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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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良
(? ~ 200년)
1. 개요
2. 정사
2.1. 백마 전투
2.2. 원소 측의 상황
3. 평가
4. 연의
4.1. 안량방심설
5. 기타
6. 미디어 믹스


1. 개요


후한 말의 인물. 원소 휘하의 장수. 서주(徐州) 낭야국(琅邪國) 임기현(臨沂縣) 사람이다.

2. 정사


열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인물들의 기록에서 그 편린을 모아 추측하는 수밖에 없다. 주된 내용은 조조와의 전쟁에서 선봉이 되었으며 동군태수 유연을 공격해 백마에서 포위했으나 구원에 나선 조조와의 싸움에서 패사하게 된다는 것으로 「원소전」, 「무제기」, 「순욱전」, 「관우전」, 「동소전」, 「서황전」 등에서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
정사 순욱전에 나오는 순욱의 평가에는 문추와 더불어 단지 필부의 용맹을 가진 장수라 언급된다. 여담으로 여기서 필부의 용맹이란 범용한 사람의 객기에 비유되는 용기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저 일신의 용맹만을 믿고 행동하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1] 한편 공융은 안량과 문추가 삼군의 으뜸가는 장수라며 순욱과 상반된 의견을 내놓았는데, 공융과 순욱의 입지를 생각했을 때 강대한 원소와의 싸움을 앞둔 상황에서 비관론과 낙관론 측의 상반된 해석으로 볼 수 있다. 연의에 나오는 안량의 모습은 순욱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다.[2]
정사 「원소전」에 기록된 저수의 안량에 대한 평가는 전형적인 돌격대장 타입의 용장이다. 저수의 평가에 따르면 안량은 용맹하지만 성격이 급하고 도량도 좁았다고 한다. 저수는 이런 안량의 결점을 지적하며 원소에게 단독으로 군세를 맡기면 안 된다고 진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안량은 홀로 대군을 이끌고 백마로 출진했고 단신으로 습격해 온 관우에게 살해당했다.
반면 무제기에는 안량, 곽도, 순우경이 같이 출진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당시 곽도와 순우경은 저수와 더불어 원소군 군부의 최고위 인사로 결코 안량보다 낮은 반열이라 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원소전」과 「무제기」의 기록이 상충하고 있다.
대립되지 않는 선에서 적절히 해석하면 이렇다. 안량은 무용은 뛰어나지만 성격이 급하고 도량이 좁기 때문에 다른 장군들과 함께 임무를 맡으면 작전권 문제로 충돌을 일으킬 수 있으니, 저수는 이를 경계하여 작전에서 배제하거나 다른 장군의 휘하에 소속시키라고 진언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저수는 안량의 용맹을 인정하면서도 작전의 유기적인 협력을 보다 중시했다는 의미.
하지만 원소는 저수의 진언을 무시하고 안량, 곽도, 순우경을 각각 선발로 삼았으며 황하를 건너 남하한 안량은 백마에서 동군태수 유연(劉延)을 포위한다.

