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통
1. 설명
幻想痛 / Phantom Pain
환상통, 혹은 환지통. 극도의 통증을 느꼈던 부위나 절단된 부위에서 주로 발생하며, 절단환자들을 가장 많이, 효율적으로 괴롭히는 녀석. 절단부 통증과는 구별되며, 절단환자들 중에서는 50%에서 80%가 겪는다고 한다.
환상통, 혹은 환지통을 앓는 사람들은 해당 부위에서 가벼운 불편감부터 극도의 아픔까지 통증을 느끼거나 더위나 추위, 간지러움, 압착, 쓰라림, 쑤시는 아픔 혹은 짓누르는 감각 등을 느낄 수 있다. 심지어 해당 부위가 운동을 하고 있는[1] 듯한 감각을 느끼기까지 한다.[2] 대체로 환상통을 겪는 환자는 그 가짜 신체 부위를 본래의 잃어버린 부위보다 짧거나 뒤틀린 듯한, 왜곡된 감각으로 느낀다.
의학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이 보면 꾀병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앓는 입장에서는 이만큼 엿먹는 것도 없다. 의사들도 원인을 모르고, 기껏 처방하는 약이라 해봐야 듣지도 않고, 과거 기초적인 의학 지식마저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만 해도 주변사람들은 꾀병 아니냐고 의심했고... 때문에 당시 환자들은 환장할 노릇이라고 '''환장통'''이라는 속어로 이 증상을 불렀다.
뿐만 아니라 우울증까지 유발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아직 젊고 꽃다운 나이에 절단장애를 가지게 됐다면, 신체 절단에 따른 상실감과 환상통에 의한 우울증도 우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구두를 신었을 때 발가락이 아팠던 느낌이 계속 들어서, 발가락을 주무르려 하면 현실은 정작''' 다리가 아예 없다'''. 하염없이 울게 될 수밖에...
비단 절단된 신체 부위 뿐만 아니라, 신체 어느 부위든 여러 이유로 제거되거나 손실된 부위 모두에 환상통이 일어날 수 있다. 유방암으로 인해 유방을 절제한 환자가 절제된 유방 부분에 환상통을 느끼거나, 성전환수술로 음경을 절제한 트랜스여성이 절제된 음경이 발기하는 감각을 느끼는 등.. 그야말로 환장할 지경.
인간뿐만 아니라 척추와 뇌가 있는 생물이라면 모두가 겪을 수 있는 현상이다.
2. 원인
본래 환상통은 절단된 신체 부위에 생성된 신경 말단 덩어리에 자극이 발생하여 불량 신호가 뇌로 들어가고, 아무 기능적 의미도 없는 불량 신호를 뇌가 고통으로 인식함으로써 발생한다고 생각되어왔다. 이 당시에는 원래 잃어버린 신체와 연결되어있던 신경 말단부의 이상이라 생각한 고로, 해당 신경 말단부를 제거하기 위해 절단된 신체를 다시 절단(!)하는 끔찍한 치료법이 쓰이기도 했다. 당연하지만 이건 아무 쓸모가 없는 방법으로, 오히려 '''새로 절단한 부분에 새로운 환상통이 생기고, 그게 기존의 환상통과 겹치는'''[3] 끔찍하기 그지 없는 결과를 내놓는 경우가 많았다.
이후 이 이론이 잘못되었다는 의견이 제시되기 시작했고, 관심이 신체 부위 손실과 함께 일어나는 뇌 구조의 중대한 변형에 있는 것으로 보는 가설이 등장한다. 이것은 원숭이에게서 처음 관찰되었고 이후 인간에게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보고됨에 따라 뇌가 신체의 변형과 손상에 부적절하게 적응하면서 신호불량이 생기는 것이라는 가설이 나오게 된다.
이후 환상통의 획기적 대증치료법을 개발한 라마찬드라 박사는 이 가설을 더 끌고 가서 다음과 같은 가설을 내세운다.
사지를 통제하는 뇌조직은 사지의 감각(의견)을 만들어내는데, 그 신호가 실제 사지에서 오는 감각(피드백)과 번갈아 서로를 견제하면서 사지의 정확한 상태를 감지하고 정교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사지에서 오는 감각(피드백)이 잘려 없어져 버리면 뇌에서 기억하고 있는 감각(의견)이 통제를 잃고 자기 주장만 하게 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뇌가 이미 없어진 신체기관을 상대로 계속 보고서를 올리라고 독촉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심각한 고통에 시달리다가 사지를 절단한 환자들은 뇌에서 기억하고 있는 그 고통을 견제해 줄 실제 감각(피드백)이 없기 때문에 끝없이 통증만 느끼게 되는 것.
하지만 여전히 학계는 그럴싸한 공통의견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상당히 많은 학자들이 뇌가 아니라 뇌 밖의 신경계에서 불량 신호가 들어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 근거도 상당히 많다. 그래서 일단은 뇌가 기원이다, 아니다 중추신경계 문제다. 무의식에 의한 심리적인 문제다. 하는 식으로 의견이 갈리고 있다.
물론 신체의 일부가 통째로 날아가는 상해가 보통 심한 상해가 아닌지라 그냥 둘 중 하나가 이유라고 하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매우 많고, 그래서 '''그냥 둘 다 문제이거나, 혹은 그 이상의 문제들이 결합한 결과다.'''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
3. 치료
물론 완치는 어렵다. 다만 환상통은 대체로 시간이 흐르면서 약화되므로 대증요법으로 증상을 억제하는 것으로 상당히 개선될 수 있다.
인도의 뇌의학자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Vilayanur Ramachandran) 박사가 '''거울로''' 환상통을 깔끔히 해결하는 치료법을 개발, 뭇 학자들과 의사들, 환자들에게 큰 반향을 얻었다. 이 처방법은 유사과학이 아니며, 엄연히 현대 과학에 기반한 치료 방법이다. 관련 TED강연(9분 15초부터).
