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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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Oʻzbekiston Respublikasi[1] | Респу́блика Узбекиста́н
Republic of Uzbekistan
'''
[image]
[image]
'''국기'''
'''국장'''
<colbgcolor=#1EB53A><colcolor=#ffffff> '''국가'''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국가(''Oʻzbekiston Respublikasining Davlat Madhiyasi'')〉

'''수도'''
타슈켄트(Toshkent)
'''주요도시'''
나망간(Namangan), 사마르칸트(Samarqand), 안디잔(Andijon)
'''면적'''
448,978 km²
'''인구'''
33,935,765명(2021) | 세계 42위
'''민족 구성'''
우즈베크인 83.7%
타지크인 4.8%[2]
카자흐인 2.5%
러시아인 2.3%
카라칼파크인 2.2%
키르기스인 0.9%
타타르인 0.6%
기타 3.0% (2017)
'''공용어'''
우즈베크어, 카라칼파크어[3]
'''정치 체제'''
공화제, 대통령제(5년 중임제)
'''민주주의 지수'''
167개국 중 '''155위'''(2020년)[권위주의]
'''대통령'''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Shavkat Mirziyoyev)
'''총리'''
압둘라 아리포프(Abdulla Oripov)
'''명목
GDP'''

<colcolor=#000000> '''전체
GDP'''

$604억 9,000만 (2020)
'''1인당
GDP'''

$1,831 (2020)
'''GDP
(PPP)'''

'''전체
GDP'''

$3,107억 3,800만 (2020)
'''1인당
GDP'''

$9,595 (2020)
'''화폐단위'''
우즈베키스탄 숨(Soʻm,[4] UZS)
'''시간대'''
UTC+5
'''국가번호'''
+998[5]
'''주한 대사관'''
서울 용산구 대사관로11길 27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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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민족 구성
3. 언어
4. 역사
5. 지리
6. 정치
7. 분리주의
8. 경제
8.1. 카리모프 집권기 강제노역
8.2. 대우차의 마지막 천국
9. 군사
10. 문화
10.1. 식문화
10.2. 종교
10.3. 스포츠
10.3.1. 축구
11. '장모님의 나라'
12. 교통
13. 관광
14.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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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이중내륙국이다. 인구 약 3200만 명으로, 소련의 구성국이었던 중앙아시아 5개국 중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이다. 우즈베키스탄이라는 이름은 '우즈(Uz, 자신의)' + '베크(Bek, 왕)' + '스탄(Stan, 땅, 나라)'이 합쳐진 말로, '자신들의 을 가진 나라', 즉 다른 민족에게 지배받지 않는 독립된 나라임을 뜻한다. 수도는 '의 도시(또는 보석의 도시)'라는 의미의 타슈켄트(Toshkent, Tashkent)이다.[6]

2. 민족 구성


우즈베키스탄에는 130가지가 넘는 민족들이 살고 있다. 이들 중 공식 통계상으로는 80% 이상이 우즈베크인이며, 그 다음에 많은 민족은 타지크인이다.
통계상 타지크인 비율은 공식적으로는 약 5% 내외이다. 단 여러 학자들이 비공식적으로 약 25-35% 정도로 이를 것이라 추정한다.[7] 학자들마다 추정하는 비율은 구체적으로 조금씩 다르다. 소련 성립 이전 부하라 칸국 시절에는 우즈베크인과 타지크인들은 중앙아시아의 넓은 지역에 골고루 분포하며 섞여 살고 있었다. 20세기 초까지 사용되었던 '사르트(Sart)'라는 용어는 이 지역의 타지크인을 의미하는 동시에 우즈베크인을 뜻하는 말이기도 했다. 이후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두 집단의 민족정체성이 강화되었다. 과거 소련의 역사학자들은 우즈베크 민족인 투르크계와 타지크 민족을 인종적으로 옛부터 상호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것으로 인식했었다.[8] 민족을 바탕으로 한 여러 소비에트 공화국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1924년부터 1929년까지 5년이라는 짧은 기간이기는 했으나 소비에트 정부가 타지크 ASSR을 우즈베크 SSR 내부의 자치공화국으로 편성한 이유는 바로 이런 까닭이였을 것이다. 비공식적인 주장을 하는 학자들은 우즈베키스탄 내의 타지크인들은 여러 이유로 우즈베크인으로 등록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소비에트 정부의 민족주의적 정책 때문에 타지크인 일부가 차별을 받았던 역사가 있었다.[9] 다만 차별 의식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실제로 타지크어 금지 정책에도 불구하고 사마르칸트부하라 등 역사적으로도 페르시아계 타지크인이 많이 거주하던 도시였고,[10][11] 현재에도 타지크인이 다수인 곳에서는 여전히 타지크어가 일상생활에 널리 쓰인다. 사마르칸트의 주민의 약 70%, 부하라의 약 90%정도가 타지크어를 모어로 쓴다.[12][13] 물론 소련 시절 우즈벡 내에 거주하던 타지크 사람들이 우즈베키스탄 민족과 동화되어 살아갔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14]
이들 외에도 카자흐인, 러시아인, 카라칼파크인, 타타르인 등이 있으며, 이오시프 스탈린 집권 시기에 강제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에 정착한 고려인크림타타르인도 있다. 심지어는 극소수의 우크라이나인독일인, 흑해 그리스인[15]들까지 살정도로 CIS 국가들 가운데 가장 많은 민족들이 모여 살고 있는 나라다. 그러나 우즈베크인이 전 인구의 81%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카자흐인말고도 러시아인의 인구가 많은 인접국 카자흐스탄 만큼 다채로운 인종이 보이는 편은 아니다. 우즈베키스탄은 고려인의 숫자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국가이다. 고려인이 많은 만큼 대한민국에 대한 인식이 매우 좋은 친한국가이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의 우즈베크인 우대정책이 강화되면서 고려인들 중에는 한국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고려인들은 우즈베키스탄 국민으로서 애국심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우즈벡인'이라고 하면 튀르크계 민족으로서의 '우즈베크인(Oʻzbeklar, Узбеки)'과 '우즈베키스탄 국적 사람'의 줄인말로서의 '우즈벡인'이라는 뜻이 있다. 예를 들어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러시아인(O'zbekistondagi ruslar, Русские в Узбекистане)'을 우즈베키스탄 국민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흔히 '우즈벡인'이라고 하는데, 이 경우 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민족으로서의 우즈베크인과 매우 햇갈리는 상황이 생겨버린다. 대체로 민족으로서의 우즈베크인은 우즈베키스탄이 있던 지역 자체가 청동기 시절부터 유럽의 문명에 영향을 준 안드로노보 문화권에 존재해 코카소이드 민족의 영향을 받았으며 검은 모발에 서구적/동양적인 느낌이 공존한다. 다양한 코카소이드 및 투르크계 집단이 이 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여러 형질이 나타난다. 피부가 하얀 사람들도 많지만 어두운 사람들도 있으며, 사막에 사는 사람들이라 햇빛을 많이 받아서 후천적으로 피부색이 어두워진 사람들도 많다. 고대의 인도유럽계의 원류는 피부 색깔이 어두운 집단도 있었기 때문에 피부가 어두워도 코카소이드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16] 반면 이웃한 카자흐인은 카자흐인 자체가 우즈베크인에 비해 동양인의 느낌이 더 강하다. 물론 중앙아시아 민족 특성상 서구적으로 생긴 사람들도 전반적으로 꽤 있으며 카자흐스탄의 경우 우즈베키스탄과 달리 러시아인들이 워낙 많이 이주해 살고 있어서 외형적으로 우즈베키스탄보다 더 다양함을 볼 수 있다.

3. 언어



우즈베크어가 공용어이다. 하지만 역사적인 이유로 많은 소수 민족들이 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이기 때문에 평등을 강조한 러시아소련의 영향으로 러시아어를 포함해서 중앙아시아 한국어, 카라칼파크어를 포함한 다양한 언어들이 쓰였다. 그러나 독립 이후엔 민족주의의 영향 때문에 다른 언어들의 사용이 상대적으로 줄고 있다고 한다. 특히 러시아어가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이자 각민족간의 링구아 프랑카로 지정되어 있고 러시아로 일하러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러시아어는 중요한 외국어이고 아직까지 도시에서는 러시아어가 많이 쓰이고 있지만, 소련시절보다 사용자의 수가 많이 줄었다. 지방쪽에서는 러시아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부족한 상황이다.#(러시아어) 일단 수도인 타슈켄트에서는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우즈베크어를 사용하는 경우보다 많다. 비율상으로 우즈베크어는 74.4%, 러시아어는 14.2%, 기타 언어 4.4%순으로 쓰이고 있다. 2019년 들어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러시아어를 다시 가르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러시아어) 다만, 우즈베키스탄의 독립 이후, 우즈베크어의 사용 비중을 늘리고 정부 문서도 우즈베크어만으로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어서 우즈베키스탄내 러시아인들도 예전과 달리 우즈베크어를 할 줄 아는 경우가 늘고 있다.
타지크어타지크인들이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타지크어를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혹여 관광을 하게 된다면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수해야 한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영어가 통하는 곳은 공항, 호텔, 몇몇 고급 레스토랑 뿐이다. 만일 영어를 쓰면 대뜸 자신의 모어로 '영어 못하니 러시아어나 우즈벡어로 얘기해라' 라는 답만 돌아오거나, 자신을 무시하거나 빈정거리는 투로 받아들여 화를 낼 수도 있다. 단, 청년층에서는 유학 목적으로 영어를 배우는 이도 적지 않다.
한류 열풍으로 한류가 유행하고 있어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타슈켄트에는 한국교육원이 있다. 그리고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심지어는 국정교과서도 영어외에 한국어로도 발행되었다.# 게다가 한국에서 일하다 돌아온 경우라거나 해서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은근히 많은 편이다. 물론 길거리 아무 데서나 한국어로 대뜸 물어봐서 통하는 걸 기대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영어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는 상황인데 한국어 할 줄 아는 사람은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4. 역사




