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zy-E

 

[image]
'''본명'''
'''Eric Lynn Wright
(에릭 린 라이트)'''
'''출생'''
'''1964년 9월 7일, 캘리포니아콤프턴'''
'''사망'''
'''1995년 3월 26일, 캘리포니아로스엔젤레스'''
'''국적'''
'''미국''' [image]
'''활동시기'''
'''1986년 ~ 1995년(사망)'''
'''신체'''
'''159cm'''

'''My days ain't long I'm comin' strong and fast'''

'''내 삶은 그리 길지 않아. 나는 강하고 빨라.'''

'''Lock up 8 niggs, kill up 10 pigs Innocent fuckers are also dying too.'''

'''깜씨 8명을 가두고 경찰 10명을 죽이고 무고한 놈들도 죽어가고 있지.'''

'''Now what else can I do? Fuck, fuck, fuck and plant my seeds.'''

'''이제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xx, xx, xx하며 내 씨앗을 심지.'''

'''Leavin' kids in this world like me.'''

'''나처럼 이 세상에 아이들을 남기지.'''

'''The lunatic psycho mutherfucka Eazy-E.'''

'''미치광이 살인자 Eazy-E.'''

24 Hours To Live 中

1. 데뷔와 성공
2. N.W.A의 해체
3. 닥터 드레와의 갈등
4. 말년
5. 사후
6. 디스코그래피
6.1. 정규
6.2. EP
6.3. 컴필리케이션
7. 기타

'''갱스터 랩의 대부(Godfather of gangster rap)'''#

1. 데뷔와 성공


데뷔 전엔 Kelly Park Compton Crips[1]에서 갱스터로 일하고, 심지어는 포주 짓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더 큰 사업을 원한 그는 자기 갱단에서 번 돈 전부로 Ruthless Record를 세워 최고경영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동료들인 닥터 드레, 아이스 큐브, DJ 옐라, 아라비안 프린스와 함께 힙합 역사상 악명높은 그룹 '''N.W.A'''를 세워 1987년 N.W.A 컴필레이션 1집 앨범 N.W.A and the Posse의 곡 중 Boyz-n the hood (랩)로 데뷔했다. 하지만 그다지 큰 영향은 끼치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아라비안 프린스도 이지와의 불화로 팀을 나갔지만, 1988년MC 렌을 영입한 후 1집 앨범 '''Straight Outta Compton'''으로 큰 사회적 이슈와 파장을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했다. 특히 Fuck Tha Police는 미국 사회에 대한 강렬한 욕 다발을 날려서 보수주의자들과 교사들, 학부모들, 경찰에게 엄청난 항의를 받았고, 언론들에게도 두고두고 까여서 구설수에 오르내렸다. 방송국에서도 외면받을 뿐더러 몇몇 도시는 이들의 공연을 막았다.
이 때문에 멤버들과 함께 경찰서 정모까지도 간 적이 있으며, FBI의 감시도 받고 영국에서도 수출 금지가 되었다.

2. N.W.A의 해체


하지만 N.W.A 활동 중, 멤버들과의 충돌이 일어났는데, 특히 닥터 드레아이스 큐브가 이지 이의 그룹에 대한 지휘에 상당한 불만을 표출했다. 그리고 닥터 드레이지 이는 음악적 성향도 다른 점도 멤버들 간의 갈등에 한몫했다. 그러다가 이지 이와 N.W.A 간의 부당한 수익분배에 관한 문제제기로 갈등이 커져 결국 닥터 드레와 아이스 큐브는 1991년에 팀을 나가버리고 N.W.A도 얼마 안가 해체되어 버린다.[2] 그야말로 흑역사. 사실 원인은 매니저였던 제리 헬러에게 있다고 보는게 정설. 이지 이도 제리 헬러에게 분노했다.

3. 닥터 드레와의 갈등


N.W.A가 해체된 후 아이스 큐브와 닥터 드레는 슈그 나이트(Suge Knight)의 Deathrow Record로 들어가서[3] 아이스 큐브는 1991년에 Death Certificate를 발표해 N.W.A, 이지 이를 디스하지만[4] 이지 이는 그다지 크게 신경 쓰진 않았으나, 1년 후엔 드레도 1집 앨범 The Chronic에서 이지 이를 까는데, 특히 Fuck With Dre Day에서 이지 이에 대한 불만이 상당히 두드러진다.[5] MC 렌이 여러 디스곡으로 맞대응 을 해줬으나 제대로 빡친 이지 이는 소송을 걸었지만 기각되고, 결국 1993년 It's On ( ) 187um Killa[6]에서 폭풍 욕 다발 디스를 날려 드레와 이지의 갈등은 더더욱 심화되었다. 갈등은 1995년 Str8 off tha Streetz of Muthaphukkin’ Compton의 발표로 절정에 다다랐지만, 본인 레코드 사에서 수제자들인 본 석스 엔 하모니투팍과 함께 Thug Luv라는 싱글을 발표하면서 싸움은 끝나게 된다.

