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넴
'''You better lose yourself in the music
지금 당장 이 음악에 몸을 던져
The moment you own it you better never let it go, oh
그걸 지배하는 순간을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해
You only get one shot, do not miss your chance to blow
단 한 번뿐이야, 이 기회를 날리지 마
This opportunity comes once in a lifetime, yo
이런 기회는 일생에 단 한 번만 찾아온다고'''
[clearfix]'''They say music can alter moods and talk to you
사람들은 음악이 마음을 안정시키고 네게 말을 건다고 하지
Well can it load a gun up for you and cock it too?
그럼 음악이 총을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길 수도 있나?
Well if it can, and the next time you assault a dude
할 수 있다면, 그 후에 니가 살인을 저지르거든
Just tell the judge it was my fault, and I'll get sued
판사한테는 그냥 내 잘못이라 해, 내가 고소당할 테니'''
1. 개요
미국 디트로이트[4] 출신의 래퍼.'''Rap God'''
흑인 음악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힙합에서 밑바닥부터 시작해 전설의 위치에 오른 백인 힙합 이티스트로, '''힙합 그 자체''' 라고 평가받는다.[5] 장르를 불문하고 2000년대 이후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가수이기도 하다.[6]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성공한 힙합 아티스트'''이며, 또한 '''21세기를 통틀어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 중 한 명이기도 하다.[7] 그는 2000년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반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2000년대에 가장 많이 팔린 앨범 1위, 4위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8] 또 이러한 대중적, 상업적 성공 뿐만 아니라 음악적 성취에서도 이전에 없던 새로운 독창성과 음악성으로 힙합과 대중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겼으며, 라킴과 더불어 랩의 발전을 선도한 아티스트로 평가받는다. 현재의 2020년대에도 에미넴이 힙합, 랩이라는 장르 안에서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하고,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에미넴은 '''롱런의 화신'''이기도 한데, 현재 나이가 52세에, 데뷔한 지는 20년 이상, 활동 자체를 본격적으로 한 지는 거의 '''30년'''[9] 이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싱글이나 앨범이 발매될 때마다 '''전세계 음원 시장 차트 상위권'''을 기록한다.[10] ''Music To Be Murdered By''는 만 나이 약 48세[11] 에 발매한 앨범임에도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고, 전성기 시절보다도 발전한 작사 능력과 랩 스킬을 보여주며 수많은 후배 래퍼들에게 귀감이 되었다.[12][13]
한마디로 '''현 힙합씬과 대중음악 메인스트림의 맏형이자 살아있는 레전드''' 그 자체라고 불릴 만한 인물. 전성기가 훨씬 지난 이후에도 다른 세대의 사람들에게 엄청난 파급력을 전달하고, 음악 장르에 존재하는 인종의 벽을 부쉈다는 점이 같아서 에미넴을 '''21세기의 마이클 잭슨'''이라고 하기도 한다.[14][15]
2. 상세
본명은 마셜 브루스 매더스 3세(Marshall Bruce Mathers III)이며 이니셜인 M&M[16] 의 음독 엠엔엠→에메넴→에미넴을 예명으로 지었다고 한다. 별명인 슬림 셰이디(Slim Shady)는 그의 곡에서 표현되는 그의 이중인격을 이른다.[17] 그리고 그를 상징하는 글자는 좌우가 뒤집어진 E자('''Ǝ''')이기 때문에 그의 앨범 자켓이든 콘서트든 E의 한 글자 만큼은 항상 뒤집어져 있다.[18]
자신만의 스타일도 확고하고 미국인들이 뽑은 최고의 래퍼 1위, 빌보드 선정 최고의 래퍼 10명 중 1위에 선정된 적도 있으며 내러티브가 확실한 가사에, 특히 단어의 발음을 '굽혀'서 '''라임'''이 안 되는 단어들을 되게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다.[19] "The Way I Am", "Lose Yourself"와 "Stay Wide Awake" 등이 그 정점이다. 에미넴이 발음을 굽히면서 라임을 짠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면, 이 영상을 보도록 하자.
흔히 라임을 맞추기 가장 어려운 단어로 종종 꼽히는 오렌지도 발음을 굽혀 라임을 짜니 말 다 했다.[20] 라임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거의 계속 생각을 한다고 한다. 거기다가 에미넴의 곡들의 가사를 면밀히 살펴보면 단어 선택의 폭이 굉장히 넓고 탁월하며 구성도 잘 되어있어서 어휘력이 굉장히 좋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의 말로는 학창 시절 공부는 다른 과목은 몰라도 영어 성적은 무척 좋았고, 평소에도 떠오르는 단어가 있으면 그게 어떤 단어인지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노트에 적고 다닌다. 게다가 그와 작업한 프로듀서나 동료 아티스트들의 말에 의하면 '에미넴은 하루종일 녹음실에 틀어박혀 있다'거나, '집과 녹음실 외에는 가는곳이 없다'라고 말할 정도다.
이는 그를 유명한 래퍼로 만들어 준 요소 중 하나이다. 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곡에 있는 힙합 곡들 중 두 개가 에미넴의 곡이다.[21] 또한 배틀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프리스타일 실력도 매우 뛰어나다. 가끔 프리스타일로 10분 이상을 쉬지 않고 술술 뱉어내기도 한다.[22] 랩배틀이 취미나 성취감이 아니라 어려웠던 시절에 실제 생활이 궁해 "챔피언 못 먹으면 때려엎어서라도 상품과 상금을 빼앗아 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생존을 위해 배틀을 해왔기 때문일것이다.
프리스타일 뿐만 아니라 라이브 실력까지도 역대 최고 수준이다. 요즘은 나이가 들어 과거에 비해 라이브 실력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라이브 실력은 수준급.[23] 그 타이트한 "Rap God"이나 "The Way I Am", "Lose Yourself" 등의 고난도 곡들도 잘 소화해내고 있다. 특히 과거 전성기 시절 보여준 라이브 실력은 그야말로 '''음원보다 라이브가 더 낫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 그 예로 닥터 드레와 함께한 곡 "Forgot About Dre"의 라이브, 그래미 어워드에서 엘튼 존과 선보인 "Stan"의 라이브[24] 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2000년에 닥터 드레, 스눕 독, 엑스지빗 등 거물 래퍼들과 함께 진행한 투어 공연인 ''Up In The Smoke Tour''에서의 라이브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2013년 유튜브 뮤직어워드에서 "Rap God"을 처음 부터 끝까지 풀타임으로 소화했는데, 전혀 힘든 기색없이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2000년 "Forgot About Dre" 라이브 영상)
(2001년 그래미 어워드 "Stan" 라이브, 엘튼 존이 피쳐링했다.)
(2009년 디트로이트에서 컴백 음반 ''Relapse'' 발매 기념 "Lose Yourself" 라이브 영상.)
한때 퇴물 취급 당했으나 Not Afraid, Rap God 등으로 퇴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퇴물 취급을 당한 데에는 2004년 이후 새 앨범을 5년 동안 내지 않은 게 컸다. 잠적의 이유는 이래저래 말이 많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에미넴이 속해 있는 그룹 D12의 멤버이자, 에미넴에게 있어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는 친구 '프루프(래퍼)의 사망이다. 프루프는 2006년 클럽에서 시비가 붙어 총격으로 사망했다. 이 5년 사이 소식도 뜸해지고[25] 약물 중독으로 인해 죽을 뻔 했다. 에미넴이 한창 8 마일 촬영을 하던 중, 하루에 16시간을 일하면서 영화 촬영과 음악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부담감과 스트레스로 인해 불면증을 앓게 되고, 이에 지인이 추천해준 수면제 종류의 약물에 손을 대게 된다. 게다가 얼마 뒤 프루프가 사망하면서 더욱 스트레스를 받아 복용량을 늘려가다보니 어느새 중독으로 이어졌고, 훗날 ''Encore'' 앨범 작업을 할 때의 기억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26] 이후 컴백 앨범인 ''Relapse''의 수록곡 "Deja Vu"에서 자신이 약물 중독으로 인해 화장실 바닥에서 쓰러진채 발견되었다는 가사가 있다. 병원에 실려간 이후로는 재활 치료를 받았으며, 몸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배 속에 약물 복용을 중단하기 위한 헤로인 4봉 분량의 메타돈이 들어있었어서 담당 의사가 말하길 병원에 한두시간 정도만 늦게 도착했어도 죽었을거라고... Eminem - "나의 약물 중독"[27]
살도 쪄버리면서[28][29] '에미넴도 이젠 갔다'는 평이 지배적이었지만, 2009년 앨범 ''Relapse''로 컴백했다. ''Relapse''는 과거에 보여준 수위 높은 가사들도 이에 비하면 약하게 느껴질 정도로 굉장히 호러코어한 곡들로 가득해, 슬림 셰이디는 죽지 않았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Relapse''는 2009년 한 해 동안 전세계 힙합 앨범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2010년 발매한 앨범 ''Recovery''는 일주일 만에 미국에서만 무려 741000장, 전 세계적으로는 570만장이 팔렸다.
3. 인생사
소위 말하는 화이트 트래쉬 계층의 찢어지게 가난하고 어린 싱글맘[30] 밑에서 자라[31] 디트로이트에서도 슬럼가에 살았고 그 가정도 아버지 없는 한부모가정인데 그 어머니도 마약중독자고 거기에다 백인이다.[32] 빈민가에서 흑인들과 랩 배틀을 하며 이름을 날리고, 데뷔할 즈음에는 백인인데도 뛰어난 랩, 독특한 가사와 스타일로 주목받아 여기까지 온 것.
3.1. 유년기
[image]
(1974년 만 2세 당시 사진이다. 왼쪽은 아버지와 함께 찍은 유일한 사진)
어머니 데비 넬슨과 그녀가 살던 동네[33] 의 밴드에서 활동하던 멤버 아버지 마셜 브루스 매더스 2세(주니어)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후로 아버지를 만난 적이 없고 만나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자기가 병원에서 다른 아기들과 바꿔치기 당한 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고 했고, 에미넴의 공연장에 아버지가 찾아왔고 만나고 싶다는 뜻을 밝혔으나 에미넴이 만나기를 거부하였다. 거부한 이유는 에미넴이 생후 6개월 때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떠나버렸다는 것. 에미넴의 할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유아 시절의 에미넴이 아버지를 그리워 하며 아버지에게 줄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허나 아버지는 자신은 가족을 버린 적이 없다며 다른 주장을 내놓았다. 아버지가 가족을 버렸다는 말은 부인이자 에미넴의 모친인 데비 넬슨의 거짓말이라는 거다. 나중에 재혼을 한 아버지가 자신의 딸에게 전해서 편지를 전해달라고 했는데, 편지 내용은 본인은 에미넴을 버리고 떠난 것이 아니고 원래 에미넴이 태어났을 때 병원 측에서 아버지는 들어가지 못한다고 해서 들어가지 못했고 그 뒤에도 아버지는 일이 바빠 자주 찾아보지 못했는데, 데비가 이를 갖고 이간질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히려 어느날 집에 와보니 부인인 데비가 에미넴을 데리고 말도 없이 사라졌고 자신은 가족을 한참 찾아 헤매다 결국 포기하고 결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였다고 하였다. 이때까지의 엄마의 막장행각을 보면 설득력이 있으나, 2020년 발매한 앨범 ''Music To Be Murdered By''의 수록곡 "Leaving Heaven"에서 자기는 아버지의 죽음에 아무 느낌도 없다며 계속 디스 하는 것을 보아 에미넴에겐 그 주장이 아무 의미 없었던 듯하다.
3.2. 청소년기
5살때 디트로이트로 이사하게 된 그는 줄곧 우울증과 약물중독에 시달리던 어머니 데비 넬슨에게 학대를 당했고 그런 영향으로 "Without Me", "My Dad's Gone Crazy", "Cleanin' Out My Closet"에서는 어머니를 디스하고 욕을 하는 가사를 썼다. 잦은 이사로 인한 전학과 왜소한 체구, 멍때리며 언제나 랩의 가사를 중얼거리는 그의 이상한 행동 때문에 학교에서도 왕따와 폭행을 당했다.[34] 대표적으로 1981년 10월 15일,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던 중 학교 일진 D'Angelo Bailey[35] 의 폭행으로 9일간 코마 상태에 빠졌던 일.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를 피해 친척들과 자주 붙어 지내던 에미넴은 힙합 매니아였던 그의 2개월 차이 삼촌, 로니 넬슨을 유일한 친구삼아 지내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꾼 기질이 있어서 맨 처음엔 만화가를[36] 꿈꿨지만 11살쯤 됐을 무렵, 로니가 아이스 T의 음반을 선물해 주었고,[37] 같은 백인 힙합 그룹이었던 비스티 보이즈의 음반 등을 듣게 되면서 백인도 랩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38] 로니 삼촌의 비트박스에 맞춰 어설프게 랩을 해 테잎에 녹음하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랩에 몰두하기 시작해, 13살 무렵에는 자신의 이름인 마셜 매더스의 약자에서 에미넴[39] 을 예명으로 짓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는 점심시간에 랩 배틀을 벌이고 자신의 힙합 그룹을 결성하기도 하며 음악에 몰두하다 학교를 결석한 적도 있었다. 마침내 17세[40] , 고등학교 때 학교를 자퇴하고 본격적인 래퍼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41]
3.3. 언더그라운드 시절
하지만 그 때 이미 힙합을 때려치운 삼촌은 에미넴이 래퍼로 성공하고 싶다는 꿈을 얘기했을 때 '허망한 꿈일 뿐이니 결코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89년부터 같은 백인 래퍼인 카오스 키드와 만나 Bassmint Productions라는 그룹을 결성해 음악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흑인들 앞에서 공연하면서 Nigga라는 낱말을 썼다가'''[42] 야유만 잔뜩 들었고, 에미넴에겐 나름대로 흑역사. 아무래도 정말 초기에 했던 녹음들이다 보니 가사나 스킬 등이 조잡하다.[43] 지금의 에미넴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노력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정도. 그때는 테이프를 아끼기 위해 한 큐에 녹음을 끝내는 연습 등을 많이 했다고 한다.[44] Bassmint Productions는 이후 그룹 이름을 Soul Intent로 바꾸고 나서 계속 활동하다가 1995년에 해체된다.
언더에서의 삶은 비난과 야유의 반복이었다. 그는 자신의 노래를 들어주는 클럽을 찾기위해 디트로이트의 클럽을 찾아다녔다. 실제로 그가 랩을 하기위해 무대에 오르기만 해도 욕설과 '내려가라'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한번은 덩치 큰 흑인에게 오렌지를 맞았을 정도다.
