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성

 


1. 후성그룹의 계열사
2. 후한 말의 인물이자 여포 휘하의 장수
3. 후한 말의 인물이자 조조 휘하의 관리
3.1. 미디어믹스
4. 후한의 관료


1. 후성그룹의 계열사


정식명칭
주식회사 후성
영문명칭
Foosung.CO.,LTD.
설립일
1983년 6월
업종명
기타 화학물질 및 화학제품 제조 및 도매업
본사위치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현대기아로 72-37
상장유무
상장기업
기업규모
'''중견기업'''
상장시장
코스피시장
종목코드
093370
편입지수
코스피지수
홈페이지
불소화합물을 기반으로 한 화학 원료 제조를 주력으로 하는 코스피 상장 기업이다. 생산 제품으로는 냉매, 2차 전지 소재, 특수가스, 무기불화물이 있으며, 2003년부터 CDM 사업[1]을 진행하고 있다.
사업장은 화성 본사, 분당사옥, 울산공장, 중국공장이 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영업손실을 보였으나 2015년에 흑자전환하였다.
냉매로 시작한 회사지만, 현재는 2차전지 소재 제조업체로 유명하며, 특히 전해액 소재 LiPF6와 첨가제를 국내에서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다.


2. 후한 말의 인물이자 여포 휘하의 장수



侯成
(? ~ ?)

2.1. 정사


여포 휘하의 기장(騎長: 기병대장)이었다. 하비성의 포위가 석 달째 지속되자 동료 위속(魏續), 송헌(宋憲)과 함께 진궁고순을 잡아 조조에게 항복했다.
구주춘추에 따르면 후성은 부하를 시켜 말 15필을 방목하게 했으나 이 부하가 말들을 전부 데리고 소패에 주둔하던 유비에게 투항하자 이를 추격해 붙잡고 말들을 전부 되찾아 돌아왔으며, 주위의 동료 장수들이 모두 이를 축하하자 5, 6곡의 술을 빚고, 사냥에 나서 맷돼지 10마리를 잡아 잔치를 벌이려 했다.
잔치를 벌이기 앞서 여포에게 술과 고기를 바치며 상황을 설명하지만, 여포는 금주령을 어기고 장수들끼리 모여 술을 마시며 나를 죽일 작당이라도 할 샘이냐며 대노하여 후성을 갈궜고, 두려워진 후성은 술을 모두 버리고 장수들을 돌아가게 한다.
하지만 후성은 이 사건 이후로 여포를 의심하는 마음이 깊어졌고, 하비에서 포위되자 여포를 배반하고 항복했다고 한다.

2.2. 연의


삼국지연의에서의 후성은 여포가 연주(兗州) 일대를 공격하였을 때부터 등장하였는데, 팔건장(八健將)의 한 사람이였다.
여포와 조조가 연주 일대를 두고 경쟁을 하고있을때 후성은 군량을 조달하였으나, 정도산(定都山)에서 여포가 조조에게 크게 패하자 여포를 따라 서주(徐州)로 떠났다.
그 후, 진규 부자가 여포의 가족들과 심복들을 하비로 이주할것을 권하였기 때문에 하비로 옮겨져 여포의 가족들을 지켰다. 198년, 여포가 포위당하였을때 어느 군사가 여포의 말을 훔쳐 도망치는 것을 막아낸다.
후성은 그 일을 보고하면서 주연을 허가해달라고 요청했다가 금주령을 금하였다는 이유로 처형을 당할뻔 하지만 그의 동료 위속, 송헌의 중재로 곤장을 맞는 것으로 감형되고 장독이 올라 집에 눕는다. 그 일로 후성은 여포에게 원한을 갖고 위속, 송헌과 함께 반란을 꾀하였고 후성은 여포의 애마인 적토마를 훔쳐 조조에게 바친다.
송헌위속은 훗날 백마전투에서 안량에게 목베이는 역으로 다시 등장하지만 후성은 전혀 등장이 없다.

