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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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 LG 트윈스, 주니치 드래곤즈의 외야수이자 현 LG 트윈스 타격 코치. 대표적인 LG 트윈스의 레전드이자 프랜차이즈 스타.
대표적인 별명은 적토마, 라뱅(늙어서 기량이 떨어졌을 때는 지게뱅이라고도 불렸다). 그래서 최훈 카툰에서는 적토마로 등장한다. 라뱅이라는 별명은 수비도중 라면사러 가는 걸음걸이로 수비한다는 뜻에서 지어진 별명이다. 또한 1983년생 이병규와 구분을 하기 위해서 '''큰 이병규'''라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큰 이병규로 검색하면 이 항목으로 온다. 당연히 1983년생 이병규는 '''작은 이병규'''라 불린다.
대표적인 배드볼 히터로, 대한민국에서 '''갖다 맞혀 때리는 재주는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야구 선수. 주 포지션은 일본 진출 전에는 중견수.
2. 선수 경력
3. 은퇴 이후
은퇴 후 행보를 모색하던 도중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에 합류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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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Sports 해설위원 당시 프로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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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위원으로 데뷔한 이병규, 왼쪽은 임용수 캐스터(...)
그리고 2017 WBC에 박찬호와 같이 해설을 한다고 한다. 이로봤을때 당분간 해설위원을 하면서 야구에 대해 더 공부할듯 하다. WBC 해설을 마치고 kt wiz 감독으로 부임한 김진욱 감독의 후임으로 skySports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정식합류했다.#
2017년 4월 4일, LG트윈스와 삼성라이온스의 경기에서 해설자로 데뷔하였다. 처음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분한 어조로 굉장히 능숙하게 해설을 진행했다. 최근까지 필드에서 선수로 뛰던 현장감을 잘 발휘하여, 선수들과의 관계, 그라운드에서의 다양한 경험들을 상황에 맞게 잘 녹여냈다는 평. 그리고 이 날 LG트윈스는 삼성을 무려 11대0으로 털어버리면서 이병규의 해설자 데뷔전을 축하했다.
해설 스타일은 매우 직설적으로, 좋은 점은 칭찬하고, 안 좋은 점은 날카롭게 비판한다. 예를 들면 다린 러프의 1루 수비를 두고 불필요한 송구에 대해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든지, 구자욱이나 히메네스의 타격부진에 대해 하체나 팔이 불안정하다며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타 해설들에 비해 목소리가 작고 조용한 편이라, 임용수 캐스터와 붙으면 졸리다는 시청자 의견도 있다. 다만 반대로 얘기하면 듣기에 무리 없는, 편한 해설이라는 말도 맞다. LG에서만 17년을 뛰어서 가끔 '우리 팀에서...'라고 말하고 바로 '아니 LG에서'라고 수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흔히 일어나는 일인데다가 이종범이 아들 이정후가 뛰고 있는 키움(당시 넥센)을 '''저희 넥센'''이라 한 것에 묻혀서 딱히 큰 문제로 인식되고 있지는 않다.
6월 15일 롯데전에서 사구를 맞은 나지완에 대해 '맞았으면 그냥 나가야죠'라고 말하는 등 '오버할 일이 아니다'며 롯데를 두둔하는 듯한 발언으로 편파해설 논란이 있었다. 본인도 이 논란에 대해 알고 있다고.[20]
'그렇죠'라는 표현을 과하게 쓴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이제는 '맞습니다'라는 표현의 빈도수가 너무 높아졌다(...).
시즌이 끝나고 코치 연수를 갈 것...이라고 했지만,
4. 지도자 경력
그러던 중 2017년 11월 2일 LG 트윈스에서 이병규를 코치로 영입했다고 발표하였다. # 코치로서의 배번은 일단 93번. 2018년 1월 LG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임시로 달았던 93번에서 91번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10년 넘는 세월 동안 막장코칭이라고 제대로 까인 서용빈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더불어 야구 관련 커뮤니티에서 네티즌들에게 '''지도자를 해서는 안되는 선수 0순위'''[21] 로 꼽힌 희한한 이력이 있으니만큼 코치서써의 행보가 어떨지 주목된다.
