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즈 앤 로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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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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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즈 앤 로지스는 '''1980년대 가장 성공한 록 밴드 중 하나'''이자 헤비메탈의 황혼기를 화려하게 장식한 '''아메리칸 하드 록의 자존심'''이다.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1억 장 이상, 미국에서만 5천만 장 이상이 팔렸으며 그들의 전성기는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로 즉 헤비메탈의 전성기이자 마지막 전성기였다.
2. 상세
1985년에 결성된 미국의 록 밴드로, 클래식 라인업은 1985년의 '''액슬 로즈(보컬)''', '''슬래시(리드 기타)''', '''이지 스트래들린(리듬 기타)''', '''더프 맥케이건(베이스)''', '''스티븐 애들러(드럼)'''이다.
이 멤버로 데뷔 앨범 Appetite for Destruction과 ep 앨범 G N' R Lies 두 장의 앨범을 완성했다.
그 후에는 변동이 조금 있었는데, Use Your Illusion 앨범을 녹음하던 1990년 스티븐 애들러가 마약 문제로 해고되었고 맷 소럼과 디지 리드가 가입하여 녹음을 이어갔다. Use Your Illusion을 발매하고 뮤직비디오 촬영 밑 공연을 이어가던 1991년 이지 스트래들린이 갑작스럽게 탈퇴를 선언한다.
그의 대타로 길비 클락이 가입하여 1993년 The Spaghetti Incident?까지 활동한다. 그 후 밴드의 Chinese Democracy 녹음 시간, 앨범 발매와 투어 기간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변동이 있었는데 주요 멤버로는 리플레이스먼츠의 토미 스팅슨, 나인 인치 네일스의 로빈 핑크, 밴드 Sixx:A.M.에서 활동하는 DJ 애쉬바, 버킷헤드, 론 범블풋 탈 등등 유명한 연주자들이 거쳐갔다.
하드록, LA 메탈 등등 락 분야에서 여러 카테고리에 동시에 거론되는 밴드인데 이건 단순히 LA 메탈의 범주로 분류하기에는 그들이 블루스와 펑크 등 이질적인 복고적인 취향을 많이 추구하였기 때문이다.[1] 또한 Use Your Illusion 같은 후기 앨범들에서는 록뮤직 역사를 통틀어 재조합하는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는 곡들이 많다. 서사적인 대곡과 실험적인 트랙들도 포함하고 있기에 단순히 LA 메탈의 범주에 넣는 것은 편견일 뿐이다.
그룹의 데뷔 앨범 성공 이후로 멤버들 간의 반목과 잦은 구설수로 인해 과대평가받는 악동들이라는 주변의 악담들을 Use Your Illusion1 & 2로 일 거에 날려 버렸다. 실제로 November Rain 같은 대곡 지향의 곡을 들어 보면 무의미한 악곡 구성으로 러닝 타임을 소비하는 것이 아닌 기승전결의 멜로디 라인 구성이 완벽에 가까우며 기타 솔로잉 역시 매우 독창적이고 아름답다. 건즈 앤 로지스에 비평적이던 평론가들 대다수도 팔색조 같은 색다른 구성의 곡들로 채워진 이 쌍둥이 앨범에 대해서 후한 점수를 줬고, 어떤 평론가는 November Rain을 들어, 20세기를 넘어 21세기 이후까지 오랜 기간 울릴 명곡이라고 평가하며 King Crimson의 명곡 Epitaph에 견주기도 했다.[2][3]
80년대 말과 90년도 초반 메탈리카, 메가데스 같은 동시대 슈퍼밴드들과 친분이 있었고 합동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4][5][6]
너바나의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기도 했는데 특히 보컬인 액슬 로즈는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과 충돌이 잦았다.[7][8] 너바나의 라이벌로 같은 얼터너티브 밴드인 펄 잼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90년대에 너바나에게 인기로 호적수가 될 수 있었던 그룹은 건즈 앤 로지스가 거의 유일했다.[9] [10] [11] [12]
이처럼 건즈는 음악 이외에도 괴팍한 사생활이나 기행, 라이브에서 관객들과의 난투극 등 트러블 메이커로 유명했고 때문에 비난도 많이 받았었다. 특히 액슬 로즈와 슬래시가 그런 스캔들의 주 진원지였지만 이 두 명은 건즈 앤 로지스 카리스마로 군림하며 밴드를 이끌고 나갔다.
3. 역사
3.1. 결성
1981년 더프 맥케이건은[13] 베이스를 구하는 광고를 보고 슬래시와 스티븐 애들러를 만난다. 그들은 '로드 크루'라는 밴드를 시작한다. 또 액슬 로즈가 처음 LA에 왔을 때 인디애나 고향 친구 이지 스트래들린 빼고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액슬 로즈는 펑크 밴드를 하고 싶었으나 히피 같다는 이유로 쉽지 않았다.
1983년, 몇몇 밴드를 전전하던 액슬 로즈는 크리스 웨버와 함께 밴드 '로즈'를 결성한다. 그리고 마침 드럼에서 기타로 전향한 이지 스트래들린을 영입해 '할리우드 로즈'라고 이름을 바꾼다.
