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 S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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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mburger Sport-Verein e.V.'''
함부르크 SV
함부르크 SV II
함부르크 SV III

[image]
'''함부르크 SV'''
'''Hamburger SV'''
<colbgcolor=#ffffff> '''정식 명칭'''
Hamburger Sport-Verein e.V.
'''애칭 '''
HSV[1], Die Rothosen (붉은 바지)[2], Der Dino (공룡)
'''창단일'''
1887년 9월 29일
1919년 6월 2일[3]
'''소속 리그'''
'''2. 분데스리가 (2. Bundesliga)'''
'''연고지'''
함부르크
(Hamburg)
'''홈 구장'''
폴크스파르크슈타디온[4] (57,000명 수용)
(Volksparkstadion)
'''라이벌 클럽'''
'''FC 장크트 파울리 - 함부르크 더비'''
'''SV 베르더 브레멘 - 노르트 더비'''
'''회장'''
마르셀 얀센 (Marcell Jansen)
'''이사장'''
마르셀 얀센 (Marcell Jansen)
'''단장'''
요나스 볼트 (Jonas Boldt)
'''육성단장'''
호르스트 흐루베슈 (Horst Hrubesch)
'''감독'''
다니엘 튠 (Daniel Thioune)
'''주장'''
팀 라이볼트 (Tim Leibold)
'''역대 한국인 선수'''
손흥민 (2010~2013)
황희찬 (2018~2019/임대)

'''공식 웹 사이트'''

'''한국 팬 사이트'''

'''지난 시즌 성적
(2019-20 시즌)
'''
2. 분데스리가 4위
'''우승 기록 '''
''''''
'''독일 챔피언십 (1부)'''[5]
(3회)
1923, 1928, 1960
'''북부 독일 챔피언십 (1부)'''[6]
(10회 / 최다 우승)
1921, 1922, 1923, 1924, 1925, 1928, 1929, 1931, 1932, 1933
'''가우리가 노르트마르크 /
가우리가 함부르크 (1부)
'''[7]
(5회)
1937, 1938, 1939, 1941, 1945
'''오버리가 북부 (1부)'''[8]
(15회 / 최다 우승)
1948, 1949, 1950, 1951, 1952, 1953, 1955, 1956, 1957, 1958, 1959, 1960, 1961, 1962, 1963
''''''
'''분데스리가 (1부)'''
(3회)
1978-79, 1981-82, 1982-83
'''DFB-리가포칼'''
(2회)
1972-73, 2003-04
'''DFB-포칼'''
(3회)
1962-63, 1975-76, 1986-87
'''UEFA 챔피언스 리그'''
(1회)
1982-83
'''UEFA 컵 위너스컵'''
(1회)
1976-77
'''UEFA 인터토토 컵'''
(2회)
2006, 2008
'''클럽 기록 '''
'''최고 이적료 영입'''
필립 코스티치 (Filip Kostic)
(2016년, From VfB 슈투트가르트, 1400만 €)
'''최고 이적료 방출'''
나이젤 데 용 (Nigel de Jong)
(2008년, To 맨체스터 시티 FC, 1800만 €)
'''최다 출장'''
만프레트 칼츠 (Manfred Kaltz) - 679경기 (1971-1989 / 1990-1991)
'''최다 득점'''
우베 젤러 (Uwe Seeler) - 507골 (1953-1972)


'''2020-21 시즌 골송'''[9]
1. 개요
2. 역사
2.1. 화려한 전성기 (1978~1983)
2.2. 함부르크 리빌딩의 늪
3. 정규 시즌
3.1. 2011-12 시즌
3.2. 2012-13 시즌
3.3. 2013-14 시즌
3.4. 2014-15 시즌
3.5. 2015-16 시즌
3.6. 2016-17 시즌
3.9. 2019-20 시즌
3.10. 2020-21 시즌
4. 응원가
4.1. HSV Forever
5. 여담
5.1. 2017-18 시즌 강등 이후
6. 팀 위상
7. 라이벌
8. 엠블럼
9. 홈 구장
10. 1군 선수단
11. 과거 유명선수
12. 같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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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 2. 분데스리가 (2. Bundesliga)에 소속된 프로축구 클럽으로, 1887년 9월 29일에 창단되었다. 2017년까지 분데스리가 원년 소속클럽중 유일하게 강등경험이 없이 쭉 참가해왔던 클럽이었다. 독일어 발음으로는 HSV (하에스파우) 라고 불린다
오랜 역사를 지닌 명문 클럽으로, 연고지는 함부르크. 정식 명칭은 함부르거 슈포르트-페어라인(Hamburger Sport-Verein, 함부르크 스포츠사단법인)이고, 줄여서 HSV라고도 한다. 팀의 애칭은 로트호젠(Rothosen, 빨간 바지).[10]
독일의 많은 축구 클럽들과 마찬가지로, 종합 스포츠 클럽이다. 축구팀 외에 복싱, 탁구, 나인핀스볼링(nine pins bowling), 배드민턴, 야구, 볼링, 핸드볼, 하키, 어린이체조, 육상, 럭비, 수영, 테니스, 인라인하키, 아이스하키, 댄스, 당수(唐手)팀이 있다. 핸드볼 팀은 윤경신이 뛰기도 했다.

2. 역사


공식적인 창단일인 1887년 9월 29일은 훗날 HSV를 이루게 되는 세 팀들 중 가장 먼저 창단된 SC 게르마니아라고 하는 팀의 창단일로, 1919년 6월 1일에 SC 게르마니아, 함부르크 FC, FC 팔케(FC Falke)의 세 팀이 합병하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2.1. 화려한 전성기 (1978~1983)


1978년부터 1983년까지 6시즌 동안 함부르크 SV는 분데스리가 최고의 강팀이자, 유럽을 대표하는 강팀으로 군림했다. 이 6시즌 동안 함부르크는 분데스리가 3회 우승 및 3회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 컵 우승(1980년) 및 준우승(1983년)을 차지하고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했으며, UEFA 유로파 리그의 전신으로 당시에는 권위가 높았던 UEFA컵에서 준우승(1982년)을 거두는 등 유럽 대회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영광의 시기를 보냈다.
이 시절 브란코 제베치 감독과 에른스트 하펠 감독이라는 두 명장의 지휘 아래 케빈 키건[11], 펠릭스 마가트, 만프레드 칼츠, 호르스트 흐루베슈 등이 활약했다. 특히 케빈 키건은 1978년, 79년 2년 연속 발롱도르를 차지했다. 이전까지 분데스리가를 양분하던 양대 강팀인 바이에른 뮌헨과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의 전성기가 끝나며 세대 교체기에 접어들 당시 곧바로 함부르크가 그 자치를 차지하며 70년대말부터 80년대 전반기까지 분데스리가의 최강팀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바이에른 뮌헨이 칼 하인츠 루메니게를 중심으로 팀을 제 정비하여 도전해 왔다. 70년대말 한때 경륜의 뮌헨에 밀리는 듯 하였고, 설상가상으로 키건이 잉글랜드로 돌아가려는 열망이 강해 결국 사우스햄튼으로 이적했다. 하지만 함부르크의 진정한 전성기는 키건 이적 이후에 찾아왔다. 1980년부터 1983년 사이 함부르크는 2년 연속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했고 유러피언 컵에서는 1980년에는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1983년 마침내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UEFA컵에서도 1982년 준우승을 차지했다.
참고로 미국에서 뛰던 카이저 베켄바우어가 이 시절 함부르크에 입단하며 분데스리가 복귀했고 함부르크가 바이에른 뮌헨을 꺾고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하는데 일조했다. 하지만 이미 끝물이 지난 베켄바우어는 함부르크에서 풀주전은 아니었고 로테이션 멤버로 기용되었다.
하지만 1984년 이후 다시 분데스리가 정상에 등극한 바이에른 뮌헨에 밀리기 시작했고, 1987년 DFB-포칼에서 우승 및 분데스리가 준우승을 차지한 것을 끝으로 별다른 성적을 거두지 못 하였고 1990년대에는 중위권을 유지해왔다. 이후 토마스 돌감독을 선임하고 빅네임이었던 라파엘 반 더 바르트를 영입한 2005-06시즌 시즌에는 21승 5무 8패를 기록하며 3위를 차지했다.
2007-08 시즌에는 4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2.2. 함부르크 리빌딩의 늪


이사진 내부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운영이사회장 베른트 호프만이 팀을 운영하던 21세기 초반에는 유러피안 클럽 대항전에 자주 모습을 보이던 팀이었다. 그러나 2010년대 즈음 어려움을 겪으며 컵 대회에 나가지 못하기 시작하자 결국 호프만이 물러나고 첼시에서 스카우팅 및 유스 담당 디렉터로 일하던 프랑크 아르네센이 새로이 합류했다. 그는 본인의 친정인 첼시 FC의 2군 유망주, 특히 수비 자원들을 임대 혹은 완전 영입하며 리빌딩에 나섰는데 '''태반이 거품들이라 결국 수비진이 완전히 붕괴됐다'''. 아울러 비슷한 시기 팀에 활력을 불어넣겠답시고 제 호베르투등 베테랑들을 대폭 내보낸 것이 팀이 흔들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결국 아르네센은 2013년 물러났고[12]팀은 2013-2014 시즌부터 승강 플레이오프에 나가게 됐다. 2014-2015 시즌까지 승강 플레이오프를 겪었고, 그 후 2015-2016 시즌 중위권에 머물고, 2016-2017 시즌엔 턱걸이 잔류에 성공했다. 이사회의 일원으로 투자하는 팬이라는 미명하에 구단 운영에 간섭을 해오던 미하엘 퀴네의 영향력이 커지고 유스 시스템을 결집하려던 HSV 캠퍼스[13] 건립이 지연되는 등 여러모로 힘들다. 결국 샬케 04의 단장을 지낸 옌스 토트 단장을 영입해 리빌딩을 시도하며 조나단 타, 얀피에테 아르프등을 키워 냈지만 팀은 결국 2017-18 시즌 17위로 강등당하며 이 리빌딩 시도는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3. 정규 시즌



