 약해질 수 밖에 없는 한국의 뉴캐슬 팬들은 콜로치니를 비난하지도 옹호하지도 못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아내가 아프다는데 구단의 사정만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다만 신빙성이 있어 보여도 어디까지나 소문이며, 콜로치니 측의 공식적인 언급은 한 번도 없었다.[4] 좋은 예로 뉴캐슬을 거쳤던 시스코 히메네스, 호셀루가 있다. 둘 다 라 리가에선 등지고 딱딱, 제공권도 받쳐줬지만 프리미어 리그에선 평균적인 피지컬에 불과하다. 알베르트 루케도 라 리가에선 상당히 다부진 윙어였는데 프리미어 리그에선 오히려 왜소했던 편이기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