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베르 제파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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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세르베르 제파로프는 아시아 축구 무대에서 뛰어난 활약상을 보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의 전 축구선수이며 현재는 우즈베키스탄 U-14 대표팀 감독을 역임 중이다. 우즈베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도 2002년부터 2017년까지 꾸준히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K리그의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했던 바 있는 티무르 카파제를 제치고 가장 많은 우즈베키스탄 선수 A매치 최다 출장을 기록하고 있다.
2. 클럽 경력
우즈베키스탄 클럽 나프바호르 나망간의 유스 클럽에서 성장했으며, 2000년 이 팀을 통해 우즈벡 프로리그에 데뷔했다. 2시즌동안 나망간에서 활약한 제파로프는 2002년 파흐타코르 타슈켄트로 이적해 2007년까지 활약했는데 그가 활약한 6시즌동안 파흐타코르는 우즈벡 리그 6연패와 우즈벡 FA컵 6연패를 달성했다. 2008년에는 분요드코르로 이적해 19골을 기록하면서 그 시즌 득점왕을 차지했고 2008년 AFC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였고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의 첼시 FC로부터 입단 테스트 제의가 오기도 하였다.
2.1. K리그 시절
2.1.1. FC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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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시즌이 끝나고 제파로프는 구단에 해외 진출 의사를 전했고, 2010년 7월 그의 요청에 따라 K리그의 FC 서울로 6개월 임대되었다. 제파로프는 임대된 그 해 2010 시즌 K리그 16경기에서 1골 7도움을 기록하며 FC 서울의 K리그 우승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2010 시즌이 끝나고 제파로프는 서울로 완전 이적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고, 2011년 2월 6일 이적료 약 10억원에 3년 계약으로 FC 서울로 완전 이적이 확정되었다.
2011시즌에는 몰리나등 새로 이적해온 동료들과의 호흡이 맞지 않아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2] 결국 2011년 7월 9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샤밥으로 이적이 확정되었다. FC 서울이 알 샤밥으로부터 지급받은 이적료가 약 80억원대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약 30억원대의 이적료를 지급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어쨌든 FC 서울에게는 이적료 대박을 안기고 사우디 리그로 떠났다.
2.1.2. 성남 일화 천마/성남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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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리그의 알 샤밥에서는 기후 부적응과 주전경쟁 실패등으로 막판에는 벤치 멤버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런 이유로 제파로프는 알 샤밥에서의 선수생활에 불만족을 표시했다.[3] 결국 2013 시즌 안익수 감독 체제로 개편된 K리그 클래식의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이 확정되었다.
그렇게 선수생활을 하는 것 같았지만 안익수 감독이 물러나고 박종환 감독이 사령탑에 올랐다. 박종환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제파로프는)선수도 아니다''', 기술은 있어도 팀플레이를 안 한다"라며 비판하는가 하면 브라질 출신의 새 얼굴 바우지비아를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등 제파로프와의 대립각을 세웠다. 출전이 적은 것은 사실이며, 주전으로 뛴 경기도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실력에 비해 기회가 적게 부여된 것은 맞는 셈.
그런데 성남이 지독한 빈공에 시달리면서 언론들과 팬들은 비싼 돈들여 데려온 아시아 탑 클래스 플레이메이커를 쓰지 않느냐며 비판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제파로프를 쓰지 않고 괜찮은 성적을 거둔다면 몰라도 그런 것도 아니었기에 논란이 더 커졌었다.