단, 지도자 연수도 없이 코치를 한다는 것에 대해 의견이 많은데, 연수 없이도 훌륭한 코치가 되는 경우도 많고 연수를 아무리 가도 개선이 안 되고 자신의 아집으로만 코칭하는 막장 코치도 있으니 서용빈 만큼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 거기에 두산 베어스에서도 바로 LG 출신이자 한화 이글스에서 2017년 까지 선수 생활을 한 조인성(야구)을 바로 1군 배터리 코치로 임명하는 파격 행보를 보였으니 만큼 성공만 한다면 좋은 모델이 될 수도 있다.
4.1. 2018년
2군이나 육성 쪽에서 코치직을 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예상과는 다르게 신경식과 함께 1군 타격코치를 맡는다고 한다.
4.2. 2019년
등번호를 현역시절의 번호이자 영구결번인 9번으로 변경했다. 구단의 배려라고 한다.#
5월 들어 타선이 집단 침체에 빠졌을때는 이병규는 현역 시절에도 다른 선수들이 따라하기 어려운 스타일의 배드볼 히터였기 때문에 지도자로는 적합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소리도 있었지만 여름들어 타격지표가 회복되면서 평가가 좋아졌다.
4.3. 2020년
2020 시즌에는 1군 메인 타격코치로 승격되었다.
비록 시즌 초반인데다가 기복이 없지않아 있긴 하지만 매년 타격 지표가 하위권이였던, LG가 시즌 초반에 대부분의 타격지표에서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타격코치가 바뀌자마자 귀신같이 타격지표가 상승하기 시작하면서 코치로서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22]
6월 7일 키움과의 경기에서 팽팽한 투수전이 이어지던 6회초 대타로 들어설 준비를 하던 유강남에게 귓속말로 무언가를 조언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고, 유강남이 친 타구는 상대 투수를 맞고 중전 안타로 이어져 2타점 결승 적시타가 되었다.
그러나 6월 중순으로 가며 허리 부상을 입었던 라모스가 주춤하기 시작된 뒤 타격이 집단 난조 현상을 보이는데 타자들이 공을 좀처럼 보려고 하지 않고 무작정 1,2구 만에 배트를 휘둘러 아웃되어 상대 투수들을 도와주자 비판을 받고 있다.
팀볼넷 수는 9위, 타석당 볼넷은 꼴찌다. 삼진 역시 두산 다음으로 적으나 어차피 주자를 진루시키지 못하는 타격은 삼진과 별반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중요한 지표는 아니다. 이러한 문제로 제구력이 좋은 외국인 선발 상대 경기는 강세를 보이지만 제구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국내 선발들을 상대로 승률이 떨어진다. 볼도 배트를 휘둘러 상대 투수를 돕기 때문.
그래도 8월 18일까지 팀 타격 wRC+ 113.2을 기록, 팀 역대 최고 2위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최고는 94년 123.6) 우승했던 94년과 90년 사이의 수치이다. 팀홈런 수는 95개로 전체 3위이며 원정경기 홈런 수는 68개로 전체 1위다. 오지환이 데뷔 후 가장 안정적인 공격력을 보이고 있고 홍창기가 1군에 잘 연착륙할 수 있는데에 대한 기여도가 높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8월 20일 기준으로 만루시 득점권 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는 듯 하다.
8월 21일 기준으로는 팀타격 wRC+ 114.3으로 10개 구단 중 전체 1위의 수치를 찍었다(!).
이후 로베르토 라모스가 구단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가지고 있던 본인의 기록을 깨면서 팀이 그토록 염원하던 좌타거포까지 얻었는데, 기존의 선수들까지 좋은 플레이를 보이면서 타격코치로서의 능력이 확연히 입증되었다 볼 수 있겠다. 특히 배드볼 히터로 유명했던 본인이 홍창기와 같은 눈야구 스타일의 선수들까지 키워내며 우려도 싹 사라졌다. 대부분의 선수들의 컨택 능력이 증가했는데, 이를 미루어 보아 좋은 선구안을 갖춘 선수들이 컨택 능력까지 갖췄을 때의 무서움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할 수 있겠다.
