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
1. 개요
대한민국의 만화가. 7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만화 정점에 있던 한국만화계의 대부이자 한국 만화 발전의 주역으로 대본소-만화잡지-웹툰 시대를 모두 경험한 만화가이다.
2. 상세
2.1. 2000년 이전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가세가 기울어 화가 대신 만화가의 길을 택해 박평일, 박문윤[3] , 엄희자, 이향원 등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74년 한국일보 신인만화공모전에 "집을 찾아서"가 당선되면서 만화가로 데뷔했다. 데뷔한지 40년이 넘는 한국 만화계에서 손꼽히는 대가 중 한 명이다. 1989년에 그린 "미스터 손"이 나중에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로 만들어졌으며, 그 외에도 타짜(만화), 우주 흑기사[4] , 아스팔트 사나이, 비트, 식객, 꼴,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등을 그린 경력이 있다.
무협만화가로 알려진 이재학(만화가) 문하에서 그림을 그리며 수습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재학 이름으로 연재되던 히라소니가 허영만이 그림을 많이 맡았고 이 히라소니는 각시탈을 창작할때 영향을 주기도 했다. 더불어 이재학 그림체 영향을 초창기에 허영만도 많이 받았다.
1975년에 발표한 각시탈이 인기를 끌면서 본격적인 대중적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다. 이후 '각시탈'의 후속 시리즈, '무당거미' 시리즈로 인기를 끌었고 '각시탈'의 스핀오프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쇠퉁소'[5] 와 '무당거미'의 비쩍 마른 주인공을 연상케 하는 강공이 등장하는 '변칙복서'를 어린이잡지 새소년에 연재, 히트를 치면서 인기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비슷한 시기에 새소년에 연재한 '태양을 향해 달려라', '쟘비지강의 달무리' 또한 인기를 끌었다. 80년대 중반까지 주로 무당거미 시리즈와 기타 작품이 대본소를 통해 유통되었고, 이 시기에 이현세, 이상무, 박봉성 등과 함께 대본소를 장악한 대표적인 한국만화가가 되었다. 원래 주인공 이름은 각시탈까지 외자인 이영이었지만 무당거미 이후 이강토로 바뀐다. 참고로 이강토는 각시탈의 에피소드 가운데 두만강의 어느 마을에서 만나게 되는 어느 소년의 이름이기도 했다.
한편으로 이때 허영만은 개인적으로도 좌절을 겪기도 했는데 당시 만화시장을 과점하며 만화판을 쥐락펴락 했던 합동출판사에 맞서서 땡이문고를 통해서 만화를 출판시키려다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고 이 때 다른 만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돈벌이를 위해서 별수없이 합동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당대 다른 만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대본소 만화와 보물섬에 '미스터 고'로 유명한 '제 7구단' 등 어린이용 만화잡지의 연재활동 등으로 작품생활을 이어가던 1986년에 허영만은 당시 만화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방식의 작품을 발표했는데 이른바 '스토리 작가'의 도입이 그것이다. 1986년 발표한 '카멜레온의 시(詩)'는 김세영과 함께 한 첫 작품인데 당대 다른 만화들에 비해 보다 심오한 내용과 대사 구성, 코믹적 요소를 완전히 들어내 버린 스토리 구성 등으로 인해 성인 만화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성공은 허영만에게 그림체도 그림체이지만 스토리를 구성하기 위한 자료 수집과 다방면의 지식 등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져다 준 것으로 보인다. 이후 김세영과 함께 한 '고독한 기타맨', '오! 한강'도 성공을 거두는 등 한동안 이 허영만-김세영 체제는 승승장구했다. 이후 김세영 작가는 빠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다소의 잡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러 자료에서 확실한 내용은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성공에 따른 수익 배분에 있어서 김세영 작가의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보여진다. 한때 허영만과 같이 작업한 만화 '타짜' 등에 대해 공동저작물인정 운동을 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습게도 김세영도 이후 수익 배분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갬블 시리즈를 같이 작업한 강영환은 김세영을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김세영은 강영환의 이름을 빼고 자신 홀로 그리고 작업한 것처럼 작품을 재연재하여 자신의 말이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모습을 보여주며 비난을 받았다기사
