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파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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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잉글랜드)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 감독을 맡았다.
2000년대부터 흰 머리로 가득했었고 처음 본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든 인물로 오해한다. 그러나 알고보면 의외로 젊은 감독이다. 머리도 머리지만 얼굴부터 노안이라 더 한 오해를 받는 듯 하며 비슷한 사례로 안첼로티가 있다.
찰튼을 3부 리그로 추락시킨 원흉이면서 강등후보였던 뉴캐슬을 리그 5위로 이끌었던 주역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극과 극의 성적을 내는 감독이며 후한 평가부터 박한 평가에 이르기까지 꽤 평이 엇갈리는 인물이다..
한 세대 위의 감독들인 로이 호지슨이나 샘 알라다이스, 해리 레드냅과 더불어 몇안되는 EPL 내의 토종 잉글랜드인 감독 중 한명이었다.[7] 다만 2019년 11월 지금은 첼시의 프랭크 램파드 감독이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어서 몇 안되는 토종감독이라 보기에는 그렇다.
2. 선수 생활
아마추어 축구 선수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젊은 시절 택시 운전사, 건설 노동자 등을 하면서 여러 아마추어 클럽을 전전했는데, 당시만해도 프로 축구선수가 될 생각은 없어서 중동에 건설 노동자로 나가기 위해 6개월 정도 축구를 그만두기도 했다. 이 시절 잉글랜드 아마추어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그는 늘 아마추어로서의 경험이 자신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이야기한다. 정말 기적같은 기회를 잡아서 간신히 프로 세계에 발을 들였기 때문에 "나는 노력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잘릴 수 있는 사람" 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이러한 의식과 그로 인한 근면성은 감독이 되어서까지도 계속되었다.
27세였던 1987년 7500파운드(우리 돈으로 약 1500만원. )의 이적료로 크리스탈 팰리스로 이적하면서 프로에 첫 발을 내디뎠고, 1989년 팀의 1부 리그 승격에 이바지했다. 1990년에는 FA 컵 역사상 손꼽히는 명경기인 리버풀 FC와의 준결승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팀의 4-3 승리를 이끌었다. 결승전 상대는 맨유. 1990년 5월 12일에 열린 결승전에서 풀타임 선발 출장했으나 연장전까지 가는 끝에 결과는 3-3 무승부. 당시에는 결승전도 무승부시 재경기를 해서 5일 후에 재경기를 했다. 재경기도 풀타임 선발출장했으나 팀은 0-1로 안타깝게 패배했다.[8]
이후 여러 클럽을 전전하다가 은퇴하고 코치 생활을 하기 시작했으며, 1997년에 레딩의 2군 감독을 맡았다 1999년에 같은 팀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3. 감독 경력
3.1. 레딩 FC
레딩 FC의 감독으로서 2년만에 팀을 2부 리그로 승격시키는 성과를 올리며 유망한 젊은 감독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4년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로부터 감독직 제의를 받고 레딩을 떠난다. 이 당시 떠나는 과정이 깔끔하지 못해서 레딩 팬들로부터는 지금도 평가가 좋지 않다. (그의 후임자가 바로 설기현을 영입한 스티브 코펠 감독이었고, 레딩은 이후 프리미어 리그까지 승격하여 맞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3.2.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2004-05 시즌 플레이오프를 통해 간신히 웨스트 햄의 프리미어 리그 승격을 이루어낸다. 2부 리그에 있는 클럽 중에서는 규모가 압도적으로 큰 편인 웨스트햄이었기에 이렇게 힘들게 승격한 것에 대해서 당시만 해도 팬들의 파듀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2005-06 시즌 갓 승격한 웨스트햄을 프리미어 리그 9위에 FA컵 결승까지 올려놓으면서 단숨에 주가가 폭등한다. 이 당시 FA컵 결승에서 웨스트 햄은 리버풀에게서 2-0까지 도망쳤다가 따라 잡힌 후 종료 직전까지도 3-2로 앞서고 있었지만 스티븐 제라드의 극적인 동점골로 결국 승부차기 까지 가서 패배하였고, 파듀는 선수로 한번, 감독으로 한번 FA컵 결승에서 패배하는 특이한 이력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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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 시즌 웨스트햄은 여름에 카를로스 테베즈와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를 영입하여 작년보다도 더 큰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는 예상을 받았지만, 오히려 이 둘의 영입 과정에서 벌어진 석연찮은 일들로 인해 감독과 운영진 간의 갈등이 불거졌고, 이것은 성적 저하로 이어졌다. 웨스트 햄 구단 역사상 최다 연패인 8연패와 6경기 연속 무득점을 기록하면서 돌풍의 팀으로 예상된 팀은 강등권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기나긴 연패 행진 후 블랙번과 아스날을 상대로 2연승을 거두며 잠시 반등하는 듯 했지만 다시 연패의 길로 들어갔다.