1984년, 5곡의 데모를 녹음하며 순항하던 밴드는 액슬 로즈와 크리스 웨버의 불화로 크리스 웨버가 탈퇴하고, 슬래시를 영입한다. 하지만 크리스 웨버의 탈퇴가 불만이었던 이지 스트래들린도 탈퇴를 한다. 이지 스트래들린은 '런던'에 가입하게 되는데, 미리 밴드에서 리듬 기타를 치고 있던 슬래시의 후임이였다. 얼마 후 드러머도 탈퇴하게 되는데, 이때 스티븐 애들러가 가입한다. 첫 합주곡은 레클리스 라이프였는데, 스티븐 애들러는 당시를 회상하며 "액슬은 마이크를 움켜쥐고 뛰어다니면서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로 노래했어. 그 순간 나는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밴드는 한두 번의 합주를 끝으로 해산한다. 이지 스트래들린은 액슬 로즈에게 트레이시 건즈를 소개해줬고 액슬 로즈는 'L.A. 건즈'에 가입했으나 드러머와 베이시스트의 불화로 밴드는 곧 해체된다. 슬래시는 '포이즌'의 오디션을 봤으나 탈락한다.
1984년 액슬 로즈는 밴드를 구하느니 '할리우드 로즈'를 다시 결성하기로 했고, 크리스 웨버, 이지 스트래들린과 다시 함께 하기로 했으나, 크리스 웨버가 곧 뉴욕으로 떠나게 되었고, 공연 대타로 트레이시 건즈가 임시 가입한다.
1985년 액슬 로즈와 트레이시 건즈는 그냥 밴드를 합치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건즈 앤 로지스''''[14] 를 결성한다. 이때 멤버는 액슬 로즈 (보컬), 트레이시 건즈 (리드기타), 이지 스트래들린 (리듬기타), 올레 베이흐 (베이스), 롭 가드너 (드럼)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첫 공연이 끝난 후 올레 베이흐[15] 가 해고되고 이지 스트래들린의 친구이자 이웃이었던 더프 맥케이건이 영입된다.
밴드는 라디오 인터뷰도 하고 데모도 만들었으나, 액슬 로즈와 트레이시 건즈[16] [17] 의 불화가 일어났다. 지친 트레이시 건즈는 잠시 쉴 생각으로 잠수를 탔고, 며칠 후 이지 스트래들린에게 슬래시가 대신하기로 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슬래시는 더프 맥케이건이 데려왔는데, 알고 보니 전에 액슬 로즈와 이지 스트래들린과 잠시 함께했었다고. 곧 롭 가드너[18] 도 탈퇴하고 역시 전 동료였던 스티븐 애들러가 영입된다.
1985년 6월 4일 5명의 클래식 라인업이 완성된다. 리허설 후 6월 6일 밴드는 첫 공연을 한다. 그리고 더프 맥케이건은 캘리포이나 새크리멘토에서 자신의 고향인 시애틀까지 서부 해안을 따라가는 투어를 기획한다. 투어 이름은 '헬 투어'. 하지만 진짜 헬이 되었으니, 차가 망가지는 바람에 히치하이킹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고, 곧 포기했다.
그들은 기타 숍 뒤편의 한 칸짜리 전셋집에서 살았다. 4평이 조금 넘는 공간에서 노래를 만들고 합주를 하면서 숙식을 해결했다. 당연히 샤워시설은 없었다. 그들은 그곳을 '헬 하우스'라고 불렀다. 침대로 쓸 선반을 만들기 위해 공사장 목재를 훔치기도 했고, 비스킷과 와인으로 식사를 때우곤 했다.[19] [20] [21] 밴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했던 돈은 공연 수익으로만 벌기 힘들어 멤버들은 일을 했는데, 액슬 로즈는 전화기 판매원, 야간 매니저. UCLA 흡연 실험 등을 참여했다. (데뷔 앨범을 완성한 후에 나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 2층 집이었는데, 마약상과 그루피, 주정뱅이들로 북적였다)
1986년 게펜 레코드사와 7만 5천 달러에 정식으로 계약한다.[22] 데뷔 앨범을 녹음하기 전 그들은 자신들의 레이블을 통해 최초 음반(EP)인 "Live ?!'@Like A Suicide"를 발매한다. 1만 장 한정으로 제작된 앨범은 4주 만에 매진되었다고 한다.
데뷔 앨범의 프로듀서로 키스의 폴 스탠리가 거론되었으나, 레이블은 돈을 아끼기 위해 상대적으로 평범한 마이크 클링크[23] 와 계약한다. 클링크는 밴드에게 어떤 음반을 좋아하냐고 물었고, 슬래시는 에어로스미스, 액슬 로즈는 메탈리카의 라이드 더 라이트닝을 언급했다.
드럼은 6일 만에 녹음되었으나, 보컬은 액슬 로즈가 가사 한 줄 한 줄 녹음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슬래시는 녹음 기간 동안 잭다니엘스와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워대고, 새벽 3시가 되면 술을 마시러 나가곤 했다고 한다. 앨범은 그들의 생활을 고스란히 담은 12곡의 자서전으로 완성되었다.
3.2. 미국에서의 성공
1987년 7월 21일, 첫 공식 음반이자 록/메탈 역사뿐 아니라 팝 음악 전체 역사에 길이 남을 전설적인 앨범인 Appetite for Destruction를 발매한다. 첫 싱글은 6월 15일 영국에서 발매된 It's So Easy로 영국 차트 84위를 기록한다. 미국에서는 10월 비디오와 함께 Welcome To The Jungle이 발매된다. 상업적으로 큰 성공은 없었지만, 밴드는 굵직한 페스티벌과 선배 밴드들과 함께 투어하며 전미에서 인지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1988년 Sweet Child O' Mine의 히트로 앨범 발매 50주 만인 8월 6일 빌보드 200 앨범 차트 정상에 오른다. 88년 8월 발매된 Sweet Child O' Mind 싱글은 9월 10일 핫 100 싱글 챠트 정상에 오른다. 곡은 1988년 연말 결산에 5위에 랭크된다.[24] 현재 Appetite for Destruction은 팝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데뷔 앨범으로 기록되어있다.