80년대 후반 허영만은 다소 아스트랄한 주제의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블랙홀'과 '화이트홀'로 대표되는 이 작품들은 저승과 영혼, 미스테리 현상에 무속에다가 외계인 등의 신비주의적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이들 작품은 허영만의 작품에서 매우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전과 이후에서 비교적 사실적인 스토리와 배경을 강점으로 하던 작가가 갑자기 이러한 주제를 다루는 것에 대해 여러 독자들이 기이하게 생각했다고. 한편으로는 이 작품들 중 일부는 그림체에서 기존의 허영만 작품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80년대 말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소위 '대본소 시스템'이라는 걸 도입했기 때문이다. '대본소 시스템'이라는 건 한마디로 주요 스토리라인과 장면만 메인 작가가 그리고 나머지는 '제자'라고 불리는 이들이 그리는 방식. 권당 인세가 형편없는 수준인데다가 빠르게 다음 권을 그려나가야 수지가 맞는 대본소 시스템 특성 상 작품의 질보다는 빠른 속도가 더 중요했기 때문에 주조연급 캐릭터 외에는 한 눈에 봐도 대충 그린 것이 단번에 확인되는 등 전반적인 작품의 질이 급격하게 낮아졌지만, 당시 만화가들의 경제적 형편을 살펴보면 이는 어쩔 수 없었던 고육지책이었다. 한마디로 배고픈 작가와 만화에 열정만을 가지고 있었던 그 작가의 제자들(라고 쓰는 식객이라고 읽는 사람들.)의 저렴한 노동력(혹은 세 끼 밥만 제공하는)이 만난 시대의 비극적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래저래 얘기를 들어보면 허영만 본인도 이 시기를 생각도 하기 싫어한다. 오죽하면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 때로 가서 말리고 싶다며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라고 한다.[6] 이때 허영만의 화실에서 허영만 이름으로 만화 그리다 독립한 인물이 조운학. 서술된 것으로만 보면 인기가 없었을것 같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블랙홀'과 '화이트홀'은 대본소에서 아주 인기가 많았다. 아니 '블랙홀'의 경우는 작품성으로 보면 나아가서 대표작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명작 이다. 자신의 작품이 아니어서 문제일 뿐. 안타깝게도 지금은 찾아볼 방법이 없다.
한편, 1988년에 발표한 '미스터 손'은 1990년에 '날아라 슈퍼보드'라는 제목으로 애니메이션화되어 KBS에서 방영되었고, 1992년 방영 당시 42.8%라는 국내 애니메이션 역사상 전무후무한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원작 만화에서 어린 소년인 손오공과 미소녀가 같이 여행하는 초기부분이 드래곤볼 설정과 비슷하여 논란의 소지가 있자 잡지 연재 11회차부터 그 캐릭터를 삭제하고 삼장법사와 사오정 저팔계를 투입하게 되었다. 비난의 소리 때문에 굳이 그런 결정을 내렸어야 했나하는 평가도 있다. 미소녀와 손오공이라는 설정이 드래곤볼과 유사하지만 그것을 오마주로 삼아 나름의 오리지널리티를 추구해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초기연재시 미로 캐릭터는 상당히 인기가 좋았었다. 이 시기 망치라는 작품또한 미래소년 코난의 설정 즉 세계종말 후 무인도에서 사는 괴력을 가진 소년에 대한 비슷한 설정이 사용되어 논란이 있었다.
대본소 시장이 위태위태하던 시절부터 허영만은 본인의 주특기를 살린 만화들을 만들어가기 시작하는데, 90년대 초반과 중반에는 매우 사실적이고 디테일한 스토리를 살린 만화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90년대 한국사회에서는 x세대가 대중문화 주류로 부상했는데, 이들은 이전의 집단주의적인 성향에서 벗어나 개인주의를 추구하고 자의식이 강하며 기존의 가치나 관습에서 자유로운 특성을 지녔다. 허영만은 이러한 세대의 특징을 잘 포착해내 작품에 구현시켰는데 그것이 비트다. 비트는 영화로도 나왔는데 1997년 서울에서 35만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퇴역전선'이나 광고회사 직원들의 애환을 다룬 '미스터Q'나 '세일즈맨' 등의 기업/직장인 만화, 48+1과 같은 갬블만화 또한 그 시기 인기를 끌었고, 넓게 보면 만화 자체도, 드라마도 성공한 '아스팔트 사나이'도 여기에 해당될 수 있고, 지금까지 발표되는 작품들도 이 맥락과 닿아있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90년대 발표한 일련의 작품들로 허영만은 자신의 독보적인 오리지널리티와 명성을 획득한다.
2.2. 2000년 이후
꼴을 그릴 당시엔 식객과 동시연재를 하다 2009년 2월자로 식객은 지면에서는 연재가 종료되었다. 3월 19일부터 파란에서만 연재하고 한동안 쿡에서 연재하다가 2010년 3월자로 완결되었다.