하지만 김현수의 몬스터급 시즌과 이형종, 홍창기의 활약, 외국인타자 라모스의 홈런쇼로 인한 착시효과일 뿐이라는 의견도 있다. 라모스와 이형종의 영향으로 팀장타율이 높을 뿐 팀출루율은 리그 전체에서 겨우 7위에 불과하다. 이천웅과 채은성, 유강남[23] 의 커리어로우 부진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게다가 우타자 라인은 잠수함 투수만 나오면 허수아비가 되는데 시즌 내내 아무 변화가 없었고 이를 이병규 코치가 못 잡아주는 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컨택 쪽 코칭은 나름 능력은 있어 보이는데, 예전부터 우려되었던 출루율 문제는 쉽게 해결하지 못 하는 모양이다.
5. 플레이 스타일
한국프로야구의 대표적인 배드볼 히터. 높은 볼부터 거의 바닥에 처박히는 볼까지 일단 휘둘러서 공을 맞히고 보는 타입으로[24] , 컨디션이 좋을 때의 이병규는 '''별 희한한 공까지 안타로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인다.[25] 덕분에 통산 타율 자체는 한국프로야구 역대 4위(0.314)에 올라 있으나, 볼넷 숫자 또한 적어서[26] 출루율은 커리어 내내 4할을 넘겨본 적이 없다.
전성기 시절에는 잠실구장을 쓰면서도 30홈런을 달성하는 등[27] 상당한 장타력을 과시했으며, 그 이후에도 꾸준히 두 자릿수 정도의 홈런은 기록한 선수. 단, 2003시즌의 무릎 십자인대 파열 이후 주루 능력은 많이 떨어져서 그 이후 도루에 관해 내세울 만한 기록은 없다.[28]
타격뿐 아니라 수비 면에서도 역대급의 외야 수비를 자랑하는 선수로, 위치 선정이나 타구 판단에 상당한 재능이 있어, 타자가 공을 치면 낙구 지점에 미리 가서 만사 귀찮은 듯이 글러브만 살짝 뻗어 잡아내는 수비가 일품이다. 설렁설렁 하는 것 같아보여도 타구 종착지점에 이미 가 있기에 문제가 없다. 센스뿐 아니라 빠른 발과 강한 어깨 등으로 신체조건 또한 좋아서, 많은 야구인들도 역대 외야수 중 손꼽히는 수비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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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수비의 다른버전
요약하자면 이순철에 이은 소위 '''라면수비'''의 계승자. 특징으론 잡지 못할 공은 세컨플레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특유의 성의없어 보이는 움직임과 합쳐져 싸이에 달린 댓글로 인해 '동네 슈퍼에 라면사러 가는 것 같은 수비' 라는 말이 퍼지며 까이게 되어 '''라면병규(라뱅)'''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이는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린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의 타격부진과 한일전에서의 실책성 플레이를 하여 평소에 야구를 보지 않는 이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는 선수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병규의 타격폼도 언뜻 보면 성의없게 멀뚱멀뚱 서있는 것 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을 수도.[29]
6. 여담
- 1997년 프로 데뷔전부터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는데 다름 아닌 경기 후 인터뷰 때 했던 도발성 발언. 해태 타이거즈와의 시즌 개막전에서 상대투수였던 조계현에게 4타수 3안타의 맹타를 휘두른 것 까진 좋았지만, 경기 후 인터뷰 도중 했던 말이 "신인이라고 봐주지 마시고 성의있게 던져주셨으면 좋겠다." 이 흠좀무한 인터뷰에 해태 선수단은 물론 팬들도 난리가 났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어서 망정이지 요즘 같았으면 아주 가루가 되다 못해 나노 분자가 될 때까지 까였을 경솔한 발언.[30] LG 트윈스 선수단도 다른 의미에서 난리가 났으며, 바로 다음 날 코치진들이 직접 이병규를 데리고 해태 덕아웃에 와서 정중히 사과를 함으로서 일단락되었다. 참고로 당사자인 조계현이 이 때를 회고하기를 후배 투수들이 많이 화가 나서 "(빈볼을) 어디에다 맞히면 되느냐?"고 물어왔지만, 조계현 본인은 이병규의 이런 당돌한 패기가 마음에 들어 "그러지 말고 그냥 삼진으로 잡아라"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사실 이병규의 저 발언이 진짜 선배를 도발하려는 의도였다기보단, 일종의 말실수였다는 걸 이해해주고 넘어간 셈. 이병규 본인도 어지간히 데였는지 은퇴 당시 야구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라고 회고했다. 지금 돌아보면 자기가 생각해도 황당한 인터뷰였다고.