3.1. 2011-12 시즌


초반부터 고전하고 있다. 바이에른 뮌헨에게 리그 원정에서 0:5으로 대패를 당했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원정에서 1:3로 패했다. 안방 경기에서도 헤르타 베를린 경기에서 손흥민이 리그 첫 골을 기록했지만 2:2로 비겼고 하위권이던 FC 쾰른과의 8월 27일 안방 경기에서도 손흥민이 2호골, 역전골을 기록했지만 맥빠진 수비를 보이며 3:4로 역전패, 초반부터 리그 18위로 추락했다.
그리고 이어서 베르더 브레멘 전에서는 2:0 패배, 묀헨글라트바흐에겐 1:0 패배로 0승 1무 5패로 강등권을 벗어나지 못 하고있다. ...자칫 잘못하면 역사상 강등이 없던 함부르크는 곧...
이에 결국은 감독인 미하엘 외닝이 경질되었다. 성적이 성적인만큼 경질은 당연해보이나, 본질적인 문제는 감독인 외닝이 아닌 단장인 프랑크 아르네센이란 지적이 있다. 이유인즉슨, 첼시 디렉터 출신인 아르네센이 분데스리가에 대해 무지할 뿐더러 팀을 첼시 유스 출신들로 가득 채워 첼시 2중대로 비판받고 있는 상황.
외닝 경질 후 로돌포 카르도소 감독 대행 체제로 치러진 첫 경기에서 슈투트가르트 원정에서 2:1로 이기며 시즌 첫 승을 올렸다. 그러나 카르도소 감독대행은 지도자 자격증이 없어 2경기 만에 물러나게 되었고, 아르네센 단장이 임시 감독이 되었다. 아르네센 임시 감독 하에서 프라이부르크 원정에서 손흥민의 시즌 3호골을 포함, 2:1로 이겨 시즌 두 번째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새 감독으로 FC 바젤의 감독이었던 토르스텐 핑크가 발탁되었다. 토르스텐 핑크 감독이 부임한 후 남은 전반기 8경기에서 2승6무로 무패를 기록했다. 전반기는 4승7무6패, 13위로 마감했다. 외닝 경질 후 4승 6무 1패의 성적을 거두며 외닝 감독의 처참했던 초반 6경기와 비교하면 발전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후반기 첫경기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홈경기에서 레반도프스키와 브와시치코프스키에게 2골씩을 허용하며 1:5 대패를 당했다. 9경기 무패도 끝. 종료 4분 전 게레로가 만회골을 넣으며 영패는 겨우 면했다.
2012년 2월 5일 바이에른 뮌헨과 경기에서 손흥민이 결정적인 찬스를 놓치면서 1:1 무승부를 거뒀다. 그리고 27차전까지 6승 9무 12패로 16위 강등권에 여전히 머물러있다. 그나마 13위와 승점 차가 1점뿐이라 강등권 탈출 희망이 있긴 하지만.
결국 마지막 라운드를 남겨두고 15위로 아슬아슬하게 잔류를 확정지었다. 하지만 2001-02 시즌 11위 이후로 10년만에 리그 10위 바깥으로 내려간 부진을 보였다.
이번 시즌에 파올로 게레로와 믈라덴 페트리치 등 주력 공격수가 팀에서 나갈것이 거의 확실화되면서 손흥민의 다음시즌 선발 출장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덕분에 국내팬들은 다음시즌만 오매불망 기다리는 중.
국내팬들은 이 시즌을 계기로 함부르크에 대해 알게 된 경우가 많으므로 막장, 허접팀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구단에서는 리빌딩 기간으로 생각하고 있고, 베테랑들을 심하게 내보낸 여파도 크다. 제 호베르투 정도만 남았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텐데.

3.2. 2012-13 시즌


놀랍게도 라파엘 판데르파르트가 이적해왔다. 공격 전개가 헬이었던 함부르크의 한줄기 희망이 될 것으로 전망이 된다.
그리고 기대 속에 시작된 시즌. 함부르크는 초반부터 뭉개졌다. DFB 포칼에선 64강에서 3부리그 카를스루에 SC에게 2:4로 패하면서 일찍 탈락해버렸다. 곧이어 열린 시즌 첫 경기 뉘른베르크와의 안방경기에서 0:1 패배를 시작으로 베르더 브레멘 원정, 프랑크푸르트 원정에서 연속으로 지면서 3연패로 강등권으로 추락해버렸다.
그러다가 마침내 4차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안방경기를 3:2로 이기면서 시즌 첫 승을 기록했다. 전 시즌 우승팀을 상대로 거둔 승리라는 점과 같이 손흥민이 2골을 기록하며 3골로 팀내 득점 1위로 올라섰기에 한국 축구팬에겐 인상적인 경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 승리로 15위로 강등권을 벗어났다. 그 뒤 뮌헨글라드바흐 원정에서 2:2, 하노버 96을 안방에서 1:0, 그로이터 퓌르트 원정에서 손흥민 골로 1:0으로 이기면서 7차전을 치룬 현재 리그 8위까지 급속도로 순위가 올랐다. 스튜트가르트에 홈에서 0:1로 패하였으나, 아우크스부르크 원정을 0:2로 승리하며 유럽 대항전의 희망도 조금씩 생기고 있다.
그 뒤로, 경기마다 1~2골차 승리를 찔끔찔끔 쌓아가더니 2013년 2월 9일(한국시간) 아르툠스 루드네우스손흥민 투톱이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원정경기임에도 불구하고 4:1로 설맞이 관광을 보내버린다.(물론 이날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병크가 매우 큰 역할을 했다.)

현재 승점 30점으로 리그 5위를 달리는 중이지만, 한 경기 덜 치룬 15위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와의 승점차가 7점에 불과하다. 사실상 이번 시즌 분데스리가가 압도적 1위 바이에른 뮌헨과 강등권 팀들 만이 순위가 확정적이라고 할 수 있고, 2위 경쟁에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바이어 04 레버쿠젠,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한 단계씩 순위 1점차로 치열하다. 4위권 아래는 앞서 말한대로 5위와 15위의 차이가 7점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전국시대
하지만 27라운드 바이에른 뮌헨 원정에서 2:9라는 치욕스러운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함부르크가 7골차 패배를 당한 것은 구단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최종순위는 7위. 유로파리그 진출권이 걸린 6위와 3점차로 거둬서 좀 아쉽게 되었다. 게다가 득점 랭킹 1위인 손흥민아르툠스 루드네우스(둘 다 12골이지만 출전경기가 1경기 적은 손흥민이 1위)가 떠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결국 2013년 6월 13일 손흥민은 레버쿠젠으로 이적했다. 그나마 루드네우스가 남았지만 13-14 시즌 부상으로 골을 1골도 터뜨리지 못하고 있다.

3.3. 2013-14 시즌


손흥민이 떠나면서 한국에선 무관심이 되어버린 가운데 13-14시즌은 아주 부진하다.12차전까지 3승 3무 6패로 리그 14위까지 추락했다. 더불어 12차전에선 손흥민에게 해트 트릭을 당하면서 3:5로 패했다. 이후 연이은 부진 속에 24차전까지 5승 5무 14패를 기록하여 17위 강등권으로 더 추락했다. 현 팀의 상황은 공격과 수비의 불균형이다. 공격수 라소가를 필두로 한 칼하노글루, 반 더 바르트, 바이스터 등이 자리잡은 공격진은 '''매우 훌륭하다'''. 라소가는 11골을 기록했고, 신성 칼하노글루는 7골 3도움으로 많은 팀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수비진은... 아들러-얀센-베스터만을 제외하면 구멍.[14]주루, 라이코비치, 디크마이어, 맨시엔 등은 잉여 전력 수준이고, 결국 백업인 지 긴 람과 17살 타가 경기를 뛰는 상황이 온다. 타-라소가-칼하노글루 유망주 라인은 좋지만, 하루빨리 믿음직한 수비수의 영입이 필요.
32차전까지 7승 6무 19패로 16위를 기록, 일단 한숨돌렸으나 17위와 승점 차가 1점,18위와 2점차라 남은 2경기 여부에 따라 강등당할 수도 있다. 15위와 5점차라서 아무래도 16위로서 잔류 & 강등 플레이오프(분데스리가는 16위와 2부리그 3위가 2경기를 치뤄서 강등 여부가 결정)를 치룰 듯.
결국 33차전 바이에른 뮌헨과의 안방경기에서 1-4로 털리면서 15위 슈투트라르트랑 5점차로 승점이 벌려지면서 마지막 34차전을 이겨도 16위에 그치게 되었다. 하지만 마지막 34차전도 밝지 않는데 리그 7위를 확정지은 마인츠 05 원정경기이기 때문이다. 올 시즌 안방경기에서는 마인츠에게 2-3으로 패했다. 하지만 골득실에서 앞서 있기 때문에 뉘른베르크와 브라운슈바이크가 함부르크보다 높이 위치하려면 함부르크가 승을 거두지 못하면서 자신들은 무조건 승리가 필요한 상황이라 상황이 그리 비관적이지는 않다. 특히 함부르크, 뉘른베르크, 브라운슈바이크의 34라운드 경기는 모두 원정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2부리그로의 강등 경험이 1번도 없이 개근 기록을 이어오고 있는 유일한 팀이기 때문에 이번 강등위기가 최대 굴욕이 될 듯.
하지만 함부르크와 똑같이 1부 리그 개근 기록을 쌓고 있는 프리메라 리가아틀레틱 빌바오도 2006/07 시즌에 강등 위기에 처했다가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해 리그 17위로 기사회생하기도 했다. 힘내자.
결국 34라운드 최종전 결과 16위를 차지한 함부르크는 분데스리가 2에서 3위를 거둔 SpVgg 그로이터 퓌르트와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었다. 그리고 경기 결과 2경기 모두 비겼으나 원정에서 1-1로 비긴 덕분에(안방은 0-0) 원정득점 우위로 겨우 리그 잔류에 성공했다.