2.1. 백마 전투


「장료전」, 「서황전」, 「동소전」, 「순유전」 등에도 이 해당 인물들의 참전 이력에 짤막하게 등장하는데, 이로 미루어 당시 조조군에서는 상당한 수의 제장들이 투입되었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종합해 보면 백마전투는 조조를 지휘관으로 하여 관우장료가 선봉이 되었으며 서황 등의 장수들도 참전하였고 순유가 계책을 낸 싸움이었다.
「무제기」와 「순유전」에 언급된 백마 전투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면 원소 측은 안량 등이 선봉으로 백마를 포위한 상태였고, 원소의 본대도 황하를 건너 도하해 안량과 합류를 준비하던 상황이었다. 조조 측은 백마에 포위된 유연(劉延)을 구원하려 하고 있었고, 이때 순유는 조조에게 서쪽의 연진으로 미끼 부대를 보내 황하를 건너 배후를 공략하듯 페이크를 친다면 원소가 이에 대응해 연진으로 향할 것이니 원소군의 전력이 분산되어 안량을 잡을 수 있다고 진언했다.
조조가 순유의 진언을 따르자 이 움직임을 파악한 원소는 즉시 서쪽으로 군세를 돌려 대응한다. 이 틈을 탄 조조가 직접 백마 포위진을 치자 안량이 크게 놀라며 맞아싸웠으나 패하고 참수되었다고 한다.
조조가 급히 공격하자 안량이 크게 놀라 응전했다는 기술이나 조조측에 조조 자신을 포함해 상당수의 제장들이 참전하고 있던 정황을 봤을 때, 조조는 의군을 통해 백마로 도하해 안량과 합류하려던 원소의 움직임을 연진으로 돌리고, 그 사이 전력을 집중한 속공으로 안량을 격파한 것으로 보인다.
「관우전」에는 그의 최후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그를 멀리서 지켜보던 관우가 말을 달려 병사들 사이에 있던 그를 찌르고 수급을 취해 돌아왔다는 구절이 있다. 따라서 관우에게 죽은 것만은 확실하며 덕분에 정사에 단 5명 등장하는 일기토 패배자 명단(곽원, 마초, 곽사, 안량, 진취)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거기다가 정사의 일기토 패배자 중 단 3명뿐인 사망자다. 이 전적 때문에 무예에 서툰 전략가, 참모 타입의 장수였을 거라는 추측까지 나올 정도. 다만 사서상의 일관된 평가는 저돌적인 멧돼지 타입으로 문약한 이미지와는 담 쌓은 사람이다.
이후 연진에서 문추가 출격하지만, 역시 조조군의 계략에 걸려 짜부러져 죽는다. 무제기에 따르면 안량과 문추는 하북의 명장이었기에 둘이 죽자 원소군의 사기가 바닥을 쳤다고 한다. 당장 백마-연진 전투는 원소군 연전연승 상황에서 이루어진 게 아니라 관도대전의 거의 시작격 전투였다. 그런데 '''백마의 초전부터 단 한 명의 장수에게 아군의 명장이라고 불리는 지휘관이 단기접전으로 초살당하고 다른 장수들은 아무도 그 장수를 당해내지 못하여 포위가 풀렸다'''는 상상초월의 놀라운 소식이 전해진다. 이어 연진에서도 또 그와 비견되는 유명한 네임드가 죽었다. 이런 놀라운 사태가 발생했다면 병사들의 동요는 당연한 것이다.
또 결과론적인 관점에서 관도대전의 전체적인 전황은 초전 지휘관인 안량, 문추가 죽었을 뿐이지 그 군세가 궤멸된 것도 아니며, 조조는 이후 주요 거점인 백마, 연진을 모두 포기하고 이후에도 후퇴를 거듭해 허창의 목줄기인 관도까지 밀리는 형국이었고. 원소군 지휘관들도 사기충천하여 자기네들이 연전연승하고 있다고 보고 있었기에, 안량, 문추의 죽음은 대세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의견도 있으나 이 전투에서 패했다면 조조는 안 그래도 초반부터 사기가 충천한 원소군의 파상공세에 밀려서 원래 역사보다 훨신 고전하게 되었을 것이다. 거기에 원소군은 관도대전 내내 모사들과 장수들간의 내분요소가 심했고 오히려 이길수록 이런 내분 문제가 심해지고 있었다. 여기에 원소 역시 독단적인 결정을 많이 내리고 있어 결국 이것으로 무너졌다. 그런데 아예 초전부터 박살나 오히려 조조군의 사기가 떨어졌다면 원소군의 이런 문제점이 드러나기 전에 조조가 밀렸을 공산도 충분히 있다. 괜히 조조가 관우에게 곧바로 조정에 청하여 정후의 지위를 내린것이 아닌 것이다.
애초에 10만이 넘는 병력이 부딪히는 대전쟁인데 총사령관도 아닌 한 개인의 죽음으로 전세가 완전히 결정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우며, 명장이라 병사들의 사기에 영향을 미칠 정도라는 기록은 분명이 있어 네임밸류가 있는 장수였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당장 이 당시 원소군에 속한 오자양장 장합조조에 항복하기 전에는 기록이 거의 없고 이들에게 붙었던 명장이라는 칭호조차 이때는 주어지지 않았다.[3]
결론을 내리자면 관도대전의 전초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백마전투 자체에만 한정해서 볼 때는 그의 죽음이 전세를 결정짓는 데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때는 안량이 사령관이었거나, 적어도 그에 준하는 지위에 있었기 때문. 여기에 곽도, 순우경 등 군부의 네임드들과 나란히 언급되는 것만 봐도 당시 시점에서 주요인물이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2.2. 원소 측의 상황