이 앨범은 다듬어지지 않은듯한 스트레이트하고 거친 질감의 연주와 유려하고 서정적인 슬로우 템포 등 이질적인 요소가 기막히게 공존한다. 시원시원한 하드락/헤비메탈 트랙인 Welcome to the Jungle[25] , Nightrain, Paradise City, 밝고 신선한 록 발라드 트랙 Sweet Child O' Mine[26] 등등 수많은 주옥같은 명곡이 가득하다.
이 앨범은 무려 147주간이나 빌보드 차트에 머물며 미국에서 1800만 장이 팔렸으며, 세계적으로 3300만 장이 팔렸다.
Sweet Child O' Mind의 히트로 인기가 최고조를 이루던 1988년 여름이 지나고 11월 밴드는 타블로이드 신문 표지 같은 커버를 가진 G N' R Lies 앨범을 발표한다. 이 앨범에는 A면에는 EP인 Live ?!'@Like A Suicide의 4곡이, B면에는 어쿠스틱 세션의 4곡이 실려있다. 주요 곡으로는 잔잔한 어쿠스틱 기타와 액슬 로즈의 몽환적인 보컬이 인상적인 Patience[27] 과 에어로스미스의 곡을 리메이크한 Mama Kin이 있다. 미국에서 50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한다.
그러나 B 면 수록곡인 One in a million에 제노포비아, 호모포비아, 인종차별 적인 가사가 수록되어, 비난을 면치 못했다.[28][29]
One in a million은 액슬 로즈가 흑인 강도를 만나고 난 후에 쓰인 곡이다. 아마 Welcome To The Jungle 같은 의도로 쓰인 것 같다. 곡이 완성되자 스티븐 애들러는 액슬 로즈에게 "이런 미친! 이게 뭐야? 이거 꼭 해야 되겠어?"라고 물었고, 액슬 로즈는 "그래, 꼭 필요해. 내 느낌을 표현하고 싶거든."이라고 대답했다.
곡에서 말하는 바는 대충 이러하다. "내가 편하게 거닐던 거리가 언제 이렇게 돼버린 거지? 왜 이렇게 무분별하게 물건을 강매하지? 왜 강도를 당해야 하지? 왜 불안해해야 하지? 왜 너넨 게으르지? 왜 여길 자기들 나라처럼 만들지? 모두 그런 건 아니겠지. 원인 어 밀리언이겠지. 하지만 너무 심해. 내가 급진파? 인종차별자? 난 그냥 작은 동네 꼬마야. 난 그냥 예전처럼 살고 싶어. 왜 종교를 강요하지? 난 그냥 전처럼 살고 싶어. 일부일 뿐이라고?"[30] [31] 어쨌든 이 곡은 2018년 발매된 리마스터링 앨범에선 제외되었다. 액슬 로즈는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그 외에 여성 혐오적인 가사는 It's So Easy와 Back Of Bitch에 절절하게 있는데, 이 역시 같은 대답이었다. 그저 그 상황에 그 감정을 정확히 표현한 것뿐이라고.
또한 상당히 히트한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데뷔 앨범에 비교하면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도 있으나, 정규 앨범이 아닌 서비스 B 사이드 모음 같은 앨범이었다. 그와는 별개로 월드클래스 밴드로 도약하는 밴드의 기세에 힘입어 빌보드 앨범 톱10에서 AFD가 채 내려오기도 전에 GN'R LIES가 동시 진입하는 쾌거를 이뤄낸다.
3.3. 세계적인 성공과 분열
90년대 초반은 밴드가 가장 심하게 분열되었을 때인데, 액슬 로즈는 툭하면 사라져있었고, 그나마 모여서 녹음하려고 모이면 스티븐 애들러가 헤로인에 취해 욕실에 널브러져 있었다고 한다. 일루션 투어 도중 더프 맥케이건과 슬래시는 심각하게 마약과 알코올 문제에 빠졌었는데, 엘리베이터 앞에 쓰러져있는 슬래시를 응급실로 옮겨 살린 적이 있으며, 더프 맥케이건은 술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였다고 한다.[32]
1990년 드러머를 밴드 Cult 출신의 맷 소럼으로 바꾸고[33] 키보디스트 디지 리드를 영입하며 Use Your Illusion을 준비한다. 밴드는 1, 2를 묶어 하나의 앨범 즉, 더블 앨범(CD 2장 / LP 4장)으로 발매하려고 했으나 게펜 레이블의 반대로 I, II 두 장의 앨범을 발매한다.[34] [35]
1991년 9월 17일, Use Your Illusion 앨범이 발매되었다. 이 앨범들은 각각 700만장 씩 팔리며 흔히 이 때가 건즈 앤 로지스의 전성기의 정점으로 여겨진다.
발라드곡들이 인기가 많은 한국에선 밥 딜런의 곡을 리메이크한 Knockin' On Heaven's Door, 액슬 로즈의 애수 어린 보컬과 슬래시의 서정적이면서 강렬한 기타 솔로가 일품인 Don't Cry, 그리고 한편의 영화 같은 뮤직비디오가 특징적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은 November Rain 같은 발라드 곡들이 큰 인기를 얻었다. 그로 인해 건즈 앤 로지스의 인지도가 크게 높아진다. 다른 주요 곡으로는 10분에 이르는 대곡이자 곡 내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액슬 로즈의 또 다른 대곡, Estranged와 Coma가 있다. 그렇다고 발라드 곡으로 채워진 앨범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건즈 앤 로지스 기존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여러 다른 요소들을 수용한 헤비메탈 트랙 You Could Be Mine 같은 곡도 다수 존재한다. 자세한 곡 소개는 Use Your Illusion 앨범 항목 참조.