- 1998년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이병규가 친 타구를 강동우가 잡으려다 펜스에 부딪히면서 무릎 골절을 당해 선수 생활을 망치다시피 한 부상을 입었을 때 손으로 목긋기 제스처를 해서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당시 심각한 부상인줄 몰랐고, 코치에게 자신이 아웃되었냐고 묻는 의미로 사용한 제스쳐라는 해명을 하긴 했지만 당시 상황이 영상으로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남은지라... 타 팀 팬들이 이병규의 멘탈에 의구심을 품게 한 대표적인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다. 사건의 당사자인 강동우는 사건이 일어난 지 15년이 넘은 2014년 베이스볼긱과 한 인터뷰에서도 사건이 일어난 당시에는 굉장히 섭섭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사건이 지난 후에 서로 관계회복을 했다면 모를까, 사건 당시에 아무런 오해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 LG가 계속해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자 그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한 듯 선배인 김용수에게 술먹고 전화해서 하소연을 하면서 울기까지 했다고 한다. # 하지만 2013년에 오랜만에 포스트시즌 진출하면서 나아진 듯. 그리고 현재 LG 소속 선수로서 가을 야구를 가장 많이 치른 선수가 바로 라뱅이다. 이병규는 3번의 한국시리즈를 포함 총 6번이나 가을야구를 LG 선수로서 경험하였다. 그리고 주니치에서는 우승도 했다.
- 같은 팀에 7번을 단 작뱅 이병규가 있기 때문에 가끔 가다 분신술을 썼다는 등의 개드립이 나오곤 하며, 실제로 2010년 5월 1일 SK 와이번스 전과 2011년 8월 28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한 이닝에 두 선수가 홈런을 같이 친 적이 있다.
- 2013년 11월 24일에 방영된 런닝맨 초능력 특집에 출연해서 예상치 않은 예능감을 보였기 때문에 이병규를 처음 본 사람들은 호감이 간다며 좋은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그 마법진 자세를 LG트윈스 러브 페스티벌에서 그대로 재현했다(…). 본인 말로는 두 아들이 런닝맨을 좋아해서 출연했다고 했으며, 한 번 하는 거 제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악역의 이미지를 부각된 영화배우 안길강과 은근히 닮았는데 묘하게도 안길강은 LG 트윈스 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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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인 아내를 두었으며[31] 슬하에 아들 둘을 두고 있다. 가족 사랑이 대단해 현역시절 헬멧 오른쪽에 아내의 성씨(RYU(류재희))와 두 아들(SM(이승민), SE(이승언))의 이니셜을 썼었다.
- 다소 와일드한 이미지 덕에 목소리가 걸걸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의외로 목소리 톤이 높다. 반대로 푸근한 이미지를 가져 목소리가 좀 상냥할 것으로 보이는 이진영은 목소리가 상당히 걸걸한 편.
- KBO 리그 팬들 사이에서는 싸인매너가 별로 좋지 않은 걸로 유명하다. KBO 3대 팬서비스 개매너(류현진, 이대호, 이병규)의 최고참.