한편 원소가 의군에 반응해 안량 등의 선봉대를 고립시킨 이유는 기록이 부족하여 거의 알 수 없다. 다만 조조가 연진으로 보낸 의군에 반응했던 원소는 연진으로 순조롭게 도하에 성공했는데 이때까지 안량 등이 조조의 공세를 버텨낸다면,
여양
황하
원소(연진)→→→→→→조조vs안량(백마)
식으로 원소는 혹시모를 배후 공략의 여지를 완전히 봉쇄할 뿐 아니라, 조조를 양면에서 협공하며 쌈싸먹게 된다. 백마를 포위하고 있던 선봉대의 포진은 안량뿐 아니라 곽도, 순우경까지 포함된 올스타 멤버였고,[4] 군세로도 1만 이상의 대군세였기에 조조가 전력을 집중해 공격하더라도 쉽게 무너지진 않을 것이라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
조조의 신산귀모에 생각없이 낚였다기 보다는 속아주는 척 일거양득을 노린 것으로 보이는데, 물론 조조도 처음부터 역포위의 위험성을 감안하고 의병을 보낸 것일 테니 이를 피하려면 최대한 전력을 집중해 백마의 원소군 선봉대를 속공으로 격파해야 했다.
안량이 원소와 조조의 머리싸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면 최대한 조조의 공세를 버텨내며 시간을 끌었어야 했지만 안량은 쓸데없이 전방에서 지휘하다가 원턴킬이 나버렸고, 이로 인해 원소의 계산은 완전히 틀어져 버린다.
백마전투 직후 조조가 연진으로 향한 정황을 봤을 때 속공으로 안량을 정리한 조조는 원소의 연진 상륙까지 저지하거나 도하중인 원소를 기습해 치명타를 주려 했던 것으로 보이나 여기까지는 실패한 듯, 도하에 성공한 원소는 문추를 보내 조조를 추격하지만 문추 역시 계략에 걸려 패하고 죽는다.
물론 기본적인 전력차가 상당했던 만큼 서전의 패배가 원소에게 치명타는 아니었고, 이후 원소는 전황을 매우 유리하게 이끌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량, 문추의 죽음은 병사들의 사기에 상당한 악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연의 등에서는 안량이 죽은 뒤 백마를 포위하고 있던 원소군이 조조군에게 전멸당하거나 하북으로 패주하는 것으로 많이 묘사되는데, 비록 안량이 죽었지만 곽도와 순우경은 건재했고 이들은 당시 원소군 군부의 최고위직 인사로 지휘체계상 안량보다 낮지는 않았을 것이라 백마 포위군이 안량의 죽음으로 그대로 무너졌을 가능성은 낮다. 실제로 백마를 포위하고 있던 원소군은 안량의 죽음과 관우의 분전[5] 으로 당황해 포위를 풀고 잠시 군세를 물렸을 뿐 아예 전선을 이탈한 것은 아니다.
다만 조조가 백마의 포위를 풀어 유연 등을 구출한 뒤 전선을 방치하고 곧바로 원소 본대가 도하하던 연진으로 향한 것을 보면 피해가 적지 않았던 듯. 궤멸은 피했으나 피해 수습 등으로 한동안 무력화됐던 것으로 보이며 이후 원소가 계속 남하해 양무에 본진을 세운 상황에서 곽도가 같이 있던 것을 보면 패군을 수습한 뒤 원소의 본대에 합류한 것으로 보인다.

3. 평가


안량은 원소의 신임을 받아 선봉의 주요 작전을 맡은 장군이었으나 정작 백마 전투 당시 원소의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며, 설령 이해하고 있었더라도 돌격대장스러운 버릇 못 고치고 객기를 부리다가 전략을 말아먹었다.