그러던 중 로니는 연애 문제로 끙끙 앓다가 1992년에 차 안에서 권총 자살해 버린다. 삼촌의 자살에 대한 충격으로 에미넴은 음악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으나 딸 헤일리 제이드 매더스가 태어나 아버지가 된 이후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돌아온다.[45]
3.4. 출세가도
이렇게 욕을 얻어먹으면서 주눅이 들 법도 한데 그는 계속해서 클럽을 찾아다녔다. 결국에는 야유를 보내는 관중 앞에 무대에 서 라임을 세 마디 뱉었더니 이내 잠잠해졌고 자신감을 얻은 에미넴은 점차 가사 쓰는 법, 비트 만드는 법을 익혔다고 한다.
클럽 생활을 하면서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1996년 첫번째 앨범 ''Infinite''를 발매한다. 이 당시에도 이미 라임은 괜찮았다. 그러나 일단 플로우에 딱히 자신만의 특징이 없었던 데다가, 에미넴이 랩을 할 때 목소리가 하이톤이다 보니 '너무 어리게 들린다' 등 쓴소리를 많이 들었다. 가사도 무명 래퍼로서 생계를 꾸려가려는 몸부림 등이 중심이 되어 많이 얌전하다.[46] 이때는 별로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 때 에미넴의 래핑을 들어보면 동부 래퍼 AZ, 나스와 많이 비슷하게 들린다.[47] 결국 앨범은 '동부 래퍼들의 스타일을 교묘히 베낀 삼류' 등의 혹평을 들었고, 디트로이트에서 약 1000장의 판매고를 올린 게 전부를 끝으로 묻히다시피하고 말았다. 1000장이 팔리고 나서 에미넴은 뭔가가 일어날꺼란 기대를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냥 묻혀서 어느정도 실망을 했다고. 에미넴이 어렵게 살던 시기였기 때문에 딸 헤일리의 분유와 기저귀 값을 벌기 위해 맥도날드에서 알바하던 중 라디오에서 이 앨범이 쓰레기같다는 악평을 듣고 상심했던 적이 있다.[48] 이에 에미넴은 문신을 새겼는데 'Slit me, 나를 베어라'라는 뜻이다.
그러다가 1997년 LA의 지역방송이 주최한 랩 올림픽에서 2위[49] 에 그쳤지만 그걸 딘 가이스링어(Dean Geistlinger)[50] 라는 사람이 듣고 에미넴에게 테이프를 받게 된다.[51] 에미넴의 테이프가 인터스코프 레코드로 전달되고, 닥터 드레[52] 가 테이프를 듣게 되었는데 테이프가 그의 눈에 띄어 발탁되었다. 닥터 드레는 훗날 그 순간을 이렇게 회상하였다.
1998년 계약 초반부터 드레가 살 빼고 몸 만들라고 했다고 한다. 떡잎부터 알아본 것. 사실 에미넴은 닥터 드레와의 첫 만남 때 자원구호 단체에서 나눠주는 노랑색 후드 점프수트를 입고 나타났다. 나중에 드레가 말하길 바나나 같았다고 한다.[53] 이렇게 에미넴의 인생을 송두리채로 바꿔놓은 앨범 이름이 바로 ''The Slim Shady LP''의 전신격 앨범인 ''' ''Slim Shady EP''.''''''When jimmy played this; I just said, 'Find him. Now.\''''
지미가 앨범을 틀었을때, 나는 말했어, ''' '걔 찾아와. 당장.' '''
4. 가족
4.1. 부모와의 관계
어머니와는 사이가 좋지 않다. 패드립으로 보일 수 있으나, 에미넴이 하는 이야기만 들어보면 '''어머니가 욕먹을 만 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54] 다만 서로 상대방의 말을 거짓이라며 까고 있으니 누가 진짜 사실을 말하는 건지, 누가 진짜 까일 만 한 건지는 모르지만 자식이 어머니를 이토록 증오하게 만든 어머니가 딱히 좋은 어머니였을 것 같진 않다.
반대로 어머니에 대한 옹호 의견도 존재한다. 어머니의 발언에 의하면 에미넴이 무명 시절에 어머니를 공격하는 곡을 만들었을 때 이를 듣고 놀란 어머니가 대체 왜 이런 곡을 만드는 지 물어보니 에미넴이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이건 노래로 뜨기 위한 설정일 뿐 그 이상이 아니라고 어머니를 안심시키기도 했다고 한다.[55]
결국 2013년에 공개된 ''The Marshall Mathers LP2''의 "Headlights"에서 법정 결과부터 시작해 여태까지 줄기차게 까던 에미넴의 어머니 데비를 용서하고 사랑한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Cleanin' Out My Closet"에서 어머니를 깐 것에 대해 사과했다.[56] 덤으로 해당 곡의 뮤직비디오 역시 미국의 어머니의 날에 맞춰 공개를 했다. 곡의 제목인 헤드라이트도 비록 서로 떨어져있지만 항상 같이 가야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결론적으로 에미넴은 어머니와 화해한 듯 하다.
'''Oh, almost forgot to do something, thank my father too
오, 중요한 걸 잊을 뻔 했네, 우리 아빠에게도 고마워,
I actually learnt a lot from you, you taught me what not to do.
사실은 당신에게 많은 걸 배웠어, 내가 진짜로 하지 말아야 될 것을 말이야.'''
"Arose" 中
반대로 어린 시절 도주한 아버지인 마셜 매더스 주니어와는 평생을 척을 지고 살았다. 생후 6개월때 가족을 버리고 떠났고 한번도 보러 오지 않았지만 에미넴이 유명해지자 그때가 돼서야 에미넴을 만날려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그의 인기를 이용해 인터뷰를 해 추억팔이를 하는 등 에미넴 입장에선 그야말로 위선자가 따로 없는 모습을 보여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 에미넴은 이런 아버지와의 만남을 거부했으며 아버지라는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매우 증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You know, I should dig your motherfucking ass up
난 말이지, 네 놈 시체를 도로 파내서,
Just to spit in your fucking face
네 얼굴에 대고 침을 뱉어야겠어.
Holding my baby pictures up like you're proud of me
지는 뭐 자랑스럽다는 듯이 내 아기 사진 들고서 X랄하던데,
Fuck you, bitch
엿 먹어, 개년아.
You know what? Maybe if I had had you
그거 알아? 나한테 네가 있었다면,
I wouldn't have went through half the shit I went through, so I blame you
내가 겪은 일들 중 절반은 겪지 않아도 됐을 거야, 그래서 네 놈을 탓하는 거야.
Or maybe I should say, "Thank you"
혹은 "고맙다"라고 해야되나?
'Cause I wouldn't have been me, haha
난 지금의 내가 되지 못 했을테니, 하하.'''
"Leaving Heaven" 中
그러다 2019년 6월 26일 아버지가 사망을 하자 팬들은 에미넴이 이제는 용서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지만 상술한 ''Music To Be Murdered By'' 수록곡인 "Leaving Heaven"에서 한껏 분노에 차고 응어리진 목소리로 고인능욕에 가까운 랩을 하며 아버지에겐 관심도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4.2. 전처 킴과의 관계
전 아내 킴과의 애증관계는 이미 유명하다. 10대 시절부터 사귀어 결혼까지 했지만 각자의 사생활문제 때문에 이혼하기도 하고, 2000년 6월 미시간 주 워렌의 Hot Rock Sports Bar and Music 카페에서 경비원 'John Guerra'와 키스하는 킴을 보고 격분해 권총을 쏘려했는데 탄창이 비어있었고, 결국 경비원을 권총으로 예닐곱 번 폭행했다.[57] 이는 그의 노래 Sing For The Moment에 등장한다. 해당 곡에서 그는 총이 아닌 주먹으로 Guerra를 때렸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킴이 자살시도를 할 때 직접 말리기도 했다. 킴은 앨범에서 자주 등장한다.[58] 에미넴이 유명해지고 난 뒤 둘은 재결합 하였고 훗날 결혼식까지 올리며 재혼을 하였다. 하지만 몇 개월 뒤 성격차이가 심해져 다시 이혼하였다.[59] 이때 헤일리의 양육권이 킴에게 넘어가 버리지만, 킴이 마약소지죄로 붙잡히고 나서 양육권이 박탈당한 후 겨우 헤일리의 양육권을 되찾아올 수 있었다. 어쨌든 킴과 에미넴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이고 에미넴이 킴을 미워하는 만큼 가장 사랑한 여자였음은 분명하다. 에미넴 본인 왈, 이 때문에 재혼은 죽을 때까지 하지 않을 거라고 한다.[60] 심지어 이혼한 지 한참 지난 후에도 개인적으로 킴과 만나는 사진이 찍힌 적도 있다. 지금은 그저 친구 정도의 사이라고.
4.3. 딸 헤일리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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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퀸카로 뽑힌 적도 있을 정도로 미인이며, 치어리더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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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2세인 모습)
헤일리는 엄마인 킴을 빼닮았다. 2014년 9월에 학교를 졸업하였고[61] 미시건 주립 대학교 심리학과에 입학했다. 헤일리의 이름으로 유튜브에 검색을 하면 헤일리가 축구공으로 묘기를 부리는 동영상이 나오는데, 어지간한 사람들을 능가하는 실력으로 운동 신경 역시 출중하다.
딸바보 속성이 아주 강해서, '''에미넴이 유일하게 까지 않는 사람은 그의 딸 세 명 및 동료 뿐이다.'''라는 건 이미 조크가 아니라 그냥 팩트가 되어버렸다. 50 Cent와 자 룰 간의 피 튀기는 디스전 상황 속에 피해받아 추락한 50 Cent를 구원해주었는데 자 룰이 가만히 있지 않아 에미넴을 디스했는데 문제는 당시 9살이던 헤일리까지 건드려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에미넴은 닥터 드레 및 50 센트 등을 동원해 금기를 무시한 자 룰을 디스했다. 자세한 것은 에미넴/디스 문서 참조.
자기 자신, 엄마, 와이프, 조지 W. 부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62] 등등을 까대니 당연히 교육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작업실에 못 들어오게 한다고 했다. 앨범을 만들 때도 딸에게 들려주기 위해 욕설이 없는 버전을 따로 만든다거나, 심지어 딸과 떨어지는 것이 싫어 해외 투어도 오래 하지 않는다. 또한 Lose Yourself를 녹음할 때는 놀러온 딸이 심심할까봐 벌스 3개를 한 번에 녹음했다고. 자세한 건 Lose Yourself 항목 참조. 또 모비가 에미넴에게 가사 내용이 딸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자제하라고 지적했는데 에미넴은 이걸 디스로 듣고 Without Me에서 디스했다. 이후 호텔에서 에미넴과 D12[63] 동료들이 모비와 맞닥뜨렸을 때도 에미넴답지 않게 그냥 지나쳤는데 D12의 동료 중 한 명이 모비에게 "헤일리만 없었다면 널 그냥 발라줬을 텐데"라고 속삭이고 갔다고 한다.
에미넴의 딸 세 명 중 친딸은 헤일리 한 명 뿐이다. 첫째인 알레이나는 전 아내인 킴의 쌍둥이 언니의 딸. 언니도 아내 못지 않은 막장이어서 양육권이 날아갔고 보다 못한 에미넴이 알레이나를 입양했다. 둘째인 헤일리는 친딸이고, 막내인 휘트니는 킴과 다른 남자 사이에서 나온 딸로서 역시 입양아. 거기에 자기 이부 동생인 네이선[64] 의 법적 후견인(부모나 마찬가지다.)까지 하고 있으니 일가 친척을 혼자서 다 떠먹여 살리는 분 되시겠다. 왠지 친척 한 명 팔자 펴면 동네방네 모여들어 다 같이 모여 사는 건 전 세계가 똑같은 것 같다.
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논란이 없는 건 아니다. 킴의 증언에 의하면 에미넴은 자신의 랩가사에서 만큼이나 또는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만큼 딸에게 좋은 아버지이지는 못하다고 하였다. 즉 자신의 인기를 위해 스스로 포장하였다는 의견이지만, 킴은 약물중독 경력과 불륜을 여러번 저지른 적이 있고 에미넴과 법정싸움까지 했었기 때문에 신빙성이 낮다.[65] 상식적으로 약물중독에 빠진 경력도 있고[66] 부부싸움도 하고, 세계투어를 하느라 바쁜 에미넴이 좋은 아버지가 되기는 어려워 보이기 마련이다. 이와 관련된 에미넴의 심정이 담긴 곡으로는 Mockingbird와 When I'm Gone[67] , ''Revival''의 "Castle" 및 "Arose" 등 가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14년 헤일리는 GPA 3.9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 졸업생 대표로 연설까지 하였으며 후에 미시간 주립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5. 디스코그래피
5.1. 정규 음반
5.2. EP
5.3. 그룹 음반
5.4. 기타 음반
5.5. 빌보드 핫 100
5.6. UK 차트
6. 각종 기록
- 힙합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힙합 아티스트[87][88]
- 2000년대 전 세계에서 음반 판매고가 가장 높은 아티스트[89]
- 힙합 장르로 피처링없이 가장 많은 곡을 빌보드 핫 100 1위에 올린 아티스트
- 힙합 앨범 최초로 다이아몬드 앨범을 두 장 달성[90]
- 천만 번 이상의 디지털 다운로드를 기록한 싱글 2개를 보유한 최초의 아티스트[91]
- 2개의 앨범을 최소 300주동안 빌보드 200에 진입시킨 첫 아티스트
- 미국 내 가장 많은 Diamond[92] RIAA 싱글 인증을 가진 가수 중 한명[93]
- 2013년 11월 셋째 주 본인이 메이저 데뷔 후 발매한 앨범 8장 '전부' 빌보드 200에 동시 진입.
- 닐슨 사운드 스캔 측정 기준 최초로 각각 다섯 앨범을 주간 판매량 70만장 이상으로 1위를 기록한 아티스트
- RIAA 측정 기준 디지털 앨범 판매량이 1위인 아티스트
- 1,560개의 단어를 한 곡에 넣어 '가장 많은 단어가 들어간 노래'로 기네스북에 등재[94]
- 그래미 어워드 수상 횟수 총 15회
- 2002년 개봉한 자전 영화 8 Mile 수록 OST "Lose Yourself", '아카데미상 최우수 오리지널 노래상' 수상[95]
- 2000년, The Marshall Mathers LP의 발매 첫 주 판매량 178만 장으로 '가장 짧은 시간내에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린 솔로 아티스트 앨범'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96]
- 최초로 10개 앨범을 연속으로 빌보드 200 1위로 데뷔시킨 아티스트[97]
- '30초 안에 가장 많은 단어를 사용한 곡'으로 기네스북에 등재.[98]
- 베스트 앨범인 Curtain Call: The Hits가 2020년 11월 3일 기준 힙합 역사상 최초로 빌보드 200에 500주 이상 기록된 앨범이 되었다. 이 날 기준으로 The Eminem Show와 Recovery는 각각 396주, 320주를 기록했다.