5. 지리


동쪽의 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국경지대를 제외하면 지형은 전반적으로 평평한 편이다. 다만 그 조금 있는 산맥이 높기로 유명한 톈산 산맥의 끝자락이라 히서르 산맥(Hisor tizmasi, Гиссарский хребет)에 위치한 최고봉인 하즈라티 술턴 봉(Hazrati Sulton choʻqqisi, Пик Хазрет-Султан)의 높이는 4,643m에 달한다.
우즈베키스탄 북부에 위치한 아랄해가 과거 소련의 면화 사업으로 인해 강물의 유입이 해마다 줄어들면서 급격히 작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호수 주변의 생태계가 파괴되고 인근의 어민들과 주민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카자흐스탄 정부와 협력하여 아랄해 복구에 심혈를 기울이고 있으나 많은 부분이 복구되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웃 나라가 모두 내륙국인 탓에 리히텐슈타인과 더불어 둘 뿐인 이중내륙국이다. 이중내륙국이란 의미는 해당 국가의 인접 국가들 모두가 또한 내륙국인 경우를 뜻한다. 리히텐슈타인은 인접국인 스위스, 오스트리아 모두가 내륙국이다. 다만 리히텐슈타인이 있는 서유럽은 솅겐조약으로 주변국을 한 나라처럼 돌아다닐 수 있으며 바다와의 거리도 별로 멀지 않기 때문에 우즈벡에 비할 바는 전혀 아닌 수준이다.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동부 지역에 농업 산업을 많이 도입하고 있으며 다른 중앙아시아보다 우즈베키스탄이 더 농지에 적합한 땅들이 많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즈베키스탄인들의 오랜 정주로 인해 중앙아시아에서 오랜 역사와 문화와 전통이 자리 잡게 되었다.[17]

6. 정치


우즈베키스탄의 정치 정보
민주주의지수
2.01
2018년, 세계 156위
부패인식지수
23점
2018년, 세계 153위
언론자유지수
53.52점
2019년, 세계 160위[18]

하원 기준으로 임기 5년으로 결선투표제를 채택하였다. 135개 선거구로 구성되어있다. 상원 기준 84명은 지방의회에서 선출하고, 16명은 대통령 임명직이다.
소련 해체 이후 우즈베크 SSR 제1서기를 역임한 이슬롬 카리모프(Islom Karimov, 1938년 1월 30일 ~ 2016년 9월 2일)로 위시되는 권위주의 독재정권이 유지됐었다.
경찰이 교도소나 수용소에서 수감자들을 고문하거나 학대하는가 하면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하며 억류 기간을 자기 멋대로 연장시킬 수 있다. 또한 경찰은 사람들을 임의적으로 체포하거나 구금하는 데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며, 심지어 이렇게 잡힌 사람들에 대한 재판은 공정하게 치뤄지지 않았다.
거기에 표현의 자유나 언론 집회 및 결사의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되며, 시민 사회 활동에 대한 정부 통제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이슬람 카리모프 정권에서는 소수 종교 단체 회원들에 대한 온갖 종교적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되고 있었고, 일부 국민들에게 이주하는 것 또한 강제로 제한하고 있었다. 정부의 강요에 따른 목화 추수 강제 노동 등과 같은 우즈베키스탄 정부에 의한 심각한 인권탄압이 이슬람 카리모프 시절에는 매우 심하였다. 이슬람 카리모프 시절 미국의 프리덤 하우스는 우즈베키스탄을 북한, 에리트레아, 투르크메니스탄 등과 더불어 세계 최악의 인권탄압국 9개국으로 지정하기도 했었다.
[image]
안다잔 학살 사건의 피해자들.
2005년 안디잔에서 민중시위가 벌어지자 이 작자가 무차별 사격을 명령하면서 최저 5백에서 최대 2500명이 학살당했다. 미국은 당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였는데 결과적으로 당시 미국에 요긴했던 우즈베키스탄 내 미 공군 기지를 폐쇄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 인디잔 학살 이전까지만 해도 카리모프는 러시아의 영향에서 벗어나고자 적극적인 친미 정책을 취했지만, 미국이 국내외의 여론 압박에 민주화를 지지하자 정권의 위협이 된다고 판단해 다시 친러로 돌아섰다. 대한민국도 우즈베키스탄과의 교역량이 러시아 다음의 중요 무역 파트너로 특별히 반대하거나 신경쓰진 않았다.
부정부패는 세계 최악 수준으로 2011년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에선 소말리아북한, 아프가니스탄, 미얀마에 이어서 세계에서 5번째 부패한 나라로 꼽히기도 하였다.
하지만 향년 78세의 나이로 이슬롬 카리모프가 사망하고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Shavkat Mirziyoyev, 1957년 7월 24일)가 당선되어 경제발전을 중요시하고 정치범들을 석방하였으며 민주주의체제에 돌입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미르지요예프 정권의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경찰국가체제를 약화시키고 자유시장경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 # 또한 한국을 포함한 7개국[19]에 무비자 입국을 시행하였다. 예전에 사진을 찍지 못하던 관광지들도 여행객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하였으며, 많은 외국기업들의 투자를 권유하고 자유개방시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성장률 7%를 찍는 등 많은 정치·경제적 선진화가 진행되고 있다.
오늘날까지도 수도 타슈켄트에는 국가에서 공인된 개신교 한인교회가 있긴 하지만 포교행위가 여전히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다만 직업이 있다면 언제든 거주지를 이주할 수 있게 되어 미르지요예프 정권에서 규제가 완화된 부분도 있다.

7. 분리주의


소련 치하의 행정구역체계를 답습하였기 때문에 카라칼팍스탄(카라칼파크어: Qaraqalpaqstan, 우즈베크어: Qoraqalpogʻiston) 자치공화국이 존재한다. 영토는 아랄해를 주축으로 우즈베키스탄 영토의 40% 가까이나 차지하지만 인구는 고작 170만 수준이라 독립을 원하면서도 우즈베키스탄에게 억눌리고 있다. 예전엔 이곳의 최고 지도자가 타슈켄트로 소환되어 행불되고 허수아비 지도자가 새롭게 앉혀진 적이 있다.
우즈베키스탄 남서부 사마르칸트, 부하라, 카슈카다리오, 수르한다리오에는 타지크인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한때 독립운동을 벌인 적도 있다.[20] 반면 후잔드를 중심으로 한 타지키스탄 북부에는 우즈베크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21] 후잔드 거주 우즈베크인들이 타지키스탄에서 분리해 우즈베키스탄으로 병합되겠다고 시위를 일으켰다가 폭동으로 발전, 타지키스탄 정부군에 의해 학살이 발생하기도 했다. 국력이 워낙 차이가 나서 타지키스탄이 영토분쟁을 일으키고 있지는 못하지만 명백히 우즈베키스탄의 영토이자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장 악명높은 독재자인 이슬롬 카리모프의 고향인 사마르칸트도 자신들 국가의 영토라 주장하고 있다.