다분히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백마 전투의 향방만 살펴보면 안량에 대한 평가는 뇟속까지 근육덩어리라는 저수와 순욱의 의견 쪽에 무게가 실린다.
장군이라는 작자가 전선 한복판에서 적장에게 목을 따이는 최후를 맞았기에 잡장이라는 평가도 심심찮게 제기되나, 원래 백마를 포위하고 있던 선봉대와 합류했어야 할 원소 본대가 연진으로 향하면서 고립된 안량군에 조조는 모든 전력을 집중해 맹공을 펼쳤고 안량군은 생각 이상의 공세에 크게 놀란 상태였다. 안량이 용맹하다는 점이 여러 차례 강조되는 점을 봤을 때 이런 상황에서 사기를 독려하고 전황을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 직접 선진에서 지휘하고 있었을 가능성은 적지 않다.
이를 보고 병사들을 헤집고 단기필마로 돌진해 온 관우에게 끔살당하는 것은 장군치고는 매우 어이없는 최후지만 어찌보면 순욱이 혹평한 '필부의 만용'과 딱 들어맞는 부분이기도 하고 따지고 보면 그 유명한 손견이나 조조군의 명장이라 불리는 하후연 역시 비슷한 최후를 맞았다. 성경에 나오는 골리앗이나 몽고의 쿠일다르의 예를 생각해보자. 길거리 싸움이나 격투기가 아닌 이상 단 한 순간의 실수로도 목이 달아날 수 있는 것이 전장임을 생각할 때 1:1 대결에서 전사했다는 이유로 지나친 저평가는 억울할 수도 있다.
물론 손견, 하후연 등이 고평가받는 이유는 저런 최후를 맞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쌓은 전공 때문이다'''. 이들 역시 '사령관이 전방에 모습을 나타냈다가 살해당하고 전투에 패배하는' 대목만 쏙 빼놓고 보면 그냥 삽질이다. 이런 행위가 승리를 가져다줬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으나 안량은 패배했고 하필이면 패배에 대한 기록만이 역사에 남아버렸다.
그러므로 정사 삼국지의 저자인 진수가 안량을 명장으로 평가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정사의 무제기에는 문추의 죽음 다음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良、丑皆紹名將也,再戰,悉禽,紹軍大震

안량, 문추 모두 원소의 명장이었는데 두 차례 싸움에서 모두 격파되자 원소군이 크게 동요하였다.

사실 앞뒤 정황 분석이 이 정도까지 가능한 것만 해도 안량은 나란히 언급되는 문추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기록이 많은 편이다. 물론 결론은 안량이 삽질하다 말아먹었다는 걸로 귀결되지만(...) 문추는 사서에서 기장이라고 언급하며 기병 돌격 대장 역할인 것 같고 군대 통솔 규모로는 안량이 더 대규모 군사를 운용했던 걸로 보아 지위는 안량이 더 위였던 것 같다. 문추는 기병대 대장이고 안량은 사령관에 가깝다고 보면 될 것이다.
당시 가장 강대했던 원소군의 주요 네임드로 취급되는 점을 생각하면 무능한 인재는 아니었을 것이고 적어도 매우 용맹스러운 장수였다는 것만은 확실하며 이 점은 그에 대해 혹평하던 순욱도 인정한 부분이다. 다만 남은 기록이 오직 패배하는 장면뿐이기 때문에... 물론 원소가 공손찬이나 장연, 어부라 등과 다투며 하북을 제패할 때 전공을 세우고 조조 진영에까지 명성을 날렸을 것으로 추측할 수는 있다.