4. 말년


이지 이의 말년은 상당히 비참했다. 돈 벌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은데다가, 그의 여자문제는 날로만 갈수록 부풀어 올랐다. 어떤 노래 가사에 여자를 성적 도구로 취급하는 저속한 비하 발언까지 썼고,[7] 그의 집에서 그와 성관계를 한 그루피가 셀 수 없을 정도면 이건 뭐...[8] 답이 없다. 결국 계속되는 성관계로 인한 에이즈에 걸렸고 에이즈가 악화되어 Cedars-Sinai 병원에 입원한지 얼마 안가 1995년 3월 26일에 30세의 나이로 요절한다. 그래도 유언만 보면 자기 삶의 말년에 후회는 했었던 듯하다. 그래 봤자 후회하기엔 심각하게 늦었지만. 아래는 그의 유언.

내가 설교 같은 것을 할만한 인간 같지는 않아 보일 거야. 그러나 나는 지금이 내가 회개할 시간이라고 생각해. 지금은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나에 대해 상관하고 내 말을 들을 사람이 있으니까. 그래, 난 컴튼의 길거리에서 다른 사람들이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을 여러 가지 했어. 하지만 역시 충분히 할만했어. 그 뒤에는 LAPD와 FBI가 재수 없어할만한 래핑을 시작했지. 그러나 우리의 메시지는 미국 전역이 우리 말을 듣게 할 정도로 유명해졌어. 곧 우리의 분노와 희망이 모두를 흥분시켰지. 내 성격에도 아주 좋은 보답이 많았지. 비싼 자동차와 빵빵한 여자와 좋은 삶, 거의 멈추지 않는 흥분상태였지. 난 무교지만, 나쁘거나 착하거나 그게 나야. 난 천국 가기 위해 이딴 말 하는게 아니야. 그냥 몇천, 몇만의 어린 팬들이 에이즈에 대해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나 이전의 다른 이들처럼 나의 문제들이 좋은 행실로도 바뀔 수 있었으면 좋겠어. 나를 생각해주는 모든 이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좋은 말을 해주고 싶어. 왜냐면 너무 늦기 전에 도와주고 싶거든..(욕은 변호사가 뺐다고 전해졌다.)

난 이것도 전부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해. 저번 몇 주 동안 이것이 현실이고 아무것도 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어.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지. 내 여친 토미카와 나는 4년 동안 같이 있다가 최근에 결혼했어. 그녀는 좋아, 착하고 멋진 엄마지. 우리는 한살된 남자아이가 있어. 토미카 이전에 난 다른 여자를 많이 범했지. 6명의 엄마 밑에 7명의 아이를 가지고 있어. 성공이 나한테는 너무 컸던 것 같아. 난 내 아이들을 전부 사랑하고 항상 돌봤지. 이제 나는 내 인생 최대의 싸움에 있고 쉽지 않아. 하지만 나에게 영향을 미친 모두에게 사랑을 보내고 싶어. 모든 도움 고마워. 그냥 기억해: "너의 진짜 시간이고 너의 진짜 인생이야 ."


5. 사후


그의 Ruthless Record는 그의 아내 토미카 라이트(Tomica Wright)가 차지했으나, 운영 능력이 개판이라서 결국 수제자인 본 석스 엔 하모니와 N.W.A 해체 후에도 남아있던 MC 렌마저떠난다. 그야말로 죽은 뒤에도 안습. 특히 MC 렌의 인터뷰를 보면 대락 어떤지 알 수 있을 것이다.
>WWC : WorldWideConnected.com: Ren, how do you feel about Tomika Wright today?(렌, 토미카 라이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죠?)
>MC 렌 : I think she don’t know nothing about running no record company! She a cool person, but I don’t feel she know how to run a record company. I don’t see how you can let a mothaf**kin' record company that powerful just go down the drain. I mean damn... That’s what I don’t understand. And that she’s not keeping his legacy alive.(그 여자 레코드 회사 어떻게 운영하는지 몰라! 그래, 그녀는 멋진 여자야, 하지만 레코드 회사를 어떻게 운영하는가는 잘 모르는 것 같아. 난 그 영향력 있는 X나 쩌는 회사를 어떻게 시궁창으로 만들었는지 궁금할 지경이야. 내 말은 젠장... 나 정말 이해가 안 가. 그녀는 그의 전설을 이어가지 못했어.
하지만 아들인 릴 이지 이가 그의 다큐를 만들고, 본 석스 엔 하모니도 Crossroads라는 추모곡을 내 빌보드 차트 1위를 먹는 등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행적들이 대박이 났었다.
2011년 생전 그렇게 티격태격하던 드레의 수제자 에미넴이 피처링한 I Need A Doctor 뮤비에서는 드레의 회상씬에서 인터뷰 영상, N.W.A 시절 뮤비 중 한 장면과 사진으로 나오고, 뮤비의 마지막 부분에서 드레가 이지의 무덤을 방문하는데, 뭔가 쓸쓸하면서도 묘한 여운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9]
2013년 투팍과 올 더티 바스타드에 이어 홀로그램으로 등장하여 공연을 펼치셨다. #