8. 경제


세계적인 천연가스 매장국이자 산유국이다. 더불어서, 면화 생산도 제정 러시아와 소련 치하에서 엄청나게 밀어준 덕에 세계적인 나라이며, 그 밖에 망간, 몰리브데넘, 아연, 구리 같은 광물자원들도 엄청나며, 게다가 아직 개발되지 않은 곳도 많다. 덕분에 수출량에 자원이 비중을 많이 차지하며 현재는 경제성장률 7%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실업률도 매우 낮다.
포도멜론 같은 농작물 및 과일들도 많이 재배되는 편이며 농업도 발달해 물산이 풍부하다. 단, 의 자급자족이 되지 않아 옆나라 카자흐스탄에서 많이 수입해오고 있다.
경제적으로 볼때 중앙아시아에서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유지한것으로 나오지만 이건 수치상으로만 그렇고 아직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하지는 못하였다. 정부가 바뀌고 나서야 개방 정책으로 고도의 경제 성장률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많은 가스와 자원으로 경제성장을 한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보다는 어느 정도 국민소득은 아직 낮은 편인데다가 독재정치로 인한 부정부패로 막대한 돈이 되는 분야를 일부가 독점하던 때가 있어서 빈부격차에 시달렸었다. 정부에서는 국민들의 불만을 억제하기 위해 식자재 가격을 상당히 낮은 가격으로 유지하고 있다. 전반적인 물가 또한 대한민국의 80년대 초반 수준으로 싸다.
당연히 이러다보니 전반적인 국민 소득이 아직은 낮은 편이다. 하지만 높은 경제성장률로 앞으로의 국민소득이 올라가는 것을 기대해볼만하다. 어느 국가나 마찬가지로 농촌으로 갈수록 소득은 낮아지며 당연히 도시 노동자들 역시 월급은 농촌보다 높은 편이다.[22] 하지만 공업이 별로 발달하지 못 한데다 이중내륙국이라는 점까지 겹쳐서 공산품은 대부분 수입하는데, 당연히 공산품 가격은 이들 소득에 비해 턱없이 비싼 편이다. 공산품 가격은 일반인들의 소득 수준을 고려하면 가히 살인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수입품인 프링글스 한 통과 국산에서 생산되는 감자 10kg은 가격이 비슷한 편이다.
2016년까지는 우즈베키스탄 사회는 높은 실업률과 그리고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었다. 마치 80년도 대한민국에서 중동으로 근무하며 가족들에게 돈을 송금해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한 것 처럼 해외에서 직장을 구하고 일을 하며 그 월급을 가족들에게 송금하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남성들이 우즈베키스탄에서 가까운 해외(주로 러시아카자흐스탄)에서 근무한다. 그들이 보내오는 돈이 우즈베키스탄 현지 시장 재활성화에 큰 역할을 해서 현재 우즈베키스탄 경제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러시아중앙은행(Central Bank of Russia)의 2013년 3월 보고서에 의하면, 우즈베키스탄 노동 이주자들이 고국으로 송금하는 돈은 56.7억 달러에 달하는데 이는 우즈베키스탄 경제의 16.3%를 차지한다.[23]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일자리를 되찾기 위해 독립국가연합 국가 노동자를 내보내라는 주장도 많다. 이러한 주장과 상황과는 다르게, 독립국가연합 노동자를 포함해, 우즈베키스탄 노동자들은 비자 없이 러시아 입국이 가능하다. 러시아 인구 문제가 이를 가능케 했다. 이러한 상황들이 맞아 떨어져서 우즈베키스탄 노동자가 러시아에서 주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현재 우즈베키스탄 인구 중 14세 미만 아동은 1/4을 넘는 수준이란 건데, 이러한 높은 출생률로 인해 젊은 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지고, 매년 생겨나는 취업연령층으로 인해 정부는 일자리 창출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문제가 너무 심해지다보니 최근에는 경공업을 육성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품질과 가격은 그럭저럭 괜찮은 제품들인데 독립국가연합 국가 아니랄까봐 포장이... 심지어는 같은 제품인데 포장한 것보다 차라리 포장 안 되어 있는 제품의 질이 더 뛰어난 경우도 있다.
2001년 북한의 경수로 사업 당시 북한에 가서 많이 일하면서 수적으로는 중국 노동자를 압도할 정도였으며 대한민국에서도 우즈베키스탄 남성 중 3D 분야 노동자들이 2001년부터 꽤 생겼다.
윗 나라 카자흐스탄이 가스 등의 자원으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것이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에게는 꽤 충격이라는 점은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24]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카자흐스탄 가는 일은 매우 쉬우며, 실제 친지방문 등의 목적으로 카자흐스탄에 다녀오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그런데 소련 시절까지만 해도 아주 별 볼 일 없던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기들의 도시들보다 못했던 알마티와 누르술탄이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고 꽤 충격을 받우 것. '우리나라보다 못한 나라가 우리나라보다 더 발전해버렸다.'라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럴일은 없지만 당장 중국의 1인당 소득이 한국을 추월했다고 생각해보자.별볼일 없던 중국 경제처럼 우즈베키스탄도 소련시절엔 카자흐스탄이 별볼일 없던 국가 느낌인 것이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우즈베키스탄은 사마르칸트, 타슈켄트, 부하라, 히바실크로드의 부유하고 학자, 예술가들이 넘쳐났던 유라시아 교역의 중심 도시들이 몰려 있었던 중앙아시아 최고의 문화와 역사가 있는 국가였던 반면 현대 카자흐스탄 지방은 근대 이전 카자크인들이 목축을 하는 지역이였으며 우즈베키스탄에 비해서는 농지도 적고 도시도 적었다.
정부에서도 여기에서 오는 불만을 인지하고 있는 듯 하였고 최근 개방 정책으로 많이 나아지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경우 인천 송도에 무역대표부를 건설해 우즈베키스탄인들이 직업을 가지면서의 환경이나 인권 등도 개선시키고 있다. 일단 새로운 대통령이 독재자들이 많은 중앙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우즈베키스탄의 대통령은 독재자가 아니라는 평도 있으니까 말이다. 최근 국민들의 경제에 대한 불만이 단순히 못 사는 데에서 오는 불만이 아니라 이웃 카자흐스탄의 발전으로 인한 불만임을 고려하면 이 불만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정권의 안정과 직결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은 불편은 참아도 불평등은 못 참는 동물이다.
하지만 이것도 이슬롬 카리모프의 독재시절 이야기이며 우즈베키스탄의 희망인 샤브카트 대통령은 최근(2018년) 우즈베키스탄은 경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몇년사이에 목화 강제노동과 인권탄압도 사라져 국민들이 편하게 살고 있고 자유로운 분위기에 소득도 늘어나고 있다.

8.1. 카리모프 집권기 강제노역


'''면화 산업에 아동 등의 노동력 투입은 중단돼야 하며 정치범에 대한 박해를 깊이 우려한다''' - 반기문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소련 치하에서부터 목화농장을 직영하면서 매년 가을 수확철에 중·고교 학생들을 동원해 축사 같은 캠프에서 합숙시키며 석 달 가까이 목화 수확 할당량을 채우도록 강제노역을 시키고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은 2013년 기준 세계 목화 6대 생산국이자 5대 수출국으로 이 나라에서 목화는 '''하얀 황금'''으로 불린다. 그 수익은 연간 10억 달러에 달해 말 그대로 국부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걸 정당한 급료를 주어서 수확시킨 것이 아니라 군대에서 군인들 부려먹듯이 국민들을 부려먹혔다는 것 중앙 정부가 지방 정부와 농민들에게 할당량을 배정하고 지방 정부는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어린이들까지 동원한다. 주민들의 하루 할당량은 40~120kg으로 보수는 1kg당 150~200숨인데 100숨이 우리나라 돈으로 50원 정도니 100kg의 목화를 따도 고작 5000원을 받을 뿐이고 그나마도 이런 저런 공제로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목화강제노동이 있었을때는 해마다 사고가 터져나갔다. 2013년에만 어린이부터 60대 노인까지 11명이 숨졌고 그나마도 정부의 강제적이고 폐쇄적인 운영 탓에 피해자 가족들은 피해보상은 커녕 죽은 이유조차 제대로 알기 어렵다. 심지어 살인도 곧잘 일어난다. 대학생 코짐 오모노브(당시 22세)와 사만다 누마토브(당시 23세)는 2013년 9월16일 아크람 사다토비치 우로브(24)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했는데, 자기 할당량은 다 했다며 남은 일을 서로 미루다가 다툰 것이 문제였다.
강제노동을 반대하는 국제 시민단체 코튼캠페인, 워크프리는 우즈벡에서 해마다 100만 명 이상의 성인과 아동이 경작기, 수확기에 강제 노동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이렇게 생산된 목화는 정부가 독점 매입해 국가 소유의 무역회사를 통해 수출하며 사적으로 목화를 거래하다 걸리면 처벌당하고 목화밭에 다른 작물을 심을 수도 없다. 이렇게 벌어들인 수익은 정부 최고위 관료만 쓸 수 있는 '''특별 예산 기금'''으로 들어간다. 물론 그 돈들은 부패한 정치인들과 일부 부패한 기업인들의 재산이 되었을 것이다.
샤브카트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 목화강제노동은 멈춰졌고 목화수확을 하는 사람들에게 합당한 급료를 주라고 명하였다. 그래서 지금 우즈베크인에게 목화 강제노동하냐고 물어보면 언제적 이야기냐 몇년전 얘기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면 우즈베키스탄에서 목화 강제 노동이 이루어지는 곳은 도시들이 모여있는 동쪽보다는 농촌이 많은 서쪽의 지역들이며 목화 강제 노동에 투입되는 사람들도 농촌의 정해진 지역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예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8.2. 대우차의 마지막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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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라본에서 생산하는 젠트라(넥시아), 라세티(젠트라), 마티즈 (참고로 R2는 마티즈와는 별개의 차량으로 판매하지만 위 사진엔 없다.)[25]
공교롭게도 대우그룹과 관계가 깊다. 93년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이 이슬롬 카리모프 대통령과 친분을 쌓으면서 자동차 공장 설립인가를 받아 95년부터 2002년, 약 7년 동안 대우차의 옛 플랫폼[26]을 생산, 판매하는 조건으로 '''우즈-대우(UZ-DAEWOO)'''를 출범시키며 공장 안정화가 된 96년부터 19년 뒤인 지금까지 '''부동의 우즈베키스탄 자동차 판매율 1위'''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아직까지도 날개돋힌 듯 팔려나가고 있다.[27]
그러나 99년, 대우차가 파산선언과 함께 02년을 부로 GM에게 인수가 되어 재계약권은 GM에게 돌아가는데 생산성이 없다는 이유로 우즈-대우의 워크아웃을 포기해버린다. 그러자 우즈베키스탄 정부에서는 '''갈 길 잃은 일부 옛날 대우차 고참 연구원들을 고용해 버리고 우즈-대우 회사와 공장 자체를 구입해버려''' GM을 크게 놀라게 했다.
이에 현지에서의 대우의 느낌을 실감한 GM은 우즈-대우의 약점인 부품 CKD 조달 및 설계 라이센스를 꼬투리 잡아 파트너쉽 관계로 전환하고 일부 생산 차종의 하청 생산을 맡겼다.[28]
아무튼 우즈-대우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국민차'''의 지위까지 떠올라 엄청난 인기를 아직까지 자랑하고 있으며 현대와 벤츠, BMW와 일본차를 제치고 2004~5년도 '''러시아 수입차 시장 판매량 1위'''라는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2006년부터 러시아 수출차 판매량 게임에서는 현대차의 대형 물량공세에 밀려버려 현재는 10위권까지 추락해버리고 만다. 안습.
현재는 우즈-대우라는 사명대신 라본(RAVON)[29]으로 변경하였다. 현재 라본에서 판매하는 차량은 젠트라(넥시아), 라세티(젠트라), , 스파크(R2), 코발트(R4)다.
최근 포스코대우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대우''' 브랜드를 사용한 자동차 공장 건설ᆞ판매 프로젝트를 국가와 함께 진행하자, 대우 브랜드의 확산으로 CIS 및 중동 지역에서 쉐보레 브랜드로 판매되는 GM차들의 판매가 저하될 것이라고 우려해 GM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포스코대우의 대우차 프로젝트에 대한 방해공작을 펼치고 있으며, 이를 빌미로 2015년에는 아예 2008년부터 러시아 일부지역 수출 시 사용하던 라본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라고 한다. 직접적으로 말하면 '''GM이 그동안 숨겨오던 대우 브랜드 죽이기에 대한 노골적인 본색을 드러냈다는 것.''' 우즈베키스탄 및 동구권 국가들 내부에서도 라본 브랜드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이나 격렬한 반대가 많음에도 기어이 바꾸어 버렸으니...
대한민국 기업들이 대단히 인식이 좋아서 현재는 현대차가 우즈-대우보다 많이 팔리고 있다는 인식이 있는데, 우즈베키스탄 현지에서는 국영기업이라는 프리미엄 덕에 여전히 우즈대우의 판매량이 절대다수이다. 이때문에 중앙아시아 수출 및 현지 점유율 확대를 위해 현대자동차가 2020년도에 현지 공장을 건설한다는 기획을 추진중에 있다.
현재 라본 디비전의 모회사인 GM 우즈베키스탄은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GM측 지분 전량 매수로 인해 완전히 국영기업화 되었다. 이름만 GM인 셈. 그래도 우즈베키스탄 정부에서는 여전히 GM쪽 차량을 선호해서, 추가 계약을 통해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30], '''한국에서 생산도 안하는''' 쉐보레 이쿼녹스를 생산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러시아 수출용 쉐보레 트랙스(현지명 트랙커)를 2019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했다.

