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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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滄燮
1905년 4월 6일 ~ 2001년 5월 13일
1. 개요
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친일반민족행위자, 관료, 정치인이다. 초명은 홍창섭(洪'''昌'''燮)이며, 호는 해양(海陽)이다.

2. 생애


1905년 강원도 양구군에서 태어났다.# 춘천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 춘천군 산업기수(産業技手)를 시작으로, 1933년부터 1935년까지 울진군 산업기수, 1936년부터 1937년까지 김화군 산업기수, 1938년부터 1939년까지 춘천군 산업기수, 1940년 강원도 고성군 산업기수를 지냈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평창군 권업과장, 삼척군수를 지내는 등 관료로 근무하였다. 이 때문에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관료 부문에 포함되었다.
8.15 광복 후에는 원주군수, 춘천시장 등을 지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강원도 춘천시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당 계광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낙선 후 이름 창(昌)의 운세가 다했다는 어떤 친지의 조언이 있었고 또한 친척 중에 자신과 한자까지 동명이인이었던 사람이 있어서 창(滄)으로 개명하였다. 1959년부터 1960년까지 강원도지사를 역임하였다.
1960년 강원도지사로서 3.15 부정선거에 관여하였다는 이유로 같은 해와 1961년 혁명재판에 기소되어 교도소에서 복역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강원도 춘천시-춘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김우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자 신민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강원도 춘천시-춘성군-철원군-화천군-양구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손승덕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손승덕 후보와 신민당 김준섭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