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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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28년부터 2001년까지 크라이슬러 산하에 존재했던 미국의 자동차 제조사이다.'''"One Clever Idea After Another."'''
-1990년대 말 브랜드 슬로건
2. 이름의 유래
로고를 보면 돚단배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플리머스는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하여 세운 첫 도시의 이름을 딴......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 회사가 세워질 당시 미국의 농부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노끈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
3. 역사
플리머스는 1928년에 크라이슬러가 중저가 차량 판매를 위해 만든 브랜드이다. 창립 때는 맥스웰(Maxwell)사의 차를 손보아 제작했으며, 염가차이면서도 유압식 브레이크와 같은 신기능들을 갖추는 등 나름 개념있는 차들을 내놓았다. 주로 대중적인 자동차를 만들었지만 1960년대에 크라이슬러 차량들이 다운사이징된 때와 머슬카 및 포니카 붐을 틈타 로드러너나 바라쿠다, 혹은 1990년대의 복고풍 붐을 이용해 프라울러같은 멋들어진 차도 여러 대 만든 적이 있다.
경제 대공황 시기에는 크라이슬러 에어플로우와 에어스트림 등의 실적 부진에도 불구하고 크라이슬러의 꾸준한 돈줄이 되어 왔다. 하지만 1940년에 창업자인 월터 크라이슬러가 사망한 후에는 "닷지네 동생" 취급받으며 존재감을 잃어갔으며 1940년대 디자인 트렌드에 대한 크라이슬러의 소홀한 대응, 한국 전쟁으로 인한 재료 및 부품수급 문제와 품질 하락, 포드와 쉐보레의 가격할인 경쟁에 밀려나갔다. 그러다가 1950년대 중반에는 플리머스 딜러점이 독립된 형태로 자리잡고[1] 당시 크라이슬러의 디자인 부서장 버질 액스너의 "포워드 룩" 스타일링의 혜택을 입어 실적이 크게 개선되었고,[2] 1956년의 퓨리와 1960년대 출시한 머슬카 라인업으로 브랜드 이미지가 개선되어 다시 활기를 찾았었다.
그러나 1960년대에는 1962년의 라인업 전반 다운사이징[3] 과 플리머스 딜러점의 통폐합[4] 으로, 1970년대 전후로는 크라이슬러나 미쓰비시 차량에서 앰블럼만 바꾸다시피한 저가 라인업 위주의 차만 만들게 되면서 인기를 잃어가기 시작했고, 그나마도 1980년대부터는 공유하는 라인업조차 줄어들면서 소외되어갔다.[5] 그러다가...
4. 망했어요
2001년에 폐기되었다. GM 내에서 폐지된 폰티악이나 허머와 비슷하다.
그 이후로 보이저, 프라울러, PT 크루저처럼 플리머스에서 제작하던 차량들은 모두 크라이슬러 브랜드로 옮겨가 판매되었다. 이 시기는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어려움에 빠져 수익성 떨어지던 브랜드들을 정리하던 시절인데, 이미 1990년대부터 “깡통차 브랜드“ 이상도 이하도 아닌 수준의 인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인기를 크게 잃어버린 플리머스도 그것을 피하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본래 크라이슬러는 프라울러를 시발점으로 해서 PT 크루저 등의 차들을 출시해 플리머스를 젊은 고객 중심의 "피터팬 같은" 브랜드로 되살릴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6][7] 다임러크라이슬러가 창립되면서 1999년에 플리머스를 폐기하는 것으로 계획이 수정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닷지와 중복이 많은데다가 해외 수출 브랜드가 주로 크라이슬러임을 감안하자면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과 "플리머스가 없어지면서 크라이슬러가 그 라인을 흡수하는 바람에 각 브랜드간의 이미지가 희석되었다"는 입장이 존재한다.