9. 군사




10. 문화


중앙아시아는 고대부터 여러 다양한 집단이 거쳐간 곳이다. 발견되는 가장 오래된 문명인 인도유럽계의 아파나시에보, 안드로노보 문화 등이 있으며, 토하라인, 스키타이인, 마사게타이[31] 등의 코카소이드 뿐만 아니라 코카소스 투라니드인인 에프탈족과 튀르크족과 몽골족, 훈족 등이 오랫동안 넓은 지역에 걸쳐 살아왔다. 또한 그리스 등지에서 전해진 음식인 "오쉬"를 즐겨먹으며 결혼식 때 그리스어인 "OPA"를 외치는 등 그리스 문화의 흔적 또한 남아있다.
고대 인도 대학 문화의 영향으로 중세 우즈베키스탄의 여러 도시들은 우수한 대학들이 운영되었다. 특히 사마르칸트와 부하라가 유명하였는데, 이 지역에서는 고대부터 무역에서 정보 교환을 목적으로 일반인 어린이들도 다섯살 때부터 글을 읽고 쓰는 법을 교육 받았다 한다. 우즈베키스탄의 여러 도시들은 이슬람화 이후에도 학문의 중심지로 유명하였는데, 문학이나 이슬람 신학 외에도 천문학과 의학, 수학 등이 발달하였다. 그 영향으로 대도시에는 상수도 시스템과 초보적인 수준의 하수 시스템이 도입되었으며, 시내의 도로는 석재로 포장되었다 한다.
오랫동안 페르시아 문화권에 속해 있으면서,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영향을 서로 주고 받은 편이다. 현재까지도 사마르칸트부하라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도시에는 타지크어 사용자가 다수일 정도로 문화의 큰 부분에 타지크(순니파 페르시아인)의 영향이 남아있다. 언어 또한 같은 튀르크계지만 정착이 늦었던 여타 중앙아시아 민족들에 비해 우즈베크어는 어휘와 문법에서 페르시아어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들의 종교인 이슬람 또한 아랍에서 직접 온 게 아니라 타지크인들을 통해 전해졌다. 한편 튀르크의 유목과 농업의 문화 또한 가지고 있으며 원래부터 종교에 관대한 튀르크 우즈베크인들로서 이슬람 종교와 정교회 등 여러 종교들이 존재한다. 구소련 국가들 중 가장 많은 소수 민족들이 사는 나라로 130개가 넘는 민족이 존재한다.[32] 그만큼 문화도 다양하나 대체로 우즈베크/타지크인의 전통 문화와 러시아인의 정교회 문화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우즈벡인들의 전통 문화는 지역별로는 타슈켄트부터 안디잔까지의 동부권, 사마르칸트, 부하라를 중심으로 한 중부권, 히바를 중심으로 한 서부권으로 갈린다. 이는 과거 우즈베키스탄의 중앙아시아 지역에 있었던 3개 칸국과도 일치하는 편.
농촌에서는 아직도 마할라라는 집단을 이루며 거주하는데 차(초이라고 부른다.)를 즐겨마신다. 매우 다양한 차가 존재하며 가족들과 친국들끼리 담소를 나누면서 차를 마시는 문화가 있다. 한때 공산주의국가여서 전혀 어울리지 않겠지만 굉장히 자본주의적이다. 왜냐하면 사마르칸트는 실크로드 무역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카자흐스탄 속담에는 "우즈벡 사람들은 달나라에 가서도 장사한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는 티무르나 15세기에 활동하던 아프가니스탄 출신[33]의 문학가 알리셰르 나바이(Ali-sher Navoiy)가 국부로 추앙받는다. 알리셰르 나바이는 영어에서 셰익스피어, 독일어에서 괴테 같은 존재라고 보면 된다. 당시 거의 유일하자 최초로 차가타이어(우즈베크어의 전신)로 문학 작품들을 집필해서 우즈베크어 형성 및 발전에 엄청난 공을 세웠다.
이 나라의 예절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문을 사이에 두고 악수하지 않는다. 이는 절교를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실내에서 모자를 쓰거나 신발을 신는다. 머리고기는 연장자에게 준다고 한다.
한편, 관료주의 사회였던 소련의 영향으로 굉장히 관료주의적이어서 어떤 일을 할 때마다 서류가 너무 많이 필요하며 시간도 오래 걸린다.
초등학교가 4년, 중학교가 5년, 고등학교가 2년이다. 따라서 우즈베키스탄에는 고3이 없고 고2가 곧 고등학교 졸업반이 된다. 이 나라의 대학 1학년생의 나이는 한국에서 고3에 해당한다.
우즈베키스탄의 대중가요들.
2017년에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가치를 왜곡하고 안정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34개의 컴퓨터 게임 금지 목록을 발표했다.#

10.1. 식문화




10.2. 종교


대부분의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무슬림이다. 정교회 국가 러시아 제국에 이어 무신론만을 인정한 소련의 소속이였던 나라여서 세속 가치가 뿌리내린 데다 모든 종교에 관대한 유목민족 튀르크인이다 보니 전반적으로 우리가 상상하는 이슬람 국가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파키스탄, 브루나이, 아프가니스탄 등) 보다는 매우 느슨하게 율법을 지키는 편. 술을 친구들과 마시거나 같이 담배를 피거나 돼지고기를 즐기는 등 자유롭다.[34] 공산주의 붕괴 이후에도 이슬롬 카리모프가 적극적으로 세속주의 정치를 펼치며 세속가치를 주입한 것도 한몫 하였다.[35]
그래도 중앙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는 비교적 엄격하게 믿는 편이다. 튀르크계 국가 치고는 이 우즈벡이 이슬람을 좀 더 엄격히 믿으며 히잡이나 니캅 같은 물건도 가끔 나온다. 왜냐하면 세속적이라는 중앙아시아에서도 예외적으로 '''페르가나 계곡''' 지역은 와하브파가 득세하고 있는데 우즈베키스탄 동부, 키르기스스탄 남부 일부가 해당한다.[36] 물론 카자흐인, 키르기스인, 터키인 등은 그 딴 거 없다. 그리고 투르크이란백인이 섞인 아제르바이잔인은 아예 시아파를 믿는다. 이슬람 명절 휴일을 몇일로 할지는 그 즈음 되어서 정부가 공식 발표한다. 그래서 달력에는 표시가 되어 있지 않다.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그동안 제한되었던 개혁정책을 펼치면서 모스크의 아잔허용 등 일부 정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한편으로는 이슬람 테러단체 관련해서도 민감한 편인데, IS에 가담한 우즈베크인들이 500명에 달하고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운동이 IS에 복속을 선언하면서 우즈벡 정부도 테러단체 가담 시에 시민권 박탈을 추진키로 결정했다. 다만 단일 시민권자는 국적 박탈이 국제법상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어떻게 할지는 정해지지 않은 상태. 출처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이들 테러 단체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현재 이들 이슬람 테러조직의 본거지는 우즈베키스탄 밖 아프가니스탄에 있어서 소탕이 힘든 상황. 아프가니스탄에도 우즈베크인이 300만 명 정도 거주하고 있으며, 이는 전체 우즈베크인 인구의 10% 가까이 되는 큰 수이다. 일단 이슬람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이슬람 테러단체들은 우즈베키스탄에서 거주하거나 활동하는 것이 매우 힘들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등의 외국으로 간다. 특히 우즈베키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이슬람 과격 단체들은 꽤 골치아픈 일이기 때문에 우즈베키스탄 정부 자체가 군대 등으로 미국과 긴밀이 협의하며 아프가니스탄을 억제시키고 있고 중앙아시아에서의 이슬람 근본주의 확산을 막는데 많은 기여를 하는 중이다. 또한 테러 목적의 외국 방문은 FBI 등과 긴밀한 연락을 주고 받는데 해외에서 우즈베키스탄인이 FBI에 잡히면 백이면 백 우즈베키스탄과 FBI의 공조가 있었다고 보면 된다.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러시아인들은 주로 러시아 정교회를 믿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이슬람을 믿는 데다수 국민들을 달래기 위해 다른 종교가 눈에 띄는 활동을 하는 걸 의도적으로 막고 있어 종교 행사는 상당히 조용히 치르는 편. 특히, 정교회를 넘어 타 종교는 자국민에 대한 포교행위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이슬람이 강세인데도 불구하고 주말은 토요일일요일이다. 이 동네에서 금요일은 그냥 평일인 셈. 대신 크리스마스가 평일이며 한 해 마지막 공휴일은 12월 8일 제헌절이다.