3.4. 2014-15 시즌


임대한 요한 주루, 피에르-미셀 라소가를 각각 350만 유로, 800만 유로를 주고 완전 영입하였다. 그리고 하칸 칼하노글루를 레버쿠젠에 1400만 유로로 팔았다. 이어서 발론 베라미를 영입했고, 오스트르졸렉, 니콜라이 뮐러 영입과 근접해지며 이번 시즌엔 희망이 보이고 있다. 8월 5일 450만 유로를 주고 니콜라이 뮐러를 영입하였다. 마티아스 오스트르졸렉의 영입도 완료했다. 카차르, 스켈브레드 등등이 모두 팀에 복귀한 상황.스켈브레드는 헤르타 베를린으로 이적했다. 감독 역시 지난 시즌 잔류를 이끌었던 미르코 슬롬카 감독이지만, 초반에 승격팀들을 상대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 경질되었고 그 후임으로 2군팀의 감독으로 무패를 기록하던 요제프 진바우어가 선임되었다. 도르트문트 원정에서 승리하고 뮌헨과의 홈경기는 비겼으며 홈에서 레버쿠젠을 난투극에 가까운 거친 플레이로 잡아내는 성과가 있었다. 일단은 14위를 기록하며 강등권에서 벗어나 전반기를 마쳤다. 일단은 한숨 돌린 상황.
리그 후반기 첫 경기인 쾰른과의 홈 경기는 2:0으로 패했다.
19라운드, 파더보른 원정 경기에서 3:0으로 승리하며 전반기에 파더보른에게 당했던 패배를 설욕했다. 경기 시작 8초 만에 마르셀 얀센이 페널티킥을 얻어내며 분데스리가 사상 최단 시간 내 페널티킥을 얻어내는 기록을 세웠다.
20라운드, 하노버와의 홈 경기에서 2:1로 승리하면서 시즌 첫 2연승에 성공했다.
21라운드, 올리치와 루드네브스를 투톱으로 기용하고 새로 발굴한 측면 수비수인 아스톤 괴츠와 마르코스를 기용하여 바이에른 뮌헨과 맞섰다. 결과는 측면과 중앙이 모두 붕괴하며 '''8:0'''으로 완전히 털렸다. '''클럽 역사상 최다 점수 차 패배 기록'''이 갱신된 것은 덤(...) 뮌헨의 괴체와 로벤은 신예들이 감당할 수준의 날개 공격수들이 아니었고[15]집중력이 측면에 쏠린 사이 중앙도 무너지는 모습이었으며 올리치와 루드네브스는 제공권에서 완전히 밀리면서 뮌헨 원정에서의 참사를 이어갔다.
22라운드 묀헨글라드바흐와의 홈 경기에서는 선제골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추가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한 골을 내주면서 무승부를 기록했다. 어느 정도 대패의 충격에서 벗어나는데는 성공했지만 함부르크 입장에서 너무도 아쉬운 경기였다. 특히 묀헨 글라드바흐의 공세가 두드러졌던 전반 극초반을 제외하고는 함부르크가 압도했기에 더더욱..
이후 프랑크푸르트에게 2:1로 패했고, 도르트문트에게 거친 경기 끝에 0:0로 무승부를 기록하며 24라운드 현재 15위에 위치해 있다. 주전급 선수들의 줄부상이 꽤나 뼈아픈 상황.
25라운드, 호펜하임 원정에서 3:0으로 패했다. 애매한 판정으로 골키퍼 드로브니가 퇴장 당하면서[16]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내준 후에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다. 조직력 문제를 드러낸 경기.
26라운드 베를린과의 홈 경기도 패하며 바이에른전 참패 이후 6경기째 무승을 기록하고 있다...강등권 팀들과의 승점 차이도 크지 않고 이번 시즌 남은 경기도 8경기에 불과해 위험한 상황. 결국 이 경기 이후 요세프 친바우어 감독을 경질했다. 당분간은 팀 단장인 피터 크나벨이 감독 대행으로 나서게 된다.
27라운드 레버쿠젠에게 4:0 대패를 당한 이후 토마스 투헬감독을 영입하려던 시도를 완전히 접고 브루노 라바디아 감독을 발빠르게 선임하여 강등 전쟁을 준비했다.
이번 시즌은 저번 시즌과는 정반대로 수비력은 준수하고 공격력이 심히 약해졌다... 마르셀 얀센의 기량 하락[17]피에르-미헬 라소가의 부진, 아르티욤스 루드네브스의 여전한 부진, 라파엘 반 더 바르트의 기량 하락 등이 맞물려 니콜라이 뮐러 정도를 제외하면 빈공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수비에선 노장 야로슬라프 드로브니가 각성.

30라운드까지 28점으로 16위를 기록중인데 전번 시즌에 이어 강등 걱정을 해야할 지경이다. 18위 꼴지랑 승점 차가 겨우 1점차이기 때문. 반대로 14위랑 2점차라서 남은 4경기 여부에 따라 잔류도 가능하겠지만. 첫 강등을 당할지 아니면 2회 연속으로 아슬아슬하게 잔류할지 관심사.
32라운드까지 32점으로 14위를 기록하고있다. 33라운드인 17위 슈투트가르트와의 경기결과에 따라 잔류여부가 결정된다.
그러나 33라운드 슈투트가르트전 원정경기에서 1:2로 패배해 순위가 뒤바꿔지며 17위로 미끄려졌다.....
아직 한 경기도 남았고 강등 확정은 아니지만 마지막 경기에서는 꼭 이겨야 하는데 문제는 그 상대가 샬케.... 샬케로서도 마지막 경기를 쉬엄쉬엄할 가능성이 없는데 5위자리를 두고 2점차로 추격중인 아우크스부르크를 제치자면 반드시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챔스리그 진출권을 얻은 4위 레버쿠젠이랑 13점이나 벌어졌지만 그나마 유로파리그 본선으로 갈 5위라도 따내야 하기 때문. 6위는 유로파리그 플레이오프 진출권이 주어지기에 경기 수를 더 줄이며 여유롭게 다음 시즌을 준비하려면 5위를 확정지는게 낫기 때문이다.
게다가 샬케를 어찌어찌 이기더라도 다른 팀들의 경기 결과를 따져봐야 한다. 우선 최하위 파더보른이 슈투트가르트를 이기거나 비겨야 하고, 프라이부르크와 하노버가 무승부를 거둬선 안된다. 그래야만 함부르크의 잔류가 가능하다.
하지만 샬케를 홈에서 2:0으로 이겼다! 하노버가 프라이부르크를 2:1로 이겨 함부르크 대신 프라이부르크를 강등시켰지만 슈투트가르트가 파더보른에게 1:2로 이기는 바람에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뤄야 한다.
승강 플레이오프의 상대는 2. 분데스리가에서 3위를 기록한 카를스루에 SC로 결정되었다. 1차전은 5월 28일에, 2차전은 6월 1일에 열릴 예정이다.
함부르크의 홈에서 열린 1차전은 1:1 무승부로 끝났다. 4분만에 선제골을 내주며 끌려갔지만, 후반 28분 이보 일리세비치의 동점골이 터지면서 무승부. 하지만 홈경기에서 무승부에 그쳤고, 골대 강타를 두 번이나 허용하는 등 불안한 전력을 드러냈다. 2차전 원정이 꽤 부담스러울 것이다.
운명의 2차전, 함부르크는 또다시 선제골을 내주고 만다. 그것도 종료를 불과 12분 앞둔 시점에서 골을 허용했기 때문에 강등의 암운이 드리워진 상황.
그러나 신은 함부르크의 편을 들어주었다. 팀에 들어온 이후 부상으로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 했던 마르셀로 디아즈가 인저리 타임에 극적인 프리킥으로 자신의 데뷔골이자 동점골을 터뜨린 것. 앞서 상대의 결정적인 슈팅을 온 몸으로 막아낸 바 있는 디아즈의 활약 덕분에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갈 수 있었다.
두 팀은 연장전에서 전쟁을 방불케 하는 혈투를 펼쳤다. 그러던 와중, 연장 후반 10분에 함부르크 공격수 니콜라이 뮐러의 역전골이 터졌다! 드디어 리드를 잡은 함부르크. 이제 5분만 버티면 잔류를 확정지을 수 있었다.
다급해진 카를스루에는 막판 파상공세를 펼쳤는데 그 덕분인지 요한 주루의 핸드볼 파울을 유도해 내며 페널티킥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레네 아들러의 선방에 막혀버렸고, 경기는 함부르크의 2:1 역전승으로 마무리 됐다.[18]
챔스 결승을 방불케하는 명승부 끝에 극적으로 잔류를 확정한 함부르크.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 한 번도 강등되지 않은 팀이라는 명예를 계속 유지하게 되었다.