2.3. 미디어 믹스



2.3.1. 삼국지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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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6 51화에서 첫등장. 입술에 피어싱을 한 우락부락한 근육질에 어울리지 않는 깜찍한 리본 트윈테일 등의 리본 취향을 갖고 있어 콩순이란 별명이 붙었다.
여포를 배신하고 말들을 훔쳐 유비에게 진상하려 한 내부 반란자들을 숙청한 기념으로 술파티를 벌이고자 여포를 불러오려 했지만, 그동안 술에 쩔어 약해진 탓에 예민해진 여포가 부하를 죽여버리자, 송헌이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섭섭함을 토로하다가 도리어 여포에게 이 시국에 왜 술을 마시냐며 배신하고 죽이려 한 것 아니냐는 의심과 함께 목을 졸리자, 위속과 함께 여포에게 달라붙어 잘못했다고 빈다. 덕분에 여포가 봐주면서 넘어갔지만, 이때 여포가 여태껏 죽이지도 못한 조조를 죽이면 갑이 된다고 허세를 부리자, 여포를 배신하기로 결심하고 그날 밤 조조에게 투항한다.
처음에는 조조가 이를 믿지 않고 죽이려고 들면서 위기에 처하지만, 곧 함께 끌고 온 적토카를 보여주며 조조의 마음을 돌리고 '부하들을 하대하는 여포에게 질릴대로 질렸으니 저희 부하들만 살려주신다면 하비성과 여포의 목을 바치겠다'고 간곡히 호소해 조조 밑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2.3.2. 삼국지 시리즈


[image]
[image]
삼국지 9, 10
삼국지 11
[image]
삼국지 12, 13
삼국지 4에서는 후기 시나리오에서도 조조군 소속으로 나온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3/무력 72/지력 65/정치력 66으로 위속, 송헌보다 무력이 약간 낮은 대신 지력, 정치력이 제법 보정되어 있다. 분전, 돌진, 충차를 보유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6/무력 75/지력 64/정치력 58/매력 60으로 그럭저럭 균형잡혔다. 특기가 5개(치안, 돌격, 기습, 회복, 역공)밖에 없는 건 조금 아쉽지만 치안 특기는 전투가 없을 때에도 유용하다. 역사 이벤트에서도 등장하는데, 남의 싸움에는 관심이 없다는 여포를 설득해서 복양을 점령하자는 제의를 하는 역할로 나온다. 이때부터 진궁, 장료를 제외한 여포군 중에선 그나마 머리 좋은 이미지를 부여한 듯하다. 후에 하비에서도 여포가 수계에 당해서 잡히는 것으로 각색이 되었기 때문에 배신 이벤트도 나오지 않는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4/무력 75/지력 63/정치력 56/매력 60으로 위속, 송헌보다 무력이 낮지만 다른 능력치는 훨씬 높다. 아쉽게도 특기는 없지만 문관형 인재가 부족한 여포 군이라면 후성의 정치력을 70까지 육성하여 무장 겸 문관으로 쓰는 것도 한 방법이다.
삼국지 12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4/무력 75/지력 68/정치력 56으로 지력이 대폭 상향되어 보통 무관 수준이 되었다. 연병, 감시 특기를 갖고 있으며 전법은 전군속공. 전법이 실질적으로 사용하기 힘든 위속이나 송헌과는 달리 그나마 쓸 만하다. 보통 고순과 더불어 백도어용으로 자주 활용하게 된다. 일러스트는 말을 타고 고삐를 쥔 채 창을 들고 있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삼국지 12 때와 같으며 특기는 훈련 1, 순찰 3. 전수특기는 순찰이고 전법은 전작의 전군속공을 이어 온 듯한 기동강화. 동료인 장료의 효장질주가 아군 전체에 기동력, 사기 강화와 연격을 걸어주는 탓에 묻혔다. 전작의 송헌의 대타격이 여포의 인중여포에 묻혔던 거랑 비슷한 꼴이 난 것이다. 병종 적성은 창병과 궁병 B에 기병은 A이나 사실상 S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75, 무력 74, 지력 67, 정치 55, 매력 60로 전작에 비해 통솔, 무력, 지력, 정치력이 모두 각각 1 하락했다. 개성은 장구, 독려, 주의는 할거, 정책은 학익강화 Lv 3, 진형은 어린, 봉시, 학익, 전법은 돌격, 철벽, 저지, 친애무장은 송헌, 위속, 혐오무장은 없다.