인터뷰에서 70년대엔 이상무에게 밀리다가 80년대 들어와 이현세에게 밀려 편집장에게 '허선생은 2등 전문이구먼'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현세의 작품들이 당시 시대적 분위기에 더 맞았던 것뿐이고, 현재의 평가도 그렇다는 건 아니다. 평가라는 건 시대에 따라 변하게 되어 있고, 남벌등의 작품에 나오는 이현세의 과도한 마초이즘은 지금에 와서는 비판은커녕 조롱의 대상에 가깝다. 상대적으로 꾸준하게 높은 평가를 받아온 허영만과는 다른 것이다.
작품 하나 그리는데 필요한 배경지식을 위해 엄청난 양의 자료수집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꼴이나 부자사전은 예외. 자료를 많이 모으다 보니 자료와 만화가 역전되어 만화를 위해 자료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모은 자료들 중 만화로 그리기 적당한 에피소드를 추려내어 만화로 그려놓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식객은 후반부로 갈수록 실존인물에 실화를 사용하는 비율이 늘어가고 있다.
원로 만화가임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쟝르에서 끊임없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와 드라마가 만들어져 인기를 끈 경우가 많다. '식객'과 '타짜'는 둘 다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그외에 영화화 된 작품으로는 '각시탈', '비트'와 '48+1'이 있으며, 2013년에는 미스터 고 3D가 개봉되었다. 2013년까지 드라마화된 작품으로는 '각시탈', '아스팔트 사나이#s-2', '미스터Q', '사랑해'가 있다.
이런 허영만의 다양한 행보와 경력에 대해, "엄청난 자료수집과 다양한 장르 시도는 허영만과 함께 했던 김세영을 비롯한 여러 스토리작가의 공이 크며, 스토리작가가 따로 있는 작품임에도 허영만 글 그림으로 만화가 나오면서 스토리작가가 받아야 할 칭송을 허영만이 받은 경우들이 많다"라는 평가도 종종 있다.
하지만 다양한 장르시도의 공을 스토리 작가에게만 돌리는 것은 작화가의 역할에 대해 약간 오해가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평가이다. 한국이나 일본 같은 만화 제작 시스템 하에서는 스토리 작가의 만화력이 작화가를 상회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만화가는 글 작가의 스토리를 콘티화하는 과정에서 기본틀만 남기고 구성 자체는 다시 하게 된다. 다만 감독이 시나리오를 재수정할 경우 이름을 올리는 경우도 있는 영화계와 달리 만화계에서는 스토리 작가 자리에 작화가 이름이 이중으로 들어가는 경우는 없다. 이건 한국의 경우만이 아니라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무엇보다 스토리 작가가 자료수집을 철저히 하더라도, 단어 하나 문장 몇 마디 조차도 비주얼화가 필요한 만화화 과정에서는 작화가가 별도로 자료수집을 해야 한다. 실제로 허영만이 '취재하는 만화가'의 이미지로 유명하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작화가가 해당 분야에 대해 취재와 자료수집이 부족하다면 스토리작가가 좋은 스토리를 넘겨도 좋은 작품으로 만들어낼 수가 없다. 단, 이런 점을 관점 바꿔서 이야기하자면 '아무리 스토리 작가가 따로 있다 하더라도 작품에 대한 비난과 비판은 최종적으로 작품을 완성한 만화가가 받는 게 맞다'는 이야기라는 관점도 있다.
2013년 4월 식객2를 카카오페이지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다른 웹툰들과 다르게 유료 웹툰이다. 월 2000원이라고 한다. 올 컬러라고 하니 기존에 식객을 보았던 사람들에게 어필이 가능할지도 참조 더불어 앞으로 10년은 계속 만화가로 활동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2015년에는 미스터블루 및 중앙일보에 커피 한잔 할까요?를 연재 중.
2018년 1월 28일부터는 네이버 웹툰 아버지의 컵을 정식 연재하기 시작했다.
2018년 4월 한국경제 TV 와우넷에 주식투자를 그린 <3천만원>을 연재했다. 이후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며 <허영만의 6000만원> 을 연재하였다. 하지만 2020년 6월 25.02% 손실을 내며 연재가 중단됬다.참조
3. 오너캐
오너캐는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으나, 식객에선 베레모를 쓰고 옆구리에 종이들을 낀 모습으로 자주 등장한다. 60회 메밀묵 편에서 등장한 까다롭기 그지없는 암행어사 [7] 가 바로 허영만 오너캐였다. 부자사전에서는 애완견 처칠과 함께 나오는데 대학생 자식을 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회춘한 모습으로 그렸다.(...)[8] 40대만 해도 머리카락이 많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탈모가 심해졌다. 더불어 식객 냉면 편에서 냉면가게 주인으로 나온 게 허영만의 60대 모습이기도 했다.