3.5. 2015-16 시즌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였던 저번 시즌과는 달리 이번 시즌만큼은 강등권 싸움을 피하고자 피터 크네벨을 단장으로 선임하고 브루노 라바디아 감독을 앞세워 팀을 재개편하는 중이다. 팀에서의 입지에 비해 기대 이하였고, 고연봉을 수령하던 라파엘 반 더 바르트가 결국 팀을 떠났고, 시즌이 진행될수록 폼이 떨어지고 주루와 불화설까지 생긴 발론 베라미, 재계약을 거부하던 고연봉자 마르셀 얀센이 팀을 떠났다. 얀센은 이후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은퇴를 결정한다. 한 때 주장직을 수행하던 하이코 베스터만도 반 더 바르트를 따라 레알 베티스에 합류한다. 주전급이 아닌 선수들은 자유 계약으로 처리했다. 잦은 부상에 시달리던 막시밀리안 바이스터는 결국 1.FSV 마인츠 05로 이적하게 된다. 전 시즌 2군에서 활약하던 기데온 융이 1군으로 승격했고 동시에 스웨덴 국가대표 미드필더 알빈 에크달칼리아리에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수비수 사카이 고토쿠VfB 슈투트가르트에서, 그리고 TSG 1899 호펜하임스벤 시플로크, 미하엘 그레고리치 등의 신예들을 영입함으로써 이번 시즌은 결코 굴욕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간접적으로 표명했다.
그러나 수비 유망주 조나단 타바이어 04 레버쿠젠에게 빼앗긴 점은 상당히 위험하다.
한국의 올림픽 국가대표 레프트백인 서영재를 영입했다. 2군에서 시작하며 아마추어 최고 대우라고 한다.
DFB-포칼 1라운드에서 '''4부 리그'''[19] 소속의 FC 카를 차이스 예나에게 연장전까지 이어지는 졸전 끝에 2-3으로 치욕적인 패배를 당하며 탈락했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분데스리가 개막전,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서 5-0으로 패배했다. 물론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패배하지 않을 수 있는 팀은 사실상 분데스리가에는 몇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시즌 개막전에 저런 큰 점수차로 패배한 것과 2연패라는 사실이 이번 시즌도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힘든 여정이 될 것이란 사실을 암시한다.
2라운드 VfB 슈투트가르트 전에서는 3:2로 시즌 첫 승을 거두었다.
3라운드 1.FC 쾰른 전에서는 홀트비가 선제골을 넣었지만 동점골을 내주고 에미르 스파히치가 퇴장 당하며 통한의 페널티킥 역전골을 먹었다. 레네 아들러가 중간에 교체된 것으로 보아 부상으로 보이며 실제로 다음 경기에서 야로슬라프 드로브니가 출격했다.
이후 분노의 영입으로 아론 헌트VfL 볼프스부르크에서 영입했다. 팀에 제일 필요한 제대로 된 공격형 미드필더가 드디어 영입됐다.
4라운드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원정에서 안정적인 수비와 라소가의 상대 백 패스를 가로채는 선취골과 특유의 내리찍는 헤딩골), 골키퍼 드로브니의 롱 패스로 상대 골키퍼 얀 좀머의 키를 넘긴 공을 밀어넣은 니콜라이 뮐러의 쐐기골로 3:0 승리를 낚았다. 이로써 최근 2년 간의 부진한 출발에서 벗어났다. 반면 지난 시즌 강력했던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는 챔스 일정이 시작되기 전 컵 대회 포함 5연패의 나락에 빠졌다.
5라운드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의 홈 경기에서는 0:0으로 비겼다.
그러던 중 1군에서 경질 된 이후 2군 감독으로 복귀하여 서영재 선수를 영입했던 요세프 친바우어 감독이 FC St. Gallen 감독으로 이적한 모양이다. 2군 감독으로 복귀 시켰던 함부르크가 차기 감독으로 지도력을 확인하려 했던 것으로 보이나 어찌된 내막인지는 아직 불명.
6라운드에서 잉골슈타트를 그레고리치의 골로 꺾으며 다시 상위권 순위로 드디어 도약했다.
7라운드 홈에서 샬케 04와의 경기에서 후반 60분 샬케의 레로이 자네의 골로 0:1로 패하며 다시 중위권으로 내려갔다.야로슬라프 드로브니의 골킥이 불안하다가 결승골의 원인이 되었다. 아론 헌트의 적응과 루이스 홀트비의 측면 존재감이 문제점으로 드러난 경기..
8라운드 원정 헤르타 베를린 전에서는 3:0으로 지며 2연패를 당했다.
9라운드 바이어 레버쿠젠과의 홈 경기에서 0:0으로 무를 캐 12위로 마크 되었다.
10라운드 호펜하임원정전에서 전반적으로 우세한 모습과 안정된 수비로 1:0 승리. 투톱의 가능성을 본 경기.
11라운드 하노버 96과의 홈경기에서 선제골을 넣고 경기를 주도했지만 후반전에 잠시 밀릴 때 pk골과 결승골을 내주며 졌다. 홈 팬들의 야유가 터졌던 경기.
12라운드 SV 다름슈타트 98 원정에서 1:1로 비겼다.
13라운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홈에서 3:1로 이겼다. 도르트문트에게 치욕적인 경기였다. 비록 A매치 기간 이후여서 주축 선수들의 컨디션이 완전하지는 못했지만 전체적으로 종반을 제외하고 도르트문트 특유의 간결한 패스와 압박이 나오지 않았다. 함부르크의 현재까지 가장 완벽했던 홈 경기로, 국내 중계진은 함부르크가 도르트문트처럼 한 경기로 평가했다. 루이스 홀트비의 부활이 보인 경기. 사카이 고토쿠도 안정적인 수비로 측면의 구멍을 잘 막았다. 경기 막판에 상대의 파상 공세를 여러 번 막아낸 아들러의 선방도 백미.
14라운드 북독 더비 원정에서 3:1로 이겼다. 2연승을 했고 드디어 브레멘 원정 8회 연속 무승 기록을 깼다.
15라운드 마인츠 05 홈에서 1:3으로 졌다.
16라운드 VfL 볼프스부르크 원정 경기에서 1:1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힘겹게 승리를 거둬 다소 지친 상태였던 볼프스부르크를 맞아 승점을 따 내는데 성공했다. 이제 전반기도 단 한 경기만 남은 상황.
17라운드 FC 아우크스부르크와의 홈 경기에서 0:1로 졌다. 이로서 전반기는 10위로 마무리했다.
겨울 휴식기 동안 라바디아 체제 하에서 중용을 받지 못 했던 마르셀로 디아즈가 셀타 비고로 이적했고, 졸탄 슈티버가 1.FC 뉘른베르크로 임대 이적했다.
18라운드 후반기 개막전에서 바이에른 뮌헨에게 2:1로 패했다.
괜찮은 경기력을 보여주었기에 이대로 전력을 유지한다면 후반기 상황이 크게 나빠지지는 않을 듯. 그러나...
19라운드 VfB 슈투트가르트 원정에서 2:1로 패했다. 헌트의 자책골이 뼈아팠던 경기.
하위에 위치한 팀들이 바짝 추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2연패하며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20라운드 1.FC 쾰른과의 홈 경기에서 1:1로 비겼다. 3경기 연속 무승을 기록하면서 순위가 2계단 하락했다. 분위기의 반전이 절실하다.
그리고 마침내 21라운드, 리그 상위권인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의 접전 끝에 3:2로 승리하며 후반기 첫 승을 신고했다. 초반 드르미치의 일단 때리고 본 슈팅이 굴절되고 클레베르의 거둬내기 방향이 잘못되어 파워 역습으로 선제골을 내주었으나 곧 경기를 주도하더니 기어코 이긴 경기.
22라운드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의 원정전에서 0:0으로 비겼다. 글라드바흐전에서 체력을 소모한 탓인지, 부진에 빠져있는 프랑크푸르트를 꺾지 못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23라운드 홈에서 FC 잉골슈타트 04를 맞아 1:1로 비겼다. 묀헨글라드바흐에서 임대 이적한 드르미치의 데뷔골이자 선제골로 앞서 나갔지만 버텨내지 못 하고 후반전 들어 실점하면서 2경기 연속 무를 캤다.
24라운드 샬케 04와의 원정전에서는 3:2로 패했다. 먼저 2골을 넣고 앞서다가 뒷심 부족으로 3골을 얻어맞고 역전을 당하고 말았다. 후반기 들어서는 잡을 수 있는 경기도 여럿 놓치는 바람에 단 1승밖에 챙기지 못했기 때문에, 분발이 필요한 상황이다.
25라운드 헤르타 BSC와의 홈 경기에서 홀로 두 골을 넣은 니콜라이 뮐러의 대활약에 힘입어 2:0으로 승리를 거뒀다.
중간평을 해보자면 경기력의 많은 부분에서 개선이 이루어졌다. 미드필더들의 연계가 살아났고 공격력도 당연히 올라갔다. 다만 최전방 공격수들의 무게감이 떨어지고 있고 중앙수비수들이 가끔 대형 사고를 친다는 흠이 있다. 강팀에게 강하지만 약팀을 끔살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모든 팀을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도 결과를 그다지 챙기지는 못하기에 중위권에 안착해 있다. 그러나 발전의 여지는 충분하다.
26라운드 레버쿠젠 원정전을 앞두고 데니스 디크마이어가 '''득녀'''했다는 훈훈한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경기는 엑달의 자책골로 인해 1:0으로 패했다.
27라운드 호펜하임에게 3:1로 패했다. 점수는 완패지만 경기기록이나 전반적인 경기력은 압도하고도 졌다. 그레고리치의 수비가담 능력이 딜레마로 작용하여 사카이 고토쿠 혼자서 막다시피한 상황에서 두 골을 내주었다.
28라운드 하노버 96 원정 경기에서 3:0으로 승리했다. 하노버가 상당한 공세를 밀어붙혀 보았지만 첫 실점 이후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고 이 점을 적절히 노려 승리를 거두었다.
29라운드 SV 다름슈타트 98과의 홈 경기에서 2:1로 패했다. 연달아 이어지는 두 경기가 도르트문트 원정에 이어 브레멘과의 더비가 예정되어 있는 곤란한 상황이라 패배의 손해가 적지 않았다.
30라운드 도르트문트 원정에서 3:0으로 패했다. 이로써 도르트문트가 전반기 때의 대패를 앙갚음했다. 크리스티안 퓰리시치의 분데스리가 역대 4번째 최연소 득점(외국 국적 선수로서는 최연소 기록)기록의 희생양이 된 것은 덤. 알빈 엑달이 부상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사실 도르트문트가 압도할 수 밖에 없는 악재가 겹쳤다. 피에르-미셀 라소가도 부상이 의심되어 전반에 나왔고 교체된 스벤 쉽록은 일대일 찬스를 결정장애로 날렸다. 레네 아들러의 퇴장에 니콜라이 뮐러도 부상이 의심되어 나왔다.
31라운드 대망의 북독 더비. 베르더 브레멘을 홈에서 맞아들여 2:1로 승리했다. 후반기 들어서는 그 동안 벤치 신세를 면치 못 했던 라소가가 2골을 몰아치며 오랜만에 활약했다. 주루의 수비 실수로 인한 클라우디오 피사로의 페널티킥을 막아낸 드로브니의 선방도 백미. 지난 라운드 때 퇴장으로 출장하지 못 한 아들러의 공백을 잘 메워줬다.
32라운드 마인츠와의 원정전에서 0:0으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매우 근소한 승점 차이로 추격해오는 하위 강등권 팀들의 추격을 제대로 뿌리치지 못 해 안심하긴 이른 상황. 다음 라운드 결과에 따라 자력 잔류의 여부가 확실해 질 듯 하다.
33라운드 볼프스부르크와의 홈경기에서 0:1로 패해 12위로 순위가 떨어졌으나 최종전 결과에 상관없이 승점 38점을 확보하여 하노버, 슈투트가르트는 확실히 따돌렸고, 아래 있는 팀들 중 하필이면 브레멘과 프랑크푸르트가 맞대결을 벌이게 되면서 두 팀 모두가 38점에 도달할 순 없게 되었기 때문에 최소 15위를 확보하여 올해도 잔류에 성공하게 되었다.
34라운드 아우크스부르크와의 원정경기에서 선제골을 내 주었으나, 그레고리츠의 멀티골과 니콜라이 뮐러의 골로 3:1로 역전승을 거두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되었다. 최종 순위는 10위.
비가 내리는 가운데 아우크스부르크의 마닝거 골키퍼와 플로리안 마이어 주심의 마지막 경기[20] 라는 감동도 있었던, 훌륭한 시즌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3.6. 2016-17 시즌


