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스 그레이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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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 트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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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KIA 타이거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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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자이언츠 에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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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의 힘을 보여줬던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이름'''
세스 애덤 그레이싱어(Seth Adam Greisinger)
'''생년월일'''
1975년 7월 29일 (49세)
'''국적'''
미국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6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소속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1998~2002)
미네소타 트윈스 (2004)
애틀랜타 브레이브스(2005)
'''KIA 타이거즈 (2005~2006)'''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2007)'''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8~2011)'''
치바 롯데 마린즈 (2012~2014)
1. 소개
2. 선수 생활
2.1. 메이저리그 시절
2.2. 한국프로야구 시절
2.3. 일본프로야구 시절
3. 연도별 성적
4. 관련 문서


1. 소개


미국 국적의 우완 투수로, 메이저리그와 한국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를 거쳐 요미우리 자이언츠,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활약한, 한-미-일 3대 프로리그를 모두 거쳐간 외국인 선수.
메이저리그에서는 실패한 유망주로 별다른 족적 없이 커리어를 끝냈지만 KBO리그 KIA 타이거즈 시절 좋은 활약으로 인해 한국의 야구팬들에게는 '''회색가수'''라는 별명이 있다. 별명의 유래가 무엇인고 하니 그레이싱어를 gray+singer로 풀어서 회색가수라고 한 것. 본래 유대계 성(姓)이기 때문에 ESPN 홈페이지를 보면 그의 이름은 Gri-sing-er라고 발음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반면 일본프로야구 등록명은 그라이싱가(グライシンガー).[1] 일본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시절에는 세스사마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여담으로 버지니아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애틀랜타 올림픽 미국 야구대표팀에 선발되어 3경기 선발로 뛰며 3승, 미국 대표팀이 동메달을 획득하는데 기여를 하기도 했다.

2. 선수 생활



2.1. 메이저리그 시절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시절에는 상당한 유망주였다. 9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6순위의 지명을 받으며 입단했을 정도. 구단은 그레이싱어를 루키리그가 아닌 더블A로 바로 보내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또한 이때 1996 애틀란타 올림픽미국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참가, 3승을 거두며 공동 다승왕을 기록해 동메달을 따내기도 했는데 이때 당시 한국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선발투수로 등판해 승리투수가 되기도 했다.
1998년 메이저리그에 콜업되어 21경기에 선발 등판, 6승 9패 평균자책점 5.12의 성적을 냈는데, 특히 후반기에 갈 수록 좋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대학 시절부터 쉼 없이 던졌던 그의 팔꿈치는 곧바로 탈이 났고, 토미존 서저리와 어깨 수술을 2번이나 받으며 2001년까지 12.1이닝을 던지는데 그쳤다.
재활 후 2002년 다시 복귀하여 그해 5월 13일, 당시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이었던 박찬호와 선발 맞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이긴 쪽은 5이닝 1실점의 박찬호.
2004년에는 미네소타 트윈스로, 2005년에는 워싱턴 내셔널스 스프링 캠프에 초청선수 자격으로 참가했지만 메이저리그 진입에 실패,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산하 트리플A 팀에서 잠시 뛰게 된다.

2.2. 한국프로야구 시절


그에게 손을 뻗친 구단은 KIA 타이거즈였다. 해태 시절을 포함해 창단 첫 꼴찌를 달리고 있던 기아는 다니엘 리오스두산 베어스에 보내고 전병두를 받아오는 대신 그 용병 슬롯을 그레이싱어를 영입하는 데 쓰기로 하고 계약을 체결한다.[2]
2005시즌 도중에 합류하여[3] 기복 있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점차 안정을 찾으며 14경기 6승 6패 3.93을 기록, 2006년 재계약을 체결하며 다시 뛰게 되었다. 2006시즌 이용규, 장성호, 김원섭, 이재주 이외 부진을 겪고 있던 기아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하며 많은 패전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팀의 에이스로 14승 12패 평균자책점 3.02의 좋은 성적을 거둔다.
하지만 시즌 종료 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오퍼를 받고 일본으로 떠나게 된다.