-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공식 싱글이 아닌 곡('Till I Collapse")
- 빌보드 앨범차트 역사상 가장 높은 순위 상승폭 기록 (199위 -> 3위, Music To Be Murdered By)
7. 영화
7.1. 8 마일
7.2. 디 인터뷰
김정은을 암살한다는 내용으로 유명세를 치른 디 인터뷰에 카메오로 약 3분 정도 출연했다. 인터뷰 중 커밍아웃을 하는데 에미넴 골수팬이라면 배꼽 빠진다.
영화 속 인터뷰 [ 펼치기ㆍ접기 ]
또한 이 영화의 이 부분에서 등장하는 가사는 2009년 발매된 ''Relapse'' 중 "Medicine ball"의 첫 번째 벌스이다.프랭코: 게이 까꿍???}}}
'''I said nice rectum, I had a vasectomy Hector. So you can't get pregnant if I bisexually wreck ya'''[99]
7.3. Bodied
2017년에 개봉한 2시간짜리 영화로, 한국계 미국인 영화감독인 '''조셉 칸'''[100] 의 작품이다.
영화는 배틀 랩을 주제로 한 코미디/드라마 영화로, 에미넴이 출연을 하지는 않았으며 그 대신 자신의 매니저 Paul Rosenberg와 영화의 제작자로 참여하였다. 에미넴의 유튜브 채널에도 Bodied의 홍보 영상이 올라가 있다. 참고로 한국계 래퍼 덤파운데드가 영화에 출연한다.
8. 애니메이션 The Slim Shady Show
9. 이름 표기
외래어 표기법에 맞춘 표기는 '에미'''넘''''인데, 이것은 '''국내 언중들 사이의 통용은 물론이고[101] , 유래에 근거한 본토 발음조차도 쌩무시한''' 표기기 때문에 가끔 나오는 지상파 뉴스 자막을 통해 이 표기를 알게 된 사람들에게 호된 비판을 받고 있다. '''이것은 국립국어원 사이트의 관련 문답에서 답변한 직원조차 간접 시인한[102] 심각한 문제다.'''
10. 기타
- 사진을 보면 알다시피 이목구비가 뚜렷한 전형적인 백인 미남의 표본으로 꼽히고 있으며 특히 금발로 염색하고 다니던 시절이 유독 그러한 모습이 더욱 돋보여서 특유의 미친 똘끼를 자랑함에도 그의 출중한 실력과 잘생긴 얼굴을 보고 입덕한 여성팬들이 굉장히 많다.
- 언더그라운드 시절에 녹음할 돈이 부족해 한 큐에 녹음을 끝내는 연습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이런 방식을 오랫동안 고집해오다보니 닥터 드레와 처음 합을 맞춘 메이저 데뷔 앨범 The Slim Shady LP을 작업할 때, 에미넴이 녹음 중 실수를 하자 '처음부터 다시 가자고'라고 했더니 닥터 드레가 '뭔 개소리야? 펀칭으로 때우자고'라고 했다고 한다. 한 큐에 끝내는 연습만 했던 에미넴은 펀칭이 뭔지도 몰랐다고. 참고로 '펀칭'은 녹음을 할 때 중간에 삽입하는 기술을 말한다.
- 릴 웨인과 함께 자수성가한 래퍼로 평가받지만, 자신을 돈 많은 허세쟁이로 표현하는 것이 힘들다고. 과거 에미넴의 평소 복장은 항상 흰 티셔츠 + 힙합바지 + 헐렁한 후디 + 비니 + 나이키 에어 조던 4였다. Relapse 앨범 이후 가죽 재킷 + 청바지로 바뀌었지만, 에어 조던과 흰 티는 여전하다.[103] 앤더슨 쿠퍼가 진행하는 "60 Minutes"라는 토크쇼에서 말하기를, 그는 무명에서 벗어나 처음 돈을 많이 벌기 시작하자 매니저에게 전화 걸어서 처음으로 한말이 "이제 롤렉스 시계 살 수 있어?"였고, 그때 산 롤렉스 시계는 스크래치가 날까봐 현재도 집에 모셔두고 100달러짜리 G-SHOCK만 차고 다닌다고 말했다.[104] 궁핍하던 무명 시절 음악적인 이유에 앞서 생계를 위해 랩 배틀 대회에 나갔고 그때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상금과 롤렉스 시계였다고 하니 이해할 만도 하다. 이후 60 Minutes에서 보여준 G-shock은 불티나게 팔렸다. 순재산은 2019년 기준으로 2억 1천만 달러 정도(약 2300억)이지만, 에미넴은 사업을 딱히 하지 않아서 에미넴과 비슷한 위상을 가진 아티스트들이 가진 재산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재산이 적은 편이다.
- 2011 그래미 시상식에 리아나, 스카일러 그레이, 마룬 5의 애덤 리바인[107] 그리고 닥터 드레와 함께 등장해 폭발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미국 음악계의 여러 거장들이 참여한 자리에서도 유독 빛났다는 평가. 실제로 시상식장을 메운 동료 가수들에게서 가장 큰 환호를 받았다.
- 공적인 자리에선 절대로 웃지 않는 기믹이 있다. 항상 약간 화난 듯한 터프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이게 앨범 자켓이든 상 받는 자리든 그냥 찍은 사진이든 다 그렇다. 팬들도 이걸 잘 아는지라 유튜브 등지에 종종 "사상 최초 에미넴 웃는 모습 캡처" 따위의 동영상이 올라오는데, 잘 보면 하나같이 다 평소보다 조금 덜 구긴 얼굴이거나 무표정이다. 몰래 웃거나 웃음 참는 모습이 간간히 포착되긴 한다. 다행히 사적인 자리나 라디오 방송(= 얼굴이 나오지 않는) 같은 데서는 웃는다. 의외로 예전의 영상들과 사진에서는 배 터지게 웃는 에미넴의 모습도 잡혀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예전의 에미넴을 그리워하는 팬들도 많다.[108] 또 1999년 프루프와 디트로이트에서 프리스타일 랩을 했는데, 환한 미소를 짓는다.[109]
- 2009년 MTV 뮤직비디오 시상식에서 천사 날개를 달고 날면서 등장한 사샤 바론 코헨의 불시착(?)으로 인해 그의 엉덩이에 파묻히는 봉변을 당했다... 에미넴은 괴로워했고 이내 빡친 표정으로 자리를 떴지만 사실 다 예정된 퍼포먼스(?)였다고 밝혀졌다.
- 2010년에는 뉴저지 출신 래퍼 조 버든(Joe Budden)의 믹스테입 수록곡 'Slaughterhouse'에서 인연이 닿았던 4명의 각기 다른 지역 출신들의 래퍼: Royce Da 5'9"(미시간주 디트로이트), Crooked I(캘리포니아주 엘레이), Joell Ortiz(뉴욕시 브롱스), Joe Budden(뉴저지주)로 구성된 Slaughterhouse.[110] 를 자신의 레이블인 Shady Records에 영입했다. 같은 디트로이트 출신인 Royce Da 5'9"과는 언더 시절부터 Bad Meets Evil이란 팀명으로 듀오로 잠깐 활동을 했었으나, 이후 에미넴의 메이저 성공 및 D12의 성공, D12의 멤버인 Bizarre과 로이스 간의 비프를 시작으로 D12 전체와의 비프를 거쳐 한 때 에미넴과 로이스 둘의 사이는 소원했으나,[111] D12 그룹을 만든 장본인인 동시에 Royce와는 역시 오랜 친구였던 Proof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에미넴과 Royce, D12 모두가 화해를 하게 되었다. 슬로터하우스의 영입 이후, 에미넴과 로이스는 언더 시절 이후 처음으로 다시 Bad Meets Evil이라는 팀명으로 뭉치게 됐고, 2011년 처음으로 EP 앨범인 Hell : The Sequel을 발매했다.
- 학창시절 폭행의 트라우마로 한쪽 눈을 깜빡이는 습관이 있다. 자신도 모르게 오른쪽 눈이 윙크를 하듯 깜빡이는 모습이나 오른쪽 눈이 더 크게 떠져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 에미넴의 트레이드 마크인 짧은 금발머리는 사실 염색을 한 것이다. 진짜 머리 색은 어두운 갈색빛을 띈 더티 브라운. 2009년 컴백할 때부터는 염색을 풀고 검은 머리로 다니기 시작했다. 2013년 발매된 The Marshall Mathers LP2] 부터는 다시 노란 머리로 돌아왔다.[112] 공식적으로 금발 에미넴으로서의 활동은 2015년 영화 사우스포 사운드트랙 "Phenomenal" 뮤직비디오가 마지막이다. 2016년부터는 다시 원래 머리 색을 유지하기 시작했다.
- 힙합에서 가장 흔한 주제인 여자 자랑, 돈 자랑을 거의 하지 않는다. 본인은 이런 자랑질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고. 또한, 뮤직 비디오 역시 몇 영상을 제외하면 야한 장면이 거의 없다. 그래서 에미넴의 뮤직비디오 코멘트에는 항상 야한 가사와 장면 없이도 뜨는 것을 찬양하는 댓글이 꼭 하나씩은 있다. 이러한 면모는 에미넴의 아이덴티티중 하나라고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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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식이 본인 입으로 밝히길,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래퍼가 에미넴이라고 한다.
- 켄드릭 라마의 Lyricism (리리시즘)에 크게 영향을 래퍼 준 한명이 에미넴이라고 한다.
- 2016년 10월 즈음, 2017년에 발매될 에미넴의 새 앨범 트랙리스트라는 글들이 페이스북 등에 떠돌아 다녔다. 그냥 루머일지 아니면 정말일지는 2017년이 돼봐야 알 듯. 그리고 약 1년 후, 2017년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 추석을 전후로 에미넴의 최측근이자 하입맨인 Denaun Porter(Mr. Porter)가 인스타그램 라이브에서 새 앨범에 관한 떡밥을 남겼으나, 이내 거짓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이것이 "인터넷에서 에미넴의 신곡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을 겨냥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후 Revival이 발매되며 새 앨범 떡밥이 진실인 것으로 드러났다.[113]
- 셰이디 레코드에서 Shady Wars라는 게임을 출시했다. 플레이 방식은 위에서 떨어지는 가사를 먹는 것.
- 2017년 6월부터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 과거의 젊어보이던 얼굴이 아닌 상남자 같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 그의 매니저인 폴 로슨버그(Paul Rosenburg)와 재밌는 일화가 많다.
- 폴은 1997년도부터 지금까지 에미넴의 매니저를 맡고 있는데,[114] 20년 넘게 뮤지션이 한 매니저와 활동을 한다는 것은 꽤 드문 경우이다. 뭐 폴의 경우는 셰이디 레코드의 공동 설립자이니 꼭 같다고 볼 순 없겠지만.
- 폴이 Not Afraid: The Shady Records Story에서 직접 밝힌 사실로, 폴과 에미넴은 프루프를 통해 처음 만났다고 한다. 에미넴은 당시 매니저를 찾고 있었고 프루프가 둘을 연결시켜 줬다고. 에미넴과 폴이 처음으로 만났을때 에미넴은 폴에게 Infinite 테이프를 팔았고, 이후 프루프가 에미넴에게 랩을 시켰다고 한다. 폴이 에미넴의 랩을 처음 들었을때 딱히 "오, 얘가 지구상에서 랩을 제일 잘하는 애가 될 거 같은데?"라고 느끼진 않았다고...[115]
- 폴이 말하길 자신이 처음으로 에미넴이 우는 걸 봤을 때가 1997년도 랩 올림픽에서 준우승을 했었을 때라고 한다.
- 그의 크루인 D12과의 일화
- 에미넴이 소속된 크루 D12 중에서 제일 성공한 인물이다. D12 멤버들은 언더그라운드 시절때 멤버중 한 명이 성공하면 그 한 명이 크루를 알리기로 약속했는데 에미넴이 그 약속을 지킨 것.
- "Cleanin' Out My Closet"은 원래 D12의 노래였지만 Bizarre가 첫 녹음을 할때 수위가 매우 쎈 가사를 썼다가 결국 녹음을 포기하며 에미넴의 솔로곡이 됐다. #
- 에미넴은 활동과 투어를 많이 안 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편이다. 실제로 Revival과 Kamikaze 등의 새 앨범이 발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모션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물론 Relapse나 Recovery, MMLP2 등의 앨범 출시 당시에도 TV 출연은 많이 하지 않았다. 이와 일맥상통하게도 동급의 래퍼들 중에서 가장 투어를 적게 하는 게 바로 에미넴이다.[116]
- 프루프랑 찍은 프리스타일 랩 동영상들도 유튜브에 돌아다닌다. # 여기서 에미넴이 빵터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 2017년 10월 BET 어워드에서 무반주 프리스타일 'The Storm'을 선보였다. 트럼프를 비판하는 가사가 크게 주목을 끌었는데 이 프리스타일이 공개된 후 래퍼 스눕 독은 본인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에미넴에게 환호를.
>Saying some real shit
>진짜 맞는 말만 했다.
>Eminem,
>에미넴,
>I always knew you are real nigga[117]
>난 항상 네가 진짜배기라는 걸 알고 있었고
>We totally know you a real nigga now
>우린 진심으로 네가 진짜 멋진 새끼란 걸 알았다.
>Shout out to Eminem
>에미넴에게 환호를
>Detroit[118] , stand up
>디트로이트여, 일어나라
>Eminem, real mother fucking nigga
>에미넴, 얜 진짜 존나 멋진 새끼다.
>So says, Snoop Dogg"
>스눕 독이 말함
이라고 극찬했다.
- 투팍의 어머니에게 자필로 편지를 써서 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편지 내용에는 "아드님은 힙합의 세계뿐만 아니라 제 음악에 큰 영감을 주었으며, 커리어 전체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이며 투팍에 대한 리스펙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글씨체 또한 화제가 되었는데 매우 정교하고 예뻐서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했다.[119] 자신이 그린 투팍의 크로키화 또한 편지에 동봉했었는데 그림 실력도 무척이나 수준급.
- 랩 실력과는 별개로 음역대가 엄청나게 넓다. 그의 음역대는 진성으로 0옥타브 레[120] (D2)에서 ~ 3옥타브 파(F5)[121] , 가성으로 무려 4옥타브 레(D6)[122] 으로 음역대로는 타 유명 보컬리스트 못지 않게 넓은 편이다. 이렇게 미친 음역대를 가져서 에미넴은 테너라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그의 발성법과도 연관되어있는데, 비슷한 발성법을 가진 액슬 로즈는 더해서 아예 전체 가수들 중 가장 음역대가 넓다.