시즌을 앞두고 바르셀로나의 유망주 알렌 할릴로비치를 4.25m[21]에 영입했다.
필립 코스티치를 슈투트가르트에서 11.9m으로 구단 최고 이적료를 갱신하며 영입했으며, 같은팀의 유망주인 아리아니트 페라티도 0.7m에 영입했다.
유니온 베를린의 공격수 바비 우드를 2.98m에 영입했으며 프랑크푸르트의 공격수인 발트슈미트를 1.11m, 다름슈타트의 골키퍼 크리스티안 마테니아를 0.68m에 영입했다.
데미르바이는 1.45m에 호펜하임으로 떠났고 일리세비치, 카차르, 루드네우스 등이 계약연장을 하지 않음으로 무적신분이 되었다.
야로슬라프 드로브니는 함부르크 최대의 라이벌 베르더 브레멘으로 이적하며 팬들을 당황시켰다.
이비차 올리치1860 뮌헨으로 이적했다.
DFB-포칼 FSV 츠비카우와의 1라운드에서 알렌 할릴로비치의 골로 2라운드에 진출했다.
리그 1라운드에서는 잉골슈타트를 맞아 전반 30분 우드의 골로 앞서고 있었으나 70분의 실점 이후 추가 득점에 실패하면서 1:1로 비겼다.
2라운드부터 레버쿠젠에 1:3, 라이프치히에게 0:4, 프라이부르크에게 0:1, 뮌헨에게 0:1로 연패를 당하며 1무 4패라는 굴욕적인 성적으로 17위를 기록하게된 함부르크는 결국 9월 25일 브루노 라바디아 감독을 경질했다. 그리고 그 후임으로 마르쿠스 기스돌 감독을 임명했다.
6라운드 헤르타 베를린에게 0:2로 패배하였고, 7라운드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와의 경기에선 상대가 페널티킥 2개를 실축하는 행운으로 0:0으로 비겼다.[22]
8라운드 프랑크푸르트전에서도 0:3으로 패하며 2무 6패, 최하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DFB-포칼 2라운드에서는 3.리가에 소속되어 있는 할레 셔 FC를 맞아 4:0으로 대승하며 16강에 진출했다. 16강 상대는 1.FC 쾰른.
7라운드부터 수비진이 뭔 약이라도 먹었는지 퇴장 당하며 경기를 말리고 있다. 기스돌 감독 부임 이후 좀 대등한 공격 전개가 가능했다는 현지 팬들의 평가가 함부르크 sns에 있었으나 수비진이 알아서 경기장을 나가며 무너지고 있다.
9라운드 쾰른과의 경기마저 0:3으로 패하며 2무 7패 2득점 18실점을 찍으며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10라운드 도르트문트와의 경기는 오바메양에게 무려 4골이나 허용하고 그나마 니콜라이 뮐러가 만회골을 넣어 추격하였으나 뎀벨레에게 골을 허용하며 1:5, 그나마 81분 니콜라이 뮐러가 골을 넣으며 영봉패는 면했다. 항상 홈에서 도르트문트만 만나면 이겼던 함부르크가 홈에서 2:5로 패했다.
10라운드 현재 2무 8패로 최하위에 머물러 있는데, 자칫하면 클럽 역사상 최초의 강등을 경험하는 시즌이 될지도 모른다. 그동안 숱한 강등 위기를 극복해온 경험이 있는 함부르크라지만 결코 녹록치 않은 상황. 기스돌 감독은 11라운드를 앞두고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풀백 사카이 고토쿠를 신임 주장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11라운드 호펜하임과의 원정경기에서 2:2로 무승부를 거두며 그나마 나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거기에 오랜만에 선제골까지 넣었다! 하지만 17위인 잉골슈타트도 1승을 거두었으나 함부르크는 여전히 무승 상태이다...
12라운드, 대망의 노르트 더비에서 2:2로 또 무를 캐며 4무 8패로 여전히 무승에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그래도 11라운드를 기점으로 경기력이 서서히 나아지고 있기는 하다. 기스돌 감독 부임이후 공격전개가 괜찮아 졌다는걸 증명하듯이 3경기연속 2골씩을 넣어주기도 했고, 사카이 고토쿠가 주장으로 선임된후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오는데 좋은 수비가담을 보여주면서 불안한 수비진을 어찌어찌 끌고 다니기는 한다. 오른쪽에는 어차피 데니스 디크마이어가 있기도 하고. 공격에는 부진하는 아론 헌트피에르-미셀 라소가대신에 미하일 그레고리치가 톱으로, 마티아스 오스트르졸렉이 미들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 요한 주루기데온 융의 수비조합은 아쉬움이 많다.
13라운드 다름슈타트와의 원정경기에서 2:0 승리로 13경기만에 리그 첫 승을 했다. 그리고 승점 7점이 되어 승점 6점인 잉골슈타트를 넘고 17위가 되었다.
14라운드 아우크스부르크와의 홈경기에서 전반 막판에 루이스 홀트비의 퇴장으로 수적 열세에 처했으나 후반 20분경 상대팀 코어가 퇴장당하고, 얼마 안 가 필립 코스티치가 넣은 골을 끝까지 잘 지켜내며 2연승에 성공했다. 이 경기로 같은 시각 프라이부르크에게 진 다름슈타트를 넘어 16위로 순위가 상승, 자동 강등권에서는 일단 탈출했다.
15라운드 마인츠와의 원정경기에서 바비 우드가 선취골을 넣었으나 이후 라차에게 해트트릭을 얻어 맞으며 1:3으로 패배하며 다시 17위로 미끄러졌다.