10.3. 스포츠


열악한 경제 사정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스포츠에서는 꾸준히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 2016년 올림픽에서는 종합순위 21위를 기록했다.
권투가 매우 강하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권투 동메달 1개를 받았고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금 1개, 동 2개를 받았으며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동메달 2개(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메달 0개), 2012 런던 올림픽때만 해도 동메달 1개를 받았다가 2016 리우 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를 받으며 권투에서 가장 메달을 많이 받은 나라가 되었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 2016 리우 올림픽까지 올림픽에 7번이나 출전한 '''41세'''의 기계체조 선수 옥사나 추소비티나가 이 나라 출신이다. 중간에 아들의 백혈병 치료비 때문에 독일로 귀화해서 독일 국가대표로 활동했다가 다시 자국으로 귀화했다. 심지어 추소비티나는 2020 도쿄 올림픽까지 출전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보고싶다고.
동계 올림픽에서는 첫 출전이었던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프리스타일 스키에서 리나 체르야조바가 금메달을 획득한 것이 역대 동계 올림픽에서의 유일한 메달이다. 그리고 올림픽 메달리스트는 아니지만 피겨 스케이팅에서도 타티아나 말리니나라는 선수를 배출한 적 있다. 1999 강원 동계 아시안 게임 여자 싱글 금메달리스트이자 한국의 김연아, 카자흐스탄의 데니스 텐, 북한의 김주식-렴대옥과 더불어 단 넷 뿐인 4대륙 선수권대회 우승자이기도 하다.

10.3.1. 축구


축구 열기가 뜨거운 나라로 손꼽힌다. 국가대표팀은 아시아 대륙에서 상위권에 드는 전력으로 평가받는다. 우즈베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고.
프로리그에서는 석유자본 및 자원 부국답게 히바우두라는 스타 선수라든지 스콜라리라는 스타 감독이라든지 이런 몸값 높은 네임드들을 영입한 FC 분요드코르가 아시안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노렸으나, 2009년에 파리아스가 이끌던 포항 스틸러스에게 덜미를 잡혀 버렸고, 2010년 대회에선 사우디아라비아 알 힐랄에게 일찌감치 덜미를 잡혀서 금세 퇴장당했다. 2011년 대회에서도 이란 세파한에게 16강에서 덜미를 잡혀 역시나 금세 퇴장당했다.
하지만 2012년 대회에선 확 달라져서 포항 스틸러스를 상대로 2승을 거두며 포항을 16강 탈락시켰고 16강전에서도 성남 일화를 1-0으로 탈락시키고 8강에 오르면서 한 시즌 대회에서 K리그 팀을 2팀이나 탈락시키면서 K리그 킬러가 되나 했지만 4강에선 우승팀 울산 현대에게 완패하면서 또 4강을 넘지 못했다. 분요드코르는 2013년 대회에선 16강에서 타이 부리람 유나이티드에게 덜미를 잡혀 또 일찌감치 탈락해버렸다.그렇긴 해도 2014년에도 16강 진출을 해냈기에 연이어 16강은 가고 있다. 다만, 오로지 분요드코르만이 우즈베키스탄 리그 팀에서 홀로 아시안 클럽대회에서 활약하고 있는 수준이다.
2011년 FIFA U-17 월드컵 대회에서 8강까지 올라왔다. 뉴질랜드에게 4-1로 대패했지만, 체코미국을 2-1로 이기고 조 1위로 16강에 올라와 6월 30일에 벌어진 16강전에서 오스트레일리아를 4-0으로 뭉개며 건국 역사상 첫 청소년 월드컵 8강에 진출했다. 2013년 FIFA U-20 월드컵에서도 8강까지 올라갔다. 거기에 아시아 팀들이 줄초상을 치룬 2015년 FIFA U-20 월드컵에서도 아시아팀에서 유일하게 토너먼트로 올라가 또 8강까지 올라갔다. 이렇다 보니 성인 대표팀의 실력 또한 이제는 무시못할 수준인지라 2022년 혹은 2026년 월드컵 본선에는 진출할 듯?
다만 선수들의 비매너 논란이 가끔 언급되곤 한다. 아시안컵 결승전의 아쉬움에 취해 있던 다음 날 열린 U-23 킹스컵 한국과의 경기에서 축구장에서 격투기를 했다. 영상.
K리그의 FC 서울성남 FC를 거쳐 2015년 현재 울산 현대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세르베르 제파로프가 분요드코르 출신이며 수원 삼성 블루윙즈 소속이었다가 2012년 아랍 에미리트 구단으로 이적한 알렉산데르 게인리흐도 분요드코르의 라이벌인 파흐타코르 출신이다.
우즈벡 국가대표 선수인 이크롬지온 알리바예프K리그1 FC 서울에서 뛰고 있고, 루스탐 아슐마토프K리그2 광주 FC에서 뛰고 있다.
비슷하게 J리그에서도 우즈베키스탄 국대 출신이 꽤 들어가는 편이다. 주빌로 이와타의 포질 무사에프, 레노파 야마구치의 도스톤벡 투르스노프, 도쿠시마 보르티스의 자비킬로 우린보에프 등이 2019년 기준으로 뛰고 있다.

11. '장모님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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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다로 알려진 구잘 투르수노바. 2011년에 한국으로 귀화했다.
우즈베키스탄은 사람들이 동서양이 조화된 느낌도 있기 때문에 꽤 넷상에서 미인의 나라 중에 한 곳으로 알려지기도 한다. 한가인이 밭을 갈고, 김태희가 소를 몬다고 하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 정도로 [37] 인구 전체의 3.7%밖에 없는 러시아인들이 아니더라도 우즈베키스탄인에서는 미인이 많다는 인식이 있는데,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반쯤 농담으로 '장모님의 나라'라고 부른다.
또한 우즈베키스탄은 다인종 기반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38] 우즈베크인 자체는 코카서스 투라니드의 투르크인들이 동서를 오가며 교류로 형성되었으며 중앙아시아에 옛부터 존재했던 투르크인 자체가 투라니드(Turanid race)로 이 코카소이드 인종은 서구 유럽보다 동양적 특징이 보이는 서구 인종이다.[39] [40] 우즈베키스탄 전체 인구의 80%가 우즈베크인인데,[41] 한국인들이 모두 생김새가 각자 다른 것처럼 우즈베크인들도 다 다르게 생겼다. 보통 한국에서 "혼혈"하면 떠올리는 유럽계 백인과의 혼혈은 드물다 (러시아인 및 기타 슬라브인들은 20세기 이후에나 이주해왔고, 이들과는 문화적 차이로 인해 혼혈은 상당히 적다). 다만 이란계인 타지크인과는 문화적으로 상당히 가깝기에 이들과의 통혼은 과거부터 현재까지도 많이 있어왔다.[42] 물론 개인차가 크지만 대체로 서구적인 느낌과 동양적인 느낌이 공존한다.
한국 사람들이 대한민국보다 경제 수준이 낮은 국가들을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즈벡은 이란이나 사우디 아라비아 정도는 아니지만 국민 대부분이 독실한 무슬림이기때문에 대부분의 여성들이 처녀이다. 또한 결혼 전에는 처녀를 유지하는 것을 매우 중시하는 문화가 있다. 우즈벡에서는 사실 결혼 전 관계란 거의 불가능하며 연애를 하더라도 손이나 포옹 정도만 허용되고 연애를 하면 무슬림들 사이에서 비처녀로 소문이 나고 그러기 때문에 부모들이 정해주는 맞선 결혼이 대부분이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결혼 전에는 거의 손만 잡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우즈벡 남자들도 그걸 당연히 여긴다. 한국인과 결혼해도 돼지 고기와 술을 하지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전체인구의 3.7%인 러시아인들도 많이 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러시아인은 무슬림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들은 우즈베키스탄인과 고려인들과는 다르게 개방적이며 유럽식 자유 연애를 한다. 그래서 사실 술집 등을 다니는 우즈벡 여성들은 머리가 노랗고 눈이 파란 러시아인들이 대부분이며 이들은 우즈벡어는 잘 사용하지 못 한다.[43] 우즈베키스탄 무슬림 여성의 경우에는 우즈벡어와 러시아어 둘다 사용한다.[44] 그래서 사실 한국인들이 우즈벡에 가서 우즈벡 여성과의 사랑을 꿈꾸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결혼 전에는 손도 안 잡는 무슬림들이라는 걸 알고 경악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우즈베키스탄 여자라고 말 잘 듣고 남편한테 순종(?)하는 것도 아니다. 우즈베키스탄도 엄연한 소련을 구성하던 국가였음을 고려해야 한다. 정상적인 공산국가에서는 남녀평등을 매우 크게 강조한다. 하지만 그건 소련하에있을때 이야기기도 하다. 독립하고 나서 점점 더 우즈벡 사회는 무슬림 사회로 심화되면서 여자에 대한 무슬림 율법을 강요하게 되기도 하였다.
미수다에서 유독 우즈베키스탄 출신 미녀들이 많이 알려져서 그 영향 때문도 약간 있을 것이다. 우즈베키스탄 말고도 중앙아시아 쪽 지역 자체가 미인이 많다는 이미지다. 왜냐면 서구적으로 생긴 사람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아시아와 비교하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오히려 동아시아의 한국, 중국, 일본의 여성들이 미녀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실례를 듣고 보면 "기회의 땅"이라는 막연한 꿈과 환상을 갖고 출장갔다가 최근엔 미녀들은 죄다 한국에 가서 여기엔 없다는 우스갯소리를 듣고 온 사람도 있다. 만약 피부가 완전히 하얀 유럽인들만 있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안된다. 물론 어느 나라나 그렇듯이 늘씬하고 이쁜 사람들도 많다. 백인 유럽 여자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적은 러시아인들을 보고 실망한다. 하지만 우즈베인 여자들도 상당히 이쁜 여자들이 많다. 사람취향문제이기도 하다. 문제는 러시아인은 자유연애가 가능하니까 연애가 가능하겠지만 우즈베키스탄 여성들과의 교제는 결혼을 전제로 하는 것이 매우 많고 부모의 인사도 필요한 경우가 잇다.
사실 '''한국에서 "우즈벡 미녀"라고 나도는 사진들 보면 대부분이 유럽에 사는 백인들의 사진들이며 이 사진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아닌 것들과 전혀 우즈베키스탄과 관련없는 사람들인 것도 매우 많다. 이는 쉽게 말해서 한국 남자들이 생각하는 우즈베크 미녀는 우즈벡인이 아니라 '''우즈벡에 사는 러시아인 즉 우즈베키스탄에서 사는 유럽인들이다.''' 많은 남자들이 우즈베키스탄을 유럽과 같은 유럽 백인들이 사는 국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우즈베키스탄에 와서는 우즈베키스탄은 유럽인들이 사는 곳이 아닌 것을 깨닫는다. 이는 우즈베키스탄 뿐 아니라 카자흐스탄 등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인종적으로는 코카소이드의 특징이 꽤 보이지만 현재 서유럽의 독일 프랑스 동유럽의 러시아 등의 유럽인들과 같은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사는 국가는 절대로 아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러시아계 백인이 아닌 우즈벡인, 특히 몽골로이드 형질이 강한 키르기스계나 타타르계 우즈벡인을 보고 '''고려인'''으로 지레짐작하는 한국인들이 상당히 많다. 키르기스와 타타르는 고려인과 거의 비슷하게 생긴 사람도 많다.[45]
'''우즈베키스탄 인구에서 이들이 좋아하는 유럽계 백인의 비율은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독일인 모두 합쳐 10%도 되지 않는다.''' 물론 우즈베키스탄은 일부 한국 남성들이 상상하는것처럼 러시아계 등 유럽계 백인들이 다수가 아니라 '''우즈베크인이 전 인구의 다수를 (공식 수치상으로 약 80%, 실제로는 약 60%)를 차지한다.''' 서구적이긴 하지만 동양적인 느낌이 있고 동양인처럼 생겨도 서구적인 외모의 특징을 보인다.[46] 오히려 인접국인 카자흐스탄에 유럽계 민족들이 많이 산다.[47]
실제로 유독 우즈베키스탄에 환상을 가진 한국을 제외하고 다른 나라에서는 우즈베키스탄보다는 민족 구성이 더 복잡한 카자흐스탄에 미녀가 많다는 인식이 많은 편이다. 왜냐하면 카자흐스탄의 경우에는 북쪽에 러시아와 매우 인접해 있고 러시아의 카잔 등과 같은 도시에서 카자흐스탄에 이주해 사는 러시아인들도 많다. 카자흐스탄의 경우에는 우즈베키스탄보다 러시아인의 인구가 훨씬 많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모델이었던 루슬라나 코슈노바도 카자흐스탄 출신. 유럽 백인을 좋아하는 남자들은 그냥 러시아, 동유럽, 서유럽에서 사는 백인 여성들을 좋아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더 첨부하자면 한국 인터넷에서 우즈베키스탄 미녀 사진이라면서 나도는 것들 중 상당수가 '''러시아 여성와 우크라이나 여성'''들의 사진이다. 심지어 핀란드라던가 리투아니아 여성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놓고 우즈베키스탄 여성의 사진이라고 우기는 경우도 있다.[48]
'''중앙아시아는 유럽이 아니라 중앙아시아의 세계'''이다. 이 지역이 구소련 시절이 있었고 사람들 이름도 러시아 이름처럼 끝에 ~프와 ~바가 있어서 자꾸 러시아인으로 오해하는데 이름과 성 자체도 러시아와는 다르며 이름과 성씨는 이슬람 종교나 투르크에 관련된 이름이 많고 원래 이 지역 사람들의 조상은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아리안, 서돌궐, 카라한 왕조, 차가타이 한국, 티무르 제국 등의 중앙아시아인들이다. 우즈베키스탄 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나라에든 다 미녀는 존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우즈베키스탄 미녀(우즈베키스탄 아니어도 다른 주변 국가들도 포함)하면 러시아계가 아닌 우즈베크인들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동양적인 외모와 서양적인 외모가 있기 때문에 이란, 그리스, 터키 여성처럼 아름다운 미인으로 보기도 한다. 다만 대중들 인식이라던가 알려진 경우가 하필이면 동유럽계 사람들로 잘못 알려지거나 완전 유럽사람들로 알려지는 둥 그러한 현실을 확대해석 했기 때문에 "우즈베키스탄 미인 = 동유럽계 미인"으로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언급했듯이 미녀는 어디에든 다 있다. 그러므로 그냥 "그런 소문도 있었구나"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12. 교통