앨범이 발매하고 2개월 후인, 91년 11월 7일. 투어 도중 액슬 로즈의 친구이자 밴드의 기타리스트인 이지 스트래들린이 갑작스럽게 탈퇴[36] 를 선언한다. 탈퇴 사유는 연속되는 투어에 지치고, 만성적인 액슬 로즈의 지각과 연기. 세인트루이스 폭동을 들었다.[37] 밴드는 급히 길비 클락을 영입하고 투어를 진행한다.[38]
투어는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천문학적인 수입을 올리지만, 밴드의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져 갔다. 투어 중간에 프레디 머큐리 추모 공연도 참여했는데, 건즈는 'Knockin' On Heaven's Door'와 'Paradise City' 2곡을 부르고, 액슬 로즈는 엘튼 존과 함께 'Bohemian Rhapsody', 퀸과 'We Will Rock You'를, 슬래시는 Queen과 'Tie Your Mother Down'을 연주했다. 액슬 로즈는 평소 프레디 머큐리를 존경했기 때문에, 공연 참여에 참가한 것을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1993년 11월 23일 The Spaghetti Incident?을 발표. 이 앨범은 70~80년대의 전설적인 펑크, 글램락, 하드락 밴드나 당대의 그런지 밴드들의 곡들을 커버한 앨범으로 미스피츠, 뉴욕 돌즈, 이기 팝 앤 스투지스, 사운드가든 등의 곡들이 리메이크 되었고 100만 장 정도의 판매고를 기록한다. 명작들의 재해석이라는 점에서는 그럭저럭 의의가 있으나 투어 직후 거의 급조해낸 휴식기 앨범인 만큼 다른 앨범들에 비해 딱히 음악성에 공을 들인 앨범으로 평가받지는 못하며, 전작에 비해 형편없는 수익과 함께 밴드 내의 갈등이 더욱 더 커져 얼터너티브 록의 시대까지 살아남은 건즈 앤 로지스에는 사실상의 기나긴 공백기가 찾아왔다.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사운드트랙에 롤링스톤즈의 커버 곡 '심패시 오브 데블'로 참여했는데, 녹음 당시 액슬 로즈가 슬래시와의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자신의 친구(폴 휴즈)의 기타 플레이를 녹음하고 덧씌우고 발매했다. 이에 슬래시는 굉장히 자존심이 상했고 그 갈등은 심화되어 결국 슬래시의 탈퇴로 이어진다.[39]
슬래시가 이렇게 분노한 이유에는 밴드의 속 사정이 있는데, 그는 건즈 앤 로지스 활동 내내 기타 녹음에 대해서 예민했다. 이후 인터뷰와 자서전에서 이지 스트래들린에 대해 말하길, 그들의 데뷔 앨범인 Appetite for Destruction을 녹음할 때 이지 스트래들린이 제대로 연주를 하지 못할뿐더러 노래들을 망쳐놔서 화가 났을뿐더러, 그와 함께 음악 작업을 할 때면 그가 항상 본인 마음대로 하려 하는 면을 굉장히 싫어했다고 밝혔다. 슬래시의 GN'R 탈퇴 이후, 어느 인터뷰에서 인터뷰 도중이지 스트래들린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그는 손사래치며 이름을 언급하는 것 자체에 불쾌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AFD 앨범의 사운드를 들어보면 의외로 이지 스트래들린의 기타가 조금 더 크게 녹음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솔로 비중은 역시 슬래시쪽이 압도적. 그 이유는 성향의 차이로 볼 수 있는데, 이지 스트래들린은 롤링 스톤스풍의 가벼운 로큰롤 사운드를 선호했고, 슬래시는 에어로스미스 풍의 기타히어로 스타일을 선호하였기 때문이다. 애초에 밴드라는 것이 어느 하나를 위한 것이 아니므로, 기타리스트끼리의 알력 다툼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1집 앨범의 사운드가 더 타이트하고 다이내믹한 것은 서로의 양보하지 않는 캐미가 폭발한 결과물이다.
일루션 앨범을 작업할 때도 이지 스트래들린은 좀 더 심플하게 하길 원했고, 슬래시는 좀 더 화려하고 드러나는 플레이하길 원했다. 원하는 정도에는 부족했겠지만, 슬래시는 월등한 기타 지분을 가져갔고, 이지 스트래들린은 자신의 취향의 곡에 리드 보컬을 녹음한 3곡을 갖게 된다. 이것으로 타협한 것 같다. 액슬 로즈는 슬래시를 지지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부클릿에서 Estranged에서의 솔로에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고, 이지 스트래들린 탈퇴 후 인터뷰에 이지 스트래들린이 너무 느슨하며, 데모 같은 느낌으로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고 했다.
하여튼 슬래시 입장에서는 이게 스트레스이기는 했는지 이후의 행보를 보면 2010년대 재결성 이후에도 세컨드 기타리스트는 철저히 리듬 파트 플레이어를 두고 있다. 하지만 현재 명목상 세컨키타인 리처드 포르터스는 배킹과 동시에 이전 리듬 기타리스트들과 달리 공연에서 솔로파트 연주도 하고 슬래쉬와 잼도 한다. 이지 스트래들린의 인터뷰를 보면 어느 날 (2000년대 이후) 기타 숍을 갔는데 직원이 자신에게 슬래시의 사인이 들어간 시그네쳐 기타를 추천해주는 사건이 있었다며 웃으면서 얘기한 일이 있다.