16라운드 살케와의 홈경기에서 2:1로 승리하며 전반기는 16위로 마무리했다.
겨울 이적시장에서 쾰른 수비의 중핵이자 전반기 분데스리가 최고의 센터백 중 하나로 평가받던 메르짐 마브라이를 영입했고 라이프치히에서 쩌리로 밀린 키리아코스 파파도풀로스를 임대해오면서 수비진을 보강했다. 또한 클레베르를 산토스로 이적시켰다.
후반기를 시작하는 17라운드 볼프스부르크와의 원정경기에서는 0:1로 패했다. 순위는 그대로 16위.
알렌 할릴로비치는 라스팔마스로 임대이적했다.
18라운드 잉골슈타트와의 원정경기에서 1:3으로 패하며 순위가 다시 17위로 미끄러졌다...
하지만 19라운드 레버쿠젠을 홈에서 1:0으로 이기며 16위로 다시 올라갔다! 임대로 온 파파도풀로스가 헤딩으로 결승골을 넣으며 친정팀에 비수를 꽂아버렸다.
DFB-포칼 16강에서 기데온 융과 바비 우드의 골로 쾰른을 2:0으로 이기며 8강에 올랐다! 8강 상대는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이다. 1라운드에서 4부리그 팀에게 덜미를 잡히며 탈락했던 전 시즌과 비교하면 엄청난 발전.
20라운드 RB라이프치히 원정. 대부분의 사람들이 라이프치히의 승리를 예상했다. 그러나 파파도풀로스와 신입생 발라스가 머리로 두 골을 전반에 몰아쳤고, 아론 훈트가 종료직전 승리를 확인사살했다. 니콜라이 뮐러는 도움 헤트트릭을 기록하였고, 3:0으로 대승했다. 이로써 전반기의 굴욕을 갚았다. 때마침 바이언이 잉골슈타트의 늪축구를 종료 직전 두 골로 태워버리며 합작하여, 바이언은 1위 굳히기를, 함북은 브레멘을 깔고 15위로 강등권 탈출을 이루었다.
21라운드 프라이부르크전에서 2:2로 비겼다.순위가 변동되진 않았으나 함부르크 입장에선 굉장히 어려워졌는데 16위 브레멘과 승점차이가 1점, 17위 잉골슈타트와 승점이 단 2점밖에 차이가 안나기 때문이다. 덕분에 다음 경기를 이겨야 좋은 상황인데 하필 '''다음 상대가..''' 그나마 안첼로티 감독 이후 득점력이 줄었으니 우주방어라도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월 25일 뮌헨 원정에선 그런 우주방어는 나오지도 못했고 결국 뮌헨에게 '''0-8로 완전히 털렸다.''' 2-9로 패했던 12-13 시즌과 똑같이 0-8로 패했던 14-15 시즌 때처럼 또 다시 뮌헨에게 대패를 당하는 흑역사가 생겨버렸다.
DFB-포칼 8강전에서 묀헨글라트바흐에게 1-2로 패배하며 탈락했다. 2골을 먹히고 막판에 바비 우드의 만회골이 터졌다.
23라운드 헤르타 베를린전. 한숨 돌렸다. 포칼에서 부상당한 마브라이의 빈자리를 알빈 에크달이 땜빵했는데 코너킥에서 결승골을 넣었다.. 수비로 울던 전반기와 달리 후반기 멱살은 중앙 수비로 나온 선수들이 잡아끈다.. 아론 훈트도 도움을 기록하며 폼을 되찾는 듯.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 24라운드 경기에서는 크리스텐센에게 선제골을 먹혔으나 코스티치와 우드의 골로 2:1로 역전승했다.
25라운드 프랑크푸르트전에서 수비적인 경기로 0:0으로 비겼다.
26라운드 쾰른을 홀트비의 극장골로 2:1로 이겼다. 덤으로, 순위가 13위까지 상승했다.
27라운드 도르트문트와의 경기에서 총체적 난국 수준의 공수를 보여주며 3:0으로 패했다.
28라운드 호펜하임과의 홈 경기에서 훈트의 2골을 넣는 활약에 힘입어 2:1로 승리했다.
북독일 라이벌전으로 치뤄진 29라운드 브레멘 원정 경기에서 그레고리치의 선제골에도 불구하고 막스 크루제와 플로리안 카인츠에 연속골을 내주며 1:2로 역전패했다. 홈에서와 달리 원정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는 듯.
30라운드 다름슈타트와의 홈 경기에서 1:2로 패배하며 강등권 탈출에 실패했다. 31라운드 상대가 함부르크와 마찬가지로 강등권 탈출이 절실한 아우크스부르크로, 이 경기에서 패할 경우 강등 플레이오프 순위인 16위로 밀려나게 된다.
31라운드는 아우크스부르크 원정을 떠나 4-0으로 대패하여 3연패. 마침내 16위로 밀려나며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어진 32라운드 역시 15위 마인츠와의 승점 6점짜리 경기였는데 0-0으로 비기며 16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마인츠와 함부르크는 동승점이지만 득실차 격차가 18골이나 나고 있어서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던 경기였다. 잔여일정은 샬케 원정 - 볼프스부르크 홈경기의 두 경기가 남았다.
33라운드 샬케 원정. 상대 감독이 지난 라운드를 직관하며 벼르고 있고 메르짐 마브라이가 경고 누적으로 나오지 못한 경기. 전반 25분 부르그스탈러에게 실점했다. 각성한 기스돌 감독은 후반에 발트 슈미트, 미카엘 그레고리츠, 피에르 미셸 라소가를 줄줄이 몰아넣으며 승부수를 던졌다. 샬케가 공들인 역습을 수비수들이 미친듯이 막아냈고 슈팅을 쏟아내며 기어코 라소가가 후반 추가시간 2분에 동점골을 폭발시켰다. 슈팅 수에서 12개로 두배 앞섰고, 골키퍼 선방은 샬케에서만 나왔다. 이겼다면 잔류를 확정했겠으나, 아쉽게 잉골슈타트만 일단 골로 보내 놓았다. 이제 승강 플레이오프를 두고 승점 2점 앞선 15위 볼프스부르크를 불러 단두대 매치를 가진다. 함부르크가 이기면 함부르크가 잔류하며 볼프스부르크나 아우크스부르크 중 한 팀이 플레이오프로 밀려나며, 비기거나 지면 함부르크가 2년만에 승강 플레이오프로 향하게 된다. 니콜라이 뮬러가 복귀한 만큼 홈인 폴프스파르크 슈타디온에서 마지막 칼을 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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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 34라운드, 함부르크는 기적같은 역전승을 일구며 2-1로 볼프스부르크와의 경기에서 승리, 다시 한 번 잔류를 확정지었다. 오랜만에 낯선 위치로 내려온 볼프스부르크는 함부르크와 전쟁에 가까운 육탄전을 벌여야 했다. 볼프스부르크의 수비수 로빈 크노헤가 롱스로인 이후 우겨넣은 크로스를 밀어 넣으며 23분 리드를 가져갔으나 함부르크는 기어코 32분에 필립 코스티치의 골로 따라붙었다. 볼프스부르크 선수들은 육탄전에서 밀리면서 슈팅은 앞서지만 점유를 내어주었다. 균형이 이어지는 후반. 함부르크는 미하엘 그레고리치, 신인급 오른쪽 윙포워드 야타, 루카 발트슈미트를 밀어넣었다. 반면 비겨도 되는 볼프스부르크는 공격수와 미드필더를 유지하는 쪽으로 보강했는데.. 기어코 루카 발트슈미트가 88분 코스티치의 크로스를 극장 헤더로 밀어넣었다. 이로서 볼프스부르크가 승강 플레이오프의 나락에 떨어졌다. 최종 성적은 10승 8무 16패, 승점 38, 14위.

3.7. 2017-18 시즌


'''자세한 내용은 함부르크 SV/2017-18 시즌 문서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클럽 역사상 첫 강등'''
'''54년 262일만에 시계는 멈췄다'''

3.8. 2018-19 시즌


'''자세한 내용은 함부르크 SV/2018-19 시즌 문서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2부리그에서도 고전하면서 결국 승격에 실패했다.

3.9. 2019-20 시즌


마지막 34라운드에서 3위인 하이덴하임이 빌레펠트에게 패배해 비기기만 하더라도 3위로 확정짓고 1부리그 16위와 승격 플레이오프를 치룰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차버려 결국엔 또 다시 1부리그 승격에 실패했고, 시즌 종료 후 디터 헤킹 감독과 결별하였다.
'''리가'''

1라운드 다름슈타트와의 경기에서 후반 시작과 동시에 선제골을 허용하고 0-1로 끌려다니다가 후반 '''98분'''에 가까스로 얻은 페널티킥을 아론 헌트가 성공시켜 1-1로 비겼다. 이후 2라운드에서는 뉘른베르크에게 4-0 대승을 거뒀다.
3라운드 보훔과의 경기에서 1-0으로 승리. 일단은 선두로 올라섰다. 이후엔 다소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선두를 빼앗겼다. 전반기가 끝낸 현재 슈투트가르트와 승점이 같지만 골득실에서 앞선 2위에 올라있다.
후반기는 현재 VfB 슈투트가르트에 승점 1점차로 밀리며 3위를 달리고 있다. 이후 계속해서 미끄러지며 1. FC 하이덴하임에게도 밀렸으나 다시 3위자리를 탈환했다.
그러다가 33라운드 1. FC 하이덴하임에게 1-2로 패배했다. 이 경기 패배로 승점 54점에 머물러 4위로 미끄러졌다. 이 경기 패배로 최종 라운드에 승리를 따내도 2위 슈투트가르트의 승점을 넘을 수 없게 되어 다이렉트 승격은 불가능해졌고 플레이오프를 노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대망의 최종 라운드 SV 잔트하우젠과의 단두대 매치에서 전반전에 릭 판드롱헬런의 자책골로 시작부터 삐걱거렸고, 이후 수비가 완전히 뚫리며 전반전을 0-2로 마쳤다. 후반전에 얻어낸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추격했으나 84분에 도리어 페널티킥을 내주었고, 3번째 실점 이후 그나마 남아 있었던 추격 의지가 완전히 꺾이며 2골을 추가로 내줘 1-5로 대패, 이번 시즌도 승격에 실패하게 되었다.[23] 최종 순위는 4위.
'''DFB-포칼'''

DFB-포칼 1라운드에서 3. 리가켐니츠 FC와 경기했는데, 2-2로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부차기에서 6-5로 승리. 2라운드에 진출했다.
허나 2라운드에서 홈에서 경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슈투트가르트에게 1-2로 패하며 허무하게 탈락했다.

