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영

 


玄基榮
1941년 ~
1. 인물 소개
2. 작품 일람
3. 논란


1. 인물 소개


대한민국소설가. 본관은 연주(延州). 1941년 지금의 제주시 노형동 함박이굴마을[1]# 출생. 오현중학교, 오현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를 졸업한 후 서울사대부고에서 영어 교사로 살다가 1975년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였다.
어린 시절 4.3 사건에 휘말려 가족 여럿이 죽고 굶주림에 시달리는 등 상당한 고생을 했으며, 이러한 역사가 반영된 그의 대표작 《순이 삼춘》[2]은 1960년에 나온 오영수의 단편소설 《후일담》 이후로 문학계의 금기로 여겨졌던 4.3 사건을 조명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물론 시대가 시대인지라 해당 작품은 금서로 지정되었으며, 작가 본인은 1979년 10월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보안사 요원들이 싸릿대로 때리면서 "왜 그런 거 썼냐", "그 책 처음부터 끝까지 내용이 뭔지 줄거리를 말해라" 등의 질문을 매일 반복하는 심문을 당했고, 군복을 몸에 걸친 채로 손가락이 짓이겨지고 얼차려를 받았다고 한다[3]. 이후 남부경찰서로 옮겨져 유치장에서 한 달을 살았는데, '''끝내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되지는 않았다.''' 그를 정식으로 법원에 기소하자면 법원에서 '4.3 사건이 무엇이냐?'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고 그렇게 되면 당시의 참상이 공개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4] [5] [6] 해당 작품은 민주화 이후 4.3 사건을 다룬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7][8]
다만 《순이 삼촌》 뿐 아니라 제주도라는 섬이 겪었던 비극의 역사, 동시에 알려지지 않은 항쟁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작품을 여럿 발표한 작가이기도 하다. 1901년에 교폐(프랑스인 천주교 신부 및 신자들의 행패) 및 세폐(가혹한 세금 징수) 시정을 요구하며 일어났던 신축민란을 다룬 《변방에 우짖는 새》, 일제강점기 제주 해녀들의 항일 및 노동투쟁(제주잠녀항쟁)을 다룬 《바람 타는 섬》(1989년) 등, 한국문학사에서 '''제주도의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을 언급할 경우 가장 먼저 꼽히는 인물. 최근에는 자전적 소설인 《지상에 숟가락 하나》(1999년)[9], 6월 항쟁 당시의 386세대를 주인공으로 하는 《누란》(2009년)을 내놓았고, 산문집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2016년)를 내놓았다.
고은백낙청 등이 만든 진보 문인 단체인 '민족문학작가회의'에 참여하여 활발하게 활동했다. 2000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에 취임하여 이후 연임했다.
조선일보 반대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이사장직에 있던 2001년 4월 30일, 박정희 기념관 설립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서울시청(현 서울도서관) 건물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그의 뒤를 이어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 여러 문인들이 1인 시위에 참여했다. 4월 30일 오전 1인 시위를 벌인 현기영 이사장은 오후 1시경 시위를 마치고 내려오면서 "아이구, 이거 (79년에) 보안사에서 고문 받던 것만큼이나 힘드네"라고 말했고, 인근에 있던 이승철 시인이 "죽은 박정희가 산 현기영을 아직도 고문하는군요."라고 거들었다.[10]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지도위원 활동도 했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2014년)에 대해 호평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대한민국 해병대 출신이라고 한다.[11]

2. 작품 일람


  • 1978년 《순이 삼촌[12]
  • 1983년 《변방에 우짖는 새》[13]
  • 1986년 《아스팔트》
  • 1989년 《바람 타는 섬》
  • 1994년 《마지막 테우리》
  • 1999년 《지상에 숟가락 하나》
  • 2002년 《바다와 술잔》(산문집)
  • 2004년 《젊은 대지를 위하여》(시집)
  • 2009년 《누란》
  • 2016년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산문집)

3. 논란


2018년 진보 원로 시인 고은성추문에 휩싸이자 현기영은 “고은이 무슨 성폭행을 한 것은 아니지 않아요”라면서 “고은을 그렇게 매도하고 늘그막에 완전히 나락으로 빠뜨리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면서 고은을 옹호하여 논란이 되었다. #