여하튼 그렇게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전세계 팝시장과 록씬을 주름잡던 건즈앤로지스는 94년도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의 OST인 Sympathy For The Devil(롤링스톤즈 커버)를 싱글로 발매하고 멤버들간 불화로 사실상 해체상태로 들어갔다. 사실상 93년도 남미투어를 끝으로 길비 클락이 액슬의 독단으로 해고되고 멤버들간 골은 깊어졌으며 Sympathy For The Devil의 편곡 작업 또한 액슬과 슬래쉬는 서로 대리인을 통해 작업을 공유했다. 액슬은 슬래쉬의 솔로 파트를 무단으로 수정하며 더욱 갈등을 심화시켰고 결국 96년도 슬래쉬와 더프의 정식 탈퇴선언으로 건즈앤로지스는 마무리를 맺었다.
슬래쉬는 당시 'Sympathy for the Devil'곡을 가리키며 "If you've ever wondered what the sound of a band breaking up sounds like, listen to Guns N' Roses' cover of Sympathy for the Devil" (만약 균열 중인 밴드의 노래가 어떤식인지 알고싶다면 Sympathy for the Devil을 들어보면 알것이다.) 라고 말했다.
3.4. 침묵과 라인업 변동
이후 액슬 로즈와 다른 멤버들 간의 불화가 절정에 달하여 결국 밴드는 활동을 중단하고 액슬 로즈와 디지 리드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모두 탈퇴해 버린다.
탈퇴 이후의 멤버들은 각자의 솔로 활동을 하고 슬래시는 Slash's Snakepit의 밴드로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한다.
그 후 더프 맥케이건, 맷 소럼 등의 멤버로 스톤 템플 파일러츠 출신의 보컬리스트 스캇 웨일랜드를 영입해 벨벳 리볼버를 결성한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해 스캇의 약물중독과 불성실함 등으로 트러블이 일어났고 결국 스캇 웨일랜드는 탈퇴한다. (스캇은 이후 스톤 템플 파일러츠에 재합류한다)
벨벳 리볼버가 새 멤버를 구하는 사이 슬래시는 사이프러스 힐이라든지 밴 헤일런의 전 보컬리스트 새미 해거 등등과 조인트해서 틈틈히 공연을 가지고 있으며 Adam Lambert[40] , 크리드 출신의 Scott Stapp, 페이스 노 모어 출신의 마이클 패튼, 퍼블릭 에너미의 Chuck D, 심지어 사운드가든의 크리스 코넬이나 RATM의 잭 드 라 로차, 레니 크라비츠 같은 사람들도 보컬로 영입하려 한다는 소문이 무성하지만 그 누구도 영입이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벨벳 리볼버 활동을 정리한 슬래시는 솔로 앨범을 3장 발매했다.[41]
액슬 로즈는 새로운 라인업을 꾸려서 90년대 후반부터 건즈 앤 로지스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계속한다. 이 때부터의 건즈 앤 로지스를 예전과 구분하기 위해 뉴 건즈 앤 로지스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 액슬 로즈도 이를 부정하지는 않는지, 밴드의 엠블럼을 간단하게 "G N R"로 표기해놓고, 가운데의 N자를 크게 하여 "New"를 연상시키도록 하였다. 이 시기에 버킷 헤드가 건즈 앤 로지스에서 아주 잠깐 활동하다 2004년에 탈퇴하게 된다.
94년도부터 떡밥을 던져놓던 액슬 로즈는 1998년부터 새 앨범의 제작에 착수한다. 앨범의 제목은 Chinese Democracy라 해놓지만, 발매가 계속 미뤄지면서 신보 떡밥은 10년 이상 지속되게 된다.
3.5. 새로운 라인업과 새 앨범
기타리스트 변동은 1999년 로빈 핑크 영입, 2000년 버킷헤드 영입으로 폴, 로빈, 버킷3기타 체제가 이루어진 이후 쭉 이어지다가 2004년 버킷헤드, 폴 토비아스가 탈퇴한 후로 범블풋, 리차드 포터스를 영입해. 앨범 발매까지 로빈, 범블풋, 리처드 체제가 이어졌다.
2004년에는 그들의 히트곡을 모은 '''Greatest Hits'''를 발매하기도 한다. 나쁘게보면 추억팔이일 수도 있겠지만 전성기 시절 노래들을 빵빵하게 채워놓은 결과 미국내 600만장, 전세계 천만장 이상 판매되는 성과를 거둔다.
마침내 액슬 로즈의 건즈 앤 로지스는 2008년 11월 장장 15년 만의 앨범 Chinese Democracy 앨범을 발표하게 된다. 이 앨범은 잔류 멤버 디지 리드[42] 와 슬래시 대타로 들어온 멤버 버킷헤드 (2004년 경 탈퇴) 등등의 도움으로 제작되었으며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였다.
앨범 발매가 듀크 뉴켐 포에버 마냥 15년을 끄니, 한때 "진짜로 중국이 민주화되면 나오겠네"라는 농담이 먹히기도 했다.
또한 닥터페퍼 사장이 2008년 안에 앨범이 나오면 전 미국인한테 닥터페퍼를 쏘겠다고 2008년 3월에 광고를 때렸다. 근데 2008년 11월에 나왔다.(...) 결국 회사 홈페이지에서 쿠폰을 주는 방법으로 닥터페퍼를 쐈으나, 홈페이지 폭주 관계로 발급이 제대로 안돼서 건즈 앤 로지스가 화났다고.(...)#
이 후 2007년경 나인 인치 네일스 활동으로 인한 로빈 핑크의 탈퇴와 함께 머틀리 크루, Sixx : AM 출신의 DJ 애쉬바가 영입되었다.