원칙적으로 선수의 능력만큼이나 인성을 중요시했던 파듀 감독은 테베즈와 마스체라노가 선수단 분위기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하여 둘을 중용하지 않았고, 이후 신임 앨런 커비실리 감독 하에서 테베즈가 그야말로 날아다니며 웨스트 햄을 강등에서 구하자 이로 인해 웨스트 햄 팬들에게 먼지나게 까였다. 결국 레딩과 마찬가지로 웨스트햄 팬들도 파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좋지 않다.
결국 2006년 12월 볼튼 원더러스에게 4-0으로 패배한 경기 후 파듀는 경질되었다.
3.3. 찰턴 애슬레틱 FC
웨스트 햄에서 경질 당한 후 딱 2주 쉬고 찰튼의 신임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이전 시즌까지 찰튼의 감독이 앨런 커비쉴리였는데,[9] 운명의 장난인지 파듀가 웨스트햄에서 경질된 후 커비쉴리가 웨스트 햄의 신임 감독으로 임명되어 두 팀은 사실상 감독 트레이드를 단행하게 되었다.
파듀가 취임한 시점에서 이미 찰튼은 시즌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승점 12점이라는 절망적인 성적을 올리고 있어 사실상 강등이 유력한 상황이었고, 다소 경기력은 향상되었으나 결국 강등을 피하지 못했다.
찰튼 팬들도 여기까지는 워낙 상황이 안 좋았기 때문에 이해심을 보였지만, 이후 2007-08 2부 리그에서 11위라는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고 심지어 2008-09 시즌에는 2년 전만 해도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던 팀이 '''3부 리그 강등 문턱'''까지 가는 지경에 이르러 결국 해임당했다.
당시 찰튼은 2부리그 최강 수준의 스쿼드를 가지고 있었지만 '''18경기 무승'''을 비롯하여 안좋은 기록이란 기록은 다 갈아치우면서 파듀를 경질하고도 결국 3부 리그로 강등당한다. 이 일로 인해 웨스트 햄에서의 행적으로 인해 가뜩이나 나락으로 떨어졌던 파듀에 대한 평가는 더 나락으로 떨어졌으며, 그와 함께 '''사실상 감독으로서의 생명은 끝났다'''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레딩, 웨스트 햄 등에 이어 당연히 찰튼 팬들도 그에 대한 기억은 별로 좋지 않다(...).
3.4. 사우스햄튼 FC
2009년 7월 3부 리그 사우스햄튼의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사우스햄튼이 당시 재정 파탄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가서 감점 10점을 당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승격 플레이오프 문턱까지 갔으나 안타깝게 실패했다.
그러나 2009-10 시즌 초반 운영진과의 불화로 인하여 급작스럽게 사임하게 된다. 이 때만 해도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에서 다시 파듀를 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3.5.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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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굉장히 뜬금없이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신임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안그래도 그의 전임인 크리스 휴튼 감독이 팬들로부터 엄청난 신뢰를 얻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급작스럽게 해임당한 것으로 인해 클럽과 서포터 사이의 관계가 거의 파탄에 이른 상태였는데, 신임이라고 나타난 사람이 웨스트햄과 찰튼에서의 행적으로 인하여 '''실패의 아이콘'''이 된 전직 3부 리그 감독이 되었으니, 당연히 취임 전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대부분의 팬들은 그의 임명을 마이크 애쉴리 구단주와의 개인적인 친분을 이용한 낙하산 인사라고 평가했다.