6. 디스코그래피



6.1. 정규


  • Eazy-Duz-It (1988)
  • Str8 off tha Streetz of Muthaphukkin Compton (1996)[10]

6.2. EP


  • 5150: Home 4 tha Sick (1992)
  • It's On ( ) 187um Killa (1993)
  • Impact of a Legend (2002)[11]

6.3. 컴필리케이션


  • Eternal E (1995)[12]
  • Featuring...Eazy-E (2007)[13]
  • Tri-Pack (2010)[14]
  • Merry Muthafuckin' X-Mas (2015)[15]

7. 기타


  • 작은 키에 듣는 사람 꼴받게 만드는(...) 간사하고 날카로운 랩이 특징으로, 몇몇 창작물에 나오는 전형적인 '재수없는 땅딸보' 클리셰를 완전 빼다박은 스타일이다. 본인의 고향인 콤프턴에 대한 자부심을 지녀서 랩 가사에 콤프턴을 자주 언급한다. 하지만 랩 스타일이 하이톤이라고 해서 이지가 평소에도 하이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지 이의 원래 목소리는 저음에 가깝다. 다만 중간에 톤을 높여서 말하는 것을 보면 일부러 내리깐 듯. 아무튼, 랩 실력은 상당히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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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TA 산 안드레아스의 등장인물인 랜스 '라이더' 윌슨의 모티브이기도 하다. 이지 이의 대표적 상징인 선글라스와 모자부터 입에 착착 붙은 걸진 욕이나 작은 키(...) 모델링 등 많은 면에서 그를 닮았다. 게다가 입고 다니는 초록색 바람막이는 문서 맨 위에도 나온 이지 이의 유명 사진과 일치한다.
  • 어반 딕셔너리에 따르면 이지 이의 노래 중 하나인 Boyz In The Hood의 한 구절인 It's all about making that G.T.A가 GTA(Grand Theft Auto)라는 말을 미국 사회 내에서 유행시켰다고 한다.
  • 처음에는 그냥 멤버들 돈만 대줬는데 멤버들이 그의 랩핑을 듣고 감탄을 금치 못해 결국 래퍼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지는 나오는 노래 벌스마다 소극적으로 참여하고 지휘에만 열중해서 멤버들이 빡치고(...) 이것은 N.W.A 붕괴의 시발점이 된다.
  • 게임이 존경하는 래퍼 중 하나다. 오른팔에 이지 이의 문신을 새길 정도.
  • 서부 지방 간판 랩퍼인데다가 젊은 나이에 사망한 비운의 거물들이라는 점 때문인지, 주로 투팍의 랩과 리믹스 되는 경우가 많다.
  • 투팍을 살해한 의혹이 있는 사우스 사이드 크립스의 갱단원 올랜도 핸더슨과 친한 사이였다. 그러나 투팍과도 친분이 있다.
  • 생전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락 밴드로 건즈 앤 로지스를 꼽았다. N.W.A의 곡중에 Appetite for Destruction도 있다.[16]
  • 모자를 자주 써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지 이는 아프로헤어다. 다만 항상 아프로였던 건 아니고 아이스 큐브와 더불어 80년대 유행한 '제리 컬' 스타일[17]을 선보이기도 했으며 그 시절의 이미지가 가장 유명하다.

  • 갱스터 랩의 대부라는 점과 실제 갱 활동을 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과묵하고 무덤덤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실제로는 유쾌하고 활발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 N.W.A. 시절에 Express Yourself 뮤직비디오에서 백악관을 접수하여 흑악관으로 바꾸고 Fuck Tha Police 가사 문제로 정부 기관에게 경고를 받은 것과는 별도로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일명 아버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만찬을 가진 적이 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벌인 자선 사업에 대한 노고의 치하 목적에서 연 거라고. 이 일은 이 문서의 각주 4번에서 설명한 아이스 큐브의 곡 'No Vaseline'에서 언급되었다.
  • Eazy-E가 죽기 전에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백인이 내게 와서 Nigga라고 해도 괜찮아. 왜냐하면 그건 나를 친근하게 부르는 표현이거든. 그런데 만약 그 백인이 Ni**er라고 해버린다면, 나는 그 백인을 그 즉시 처리해 버릴꺼야" 투팍도 이러한 투의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건 이 두 사람의 의견일 뿐이다. Eazy-E나 투팍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해서, N-word를 마구 남발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