3.6. 2009년 첫 한국 공연
2009년 12월 13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내한 공연을 가졌다. 그러나 공연 당일 문자로 1시간 연기된다는 연락이 왔다.[43] 늦은 시작 시작만큼 종료시간은 빨라져서 다른 나라 공연보다 셋 리스트가 적게 연주되었다. 그리고 시작된 공연에 관객들은 지쳐있고 화나있었지만 액슬 로즈의 "너네는 내가 영원히 안 올 줄 알았지?" 한마디에 콘서트홀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공연은 당시 비난여론이 꽤 많았는데, 첫 번째로 공연 시작 시간이 당일 1시간 연기되었다. 티켓에 표기된 시작 시간은 7시였고, 공연 시작은 8시에 되었고, 오프닝 포함하여 최종적으로 건즈가 등장한 시각은 9시 30분이었다.
두 번째로 셋 리스트에 차이니스 앨범 곡이 다수 포함되었다는 것. 새 앨범을 낸 밴드가 새 앨범에 있는 곡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팬들 대다수가 올드팬이었다.
세 번째로는 사운드가 엉망이었다. 이에 여러 설이 있는데, 당일 내한해서 리허설도 안 했다는 이야기.[44]
네 번째로 늦게 시작한 만큼 사운드가 후졌던 만큼 급하게 끝낸듯한 공연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의 일본 공연에서는 컨디션도 공연시간도 월등히 향상되었다.
여담으로 건즈 공연을 기획한 공연기획사 사장도 건즈의 열성팬이었지만 하도 크게 데인 이후로 다시는 이들을 부르고 싶지 않다고 했었다고.
3.7. 명예의 전당 헌액
2011년 9월.
다음 해 로큰롤 명예의 전당[45] 후보로 올랐다. 한 해에 5에서 7팀, 개인을 뽑으므로 건즈 정도 전성기 포스와 인지도를 보여주었던 밴드가 물을 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같이 후보에 오른 밴드 중에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도 있다.
2011년 12월 7일.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이 확정됐다. 빌보드지에서 한 액슬 로즈의 인터뷰 중 "(클래식 라인업) 재결합 전에 나랑 슬래시 둘 중에 하난 죽을 거야."라 발언한 것과 헌액 직후 나온 원년 드러머 스티븐 애들러의 인터뷰로 보아 전성기 멤버가 모이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였고 예상대로 액슬 로즈는 명예의 전당 무대에 안 나왔다. 대신 얼터 브릿지의 보컬 마일스 케네디가 보컬을 맡았다.[46]
그리고 액슬 로즈 외에도 이지 스트래들린도 쿨하게 거절했다. 기념 공연에는 리듬 기타로 길비 클락이 참여했는데, 헌액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그는 명예에 전당에 헌액되지 못했다. (일루션 앨범부터 참여한 맷 소럼과 디지 리드는 헌액)
3.8. 슬래시와 더프 맥케이건의 재합류
2014년 12월 25일 기준으로 현 멤버는 액슬 로즈 (보컬), 범블풋 (리드 기타), DJ 애쉬바 (리드 기타), 리차드 포터스 (리듬 기타), 타미 스팅슨 (베이스), 프랭크 페러 (드럼), 디지 리드 (키보드), 크리스 피트먼 (키보드)이다.
2015년 8월 DJ애쉬바와 범블풋이 건즈를 탈퇴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쯤, 더프 맥케이건과 슬래시가 액슬 로즈와 화해했다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6년 Coachella 페스티벌 헤드 라이너로 건즈 앤 로지스가 서는데 더프 맥케이건, 슬래시, 액슬 로즈의 라인업으로 무대에 서는 것이 밝혀졌다. #
이지 스트래들린, 스티븐 애들러, 맷 소럼은 참여하지 않았는데, 이지 스트래들린은 재결성 합류 거부의 이유로 멤버 간의 공정한 수익 배분이 되지 않았음을 인터뷰에서 밝혔다.
현재 멤버구성은 클래식 멤버인 액슬 로즈, 슬래시, 더프 맥케이건과 일루전 멤버 키보디스트 디지 리드, 뉴건즈 시절에 들어온 리듬기타 리처드 포터스[47] , 드러머 프랭크 페러 그리고 재결합하며 새로 영입한 홍일점 멤버이자 신시사이저/프로그래밍 멜리사 리즈로 구성되었다.
이후 계속된 공연에 액슬 로즈는 그간의 걱정을 날려버리는 듯! 호흡은 부족해도 전성기에 가까운 톤을 장착한 보컬을 들려주었고, 동시에 진행된 AC/DC의 객원 보컬도 훌륭하게 해냈다.