3.10. 2020-21 시즌


지난 시즌 VfL 오스나브뤼크의 수장이었던 다니엘 튠이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리가'''

2. 분데스리가 개막전에서 포르투나 뒤셀도르프를 상대한다. 지몬 테로데의 멀티골로 2-1로 승리했다.
2라운드에서 파더보른과의 경기에서 전반전에 먼저 2-0으로 앞서나갔으나 34분부터 38분까지 4분만에 3실점하며(...) 2-3으로 끌려갔다. 후반전 56분 테로테의 동점골이 터지고, 82분 훈트의 페널티킥으로 재역전에 성공. 4-3 리드를 지켜내며 끝내 승리했다.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스벤 울라이히를 영입했다. 주급은 바이언에서 부담한다고 한다.
리가 3라운드 그로이터 퓌르트와의 경기에서는 굉장히 거친 경기가 지속되다가 나레이의 선제골로 1-0으로 앞서나갔다. 그러나 거친 경기는 계속되며 결국 토니 라이스트너가 퇴장당하기까지 했다. 다행히 그 뒤에 수비진과 울라이히의 활약으로 1-0 스코어를 지켜냈다.
4라운드는 FC 에르츠게비르게 아우에를 만나 3-0으로 완승했다. 이로서 리가 4연승을 기록하며 2위 홀슈타인 킬을 승점 2점차로 제치고 단독 선두가 되었다.
5라운드 FC 뷔르츠부르거 키커스와의 경기에서 3-1로 승리해 5연승을 질주하는 중이다. 그리고 2위 홀슈타인 킬과 승점차를 5점으로 벌리며 선두를 굳히고 있다.
그러나 이후 5연전에서 2무 3패를 기록하며 10라운드가 끝난 현재 홀슈타인 킬, SpVgg 그로이터 퓌르트, VfL 보훔에게 추월당해 4위까지 떨어졌다.
12라운드 SV 잔트하우젠지몬 테로데의 멀티골에 힘입어 4대0 대승을 거뒀다. 그리고 동시에 승격권 경쟁중이던 SpVgg 그로이터 퓌르트, VfL 보훔이 모두 패하며 1위탈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아직 홀슈타인 킬이 경기를 치루지 않았기 때문에 두고봐야 하는 상황. 홀슈타인 킬도 승리하며 다시 2위로 내려갔다.
14라운드에서 홀슈타인 킬이 홈에서 오스나브뤼크에게 덜미를 잡히고 함부르크는 승리하면서 1위를 탈환했다.
17라운드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원정경기에서 전반전에 2골을 허용하며 2-1로 끌려갔지만, 후반에 3골을 몰아치며 4-2 역전에 성공하며 전반기를 1위로 마쳤다.
이후 한동안 1위에 머무르다 22라운드 최하위 FC 뷔르츠부르거 키커스에게 덜미를 잡히며 SpVgg 그로이터 퓌르트, 홀슈타인 킬, VfL 보훔 세 팀과 함께 승점 42로 동률을 이루고 있다.
'''DFB-포칼'''

DFB-포칼 1라운드에서 지난시즌 3. 리가로 강등된 SG 디나모 드레스덴을 만나 1대4로 대패했다. 경기가 끝나고 토니 라이스트너와 드레스덴 팬간의 충돌이 있기도 했다.영상

4. 응원가



4.1. HSV Forever



'''함부르크 SV 공식 응원가 HSV Forever'''

'''폴크스파르크슈타디온에서의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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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V Forever'''

5. 여담


  • 손흥민이 함부르크 유스 출신이며 서영재가 2군 선수로 소속되어 있었다. 황희찬이 임대로 와서 뛰었었고 최민수[24]가 유소년 팀에서 뛰었다.
  • 전설적인 축구 만화, 캡틴 츠바사의 주역 골키퍼인 와카바야시 겐조가 이 팀의 주니어 클럽에서부터 프로까지 데뷔하며 소속되어 있다. 참고로 본 작품에서 와카바야시의 독일 내 라이벌로 묘사되는 칼 하인츠 슈나이더는 독일의 절대 강자들이 속해 있는 바이에른 뮌헨 소속이다.
  • 남북 더비의 라이벌인 바이에른 뮌헨에게는 만날 때마다 무참히 관광을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2009년 9월 26일 홈에서 1:0으로 이긴것을 마지막[25]으로 현재까지 한 번도 승리하지 못 하고있다. 9년동안 리그, 포칼에서 바이에른과 20경기를 치뤘고 함부르크는 무려 2무 18패를 당하며 7득점 70실점이라는 충격적인 스코어를 기록하고있다.(...) 나름 분데스리가 생존왕이라는 소릴듣지만 뮌헨만 만나면 복날에 개잡듯이 잡아대서 처량하다. 반면 뮌헨의 유일한 대항마 소리를 들었던 도르트문트에게는 나름 강했다. 2012-13시즌 더블을 기록하기도 했고, 2013-14 시즌 1승1패, 2014-15 시즌 1승1무, 2015-16 시즌 1승1패로 호각세 이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 독일선수권대회 3회 우승을 포함하여, 1963년 시작된 분데스리가까지 모두 6회 우승함으로서 FC 샬케 04의 뒤를 이은 네 번째 최다우승팀이다.[26]
  • 한국에서는 여기서 성장한 유망주인 손흥민 덕분으로 인지도가 넓어졌지만, 손흥민 이적 이후에는 그냥 가끔 가다 부진한 활약으로 축구 주요 뉴스에 이름이 오르는 정도의 유명세를 갖고 있다.
  • 이전에는 이란의 바히드 하셰미안이 이 팀에서 여러 시즌 활약한 적이 있으며, 2011년 함부르크의 전·현 선수들과 "지단·호나우두의 친구들"과 경기에서 함부르크 소속으로 나오기도 했다. 하세미안보다 더 이전의 아시아 선수라면 2000년대 초반 부동의 오른쪽 윙어였던 이란의 메흐디 마다비키아가 있다. 그 밖에 제 호베르투가 말년에 바이에른 뮌헨에서 이 팀으로 옮겨 분데스리가 외국인 선수 최다 출장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5.1. 2017-18 시즌 강등 이후


2017-2018 시즌 강등되어 이제 분데스리가에는 개근팀이 없다. 유럽 주요 5대 상위리그인 EPL, 프리메라리가, 분데스리가, 세리에A, 리그앙 중 개근팀이 존재하는 리그는 프리메라리가[27], 세리에A[28][29][30] 뿐이며, EPL은 이전 영국 최상위 리그인 리그1과의 관련성이 있으니 소위 빅클럽들은 EPL로 개편하고 부터만 따지면 개근 팀에는 해당하지만, 영국 최상위 프로축구리그의 개근팀이라고는 할 수 없다. [31] 이를 볼 때, 2017-2018시즌까지 이어온 개근 기록이 얼마나 큰 가치였는지 느낄 수 있다. [32]
다만 에버턴 FC와 같이 여전히 최상위 리그에 가장 많이 출석한 팀 타이틀은 아직 가능성이 있으나, 단독 타이틀은 되지 못한다. 17-18시즌 기준으로 분데스리가 최다 시즌 출전팀이 55시즌의 함부르크, 2위가 54시즌의 베르더 브레멘이라, 18-19시즌에 바로 승격하여 19-20시즌에 복귀하더라도 베르더 브레멘이 강등당하지 않는 이상 베르더 브레멘과 최다 시즌 타이틀 동률이 되는데, 브레멘은 잔류는 일찌감치 확정지었고 최종전까지 유로파리그 진출 경쟁을 하면서 8위로 마무리한 반면, 함부르크는 시즌 후반기의 극심한 부진으로 4위에 그치며 1부 복귀에 실패했다.[33]
18-19시즌 기준으로 남은 타이틀은 베르더 브레멘과 나누어 가진 바이에른 뮌헨보다 분데스리가에 한 시즌 더 많이 참가한 경력뿐이었지만, 19-20 시즌엔 분데스리가 최다 참가 경력마저 라이벌 베르더 브레멘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19-20시즌에도 승격에 실패한다면 바이에른 뮌헨에게마저 분데스리가 참가 경력이 밀려버리게 되는데, 2.분데스리가 2~3위에서 왔다갔다 하다가 막판에 미끄러지면서 승격에 실패하여 바이에른 뮌헨에게 분데스리가 참가 경력이 밀리게 되었다. [34]
결국, 홈 구장의 시계는 창단 이후의 시간을 표시하는 시계로 바뀌었다. 그러나 VfL 보훔, 1. FC 하이덴하임, SSV 울름 1846 등 앞에서는 그저 빛이 바랠 뿐이다..