2.3.3. 영걸전 시리즈


삼국지 영걸전에서는 기병대로 등장. 장료, 진궁에 가리지만 첫 등장은 무려 호로관전투에서 레벨3 경기병으로 나온다. 고순이 엄청나게 찌질한 얼굴을 하고 있고 후성은 괜찮은 얼굴로 나온다. 특히 유비를 배신할 것을 간언하는 진궁과 그에 설득당하는 여포를 보며 "하지만 우리는 유비님에게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 은혜를 배신으로 갚겠다는 말입니까?"라고 항의하는 장료에게 "그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소. 하지만 지금은 난세. 어쩔 수 없지 않소?"라며 온건하게 설득하는 장면이 나와 개념인임을 인증했다.[3]
삼국지 조조전에 와서는 '''고순과 얼굴이 바뀌어 나온다.''' 여포 빠돌이로 여포의 마지막 전투를 각오하는 말에 흑흑거리며 질질 짠다. 하비전투에서 조조와 일기토를 벌이지만 단칼에 썰린다. 그래도 정사, 연의와 달리 배신도 안하고 조조가 칭찬까지 하니 크게 대우받은 셈이다.[4]
영걸전 시리즈에서는 능력치는 둘째치고서라도 공통적으로 같은 항장인 위속, 송헌보다는 의리있고 개념있는 장수로 나오는데 여포의 단물만 빼먹고 배신한 둘에 비해 후성에겐 최소한 배신의 이유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기병 대장이란 정사의 서술로 보아 여포의 친족이었던 위속이나 송헌보다 능력이 뛰어 났을 것으로 보이는데 재평가 받지 못하는 점은 안타까운 점이다.
중국산 조조전 MOD인 촉한영웅전에서는 아주 대접이 좋지 않은데 우선 하비 전투에서 적토마를 훔쳐 배신하고, 그 뒤 백마 전투에 참전, 여포를 이겼노라고 뻥을 치다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허풍쟁이다"라며 안량한테 죽는다.

2.3.4. 삼국전투기


삼국전투기에서는 꼭두각시 서커스의 판탈로네로 등장한다. 꼭두각시 서커스가 애니화하기 한참 전에 등장했기 때문에 같이 나온 송헌, 위속과 더불어 애니판 컬러가 아닌 그냥 흑백으로 등장한다.
정군 전투 편에서는 송헌과 함께 복양성을 수비하다 만총에게 털린 것으로 묘사된다.
하비 전투 편에서는 진등의 의견에 따라 소관을 야습하기로 한 여포와 함께 간 것으로 묘사된다. 이후 평소에도 쌓인 게 많았던 위속, 송헌이 반란을 종용하자 처음에는 주저하지만 위속이 얼마 전에 후성이 여포에게 까였던 일을 언급하며 함께 하자고 하자 마지못해 응하는 모습을 보인다.[5] 이후 위속, 송헌과 만만한 진궁을 납치해서 조조에게 바치며 투항하게 된다.
그리고 위속, 송헌과는 달리 여포 멸망 후 전혀 등장이 없기 때문인지 삼국전투기에서는 후성이 조조에게 투항 후 위속, 송헌과는 달리 죄책감을 느끼고 낙향했다는 설정을 붙였다. 이후 등장은 없음.

2.3.5.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image]
하비 포위전 당시 혹한기에 처음 등장한다. 이때만해도 여포를 위해 진심으로 조조군의 패퇴를 바라며 군마를 훔쳐 조조군에 투항하려던 배반자를 손수 추격하여 처단한다. 그리고 이런 탈주 사건이 일어나는 원인이 추위에 기력이 빠지고 사기가 떨어진 병사들의 모랄빵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위해 여포의 금주령을 어기면서까지 멧돼지들을 잡고 술을 준비하여 위로하려는 등 성실하면서도 따뜻한 면을 갖춘 장수로 나온다. 여포의 명으로 채찍질 100대 형벌을 당하고 위속과 송헌이 찾아가 위로하자, 상처가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부하들의 참담한 현실과 여자들의 말만 듣는 여포의 모습을 더 우려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투항하러 가는 길에도 초소의 입구에 앉아서 잠든 보초병의 앞을 지나가면서 "난 이런 병사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주고 싶었던 건데..."라고 조용히 중얼거리며 지나가는 등 굉장히 인자한 덕장의 이미지로 나온다. 게다가 얼굴도 작중에선 나름 '''미중년'''에 속하는 페이스인데다 조조군에 투항할땐 조조가 "후성 같은 '''훌륭한''' 장수가 항복이란 말이지"라는 혼잣말을 하는 등 '''이 짧은 등장타임''' 동안 묘하게 엄청난 수혜들을 팍팍 받는다. 아마 삼국지 2차 창작물 역사상 전무후무의 최초, 최후로 유일하게 '''명장'''으로 나오는 후성이 아닌가 싶다. 위 짤방처럼 여포가 처형당할 때 쓴소리를 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3. 후한 말의 인물이자 조조 휘하의 관리


侯聲
생몰년도 미상
군제주를 지냈고 조조가 둔전제를 시행해 백성들에게 소를 빌려주고 곡물로 조세를 받아들이게 하는 경작에 대한 조세 규정을 결정해 시행했다. 이 정책을 시행하면서 조지가 소를 빌려주고 세금을 징수했지만 가을이 되어도 징수량이 그리 늘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뭄, 수재 때는 더욱 조세를 걷는 것이 불편했다고 보고했으며, 조조는 이에 대한 개선책을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그러자 후성이 관청에 있는 소를 농민에게 빌려주고 조세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관전을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낫다면서 조지의 주장은 관에서는 편리하지만 백성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된다고 진언했다. 이로 인해 조지가 자신의 계획으로 분전을 시행해 둔전을 성공적으로 시행해 수확량을 늘릴 수 있었다.