이후 이 액슬 로즈 - 슬래시 - 더프 맥케이건 부분 재결성 라인업의 건즈는 액슬 로즈의 AC/DC 투어가 마무리된 6월 23일을 시작으로 2개월간의 북미 투어를 성공리에 마무리 지었다. 이 Not in This Lifetime 투어는 공연의 질과 흥행 모두 올해 최고의 투어 중 하나였다는 호평을 받는 중이며 업계의 리포트에 따르면 거의 전 공연이 매진되었다고 한다. 투어의 몇몇 공연에서는 클래식 라인업의 드러머였던 스티븐 애들러가 등장하여 한두 곡의 드럼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이지 스트래들린은 여전히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제 나아질 일만 남은 것 같던 액슬 로즈의 보컬은 다시 최악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나이가 나이인지라 예전과 같은 보컬은 어렵겠지만 그것을 감안한다 해도 기본적인 음색이나 성량을 보면 동일 인물이 의심될 정도로 예전과는 너무나 대비된다. 전성기 시절부터 창법 자체가 목을 혹사시키는 창법이다 보니 나이가 적지 않은 지금의 목 건강 상태는 매우 좋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팬들은 악평 일색이며 심지어는 듣다 버티질 못해 전성기 시절의 라이브 영상을 다시 찾아 들을 정도이다. 여담으로는 대부분의 80~90년대 초 미국 메탈 그룹 음악의 보컬이 웬만한 일반인들은 범접하기 힘들 정도로 매우 고음이다 보니 그때의 메탈 보컬 대부분이 전성기 시절 목을 혹사당해 현재는 목 상태가 좋질 못하다. 그래도 그냥저냥 슬래시와 별문제 없이 투어를 잘 소화해냈고 아쉽지만 그저 왕년의 거물 밴드 중 하나로 남은 느낌이다.
재결성 라인업은 2016년 10월 말부터 남미 투어를, 2017년 1월부터 일본/오세아니아 투어를 진행하게 된다.
2018년 데뷔 앨범인 Appetite For Destruction의 리마스터링 박스 셋을 발매한다. 리마스터링 이외 데모곡과 미발표곡 미발표 라이브 음원이 수록되어있다. 2016년 코첼라에서 재결합한 이후 2년의 시간이 지났으나 투어를 제외하면 아직 새로운 곡 소식은 없다. 대신 슬래시의 새로운 솔로 앨범을 발표되었다.
2019년 슬래시는 솔로 투어를 진행하고, 액슬 로즈는 AC/DC의 새 앨범에 보컬로 참여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리고, 건즈 재결합은 추억 팔이로 돈 긁어모으는 수작이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여전히 새 앨범은 시간이 더 걸릴 듯하다.
2020년 1월 마이애미를 시작으로 중남미부터 시작해 유럽까지 다시 월드투어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코로나로 전부 취소되었다. 그러나 멤버들은 항상 잠수를 타는 이지 스트래들린을 제외하고 모두 인스타로 소통을 팬들과 활발히 하는 편이다. 최근 유튜브 채널에서는 팬들과 소통을 하거나 코비 브라이언트 추모 사진을 올리는 등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4. 멤버
- 액슬 로즈 (보컬 1985~현재)
- 슬래시 (기타 1985~1996, 2016~현재)[48]
- 더프 맥케이건 (베이스 1985~1997, 2016~현재)
- 디지 리드 (키보드 1990~현재)
- 리차드 포터스 (기타 2002~현재)[49]
- 프랭크 페러 (드럼 2006~현재)
- 멜리사 리즈 (키보드 2016~현재)[50]
4.1. 이전 멤버
- 트레이시 건스 (리드 기타 1985~1985) - 건즈 앤 로지스의 창립자이자 슬래쉬 이전의 초대 리드 기타리스트. 자신의 닉네임인 건스와 액슬 로즈의 로즈를 합쳐 건즈앤 로지스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하지만 얼마 안있어 바로 탈퇴하고 원래 자신이 있던 밴드인 LA건스를 재결성해 2020년 지금까지도 활동하고 있다. LA건스 또한 나름 80년대에 LA에서 유명했던 헤어메탈 밴드이다.
- 이지 스트래들린 (리듬 기타 1985~1991) - 건즈 재결합을 거절하고 재결합 후에 가끔 하던 게스트 출연도 하지 않고 있다.
- 롭 가드너 (드럼 1985) - 트레이시 건스와 함께 건즈앤 로지스의 창립자. 트레이시 건스와 함께 결성 후 얼마 안있어 탈퇴한다.
- 스티븐 애들러 (드럼 1985~1990)
- 맷 소럼 (드럼 1990~1997)
- 길비 클락 (기타 1991~1994) - 이지 스트래들린의 자리를 대신한 기타리스트. 슬래시처럼 레스폴 기타를 주로 사용한다.[51]
- 폴 토비어스 (기타 1994~2002)
- 로빈 핑크 (기타 1997~1999, 2000~2008) - 현재 나인 인치 네일스 활동 중.
- 조쉬 프리즈 (드럼 1999) - Devo의 멤버, 이외에도 Perfect Circle의 멤버였으며 Weezer, Paramore, Nine Inch nails, Sting의 투어 멤버를 하기도 했다.
- 토비 스틴슨 (베이스 1998~2014)
- 크리스 피트만 (키보드 1998~2016) - 존재감이 미미하지만 액슬과 디지를 제외하고 3번째로 가장 길게 건즈에 헌신한 멤버이다. 원래 재결합 투어 직전까지 활동 여부가 불분명 했으나 투어 2주전 멜리사와 교체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임금 체불로 액슬 로즈를 고소했던 걸로 보아 좋게 나가진 않은 듯 하다.
- Brian Mantia (드럼 2000~2006)
- 버킷 헤드 (리드 기타 2000~2004)
- Ron 'Bumblefoot' Thal (리드 기타 2006~2014) - 현재 밴드 아시아에서 보컬 및 기타를 맡고 있다.
- DJ 애쉬바 (리드 기타 2009~2015) - 특이하게 건즈 가입 전에 니키 식스 밴드에 기타를 맡고 있었다.