- 2018년 11월에는 Kick Off라는 무반주 프리스타일을 공개했다. 무려 11분 동안 프리스타일을 한다. 해당 영상
- 힙합 영화 Bodied의 프로듀싱을 맡았다.
- 불치병인 팬들을 위해 많은 선행을 베푼 적이 있다.
- 제일 유명한 일화로, 2015년 시한부 인생의 골육종 환자인 Gage Garmo라는 17살 소년이 죽기 전 에미넴과 만나고 싶다고 해서 에미넴이 직접 그 소년을 위해 찾아간 일이 있다. #[123] 기부 활동도 많이 하는 편이다.
- 선행에 관해 2010년 당시에도 유명한 일화가 있었다. 낭포성 섬유종을 앓고 있던 David Smith라는 팬이 에미넴의 아일랜드 공연에 갈 예정이었는데 하필 공연 전 날 세상을 떠나버렸다. 이에 충격을 받은 에미넴은 Sing For The Moment를 부르기 전에 Smith를 추모했다. 들어보면 목소리에서 울먹거리는 걸 알 수 있다. #
- 전성기 시절에는 라이브에서 그의 절친인 프루프가 더블링[124] 을 해줬지만 프루프가 2006년 불의의 총격 사고로 세상을 뜬 후 2009년 복귀 시기부터는 라이브에서 D12의 멤버인 미스터 포터가 현재까지 더블링을 해주고 있다.
- 로직이 에미넴의 광팬인걸로 유명하다. 래퍼로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에미넴의 Infinite와 The Marshall Mathers LP를 들으면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직접 밝혔으며[125] , 한 인터뷰에선 "JAY-Z와 에미넴중 같이 콜라보를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누구와 할건가?"라는 질문에 한시에 망설임도 없이 "에미넴!!"이라고 말한 적도 있을 정도. 이러한 로직의 팬심은 에미넴한테도 알려지며 Kamikaze에서 에미넴이 직접 로직을 샤라웃해줬다. 2019년 2월 에미넴의 하와이 공연에서 로직이 스페셜 게스트로 초빙되었고 5월 3일에는 로직의 신곡 Homicide에 피쳐링을 해줬다. 심지어 SNS에서 그 누구도 팔로우하지 않는 에미넴이 인스타에서 로직을 유일하게 팔로우했다.[126] 이 쯤 되면 성공한 덕후인 것 같다.
- AllMathers라는 에미넴 팬 유튜브 채널이 있는데, 주로 에미넴의 극희귀곡들을 올리고 있다. 몇몇 곡들은 유튜브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유명곡의 데모 버전, 미발표곡, 언더그라운드 시절 프리스타일 및 피쳐링, 심지어는 에미넴이 소속되어 있는 힙합 그룹 D12가 언더그라운드 시절때(1996년~1998년) 타 래퍼 곡을 피쳐링 해준 것까지 말 그대로 진짜 에미넴이 아니고서는 못 구하는 곡들까지 올리고 있어서 팬들 사이에서는 "진짜 에미넴 아니냐?"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에미넴의 하드코어 팬들에겐 이미 성지가 된 채널로 유명하다.
- 철없던 언더그라운드 시절때 기억으로 인해 평소 N 워드를 절대 말하지 않지만 에미넴이 타 래퍼를 더블링 해줄 때 자체검열 없이 직접 말하는 경우가 의외로 자주 목격된다. 예시 1 예시 2
- 다큐멘터리 영화인 Something For Nothing: The Art of Rap에서 90년대 레전드 그룹인 Naughty By Nature의 멤버인 Treach가 자신의 랩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직접 밝혔다. 실제로 초창기 에미넴의 랩 스타일을 보면 Treach와 비슷한 부분이 많은 편이다. Naughty By Nature의 곡 중 하나인 Yoke The Joker를 듣고 "This is what I want to do in my life"라며 깨달았다고 한다.
- Stan의 3절을 녹음하다가 엔지니어의 실수로 인해 해당 벌스를 통으로 날리기도 했다. 에미넴은 날리기 전에 녹음했던 벌스가 훨씬 좋았다고 하니 팬들은 아쉬울 따름이다.
- 눈이 좋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근시가 있어서 안경을 쓴다. 실제로 2004년 Encore 활동 무렵 안경을 밥먹듯이 차고 다녔다. 2004년 당시 안경을 낀 모습
- 에미넴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오보는 총 4번, 약물 과다복용으로 죽었다는 오보는 총 1번 있었다. 이 때문에 지금도 가끔씩 유튜브 등지에 '에미넴 사망 100%' 등의 제목으로 거짓 찌라시 동영상이 올라온다.
- 에미넴의 자전격 되는 영화 8 마일의 주제가인 "Lose Yourself"는 '운동선수를 승리로 이끌 것 같은 노래' 부문과 '교통사고를 유발할 것 같은 노래' 부문 투표에서 각각 1위를 했다.
- 8 마일을 찍기 위해 76kg이던 자신의 몸무게를 65kg로 감량했다.
- SNS를 일체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모든 계정은 대리인이 관리하고 있다. SNS를 하지 않는 이유로는 악플을 보고 상처받기 싫다고 했으며 만약 그것(악플)들을 보면 바로 정신병원에 수감됐을거라고 한다.[127] 하지만 아주 가끔씩 팬들을 위해 직접 글을 쓰기도 한다.
- 겉보기에는 많이 왜소해보이지만 의외로 근육량이 상당하다. Revival 앨범 속지에 수록된 사진들을 보면 팔뚝이 굉장히 굵고, 2010년대 중반 이후에 촬영된 닥터 드레와 함께 있는 사진들을 보면 어깨 넓이나 팔뚝 굵기도 운동광이었던 드레에 비해 그다지 밀리지 않는다. 특히 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뒤에 이 점 역시 전형적인 상남자로서의 모습으로 더 부각되고 있다.
- 위에도 언급되었다시피 공백기였던 2000년대 중반즈음에 살이 많이 쪄서 다시 빼고 복귀한 뒤인 모습이 데뷔초때하곤 느낌이 묘하게 사뭇 달라졌는데 데뷔초부터 2000년대 초반까진 샤프하고 학생같은 풋풋한 면이 돋보였다면 공백기를 거치고나서 다시 복귀한 뒤의 모습은 좀더 어른스러워진 모습이 많이 느껴진다. 특히 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뒤부터는 이 점이 더 부각되고 있다.
- 2009년 이후의 패션 중 캉골 군모는 항상 변함없이 쓰고 있다. 수염을 기른 이후로는 모자를 벗은 사진을 거의 보기 힘들 정도로 캉골 모자를 애용한다.
- 공연 투어 때 자신이 존경하는 래퍼들의 앨범이 그려진 티셔츠를 주로 입는다고 한다. Masta Ace나 LL Cool J와 같은 힙합씬과 자신의 삶에 큰 기여를 한 래퍼들의 음반을 그의 팬들이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2017년에는 예외적으로 FACK TRUMP라는 티셔츠를 입기도 했다.
- 데뷔 때부터 현재까지 가장 라이브를 많이 한 곡은 "The Way I Am"이다.[128]
- 에미넴이 언더그라운드 시절 소속되어 있던 Soul Intent의 1988년 당시 첫 그룹명은 'New Jacks'였고, 이후 1992년 'Bassmint Productions', 1995년 'Soul Intent'로 변경하였다.
- 2019년 4월 20일, 자신은 11년차 금주 중이라고 밝혔다.
- 미국 현지에서 2019년 6월 26일자로 에미넴의 친부 사망소식을 기사를 통해 전해왔다. 사인은 심장질환으로 알려졌으며, 일부 에미넴의 팬들은 그의 정신건강을 걱정하거나, 그의 아버지의 사망 소식에 안타까움을 전했다. 하지만, 반대로 에미넴과 그의 아버지는 생전에 사이가 그다지 좋지 못 했던 사이였기에 "과연 에미넴이 본인의 친부 사망에 대한 생각이 있을까?"라는 추측을 던지기도 하는 네티즌들과 팬들의 의견도 다수 존재한으나 에미넴이 2020년 1월 17일에 깜짝 발매한 MTBMB의 트랙 'Leaving Heaven'에서 아버지의 부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출했는데, 본인은 신경쓰지 않는다고 하며, 오히려 "당신은 죽기 전부터 나한테 죽은 거나 다름없었어.", "꺼져, 당신이 만약 있었다면 인생에서 이 따위 일들 절반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그래서 난 당신을 비난하지. 아니면 고마워해야 하나? 만약 그랬다면 지금의 내가 아니었을 테니. 난 이제 당신을 놔줄 거야. 고이 잠들어라, 좆같은 놈아. 지옥에서 보자." 등 아버지에 대한 울분을 표출했다.
- 2020 아카데미 시상식에 깜짝 등장해 본인의 대표곡인 Lose Yourself를 공연했다. 2002년 수상 당시에 없었던 것을 약 17년만에 푼 셈.[129] 여담으로 KXNG Crooked과의 인터뷰에서 "아카데미 영상 돌려봤냐고? 그때 이어폰이 자꾸 귀에서 떨어지려고 해서 그거 잡느라 랩 제대로 못 했다.. 화딱지 나서 안 봐."라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야기했다.
- 2002년 제4회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130] 에서 Without Me로 외국 음악 부문을 수상한 적이 있다.
- 프로레슬링의 팬인걸로 알려져있다. 가사에 앙드레 더 자이언트, 바비 히난을 언급하기도 했으며 레이 미스테리오의 가면을 직접 쓴 적도 있다. WWE 레슬매니아 30에는 MMLP2 수록곡인 'Legacy'가 공식 테마곡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Music To Be Murdered By 발매 이후 마이크 타이슨과 인터뷰를 갖기도 했다.
- 그가 유년 시절을 보낸 디트로이트의 집[131] 에 2013년 11월 7일에 원인불명의 화재가 발생했고, 결국 13일 뒤 안전 문제로 철거되었다. 여담으로 과거에 해당 집의 벽돌을 MMLP2의 사은품으로 판 적이 있다. #
- 2020년 4월 21일, 코로나 바이러스로 고통받고 있는 시민들을 위해 자신의 고향 디트로이트의 종합병원에 스파게티를 기부했다. 상표의 이름은 Mom's Spaghetti.
- The Marshall Mathers LP 20주년을 맞아 리스닝 파티를 진행했다. 에미넴의 채팅 내용은 이곳에서 볼 수 있다.
- 2020년 4월 5일에 에미넴의 자택에 매튜 휴즈라는 남자가 침입했다가 체포되었는데, 처음엔 "에미넴을 만나고 싶었다"라고 범행 동기를 밝혔으나 이후 살인 동기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한편 이 일이 알려지자 에미넴 팬들 사이에선 "Stan"의 이야기가 실화였다는 반응이 쏟아졌는데, Stan의 가사 주인공 스탠의 동생이자 후속곡인 "Bad Guy"의 주인공 이름이 매튜이기도 한데다가 심지어 나이도 같다.
- 정치적으로는 비교적 민주당에 우호적이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모두까기에 가깝다. 2000년 정도에는 클린턴 부부를 주도적으로 디스한 래퍼들 중 하나로 힐러리 클린턴에게 지탄받았던 적도 있고, 공화당 대통령인 조지 W. 부시나 도널드 트럼프는 더해서 말그대로 에미넴이 가장 싫어하는 인물들이다.[132] 그러나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조 바이든 선거 광고에 Lose Yourself 라이선스를 주었다. 지금까지 정치인에게 라이선스를 절대 주지 않았던 에미넴으로써는 이례적이며, 그의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혐오가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
- 전혀 안 그럴 것 같지만 이사람도 교회를 다닌다(...) 몇몇 팬들은 부정하는 듯 하다.
- 메타크리틱에서 평론가 점수와 유저 점수가 매우 차이나는 아티스트들 중 하나이다. 평론가 점수는 평균 60점대로 대체적으로 낮은 편이며, 유저 점수는 그에 비해 80점대로 높은 편이다. Music To Be Murdered By Side B만 따져도 평론가 점수가 65점으로 상당히 애매한 점수지만 유저 평점은 9.3[133] 로 유저스코어를 10배로 늘리면 29점이나 차이난다!
- 가장 잘하는 게임이 팩맨이라고 미스터 포터가 말했다. 또한 플레이스테이션 5같은 최신 게임 기기를 안한다고 한다. ~ https://youtu.be/6dwx3o_vDFM
10.1.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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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1990년 고등학교 시절인 만 18세때이고, 아래는 2013년 만 41세 당시 촬영된 'Berzerk' 뮤직비디오의 일부분이다.
에미넴은 엄청난 동안으로도 유명한데, 구글에 'Eminem 1999 vs'만 쳐도 1999년의 에미넴의 모습과 비교하는 사진들이 많다. 하지만 2017년 6월부터 수염을 기르기 시작해서 동양에선 동안의 이미지가 많이 없어진 상황. 하지만 서양에선 원래 수염을 기르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고 여전히 젊어보인다는 반응이다. 2021년에는 이제 한국 나이로 '''50세'''가 된다!
2013년 발매된 ''The Marshall Mathers LP2''의 타이틀곡인 "The Monster"의 뮤직비디오는 이러한 에미넴의 동안 속성을 이용해서 찍은 걸로도 유명하다.
Lose Yourself의 뮤비 일부분과 The Monster의 뮤비 일부분.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10여년이라는 세월의 흔적이 아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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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부터 급노화가 시작되는 듯 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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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135]
이외에도 "The Monster"에서 에미넴은 1999년에 발표된 ''The Slim Shady LP''의 "My Name Is", 2000년에 발표된 ''The Marshall Mathers LP''의 "The Way I Am"과 "Stan" (2001 Grammy Live Ver.)을 똑같이 재현하는데 성공을 한다. 다만 "My Name Is" 부분을 보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기도 한다.
유튜브 댓글창에는 가끔씩 '신은 절대 늙지 않는다.' '로봇 아니냐'라는 댓글이 올라온다. 그만큼 에미넴이 동안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동안 속성은 에미넴이 첫 메이저 데뷔를 했던 1998년[136] 때부터 있었다. 에미넴이 첫 메이저 데뷔를 했을때 나이가 25살[137] 이었는데 주름 하나 없는 앳된 외모때문에 20대 초반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약 20년 전에도 액면가에 비해 어려보이는 외모를 가졌었는데 이러한 외모를 지금까지 가지고 있으니...