4.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관우를 띄워주기 위한 장치로 등장하며 보다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여포 휘하에 있던 항장 송헌, 위속 등을 참하고 서황마저 격퇴하는 등 위용을 떨친다. 여포를 배신한 송헌과 위속을 참하면서 본의 아니게 여포의 원수를 갚았다. 물론 뒤에 있을 관우의 승리를 장식하기 위한 포석으로 실제로 안량은 서황 등과 일대일 대결을 하지는 않았다.
소설에서 조조서황까지 격퇴당하자 크게 놀라 어쩔 수 없이 관우를 불러 안량과 대적하게 한다. [6] 이에 관우는 안량의 군대를 "흙으로 빚은 닭과 기와조각으로 만든 개"라고 평가하고 안량에 대해서도 "내가 보기에 저 자는 머리에 풀줄기를 꽂고 팔려 하는 자입니다."라고 평가한다.[7] 이윽고 관우적토마를 타고 전장으로 돌진하는데 안량은 상대가 누군지 물으려 하는 새에 이미 적토마가 앞으로 돌진해와서(...) 관우의 청룡언월도에 일격에 목이 잘렸다.
심지어 삼국지연의 가정본 주석[8]에서는 관우가 다가오자, 유비의 의형제인 관우라는 걸 알아보고 귀순하려 오는 줄 알고 방심하고 있다가 그냥 당한다(…).[9] 혹은 적토마가 너무 빨라서 관우라는 걸 알아보기도 전에 살해 당한다. 흔히 알려진 일기토에 당하는건 가정본 본문과 모종강본이다.
왠지 소설 판본에 따라서는 문추와 형제 같은 관계라고 나오기도 한다. 문추가 안량보다 강하다는 묘사가 판본에 따라 나오기도 하며, 게임상에서도 문추가 약간 더 강한 경우가 많다. 계교 전투 때 공손찬을 구하러 온 조운과 50여 합을 싸웠다는 연의의 내용이 반영된 듯. 또 위속송헌보다 항상 더 강하게 나오는 이유와 비슷해보인다. 위속은 송헌이 죽는 것을 보고 원수를 갚겠다며 안량에 맞섰고, 문추 역시 안량의 원수를 갚겠다며 나서는 장면이 나오고, 원소는 문추만이 안량의 원수를 갚을 수 있다고 수긍한다. 삼국지 영걸전에서는 아예 대놓고 "문추는 안량보다도 강한 장수."라고 나온다.[10]
여담으로 반동탁연합군화웅의 활약에 밀리는 장면에서 원소가 "내 휘하의 맹장 안량과 문추만 이 자리에 있었으면!"이라고 하는 장면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연의에서는 그 이전부터 원소 휘하에서 있었다는 설정이 되어 있는 듯 하다. 작중에서 당시 원소가 안량과 문추를 어디에다가 보내놨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원소와 손견이 옥새 문제로 대립하자 느닷없이 튀어나온다.
김구용 역 삼국지에서는 이름에도 두음법칙을 적용하는 특성 탓에 '''안양'''으로 나온다.
안량, 문추 이 두 친구들 때문에 파워 밸런스가 완전히 뒤죽박죽이 되었다. 장료=서황<안량=문추<=조운<하후돈=관우가 되었다. 근데 안량과 문추와 싸우기 이전 장료는 하후돈과, 서황은 허저와 '''호각으로 싸운 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장료와 서황이 고전하는 동안 하후돈이나 허저는 뭐하고 있었는가라는 질문에는 '''나관중이 다시 살아나도''' 대답하기 힘들 것이다. 굳이 해석하자면, 하후돈이야 다른 지역을 지키는 사령관이라 직접 나설 수 없을 것이고[11] 허저는 당시 오호대장급으로 강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겠다. 실제 초반 허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무력 90대 후반을 찍는 실력이 아니었다. 앞서 안량에게 패했던 서황과 무승부를 냈었고, 이후 관도대전에서도 '''고람'''을 상대로 '''대등하게''' 싸웠다. 본격 오호대장급 실력을 보여준 것은 여남 전투에서 조운과의 무승부부터였다. 근데 첫 등장에서 서황과 무승부를 낼 시점에 조조가 이미 전위와 같은 전투력이라고 평가했다. 사실 서황과 무승부는 허저가 서황을 죽일 마음까지는 없었기에 가능했던 것.
사실 위의 문단은 좀 억지일 수 있는 게 사람의 신체 컨디션은 그날그날 따라 달라진다. 똑같이 몸을 쓰는 직업인 축구선수를 예로 들자면 리오넬 메시크리스티아누 호날두조차도 삽질한 경기 꼽아보라면 수도 없이 많고 그보다 못하던 선수가 인생경기를 찍는 날도 있는 법이다. 물론 관우와 안량의 대결처럼 여러 겹의 호위를 뚫고 상대편 상장의 목을 베어버릴 정도로 압도적인 장군이라면 다시 붙는다 해도 결과가 뒤집힐 확률은 적겠지만 작은 차이라면 이런 컨디션의 문제로 인해 얼마든지 결과는 뒤집힐 수 있다고 봐야 한다.