4. 작품들에 대한 비판
4.1. 그림체에 대한 비판
허영만 만화에 질색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으론 주연급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못생겼다'''라는 것이 가장 크다. 인물묘사는 해당 인물의 특색을 잡으면서도 만화답게 축약된 묘사를 하려고 노력하는듯 한데, 인물묘사를 주름살, 인중, 입주름, 광대뼈, 돼지코, 주걱턱 등 신체의 '비호감'부분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표현하는 방식으로 하다보니 그림체에서 '역겨움'을 느끼는 독자층이 꽤 많다. 게다가 지나치게 인물묘사를 주름살이나 인중같은 부분을 두드러지게 그려서 단순명료하게 하려다 보니 인물묘사들이 하나같이 비슷비슷해져 누가 누군지 분간도 안되는 경우가 많다. 즉 인물특색을 비호감적 신체부위로 살리려다보니 그림체가 혐오스러워지고, 지나치게 만화적으로 축약 표현하려다 보니 누가누군지 분간이 안간다. 즉 '''캐릭터들이 전부 비슷비슷하게 구리게 생겼다'''라는 최악의 결과물이 나오게 된다.
때문에 허영만 만화의 내용은 둘째치고 그림체가 너무 생리적으로 안맞아 아예 입문 자체를 포기하는 만화애호가층 또 한 상당히 많은 편이다. 가령 근래에 식객촌이라는 식객만화에 나오는 여러 음식점들을 총망라하여 브랜드화 시킨 음식백화점들이 생겨났는데, 이 입구에 못생긴 캐릭터들이 밥먹는 그림들이 혐짤마냥 커다랗게 붙어있어 '''오히려 밥맛을 떨어뜨려 들어가기가 싫다'''라는 직장인들 사이의 평이 상당했다.
이러한 못생긴 캐릭터 선호 사상(?)은 그의 대표작 식객에서도 상당히 반영되어있는데 부부 중 아내가 외모가 뛰어나면 남편이 외모가 출중한 법이 없고 그 사이에서 나온 자식들은 십중팔구 못생긴 남편을 닮는다(...)는 클리셰가 그것이다. 분명 미형 캐릭터를 못그리는 작가도 아니건만 굳이 이러는 걸 보면 일종의 작가 신조인 듯.
4.2. 시대에 뒤떨어진 시각과 국수주의, 미신
고리타분한 민족주의 요소로 비판을 받았다. 예를 들어 식객의 경우 1회 에피소드에서 생모를 찾아 한국에 온 해외 입양아에게 한국문화니 받아들이라며 냄비에 담긴 찌개를 함께 떠먹기를 강요하는 부분,[9] 외국인에게 김치 먹이기[10] 아스팔트 사나이에서 러시아에 살던 고려인이 나는 한국을 조국이라 생각한 적이 없어라며 악역으로 나오다가 참혹하게 죽거나, 무당거미에서 에릭이라는 한국계 교포 후예가 한국계임을 부정하고 금발 염색하고 살아가며 권투선수로 나오는데 주인공 강토가 한국인으로서 자존심도 없냐며 경기에서 두들겨 패주고 그를 폐인 상태에서 비참하게 죽어가게 만든 묘사와 같은 부분에서 민족주의적 색채가 드러난다. 때문에 '''허영만의 만화에선 쌍팔년도 쉰내가 난다'''라는 평가도 상당수다.
사실 현재 시점에서 보면 고루하고 시대착오적인 시각으로 보일 수 있으나, 90년대까지 정부가 미디어, 교육 매체 등을 통해서 '한민족은 단일민족' 이라는 아젠다를 퍼뜨리던 걸 돌이켜본다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IMF를 기점으로 한국사회의 가치관은 급변했고, 그 부분에서 시각차이가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신문 연재만화였던 꼴에 대해서는 과학적 근거없이 너무 미신적인 내용을 장황하게 다루는거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또한 동양인의 얼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관상을 가지고 백인 흑인까지 어거지로 분석하려다 보니 관상학 기준으로도 신빙성이라곤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다. 예를 들면 광대가 나온 사람이 더 정이 많고 겸손하다며 흑인들이 그래서 백인보다 착하다는 식으로 몰아 간다. 특히 꼴의 '히딩크 기부드립'은 너무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다.