원리는 간단하다. 예를 들면 팔 하나를 잃었다면, 반대쪽 팔을 거울에 비춰서, 마치 잃은 팔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환상통과 맞춰서 이리저리 동작을 하며, 그것이 잃은 팔로 하는 동작이라고 자기 암시(?)를 하는 것이다. 어떤 원리로 효과가 있는 것인지는 둘째 치고, 일단 당장 근질거리는 팔을 움직이는 척이라도 해서 (없어서 안 움직이니까) 답답함에서 오는 고통을 해소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획기적인 치료법이다.
이를 응용해 가려움증을 완화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재미있는 게 이 연구는 노벨상이 아니라 2016년 이그노벨상 의학상을 받았다.
4. 기타
자극받았을 때 가상의 통증을 일으키는 유발점(Trigger Point)도 존재한다고 한다. 원래 근막동통증후군을 설명하기 위해 나온 이론인데, 어차피 이곳을 자극하면 전혀 쌩뚱맞은 부위에 연관통을 느끼는 게(ex : 허리 어딘가가 자극되면 오른쪽 다리가 견딜 수 없게 저리고 힘이 빠지는 것 등등) 근막동통증후군의 대표적인 증상이니만큼, 아예 없는 부위에서 통증을 느끼는 것도 근막동통증후군에서의 연관통과 유사한 기전이 아닌가 추정하는 것이다. 유령 감각 현상도 비슷한 사례.
라마찬드라 박사의 가설이 옳다면, 성장통도 환상통의 일종으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급격히 신체가 변화하는 시기에 주로 발생하는 성장통은 신경망의 평형붕괴를 환상통의 원인으로 보는 라마찬드라 박사의 가설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다.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 환자들이 의사에게 통증 부위를 잘라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하는데, 설령 통증 부위를 잘라낸다 하더라도 같은 통증을 환상통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다.
5. 창작물에서의 예시
미국 드라마 House M.D.에서 이 질병이 등장한다. 해당 에피소드에서 그레고리 하우스 박사가 집주인과 갈등을 겪게된다. 집주인은 20년 넘도록 잘린 팔뚝 부위에 환상통을 겪으며 성격이 괴팍해진 상이군인이었다. 이에 하우스 박사가 집주인을 납치한 후 강제로 거울 치료법을 이용해 집주인의 환상통을 깔끔하게 치료해준다. 이 후 당연히 집주인은 집세를 안받을 정도로 하우스 박사에게 고마워한다.
크리미널 마인드에도 이 요법이 등장한다.
'잃은 뒤의 고통'이라는 점에서 상징하는 바가 많기 때문에 많은 창작물에서 소재로 사용된다.
메탈기어 시리즈의 5번째 넘버링 작품인 메탈기어 솔리드 V의 부제가 바로 환상통을 의미하는 팬텀 페인(The Phantom Pain)인데, 부제처럼 주인공 베놈 스네이크와 그의 동료인 카즈히라 밀러는 신체의 일부(스네이크는 왼팔의 하박부, 카즈는 오른팔 전부와 왼다리)를 잃고 매일같이 환상통에 시달린다. 여기서 팬텀 페인의 뜻은 왼팔을 잃은 스네이크의 처지, 마더베이스 습격으로 인해 잃어버린 동료들, 전쟁으로 다른 사람들이 고통받는 것을 보며 느끼는 괴로움 등을 의미한다.
신극장판 버전 쿠사나기 모토코는 환상통에서 비튼 형태의 고통을 가지고 있는데 태아 시절부터 전뇌화를 한 터라 신체적 고통을 전혀 모르지만 조작된 기억으로 인해 혼란을 느끼는 Ghost Pain이 주 내용이다.
어둠의 이지스의 주인공 다테 카리토가 앓는 증상이다.
모바일게임 시리즈 검은방4 후에 류태현이 앓는 증상이다. 특이한 게, 환상통을 치료하면 폐소공포증이 재발하며, 기껏 폐소공포증을 치료하면 환상통이 재발한다. 자세한 내용은 류태현 항목 참조.
Dr. 코토 진료소의 등장인물 나루미 케이 관련 사건에서 환지통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사람은 본인도 환지통을 앓고 있으며 사지절단을 해야 하는 환자를 억지로 깨워서「지금부터 다리를 절단한다」는 사실을 인지시킨 후 수술을 한다.
다이몬즈에서는 이 환지통이 주인공 능력의 큰 열쇠가 된다.
오리지널 캐릭터들이 소재가 되는 동명의 동방프로젝트 동인지가 있다.
메이드 인 어비스의 레그는 비록 로봇이지만 감각이 매우 정교한 탓에 팔이 잘려도 마치 인간처럼 환지통을 느끼는...줄 알았지만, '''정말로 잘려나간 신체를 다시 움직일 수 있다'''는 게 밝혀졌다!
룬의 아이들 시리즈의 설정으로는 유령이 살아있는 사람의 몸을 차지하려는 이유가 이 환상통 때문이라고 한다. 유령은 신체의 일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생전의 육체 그 자체를 잃은 상태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환상통에 시달려 미쳐버리기 일보 직전이며, 이러한 고통과 욕구 불만족에서 벗어나기 위해 타인의 몸을 빼앗으려 든다고.
[1] 물건을 들어올리거나, 걷는 등.[2] 이 환상속의 신체부위가 실제로 존재하는 신체 부위를 건드리는 듯한 환각을 주는 경우도 있다.[3] 즉 원래 없어진 부위가 느껴지는 것도 환장하는데 이제는 거기에 새로 잘라낸 부분이 동시에 같이 느껴진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