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란트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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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806년부터 1810년까지 네덜란드 지역에 존재했던 왕국으로 프랑스 제1제국이 지배했던 국가들 중 하나였다.
1804년 12월 2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즉위식을 거행하고 황제가 되어 프랑스 제1제국을 수립했다. 그리고 영국과의 전쟁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의 법률가 스히멀페닝크(Schimmel-peninck)를 바타비아 공화국의 행정 장관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1806년 영국으로 망명한 네덜란드의 통치 가문 오라녜나사우 가문의 수장 빌럼 5세가 사망하자 나폴레옹은 빌럼 5세에 대응하기 위해 세운 스히멀페닝크를 대신해서 자신의 동생 루이 보나파르트를 네덜란드 왕으로 임명했다. 스히멀페닝크가 행정 장관을 사임하면서 바타비아 공화국은 홀란트 왕국(Koninkrijk Holland)으로 계승되었다.
1806년 6월 30일 네덜란드에 도착한 루이 보나파르트는 야코프 판 캄펀(Jacob van Campen)이 설계한 암스테르담 시청을 자신의 형 나폴레옹이 거주하던 궁전과 유사하게 바꾸어서 자신의 거처로 삼았다. 1806년 11월 21일 나폴레옹은 베를린에서 대륙 봉쇄령을 선포했고 홀란트 왕국도 참여하게 했다. 그러나 루이 보나파르트는 대륙 봉쇄령에 회의적이었고 네덜란드 지역의 징집령에 대해서도 내켜하지 않았다. 1807년 레이던에서 화약 운반선 폭발 사고가 났을 때와 1808년과 1809년 대홍수가 발생했을 때 자신의 국민들과 같이 애도하는 등 외부 출신의 왕에게서는 보기 드문 행동을 해서 네덜란드인들은 호감과 지지를 보였다. 또한 네덜란드어를 배우기 위해 유명한 학자들을 초빙해 교육을 받을 정도로 네덜란드에 애착을 가졌다. 나폴레옹은 그 사이 남네덜란드 전체를 동생 루이 보나파르트의 홀란트 왕국에 편입해 나갔다.
루이 보나파르트의 통치 시대 때 여러 가지 정책이 시행되었는데 1807년 호헐(Gogel)이 토지세를 만들었고, 1808년 조합법을 시행해 노동 조직을 와해했다. 또한 마넌(C.F. Maanen)은 민법, 형법을 정비했고 홀드베르흐(Goldberg)는 국채의 이자 지급을 중단시키는 법안을 재정해 프랑스의 전쟁 지원으로 고갈된 국가 재정을 개선시켰다. 그 중 일부는 루이 보나파르트에 의해 사회 복지 분야에 쓰여지기도 했다.
1810년 제일란트(Zeeland), 발(Waal)이 프랑스 제1제국에 합병되었다. 합병된 지역에는 프랑스 점령군들과 세관원들이 배치되었다. 나폴레옹은 대륙 봉쇄령이 프랑스의 재정을 악화시킨다는 것을 알고 봉쇄 정도를 줄였고 네덜란드 상인들이 영국과 밀무역을 하는 것을 허용했지만 이후 자신의 정책인 대륙 봉쇄령을 거부했던 점을 들어 루이 보나파르트를 프랑스로 귀국시키고 생뢰(St. Leu)의 공작으로 임명해 쫓아냈다. 루이 보나파르트가 퇴위되고 나서 그의 아들 나폴레옹 루이가 홀란트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프랑스가 홀란트 왕국을 병합했기 때문에 그의 왕위는 10일밖에 지속되지 못했다.
1810년 7월 9일 나폴레옹은 랑부예(Rambouillet)에서 홀란트 왕국을 프랑스 제1제국에 합병한다고 선언했다. 이후 홀란트 왕국은 프랑스 제국에 병합되어 샤를 프랑수아 르브룅(Charles Francois Lebrun) 총독이 부임했다.
2. 참고 문헌
- 김영중, 장붕익 공저, <네덜란드史 (세계각국사)>, 대한교과서 주식회사, 1994, 200~2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