4.3. 기득권적인 시각
젊은이들이 쉽고 편하게 대기업이나 들어가려고 한다는 멘트로 젊은 층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식객순대 편에 나오던 순대공장 일을 꺼리는걸 두고 젊은이들이 힘든 일은 안 한다고 한다든지, 꼴에서 직업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힘든 일 안하고 투정부린다고 하는 부분등이다. 그런 일들은 힘들고 위험함에도 보수가 적은 일이라 꺼리는 것임에도 그걸 그저 안이한 의식의 문제로 귀결시켰다는 비판이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보수적인 방식으로 한국 부유층을 미화하는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스포츠조선에 연재하고 김영사에서 낸 책인 부자사전에서 허영만은 '세계에서 한국만큼 부자가 살기 어려운 나라는 없다'하는 주장을 했기 때문이다. 단 이 만화는 그저 원작이 한국의 부자 100인이라는 책을 만화화한 것이고 그 책에 나온 내용대로 나온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원작이라고 있는 그대로 만화화했다면 작가 그 자신의 가치관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거나, 원작자와 완전히 일치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어느 것이라도 문제가 된다. 그리고 그들은 정작 허영만 스스로 취재하여 넣은 내용에서도 똑같이 공감을 했다는 부분에선 반박하지 못한다. 그리고 부자사전에서는 "착하게 사는 것, 법을 지키며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부자가 되는 방법은 아니다."라고 당당하게 나온다.[11]
4.4. 스토리 작가에 따른 만화의 질적 격차
2012년까지 연재한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는 몽골까지 가서 사전답사하고 그렸지만 초중반부만 해도 수려한 그림체, 정확한 고증 등으로 수작의 전형으로 손꼽혔으나, 중반부의 막장 드라마 스토리와 후반부의 급작스러운 전개 때문에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다. 허나 다음 연재 당시 댓글 보는 재미가 매우 쏠쏠했다. 특히 자무카 관련 드립이 흥했다.
또한 동료 스토리작가였던 김세영이 있고 없음에 따라 만화의 전체적인 스토리의 질이 저하되는 문제도 크다.
4.5. 이중잣대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식객에서 자주 꼰대스러운 지적질이 나와서 많은 비판을 받는다. 특히 회를 먹을 때, 초장이냐 간장이냐를 두고 큰 논란을 빚었는데, 114화_양식 광어(단행본 23권) 편에서 회를 먹는데 초고추장을 찾는 사람에게 '평소에 회를 초고추장에 드십니까? 그건 회를 먹는 것이 아니고 쌈을 먹는 것이다. 생선의 얕은 맛을 즐기는 것이 회인데 강한 초고추장을 같이 먹게 되면 모든 생선회의 맛이 구별되지 않고 초고추장 맛으로 통일된다.' 라는 말로 강하게 비난한다. 애초에 음식이라는 것은 정답이 존재하지 않고, 개개인의 기호에 따라 알아서 먹는 것인데 한국에서 보편적인 초고추장을 마치 맛알못들이나 먹는 문화라고 치부해 상당히 논란이 일었다[12][13] .
실제로 허영만은 식객 작품 전반에 걸쳐서 음식을 먹을 때 양념의 존재를 대단히 무시하며 비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런 허영만도 각종 방송에서 먹을 때는 양념탓을 하거나(무한도전), 소스를 찍어먹는 모습을 보여 세이콘 드립이 흥하기도 했다. 이런 비판을 요약하자면 첫째, 개인의 기호가 극대화 되는 음식에 절대적인 하나의 기준을 제시하며 자신이 하는 방식 이외에는 덜 떨어진 것으로 묘사한 점. 둘째, 양념의 존재를 그렇게 무시했으면서 정작 현실의 자신은 잘만 양념 쳐서 먹더라는 이중성이다.
