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티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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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26년부터 2010년까지 GM 산하에서 존재했던 미국의 자동차 브랜드.'''"We Build Excitement (흥분감을 만듭니다)"'''
- 1980~1990년대 브랜드 표어
2010년 브랜드 폐지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나 미국인들에게 폰티악은 GM의 스포츠성을 나타내는 주요 브랜드로 기억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말했듯 1926년 시작된 브랜드로 역사가 상당히 길다. 당시 GM은 자기네 산하에 존재하던 오클랜드 브랜드보다 더 고급스러운 브랜드의 필요성을 느꼈고, 그 결과로 폰티악을 출범시켰는데 7년만에 오클랜드 브랜드를 넘어서면서 아예 이를 대체하게 된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쉐보레와는 형제 관계 정도로 볼 수 있다. 쉽게 비유하면 쉐보레-폰티악 관계는 현대-기아 관계와 비슷하다. 북중미 전역에 걸쳐 판매되었으나 다른 대륙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내수 중심 브랜드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특이사항으로는 스포츠성을 강조한 차량을 주로 생산했다는 것과, 본국인 미국보다 캐나다에서 인기가 좋았다는 것. 캐나다에서 판매된 폰티악 차량을 보면 쉐보레나 지오 브랜드 계열 차들의 뱃지 엔지니어링인 경우도 존재하는데, 캐나다에서는 폰티악을 일종의 염가 브랜드로 인식하여 점유율이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2. 역사
1926년에 미국 제너럴 모터스가 설립해 운영해온 고급 브랜드였다. 그 중에서 1960년대가 폰티악의 전성기로, 본래 올즈모빌 및 뷰익처럼 중산층 중심의 일반 준고급 브랜드였던 걸 젊은층 중심 브랜드로 전환하면서 전성기를 이끌어 냈다.[1] 폰티악의 전설적인 베스트셀러였던 그랑프리,[2] 머슬카의 시초 중 하나인 GTO, 카마로 형제차이자 1960~70년대를 장식한 파이어버드/트랜스 앰을 출시하면서 지금의 스포티한 이미지를 쌓아 갔다. 판매량 역시 미국에선 1973년, 1988~1989년에 쉐보레 및 GMC에 이어 3위를 기록했던 적이 있었고, 캐나다에서는 판매량 1위까지 차지한 바 있었다.
이렇듯 폰티악은 대중적이고 스포티한 성격의 자동차를 적절한 가격으로 내놓아 젊은층에게 인기가 있었고 라디에이터 그릴이 독일 BMW의 키드니 그릴과 비슷했기 때문에 '가난한 자의 BMW'라고 불렸었다.[3] 특히 1987년에는 이를 대상으로 한 "Ride Pontiac Ride" 캠페인을 열어 젊은 고객들을 결집시키기도 했을 정도. 때문에 2000년대에 GM의 부회장을 지냈던 밥 루츠도 "미국의 BMW"처럼 고급스러움과 스포티함을 겸비한 브랜드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한 바가 있었고, 정작 폰티악을 폐기하기로 결정했던 당시를 회상하면서 "숫자만 보면 그게 맞지만 직감대로라면 살려 두었어야 했다"고 밝힌 바도 있었다.[4]
과거에는 대우 르망을 북미에 판매할 때 폰티악의 엠블럼을 달고 판매했었고, 한국에서는 폰티악 파이어버드가 연속극인 전격 Z 작전에 나온 '키트'라는 차량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1990년대 초반에 그랜드 앰이나 트랜스포츠 같은 차들이 한국에 수입되기도 했다.
3. 몰락
하지만 1980년대 초반부터 승용차 시장을 토요타를 비롯한 일본 브랜드한테 잠식당하기 시작하였고, 현대, 기아차같은 신생 브랜드의 역습, 품질관리와 새로운 차량개발에 소홀, 마지막으로 시장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안일한 자세로 망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분명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는 일본 등의 수입 완성체 기업들의 판매량이 말해주었지만 최소 십수년간 이들은 소비자들의 요구를 외면했다. 그도 그럴 것이, 80년대 들어오면서 폰티악은 전성기 때보다 판매량이 70%가 줄고 그룹 내에서도 돈먹는 하마 신세를 면치 못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5] 또한 폰티악이라는 브랜드 자체도 GM의 가혹한 원가절감에 휘말려 각 브랜드들과 구분되는 개성을 잃기 시작했고, 플라스틱 클래딩(Cladding. 껍데기)을 대폭 씌워 억지로 개성을 입히려는 시도와 아즈텍같은 무리수까지 터지면서 브랜드 가치를 많이 상실했다. 그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매우 참혹했다.[6][7]
비록 2000년대 이후로 GTO, 솔스티스, G8 등의 새 라인업을 투입하고 브랜드 방향을 다시 잡는 등, 라인업의 질적인 개선이 있긴 했으나 수익성은 여전히 낮았고, 결국 2009년 4월 27일에 GM이 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구조조정에 들어가자 그들은 더 이상 폰티악 디비전의 존속이 힘들다고 판단해 폰티악 브랜드와 그 산하 모든 생산 차종을 2010년까지 단종시키기로 결정했다. 이후 GM은 북미의 쉐보레, 뷰익, 캐딜락, GMC 이 네 가지 중심 브랜드에 집중한다고 발표했다. 2009년 12월 마지막 폰티악 뱃지를 단 차가 생산라인에서 나오고 모든 재고소진을 끝낸 뒤, 폰티악 딜러십의 프랜차이즈 계약이 종료되었고 2010년 10월 31일에 폰티악 딜러십도 모두 문을 닫게 되었다. 83년간 이어진 폰티악은 새턴, 허머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4. 생산했었던 차량
- 보네빌
- 선파이어
- 선버드 / J2000 / 2000
- 피닉스
- 디럭스
- 치프틴
- 마스터
- 아스트레
- T1000 / 1000 / 아카디안
- G2/마티즈
- G3/웨이브
- G5/퍼슈트
- G6
- G8 - 홀덴 코모도어를 리뱃징한 차종이다. 폰티악 브랜드가 단종되면서 후속은 쉐보레 SS가 되었다. 단, 폰티악과는 달리 V8 6,200cc 사양만 수입된다.
