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 애틀랜타 올림픽/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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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1996 애틀란타 올림픽에 참가했던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으로 아마추어로 구성된 마지막 대표팀이었다. 당시 대표팀은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야구 대표팀의 일원으로 참여했던 문동환(현대 피닉스), 손민한, 진갑용(이상 고려대)을 포함한 이병규(단국대), 강혁(한양대), 김선우(이상 고려대), 조인성(연세대), 임선동[1] 등 대학 선수와 현대 피닉스의 선수들로 구성되었다.
대표팀 사령탑은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김충남(연세대 감독)이 맡았고 코치로 장순조(경성대 감독), 조두복(고려대 감독), 최한익(현대 피닉스 감독)이 선임되었다.
2. 대회 결과
당시 대표팀은 일본과 쿠바를 경계해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최종 성적은 1승 6패. 대표팀은 이해 대회에서 네덜란드에게 11:3으로 승리한 것이 이 대회 유일한 승리였을 정도로 부진했다는데 당시 제대로된 야구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이탈리아와 호주에게도 패하며 "아무리 아마추어라지만 너무한거 아니냐!"라는 반응을 얻었다. 이해 대회에도 일본 대표팀과의 맞대결이 있었는데 4:14로 7회 콜드게임을 당하는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들였다.
- 1경기
- 2경기
미국과의 경기에서 대표팀은 2:7로 패배했다. 당시 미국 대표팀에는 트로이 글로스, 브랜든 루퍼, 자크 존스, 크리스 벤슨, 트래비스 리, 제프 위버, R.A. 디키등이 포진되어 있었고 이중 한국전 선발투수로 등판했던 세스 그레이싱어[2] 는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6번재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 지명된 유망주였고 6이닝 7피안타 2실점으로 한국 타선을 막아내며 승리를 거두었다.
- 3경기
니카라과와의 경기에서 선발 김선우가 3이닝 4실점, 문동환이 2이닝 4실점으로 각각 무너지며 3:8로 완패했다. 남은 경기에서 다 승리해야 4강이 가능하지만 쿠바, 일본 등과의 경기가 남아있어서 사실상 4강은 힘들어 졌다.
- 4경기
페드로 라조와 에두아르도 파레트, 호세 콘트레라스가 소속되어 있던 아마 야구 최강팀 쿠바와 맞붙은 대표팀은 의외의 난타전을 펼쳤고 최종 11:14로 패배했다.
- 5경기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대표팀은 11:3으로 대회 첫승을 거둔다.
- 6경기
올림픽에서 열린 한일전. 당시 일본 대표팀은 후쿠도메 고스케, 마쓰나카 노부히코, 이구치 타다히토, 다니 요시토모[3] 가 버티고 있었 기에 올림픽 당시 대표팀이 가장 주목해야할 경기로 꼽았다.
한국 대표팀은 선발투수 손민한이 1⅓이닝동안 4실점하며 무너졌고 뒤이어 올라온 김선우가 1이닝 6실점(4자책)을 기록하는 등 투수진이 난타당하며 7회 4:14 콜드게임 패배를 당했다.
한국 대표팀은 선발투수 손민한이 1⅓이닝동안 4실점하며 무너졌고 뒤이어 올라온 김선우가 1이닝 6실점(4자책)을 기록하는 등 투수진이 난타당하며 7회 4:14 콜드게임 패배를 당했다.
- 7경기
호주와의 경기에서 대표팀은 8:11로 패배. 이날 패배로 대회 최하위를 기록하며 쓸쓸하게 귀국해야 했다.
3. 여담
- 4번~5번을 친 진갑용은 26타수 9안타 .346 1홈런 3타점, 6번 타자로 나선 조인성은 19타수 5안타 .263 2홈런 5타점을 기록했다. 강혁은 미국의 선발이었던 세스 그레이싱어를 상대로 홈런을 때려내며 자신의 파워를 보여주기도 했다.
- 1996년 9월, 국제야구연맹은 긴급총회를 가지고 프로선수의 올림픽 출전 허가를 놓고 논의를 가졌는데 압도적인 표차이로 가결되었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 프로선수가 참여한 농구에 이어 올림픽에서 프로선수를 보게된 종목이 되었다.
그 결과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을 시작으로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도 프로선수를 볼수 있게 되었는데 단 대한민국 대표팀의 경우 이때도 아마추어와 프로선수가 섞인 형태로 구성되었고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2004 아테네 올림픽 부터 로스터에 프로선수들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1] 임선동은 원래 1996년 2월에 졸업해야 했으나 졸업 이수 학점 미달로 졸업을 하지 못했다. 이와는 별개로 다이에 호크스와의 계약 건으로 올림픽 출전 자격이 되는지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2] 올림픽 3경기에 나서 3승으로 공동 다승왕.[3] 일본 유도의 여왕 다무라 료코(결혼후 다니 료코)의 남편으로 유명한 야구선수. 올림픽 당시 .421 4홈런 11타점으로 맹활약 했으며 2000 시드니 올림픽, 2004 아테네 올림픽에도 일본 대표팀에 차출되며 활약했다. 참고로 부인과 자신의 메달(은1개, 동1개)을 모두 합치면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로 총 6개의 올림픽 메달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