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 야구단

 

'''한성실업야구 연맹 초대 8개팀'''
금융조합연합회 야구팀
조선운수 야구팀
조흥은행 야구팀
경성전기 야구팀
남선전기 야구팀
조선전업 야구팀
삼국석탄 야구팀
중앙실업 야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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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5월, 대구시장기배 우승 당시 권백행 감독을 행가레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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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명
'''한국전력 야구단'''
모기업
한국전력공사
창단
1946년 (78주년)
등록포기
2002년 (22주년)
팀명 변천사
남선전기 야구단(1946년~1961년)
한국전력 야구단(1962년~2002년)
1. 소개
2. 유니폼
3. 선수생활을 했던 인물들


1. 소개


한국실업야구에서 활약했던 야구팀. 모기업은 한국전력공사였으며 당시 기사나 잡지등에서는 한전 야구단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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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전 야구단 유니폼
전신은 부산광역시에 본사를 둔 남선전기에서 만든 실업야구단인 남선전기 야구단[2]. 이때 경성전기 야구단과 전업 야구단도 함께 존재했었다. 해방후 최초의 "한성실업야구연맹"가임 8개팀중 3개팀이 바로 남선전기 야구단, 경성전기 야구단, 전업 야구단이었을정도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실업야구단이었다.
이후 남선전기 야구단이 4.19 혁명의 여파로 1961년 해체된 이후[3] 한국전력공사의 전신인 남선전기, 전업전기, 경성전기가 이전에 운영하던 전업 야구단, 경성전기 야구단[4], 남선전기 야구단의 3개팀을 합쳐서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962년, 본사가 한국전력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한국전력 야구단으로 팀명이 변경 되었다.
김명성,박영길, 황성록, 강태정등 당시 국가대표로도 참가했던 쟁쟁한 선수들이 버티고 있던 팀이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 실업야구에서 연고지가 도입되자 강원도를 광역연고로 삼고 활동했으며 실업야구의 맥이 끊기는 2002년에 제일유리 야구단과 함께 단 두개팀만 남게되자 두 팀이 같이 실업리그 등록을 포기했다. 이후 사내 사회인 야구단으로 남아서 활동중에 있다.
“한전야구단 마지막 감독 권백행”사라지는 실업야구, 그 끝에 있는 백재우 플레잉 코치[5]

2.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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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남전 야구단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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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말, 대구운동장 덕아웃 앞에서 포즈를 취한 남전 야구부. 뒷줄 왼쪽에서 세번째가 박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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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당시 유니폼
1977년 당시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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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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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3. 선수생활을 했던 인물들


  • 강태정
  • 김용운
  • 어우홍
  • 김동엽
  • 박영길
  • 김응용(1960 ~ 1961/남선전기 야구단 소속)
  • 유백만
  • 김명성
  • 최동원(1982)[6]
  • 임호균
  • 유두열
  • 이철성(1981)
  • 인호봉

[1] 구 남선전기 기업 로고.[2] 줄여서 "남전"(南電)야구단[3] 남선전기는 같은해 경성전기,조선전업과 통폐합된다.[4] 경전(京電) 야구단. 경전구락부라고 불렀다.[5] 백재우는 전주고 출신으로, 고향 팀 해태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실업야구에 남아 실업야구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6] 아마추어들이 참가하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 이적하였다. 소속 팀 롯데 자이언트가 프로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대회 끝나고 프로로 전향하면서 다시 롯데 입단. 이는 장효조,김재박 등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