3.1. 미디어믹스


소설 비열한 성자 조조에서는 조조가 돈구령에 부임하면서 탐관오리들을 파면하면서 동평릉현령이 되었으며, 조조가 돈구령에서 물러나고 한참 후에 동군태수로 부임하면서 조조를 섬긴다.
조지와 둔전에 관련해서 의견이 맞지 않았고 조지가 둔전제를 바꾸려 하자 후성은 잘못하면 백성들의 반발을 살 수 있다고 반대했는데, 조조가 둔전제의 개혁안에 대해 소를 나눠주는 것보다 밭을 나눠주는 것이 효율적인 것에 대해 설명하자 납득한다.

4. 후한의 관료


侯成
(109 ~ 169)
후한 말의 인물. 자는 백성(伯盛).
산양군 방동현 사람으로 조상은 빈주의 기산에서 나왔고 주문왕 이후에 정나라에 봉해졌으며, 정나라의 공중에게 성씨를 하사받았다고 하며, 전한 시기의 후공, 후한 초기의 후패 등의 조상이 공을 세웠다.
상당태수의 동생으로 형의 이름은 알 수 없으며, 어려서 아랫 사람을 아끼고 윗 사람을 공경했으며, 춘추와 각종 서적들을 잘 알았다. 군에서 청해 주부를 지내다가 독우, 오관연, 공조, 수금향장을 지냈으며, 자사, 태산, 동평에서 치중종사로 불렀다.
169년 4월 2일에 병으로 인해 61세로 사망했으며, 그가 죽자 그에 대한 비석인 금향장후성비(金鄕長侯成碑)를 세웠다. 부인은 후성보다 먼저 164년 11월 3일에 병으로 사망했다.
그런데 후성의 비석에 적힌 조상인 후패는 비석에는 오위사명을 지낸 것으로 나왔지만, 후한서에 따르면 후패는 척간을 지낸 것으로 나왔다. 척간은 광무제 때의 관직으로 비의 문장이 잘못된 것이다.
[1] 청정개발사업(Clean Development Mechanism)을 지칭하며, 교토의정서와 관련 있다. 한마디로, 정부 또는 민간조직이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여 '공인된 감축분(CERs)'의 형태로 배출권을 얻고, 이를 온실가스 허용치를 넘은 기업 및 국가에 판매하는 사업이다.[2] 이 때 여포는 장료와 고순에게 원군을 어떻게 보낼까고 고민했는데, 진궁은 ''''원군을 보낼 필요 따위 없으며 그들은 개죽음을 당하더라도 여포에게 도움이 됐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해할 것''''이라는 뉘앙스의 발언을 한다. 제작진이 진궁에게 원한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진궁에 대한 묘사나 대우가 심히 좋지 못하다.[3] 특히 위속송헌은 각각 "그럼 그대는 주군이 평생 유비 밑에 있었으면 좋겠소?", "암, 주공과 함께 천하를 취해야 옳지."라며 적극적으로 배반을 종용해 개념 인증이 훨씬 부각되었다. 뿐만 아니라, 조조와 유비의 협공을 견디지 못해 패색이 짙은 와중에 장료와 고순을 희생용 미끼로 세운 다음 하비로 도주하는 것이 목표라는 진궁의 설명[2]을 여포가 수긍하자 '이럴 수가! 내가 지금까지 이런 자를 섬겨왔었다니!'라 생각하며 여포군에서 몇 없는 양심임이 드러난다. 또한 적교를 내릴 때 바로 항복하는 두 장수와는 달리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유비가 설득하려 나서자 "어? 유비로군. 좋아 상대해주지."라며 싸울 작정으로 나간다. 또한 유비가 "지금 장수들의 마음은 전부 여포에게서 떠나버렸소. 후성 당신처럼 말이오."라는 말에 "무슨 소리냐! 내가 그런 마음을 가질리...!"라며 반박한다.[4] "죽음을 각오했던 건가? 적이지만 훌륭하다. 하지만 나도 죽을 수는 없어서 말이다."[5] 일반적인 매체에서는 직접적으로 체벌을 받은 후성이 원한을 품고 반란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으나 본작에서는 마지못해 반란에 참여하는 것으로 각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