10.2. 특유의 목소리
에미넴의 데뷔 초의 목소리는 남자, 그것도 테너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축에 속하는 목소리이다. 하지만 이는 에미넴 본연의 목소리가 아닌 인위로 소리가 빠져나갈 구멍을 좁혀서 높게 만드는 것이고 이로 인해 특유의 앵앵거림과 허스키하고 유니크한 목소리가 나는 것이다. 이는 성대에 엄청나게 부담을 주는 발성법인데, 앵앵거림으로 성대의 마찰이 점점 거칠게 되어 금방 목이 쉬어 버리고 심하면 성대에 변형이 올 수 있다.[138] 에미넴도 이 때문에 2000년 전후로 목소리가 깊어진 것. 실제로 1999년도 당시의 인터뷰를 여럿 들어보면 지금보다는 하이톤이긴 하지만 평소 말할때는 본연의 목소리로 소리를 내 앵앵거리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139]
이런 목소리를 내기로 유명한 사람이 바로 건스 앤 로지스의 보컬 '''액슬 로즈'''인데, 액슬은 이 창법을 30년간 지속적으로 썼다가 현재 목소리가 가버렸다.
2002년 초중반 8 마일의 촬영과 동시에 정규 4집인 The Eminem Show의 제작으로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지만 목소리의 질만 좋아질 뿐 성대를 갈아 마시는 창법은 여전했다. 그에 추가로 8 마일의 촬영으로[140]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었고 이로 인해 약물 중독에 빠지면서 목소리가 완전 바뀌었다.
하지만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예전 목소리 비스무리하게 낼 수 있다.
10.3. 백인버프?
'''어떻게 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래퍼로 평가받지만, "백인이라서 떴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에미넴 본인이, MTV에서 '내 피부색 때문에 더 뜬 것도 없지 않아 있다'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 'White America'라는 곡에도 "내가 흑인이었다면 지금의 절반만큼 음반을 팔았을거야."("Let's do the math. If I was black, I could sold half.")라고 말한다. 심지어 에미넴이 백인이어서 실력이 과대평가되었다는 주장도 있기도하다.
하지만 이 주장에 반론도 있다. 에미넴이 랩을 하기 시작했을때는 현재와 달리 백인이 힙합을 한다는것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나빴다. 에미넴 이전 세대의 힙합은 흑인들만의 고유문화와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누린것은 에미넴이 백인이라는 이유로 뜬것이 아니라, '''백인인데도 불구하고 실력이 출중하기 때문에 그것을 원동력 삼아 뜬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에미넴은 1997년 LA 랩 올림픽 대회에서 2위를 차지했다.[141] 그리고 예를 들어 에미넴의 선배이자 백인 래퍼 그룹인 비스티 보이즈만 봐도, 그 당시 그들의 랩에 대한 인식은 '백인은 랩으로 흑인한테 안된다.' 정도가 대부분이었다.[142] 하지만 에미넴은 백인인데도 불구하고 현재 어지간한 흑인 래퍼들보다 인지도, 평판, 판매량 등이 우위에 있다. 이것은 '''실력'''이 뒷받침이 되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에미넴이 힙합에 몸을 담기 시작했을 때는 피부색이 그에게 큰 페널티였으나, 실력으로 그 한계를 극복하고 데뷔를 한 후에는 피부색이 오히려 그에게 힙합씬의 독보적인 캐릭터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해줬다고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오히려 실력이 좋지 않았으면 백인이라는 요소가 더욱 단점이 됐지, 장점이 되지는 못했을 거라는 얘기다. 실제로 본인도 백인래퍼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관계없이 본인이 없으면 허전하다고 했다.[143] 이렇게 따지고 보면 '''오히려 힙합 씬에서의 '백인 버프'라는 건 에미넴의 등장으로 인해 생겨났다는 것.''' 달리 말해 에미넴이 '''힙합계에서 인종의 장벽을 깨부순 개척자'''라는 평가다. 현 세대에서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는 백인 래퍼들도 이러한 에미넴의 등장이 없었다면 크게 주목받기 힘들었을 거라는 주장들이 많다.[144]
백인에, 금발에[145] , 샤프한 외모, 그 당시 힙합계의 부족한 점을 시원하게 긁어준 '슈퍼 루키'였다. 게다가 닥터 드레의 프로듀싱이라는 시너지, 그리고 후에 밝혀지기 시작하는 불우한 환경[146] , 가사 내용에 대중들의 관심까지 더해지면서 슈퍼스타로 급부상했다.
10.4. 에미넴이 샤라웃한 래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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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No Life Shaq이라는 힙합 리액션 유튜버가 남긴 G.O.A.T.는 누구일까?" 라는 트윗에 에미넴이 답글을 남긴 적이 있다. 여기서 에미넴이 언급한 래퍼들을 쭉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 2Pac
- The Notorious B.I.G.
- JAY-Z
- Nas
- André 3000
- Rakim
- Big Daddy Kane
- LL Cool J
- Redman[147]
- Treach[148]
- Kool G. Rap
- Lil Wayne
- Royce Da 5'9"
- KXNG Crooked
- Joyner Lucas
- Kendrick Lamar
- J. Cole
Kamikaze의 수록곡인 Fall에서는 총 7명의 래퍼를 언급하며 샤라웃하기도 했다.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I belong here, clown, don't tell me 'bout the culture
야, 나한테 문화에 대한 얘기는 집어 치워,
난 여기 속한다고, 광대 새끼[149]
I inspire the Hopsins, the Logics, the Coles, the
난 홉신, 로직, 제이콜,
Seans, the K-Dots, the 5'9"s, and oh
빅 션, 켄드릭, 로이스에게 영향을 줬고, 그리고 오,
Brought the world 50 Cent, you did squat, piss and moan
궁지에 몰린 50 센트을 마저 구원해줬지만, 넌 오줌이나 질질 쌌겠지,
But I'm not gonna fall... bitch!
하지만 난 추락하지 않을 거야... 등신 새끼야!'''-
- Fall 中
이후 MTBMB의 수록곡인 Yah Yah에서도 총 30명의 래퍼 및 그룹을 언급하며 샤라웃한다. 그 중 위에 언급된 래퍼들을 제외하면 다음과 같다.
- Big L
- Del The Funky Homosapien
- K-Solo
- EPMD
- DJ Polo[151]
- Tony D
- Ol' Dirty Bastard
- Kool Meo Dee
- Run-D.M.C.
- Ed O.G.
- The D.O.C.
- Ice-T
- DJ Evil Dee
- King T
- UFTO
- Schoolly D
- Public Enemy
- Boogie Down Production[152]
- YZ
- Chi-Ali
- Eric B.[153]
- Paris
- Three Times Dope
- Poor Righteous Teachers
- N.W.A
11. 디스
12. 2012년 내한 공연
2012년 8월 19일에 드디어 한국에서 공연을 했다.
이 공연에서 에미넴은 놀랍게도 '''팔로 하트를 그려 보이는 행동'''까지 내보였다.[157]
<공연 일람표>
[158]
[image]
이 하트에 대한 국내 팬들의 반응은 "주한 미군 콘서트인가요? 어떤 래퍼 좀 닮은거 같은데, 그 사람은 콘서트장에서 저렇게 하트를 날릴 사람이 아니잖아요.", "에미넴이 하트를 날린 것은 이승기가 콘서트 중에 팬들에게 중지를 날린 것보다 더 충격적인 일이다!", '''"너희 두개골을 둘로 쪼갠다는 뜻이다."'''[159] , "마치 조폭이 토끼 머리띠를 하고 놀이공원 회전목마를 타는 것을 본 기분이다.", "새로 나온 욕이다.", "겨땀 말리는 중이었다." 등 굉장히 충격적이라는 모양. 그리고 한 해외팬은 '''종말의 징조'''라며 오늘부로 지하 방공호를 파겠다는 말까지 했다. 아무튼 국내 팬들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기분 좋은 충공깽 퍼포먼스. 어쨌거나 이 하트는 공항에 도착했을때 대기하고있던 여러 한국 팬 중 한명이 하트 뿅뿅을 에미넴에게 날렸는데, 그래서 그걸 콘서트장에서 직접 따라한 것이라는 설로 많이 알려져 있다. 영상을 보면 누군가를 쳐다보고 그다음 하트를 한 것으로 보아 직접 따라해준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쳐도 정말 충격적이다.
한국 팬들뿐만 아니라 미국 본토 팬들도 많이 놀랐는데 레딧에선 에미넴빠 중 한 명이 "에미넴 콘서트를 4~5번 이상 간 적이 있지만 하트를 하는 '''행위'''는 본 적이 없다."라고 멘트하였다.[160]
에미넴 또한 공연이 끝난 후에 한국 팬들의 떼창과 환호 덕분에 매우 만족하며 좋아했다고 한다.
다만,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사전 제출한 공연 프로그램대로 하지 않고, 공연곡 26곡 중 20곡이 청소년유해곡이라서 공연 기획사가 영등위에 고발당했다(...). 에미넴이 고발당하거나 에미넴 소속사가 고발 당한 게 아니다. 이를 잘못 알고 영등위 홈페이지나 페이스북에 들어와서 깽판을 부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에미넴 본인은 엮어들어가지 않은 일이니 신경 쓸 것 없다.
영등위 보도자료
그리고 엄연히 그 기획사의 잘못이긴 하다. '공연추천제'라는 제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법이 마음에 안든다면 헌법재판소에 제소를 하거나 국회에 의견을 제시할 일이지 꼼수를 부려서 피해나가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영등위가 횡포를 부린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영등위가 무소불위의 입법기관도 아니고 그저 국회에서 통과하고 만들어진 법을 시행하는 기관에 불과하다. 고발조치도 영등위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일이다.
나아가서 애초에 에미넴이라는 아티스트의 성격과 특징을 고려해 보면 에미넴 공연을 전체 관람가나 12세 이상 공연으로 하겠다는 것부터가 무리수였다(...). 아마 연소자유해공연물의 경우 공중이 통행하는 장소에서 광고물을 부착, 배포하거나 권유를 할 수 없다는 법(공연법 5조)로 인한듯?
다만 우리나라의 미성년자의 문화산업 향유와 관련된 법이 미국과 차이가 있다는 점도 고려를 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19세미만청취불가가 씌여진 빨간 딱지가 붙은 음반의 경우 말 그대로 해당 나이대의 아이들은 어떠한 수단을 통하더라도 구입을 할 수 없지만, 미국에서 성 표현, 욕설, 폭력, 인종차별적 언어가 담길 때 붙는 Parental Advisory 마크가 붙은 음반의 경우는 어른들이 가급적이면 구입을 하지 못하게 유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더라도 '''아이들이 구입을 해도 법적으로 처벌을 하지 않는다.'''[161] 또한 영상물 등급 제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한국 영화등급의 19세 관람가, 또는 청소년 관람불가는 말 그대로 보호자와 대동하더라도 미성년자는 해당 등급의 영화를 볼 수 없는 반면, 저것과 비슷한 미국의 관람등급인 R등급에서는 미성년자가 '''보호자와 대동하고 관람을 지도받으며 영화를 볼 수 있다.'''[162] R보다 상위 등급인 NC-17은 우리나라의 청소년 관람불가와 마찬가지로 17세 이하는 무조건 볼 수 없다.
한편, 공연에서 Stan을 불렀을 때 팬서비스 차원에서, 본래 가사에선 스탠과 슬림이 만난 곳은 덴버인데, 한국이라고 지명을 바꿔서 불렀다. 이는 다른 도시에서 공연할 때마다 그 도시에 맞게 지명을 바꾸어 부른다고 한다.[163] 예시로 방일했을 때는 덴버를 오사카라고 바꿔서 불렀다.
13. 관련 문서
13.1. 개별 문서가 있는 음반
- 1996
- 1997
- 1999
- The Slim Shady LP
- "Dead Wrong" - The Notorious B.I.G.의 앨범 Born Again에 피처링.
- "Forgot About Dre" - Dr. Dre의 앨범 2001에 피처링.
- 2000
- 2002
- 2004
- 2005
- 2009
- Relapse
- "Beautiful"
- "Insane"
- "3 a.m."
- "Crack A Bottle"
- "We Made You"
- "Stay Wide Awake"
- "My Mom"
- "Old Time's Sake"
- Relapse
- 2010
- 2013
- The Marshall Mathers LP2
- "Bad Guy"
- "Survival"
- "Legacy"
- "Berzerk"
- "Rap God"
- "The Monster"
- "Headlights"
- The Marshall Mathers LP2
- 2014
- 2016
- 2017
- 2018
- 2019
- "Rainy Days" - 셰이디 레코드의 아티스트 WESTSIDE BOOGIE의 정규 앨범 Everythings For Sale에 피처링.
- "Lord Above" - Fat Joe & Dre의 앨범 Family Ties 에 메리 제이 블라이즈와 함께 피처링.
- 2020
- Music To Be Murdered By
- "The Adventures of Moon Man & Slim Shady" - 키드 커디와의 컬래버레이션 싱글.
- Music To Be Murdered By - Side B (Delixe Edition)
- "Gnat"
13.2. 관련 아티스트
- 50 Cent: 자 룰의 횡포로 래퍼로써의 활동이 끝난것이나 다름이 없었던 50 센트는 2003년 에미넴을 만난 후 Get Rich or Die Tryin'을 발표, 재기에 성공해 최고의 래퍼 중 한 명으로 성장하게 된다.
- Akon: 2006년에 에미넴이 피쳐링한 Akon의 싱글인 Smack That이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 Busta Rhymes: 버스타가 애프터매스 소속이었던 시절에 I'll Hurt You라는 곡을 같이 작업을 한 적이 있고,[164] 에미넴과 자 룰이 디스전을 벌일때 에미넴 편에 서 Hail Mary에 피처링으로 참여해 자 룰을 디스한 적도 있다. 이후 오랫동안 교류가 없다가 2013년 Calm Down에 에미넴이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 Canibus: 에미넴이 존경하던 래퍼 중 하나였으나, 그가 먼저 디스곡을 내자 서로 디스전을 치루게 된다. 서로 상당한 접전을 이루었지만, 이후 Canibus는 패배를 인정하며 에미넴을 칭찬하였다. Kamikaze 발매 이후 극찬하기도.
- D12: (전) 소속 그룹
- Bizarre
- Proof: 절친. 언더그라운드 시절 에미넴과 함께 Soul Intent, D12에서 힙합 그룹 활동을 했다. 허나 2006년 사망했고 이는 에미넴의 커리어가 잠시 정지되는 데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 Ja Rule: 에미넴과의 디스전을 치룬 인물. 허나 자 룰이 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 Jessie Reyez: 집에서 소파에 앉아 TV를 보던 중 프로그램에서 제시 례에즈의 목소리가 나오는데 "어?" 싶었고, 이후로 제시에 관련해 더 찾아보니 정말 무조건 뜰 아티스트다 싶었다고 한다. 둘의 협업에는 Kamikaze의 Nice Guy - Good Guy, 제시의 2020년 음반 BEFORE LOVE CAME TO KILL US의 트랙 COFFIN에 피쳐링한 게 있다.
- Joyner Lucas: Lucky You라는 트랙을 같이 작업하기도 했으며, 에미넴이 트위터에서 언급한 Greatest MCs에도 이름을 올렸다.