애초에 나관중이 파워 인플레를 고려하며 연의를 쓴 것이 아니지만.

4.1. 안량방심설


관우를 보고 귀순하려 오는 줄 알고 있다가 넋 놓고 죽는다는 삼국지연의 가정본에 덧붙여진 주석[12]에서의 묘사 때문에 "안량은 제 실력을 내지 못하고 방심하다 죽었다"는 떡밥이 대두되기도 한다. 판본에 따라 상황에 사소한 변화가 생기는데 그 유형은 대략 다음과 같다.[13]
  • 적토마가 너무 빨라서 뭐가 일어났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끔살.
  • 관우인 것을 알아보고 귀순하러 오는 것으로 착각하다가 끔살.
  • 정상적으로 맞붙지만 역시 끔살.
괄목할 만한 점은 '적토마가 너무 빨라서'라는 대목으로 여포 사후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나 전장을 질주하는 적토를 묘사함으로써 여포가 가지고 있던 연의 최강캐의 타이틀을 관우에게 넘겨주고 있다. 동시에 적토는 유-관-조 삼각관계를 이어주는 아이템으로서의 정체성도 가지고 있는 바, 이후에 이어질 관우조조의 이별에 대해서도 밑작업을 해두고 있다.
어쨌든 그만큼 관우의 무예가 너프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며 촉과 촉의 인물들에게 우호적인 나본으로서는 이례적인 묘사다. 사실 깊이 보면 연의의 유관장 삼형제는 주인공으로서의 버프를 받는 동시에 알게 모르게 조금씩 너프를 받는 부분들이 있는데, 예를 들어 유비는 인과 덕을 내세우면서도 필요에 따라 권모술수도 사용하는 군웅이었으나[14] 연의에서는 덕만 남은 다소 무능한 인간으로 묘사되고, 장비는 지용을 겸비한 멋들어진 영웅호걸에서 순박한 망나니로 체인지한다. 관우 역시 정사에서는 적수가 없는 캐사기 유닛이지만 연의에서는 평범한(?) A+급 무장으로 살짝 너프된 감이 있다. 스포츠로 따지면 라이벌도 없는 전국 최고 실력의 선수에서 견제해야할 강팀 에이스로 떨어졌다고 보면 될 것이다. [15]. 다만 이러한 묘사는 독자들로 하여금 주인공에게 애정을 가지고 감정이입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지 딱히 나본이 유관장을 폄하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애시당초 삼국지연의는 소설로서 소설의 플롯을 따라가기에 이러한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여하튼 안량의 방심여부에 대해서는 사서에 기록이 없기 때문에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사서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기 때문에 그랬을 '가능성' 자체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려면 별의 별걸 다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사료를 해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어찌 되었든 관우 하나 깎아 내리려면 죄다 너프를 먹을 수밖에 없다는 말인데, 이러한 만약이라는 가정을 다 도입하면 일기당천 아닌 사람이 없게 되거나 다 평범한 인물이 된다.
현대 삼국지 커뮤니티에서도 심심풀이용 개드립 이상으로는 다뤄지지 않는다. 다만 다른 곳도 아닌 삼국지연의에 나왔던 설명인 만큼 생명력만큼은 끈질겨서 관우 관련 떡밥이 대두되면 질리지도 않고 나온다.

5. 기타


당나라의 서예가 겸 정승인 안진경이 안량의 직계후손이라고 한다.
사서의 기록이 적어 그 출신지조차 알 수 없으나, 안진경의 예도 있고 남조시대의 학자 안지추는 자신의 저서인 안씨가훈[16]에서 역대 군무에 종사했던 여러 네임드 안씨들을 소개하면서 후한 말 시기에는 안량이 있었다고 언급한다. 안량 등에 대한 안지추의 평가는 장군의 지위까지 출세하면서 한때 승승장구했으나 그 말로는 비참했다는 것인데, 비단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원래 군인 자체가 곱게 죽기 매우 어려운 직업이라며 후손들에게 군무에 종사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안량이 안지추의 직계 조상은 아니지만 어쨌든 같은 집안 사람으로 적고 있기 때문에 안량은 안지추의 본관과 같은 서주 낭야국 임기현 출신임이 거의 확실하다.
한자를 해석하면 顔은 얼굴이요, 良은 좋다는 뜻이므로, 얼굴이 잘 생겼다는 뜻이 되는데, 문추는 文은 글이나 문장, 醜는 더럽다는 뜻이니, 용모는 당당한데 문장을 잘 못 쓰는 사람을 평가할 때 안량, 문추 드립을 시전할 수도 있겠다. 근데 웃긴건 잘생겼다는 안량이나 못생겼다는 문추나 보통 미디어에서는 잘생기게 묘사되는 경우가 드물다.