결국 첫 경기였던 리버풀전에서 '''취임하자마자 팬들에게 나가라는 소리를 듣는''' 굴욕을 경험했다. 이후 인터뷰 등에서 처음으로 경기장에 나타나 벤치에 앉았을 때 진심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사실 파듀도 뉴캐슬 팬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미 두차례 크게 실패하고 3부 리그 팀에서도 경질당한 자신이 재기하기 위해서는 이게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하고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감독직을 수락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경기를 3-1로 이겨서 목숨은 부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 이후 인터뷰에서 선수단의 주축인 조이 바튼과 케빈 놀란이 "오늘은 선수들이 잘한 것이지 새 감독은 특별히 한 게 없었다" 라고 발언하는 등 굴욕을 당한다. 그래도 경기 후 인터뷰를 통해 "오늘은 전임 휴튼 감독의 전술을 그대로 계승했을 뿐이다" 라고 말하는 등 어느정도 대인배로서의 풍모를 보여줬고, 나중에는 경기 전 선수들에게 "너희들이 아직 날 신뢰하지 않는 것은 알지만, 오늘은 나를 위해서가 아닌 팬들을 위해서 뛰어라" 라는 식으로 다독이며 설득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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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앤디 캐롤의 갑작스러운 리버풀 이적이라는 크나큰 악재를 만나 또 한번의 위기를 경험하지만, 믿을 만한 스트라이커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시즌 후반 팀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며 13위라는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하면서 어느 정도 상황을 반전시킨다. 특히 그에 대한 평가를 결정적으로 전환시킨 것은 홈에서 아스널을 상대로 전반 4-0으로 뒤지다가 후반에 4-4 동점을 만들어낸 극적인 경기로, 이 때부터 본인도 "할 수 있다" 라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래봐야 팬들의 감정을 '''맹목적 증오'''에서 '''그냥 불신''' 정도로 호전시킨 것이지 완전히 마음을 돌리게 만든 것은 아니라서 2011-12 시즌 시작을 앞두고도 "가장 자리가 위태로운 감독" 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3.5.1. 2011-12 시즌
시즌 초반부터 뉴캐슬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무패행진으로 2위까지 올라갔다. 이때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DTD를 외치며 뉴캐슬의 순위가 곧 떨어질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DTD가 일어나기는 커녕 뉴캐슬은 오히려 1월 파피스 시세의 영입으로 추진력을 얻어 당초 목표였던 UEFA 유로파 리그 진출 뿐만 아니라 UEFA 챔피언스 리그 진출까지 노리게 되었다.
결국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승점 65점 5위라는 훌륭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시즌 종료 전 강등당할 것이라는 분석까지 있었던 뉴캐슬이 5위라는 것만 해도 놀라운데, 그 외에도 맨유를 홈에서 3-0으로 격파하고, 26년만에 처음으로 첼시 FC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무실점 경기 리그 3위(1위는 맨유, 2위는 맨시티)를 기록하는 등 경기력 측면에서도 좋은 모습을 많이 보였다.