소련 시절의 영향으로 주요 도시 간에는 철도가 잘 깔려 있고 활발하게 운행된다. 애초에 바다가 없는 내륙국인 관계로 철도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러시아카자흐스탄으로 가는 국제열차도 자주 운행한다. 스페인의 Renfe S-130을 들여와 수도인 타슈켄트~사마르칸트간 고속선을 거쳐 부하라, 카르시와 같은 도시로 운행[49]되는 아프로시욥이라는 고속철도도 있다.
이외에도 시외 교통은 고속버스 및 장거리 택시도 활발히 운행되고 있다. 3명 이상 가면 장거리 택시 비용이나 고속버스 비용이나 비슷하다. 횟수가 적긴 하지만 우즈베키스탄항공에 의해 국내선도 운항되고 있다.
다만, 동쪽 지역(페르가나, 안디잔, 나망간)으로 가는 방향은 텐산 산맥의 영향인지 시외교통이 열악하다. 물론 페르가나 분지 내부에서는 [50] 비교적 버스가 많이 다니긴 하나, 타슈켄트와 이들 지역을 오가는 기차노선은 하루 2~3 왕복만 운행되며 그 이외에는 택시 및 합승으로만 이동할 수 있다. 다만 목적지가 나망간이나 페르가나라면 비행기를 타고서라도 이동은 할 수 있다. 그래서 보통 비행기를 이용하는 게 편하며 요금도 저렴하다.
도로교통은 주요 도시간 고속도로를 통해 다소 활발한 편이나, 도로 사정은 매우 열악하다. 그래서 고속버스의 소요시간이 꽤나 오래 걸리는 편.
시내 대중교통은 시내버스[51], 마르슈투르카[52]택시[53]를 많이 이용한다. 또한 타슈켄트에는 지하철도 운행되고 있으며, 사마르칸트는 노면전차도 있다. 대개 대중교통은 1인당 1400숨씩 받는다.
택시 요금이 굉장히 저렴하긴 하나, 미터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기에 바가지를 쓰는 경우가 흔하다.[54] 요금 시비를 줄이려면 Yandex Taxi(타슈켄트, 페르가나 한정), MyTaxi(타슈켄트 한정) 어플을 이용하도록 하자. 이들 어플이 지원하지 않는 지방에서는 각 지역별 콜택시로 전화 및 텔레그램으로 호출을 불러야 한다. 어플로 부르면 기사의 휴대폰이 앱 미터기가 되어 요금 시비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다만, 현지 SIM을 개통해야 어플 및 텔레그램 호출을 이용할 수 있으니 참고.
대신, 보행자에게는 매우 자비가 없기로 유명하다.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보행자 우선 문화가 상당히 정착된 국가도 많고, 대한민국의 경우에도 2000년대 이후부터 보행자 우선 문화 캠페인으로 인해 상당히 정착되었으나, 아직 우즈베키스탄은 자동차 우선 문화이다. 보행자가 앞에 지나가는데도 대놓고 차량으로 위험하게 돌진할 때도 많다. 보행자가 천천히 걸어가면 대뜸 경적부터 울리며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 반면 먼저 지나가라고 비상등을 켜주면서 기다리는 경우도 있긴 하다. 그리고 횡단보도 신호도 짧으며, 비보호 횡단보도가 셀 수 없이 많아 횡단 시 주의가 필요하다.