- 유독 엠엘비파크나 디시인사이드 등 야구 관련 커뮤니티에서 코치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선수로 꼽히는 불가사의한 여론이 많기도 하다. 특이한 점은 안티들만 이러는 게 아니라 충성도 높은 LG 팬들까지도 이런 글을 올리는 게 자주 보인다.(…). 이병규가 타격코치가 되면 "내가 치는거 봐봐! 공이 딱 오지? 그럼 치면 돼! 쉽지?" 라고 할 게 뻔하다는 게 그 이유. 이 점은 이병규가 확실히 자신만의 노하우로 놀라운 컨텍능력을 가졌지만 이런 스킬이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게 아닌 이유도 있지만, 왠지 이병규는 성격상 이럴 거 같다는 어느 정도의 선입견이 배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2015년 시점에서도 코치생활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무능하고 실패하는 코치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능력보다는 철밥통이나 붙임성으로 자리를 지키거나 거기에 안주해 코치로서 자신의 코칭을 발전시키는데 대한 공부를 전혀 하지 않거나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걸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 드는 독불장군형들이 주로 이런 실패한 감독 & 코치의 유형임을 생각해볼 때 벌써부터 이병규가 코치하면 무조건 실패할 거라는 결론은 너무 앞서가는 것이며, 누구든 간에 지도자가 돼서 많은 공부와 실패에 대한 피드백을 잘하고 발전해나가려는 노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이니 벌써부터 지도자로 성공 & 실패를 논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물론 이병규가 은퇴한 뒤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된다면 거기에 대한 준비나 공부를 철저히 하려는 자세를 가지는 게 필요하다.[32] 21세기부터는 선수뿐만 아니라 지도자들도 네티즌들이 지켜보는 시대가 되었고 그런 변화에 따른 일종의 관심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코치직이 현실이 되면서 어떻게 될 지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 LG 트윈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면서 팀을 이끄는 클럽하우스 리더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실제로 부상등으로 LG 트윈스 2군에 내려가게 될때 2군 후배들이 불편해 하는 사항들을 구단에 즉각적으로 알려 시정요구를 했다. 2014년에 다리 부상으로 3개월간 구리 챔피언스 파크에 내려가있을때 2군 후배들이 이른시각+짧은 식사시간으로 불편해 하자 구단 담당자에게 곧바로 보고해 식사시간을 조절케 했으며 1군 선수들에게만 LG전자의 휴대폰이 지급되자 구단측에 2군 포함한 전 선수들에게 LG전자 휴대폰을 지급해달라고 요구한 이도 이병규였다.
- 진갑용이 2015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 선언을 하면서, 2016년에도 현역생활을 지속할 경우 2016시즌에는 최고령 야수가 된다. 심지어 2015년 시즌 종료 후 이병규보다 연상인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타니시게 모토노부 등이 전부 유니폼을 벗으면서 일본프로야구에도 이병규보다 나이가 많은 선수가 없게 되었다. 야수 아시아 최고령.... 그러나 투수를 포함하면 최고령 선수는 아마도 될 수 없을 듯하다. 최영필이 은퇴하지 않는 한....
- 2016년 KBO 리그 미디어데이에서 류제국이 말한 바에 의하면, 2016년에 LG 트윈스가 우승한다면,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에 외야 펜스 문이 열리며 이병규가 말을 타고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을 달리겠다고 한다(...) 이에 박용택은 "몇 년 전부터 얘기해 왔던 것으로, 실제로 프런트에서 이 약속을 꼭 지켜주겠다고 했다"라고(...)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76&aid=0002911247
- 정찬헌 - 정근우 빈볼시비 벤클에서 유래한 밈으로 라뱅이 시켰다가 있다. 당시 빈볼에 대해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 정찬헌이 단독으로 했을리는 없고 고참 선수가 시켰을 것이다 - 이병규가 시켰다 - 라뱅이 시켰다 라는 추측으로 유래한 것으로 추정. 이후 무슨 일이 터질때마다 "라뱅이...라뱅이 시켰다..."라는 쪽으로 간혹 튀어나오게 되었다. LG랑은 1그램도 상관없는 일이더라도(...)
- 은퇴시 본인이 꼽은 야구 인생의 결정적인 네 장면으로 1997년 데뷔전 후 도발성 인터뷰 사건과 2002년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 2013년 플레이오프 진출 확정 순간과 2016년 10월 8일의 현역 마지막 경기를 꼽았다.#
- 구렁이를 매우 무서워한다. 정글의 법칙에 출연했을 때 구렁이가 나타나자 PD 뒤로 숨어버렸다(...).
- 2001년 한 인터뷰에서는 김성근 감독이 4할에 도전해야 하는 타자가 자기 재능에 만족하고 3할에 안주한다고 비판하면서 이른바 "게으른 천재"라는 비난 또한 함께 받았다. 하지만, 이건 그냥 비난이 아니라 그만큼 김성근이 이병규의 자질을 아껴서 하는 말이기도 했다. 또다른 인터뷰에서는, 김성근 본인이 평생 맡아본 선수 중에 타자 중에서는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한 적도 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복귀할 때 구단에 영입을 요청하기도 했고 이병규 또한 코나미컵에서 만났을때 제일 먼저 김성근 감독을 찾아가서 포옹하기도 했다고. 사실 김성근의 말은 어디까지나 김성근 개인의 견해고, 이병규는 실제로 그 누구보다 열심히 모범적으로 노력하는 선수였다. 김성근의 말로 인해 아무것도 모르는 야알못들이나, 김성근을 신앙처럼 절대적으로 믿는 김성근 감독 팬들이나 이병규가 게으른 천재라고 이병규를 폄하했지만, 이병규는 게으른 천재가 아니라 노력하는 천재였다. 심지어 이병규 본인 또한 은퇴식 때 은퇴사를 발표하며 "난 천재가 아니라서 항상 많은 노력을 했다. 지고 싶지 않았다. 후회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더 많이 노력했고 열심히 했다."는 말을 했다.