이러한 뉴캐슬의 성공에 파듀 감독은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다. 일단 수비 위주로 경기를 운영하다가 폭발적인 공격자원(뎀바 바, 파피스 시세, 아템 벤 아르파)를 이용한 순간적 카운터 어택으로 경기를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새로운 팀 컬러를 확립시켰고, 이로 인해 뉴캐슬은 시즌이 갈수록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더불어 라이언 테일러, 제임스 퍼치 등 전까지는 중용받지 못했던 선수들에게 무한신뢰를 보여주며 이들이 단순한 후보에서 팀의 중요한 자산으로 발돋움할 수 있게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프리킥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평가받았던 테일러는 시즌 초반 왼쪽 수비수로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며 선덜랜드와 에버튼을 상대로 결정적인 골을 넣기도 했고, 그야말로 최악의 선수로 팬들에게 거의 쓰레기 취급을 당했던 퍼치는 엄청나게 변한 모습을 보여주며 센터백, 풀백, 수비형 미드필더를 오가는 유틸리티 맨으로 대활약, 이제는 우스개소리로 '''필요에 따라서 말디니가 됐다가 마켈레레가 됐다가 네스타가 되는 선수''' 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마지막으로 선수단 내에서 발언권이 강했던 케빈 놀란, 조이 바튼 등의 선수들을 단호하게 정리하고 "소통의 리더십"을 중요시하는 파브리시오 콜로치니를 주장으로 임명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가지 단합 행사 등으로 화기애애한 선수단 분위기를 만든 것 역시 절묘한 판단이었다고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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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감독상 통합챔피언(!)'''[10]
결국 이 공로를 인정받아 파듀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선정하는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감독상"과 다른 감독들의 투표로 선정되는 "풋볼리그 감독협회(LMA) 올해의 감독상"을 둘 다 수상하게 된다. 프리미어 리그 출범 이후 잉글랜드 출신 감독 중에서 2번째 수상, 프리미어 리그 출범 이후 우승 팀 이외의 팀의 감독 중에서 3번째 수상, 역대 7번째로 감독상 동시 수상 등 기록적으로도 대단히 의미깊은 일이었다. LMA 감독상 수상 소감에서 "승리에 대한 자신감을 가진 팀을 만들어 준 것에 감사하다" 라고 전임자인 휴튼을 언급하면서 다시 한 번 찬사를 받았다.
파듀가 겨우 '''2년 전만 하더라도 3부 리그 팀에서 경질당한''' 감독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성공 신화를 쓴 것이다. 더군다나 그가 취임 직후 팬들에게 엄청난 증오를 받았고 선수단의 신뢰도 전혀 얻지 못하는 상태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드라마틱하다.
'''그런데...''' '''알고보니 파듀의 감독 경력 최고의 플루크 시즌이었다.'''
3.5.2. 2012-13 시즌
12-13 시즌에는 처참한 모습을 보이며 지난 시즌의 성적이 무색하게 강등권 언저리까지 떨어졌다. 2013년 2월 2일 현재 순위는 15위 승점 24점으로 강등권인 18위 위건의 승점 20점과 불과 4점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참고로 19위인 AV역시 승점 20점.
덕분에 지난 시즌은 선수빨 + 뽀록이었을 뿐이라며 그를 반대하는 의견이 엄청나게 늘었다. 사실 지난 시즌 이후 장기계약을 맺었을 때도 한 시즌 성공으로 너무 과하다는 우려 역시 적지 않았었다.
3.5.3. 2013-14 시즌
12-13 시즌에 16위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끝마친 데다 여름 이적시장에서의 성과라고 해 봐야 로익 레미의 임대 영입 뿐인지라 팬들의 불안감을 자아냈다.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듯 개막전부터 맨시티에 4대떡으로 털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런 건 기우에 불과했는지(...) 18라운드까지 10승 3무 5패로 6위를 유지하고 있다. 11월 이달의 감독상 수상은 덤.
시즌 초반에 쌓아둔 승점을 바탕으로 8~9위를 계속 유지하며 잔류를 어렵지 않게 확정했고, 지난 시즌과는 달리 안정적으로 잔류를 확정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팬들의 반응은 썩 좋지 못하다. 비록 안정적인 리그 잔류를 했다지만 라이벌 선덜랜드 AFC와의 타인위어 더비에서 90년 만의 3연패를 기록해 버렸고, 핵심 자원인 요앙 카바예를 겨울 이적 시장에서 이적시키는 삽질을 하고 주전들이 줄부상을 당하더니 2014년 들어 최악의 경기력을 보이며 승률이 폭락했기 때문. 심지어는 헐 시티와의 경기에서 데이비드 메일러를 상대로 박치기를 시전하여 7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먹더니 이후 6연패를 당하면서[11] 현지팬 대다수가 파듀의 경질을 요구하는 상황. 여러모로 안습한 상황이다.
일단 13-14 시즌은 10위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마무리지었다. 파듀가 팬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는 다음 시즌을 지켜봐야 할 듯.