그러던 와중 박종환 감독이 폭력사태를 일으켜 자진사퇴했다. 이 소식을 접한 제파로프의 짤막한 트윗. 앗싸조쿠나
그리고 11라운드 선두 포항 스틸러스를 홈에서 맞이하여 제파로프는 1골 1도움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보이며 성남의 3:1 대승을 이끈다. 이 결과를 접한 축구팬들은 일제히 빵 터졌다. 노리고 한다고 될 일은 절대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실력으로써 박종환 감독을 대놓고 디스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경기에 뛸 수 있어 행복하고 감사하다
비록 팀의 하위 스플릿 행은 막지 못했지만, 2014 시즌 팀 내 공격포인트(10) 및 득점 1위(PK4 포함 7득점), 도움 2위(3도움, 1위는 4도움의 김태환)를 기록하였고, 팀의 3번째 FA컵 우승에도 기여하였다[4] . 하지만, 제파로프 역시 받는 연봉에 비하면 그리 잘하고 있지 못 하다는 평도 적지 않았다.[5]
12월 김학범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는 성남을 떠난다고 한다. 그래서 23일 FA컵 우승 기념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2.1.3. 울산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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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30일 울산 현대 이적이 확정되었다. 윤정환 감독이 구단에 제파로프를 꼭 데려와 달라고요청했다는데, J리그에서 감독직을 수행할 당시 외부 영입 욕심이 별로 없는 편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경우다.[6]
3월 8일 울산 개막전에 선발 출장하면서 1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2:0 완승에 기여했다. 3선을 센터 서클 아래로 내리고 요소요소를 철통같이 지키다가 볼을 끊어낸 순간 제파로프를 기점으로 삼아 4명이 신속하게 전진, 상대 문전을 한차례 두들기고 다시 물러나 수비진을 구축하는 모습은 2년전 호거슨이 리그를 호령한 '''철퇴축구 부활'''을 알렸다. 첫번째 득점 영상을 보면 잘 나오지만 GK 김승규가 차낸 공을 득점으로 연결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5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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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5일, 포항에서 열린 영남 더비에서 4:2 대승을 이끌어내는 선제 득점을 기록했다. 전반전 포항의 전술에 완전히 말리면서 지난 서울전과 달리 공격 전개가 원활하지 못했고 중계진조차 '오늘 경기는 한골 싸움'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는데, 전반 추가시간에 귀중한 선제 골을 작렬했다. 덤블링 셀레브레이션[7] 인 덤. 그리고 한 언론에선 제파로프의 활약상을 전하며 일타쌍피, 박빳따와 백지훈을 동시에 디스했다 (...)
2.1.4. K리그 이후
이토록 좋은 활약을 보였으나 나이가 나이인지라 노쇠화를 피하지는 못했고, 결국 2015 시즌 종료 후 울산 현대가 팀 개편에 나서면서 울산과 재계약에 실패했다. 이후 로코모티브 타슈켄트와 계약하며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2017년 이란 프로리그의 에스테그랄 테헤란 FC에 1년 반 계약으로 입단하면서 1년만에 팀을 옮기게 되었다. 사실상 본인의 마지막 커리어 팀이라고 했지만#, 이후 카자흐스탄 팀인 FC 제티수로 이적하였으며 다시 자국 리그인 메탈루르그로 이적하였고 2019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3.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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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5월, 우즈베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에 첫 소집되어 A매치에 데뷔한 이후 2007년에는 주장 완장을 차기도 했다.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에서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6경기 2골을 기록했고, 우즈베키스탄 역사상 최초로 아시안컵 4강에 오르는 쾌거를 거뒀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맹활약했으나 우즈베키스탄은 본선 직행이 좌절되어 플레이오프로 밀렸고, 플레이오프에서도 밀려 월드컵에 나가지 못했다.