2.3. 일본프로야구 시절


일본 진출 첫 시즌인 2007년에 16승 8패 평균자책점 2.84로 센트럴리그 다승왕을 따낸다. WAR도 센트럴리그 투수 부문 1위. 그런 그레이싱어를 노리고 있던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는 시즌이 끝나자 돈지랄을 시전, 알렉스 라미레스와 함께 그레이싱어를 데려간다.[4]
2008년에도 좋은 활약을 펼치며 17승 9패 평균자책점 3.06으로 다승왕과 베스트나인을 차지한다. 다만 일본시리즈에서 좋지 않았던 게 흠.
2009년에는 요미우리 사상 두 번째[5]가 되는 외국인 개막전 선발투수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5월말까지 평균자책점 5점대의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6월부터는 안정을 찾으며 평균자책점 3.47에 13승을 올린다.
그러나 결국 위태위태했던 팔꿈치가 시즌 막판에 탈이 나면서 팀이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걸 밖에서 지켜봐야만 했고, 팔꿈치 수술로 인해 2010년까지 거의 날려먹게 된다.
2011년에도 1군 9경기 등판에 그치면서 요미우리에서 방출되어 치바 롯데 마린즈로 팀을 옮긴다. 사실상 전성기는 끝난 선수로 여겨진지라 치바 롯데가 그를 영입한 것에 대해 의아해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돈이 없어서 궁여지책으로 영입한 거 아니냐는 소리도 나왔고 큰 활약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
하지만 저반발 통일구로 인한 극도의 투고타저 도래 + 광활한 파울그라운드의 치바 마린 스타디움으로 옮긴 호재를 만나 12승 8패 평균자책점 2.24[6]로 부활하며, 팀의 원래 에이스인 나루세 요시히사보다 높은 WAR를 기록했다. 8월 14일에 열린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는 '''일본프로야구 사상 외국인 투수 최초로 양대리그 12개 전 구단 상대 승리투수'''가 되기도 했다.
2013년은 부상에 시달리며 등판경기와 이닝 등이 반토막이 났다. 71.1이닝 5승 4패 평균자책점 4.54. 2014년에는 오른쪽 어깨 부상으로 재활에 매진했으나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하며 치바 롯데에서 재계약을 포기하였고, 현역을 은퇴하였다. 이후로는 야구계를 완전히 떠나 고향에서 살고 있다는 것 이외에는 근황은 알려진 것이 없다.

3. 연도별 성적


<color=#373a3c> 역대 기록[7]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2005
KIA
14
75⅔
6
6
0
0
3.93
72
6
16
8
58
1.16
2006
29
188
14
12
0
0
3.02
151
10
47
12
164
1.05
<color=#373a3c> '''KBO 통산'''
(2시즌)
43
263⅔
20
18
0
0
3.28
223
16
63
20
222
1.09

4. 관련 문서


[1] 슈퍼로봇을 연상시키는 듯한 이름 때문에 '초마신 그라이싱가' 등의 별명도 나왔다[2] 원래 리오스는 웨이버공시였으나 마찬가지로 외국인 투수가 빠진 두산 베어스 김경문 당시 감독이 리오스를 잡았다. 그리고 두산으로가서 보란듯이 재기했고 2007년 22승을 달성한다. [3] 이전 외국인 선수였던 다니엘 리오스가 기아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선수였기 때문에, 처음 그레이싱어를 바라보는 기아 팬들의 눈은 곱지 않았다.[4] 그레이싱어 영입으로 KBO 출신 선수를 데려와 재미를 본 야쿠르트는 2008년 외국인 선수로 전년도 한국에서 맹활약한 다니엘 리오스를 영입한다. 그런데 그 결과는...대신 같은 해 또다른 KBO 출신이자 기대하지 않고 값싸게 영입한 외국인 선수가 대박이 터졌는데, 그 선수는 바로 '''임창용'''.[5] 최초는 1999년의 발비노 갈베스였다. 2017년 마일스 미콜라스가 세 번째.[6] 그럼에도 평균자책점 5위이다. 얼마나 투고타저가 강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7] KBO에서의 성적만 기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