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드 불라루즈
1. 개요
'식인종'이라는 별명이 있었던 네덜란드의 전 축구선수이다. 포지션은 센터백이었다.
2. 클럽 경력
2.1. 유스 시절~ RKC 발베이크
어린 시절 엑셀시오르, 아약스, 하를럼, AZ 등 여러 유소년 클럽을 전전하다가 2002년 RKC 발베이크에서 프로 데뷔했다. 그에게 기회를 준 감독은 한국 축구팬들에게 친숙한 마틴 욜 감독이었다. 2002년 3월 29일 헤렌벤과의 경기에서 데뷔했고 이후 주전으로 발돋움했다.
2.2. 함부르크 S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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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디비지에에서 두 시즌을 풀로 보낸 뒤, 분데스리가의 명문 클럽인 함부르크 SV로 이적했다. 함부르크에서 다니엘 반 부이텐과 함께 주전 센터백으로 나온 그는 거친 태클을 하는 수비수로 유명하여 '식인종(Khalid der Kannibale)'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와 함께 2시즌 동안 16개의 경고와 3번의 퇴장을 당했다. 그는 2005-06 시즌 함부르크가 리그 최소실점인 30실점만 기록하고 3위로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내는 데 일조하며 주가를 높였다.
2.3. 첼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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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중앙 수비수 영입에 관심을 보이던 첼시 FC로 이적했다. 이적료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850만 파운드(1,200만 유로)로 추정. 등번호는 9번. 초반에는 리버풀 FC와 FC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으나 무릎과 어깨 등에 부상을 당하며 주전 경쟁에서 밀려났다. 부상에서 돌아왔을 때 주전 센터백이던 히카르두 카르발류가 부상당했을 때도 미드필더 마이클 에시앙을 센터백으로 세웠다. 그리고 리그 37라운드 아스날 원정경기에서 첼시가 우승 희망을 이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상황에 선발 출장했는데 전반에 페널티킥을 내주고 퇴장당함으로써 선제실점의 빌미가 되었고 결국 1대1 무승부로 끝나 그대로 맨유의 우승이 확정되는 역적이 되었다. 첼시에서 한 시즌 동안 이렇다할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첼시 9번의 저주에 등재되고 말았다.
2007-08 시즌엔 라 리가의 세비야 FC로 임대되었으나 그곳에서는 첼시에서보다 더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고 단 8경기 출장에 그쳤다. 결국 다시 첼시에 돌아왔을 때 등번호조차 얻지 못하고 방출 명단에 오른다.
2.4. VfB 슈투트가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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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와 세비야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며 500만 유로의 이적료로 슈투트가르트로 이적하며 2년 만에 분데스리가로 복귀했다. 처음 세 시즌 동안 주전으로 자리잡지 못하다가 2011-12 시즌 되어서야 주전 센터백이 되었다. 2011년 9월 30일 FC 카이저슬라우테른을 상대로 슈투트가르트에서의 데뷔골을 넣었다. 하지만 재계약을 맺지 않고 시즌 후 슈투트가르트를 떠났다.
2.5. 이후 경력
슈투트가르트에서 떠나 스포르팅 CP와 2년 계약을 맺었으나 첫 시즌 11경기 출장에 그친 뒤, 다음 시즌 초반인 2013년 9월, 상호 합의하에 계약을 해지했다. 2013년 10월 덴마크의 브뢴비 IF와 2014년 여름까지 단기 계약을 맺었으나 그 곳에서도 부상 등으로 인해 13경기에만 나서며 재계약에 실패했다. 그리고 고국 팀인 페예노르트 로테르담과 1년 계약을 맺고 입단하여 2014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타팀으로 이적한 스테판 데 브라이, 브루노 마르쿠스 인디, 다릴 얀마트의 빈자리를 메웠다. 계약이 만료된 뒤 2016년 2월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경력
2004년 9월 3일 2006 FIFA 월드컵 독일 예선인 리히텐슈타인과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했다. 그리고 2006 FIFA 월드컵 독일 엔트리에 선발되며 국가대항전 본선에 데뷔했다. 그는 16강전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퇴장당한 선수 중 한 명이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거친 태클로 경고를 받은 뒤 루이스 피구에게 팔꿈치를 휘두르며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했다. 뉘른베르크의 전투 참조.
이후 첼시와 세비야에서 주전경쟁에서 밀려나 국가대표팀과도 멀어지기 시작했고 유로 2008 엔트리에서 제외되었으나 라이언 바벨의 부상으로 인한 대체 선발로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소속팀에서 경기에 나오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네덜란드가 치른 4경기에 센터백과 라이트백으로 모두 선발출장했고 죽음의 조 C조에서 전승으로 통과하는데 일조했다. 그러나 후술할 첫 딸아이가 사망하는 비극을 대회 도중에 겪게 되었고, 아픈 가정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의 8강전에 팀 전원이 왼쪽 팔에 검정 완장을 차고 선발출장하는 투혼을 보였지만 네덜란드는 1:3으로 패배하며 탈락하고 말았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회와 유로 2012에도 엔트리에 포함되었으나 헤이팅아와 마타이센 조합에 밀려 주전에서 밀렸고 2010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한 경기에 선발출장, 우루과이와의 4강전에 교체출장하는데 그쳤다.
4. 기타
- 모로코계이다.
- 2006년 12월 사비아 텔레와 결혼하였고 유로 2008 기간 중이던 2008년 6월 스위스에서 첫딸 아니사를 낳았으나 첫 딸아이를 조산으로 잃는 아픔을 겪었다. 2010년 둘째딸 아마야와 2011년 첫아들 다민을 얻었으나 2013년 사비아와 이혼을 선언했다.
- 전성기 한정으로 따진다면 역대 최고라고도 평가받던 외계인 시절의 호나우지뉴를 한경기지만 완벽하게 마크해낸 적이 있다.
[1] 라이트백으로도 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