13. 관광


[image]
그림과도 같은 히바의 풍경
실크로드의 경유지였고 많은 제국의 중심지였던 찬란한 역사답게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가장 많은 유적이 존재한다. 관광자원만 따지면 상당히 포텐셜을 가지고 있으며 국제적으로 보면 실크로드 주요 도시들인 사마르칸트, 부하라, 히바 등 인지도도 꽤 높은 편이다.
그러나 실제 관광업은 포텐셜에 비해 한참 발전하지 못한 편이다. 한국에서의 인지도도 그렇게까지 높지는 않은 편이다.
이렇게 포텐셜에 비해 관광업이 발전하지 못 한 가장 큰 문제는 비자 문제였다. 관광비자를 발급받기 위해서도 초청장이 필요했는데 초청장 획득이 쉽지 않았다. 게다가 우즈베키스탄은 2중내륙국이다 보니 육로이동으로 입국하기 위해서는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를 거쳐 입국해야 하는데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도 역시 비자를 요구했고 비자 발급이 우즈베키스탄 못지 않게 까다로웠다. 그래서 중앙아시아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비자 발급 문제로 학을 떼곤 했다.
두 번째 문제는 우즈베키스탄 관광 및 교통의 중심지는 사마르칸트이지만 정작 국제선 항공노선은 수도인 타슈켄트다 보니 여행 일정을 세우기 쉽지 않은 편이었다. 타슈켄트도 상당히 긴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이자 우즈베키스탄의 수도라 볼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1960년대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인해 도시 전체가 폭삭 무너진 후 소련식으로 새롭게 건설한 도시에 가깝다보니 관광 경쟁력은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다. 문제는 항공편으로 입국시 타슈켄트로 입국하게 되는데 타슈켄트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지나치게 북동부 끄트머리에 치우쳐져 있다보니 정작 매력적이고 유명한 관광지인 사마르칸트, 부하라, 히바로의 이동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세 번째 문제는 언어장벽이었다. 영어가 정말 잘 안 통하는 나라이다보니 우즈베크어, 러시아어를 모르면 여행이 매우 불편한 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놓고 영어 안 통하기로 악명 높았다. 이 문제는 딱히 우즈베키스탄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구소련 국가 전역에 해당하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관심이 있더라도 언어장벽 때문에 주저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현재는 주변국인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이 한국인 관광객에게 무비자를 시행하고 있는데다 타슈켄트에서 사마르칸트로의 이동이 매우 편해졌고, 2018년 한국인 관광객 무비자가 시행되는 등 차츰 개선되고 있다.
한국인 관광객 무비자 정책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무비자로 입국 후 매일 일정액 체류비를 지불하는 식이다. 숙소에서 요금 계산할 때 숙소측은 거주지등록을 해주며 체류비를 수령하고 영수증을 준다. 이 영수증은 출국할 때 확인하니 잘 챙기고 있어야 한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도시는 수도 타슈켄트 외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각자 지정된 중세 중앙아시아의 성곽도시 사마르칸트, 부하라, 히바(이찬칼라) 등이다.
아랄 해는 특히 우즈벡 쪽은 거의 말라붙었는데 옛날 항구도시였던 무이나크(Mo‘ynoq)에 가면 모래사막 위에 나뒹구는 녹슨 배나 어업기념물 등등 바다가 있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현지 여행사들은 자동차를 타고 새로 생긴 소금 사막, 녹슨 배를 모아놓은 선박묘지, 조금 남은 아랄해[55]등을 둘러보는 투어를 팔고 있다.
고급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 대형 쇼핑몰, 몇몇 상점을 제외하고는 해외 발행 신용카드데빗카드를 받지 않으므로 주의하자.[56] 이곳은 신용카드 결제 인프라가 한국이나 기타 선진국에 비해 매우 열악한 편이다. 물론 자국에서만 사용 가능한 UZCARD라는 직불카드가 굉장히 활성화 되어 있어서 카드 결제기는 널려 있지만, 문제는 이 결제기는 해외발행 카드로 결제가 전혀 되지 않는다. 다만, ATM을 통한 현금 인출은 가능하다. 다만, 은행에 따라서 오류메시지를 내며 인출이 불가능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현찰 거래가 매우 당연시되고 있다. 게다가 화폐 가치까지 낮아 상점마다 은행에서나 볼 법한 현금 계수기를 비치하고 있다. 2020년 현재 카드결제에 매우 익숙한 한국인이 봤을 때는 일부러 부가가치세 등의 세금을 덜 내는 것이라고 보기 쉬우나, 여기서는 상술했듯 카드결제 인프라가 빈약하고, 현찰 거래가 당연시되므로 따지려 하지 말자.
이렇듯 현찰 거래가 당연시되다 보니 우즈벡 현지 은행에서 계좌 개설을 할 필요가 없는 단기 관광객들은 현찰 거래 위주로 해야 하는데, 환전 시에도 주의가 필요하다. 달러, 유로를 현지 화폐인 숨으로 환전할때는 쉽게 환전할 수 있으나, 숨에서 달러, 유로로의 역환전은 매우 어려우므로[57]출국할 때 어쩌다 돈이 많이 남아 자신의 돈을 휴지조각으로 만들기 싫다면 한번에 환전하지 말고 계획을 세워서 조금식 환전하는 것이 현명하다.
야슬릭 형무소를 폐쇄하면서 민주주의에 한 발 다가갔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형무소 주위를 외국인이 돌아다닐 수 없으면 패쇄하고 일반 형무소로 바껴 짧은 1,2년형의 외국인 사업가 수감자들도 수감되게 되었다.