- GTO
- 그랑프리
- 그랜드 앰
- GTP
- 토렌트
- 6000
- 바이브
- 파이어버드
- 솔스티스 - 트랜스포머 실사영화의 재즈의 비클모드였던 그 차 맞다.
- 아즈텍
- 트랜스포츠 - 2세대 차량의 후기형부터는 몬타나로 개명. 국내에는 형제차인 올즈모빌 실루엣이 수입된 적이 있었다.
- 몬타나
- 카탈리나
- 르망 - 1962년부터 1981년까지 생산한 중형차와 1988년부터 1993년까지 판매된 대우 르망의 폰티악 버전이 있다.
- 이그제큐티브
[1] 다만 몇몇을 제외한 당대 폰티악의 주요 라인업들은,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차들이 주류였다. 주류까지 스포티한 라인으로 바꾼 건 1980년대 중후반부터.[2] 1969년에 존 재커리 드로리언(DMC의 창업자이자 DMC-12 드로리안을 기획한 장본인)이 기획한 2세대 그랑프리가 대범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1968년식의 1세대 대비 판매고를 4배 이상 높게 기록했다. 나아가 1996년에 나온 6세대 그랑프리도 매년 15만대 이상의 내수 판매량에 상위 트림의 비중이 높게 나오는 등, GM W-바디 중형차 라인 최고의 흥행을 달렸다. 동 시대의 그랜드 앰은 기본형이 고성능 버전보다 3배 더 많이 팔리는 등, 렌터카 및 사업차로 구매하거나 저가를 이유로 구입하는 고객이 많아 고전하는 편이었다.[3] 특히 1980년대에 등장한 3세대 그랜드 앰이, 이런 별칭으로 불리며 젊은이들의 수요를 많이 끌어모으곤 했다.[4] GM 내부와 당시 정부가 파견한 전문가 집단들(테스크 포스)은 물론 본인도 뷰익만큼의 회생효과는 못 볼 것으로 두고, 어쩔 수 없이 폰티악을 폐지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품 라인업이 2000년대 후반 들어 개선되기 시작했고 당시 본인도 폰티악을 후륜구동차 전용 브랜드(중형차인 폰티악 G6의 후속을 캐딜락 ATS 기반으로 만들 예정이었다)로 개편할 생각이 있었다면서, 당시 GM의 폐지된 브랜드들 중 새턴과 더불어 폐지하기가 가장 아쉬웠다고 자서전에서 회고했다.[5] 물론 GM도 X-바디나 J-바디 전륜구동 소형차들을 만들어 대응했고 폰티악 브랜드로도 차가 출시되었으나, 그 전까지 GM이 작업해 본 경험이 없었던 가로배치 전륜구동 플랫폼을 연비규제 강화 대응을 이유로 너무 무리한 속도, 규모로 개발하다보니 품질문제가 심각해졌다. 또한 소형부터 대형까지 소형화, 전륜구동화를 급하게 추진하다보니 1980년대 중순의 호황기에 대형차 고객층을 상실하는 등으로 문제가 더 커졌고, 엔-달러 간 환율 문제까지 불리하게 겹치자 같은 가격의 일본차에 비해 편의장비가 빈약해져서 "가격 대비 가치" 부문에서조차 밀리게 된다.[6] 때문에 2000년대 GM의 회장인 릭 왜고너는 폰티악과 뷰익을 없애고 싶어했는데, 부회장이었던 밥 루츠는 제대로 된 브랜드 관리가 안 되어서 그런거니 아직 가능성이 있다고 설득해 그 둘을 살려냈었다.[7] 물론 폰티악도 쉐보레와 함께 소형차를 취급해왔다. 다만 1980년대 들어서 개성이 흐려진 탓에 형제차들이 다수 배치된 쉐보레에게 판매량을 뺏긴 경우도 상당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G3, G5처럼 딜러점의 요구로 인해 급히 그릴만 바꿔 투입된 차들도 섞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