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밀카르 바르카

 

'''하밀카르 바르카'''
라틴어: Hamilcar Barc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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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기원전 275년~기원전 228년
'''출생지'''
고대 카르타고
'''사망지'''
하스파니아
'''지위'''
카르타고 군사령관
'''국가'''
카르타고
'''가족'''
한니발 바르카(장남)
하스드루발 바르카(차남)
마고 바르카(삼남)
외의 3명의 딸
보밀카르(첫째 사위)
한노#s-2.3(손자)
잘생긴 하스드루발(둘째 사위)
나라바스(셋째 사위)
'''참전'''
제1차 포에니 전쟁
용병 전쟁
이베리아 정복 전쟁
1. 개요
2.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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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𐤇𐤌𐤋𐤒𐤓𐤕𐤟𐤁𐤓𐤒''' / '''𐤇𐤌𐤋𐤊𐤟𐤁𐤓𐤒'''
'''Hamilcar Barca'''
카르타고의 장군.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활약한 유명한 카르트 하다쉬트의 장군 한니발 바르카의 아버지.

2. 설명


제1차 포에니 전쟁 이전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일부 자료에서 그의 가문이 카르타고 본국이 아니라 키레나이카키레네 출신이라는 언급이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장남 한니발 바르카 외에 차남 하스드루발 바르카, 삼남 마고 바르카가 있다.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넷째 아들이 있었다는 기록도 종종 보이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아들들 외에 딸도 세 명 두었는데, 장녀는 카르타고 원로원 귀족인 보밀카르[2]와 혼인하여 아들 한노#s-2.3를 두었다.[3] 차녀는 하밀카르의 부관으로 활약한 잘생긴 하스드루발[4]과 혼인했으며, 삼녀는 누미디아의 왕족인 나라바스와 혼인하였다. 참고로 세 딸들은 모두 한니발보다 나이가 많다.
제2차 포에니 전쟁 때 한니발을 제외한 카르타고 장군들의 한심하기 그지 없는 전적이 유명한데 제1차 포에니 전쟁 때도 카르타고 장군들의 실력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시칠리아에서 벌어진 육상전에서 로마군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 와중에 로마군과 어느 정도 겨뤄볼 능력이 있었던 거의 유일한 장군이 하밀카르였다. 하밀카르는 제1차 포에니 전쟁 말기에 시칠리아 전선의 육군 지휘관으로 파견되어 로마군이 접근하기 어려운 에릭스 산에서 해상 보급을 받으며 농성했고 불리한 전황 속에서도 뛰어난 전술적 역량을 발휘해 로마군을 저지하였으나 카르타고 해군이 아이가테스 제도에서 참패하자 강화 후 시칠리아에서 철수했다. 한편 카르타고가 전쟁 동안 고용한 용병들이 봉급을 받지 못하면서 리비아인들과 반란을 일으키자 진압군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반란을 평정하였다. 이때 누미디아 출신인 나라바스의 공이 컸는데, 나라바스는 초기에 반란에 가담했으나 곧 휘하 부대와 함께 하밀카르에게 투항하였고 그의 도움에 힘입어 하밀카르는 신속하게 반란군을 격파할 수 있었다. 덕분에 용병 반란 진압 후 나라바스는 공로를 인정받아 우티카의 영주로 임명된다.
그 뒤 하밀카르는 국력 회복을 위해 광산이 풍부한 이베리아 반도에 진출하여 아프리카와 인접한 해안가를 정복했다. 이때 이곳의 개발을 위해 식민 도시를 몇 개 세웠는데, 그 중 하나가 가문의 이름을 딴 바르셀로나다.[5] 이 과정에서 그곳의 원주민 세력을 성공적으로 자기 밑에 포섭하고 이베리아 반도 일대를 카르타고의 속주화하는 동시에 자기 일족의 세력 기반으로 삼았다. 하밀카르 자신은 이베리아 정복 전쟁 도중 전사했으나 그의 사위인 잘생긴 하스드루발이 그의 직위를 물려받고 카르타고 노바(오늘날의 카르타헤나)를 건설하는 등 에브로 강 이남에서 카르타고의 지배권을 굳건히 하였다. 나중에 그의 아들 한니발이 제2차 포에니 전쟁을 일으킬 수 있었던 기반도 다 여기에 있었다.
히스토리 채널에서 방영했던 한니발 편에서는 히스파니아 부족과 전투 중에 쫓기다가 장남인 한니발을 포함한 어린 아들들이 위험에 처하자 아들들을 보호하려고 적들을 유인하고는 말에 탄 상태로 물에 뛰어 들었다가 물에 떠내려가서 사망하는 걸로 나왔다. 하밀카르의 사망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다른 일화들이 전해지는데 그 중 하나를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하밀카르의 최후에 대해선 히스파니아에서 전사했다고 설명하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그 외에 하밀카르를 경계한 로마가 암살자를 파견해 죽였다는 설도 있다.
8살 된 장남 한니발을 바알 신의 앞에서 평생을 로마를 쓰러뜨리는 데 바치도록 맹세시켰다는 설이 있다. 국내에서는 먼나라 이웃나라가 이 이야기를 소개해 유명해졌으나, 신빙성은 낮다.
[1] 티레의 번개. 페니키아어로 하밀카르는 티레를 뜻하며, 바르카는 번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2] 카르트 하다쉬트 집정관까지 역임한 고관이다.[3] 이 한노가 칸나이 전투에서 누미디아 기병대의 지휘를 맡은 바로 그 사람이다. 말하자면 한니발의 조카인 셈.[4] 하밀카르 사후 그의 뒤를 잇게 되는 한니발의 매형이다.[5] 바르셀로나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논란이 있는데 바르카 가문의 이름을 따왔다는 견해도 있지만 이베리아 원주민어인 '바르케노'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후자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바르셀로나가 에브로 강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스페인의 카르타고 세력이 전성기에도 에브로 강 이북으로는 진출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전자의 주장을 부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