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흐타코르 타슈켄트 FK
1. 소개
파흐타코르 타슈켄트 FK(Pakhtakor Tashkent FK)은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인 타슈켄트에 연고지를 둔 축구 클럽이다. 감독은 조지아 출신 감독인 쇼타 아르벨라제이다.
2. 역사
1956년 4월 8일 창단되었다. 창단 후 첫 경기는 즈베즈다 페름과의 경기였고 이 때 첫 골을 넣어 승리를 장식하였다. 그리고 1959년에는 2부 리그인 퍼스트 리그에서 승격하여 1960년부터 1991년까지 소련 1부리그에서 소속되어 활약하였고 중간에 강등당한 적이 한 번 있었으나 그 덕분에 1972년 우승 컵을 하나 든 적이 있었다. 특히 1967년 소비에트 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하였고 소련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남기는 등[1] 우즈베키스탄 클럽 중에서 가장 탄탄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이 기간동안 유리 프셰니치니코프나 겐나디 크라스니츠키, 그리스 최고의 축구 선수로 선정된 바실리스 하치파나기스 등 유능한 축구 인재를 배출한 팀이기도 하다. 그만큼 지역이나 능력으로 봤을 때 원정 팀들에게는 힘든 팀 중 하나였다. 한국 축구팬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소련 시절 강팀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소련 1부리그에서 활동한 우즈베키스탄 팀 중에선 유일하다는 것이다. 소련 시절 총 합하여 22년 시즌을 1부 리그에서 경기를 하였다. 소련의 붕괴로 우즈베키스탄이 분리 독립한 후 창설된 우즈베키스탄 프로페셔널 풋볼 리그에서 명문팀으로 올라섰다. 우즈베키스탄 리그가 창설된 1992년 리그에서 우승한 후 리그에서 통산 11회 우승하였는데 이는 리그 최다 우승기록이며 우즈베키스탄컵에서도 1993년 첫 우승을 기점으로 11회 우승하였다.[2]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11회 출전하여 2002-03시즌과 2004시즌에 연속으로 4강까지 진출한 기록이 있다. 그 당시 연속 4강 진출로 인해 아시아의 호랑이 중 하나로 호평 받은 적도 있었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파흐타코르는 컵 우승과 리그 우승을 독점하였고[3] 특히나 CIS 국가 각 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출전한 2007년에는 현재 없어진 CIS컵에서 우승을 차지하였고 이 때에도 자국에서 컵과 리그를 동시에 우승컵을 들었다. 이 시절 세르베르 제파로프와 알렉산데르 게인리흐등 우즈베키스탄의 수준급 선수들이 이 팀에서 활약하였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서포터의 숫자는 엄청났으나 FC 분요드코르나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FK가 창단된지 얼마 안된 것과 비교하면 더욱 서글픈 것이 현실적으로 서포터의 숫자가 3구단 중에서는 가장 적다는 것이다. 우승과 준우승을 지속적으로 휘어잡은 구단임에도 불구하고 신흥 구단인 로코모티브쪽으로 쏠리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그 후에는 신흥 강호팀들이 창단된 후에는 순위가 2순위로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특히나 FC 분요드코르와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FK의 선전으로 존재감이 사라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즈벡 국내의 전통적 명문 구단의 자존심을 지켜 2위를 놓치지 않았다. 비록 2011년에 나사프 카르시에 밀려 3위까지 떨어진적이 있었지만 이 때에도 컵 우승을 달성하여 다음 시즌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하는 성과를 거뒀다. 물론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는게 일반적이었고 2012년에 다시 리그 우승을 차지하지만 선수들의 부상 악재와 전술적 부재가 겹쳐 2013년에는 4위까지 하락하였다. 그러다가 2014 시즌에서 23승 3무 승점 72점으로 무패 리그 우승이라는 대기록과 함께 통산 10회 우승을 달성하였고 2015년에는 로코모티브 타슈켄트를 1점차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2015 아챔리그에선 풀라드 FC, 알 사드, 알 힐랄과 같은 조가 되었는데 초반부터 1무 2패 부진 속에 꼴찌로 추락했다. 그리고 같은 우즈벡리그 소속 분요드코르도 1무 2패로 다른 조에서 꼴찌로 추락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까지는 좋았지만 2016년에는 최악의 순위를 달성하는 바람에 서포터들의 반감이 심화되는 시기도 있었다. 2018년 리그에서 2위를 차지하였고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예선전에서 승리하여 본선에 합류하게 되었다. 확실히 예전 같은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이고르 세르기예프나 드라간 세란 등을 내세워 충분한 임팩트를 아챔과 리그에서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도 리그에서 첫 경기 상대가 로코모티프 타슈켄트였는데 3대0으로 이겼고 그 이후에도 무패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AFC 마지막 조별 경기인 에서 비겨도 16강에 갈 수 있었음에도 추가시간 3분에 들어서 골을 먹히고 아쉽게 탈락하였다. 그로인해 전통적인 강자라는 이름하에 다시 우승을 위해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결국 22승 3무 1패 승점 69점으로 2위와의 승점차가 무려 20점이나 차이가 나는 압도적인 점수차이로 우승을 차지했다
3. 여담
- 1979년 8월 11일 드니프로제르진스크 상공에서 공중 충돌 사고로 17명의 선수단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선수단 사망자 가운데 고려인 출신 소련 국가대표 선수였던 미하일 이바노비치 안(Михаил Иванович Ан) 선수도 포함되어 있었다. 고려인 출신 비운의 천재 미하일 안의 소속팀인 파흐타코르 타슈켄트가 같은 소련 탑 리그 소속 팀인 디나모 민스크와 경기하기 위해 날아가던 도중 비운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미하일 안은 소련 U-23 선수로 활약하며 유럽선수권 대회 우승을 이끌어내고 국가대표팀에 뽑히며 촉망받았으나 1979년에 벌어진 탑승객 178명 전원이 죽은 드니프로제르진시크 공중 충돌 사고로 그만 27살 한창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만 선수이다. 뿐만 아니라 이 사고는 파흐타코르에게도 악몽이었는데 이 사고로 파흐타코르 주전 및 선수,감독이 싸그리 다 죽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드니프로제르진스크에 선수단에 대한 묘비가 위치해 있다. 그에 대한 자세한 건 기사 참고.
- 파흐타코르의 최대 라이벌은 FK 네프치이며 네프치와의 더비경기를 우즈벡 엘 클라시코(Uzbek El Classico)라고 부르고 있다. 현재는 압도적으로 FK 네프치가 밀리고 있는 형국이지만 90년대 시절에는 그 반대였다.
- 태국의 킹스컵에서 심상민을 구타했던 샴시디노프 역시 이 팀에 소속되어 있었다.
4. 선수
4.1. 주요 선수
4.2. 유명 선수
- 우즈베키스탄
- 이그나티 네스테로프: 2002–2009
- 티무르 카파제: 2002-2007
- 세르베르 제파로프: 2002-2007
- 알렉산데르 게인리흐: 2002, 2005, 2007–2011
- 오딜 아흐메도프: 2006-2010
- 알렉산데르 로바노프: 2012-2016, 2016-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