6. 미디어 믹스



[1] 참고로 필부의 용맹의 대표주자가 바로 항우. 필부지용이라고 해서 무능력자라는 얘기가 아니다. 싸움 실력은 괜찮지만 대장씩이나 돼서 쫄병마냥 생각을 안 하고 산다는 뜻이다.[2] 연의에서 안량이 보여주는 모습은 용맹뿐으로, 출진 바로 전에 저수가 안량을 까지만 원소가 독단으로 안량의 출전을 밀어붙이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이건 문추 때도 그대로 재연된다.[3] 다른것도 아니고 원소군에 있을 때 장합의 행적이 가장 상세한 부분이 장합이 조조군에 항복할 때 상황이다(...)[4] 곽도, 순우경이 워낙 이미지가 안 좋긴 한데, 당시 원소군 군부의 최고위 인사이자 네임드였다. 거기에 순우경은 '''원소군 장수들 중 짬밥 1위'''였다.[5] 관우전의 서술에 따르면 안량이 죽은 뒤에도 싸움은 계속 이어졌으나 원소군의 제장들 중 관우를 당해낼 자가 없어 포위를 풀었다고 한다.[6] 허저는 비록 서황을 압도하지는 못했지만 여포와 일기토를 벌이고 전위와 마초와 호각을 이룰 정도로 강자다. 뒤에 서황과 호각이라고 적혀있었지만 애초에 허저가 서황을 죽일 마음이 없었고 서황도 유인을 해야했기에 제대로 된 싸움이라고 보기 어렵다.[7] 고대 중국의 시장에서는 팔 물건에다가 풀줄기를 꽂아두는 관습이 있었다.[8] 한마디로 본문의 내용이 결코 아니다. 본문은 모종강본과 내용이 동일하다.[9] 사실 안량이 전사하자 패잔병들의 증언과 저수의 간언이 합쳐져 원소가 자기 진지에 머물고 있던 유비를 죽이려 했다가 관두는 장면이 뒤따라 나오긴 한다. 하지만 방심하다가 당했다는 건 그다지...[10] 하지만 실제로는 안량이 제1선봉이었고, 문추는 그 이후에 나서는 걸 보면, 연의와는 달리 안량이 문추보다 더 용맹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사수관 전투도 화웅이 제1선봉, 더 강한 여포가 그 이후였기 때문에 장담은 할 수 없다...기엔 여포는 사실상 동탁의 친위대장이고 진짜 에이스는 서영이다.[11] 더욱이 하후돈이 안량과의 싸움에서 전사라도 하는 날에는 관도대전 시작하자 조조군 졌다 끝!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12] 당연히 주석인 만큼 나관중이 만든 이야기가 전혀 아니다.[13] 물론 정사엔 이런 얘기 안나온다. 그냥 관우가 가서 죽였다로 끝. 안량이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정사에 없다.[14] 그래도 절대 약탈을 하거나 자신을 따르는 백성들을 버리지 않았다. 오로지 권력을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는 그런 모습은 아니었고 유표 사후의 형주나 익주 침공 때의 모습을 보면 철저하게 인과 덕에 의거한 모습을 보였다.[15] 연의에서는 너도나도 관우, 장비급으로 상향되니까... 황건잔당 관해가 관우와 수십 합을 겨루고, 원술 휘하의 기령이 관우와 30합을 겨룬다. 오히려 연의에서는 장판파에서 대활약한 조운과 장비가 더 띄워지는 편이다.[16] 여기에 수록된 인물 중엔 공자의 수제자 안회도 있다. 안회가 안량의 집안 조상이 되는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