5. 사건사고
5.1. 허영만 사칭 사기
2011년 9월 말경부터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변역 부근을 중심으로 허영만을 사칭하며 행인들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사기꾼이 출몰하고 있다고 한다. 주로 혼자 다니는 젊은 여성들을 타겟으로 삼아 '택시비가 모자라니 돈을 좀 빌려달라', '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다', '책이 나오면 매니저에게 이야기해서 한권 보내주겠다'는 등의 말로 행인들을 속여 돈을 빌려간다고 한다. 그래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림을 보여줘 넘어가게 한다고. 실제 허영만과는 전혀 닮지도 않은 꾀죄죄한 몰골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속출했는데, 사칭범의 언변과 특정 직업에 대한 일반인들의 고정관념('만화가=후줄근한 외모'라는 인식)이 맞물려 사람들이 사칭에 쉽게 속아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심지어 허영만의 실제 얼굴을 아는 사람들조차 속은 사례가 있다는 것. 사기꾼이 30대 가량의 꾀죄죄한 외모를 가진 남성이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천계영 사칭범[14] 과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커 보였는데...
2011년 SBS 방송을 탄 후부터 경찰에서 공개수배를 한 결과 결국 11월에 허영만 사칭 사기범이 체포되었다. 일부의 의혹대로 비슷한 수법을 쓴 앵벌이들이 아닌 강풀과 천계영 사칭범과 '''동일인물'''. 진술이 오락가락하고 반성의 기미가 없지만 대략 맞춰보면 한때 만화가를 꿈꿨지만 가정형편으로 어려워지자 5년 전에 가출해서 만화가의 일반적인 이미지로 돌아다니며 만화가 행세를 하면서 행인들의 돈을 사기로 갈취했다고 한다.
5.2. 표절 및 저작권 위반
아스팔트 사나이는 다카르 랠리에 도전했던 카레이서 최종림이 쓴 책인 사하라 일기에 대한 저작권법 위반으로 소송을 당해 법원에서 10%정도의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어 일부 패소 판결을 받았다.[판결문]
6. 주요 작품 목록
- 각시탈 (1975)
- 강속구를 쳐라 (1977)[15]
- 동래학춤 (1977)
- 밀림의 북소리 (1978)
- 태양을 향해 달려라 (1979)
- 잠비지강의 달무리 (1980)[16]
- 무당거미 (1981)[17]
- 태풍의 다이아몬드 (1982)[18]
- 쇠퉁소 (1982)
- 변칙복서 (1983)[19]
- 검은 글러브 (1983)
- 사마귀 (1985)
- 우주 흑기사 (1985)
- 카멜레온의 시 (1986)
- 고독한 기타맨 (1987)
- 오! 한강 (1988)
- 벽 (1988)
- 48+1[20] (1989)
- 미스터 손 (1989) / 날아라 슈퍼보드 (1990)
- 퇴색공간 (1990)
- 망치 (1990)
- 아스팔트 사나이 (1991)[21]
- 미스터Q (1993)[22]
- 비트 (1994)
- 세일즈맨 (1994~1998)[23]
- 오늘은 마요일 (1995)[24]
- 짜장면 (1998)[25]
- 타짜(만화) (1999)
- 사랑해(만화) (2000)
- 살라망드르 (2000)
- 식객 (2003~2010)[26]
- 부자사전 (2005)
- 꼴 (2008)
-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2010~2012)
- 식객2 (2013)
- 허허 동의보감 (2014)
- 허영만의 커피 한잔 할까요? (2015~2017)
- 안동 간고디 (2017)
- 허영만의 만화일기 (2017)
- 아버지의 컵(브랜드웹툰) (2018)
- 허영만의 3천만원 (2018)
-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2019)
- 아아 발 디딜 곳 없는 조국이여 (2019)
- 허영만의 6천만원 (2019)
- 허영만의 주식 타짜 (2020)
7. 수상
- 2009년 자랑스러운 전남인상
- 2008년 제 9회 대한민국 국회대상 만화 애니메이션 부문
8. 방송
- 2019년 5월 14일부터 TV조선의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에 고정 출연 중이다. 내레이션은 윤주상.[27]
9. 기타
- 화실에는 총 7명이 있는 듯. 그래서인지 한 푼도 안 가져간다는 전제하에서 작업실 운영에 월 3500만원이 필요한다고 한다. 그렇긴 해도 만화가로서 이름이 높은 편이고 영화 제작 및 여러가지로 들어오는 돈이 많아 경제적으로 크게 부족하지 않다고 한다. 타짜나 식객이 흥행에 성공해서 큰 보탬이 됐을 듯.
- 오디오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식객에서도 오디오 관련된 편이 자주 나오고 아예 오디오를 좋아하는 형제가 직접 등장하는 등 오디오에 관련된 언급이 많다. 부자사전에서도 1000만원대의 스피커를 일반인도 살 수 있을 정도라고 말하는 등(...).[28] 오디오 관련 내용이 많다.