14. 외교




[1] 우즈베크어 키릴 문자 표기는 'Ўзбекистон Республикаси'.[2] 공식적인 자료에 따른 것이다. 비공식적으로는 25~30% 정도의 비율을 차지할 것이라고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다. 자세한 것은 후술.[3] 자치 공화국인 카라칼팍스탄에서 사용된다. 그 외에도 러시아어가 민족 간 의사소통어로서 통용된다.[권위주의] 2.12점[4] 우즈베크어 키릴 문자 표기는 'Сўм'.[5] 전세계 모든 국가 중 가장 큰 수이다.[6] 우즈베크어 키릴 문자 표기는 'Тошкент'이며, 우즈베크어로는 '[tɒʃˈkent\](터슈켄트)'라고 한다.[7] Richard Foltz (1996). "The Tajiks of Uzbekistan". Central Asian Survey. 15 (2): 213–216.[8] 정세진. "우즈베크-타지크 민족 기원론 소고: 독립 이후의 역사적 논쟁을 중심으로". ''러시아연구'', vol.23, no.1, 2013, p. 234[9] Paul Bergne: The Birth of Tajikistan. National Identity and the Origins of the Republic. International Library of Central Asia Studies. I.B. Tauris. 2007. "Enquiries showed that more than 50% of the Tajiks had been obliged by pressure from the Uzbeks to have themselves registered as Uzbeks. This pressure consisted mainly of threats to resettle them in Eastern Bukhara or to refuse them employment, if they did not relent, etc."[10] "History of Samarkand"www.advantour.com. Retrieved 2018-05-15.[11] "Information about Bukhara" Retrieved 2013-05-01.[12] Richard Foltz (1996). "The Tajiks of Uzbekistan". Central Asian Survey. 15 (2): 213–216. "...and census reports were skewed to the point of irrelevance by a combination of confusion about terms and a desire on the part of individuals to identify themselves in whatever way seemed most advantageous." "...more like 25-30 percent, with Tajiks accounting for perhaps 70 percent of the population of Samarkand, Uzbekistan's second largest city and former capital, and as much as 90 percent in Bukhara."[13] Richard Foltz, A History of the Tajiks: Iranians of the East, London: Bloomsbury Publishing, 2019. "Beginning in the 1920s Tajiks living in the Uzbek SSR were strongly encouraged to identify themselves for all official purposes as Uzbeks, so that government censuses throughout the Soviet period consistently and dramatically under-reported the proportion of the republic's population that were Tajik (officially less than 5 percent, but the real figure was very likely three or four times that)." "With the opening up of public discourse under perestroika came a revindication of identity from Tajiks living in the Uzbek SSR, voiced by new organizations ... demanding an end to language-based discrimination and even political autonomy for Tajik-majority regions such as Samarkand, Bukhara and Surkhondaryo." "Today the Tajiks, the largest ethnic minority of Uzbekistan, are still discriminated against, which threatens the stability of the whole area..."[14] 정세진. "우즈베크-타지크 민족 기원론 소고: 독립 이후의 역사적 논쟁을 중심으로". ''러시아연구'', vol.23, no.1, 2013, p. 238[15] 스탈린 시절에 강제이주되었는데, 소련 해체 이후에 대부분이 그리스로 이주했다.[16]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A%B3%A0%EB%8C%80-%EC%9C%A0%EB%9F%BD%EC%9D%B8-%ED%94%BC%EB%B6%80%EC%83%89-%EC%A7%80%EA%B8%88%EA%B3%BC-%EB%8B%AC%EB%9D%BC[17] 우즈베키스탄의 경우는 오아시스가 있는 도시가 몇 군데는 있고 농지에 적합한 땅들이 넓고 많은 편이지만 우즈베키스탄과 접하는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의 경우는 농사에 적합한 땅들이 많지 않다. 비록 우즈베크에 비해 물이 많이 나오지만 오히려 타지크, 키르기스는 물이 많은 험준한 골짜기들 때문에 많지도 않은 농촌의 수와 더불어 농사짓기 힘든 곳 중 하나이다.[18] 수치가 높을수록 언론 자유가 없는 국가, 언론자유 최상은 0점, 언론자유 최악은 100점. #[19]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이스라엘, 일본, 인도네시아, 터키[20] 우즈베키스탄에는 타지크족이 1989년 기준 100만 명 이상(총 인구의 25-30%정도로 추정) 살고 있었다.[21] 2000년 기준 101만 명, 다만 타지키스탄의 경제사정이 열악해서 타지키스탄 내 우즈베크인들의 비율은 매년 급속히 줄고있다. 하기야 현지 타지크인들도 외국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은 마당에 우즈베크인이야 별수있냐만.[22] 식자재 가격을 매우 낮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요를 강제로 찍어누르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수요를 강제로 찍어누르기 위해서는 임금을 당연히 매우 짜게 주어서 구매력을 아주 낮추어야 한다. 그래도 가격이 워낙 낮게 유지되다 보니 먹고 사는 문제는 그럭저럭 해결이 되는 모양. 물론 이건 구소련권 국가들 전부 다 해당된다.[23] 공정환율로 환산 시 약 12%에 달한다.[24] 소련 시절 중앙아시아 지역의 핵심은 우즈베크였고 수도 타슈겐트는 러시아 SFSR의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우크라이나 SSR의 키예프, 아제르바이잔 SSR의 바쿠와 함께 소련의 5개 핵심 도시였다.[25] 현재는 마티즈가 단종되었다.[26] 대우 씨에로, 한국GM 라보, 한국GM 다마스, 대우 티코가 대표적.[27] 2010년 8월에 현대 액센트가 러시아 공장에서 붙여지는 이름인 "솔라리스"라는 이름으로 1달 동안 1만 대 판매로 월간 판매량 1위를 했었던 적이 있었지만 9월 경에 다시 우즈대우 젠트라가 뺏어버린다.[28] 대표적으로 GM대우 토스카의 유럽 수출사양 모델 일부나 GM대우 라세티의 유럽 수출사양 모델 전부를 우즈-대우에 맡겨버렸다.[29] 우즈베크어로 '길(Roads)'을 뜻한다.[30] 쉐보레 콜로라도 기반의 중형 SUV.[31] 이란계 유목민으로 소그드인이라고도 불리며 이들의 유목문화가 튀르크와 몽골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후에 페르시아화되어 타지크인으로 이어졌다고 여겨진다[32] 다만 주류민족인 우즈벡인들의 비율이 높다. 또한 우즈베키스탄보다는 민족 비율의 다양성은 카자흐스탄이 훨씬 더 많다.[33] 정확히는 아프가니스탄의 헤라트에서 태어났는데, 당시 헤라트는 티무르 제국의 주요한 도시였다.[34] 술은 보드카, 맥주 등 술을 따로 취급하는 술 가게에서 팔거나 슈퍼의 주류 코너에서도 판다. 게다가 돼지고기 성분이 들어간 한국 라면을 없어서 못 먹는 현지인도 있다.[35] 이슬람권에서는 왕정 혹은 군부독재가 무너진 뒤에 '전통으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이슬람 세력이 집권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게 1990년의 알제리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정권. 이것은 독재정권의 탄압 때문에 서구식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세속주의진영, 노동자계급에 기반한 좌파그룹은 그 세력이 미약하고 그 가치가 대중들에게 잘 뿌리내리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슬람은 종교이자 문화로 사람들의 일상생활 전반에 깔려있기 때문에, 아무리 독재정권이라도 이슬람 자체를 몰아내지는 못한다. 더구나 이슬람은 그 특유의 계율 때문에 교육과 사회복지까지 담당하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민심을 얻기가 쉽다. 특히 불평등이 심하고 경제가 낙후된 곳일 수록 이슬람의 이런 역할들이 부각된다. 따라서 대중들의 신뢰를 받고 민심이 모이는 이슬람이 반독재운동의 핵심이 되는 것이 당연지사로 1979년 이란 혁명이 대표적이다. 그외에 이집트에서 수십년간 군부독재와 싸워온 무슬림 형제단,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모두 단순한 정치운동을 넘어서 해당 지역에서 교육, 사회복지, 금융기관의 역할까지 하면서 민심을 얻고 있다. 더구나 나세르 이후 중동 이슬람권을 강타했던 세속주의, 아랍민족주의가 결과적으론 정치, 외교, 경제 다방면에서 실패하자 더더욱 이슬람에 민심이 몰리고 있다. 문제는 무슬림들이 계속되는 외세의 간섭과 낙후된 경제, 문화적 후진성에 절망하면서 1980년대 이후 급속도로 이슬람 근본주의로 회귀하고 있다는 것이다. 1979년 이란 혁명이 결국 이슬람 시아파 꼴통들의 신정통치로 귀결되는 것을 시작으로 수니파 와하비즘이 널리 퍼지고 있다. 이때문에 이들을 강제로 억눌러오던 독재가 무너지면 이슬람이 정권을 장악하고, 거기서 결국에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득세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이런 현실을 목격한 서방국가들은 리비아 내전, 시리아 내전에서도 결국 이슬람권에 서방식 인권을 존중하는 세속주의 세력은 소수파라는 것을 다시금 체감하였다. 이것은 아랍권 민주화 운동 이후 자유선거가 실시된 이집트, 알제리 등에서도 비슷하였다. 현재는 어설픈 서방식 민주주의 보다는 차라리 이슬람 극단주의를 찍어누르면서 강력한 세속주의, 공업화를 추진할 수 있는 독재가 차라리 낫다는 쪽으로 서방국가들의 외교정책이 바뀌고 있다.[36] 하지만 이쪽은 지역사회 차원에서 규율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성향이 있지만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이라는 나라가 전체적으로 보면 세속적 성향이므로 실제로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브루나이처럼 꽉 막힌 사회까지는 아니다.[37] 웰스(Wells)의 조사에 의하면 우즈벡인들의 Y 염색체 하플로그룹은 중앙아시아에서 흔한 C(11.5%), 중동에서 흔한 J(13.4%), 유럽에서 흔한 R1a(25.1%)와 R1b(9.8%), 동아시아에서 흔한 O3(4.1%), 남아시아에서 흔한 F(7.9%)가 모두 나타난다. 코카소이드 같은 느낌도 있고 동시에 동양적인 느낌도 존재한다. 동양인같이 생긴 사람도 서구적인 느낌이 강하다. 또한 하플로그룹의 비율에서 추측할 수 있듯 유럽계 하플로그룹이 나타난다. 왜냐면 이란계의 사람들이 옛부터 우즈베키스탄에서 살아왔는데 우즈베키스탄은 예전엔 페르시아의 영토였고 그리스인들이 살던 박트리아 왕국과 이란계 유목기마민족인 스키타이가 살던 땅이였기때문이다. 즉 같은 투르크계이지만 동양인으로 보이는(하지만 동아시아 동양인보다는 어느정도 서구적인 특징이 있다) 키르기스인이나 카자흐스탄인들이 사는 키르기스와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인이 워낙 많이 살아도 키르기스인과 카자흐스탄인들이 워낙 몽골로이드의 특징이 많이 보여서 동양인과 비슷한 사람들도 많지만, 반면 우즈베키스탄인은 키르기스인이나 카자흐스탄인에 비해 코카소이드와 투라니드 인종인 튀르크인의 특징이 더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우즈베키스탄인과 달리 키르기스인이나 카자흐스탄인의 경우에는 예니세이강 상류에서 나중에 키르기스스탄과 카자흐스탄에 이동해 정착하였기 때문에 좀 더 동양적인 특징이 많이 보인다. 물론 러시아계 우즈베키스탄인도 있으며 러시아도 한국 남성들에게 "미인의 나라"로 유명하니까 우즈베키스탄도 그러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38] 국제신문, 민병욱 교수의 배낭여행 <4> 우즈베키스탄① 타슈켄트-역사의 겉과 속[39] Encyclopaedia Britannica. December 05, 2018. "Uzb[40] 민족이란 생물학적이라기보다 사회적 개념에 더 가깝다. 민족 참조. 사실상 지구상의 대부분의 민족은 혼혈로 이루져있으며, 몽골로이드와 코카소이드의 구분 또한 편의상 큰 틀에서의 분류일 뿐이고 유전학적으로 명확히 구분할 수 없다는 점을 알아두자.[41] 현재는 우즈베키스탄에 살던 러시아인들이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서 비율이 더 올랐다.[42] 사실 우즈베크/타지크와 같은 언어로 구분되는 현재의 "민족"은 종교 또는 지역등이 더 중요한 잣대였다. 우즈베크인과 타지크인은 언어는 다르지만 종교와 문화가 대개 같기에 섞여 사는 경우가 많았고, 현재까지도 그 경계선이 모호한 경우가 많다. 이는 오스만 제국 등 근대 이전의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43] 그래서 대부분 국제결혼에서 문제가 일어나는 우즈벡 여성들은 자유 연애가 가능한 비무슬림 러시아인이 많으니 이 점을 유의하자[44] 타슈켄트의 경우에는 러시아어를 더 많이 쓰지만 우즈벡인은 우즈벡어가 거의 다 가능하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다. 우즈벡 미녀로 유명한 구잘의 경우 우즈벡어를 사실상 거의 하지 못하는듯 하다.[45] 중앙아시아에 고려인들이 많이 거주하지만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소수. 길거리에 발에 채이도록 고려인이 많은것은 아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고려인은 전 인구의 0.6% 정도이며 카자흐스탄도 마찬가지.[46] 특히 문법쪽에서[47] 카자흐스탄은 한때 러시아계가 전 인구의 50% 가까이 차지했던 나라이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의 경우 우즈벡과 다르게 카자흐족이 키르기스와 같이 더 동양인처럼 생겼다.[48] 이런 눈속임이 딱 드러나는게 "우즈베키스탄 학생들"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와 있는 사진 속 배경이 '''우즈베키스탄 학교라고 말하기에는 시설이 너무 좋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북유럽 교실 사진 올려 놓고 우즈베키스탄이라고 거짓말을 하니 거짓말이 들통날 수 밖에.[49] 사마르칸트까지의 고속선을 경유해 부하라나 카르시까지는 재래선을 경유한다.[50] 페르가나를 기점으로 키르기스스탄 도스특 국경이나 안디잔, 나망간으로 가는 대형 버스가 있긴 하다.[51] 2GIS나 얀덱스 지도 어플로 현재 위치까지 자세히 나오는(!) 타슈켄트나 일부 도시 이외에는 거의 장식이다.[52] Маршрутка. 일종의 마을버스와도 같은 개념으로, 기본적으로는 시내버스가 들어가지 않는 곳을 중점으로 정해진 노선대로 운행하나 인가된 정류소에 모두 정차하는 시내버스와는 달리 Request stop제이며, 교통이 취약한 일부 지역에서는 인가된 정류소가 아니라도 하차를 요청하면 하차가 가능하다.[53] 자가용으로 영업하는 일명 '나라시' 포함. 한국이나 일본이 자가용으로 운송영업을 엄하게 금지하는 것과는 달리, 우즈베키스탄은 자가용 운송영업을 묵인한다.[54] 특히, 타슈켄트 국제공항 앞에 가면 나라시 운전 기사들이 관광객에게 매우 심하게 호객행위를 하는데, 시내까지 터무늬없는 요금을 부르니 무시하고 후술할 택시 호출 어플, 호텔 픽업 서비스 혹은 시내버스를 이용하자.[55] 사람과 벽돌이 둥둥 뜰 정도로 염도가 높다.[56] 아주 가끔(주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 상점 및 고급 호텔, 고급 레스토랑 위주로) VISA은련카드를 받는 곳이 있긴 하다. 마스터카드는 그저 안습. 마스터카드의 무덤이라 할 정도로 거의 통용되지 않는다.[57] 환전을 하게 되면 은행에서 환전 증명서를 같이 첨부해 준다. 이 환전 증명서를 잃어버릴 경우 어떠한 경우를 막론하고 절대 역환전이 안된다. 은행에서조차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외화 유출 통제) 아예 안해주는 경우도 있으니 주의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