5. 생산 차종
- 플리머스 로드러너
- 플리머스 프라울러
- 플리머스 보이저와 그랜드 보이저
- 플리머스 밸리언트와 더스터[8]
- 플리머스 퓨리와 그랜 퓨리
- 플리머스 네온
- 플리머스 바라쿠다와 헤미 바라쿠다
- 플리머스 브리즈[9]
- 플리머스 벨베디어
- 플리머스 호라이즌[10]
- 플리머스 선댄스[11]
- 플리머스 사보이
- 플리머스 레이저
- 플리머스 볼라레[12]
- 플리머스 어클레임[13]
- 플리머스 릴라이언트[14]
- 플리머스 트레일더스터[15]
- 플리머스 애로우[16]
- 플리머스 삿포로
- 플리머스 콜트/콜트 비스타[17]
- 플리머스 크리켓[18]
- 플리머스 카라벨[19]
- 플리머스 새틀라이트와 GTX
[1] 그 전까지는 플리머스 브랜드만의 독립 딜러점 체계가 없었고, 다른 딜러점에서 덤으로 판매하는 수준이라 많이 팔리더라도 동급 브랜드인 포드, 쉐보레 대비 존재감이 약했다. 더군다나 버질 엑스너가 오기 전까시는 스타일링과 편의성 중심 트렌드를 가볍게 넘기고 "튼튼하고 오래가는 차"에만 몰두해 파워 브레이크, 자동변속기, 파워 스티어링 등에도 소홀히하는 상황이었다.[2] 단, 1957년식을 급하게 출시한 탓에 품질불량에 시달렸고 브랜드 이미지도 훼손되었다.[3] GM의 소형 라인업인 쉐보레 노바에 대한 루머를 GM 라인업 전반의 다운사이징으로 오해했다. 대신 플리머스도 차가 전반적으로 작아진 덕에 자동차 경기에서 인기를 모았다.[4] 플리머스 차량을 크라이슬러 딜러에서 같이 취급하기 시작했다. 또한 플리머스와 닷지 라인업이 베이스를 공유한다는 새 전략까지 도입하는 바람에, 이미 1950년대 말부터 브랜드 별로 심했던 가격대 중복이 악화되어서 중복되는 라인업이 불어나 차별화가 약해졌다. 덕분에 닷지가 크라이슬러의 주요 밥줄로 자리잡을 정도로 성장했으나 플리머스가 그룹 내에서 소외되고, 플리머스를 준고급 브랜드 취급이었던 크라이슬러 딜러가 도맡으면서 크라이슬러 고객들의 불만까지 자초하고 만다.[5] 1973년에 97만 3천대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감소치를 보이다가 1979~1980년부터 닷지가 플리머스의 판매량을 앞서기 시작했고 얼마 안가 닷지>플리머스가 고정세로 바뀌었다. 나아가 1990년대로 들어가면서는 프라울러가 투입되기 전까지 플리머스의 판매 차종이 준중형급 네온(기존의 콜트, 선댄스, 레이저를 통합), 미니밴 보이저, 중형급 어클레임(또는 후속인 브리즈)의 세 차종밖에 없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크라이슬러도 이를 의식해서인지 1990년대에 신형 보이저와 네온을 포함한 브랜드 회생 계획을 거론하며 "35세 이하에게 플리머스란 어떤 의미도 가지질 못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가 있었다.[6] 당시 닷지에서는 바이퍼를 얼굴마담격 차종으로 출시한 뒤 바이퍼를 토대로 한 패밀리룩을 여러 라인업에 이식했고, 트럭 부문도 1994년식 램 픽업을 토대로 패밀리룩을 설정했다. 플리머스는 프라울러를 토대로 한 패밀리룩을 도입하려고 했으며, 이 때문에 PT 크루저의 디자인 과정에서 프라울러를 닮은 디자인을 채용했다.[7] 해당 문서에 올라온 범선 로고도 1990년대에 예전 로고를 재해석해 되살려낸 버전이다. 1980~1990년대 사이에는 크라이슬러, 닷지, 플리머스 모두 크라이슬러의 오각별 로고를 사용했으며, 닷지가 1990년대 초부터 산양 로고를 도입한 이후 각 브랜드 고유의 엠블럼을 사용했다.[8] 닷지 다트의 형제차로 잘 알려져 있다.[9] 닷지 스트라투스와 크라이슬러 시러스의 형제차.[10] 닷지 옴니의 형제차. 유럽 크라이슬러에서 개발한 준중형차인 생카 호라이즌이 기반이다.[11] 닷지 쉐도우의 형제차.[12] 닷지 애스펀의 형제차.[13] 크라이슬러 레 바론과 닷지 스피릿의 형제차.[14] 닷지 아리스의 형제차.[15] 닷지 램차져의 형제차로, 플리머스 유일의 SUV였다.[16] 미쓰비시 랜서 셀레스테 쿠페와 포르테 픽업의 2차종에 각각 쓰인 이름이다.[17] 굳이 플리머스만이 아니라, 닷지 브랜드로도 콜트/미라쥬와 샤리오/RVR이 판매된 적이 있다.[18] 영국 루츠 그룹이라는 자회사에서 가져온 차종.[19] 크라이슬러 E-클래스의 플리머스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