- Juice WRLD: 주스 월드가 에미넴의 광팬이기도 하고 에미넴 곡 비트에 1시간동안 프리스타일을 하는 영상도 있을 정도. 그리고 에미넴도 이를 알고 Godzilla의 곡 작업을 주스 월드와 같이 하고 그가 훅과 벌스를 맡기로 했으나 작업을 미처 다 끝내기도 전에 급사해서 훅만 주스 월드가 맡게 되었다.
- Kendrick Lamar: 에미넴이 현세의 Lyricist(리리시스트)라며 꼽는 인물 중 한 명이지만 둘의 협업은 The Marshall Mathers LP2의 Love Game 한 곡밖에 없다. 한때 에미넴은 켄드릭이 대필작가를 쓴다고 의심해서 서로 만난 후 그한테 30분동안 가사를 쓰게 해 실력을 확인한 일화가 있다. 곡 작업은 아니지만 Berzerk 뮤직비디오에 켄드릭이 깜짝 출연을 한 적이 있다.
- Lil Wayne: 드레이크의 "Forever", 릴 웨인의 "Drop The World", Recovery의 "No Love"에서 함께한 바 있다. 세상사에 관심 없는 릴 웨인이 항상 리스펙한다고 밝힌 아티스트 중 하나가 에미넴이며, 최근에는 에미넴이 릴 웨인의 팟캐스트에 출연하기도 했다.
- Logic: 원래부터 에미넴의 광팬으로 유명했으며, 후에 에미넴이 로직의 앨범 Confessions of a Dangerous Mind의 2번 트랙 "Homicide"에 피처링하면서 성공한 팬이 된 케이스이다. Kamikaze의 10번 트랙 "Fall"에서 에미넴이 영감을 주었다며 나열되는 인물 중 하나이다. 또 아래 MGK와의 디스 아닌 디스전이 종결된 후 조이너 루카스 1집 ADHD의 트랙 "Isis"에 피처링으로 참여하면서 "You Kelly, you pu***, you pu***"라며 켈리를 까기도 있다. 아쉽게도 No Pressure라는 걸출한 정규를 마지막으로 은퇴하면서 더 이상 둘의 컬래버레이션을 볼 수 없게 되었다.
- Machine Gun Kelly: MGK가 같은 백인 래퍼로서 존경한다며, 자신은 완전 Stan이라고 밝힌 바가 있었지만[166] 이후 사이가 틀어져 에미넴과의 디스전을 치루다 "Killshot"에서 에미넴이 자신을 "멈블 래퍼"라고 불렀다는 이유로 더 이상 에미넴과 관련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사실상 디스전은 종결되었다. 물론 현재는 남보다도 못한 사이이다.
- Nate Dogg: "'Till I Collapse", "Bitch Please II", "Never Enough", "Shake That" 등등의 노래에 훅으로 피쳐링을 해준 적이 있고, 그 외에 공연도 자주 같이 다녔다.
- P!nk: Recovery의 3번 트랙 "Won't Back Down"부터 시작해서 서로 곡 작업을 꽤 했다. 핑크의 곡 "Here Comes The Weeknd", "Revenge"에 에미넴이 참여하였으며, 에미넴의 앨범 Revival의 16번 트랙 "Need Me"에는 핑크가 참여했다.
- Puff Daddy (DIddy): 직접적으로 서로 디스를 한 적은 없지만,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로 신경전을 해왔다. 그러던 중 2020년 초에 에미넴이 피처링한 컨웨이 더 머신의 "Bang"[167] 의 미공개 버전이 해킹으로 유출되었는데, 여기에 머신 건 켈리, 그리고 특히 퍼프 대디의 엔터테인먼트 Revolt에 대한 디스가 담겨 있어 화제가 되었다.[168] 리볼트와 퍼프 대디는 모든 공식 SNS를 통해 “FUCK YOU TOO EMINEM”이라는 사진을 게재했고, 에미넴은 그 벌스를 들려줄 생각은 없었고 단지 그 당시에 너무 화가 뻗쳐있어 쓴 가사라고 해명했으며,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리볼트와 좋은 일들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 물론 이외에도 'Killshot'에서 퍼프 대디를 투팍의 죽음과 엮어 언급하는 등 껄끄럽지는 못한 사이이다.
- Rihanna: 대히트곡 "Love The Way You Lie"와 "The Monster"에 피처링했다. 최근에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에미넴의 "E" 로고와 리하나의 "R" 로고가 합쳐진 사진을 공개했는데, 둘의 합작 음반이 또 나올 지 기대해봄직하다.
- Royce Da 5'9": 에미넴의 현재 절친들 중 한 명. 언더그라운드 시절 에미넴과 함께 힙합 그룹 "Bad Meets Evil"을 결성했다. 과거 사이가 한번 틀어졌다가 프루프의 죽음 이후 다시 만나 화해를 한 적이 있다. 이후 합작 앨범 Hell: The Sequel을 발매했다.
- Skylar Grey: 2010년 "I Need A Doctor"의 피처링부터 시작해서 에미넴의 곡들에 수없이 많이 참여해 왔다.
- Slaughterhouse: 셰이디 레코즈 소속 그룹이었으나 해체했다. 멤버 4명 중 조 버든과 사이가 크게 틀어져 서로 잊을 만 하면 디스를 하는 사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169] 하지만 나머지 멤버들은 아직 사이가 매우 좋으며, 에미넴의 신보 Music To Be Murdered By에서 피처링하기도 했다. 조엘 오티즈는 슬러터하우스의 재개를 원하는 듯한 발언도 했었다.
- Snoop Dogg: 서로 간의 교류는 많은 편이지만 같이 작업한 곡이 한 곡("Bitch Please II")뿐이다. 그 이유는 상술했듯이 스눕 자신이 밝히기를 곡을 뺏기고 싶지 않아서라고. 이후 스눕 독이 에미넴이 도널드 트럼프를 디스하자 샤라웃해주기도 했다.[170] 하지만 후에 스눕 독은 라디오 쇼 The Breakfast Club에서 “에미넴은 내 탑 10에 없어, 나한테 평생 에미넴 음악을 안 듣고 살라고 하면, 난 그럴 수 있다고.”[171] 라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이 때문인지 에미넴은 11집 Music To Be Murdered By 디럭스 수록곡 "Zeus"의 가사에서 "넌 내게 마냥 신(God)이었는데, 이젠 그냥 개(Dog)일 뿐이야"라고 디스했다. 이후 다른 곳도 아닌 "Zeus"의 가사를 올린 인스타그램의 에미넴 '팬 페이지'에 "그런 별 것도 아닌 거에 내가 뭐라 할 거라는 생각은 접어"[172] 라며 조롱했고 후에 스눕이 에미넴 디스곡을 스포일러해 디스전을 치룰 분위기였지만[173] 미스터 포터가 "에미넴과 스눕 독 사이에 디스전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고, 이후 스눕이 인스타그램에 "우리 이제 뭐 없어!"라고 댓글을 달며 비프는 완전히 종결되었다.
- Soul Intent: (전) 소속 그룹.
- Tech N9ne: 1999년 Sway & King Tech의 단체곡인 "The Anthem"에 같이 참여한 적이 있다. 이후 교류가 없다가 2015년 Speedom에 에미넴이 피처링으로 참여하였다. 테크나인과 MGK가 함께한 곡에서 MGK가 간접적으로 에미넴을 디스한 적이 있는데, 테크 나인은 이에 "에미넴 디스인 줄 몰랐다, 알았으면 같이 곡 작업을 안 했을 것이다."라며 에미넴 편을 들어줬다.
- Xzibit: 에미넴이 주연인 영화 "8 Mile"과 "The Slim Shady Show"에도 출연할 정도로 친하다.
- Yelawolf: 전 셰이디 레코즈 소속 래퍼. 현재는 사이가 그리 좋지 못한 것으로 보이며 특히 로이스 다 파이브 나인과 옐라울프는 서로 SNS에 저격글을 올리는 등 갈등의 골이 꽤 깊은 것으로 보인다.
14. 대표곡 뮤직비디오
[image][29] 5년간(2007년)의 공백기 동안 에미넴의 체중은 100kg에 가까워졌고, 본인이 말하길 햄스터처럼(...) 뛰어 살을 뺐다고 한다. 에미넴 본인의 말로는 당시 하루에 무려 27km 씩이나 뛰는걸 거의 매일같이 반복해 엉덩이 근육에 손상이 오기도 할 정도였으며, 살이 빠진 직후 밖에서 자신을 못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해당 인터뷰 번역 기사[30] 에미넴의 어머니는 1955년, 아버지는 1951년생이다. 각각 17살, 22살 때 에미넴을 본 셈이다.[31] 한국인 입장에서는 잘 와닿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디트로이트는 미국에서 대도시에 속하긴 하지만 점차 몰락테크를 밟게 된 도시이다. 에미넴이 스타가 된 후 모라토리엄 등 본격적인 몰락을 보여줬고.. 그리고 러스트 벨트 지역중에서 최악인 지역이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당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러스트벨트의 시골지역 백인들의 지지때문이었지 도시지역 지지때문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에미넴은 2016년 대선 시즌부터 랩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를 여러 번 깠다.[32] 백인 저소득층은 사회적 혜택에서도 후순위로 몰리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소득 통계자료를 보면 저소득층 백인 밑에 흑인들이 자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33]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시의 슬럼가. 다만 태어난 건 미주리 주의 세인트 조지프에서 태어났다. 자란 곳이 디트로이트. 디트로이트의 부촌과 빈촌을 가르는, "8 Mile"이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미시간 주 고속도로는 그의 음악에서 자주 언급된다.[34] 이는 ''The Slim Shady LP''에 수록된 Brain Damage란 곡에서 잘 묘사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귀에서 뇌수가 흘러나왔다"라는 내용을 제외한 전부가 사실(...)이라고 한다. 왜 (...)이 붙었는지는 가사 참고.[35] 후에 Brain Damage의 가사를 문제 삼아 고소했다가 패소했다. 소울 가수 디안젤로와는 아무런 관련 없는 사람이다.[36] 실제로 그림 실력도 수준급이다. 스파이더맨, 퍼니셔 등의 캐릭터의 팬이라고 말했고, 퍼니셔 드라마가 종영되자 이를 비판하기도 했다. 더욱이 퍼니셔 만화에 직접 등장하기도 했다! 자신의 컴필레이션 음반 ''Eminem Presents: The Re-Up''의 표지를 직접 그리기도 하였다.[37] 훗날 에미넴은 아이스 T의 영화에 T와 같이 출연하게 된다.[38] 처음에는 비스트 보이즈의 노래만 듣고 흑인인 줄 알았다고 한다. 우연히 백인인 걸 알게 된 후에 '백인이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는데?'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39] '''M'''arshall '''M'''athers의 약자인 M&M을 1995년까지 랩네임으로 사용했다가 이후 '에미넴'으로 고쳤다. 참고로 그의 또 다른 자아인 '슬림 셰이디'는 화장실에서 고안해낸 이름.[40] 정확히는 18살. 왜냐하면 17살 때 2번의 결석으로 유급결정이 났기 때문. 이 결정은 에미넴이 학교를 그만두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41] 미국에서도 고등학교 졸업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조사에 따르면 거의 집 한 채의 차이가 난다는 걸 알 수 있다. 괜히 디트로이트 등 자퇴율이 높은 학교의 학생들에게 돈까지 줘가면서 졸업률을 높이려 하는 게 아니다. 출처: 무엇이 행동하게 하는가[42] 라틴계도 쓸 수 없다. 그래서 빅 펀이 Nigga를 썼을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Nigga는 흑인들 사이에선 짜식, 새끼, 친구 등으로 쓰이지만 흑인이 아닌 인물이 썼다간 욕을 흠씬 얻어먹는다. 흑인들끼리 니가 니가 거릴 수 있는 이유가 이 때문(물론 흑인끼리도 친하지 않으면 n워드를 쓰면 안 된다.) 재미있게도, 이후에는 함께 랩을 하는 D12나 흑인 래퍼들에게서 에미넴이 nigga라고 불린다. 흑인이 다른 인종을 Nigga라고 부르는 건 친근히 부를때나 정말 친할때 그렇게 부른다.[43]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인종차별적으로 느껴질 만한 가사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N-word는 물론이고, '흑인 여자애들은 백인 남친 돈이나 뜯어먹는 X들'이란 가사가 들어있는 곡도 있다. 그야말로 젊은날의 과오. 이후 키드록은 에미넴이 유명해졌을때 당시 곡들을 듣고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하는 대중에게 큰 의미 없이 장난삼아 쓴 가사일 뿐이라고 변호하기도 했지만, 에미넴 본인은 Encore에 수록된 Yellow Brick Road라는 곡을 통해 '내가 뭘 모르고 인종 하나를 일반화시켰다'고 사과했다. 학창 시절에 흑인 여자친구와 사귀었는데 알고 봤더니 그 여자친구가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고, 그 남자와 만난다며 에미넴을 퇴짜놓아서 빡쳐서 쓴 가사라고 한다. '내가 인종 차별을 한 건 잘못이지만 그 전 여자친구가 썅X이라는 건 변함없다'고...[44] 녹음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노래든 랩이든 한큐에 쉬는 부분 없이 녹음해내는건 절대 쉬운 게 아니다. 특히나 실력이 여물지 않았던 초기 시절에 억지로라도 자금 사정 때문에 그렇게 하려고 연습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노력을 요했을 것이다. 특히나 더블링의 경우 절대 혼자 한큐에 넣을 수 없다.[45] [image]삼촌 로니를 추모하기 위해 자신의 왼팔에 문신을 새겼다. 버섯은 마약 버섯을 의미한다고 한다. 에미넴은 마약은 물론 술담배도 입에 대지 않는다. 본인 Shady Records사 직원들과 가수들에게 또한 술, 담배, 마약은 하지 말라고 권하며 리아나에게도 하지 말라고 조언한 적이 있다.[46] 이 때 에미넴은 지역 라디오 방송에 자기 노래가 실리기를 기대했기 때문에, 라디오로 듣기 좋게끔 일부러 잔잔하고 얌전하게 녹음했다고 한다. 그리고 앨범 전체에서 fuck이라는 단어가 정확히 7번 나온다.[47] 이 얘기는 후에 'Guts Over Fear'라는 곡에서 에미넴이 직접 언급하기도 한다.[48] 다만 얼마전부터 재발매를 했기 때문에 인터넷에서도 구할 수 있다.[49] 상대편의 부정행위에 의해 우승은 아쉽게 놓쳤다. 