- 식객으로 유명해서인지 전문 요리사가 아님에도 불구, 무한도전 식객 특집 때 유재석 팀이 멘토로 찾아가서 요리비법을 전수받았었다. 그리고 유재석팀이 방송내내 요리대결마다 압승을 거뒀다. [29]
- 등산을 좋아해서인지 식객에서도 등산을 소재로 한 경우가 여러번 나왔고 등산가들과 친하게 지낸다. 식객 6권에는 고 박영석 대장을 등장시킨 바 있으며, 19권 단행본 바지락 칼국수 편에선 연재도중 등산가로 잘 알던 이현조, 오희준 두 사람이 등정 도중 숨진 일로 네팔까지 가서 위령식 참가하느라 작품을 쉰바 있다. 그리고 2011년 10월말, 박영석 대장이 실종되자 역시 위령식 가느라 말무사 연재가 약간 타격을 받긴 했으나 연재를 중단하지 않았다.
- 막국수를 좋아해서 메스컴에서도 막국수 맛집 탐방을 많이 한다. 강원 평창군 대화면 아승 순 메밀막국수, 강원 춘천시 상마을1길 36 퇴계동 132-1 신흥막국수, 경기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593-4 고기리막국수에서 백반기행 촬영을 했다. 이들 가게의 맛으로 보아 허영만은 대체로 토속적이면서도 고소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슴슴한 맛을 선호하는 것 같다.
- 야구를 무척 좋아하여 야구만화도 많이 그렸었다. 좋아하는 팀은 LG 트윈스로 MBC 청룡 때부터 팬이었다고 한다.[30] 그래서인지 LG그룹 총수인 구본무 회장과도 막역한 사이다.[31]
- 만화가로서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적도 있다. 2007년 전국 모의고사 언어영역에서도 출연(?).(허영만 화백을 연상시키는 요리 만화가 인터뷰) 허영만이 한국만화계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할지 질문을 올리기도 했다.
- 1박 2일에도 한차례 출연했었는데 그때 멤버 중에는 자신의 작품을 드라마화 한 각시탈의 주인공 주원이 끼어있었다.
- 개인 트위터 계정이 있긴 하지만 2012년 1월 18일 이후 글이 안 올라오고 있다.
- 허영만의 아버지는 경찰 출신이었는데, 이 때문에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에게 가족이 몰살당할 뻔한 경험이 있었다. 허영만 본인은 죽기 전에 이 여순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 웹툰작가 이말년이 데뷔 했을 때 '펜을 꺾어야 하나?'라고 생각 했다고 한다.
[1] 음력 6월 26일.[2] 현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3] 계몽사 학습그림과학으로 유명한 분.[4] 빼도박도 못할 건담 파쿠리. 자세한건 항목 참고.[5] 쇠퉁소는 어깨동무에 연재[6] 식객에서도 보성레스토랑 일행 가운데 하나인 만화가 김경민이 성찬과 같이 국수공장을 작품 소재 취재로 가서 국수를 뽑는다는 사장의 말을 듣고, 수십 명씩 두는 대본소 만화공장 사장이 "만화를 한달에 얼마나 뽑습니까?" 말한 걸 생각하면서 "만화가 국수냐! 뽑게?" 자기도 모르게 화내는 묘사를 넣은 걸 보면 만화공장체제를 엄청 싫어하는 걸 알 수 있다.[7] 잡지에 맛집 칼럼을 쓰는 쉽게 말해 인기절정의 파워블로거 같은 느낌의 영향력 있는 칼럼니스트로 묘사되는데 이 사람이 별점 4점 이상을 주는 집은 기존에도 이미 맛집으로 유명한 집이라서 더욱 신뢰가 높다는듯.[8] 다만 부자사전 작중에서 허영만의 화실이 딱 한 번 나오는데, 거기서는 본인과 닮은 캐릭터가 따로 나온다.[9] 이건 나중에 엄마랑 같이 밥먹을 때 엄마 숟가락이 찌개에 들어가면 안 먹을 거냐고 물으니 수긍하긴 했다. 그러나 가족끼리는 그렇게 먹고 생판 남과는 절대 그렇게 같이 안 먹고 따로 떠먹는 사람들이 더많다.[10] 정확히는 청국장.[11] 아예 엄연한 불법인 알박기로 축재하는 사례(그것도 알이 땅에 반쯤 파묻힌 그림까지)는 물론, 탈세 증거인멸로 세무서 직원들이 허탕치는 장면까지 그려놓았다![12] 김치를 먹는 한국인에게 어떤 외국인이 너희들은 왜 배추의 참맛을 가리게 고춧가루와 소금, 젓갈을 넣어 망치느냐? 