3.5.4. 2014-15 시즌
화끈한 여름 이적 시장과 개막전 맨시티전의 선전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6라운드 현재 '''0승 3무 3패'''로 리그 꼴지로 내려앉았다. 9월말 기준 2014년 총 6승(그나마 2승은 리그컵 승리)을 기록중인 극심한 부진에 팬들의 인내심도 임계치를 넘어선 상황. 영국에선 '''파듀짤라라 닷컴 (http://sackpardew.com)'''[12] 이 등장해 홈경기장에서 파듀 경질을 요구하는 카드섹션을 펼치고 있으며, 이에 파듀는 "팬들이 '''집단 히스테리'''에 걸린 것 같다"고 대응해 논란을 더욱 확산시켰다.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
근데 이게 왠 일? 이후 치루어진 토트넘, 맨시티, 리버풀과 같은 강호들과의 경기에서 '''모조리 승리'''하면서 리그 초반의 부진한 모습을 말끔히 털어버리고 중상위권에 팀을 안착시켜놓더니 15라운드에서 이르러서는 강력한 우승 후보로 선두를 달리던 '''첼시를 처참하게 무너뜨리고 무패 우승의 꿈도 빼앗았다!''' 이러한 파듀의 파죽지세같은 행보에 그를 경질하라며 비난하던 목소리들은 진작에 쏙 들어가버린 상황. 국내 EPL 팬들은 그저 '''갓듀니뮤ㅠㅠ'''만을 연호하며 급기야는 '''EPL의 정의를 구현'''하는 수호자(...)로 칭송하기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뉴캐슬 팬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찬반 양론이 오가는 상황이었으며 첼시전 이후 폭풍 4연패를 당하며[13] 팀의 기복에 대한 문제제기 역시 지속되던 상황이었다.
에버튼에게 3-2 역전승을 거두며 4연패를 끊은 12월 28일 경기 직후, 갑작스레 닐 워녹감독이 경질된 친정팀 크리스탈 팰리스로의 '''이적설'''이 강하게 대두되었다. 팰리스 구단 수뇌부가 뉴캐슬과 접촉하였고 파듀의 장기계약으로 인한 보상금 지급에까지 합의했다고 한다.
3.6. 크리스탈 팰리스 FC
2015년 1월 3일 공식적으로 크리스탈 팰리스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계약 기간은 3년 반이다. 그리고 2015년 2월 8일 현재까지 6경기에서 무려 5승을 거두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그리고 강등권에서 머무르던 수정궁은 38라운드가 끝나고 시즌을 '''10위'''로 마무리하며 파듀의 저력을 보여줬다.[14]
15-16 시즌을 앞두고 뉴캐슬에서 대활약했던 요앙 카바예와 재회하는 등 여러 보강을 했다. 뉴캐슬에서 감독의 의향이 반영된 선수보강이 거의 없었던 것에 비해 한결 편안한 팀 구성이 가능해져 본인도 상당히 만족하는 듯. 2015년 12월 당시 파듀 감독의 크리스탈 팰리스는 9승 3무 6패 승점 30점으로 리그 5위 순항중이었다. 챔스권인 토트넘 핫스퍼와의 승점 차이도 불과 2점 뿐이라 챔피언스 리그 진출도 노려볼 만 한 성적이었다. 대조적으로 그를 떠나보낸 뉴캐슬은 승점 17점으로 리그 18위, 강등권에 랭크되어 있는데 이대로라면 올 시즌도 뉴캐슬은 크리스탈 팰리스 팬들의 놀림감이 될 듯.
2016년 들어 무기력한 게임들을 계속하며 6경기 무승에 빠지며 뉴캐슬에서 보였던 기복 심한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그래도 24라운드 현재 12위로 강등권 싸움에서 안정적인 순위를 이미 확보했기에 남은 시즌의 운영에 큰 문제는 없을 전망이다.