[1] Eazy-E가 활동할 당시에는 아마도 Kelly Park Hustler[2] 하지만 이 두 명이 N.W.A 출신이라 그런지 그때 당시 갱스터 랩에 대한 이 둘의 영향력은 죽지 않았었다.[3] 이 과정에서 사장인 Suge Knight이 야구방망이와 쇠 파이프로 이지 이를 폭행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미식축구 선수 출신이던 그는 대개 이런 식으로 가수들과 계약하거나 계약 해지를 했고, 그의 뜻을 거스르는 가수들에겐 온갖 훼방을 놓았다. 2000년대 들어 그동안 해왔던 악행이 드러나자 그는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했고, 온갖 폭행 행위로 벌금을 내며 사회에 환원했다. 2006년 파산 선언 후 2009년 데스 로우를 캐나다 와이드어웨이크 엔터테인먼트에 넘기기도 했다. 2017년에 주차장에서 1명을 차로 치어죽이고 1명은 중상을 입혔다가 체포되어 28년형을 선고받아 복역중이다.[4] 특히 큐브는 악명높은 디스곡 No Vaseline에서 '콤프턴에서 뛰쳐 나와(Moved Straight Outta Compton) 백인 동네의 호화 저택에서 사네. 이 동네엔 흑인들이 안보여'라는 표현으로 응수하여 많은 팬들의 공감을 샀다.[5] 인터뷰에서는 N.W.A를 N.W.E라고 까기도 했다.[6] 특히 드레스타(현재 살인 및 강간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켜 징역을 받고 복역했으며 앨범 발매 뒤 종적을 감춤)와 BG Knocc Out(이 두 형제는 데스 로우 랩퍼 독 파운드들과는 앙숙지간이었다.)형제들이 피처링한 Real Muthaphuckkin G's는 지금까지도 디스곡이자 갱스터 랩의 명곡으로 두고두고 화자 된다.[7] 심지어 여자를 자기 집 슬리퍼만도 못한 존재로 취급했다고.[8] 게다가 대부분 '''어린 팬들이었다고'''.[9] 사이는 틀어졌지만 나중에는 디스전은 종료되었으며 게다가 드레에게 있어서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한 계기가 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수익 문제 또한 EAZY-E가 아닌 다른 사람이 원인이었으며 그가 이렇게 일찍 사망했으니 이 시점의 드레에게는 아무래도 애증과 같은 감정일 것이다. 또한 아이스 큐브조차도 Fuka tha police라는 곡은 자신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만든 곡이며 나중에는 EAZY-E와 화해하며 그가 죽을 때 마지막으로 남긴 그의 엘범을 홍보하기까지 한다. 즉 두 사람은 EAZY-E로부터 받은 영향이 없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10] 이건 녹음이 다 되어있었기 때문에 발매만 하면 되는 거였다.[11] 이때 이지 이가 죽어서 사후앨범이 아니냐는 말이 있지만 원래 여기에 있는 트랙은 Str8 off tha Streetz of Muthaphukkin Compton에 있었어야 했다. 아무래도 이지 이가 죽어서라도 앨범을 내고 싶었는지 원래 22개로 녹음 되었던 곡에서 그 중 8개를 골라서 잘래내서 그 8곡을 마지막으로 앨범을 만들려고 했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앨범은 8곡 이상이여만 앨범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죽기 직전 화해한 아이스 큐브한테 나중에 홍보해 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보이며 아이스 큐브는 그의 부탁대로 자신이 직접 홍보했다. 이것 역시 발매만 하면 되는 거였다. 즉 이게 그의 마지막 앨범이었던 것.[12] 이지 이가 죽은지 7개월 후에 발매되었으나 자신의 곡을 편집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이것 역시 녹음이 다 되어있었기 때문에 사후 앨범이기에는 어렵다.[13] 그의 첫번째 사후 앨범. N.W.A에 실린 인기 곡을 포함해 자신이 출연 한 곡들을 모은 앨범이다. 또한 시대를 반영해서 Priority Records가 Starring...Eazy-E라는 제목으로 유사한 커버 아트와 유사한 트랙 목록이 포함 된 디지털로 다운로드용으로 출시 되기까지 한다.[14] 그의 두번째 사후 앨범.[15] 그의 세번째 사후 앨범. 여기 있는 트랙은 원래는 5150: Home 4 tha Sick에 실려 있어야한 곡이 있었어야 했으며 어떤 이유로 뻰 것 같으며 그 곡을 편집해서 만든 앨범이다.[16] 액슬 로즈도 N.W.A 로고 모자를 콘서트 때 쓴 적이 있다.[17] thriller 활동 당시 마이클 잭슨으로 대표되는, 풍성한 파마를 넣은 흑인 헤어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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