- 현재 프로야구 영구결번 선수중 몇 안 되는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이 없는 선수이다.[33] 다른 팀의 우 승경험이 있는 영구결번 선수들과 비교해봐도 선수 시절 활약상은 결코 뒤떨어지지 않지만 어찌보면 암흑기에 팀을 지탱한 소년가장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일지도. 그래도 주니치에서 일본시리즈를 우승한 경험이 있기에 다행히도 우승 경험은 가지고 은퇴하게 되었다.[34]
- 2019년까지 22년동안 LG 트윈스 소속의 마지막 신인왕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가 정우영의 신인왕 등극으로 정우영에게 타이틀을 넘겨주게 되었다.
- 1999년에 기록한 30홈런 이후로 LG 트윈스에서는 20년간 30홈런 타자를 배출하지 못하다 2020년에 와서야 외국인 선수에 의해 깨졌다. 이병규의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알게 해 주는 부분.
7. 연도별 성적
8. 관련 문서
[1] 등록상의 10월 25일은 음력으로 밝혀졌다. 은퇴 발표때 11월 24일(= 음력 2016년 10월 25일.)이 생일날이라며 이날 은퇴를 결정했다고 직접 언급했다.[2] #[3] 한때 포털사이트 등에는 출신지가 서울특별시로 되어있지만 5세 때 서울로 상경하였다. 네이버 프로필에는 출신지가 김제로 수정되었다.[4] 국내로 보면 06시즌까지 일본시절을 포함하면 07년까지 중견수로 활약했으며 그 이후로도 간간히 출전하였다. 이병규의 '''주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다.[5] 일본 2년차 시절부터 우익수로서 출전 빈도가 늘어났고 한국 복귀해서도 3~4년 정도 주로 우익수로 뛰었다.[6] 13시즌부터 은퇴할 때까지 주로 지명타자로 출전했다.[7] 11시즌 한정 주전 좌익수로 활약하였다. 그 이외의 시즌에도 간간히 나오긴 했지만 많다고 할 정도의 빈도는 아니다. 11시즌도 우익수로 나온 적도 꽤 되고.[8] 통산 36경기만 출장했고 시즌으로 봐도 그야말로 알바 수준의 빈도로 나왔다.[9] 주니치 드래곤즈로 가기 전에는 이 음악이 등장 음악이었다. 당시 이병규한테 꽤나 어울리는 분위기의 등장곡이었다며 사람들이 좋아했다고.[10] I was born to love you'''(워어~이병규!)'''With every single beat of my heart'''(워어~이병규!)'''Yes I was born to take care of you'''(워어~이병규!)'''Every single day of my life'''(워어~이병규!)''' [11] 이병규의 응원가가 크보 3대 응원가로 불렸던 만큼 큰 사랑을 받았었지만, 등장곡도 마찬가지로 팬들에게 널리 회자된다. 타 팀 팬들마저도 그 웅장함을 인정할 정도.[12] 안타나 홈런을 쳤을때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응원가가 아닌 이 등장음악이 나온다.[13] '''L~G의 이병~규~ L~G의 이병~규~ L~G의 이병~규~ 안타 안타 안타 안타 이병~규!''' (x2).[14] 원래는 서용빈의 응원가였으나 서용빈이 1999년 병역비리로 시즌을 접은 이후로 이병규에게로 응원가가 넘어왔다. 이병규가 일본에 있던 2009시즌엔 이진영이 잠시 사용하기도 했다. 초창기 야갤에서 이승엽의 응원 구호, 타이론 우즈의 응원가와 함께 크보 3대 응원가로 칭해지기도 했다. 2014 시즌 준플레이오프 3차전 대타 타석에서의 역대급 떼창. 이병규라는 선수가 LG라는 구단에서 어떠한 위상과 인기를 가지고 있는 선수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15] '''世界股にかけたその技を この一振りで見せてやれ 一打に賭ける男 打てよ打てよ李炳圭(세계를 누빈 그 기술을 한 번 휘둘러서 보여줘라 한 방에 건 남자 쳐라 쳐라 이병규)'''[16] 2009시즌 이진영의 전 응원가인 이 응원가를 잠깐 사용했었다.[17] 오 LG 이병규~ 오 LG 이병규~ 오 LG 이병규~ 워어어어어어~ 오 승리를 위하여 날!