라고 들으면 무슨 기분이 들까?[13] 물론, 초고추장의 강한 맛이 생선마다 다른 고유의 향을 가릴 수는 있겠지만 회는 식감으로 먹기도 하며, 이런 저런 설명도 필요없고 개인의 기호가 최우선이다. 애초에 그런 걸 따질거면 생선구이도 찌개도 하지 말고 죄다 생으로 먹어야 되지 않겠나[14] 천계영도 자신을 사칭하면서 행인들에게 돈을 빌려가는 사기범으로 인해 곤욕을 치른 바 있었다. 그런데 천계영은 '''여자'''다. 천계영이라는 이름이 얼핏 들어서는 남자 이름으로 들릴 만큼 중성적이라 남자려니 하고 사칭한 모양.[판결문] -崔씨의 소설 `사하라의 일기'와 許씨의 만화가 전체적인 표형양식과 주제 및 구성에 있어 다소 차이가 있으나 일부 사건구성에서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전체적으로 볼 때 대략 10%상당의 저작권을 침해한 사실이 인정된다.[15] 지금 기준으로도 독특한 감독없는 무명고교야구팀을 소재로 한 만화다. 주인공 영이 팀의 주장이자 감독을 겸한다.[16] 허영만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연재되었다. 같은 잡지에 같은 이름으로 두 편의 만화를 연재할 수 없었기에 선택한 편법이다. 같은 무렵 이두호 역시 서로 다른 이름으로 같은 새소년의 만화부록에서 두 개의 만화를 연재했다. 허영만의 만화에서 흔치 않은 무협판타지만화다[17] 80년대 유행하던 열혈근성물의 결정판같은 만화. 180이 넘는 키에도 극한의 감량으로 페더급을 유지하며 아버지의 복수를 하고 세계의 강자들과 싸운다. 매번 강한 상대를 만날 때마다 지옥같은 감량을 겪으며 새로운 필살기를 얻기 위해 훈련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허영만다운 소소한 인간적인 이야기들이 나머지를 채운다. 다만 마지막에 당시 유행하던 기와 초능력으로 빠지며 엉뚱한 길로 가버린 듯한 마무리는 아쉬운 부분. 큰 키에 뼈만 남은 앙상한 몸, 그리고 장발이 비장한 주인공의 외모와 함께 상당히 인상적이다.[18] 단행본은 《마운드의 두 얼굴》이라는 제목으로 발매.[19] 태권도 선수였다가 권투선수로 전향한 청년 강공이 주인공이다. 근데 이 태권도란게 좀 이상한 것이 삼전서기를 한다? 빼도박도 못하게 만화에서 삼전 자세를 잡으며 삼전서기라는 대사를 친다. 그리고 주인공이 필살기로 쓰는 등권, 배권, 장권 등은 권투 항목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모두 변칙을 넘어 "반칙"이다...지못미.[20] 타짜보다 먼저 나온 도박 만화다. 타짜와는 달리, 도박에 빠져 파멸해가는 인간들의 군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놓았다. 1995에 영화로 나왔으나 흥행과 평에서 쫄딱 망해서 거론도 안된다.[21] 1995년 SBS에서 드라마화.[22] 1998년 SBS에서 드라마화.[23] 11권까지 나왔지만 그 이후로는 어떠한 이유로 연재가 중단되었는지는 불명.[24] Mr.블루 연재작.[25] 원작은 한희작, 리메이크로 영챔프에서 연재했다. 도중 하차하여 김재연이 마무리했다.[26] 명실상부한 그의 대표작.[27] 실제 허영만 화백과 목소리가 비슷하다. 내레이션을 잘 들어보면 허영만 입장에서 하는 1인칭 내레이션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28] 물론 수억 원의 스피커와 비교하면 저렴한 건 사실이지만 일반인 중 수백~수천 만원의 오디오를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썩 현실적인 구절은 아니었다.[29] 물론 멘토해주신 분 잘못은 아니다. 방송을 보면 알겠지만 박명수 팀이 간을 너무 못 맞췄다(...).[30] 프로야구 태동전에 상경하고 쭉 살아온 이유가 큰듯.[31] 식객의 삼계탕과 매생이 에피소드에서 구회장이 출연한 적도 있다. 다만 작품에서의 회사 이름은 쌍동그룹(...). 쌍둥이 빌딩 때문에 그렇게 지은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