[1] 인근의 아라동과 함께 연주 현씨 집성촌이다. 현경대 전 국회의원도 이 마을 출신이다. 해당 마을은 4.3사건 당시 전소되었다.[2] 해당 인물은 여성이다. '삼춘'은 성별에 상관 없이 연상의 사람을 지칭할 때 쓰는 제주 방언이다. 반대로 연하자는 '조캐(조카)'라고 부른다. '춘'의 'ㅜ'는 아래아다.[3] 본인은 이를 두고 '다들 나를 빨갱이라고 말했지만 나한테서 찾을 수 있는 빨강이란 짓이겨진 손가락에서 나온 피 뿐이었다'라고 회고했다[4] 출처: 《창비와 사람들 - 창비 50년사》 인터뷰 및 한겨레 인터뷰[5] 중학교 영어 선생으로 일하던 현기영의 처 양정자 시인은 그 고문의 경험을 "아빠의 의미"라는 시로 남겼다. "1979년 10월, 막내 너 막 낳았을 그때, 네 아빠도 첫 출산하듯 / 제주 4.3 첫 소설집 <순이삼춘>을 발간하고 / 보안사에 끌려가 거의 죽을 만큼 매 맞고 있었을 때 / 직장다니는 딸 대신 집안일을 돌봐주시던 내 친정어머님 / 쌍둥이 낳은 올케 돌보러 아들 집에 가신 후 이 엄마에게는 / 네 형, 누나, 갓난아기 너까지, 돌봐야 할 아이들만 셋 / 태열 심했던 갓난아기 너는 / 석 달 밤낮을 완전히 바꿔 밤새도록 울고 / 옆에는 산모 돌볼 아무도 없고 / 네 아빠마저 끌려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무 소식 없어 / 산후 심한 불면증에, 깊은 우울증에 빠져버린 네 엄마 / 평생 잊을 수 없는 뼛속까지 춥고 외로웠던 그때 / 한 달이 지났을까, 매맞은 자국이 아직 덜 가신 네 아빠 / 시푸르뎅뎅한, 아직 성치 않은 아픈 몸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 / 그가 제일 먼저 말없이 한 일은 연통을 사다가 추운 방에 / 연탄난로를 놔주고 창문마다 문풍지를 붙여준 일 / 내 평생 네 아빠가 해 준 가장 감동적이었던 일 / 네 아빠가 돌아온 것만으로 그 때 썰렁했던 집안 전체가 / 무쇠연탄난로 피운 것처럼 가득 차고 따뜻했단다.(출처: 《아이가 살짝 엿들은 말》)[6]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제주편에서 고문 후유증으로 한쪽 귀가 안들린다고 언급되었는데, 본인의 자서전적 소설인 "지상에 숟가락 하나"에 따르면 어린 시절 고열을 앓은 뒤부터 한 쪽 귀의 청력을 잃었다는 대목이 있다.[7] 4.3 사건 자체를 다룬 소설로는 현기영의 작품 외에도 제주도 출신의 소설가 오성찬(1940~2012)이 쓴 《하얀 달빛》이나 《잃어버린 고향》 등의 작품도 있고, 재일교포 소설가 김석범(제주도 출신)이 쓴 《화산도(火山島)》도 존재한다. 여담으로 김석범은 2001년 《순이 삼촌》의 일본어판 번역을 맡았다. 일본에서는 2012년에 2쇄를 찍었다고.[8] 제주 출신의 소설가로 현길언도 있는데 이 사람은 현기영과는 정반대 성향을 지니고 있다. 4.3 사건을 두고 딱 잘라서 '반란'이라고 부른다. 이승만포럼이라는 곳에서 발표를 하고, 극우논객 조갑제와 엮이는 일이 꽤 있는 것으로 보아 우파적 시각을 지닌 작가.[9] 출생 후부터 10대 시절까지 다룬 작품인데 초중반부에 4.3 사건이 부각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유년 시절은 4.3 사건과 6.25의 연속이었으니. 오죽하면 책 후반부에서 '글을 쓰고 보니 4.3에 대한 언급은 그만해야겠다. 이건 한 소년의 성장기지 고발담이 아니니까'라는 문장이 나올 정도.[10] 공교롭게도 현기영과 이승철은 2018년 성추문에 휩싸인 고은 시인을 옹호하여 비난을 받기도 했다.[11] 제주도 사람 가운데는 해병대 출신자가 많은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4.3 사건대한민국 해병대 문서 참조.[12] 2018년 10월 학력평가에 문학작품으로 출제했다.[13] 2013년에 개정판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