성남 FC를 떠난 후에는 2015 AFC 아시안컵 호주에 출전, 주장 완장을 차게 되었다. 북한전에서는 어시스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8강전인 대한민국전에는 측면을 주 공격 루트로 선택한 카시모프 감독의 선택에 의해 출전하지 않았다. 이후 2016년 11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있었던 슈틸리케호와의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의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5차전 소집 명단에 포함됐지만 부상으로 뛰지 못하면서 팀의 패배를 지켜 보아야만 했다. 2017년 9월에 벌어진 최종예선 한국과의 마지막 경기에 선발 출전했으나, 별다른 활약 없이 후반 6분 라시도프와 교체아웃되어 나갔다. 경기가 무승부로 끝나고 시리아가 이란과 비기면서 우즈벡의 러시아 월드컵 진출은 좌절되었다. 제파로프의 나이를 고려해볼 때 사실상 마지막 도전이었고, 알렉산데르 게인리흐와 함께 끝내 월드컵 무대는 밟지 못하고 길었던 국가대표 여정이 마무리되었다.
4. 감독 경력
2020년 1월 28일,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우즈베키스탄 U-14 대표팀 감독에 선임되면서 곧바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5. 플레이 스타일
주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이며 그 외에 중앙 미드필더와 윙어도 소화 가능. 그러나 후자는 어디까지나 자기가 소화만 가능할 뿐, 최적의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이다. 공격형 미드필더 위치에서 탁월한 볼 간수 능력과 패스로 경기를 운영해 가는 아주 전형적인 플레이메이커 롤을 맡고 있다. 그러나 출중한 공격력에 비해 수비 가담과 활동량이 떨어지는 것이 단점으로 꼽힌다.
6. 우승
- 파흐타코르 타슈켄트 FK (2002 ~ 2007)
- 우즈베키스탄 슈퍼리그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2007
- 우즈벡컵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2007
- FC 분요드코르 (2008 ~ 2010.6)
- 우즈베키스탄 슈퍼리그 : 2008 , 2009
- 우즈벡컵 : 2008
- FC 서울 (2010.6 ~ 2011.7)
- K리그 1 : 2010
- 알샤바브 FC (2011.7 ~ 2013.1)
- 사우디 프로페셔널리그 : 2011-12
- 성남 FC (2013 ~ 2014)
- FA컵 : 2014
- 로코모티브 타슈켄트 FK (2016)
- 우즈벡컵 : 2016
- 에스테그랄 테헤란 FC (2017.6 ~)
- 하즈피 컵 : 2018
7. 기타
8. 관련 문서
[1] 우즈베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 A매치 역대 최다 출전 1위.[2] 몰리나와 플레이스타일이 유사한데, 황보관 감독도 최용수 감독대행도 이 둘을 공존시킬 방법을 찾지 못했고, 둘이 동시에 나오면 경기력이 하락하고, 한 명만 나오면 경기력이 상승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3] 그것보다는 임금체불이 컸다.[4] 반면 바우지비아는 부상을 입는 바람에 12경기밖에 뛰지 못하며 후반기에는 김동희에게도 밀려 완전히 후보가 된 채 성남을 떠났다.[5] 2014년 K리그 연봉 순위에 따르면 제파로프의 연봉은 11억 1천 6백만원으로, 외국인 선수 가운데 3위고 국내선수 최고액 수령자인 이동국보다 2백만원 많이 받는다(...)[6] 윤정환은 '''제파로프는 나보다 더 뛰어난 선수다'''라고 언급했다. 윤정환 역시 선수 시절에 상당히 뛰어난 플레이메이커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극찬인 셈. [7] 이 셀레브레이션은 슈틸리케가 막 감독이 된 시점에서 정성룡의 기량 논란을 다시 한 번 일으킨 제파로프의 골 이후에도 나왔었다. [8] 그래서 우즈베키스탄의 주류 민족인 우즈베크족과 달리 순혈 백인에 가까운 외모다. 우즈베크족은 튀르크계 황인 혈통과 이란계 백인 혈통이 섞인 황백혼혈 민족이다.[9] 다만 현대 우즈베키스탄에서 우즈베크어를 우선시하고 러시아어를 배제하는 경향이 강한 만큼 우즈베크어가 유창한 비우즈베크계 우즈베키스탄인들도 적지 않은 편이다. 제파로프 본인이 거기에 해당되지 않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