에미넴이 랩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무대 뒤로 들어가버렸다고 한다.'''[50] 인터스코프 소속 직원. 지미 아이오빈이 직접 가서 테이프를 달라고 한건 잘못 된 정보다.[51] 에미넴은 상대편의 부정행위로 단단히 열이 오른 상태라 쌩 모르는 사람이 테이프를 달라는 부탁에 테이프를 넘겨주지 말까 잠깐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옛다 가져'라는 심정으로 넘겨주었고 그걸 닥터 드레가 듣게 된 것이다. 출처[52] 이 당시의 닥터 드레는 슈그 나이트와의 불화로 데스 로 레코드를 떠나 자기만의 레이블인 '애프터매스'를 설립하고 컴필레이션 앨범 1개와 나스, AZ 등이 모인 힙합 슈퍼그룹 '더 펌'의 정규 앨범 단 1개만 발매한 상태였다.[53] 이 사건(LA 랩 올림픽)은 에미넴의 인생 전환의 계기가 되었고, 이는 B.o.B의 "Airplane Pt. 2"의 에미넴 피쳐링 부분에서 잘 나온다. 그리고 "I Need A Doctor"에서 드레가 이 상황을 회상하는 랩을 썼다. 모두가 웃었지만 드레는 멋지다고 말했다고 한다.[54] 삼촌 로니가 자살했을 때 에미넴의 어머니는 에미넴에게 "그 아이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아이 대신 너였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후에 에미넴은 "Cleanin Out My Closet"에서 "그거 알아? 난 너한테는 죽은 놈 맞아!"(Guess what? I am dead, dead to you as can be!)라고 맞받아쳤다.[55] 단, 이건 명예훼손으로 에미넴에게 소송을 걸었을 때 한 발언이다. 사실 어머니 데비는 자기 모순적인 발언을 한 것으로도 알려졌는데 그 중 하나가 "전 아들을 사랑해요. 하지만 고소해야겠어요." 이에 대해서 에미넴은 자신을 사랑하는데 모든 것을 빼앗아야겠다는 걸 이해 못하겠다며 깠다. 이 점에서 신빙성이 의심되는 발언이다.[56] 이 가사 한 줄을 지키기 위해서 더 이상 공연에서 "Cleanin' Out My Closet"를 부르지 않는다. "Kill You"는 아직까지도 부르는데 "Kill You"는 어머니를 향한 디스곡이 아니라고 에미넴이 2001년에 직접 밝혔다. 딱 한 구절만 엄마에 대한 것이고 나머지는 여자들을 향해서 하는 정신 나간 소리쯤 된다고 하였다. 시작 인트로 부분에 엄마 내용이 나오고 또 엄마가 언급되는 그 구절이 상당히 충격적이어서 엄마에 대한 디스곡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다만 이것과는 별개로 "WIthout Me"에 나오는 "Fuck you Debbie" 구절은 계속 부른다.[57] 그 주가 총기소지에 대한 규제가 강한 곳이어서 총기소지에 관련된 죄도 물어야 했다. 그리고 2002년 John Guerra에게 10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총알 없는 총이 얼마나 위험하겠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반대로 약 1kg의 쇳덩이를 상대한테 휘두른다고 생각해보자. 권총의 탄창이 비었을 땐 총의 손잡이로 적의 두부를 강하게 내리쳐 공격하라는 말이 '''미군 전술교범에도 있다.''' 즉 살인미수이다. 후에 에미넴은 이 때 만약 총알이 있었다면 킴까지 그 자리에서 살해했을 것이라는 말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차라리 총알이 없던게 다행이었다고도 했다.[58] 에미넴이 아내 킴으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언더 시절에 쓴 것이다. 물론 그 당시 에미넴의 작사 스타일은 자신이 하는 생각이 나쁘든 좋든 막 써내리는 것 이었기 때문에 킴이 미워서 쓴 건 아니라고 말했다. 결국 킴과의 사이가 나빠지자 자신의 앨범에 실었던 것(...).[59] 킴을 도저히 못 견디겠다며 냉장고에 포스트잇(...) 하나 붙여놓고 집을 나가버렸다고 한다.[60] 단순히 연인으로서 만날 의향은 있다고 한다.[61] 미국은 졸업식을 8월에, 입학식을 9월에 한다. 학년을 9월로 끊으므로 1992년 크리스마스에 태어난 헤일리는 1992년 9월 ~ 1993년 8월 생과 같은 학년이다. 미국은 여름에 새 학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62] Sway와의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로는 2005년 조지 부시를 디스하는 곡인 Mosh 발표 직후 실제로 정부 요원들이 디트로이트의 스튜디오로 찾아와 실제로 조지 부시를 해칠려 했는지 등을 물어봤다고 한다.[63] 언더 시절부터 에미넴과 함께 활동했던 친구들을 모아 만든 그룹 이름. 에미넴의 절친인 프루프 사망의 여파로 2006년에 사실상 해체했다. 사실상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아직도 공식 사이트에 D12 이름이 올라와 있고, 쉐이디 레코즈 15주년 컴필레이션 앨범에서도 D12의 이름으로 노래가 수록됐다.[64] 네이선은 'Headlights'에서 언급된 바 있다.[65] 물론 킴이 가사로 비난 받고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의견임을 감안할 수도 있다. 킴이 재판 중 '에미넴이 딸 헤일리를 부적절한 관계로 사랑했다'는 망언까지 일삼았기 때문에 그대로 믿기는 곤란하다. 실제로 킴이 에미넴은 헤일리를 사랑하였고 부적절한 관계라고 우겼지만 이웃들의 증언(에미넴은 그저 상냥한 아빠였다는 내용)으로 인해 그 의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66] 다만 에미넴은 약물중독에 빠진 당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후에 "딸의 얼굴을 봐서라도 반드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Recovery 수록곡 'Going Through Changes'에서 약물 중독에 걸린 상태에서도 헤일리만을 걱정하는 딸바보 모습을 볼 수 있다.[67] When I'm Gone에서는 자신과 헤일리에 대한 가장 솔직한 가사를 볼 수 있다. 에미넴도 녹음 중 슬펐는지 울먹울먹 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짠하다. 딸에게 정말로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U] A B C D E F 언더그라운드 시절 발매. 2016년 11월 17일에 20주년 기념으로 2번 트랙 'Infinite'만 리마스터 후 싱글로 발매.[68] 에미넴의 메이저 데뷔 음반.[D] A B 다이아몬드 앨범[69] 해당 앨범 커버가 오리지널 앨범 커버이지만 약물과 알코올에 중독된 에미넴의 컨셉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있기에 말이 많았고, 이후 우리가 잘 아는 집 버전 커버로 수정을 했다. 이후 후속작인 MMLP2에서도 오리지날 커버가 아닌 수정된 커버로 오마주하였다.[70] ''King Mathers''라는 이름의 앨범이 2007년에 발매될 것이라 알려져 있었으나 약물중독 치료 이후 싹 갈아엎고 낸 복귀작.[71] 원래 이름이 ''Relapse 2''였지만 앨범의 완성도 등으로 인해 싹 갈아엎고 지금의 이름으로 발매.[72] 영화 8 마일 사운드트랙 음반.[73] 에미넴이 공식적으로 발매하지 않은 노래들을 수록한 부틀렉 컴필레이션 앨범. 수록곡들은 주로 디스곡, 앨범들의 보너스 트랙, 리믹스들이 수록되었다.[74] 2003년까지의 싱글들을 묶은 박스 세트 음반. 미국 외의 지역에서는 ''International Singles''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다.[75] 2005년까지의 에미넴 히트곡을 담은 컴필레이션 음반.[76] Shady Records 컴필레이션 음반.[77] Shady Record 설립 15주년 기념 컴필레이션 음반.[78] SSLP부터 MMLP2까지의 모든 에미넴의 음반이 담긴 '''기간 한정'''의 박스 세트 음반. 한정반이라는 것부터 짐작하겠지만 리셀가가 장난이 아니니 뒤늦게 구매하려는 사람들은 미리 가격부터 알아보자.[79] 사우스포 사운드트랙 음반.[80] 힙합곡 중 최초로 오스카상을 수상한 기록이 있다. 2000년대를 대표하는 곡 순위에 항상 상위권을 차지하는 명곡들 중 하나이다.[81] 당시 1등 Nelly의 Hot in Herre[82] 당시 1등 Ludacris의 Money Maker, Justin Timberlake의 My Love[83] 세이디 레코즈 컴필레이션 앨범 ''Eminem Presents: The Re-Up'' 수록.[84] 힙합 곡 중 최초로 오스카상을 수상한 기록이 있다. 2000년대를 대표하는 곡 순위를 뽑으면 상위권을 차지하는 명곡들 중 하나이다.[85] 영화 Venom OST.[86] 그 유명한 The Cranberries의 "Zombie"를 샘플링했다.[87] 2017년 9월 기준, 비정규 앨범, 싱글, 공연 DVD 등을 제외하고 공식적으로 알려진 스튜디오 앨범 판매량 만으로도 1억 7200만 장을 넘게 판매했다. 출처 빌보드 제외 항목을 전부 합치면 공식적인 판매량 기록은 2억 2천만 장 이상이다. 이 정도의 판매량이면, 다이어 스트레이츠나 본 조비, 건스 앤 로지스 등 전설적인 80년대 락밴드의 수치마저 크게 뛰어넘는다. 심지어 역사상 가장 성공한 밴드 중 하나인 퀸과 동급(!)이다. 대중음악 전문 통계 사이트인 차트 마스터의 결과에 따르면 메탈리카, 브루스 스프링스틴, 아바, 머라이어 캐리, 이글스, 비 지스 등의 아티스트들 보다 더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다고 한다.[88] [image]
위 사진은 또 다른 산업 통계 사이트 스태티스틱 브레인의 2014년 통계. 2013년 11월 5일에 나온 MMLP2는 집계됐지만 2014년 11월 24일에 나온 SHADYXV가 컴필레이션 앨범 항목에 집계되지 않은 걸 보면 2014년 11월 이전의 기록으로 보인다.[89] 10년간 3224만 1천 장을 판매했다. 2위는 비틀즈.[90] 다이아몬드 앨범은 누적 판매량이 1,000만 장이 넘어가는 앨범을 뜻한다. 에미넴 다음으로 달성한 래퍼는 투팍이다.[91] 출처[92] 10x Platinum[93] 다른 한명은 케이티 페리[94] 이 기록은 "Rap God"으로 기록했다. 참고로 곡의 길이가 6분 4초이므로, 앞서 말한 시간으로 나눠보면 에미넴은 이곡에서 매초 평균 4.28개의 단어를 말한 것이 된다.[95] 힙합 장르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건 세계 최초이다.[96] 이 기록은 2015년에 아델이 갱신했다.[97] 1집인 Infinite와 2집인 The Slim Shady LP 이외의 모든 정규 앨범이 빌보드 200 1위를 달성했다. 2집은 빌보드 200 2위가 최고 순위이며, 당시 1위는 TLC의 FanMail.[98] "Godzilla"의 후반부에 30초간 총 229개의 단어를 말했다. 계산하면 초당 7.6개의 단어를 말한 셈이다.[99] 내가 좋은 항문이랬고, 정관수술도 받았어 헥터. 그래서 바이섹슈얼처럼 널 범해도 넌 임신할 리 없어. "헥터는 실존인물임."이라고 에미넴이 말하고 난 후 ''''HECTOR'S RECTUM IS REAL''''(헥터의 항문은 진짜)라고 나오는 자막이 압권.(...)[100] 여담으로 이 감독은 예전에 한국의 방탄소년단의 외모를 비하하는 발언으로 논란이 된 적이 있다.[101] 통용의 영역이 세대 불문하고 사회 전반에 퍼졌을 경우에 관용이 되는데, 이것에 도달할 경우 본토 발음과는 상관없이 실제 언중들이 많이 사용하는 표기가 표준이 된다.(예: 원칙대로라면 '유세인 볼트'라고 쓰는 게 맞은 우사인 볼트) 단, 일본어와 중국어같이 그 언어에서 쓰는 글자와 한글의 대조표가 있을 경우는 제외. 국립국어원은 그 당시에 '에미넴'이라는 표기가 '관용'으로 인정될 만큼 대중적이지 않은(...) 표기로 판단한 것 같다.[102] 이 표기가 정해진 시기는 2004년인데, 그때의 근거가 된 자료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고 답변했다. 참고로 1년 전인 2003년에 개봉한 8 마일#s-2의 영화 포스터를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듯이, 당시까지만 해도 '에미넘'이 아닌 ''''에미넴''''으로 표기했었다.[103] 보통 캉골 군모와 카고 바지를 많이 입고 다니며, 투어 할 때는 카고 칠부바지를 주로 입었다. 2018년부터는 조거 팬츠를 입기 시작했다.[104] 2018년부터는 금시계를 차고 다닌다.[105] 왼쪽이 에미넴, 오른쪽이 닥터 드레이다. 이 뮤직 비디오에서 닥터 드레는 사고로 인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다.[106] 평소 동경한 건 아니고, 평소 작업을 함께 하고 싶었던 래퍼라고 한다. 릴 웨인은 에미넴이 하도 같이 작업을 안 해주자 인터뷰에서 제발 밖으로 나와 같이 작업하자고 코멘트를 날렸다. 뒤에 "난 너한테 안되니깐 날 디스하진 말고"라는 멘트를 덧붙힌건 덤. 이후 같이 작업을 2번이나 했다. 2009년 칸예, 드레이크와 함께한 "Forever", 2010년 에미넴의 Recovery의 트랙 "No Love"에 피쳐링.[107] 리아나 뒤에서 피아노 치고 있는 사람이다. 화면에 잡히질 않아서 이 영상이 올라올 때면 항상 그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는다.[108] 과거 BME 시절 로이스와 함께 페이스북 라이브 스트림을 하면서 QnA를 해준 적이 있었다. 이때 계속 장난치고 드립 치면서 유쾌하게 놀았지만 웃음이 나올 때마다 카메라에 안 잡히게 아래 쪽으로 숙여서 웃었다. 웃음을 의도적으로 안 보여주는 거 같은데 팬들은 상당히 아쉬워하는 중. 질문: 로이스와 에미넴의 냉장고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에미넴: 죽은 애기들. 로이스: ㅋㅋㅋㅋㅋㅋㅋ 질문: BME(Bad Meets Evil, 에미넴과 로이스의 듀오)가 할 수 있는 요리에는 무엇이 있나요? 에미넴: 시리얼이요. 전자레인지로.[109] 영상에는 1997년이라 되어있는데 실제론 1999년이다.[110] 그룹 이름의 뜻은 말 그대로 도축장. 여타 MC들을 랩으로 발라준다는 의미로 보인다.[111] 후에 로이스가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는 이 사건 이 후 에미넴과의 연락과 교류가 없어 자연스레 사이가 멀어졌을뿐, 에미넴 개인과의 사이에 나쁜 일이 일어난 건 아니라고 했다.