그러나 그 뒤로 29라운드까지 여전히 무승 행진이 계속되며 순위도 15위로 추락했고 18위 노리치 시티와 승점차는 8점 차이까지 좁혀졌다. 최악의 경우엔 그가 떠났던 2014-15 시즌의 뉴캐슬마냥 중위권에서 추락하며 강등 탈출을 위해 최종 라운드까지 가야 할 가능성도 모락모락 생겨나고 있다. 이 와중 FA 컵에선 승승장구하며 4강까지 진출. 그리고 4강에서 왓포드 FC를 격파하며 팀을 1989-90 시즌 이후 '''26년만에 FA 컵 결승전에 진출시켰다.''' 그런데 결승전 상대는 바로 '''현역 시절인 26년전 자신이 결승에서 상대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 현역시절에는 크리스탈 팰리스 유니폼을 입고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감독이 되어 돌아와 맨유를 잡고 우승을 이뤄낼지 기대된다.
결국 FA컵에선 연장 혈투 끝 제시 린가드의 한 방에 패배,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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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선제골을 넣은 후 춤을 췄는데, 문제는 춤을 추고 5분도 지나지 않아 동점골을 먹혔단 거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전반기엔 상당히 잘나갔으나 후반기들어 파듀스럽게(...) 추락한 시즌. 선수 기용과 전술적 유연성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16-17 시즌을 시작하며 팀의 상징적인 선수들인 야닉 볼라시와 밀레 예디낙을 팔아 버린 것 때문에 팰리스의 골수팬들 사이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생겨나고 있다. 어떤 팬들은 상술한 '파듀짤라라 닷컴'에 파듀 경질 요구 전단지가 몇 장이나 남았는지 물어보기도(...). 크리스티안 벤테케와 안드로스 타운젠드 등을 주축으로 삼아 만들어낸 새로운 팀이 팬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일단 시즌 시작은 1무 2패로 좋지 않다. 이후 9월에는 하위권 팀들을 상대로 3연승을 포함 3승 1무를 했으나, 10월에는 반대로 상위권 팀들을 상대로 3전 3패를 하며 감독계 롤코왕임을 계속 입증하는 중...
꼴찌 스완지를 상대로 막장경기 끝에 4대5로 패하는 등 부진이 거듭되자 최후통첩을 받았고, 결국 한국시간 12월 23일 자정 즈음 경질되었다.
3.7.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
1년여를 야인으로 지내다 2017년 11월 29일 2017-18 시즌 중도 경질된 토니 풀리스 감독 후임으로 웨스트 브롬의 감독직에 선임되었다.
부임 초의 모습은 실망스럽다. 8경기 4무 4패에 그치며 전혀 소방수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부임 9경기만에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을 홈에서 잡으며 첫승을 신고하기는 했지만 웨스트 브롬이 더이상 리그에서 이기는 일은 없었다. 브라이튼전 승리 이후 WBA의 성적은 무려 1무 8패... 게다가 8패는 연패였다. FA컵 4라운드에서 주전 선수들이 총출동한 리버풀 FC를 안필드에서 2-3으로 제압하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팀의 리그에서의 상황이 상황인지라 토너먼트의 선전도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결국 한국시간 2018년 4월 2일 경질되었다. 파듀의 대실패로 웨스트 브롬은 6경기를 남기고 17위 크리스탈 팰리스와 10점 차이가 나는 독보적인 최하위를 지키게 되었으며, 웨스트 브롬의 8년간의 프리미어 리그 시기도 종지부로 치닫고 있다. 파듀의 뒤를 이은 대런 무어 감독대행이 맨유와 토트넘을 꺾고 리버풀에게 승점 1점을 가져오는 등 눈물겨운 사투로 팀을 이끌었으나, 웨스트 브롬은 결국 최종전을 앞두고 강등 경쟁팀 사우스햄튼의 승리로 강등이 확정되고 만다. 파듀의 경질이 한두 경기만 빨랐어도 웨스트 브롬은 생존하였을지 모른다.
3.8. ADO 덴 하흐
덴 하흐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한 시즌 만에 상호합의하에 계약을 해지하였다.
3.9. PFC CSKA 소피아
뜬금없이 불가리아 명문 팀 CSKA 소피아의 테크니컬 디렉터로 부임하게 되었다.
4. 평가
'''판짜기 능력이 강점이다. 경기 전 구상한 전술이 상대의 대응과 맞아떨어질 경우 팀 전력 이상의 결과도 만들어낼 수 있는 감독이다. 반면 초반 구상이 어긋날 경우 속절없이 무너지는 경향이 짙다.'''