려!버!려! 이!병!규![18] KBO[19] NPB[20] 사실 롯데를 두둔했다기보다 투수가 던진 공이 실투였고 중계석에서는 강민호와 나지완이 나눈 대화가 안 들리기 때문에 나지완이 화낼 이유가 없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21] 현역 시절 워낙 컨택이 뛰어났기 때문에 "야 봐봐! 공 오잖아! 그럼 그냥 치라고! 뭐가 문제야?" 이런 식이 될 거라고... 이대형 보고 주루코치 하면 안 된다는 말이랑 비슷한 맥락이다.[22] 다만 일부 팬들은 이병규가 코칭 능력이 없는 것 같다고 비판의 목소리가 있긴 하지만 일단 다운스윙 성애자 보다는 훨씬 낫다고는 인정해주는 분위기다.(...) 참고로 2020시즌 LG의 패전 요인을 따져보면 타선의 침묵으로 패배한 경기도 어느정도 있으나 윌슨과 켈리가 자가격리 기간으로 인해 몸을 풀 시간이 적어 제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한 것이 크다.[23] 전체 포수 중 소화 이닝 1위라는 걸 보면 알 수 있다시피, 어마어마한 혹사를 당했다. 이러면서 2할 6푼이라도 찍어낸 게 놀라울 지경.[24] 공을 맞히는 데 우선하는 타격을 해서 그런지 어드레스 시 오른 어깨가 다소 빨리 열리는 타격폼이다. 이병규 특유의 타격폼을 지적하던 해설자들도 그런 폼으로도 안타를 곧잘 만들어내는 이병규를 보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25] 전체적으로 비판하는 논조이긴 했으나, GQ에서 김성근 감독은 '컨디션 좋을 때의 이병규는 '''이치로급 컨택'''을 가지고 있다'라고 평한 적이 있다.[26] 연평균 40개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그러나 필요할 때는 볼넷도 골라 나가는 등 선구안이 나쁜 선수는 아니다. 또한 컨택이 뛰어났기 때문에 삼진 수도 적은 편이었다. 통산 볼삼비도 박용택보다 더 뛰어나다.[27] 당시 도루도 31개를 해서 30-30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이로써 이병규는 잠실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LG와 두산 역사에서 유일하게 30-30을 달성한 선수가 되었다. 20-20의 경우 이병규 포함해서 김재현(1975) 박건우(1990)까지 총 3명밖에 세우지 못했다. 다만 30홈런을 기록했던 1999년이 역대급 타고투저 시즌이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지만 역사에 남을 기록.[28] 단 베이스러닝은 선수 생활 후반기에도 나이에 비해 빠른 편에 속했지만 2015 시즌 즈음에는 상당히 주력이 떨어졌다. 즉, 타격과 수비밖에 안 된다는 소리.[29] 최근에 이런 풍평피해를 받고 있는 선수는 바로 양의지이다.[30] 2007년 김광현이 미디어데이에서 류현진을 가볍게 도발했을 때 먹었던 욕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감안하면 절대 과장이 아니다.[31] 이병규와 동갑인 1974년생으로 상당한 동안이다. 2003년에 결혼했다.[32] 물론 이 점은 이병규뿐만이 아니라 은퇴를 앞둔 선수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거긴 하다.[33] 이만수는 한국시리즈 우승은 못했지만 1985시즌 통합 우승이 있다. 또다른 한국시리즈 우승 무경험 선수로는 영구결번 1호인 김영신이 있지만 영구결번 사유가 특수하기에 보통은 잘 언급되지 않는다. 다음 유력 후보는 불행히도 같은 팀의 레전드이며 2020년 예고 은퇴를 선언한 박용택(...) 또는 박용택과 마찬가지로 2020년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한화 이글스의 김태균이 있다.[34] 주니치의 이 2번째 우승은 53년만에 한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치가 있는 우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