[112] 슬림 셰이디가 다시 돌아와서 바꾼 것이라 한다. 초창기부터 Encore 앨범까지 유지됐던 Slim Shady 컨셉과 금발머리가 2009년 복귀 이후 사라졌고 2014년 공개된 'Guts Over Fear'에서 Slim Shady를 '성난 금발의 전설'이라고 표현을 한 걸 보면 금발이 슬림 셰이디로서의 자아를 표현하는 듯하다.[113] Revival 발매 직전 홍보 방식이 굉장히 독특했는데 가짜 약 회사 사이트를 만듦으로써 팬들에게 떡밥을 던졌다. 회사 번호로 전화해보면 "I Need A Doctor"의 멜로디가 나오기도 하고 광고에는 "Lose Yourself"의 가사가 나왔다.[114] 참고로 에미넴의 첫 매니저는 마크 켐프(Marc Kempf)로, 1996년 정규 1집 Infinite의 홍보와 1997년 '97 Scramble Jam 대회 참여, 1997년 랩 올림픽 참가와 Slim Shady EP의 앨범 커버 제작 등 에미넴에게 많은 도움을 줬으나 97년 10월 24일 위의 1997년 랩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에미넴에게 버거킹의 햄버거인 와퍼를 쿨하게 사주며 폴이 매니저로 교체된다.[115] 참고로 폴이 해당 발언을 한 후 에미넴이 "나도 얘가 "와, 세상에서 제일 멋진 매니저가 되겠는걸?"이라고 느끼진 않았어."라고 맞받아쳤다.[116] 실제로 JAY-Z가 레터맨쇼에 출연하여 에미넴에 대해 'Notorious non-tourer(악명 높은 투어 미실행자)'라고 표현하였다.[117] nigga는 흑인들 사이에서는 새끼 정도로 통칭되는 말로, 흑인이 백인한테 nigga라고 말하는 건 진짜 친하거나 서로 존중하는 사이가 아니고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힙합계에서 대부라고 불리는 스눕 독이 에미넴한테 nigga라고 명칭한 것은 스눕 독 역시 에미넴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소리.[118] 디트로이트는 에미넴이 인간으로서, 래퍼로서 성장한 곳이다. 출생지는 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주리 주 세인트조지프지만, 이곳에서 태어난 이후 5세 때 디트로이트에 정착할 때까지 이곳저곳에서 떠돌다시피 해서 키워졌기 때문에 별다른 의미가 없다.[119] 자고로 에미넴은 글씨도 왼손으로 쓰는 왼손잡이라 악필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명필인 것이다.[120] Spacebound 참고.[121] Not Afraid 브릿지 부분.[122] Kim 참고. 다만 이는 비명이라는 점을 고려하자.[123] 해당 소년은 에미넴과 만난 후 이튿날 오전에 세상을 떴다고 한다.[124] 무대 위에서 라이브를 할때 호흡이 딸릴 수 있는 부분(주로 마디의 끝 단어)을 불러주거나 추임새를 넣어주는 행위.[125] 로직의 초창기 랩 스타일을 보면 에미넴과 매우 흡사하게 들린다. Logic - RapMan 그정도로 에미넴을 존경하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말.[126] 하지만 얼마 안 가 다시 언팔을 한 걸 보아 샤라웃 차원으로 팔로우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127] SNS 악플과 관련된 여담으로 2018년 Coachella에서 공연을 할때 지미 키멜 쇼 이벤트를 한 적이 있다. 바로 악플 읽기 이벤트였는데, 트위터에서 에미넴을 향해 "2003년 이후로 널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안티팬이 올린 글을 에미넴이 읽어보는 기회를 가졌다. 이에 대해서 에미넴은 "이 말도 일리가 있어!"라고 하며 재치있게 반응했다. 거기다 악플의 문법이 틀리게 작성되어서 에미넴이 철자 제대로 좀 알아라고 악플러에게 한방 먹인 것은 덤이다. 이 다음 날에도 Coachella에서 라이브를 했는데 여기선 또 새로운 악플을 읽어보았다. "Coachella를 폐막하기엔 에미넴은 적절한 인물이 아니다."라는 글이었는데 이에 대해 에미넴은 관중들에게 Fuck you, bitch를 외치도록 시켰다.[128] 2위는 Kill You, 3위는 The Real Slim Shady[129] 헤일리를 학교에 보내려고 일찍 잤다고 한다. 수상 소식은 TV가 아니라 동료의 전화로 알게 되었다고.[130] 당시 시상식 이름 'Mnet 영상음악대상-Mnet MusicVideo Festival (MMF)'[131] MMLP 시리즈의 앨범커버를 장식한 것으로 유명하다.[132] 거꾸로 보자면 에미넴이 지금까지 제대로 까지 않은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는 공화당 지지자들이 에미넴이 민주당 지지자라고 몰아가는 근거가 되지만 클린턴 부부를 주도적으로 깠던 것을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133] 심지어 이는 역대 메타크리틱 유저스코어에서 상위권에 위치한다.[134] 위의 급노화 사진으로 보아, 아마도 메이크업을 좀 한 듯하다. 젊을 적 약물중독이었던 적이 있어서 약물중독의 후유증으로 인한 급속노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마약'''중독이 아니다. '''약물'''중독이다. 에미넴은 절대 마약같은 것은 하지 않으며, 공연 컨디션을 위해 술담배조차 하지 않는다.[135] 저 사진은 드레이크의 콘서트에 깜짝 등장 후 찍은 사진인데 드레이크는 상당히 공손해보인다. 이 사진이 찍히기 전 재밌는 이야기가 있는데 2016년 중반즈음부터 드레이크와 에미넴 사이 디스전이 일어날 양상이 보여졌다. 왜냐하면 에미넴의 소속사인 'Shady Records'의 소속 래퍼 '조 버든'과 드레이크가 디스전을 펼쳤고, 드레이크가 이 디스전에 관한 인터뷰를 하던 중 에미넴이 오더라도 자신있다는 뉘앙스의 대답을 한것. 둘 사이에 이상기류가 실제로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드레이크가 본인 콘서트에 에미넴을 초대하고 그를 'Greatest of All Time'이라고 칭한 것을 보면 둘 사이 무언가가 있었더라면 드레이크가 사실상 꼬리를 내린 것이 맞는 듯 하다. 실제로 배틀 MC 출신의 테크니션 에미넴을 상대로 드레이크가 디스전을 시작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 될 거라는 예측이 대다수였다. 또한 에미넴도 드레이크는 디스하지 않는다고 한다. 딸들에게 좋은 일을 해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136] SSLP 수록곡인 Just Don't Give A Fuck이 1998년에 싱글로 발매됐었다.[137] 싱글 자체는 생일 4일 전인 25살때 발매되었지만 본격적인 인기를 얻고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는 1999년 My Name Is 이후이기에 26살로 봐도 무방하다.[138] 대표적으로 이런 발성법을 쓴 액슬 로즈는 2010년대 50살이 넘어가며 목소리가 완전히 맛이 가버렸다.[139] 그의 대표곡인 Rap God에서도 바로 알 수 있는데,처음 인트로 부분에서 내레이션을 할때는 훨씬 낮은 톤이다.[140] 하루에 '''14시간''' 정도 연기를 하고 잠은 컷 중간중간에 쪽잠을 잤다고 한다.[141] 사실 이 대회도 딸 헤일리의 분유, 기저귀 값을 벌기 위해 나갔으며, 2위를 한것도 결승에서 상대의 랩이 끝난 후 에미넴의 차례가 되자 상대가 무대 뒤로 들어가버려 배틀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그 상대는 그런 부정행위를 해놓고는 우승을 가져갔다.[142] 물론 지금이야 그들의 음악적 성과는 무시할 수 없다.[143] "Without Me" 中 "20 million other white rappers emerge, but no matter how many fish in the sea it'll be so empty without me"[144] 에미넴이 최정상에서 내려오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이 시점까지 에미넴의 실력 근처라도 가본 백인 래퍼가 전무하다. 물론 뛰어난 백인 래퍼들이 없는건 아니지만 에미넴과 비교될만한 래퍼는 아직까지 한명도 없는게 현실이다.[145] 사실 염색이다.[146] 하지만 에미넴의 데뷔 초반에는 대중들이 잘먹고 잘사는 중산층 가정에 태어나 대학까지 멀쩡히 다니고도 "빈민가에 살며 흑인들에게 랩을 배웠다"라고 거짓말했던 선배 백인 래퍼 바닐라 아이스처럼 그도 마찬가지로 콘셉트를 위한 거짓말이 아닐까하는 대중의 의심을 받기도 했다.[147] 90년대 동부 힙합을 이끌었던 거목 중 한 명. 메소드 맨과의 듀오 활동으로도 유명하다. 에미넴과 Off The Wall이라는 곡을 같이 작업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깊은 사이며, 구글에 이미지 검색을 해보면 같이 찍은 사진이 꽤나 나오는 편이다.[148] 힙합 그룹 Naughty By Nature에 소속된 래퍼. 상술했다시피 에미넴의 랩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래퍼다.[149] 당시 에미넴과 갈등을 겪던 로드 자말 (Lord Jamar). 유명 그룹 Brand Nubian에 소속되어 있는 힙합계에서 생각보다 보기 드문 흑인 우월주의 래퍼로 유명하며, 카미카제가 출시한 당시에 에미넴에게 비난의 목소리를 자주 한 적이 있다.[150] 특히 홉신은 자신이 언급되는 벌스를 틀며 상당히 기뻐하는 모습을 인스타에 올리기도 했다. # [151] 위에 언급된 Kool G Rap과 같이 Kool G. Rap & DJ Polo로 활동한 DJ.[152] KRS-One, DJ Scott La Rock, D-Nice가 1986년에 결성한 힙합 그룹. 데뷔 앨범인 Criminal Minded가 발매되고 5개월 후에 DJ Scott La Rock이 불의의 총격사고로 사망한 후 KRS-One이 그룹을 이끌며 활동을 이어오다가 1992년에 해체됐다.[153] 위에 언급된 라킴과 같이 Eric B. & Rakim으로 활동한 DJ.[154] 에미넴의 정규 10집 Kamikaze(음반)의 앨범자켓이 비스티보이스의 Licensed to Ill 앨범커버를 오마주한 거다.[155] 상술한 빅 대디 케인, 쿨지랩 등과 함께 주스 크루라는 뉴욕의 힙합 크루에서 활동했던 래퍼. 에미넴과는 'Hellbound'#라는 곡에서 딱 한번 공동작업을 한적이 있는데, 이 곡의 비트는 소울 칼리버의 OST 'Sacrifice'를 샘플링 한 것이다. 원곡[156] 자기가 생각하기에 가장 저평가된 MC라고 한다. #[157] 이전 일본 공연 영상에서 'Make some f**king noise for yourself'라고 외쳤는데, 이는 관객의 호응이 부족하다는 의미에서 외친 것이 아니라 에미넴이 공연마다 하는 말 중 하나일 뿐이다. '너희들 자신을 위해서라도 소리 좀 질러라'라는 의미보다는 '즐기고 있는 너희들에게 소리질러어!' 정도의 의미이며 한국 공연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158]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Thank you", "Thank you so much, Korea"이라고 하고 있다.[159] 이 드립 때문에 어떤 가수나 연예인이든지 하트 퍼포먼스를 저렇게 하면 두개골 퍼포먼스라고 부른다. 즉 에미넴이 이 드립의 시초가 된 것.[160] 에미넴이 공연 중에 하트를 선사한건 이 때가 처음이다. 그것도 하트를 총 다섯 번씩이나 했다. Space Bound에서 두 번, Love The Way You Lie에서 한 번, 엔딩 시 밴드 소개할 때 오른 쪽 무대 끝에서 한 번, 퇴장할 때 한 번이다.[161] Without Me 뮤직비디오를 보면 아이가 Parental Advisory 마크가 붙은 The Eminem Show 앨범을 구입하고 집에서 들으려 하다가 로빈 코스프레를 한 에미넴에게 혼나는 장면이 있다.[162] 에미넴은 R등급을 받은 8 마일을 헤일리와 같이 보러 갔었는데, 욕설이 나오는 장면에서 헤일리의 귀를 틀어 막고 폭력적인 장면에서 눈을 가리는 등의 관람 지도를 했다고 한다.[163] 물론 한국 팬들답게 이 부분에선 엄청난 함성이 터져나왔다. [164] 미공개곡으로 정식으로 발매된 적은 없다.[165] 원래는 에미넴이 만든 곡이고, 피쳐링은 로이스 다 5'9''였지만 JAY-Z가 자기 벌스를 넣고 비트를 조금 손봐서 자기 앨범에 넣은 것이다.[166] 트위터에 에미넴 관련 트윗을 엄청 올리기도 했다. "Killshot" 이후 해당 트윗들이 여러 매체에 오르내리자 모두 삭제되어 지금은 아카이브와 스크린샷 외에는 볼 수 없게 됐다.[167] 공식 발매는 19년 말이다.[168] 조 버든이 리볼트에 출연해 한 발언들을 보고 쓴 가사로 추정된다.[169] 특히 로이스 다 파이브 나인이 조 버든을 정말 싫어하는데, 조 버든의 생일에 얼 스웻셔츠의 얼굴을 합성해 조롱하기도 했다.[170] 여기서 N word를 사용하며 에미넴을 칭찬했다. 근데, 정작 에미넴은 백인이라는 점에서, 스눕 독이 에미넴에 대해서 지대한 칭찬을 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171] "에미넴! 백인의 희망. (다른) 백인들은 랩에 대한 존중이 하나도 없어. 이건 확실히 해두자.", 에미넴을 탑 10 후보에 넣을 정도의 위치로 올린 건 거의 드레가 한 거지.", "근데 씬에서는 항상 에미넴이 탑 10 리릭시스트라고 여기는 것 같더라,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그건 그냥 걔가 닥터 드레와 있어서 그런 거고, 닥터 드레가 걔가 할 수 있는 가장 에미넴스러운 에미넴을 찾아준 거야.", "걔가 건드리지도 못할 사람들이 있다고. 라킴이라던가, 빅 대디 케인, KRS-원, LL 쿨 제이, 아이스 큐브 같은 사람들."[172] "Pray I don't answer that soft ass shit."[173] 이 당시 여타 다른 디스전과는 다른, 통칭 "OG들" 사이에 디스전이 일어나면 힙합 씬에 안 좋은 영향만 가져올 것이라며 둘 사이의 비프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래퍼들이 꽤 있었다. 대표적인 예시가 킹 크루키드. 하지만 리스너들은 실제로 일어나기보다 먼저 비프가 해결될 것이라고 보는 시선이 훨씬 많았다. 디럭스를 내기 직전 에미넴과 화해한 사람들이 갑자기 생겨나기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