6. 팀 위상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외부에서의 위상보다 독일 내에서의 위상이 많이 높은 팀이다. 독일 내에서의 위상은 FC 바이에른 뮌헨에 버금가며, 베르더 브레멘과 함께 북독일의 자존심으로 손꼽히는 팀이다.[35] 1919년 이래로 줄곧 1부 리그에서만 활동해왔으며 '''2017-18시즌 종료 전까지는 분데스리가에 참가한 적이 있는 모든 클럽들 중에서 전 시즌 개근 기록을 가지고 있었던 유일한 클럽'''으로 바이에른 뮌헨조차도 원년 참여를 못 하고 리그 출범 2년 뒤에 합류한 걸 감안하면 상당한 기록이다. 또한 리그 내에서의 성적도 좋은 편으로, 16-17시즌 종료된 시점 기준으로, 역대 분데스리가 승점 3위를 기록 중이다. [36] 이 기록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느끼는지 구장과 홈페이지에 분데스리가에 머무른 시간을 표시하는 시계가 걸려있다. 그러나 2018년 5월 결국 강등이 확정되며 시계는 구단 창단 부터 날짜를 세는 시계로 곧바로 바뀌었다.[37]
독일 제 2의 도시인 함부르크가 연고지이기에 열정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는다. 그 성원을 바탕으로 2000년대 들어서 한 때 다니엘 판 바위턴, 라파엘 반 더 바르트등을 앞세워서 중위권 팀에서 탈피하여 챔피언스 리그에도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특히 이 당시 다수의 네덜란드 선수들이 중용되어 네덜란드 커넥션을 이루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영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두면서 반 더 바르트는 레알 마드리드로, 판 바위턴은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게 되었고, 그 후로 다시 중위권 정도로 전락하여 유로파 리그나 간간히 나가는 팀이 되었다. 한국 야구의 롯데 자이언츠와 일본 야구의 한신 타이거즈와 비슷한 느낌이 있다. 성원에 비해 성적이 잘 안 나오는 거, 자국 제 2의 도시가 본거지 등등.

7. 라이벌


함부르크 울트라즈들은 극성으로 유명해서 독일에서 가장 많은 안티를 만드는 팀이기도 하다. 함부르크가 2017-18 시즌 최종전에 강등이 확정되자, 전통적으로 라이벌이었던 브레멘 팬은 물론, 헤르타 베를린 팬들까지도 경기장에서 엄청나게 환호하는 모습이 나왔다.[38]
  • SV 베르더 브레멘: 노르트 더비. 독일 북부의 패권을 놓고 오랫동안 자웅을 겨뤄왔던 클럽으로 분데스리가 역대 최다 매치업이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으며, 리그 내에서도 손꼽히는 치열한 더비이다.
  • FC 바이에른 뮌헨: 독일 북부를 대표했던 함부르크와 남부를 대표하는 바이에른 뮌헨 사이 지역감정으로 인해 생겨난 라이벌리이다.

8. 엠블럼


아주 단순한 디자인의 엠블럼이 인상적인데, 누가 디자인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상선 위에서 '전원 승선'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신호용 깃발 '파란 페터'(Blaue Peter)에 SC 게르마니아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검정색을 활용해 디자인된 엠블럼이다. 시기에 따라 그 크기나 비율 등이 조금씩 달라지긴 했으나, 근본적인 변화가 사실상 없었다는 점에서 분데스리가에서 유일하게 엠블럼의 변화가 없었던 팀이라고 할 수 있다.

9. 홈 구장



홈구장은 5만 7000명의 인원 수용이 가능한 규모의, 폴크스파르크슈타디온(Volksparkstadion)이나, 2010년부터 2014년까지는 그 명칭을 임테흐 아레나(Imtech Arena)라고 불렸다. 그리고 2015년 7월부터 다시 본래 이름인 폴크스파르크슈타디온으로 명칭이 바뀌게 되었다.

10. 1군 선수단




11. 과거 유명선수



12. 같이보기






[1] '하에스파우'라고 읽는다. 이 팀의 명칭을 줄여서 부르는 것이다.[2] 전통적으로 흰색 상의와 빨간색 바지를 유니폼으로 입은 데에서 유래된 별명이다.[3] 함부르크 SV라는 지금의 구단명으로 바꾼날짜[4] 2010년 6월부터 2016년까지 연간 $5.6m(약 56억원)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명명권을 임테흐 그룹이 사 들였다.## 그러던 2015년 7월, 다시 본래의 이름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는 현재까지 분데스리가 내에서 경기장의 명명권이 기업에게 팔린 이후 본래 이름을 되찾은 유일한 사례이다.[5]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의 리그로, 각 지역 리그의 우승자들끼리 경기를 해서 전국 챔피언을 가려내는 방식이었다.[6]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의 리그로 이 리그에서 우승한뒤 다른 지역 리그에서 우승한 팀과 붙는 방식이었다.[7]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의 리그로 이 리그에서 우승한뒤 다른 지역 리그에서 우승한 팀과 붙는 방식이었다.[8]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의 리그로 이 리그에서 우승한뒤 다른 지역 리그에서 우승한 팀과 붙는 방식이었다.[9] 원곡은 스쿠터#s-3의 One (Always Hardcore). 가사 중 Hardcore 부분을 Hamburg로 바꿨다.#[10] 전통적으로 흰색 상의와 빨간색 바지의 홈 유니폼을 입는 것에서 유래된 별명이다.[11] 케빈 키건은 1977년부터 1980년까지 총 세 시즌을 뛰었고 리그 우승을 한 번 경험하고 다른 팀으로 이적하였다. 1978, 79년 발롱도르는 덤.[12] 긍정적인 면은 축구학교의 성격인 HSV 캠퍼스 계획이 수립은 되었다는 것[13] FC 바르셀로나라 마시아와 비슷한 축구 학교[14] 그마저도 얀센은 공격하러 다니고 베스터만은 느리다.[15] 그 예로 마르코스는 로벤의 크로스에 손을 맞으면서 첫 골을 페널티킥으로 헌납했다.[16] 각도에 따라 오히려 드로브니가 밟힌 것 같았다.[17] 후반기에는 부활의 기미가 보인다.[18] 물론 PK를 넣었더라도 연장전에서도 원정골 적용이 되어 카를스루에는 1골을 더 넣어야만 하는 상황이기는 했다.[19] 독일에서는 3부 리그까지가 프로 리그이고 그 아래로는 '''아마추어 리그'''이다.[20] 1996년부터 DFB 소속으로 심판을 맡아왔으며, 06/07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주심을 본 경력도 있다. DFB의 심판 연령 규정에 따라 은퇴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21] 바이백 포함[22] 글라트바흐의 홈 10연승이 여기서 깨졌다.[23] 반면 하이덴하임은 빌레펠트에 0-3으로 패하고도 어부지리로 베르더 브레멘과의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었다.[24] 독일계 한국인 선수이다. 국가대표는 현재 한국을 선택한 상태.[25] 3년간은 상대 전적이 바이에른 뮌헨보다 우세하였다[26] 그러나 샬케는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의 대회에서만 7번 우승하였고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 우승 기록이 없다(...) 그래서 엠블럼 위에 별을 달지 못 하는 것.[27]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 아틀레틱 빌바오[28]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29] 다만 이탈리아 최상위 리그 기준이라 보기 어려운, 정비된 시기의 세리에A 기록이다.세리에A는 1898년에 시작되었으나 아마추어 리그였고, 1921년 리그 개혁을 두고 두 개의 리그로 분열되기도 했다.1920년대까지 지역리그 우승팀들이 겨루는 토너먼트였고, 오늘날의 전국단위 리그로 재편된 것은 1929-1930시즌이었다.[30] 파리 생제르맹파리 FC에서 분리되었던 것처럼 AC 밀란에서 분리된 팀이다.[31] 리그1 시절부터 이어진 개근팀은 없다.[32] 프랑스 리그앙의 경우 파리 생제르맹이 개근팀이라 볼 수 있는지가 애매한데, 기존의 파리 FC가 파리 FC와 파리 생제르맹으로 나뉘었고, 파리 FC가 강등된 시즌에 파리 생제르맹이 1부리그로 승격하였다. 별개의 팀으로 갈라선데다가 하부리그 경험은 동일하다.[33] 최다 시즌 3위가 53시즌의 바이에른 뮌헨. 분데스리가 1부 리그 원년 멤버에 들지 못했고, 분데스리가 3년차에 1부 리그로 승격한 후 현재까지 매 시즌을 1부 리그에서 보냈다.[34] 2020-21시즌 출전 기준으로 베르더 브레멘 57시즌, 바이에른 뮌헨 56시즌, 함부르크 SV 55시즌이다.[35] 그렇기 때문에 HSV는 바이에른과의 라이벌 의식도 강하지만 베르더에 대한 라이벌 의식도 정말 장난이 아니다.[36] 1위는 바이에른 뮌헨, 2위는 베르더 브레멘. 4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바짝 추격중으로, 18-19시즌 함부르크 없이 1시즌을 치루고 나면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3위로 등극할 가능성이 높다.[37] 하지만 함부르크는 독일에서 역사가 가장 긴 클럽이 아니기 때문에 이 역시도 상당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38] 상대팀이었던 RB 라이프치히 선수들은 어리둥절했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