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카가와 칼부림 사건

 



1. 개요
2. 범인의 신상과 전과기록
3. 기타
4. 미디어상에서

深川通り魔殺人事件(ふかがわとおりまさつじんじけん)
[image]
체포 직후의 가와마타 군지(가운데)
1981년 6월 17일 도쿄도 고토구 모리시타 니초메 일대에서 벌어진 묻지마 살인 사건. 아키하바라 무차별 살상사건 이전까지 일본 사회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묻지마 살인 사건임과 동시에, 일본어 속어인 전파계의 어원이 된 사건이기도 하다.
사건명의 후카가와(深川)는 현 고토구 서쪽 동네들을 일컫는 말이다.

1. 개요


1981년 6월 17일 오전 11시 35분경 범인 가와마타 군지(川俣軍司, 범행 당시 29세 무직)가 길을 가던 도중 마주친 여성과 아이 4명을 회칼로 찔러죽이고, 뒤이어 행인 2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그리고 행인 1명을 납치하고 근처에 있는 라멘집으로 끌고갔으며,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협박하여 인질극을 일으켰다. 다행스럽게도 납치된 여성은 6시 50분경 탈출한 뒤 경찰에 신고했고, 가와마타는 팬티 차림이라는 추한 몰골로 경찰에 붙잡혔다.

2. 범인의 신상과 전과기록


범인 가와마타는 이바라키현 가지마군(鹿島郡) 출신이며 중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초밥집에 취직했다. 그러나 언행이 불량하여 밥 먹듯 해고당하기 일쑤였다. 야쿠자를 동경하여 직접 야쿠자를 찾아가 문신을 하기도 했다. 트럭운전사를 하기도 했으나 해당 직장에서도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 필로폰 상습 복용자이기도 했다. 해당 사건도 환각과 환청을 경험한 상태에서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으며, 가와마타는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어떤 전파가 감지되어서 일을 저질렀다"는 말을 남겼다.
전과기록 역시 화려하여 1971년 7월에는 공갈사건, 1972년 3월에는 아다치구에서 폭행상해사건, 동년 9월에는 도미사카(富坂)에서 폭행사건을 일으키는 등 주폭 행위로 감옥살이를 한 바 있다.
범행 이후 1982년 12월 23일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현재까지 복역중이다

3. 기타


동아일보에서도 '횡설수설'이란 코너에서 이 사건을 짤막하게 언급한 바 있다. 지금보다 반일감정이 더욱 강했던 시기인 만큼, 사가와 잇세이 식인사건과 함께 '일본인의 잔인성'을 증명한 사건으로 기술하고 있다.(#)

4. 미디어상에서


TV 아사히에서 이 사건을 드라마로 재연했고, 1983년 7월 25일 월요일 저녁 9시에 단막극으로 방영되었다. 가와마타(작중에서는 실제 이름과 유사한 가와무라 군페이라는 가명으로 등장)의 대역은 다이치 야스오가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