강팀을 상대로 의외의 승리를 종종 따내는 반면, 지는 경기는 대패가 많다. 파듀의 커리어하이 시즌인 뉴캐슬 11-12 시즌에도 19승 8무 11패로 팀 순위 5위였지만 득실차는 +5에 불과했다. 경기중 상황판단과 대처는 전반적으로 부족한 편으로 파듀의 팀은 역전승이 적고 교체도 대체로 효율적이지 못하다.
선수단 운영에서는 4-2-3-1을 선호하며, 특히 윙어에게 공수 부담을 상당히 지게 하는 편이다. 윙어의 부하가 크다 보니 윙어의 퍼포먼스가 점차 떨어지며 팀 성적도 하락하는 모습이 자주 나오는데, 이렇게 폼이 떨어진 선수들로 뉴캐슬 시절의 호나스 구티에레스와 요앙 구프랑 등이 있다. 팰리스에서도 야닉 볼라시의 부상공백을 극복하지 못하며 성적이 떨어지고 있다.
이 항목의 전반적인 서술에서 보듯 기복이 상당히 심한 감독이다. 첫시즌 혹은 단기계약 중 팀이 날아다니다가 5년계약이라도 하면 성적이 하락한다(...).
팰리스에서 파듀의 지휘를 받았던 이청용은 15-16 시즌 말 인터뷰를 통해 파듀의 선수단 관리 능력과 경기 운용 능력 등을 비판한 적이 있는데, 이것 때문에 이청용은 징계를 받아 벌금을 물어야 했다.
5. 이야깃거리
경기장 내에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다. 13-14 시즌 맨시티와의 홈경기에서 티오테의 골이 오프사이드 오심으로 인해 취소되자 상대팀의 페예그리니 감독에게 F***ing old c*nt라는 매우 심각한 수위의 욕설을 해 버리기도 했고 28라운드 헐 시티와의 원정 경기에서 상대 선수의 도발에 넘어가 박치기(!)를 하기도 했다.
상술된 15-16 시즌 fa컵 결승 또한 선제골의 기쁨을 성급하고 과하게 드러냈던 경기이다.
[1] 시즌 중 경질[2] 시즌 중도 부임 및 시즌 중 경질.[3] 오프시즌에 자진 사임.[4] 시즌 중도 부임. 그리고 2014년 12월 뉴캐슬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르고 크리스탈 팰리스로 이적.[5] 시즌 중도 부임 및 시즌 중 경질.[6] 시즌 중도 부임[7] 잉글랜드 외 지역 감독으로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모예스 그리고 웨일스 출신의 마크 휴즈나 토니 풀리스 정도가 영국인 감독으로는 꽤 유명.[8] 이후 밑에도 서술하겠지만 크리스탈 팰리스 감독을 맡아 26년만에 FA 컵 결승에 진출했는데 공교롭게도 맨유와 결승에서 또 만났다. 한편의 영화같은 이야기다.[9] 커비쉴리가 웨스트햄으로 떠난 동안에는 크리스탈 팰리스의 감독이었던 이안 도위에 이어 당시 찰턴의 수석 코치이던 레스 리드가 잠시 감독을 맡았다.[10] 원본 사진의 주인공은 WWF 초대 통합챔피언 시절 크리스 제리코[11] 6연패는 뉴캐슬의 86-87 시즌 이래 최초의 기록. 당연히 강등당한 08-09 시즌에도 6연패는 없었다! 덧붙여 뉴캐슬에서 6연패 이상을 당한 감독은 중간에 모두 잘렸기 때문에 파듀는 뉴캐슬 역사상 최초의 6연패 감독이 되었다.[12] 현재는 구단주 애슐리 아웃이 되었다.[13] 이 과정에서 선더랜드전을 0-1 석패하며 파듀는 역사상 최초의 타인웨어 더비 4연패 감독이 되었다.[14] 반대급부로 파듀가 나간 뉴캐슬은 존 카버 감독대행 체제에서 부진을 거듭하며 17위까지 추락, 간신히 강등을 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