5. 디스코그래피
6. 빌보드 차트
6.1. 1위
6.2. 2위~10위
- November Rain - 3위
- Patience - 4위
- Paradise City - 5위
- Welcome to the Jungle - 7위
- Don't Cry - 10위
6.3. 11위~100위
- You Could Be Mine - 29위
- Live and Let Die - 33위
- Chinese Democracy - 34위
- Sympathy for the Devil - 55위
- Since I Don't Have You - 69위
- Nightrain - 93위
7. 영화같은 뮤직비디오
건즈 앤 로지스는 음악적으로 말할 것도 없는 밴드지만 이에 못지 않게 뮤직비디오의 퀄리티 또한 뛰어나기로 유명한데, 건즈가 크게 성공하며 게펜 레코드의 간판 스타로 떠오르자 소속사에서 자본과 인력을 부어서 정성스럽게 뮤직비디오를 제작해주었기 때문이다. 21세기에 유튜브가 활성화되자 이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건즈 MV의 조회수와 유튜브 채널 구독자도 빠른 속도로 증가했으며 이를 통해 건즈 음악에 입문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November Rain과 Sweet Child O' Mine는 유튜브 조회수가 10억을 돌파했고 Paradise City, Patience, Don't Cry는 5억을, Welcome to the Jungle은 4억을 돌파했다. 특히 November Rain의 경우 린킨 파크의 Numb가 추월하기 전까지 유튜브가 만들어지기 전 노래들 중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Paradise City의 뮤비는 스타디움에서 공연하는 영상과 멤버들이 노가리 까는 특별할 것 없는 영상이 대부분인데도 카메라 줌인과 줌아웃, 흑백에서 컬러로의 화면 변화 등이 쉴새 없이 이어지고 노래와도 딱딱 맞아 떨어져서 보는 6분 내내 지루하지 않은 편. 그리고 건즈 뮤비 퀄리티의 끝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November Rain의 뮤직비디오로 하이라이트인 슬래쉬의 기타 솔로에서는 빈 배경에서 기타치는 슬래쉬에 시선을 집중시켜 웅장함을 극대화 시켰으며, 초중반부 행복한 결혼식에서 마지막에는 비극으로 이어지는 기승전결까지 군더더기 없이 전개되는 뮤직비디오의 스토리텔링에는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몰입하게 된다. 실제로 이 뮤비의 감독은 오지 오스본 등 다른 뮤지션들의 뮤비를 자주 촬영하며 1980년대부터 활동한 베테랑이었다고.
여담으로 이후 게펜과 계약하게 되며 건즈의 라이벌로 부상하는 너바나 또한 게펜이 지원을 잘 해줬는지 뮤직비디오들의 퀄리티가 꽤 괜찮은 편이다. 우울한 그런지 감성과 너바나의 폭발적인 퍼포먼스간에 완급조절이 잘 되어 있다.
8. 사건사고
1980-90년대 락스타의 상징격 되는 인물들이 모여 만든 밴드여서 그런지, 각종 사고가 많았다.
- 87년 봄 / 1집인 Appetite for Destruction의 수록곡인
중간 간주에 어떤 여인의 신음이 들리는데, 아드리아나 스미스[52] 라는 여자와 정말로 관계를 맺는 걸 녹음 한 것이다.[53]
- 87년 7월 21일 / 데뷔 앨범 Appetite for Destruction 발매. 자켓의 선정성의 이유로 얼마 후 회수되었다. 자켓(로봇에게 강간당하는 여자)은 바뀌게(해골 십자가) 되었다.
- 87년 11월 20일 / 애틀란타 공연 도중. 경비원이 그의 '스윗 차일드' 에린 에벌리[54] 를 밀치는 모습을 보고 뛰어내려, 경비원에게 펀치를 날렸다. 그 후 무대 뒤에 구금되고 밴드는 제플린과 스톤스 노래를 커버했고, 드럼과 기타 솔로를 길게 연주했다. 액슬은 벌금과 유죄를 인정하고 재판을 피했다. 2006년까지 애틀란타에서 공연하지 않았다.
- 87년 12월 23일 / 스티븐 애들러는 마약에 취해 의식이 없이 방치된 머틀리 크루의 니키 식스를 살렸다.
- 88년 8월 20일 / 몬스터 오브 락 페스티벌(아이언메이든, 키스 등 참여)이 영국의 도닝턴 파크에서 열린다. 건즈가 공연하던 중 10만명이 넘는 군중 속에 2명이 압사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밴드멤버 모두 충격을 받는다. 이후로 공연 안전에 예민해졌다고 한다. (파라다이스 시티 뮤직 비디오에 공연의 일부가 나온다)
- 89년 8월 / 지앤알 라이즈 앨범이 발매됨. '원 인 어 밀리언'이란 곡에서 액슬은 흑인과 이민자, 게이에 대한 혐오적 가사를 발표한다. 멤버들은 꼭 그렇게 해야겠냐고 물었지만, 액슬은 그렇게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고 했다고. 후에 AFD의 리마스터링 앨범(라이즈 앨범도 포함)에 이곡은 빠지게 된다.
- 89년 8월 27일 / 이지 스트레들린은 비행기 안에서 소변을 보고, 공항에서 체포되었다.
- 89년 9월 6일 / 빈스 닐과의 대립
이후 벌어진 일은 각자 하는 말이 다른데 액슬 로즈는 자신이 권총을 들고 나갔으나 빈스 닐이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빈스 닐은 자기가 경호원을 대동하고 나오자 액슬이 도망갔다고 자서전에서 밝혔다. 빈스 닐과 액슬 로즈의 사례가 반대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즉, 빈스 닐이 총을 들고 있었고, 액슬 로즈가 그것에 식겁해서 보디가드들을 고용해서 내쫓았다는 것. 이 사건은 서로 진술이 엇갈리는 면이 있긴 한데 진상은 알 길이 없다. (인터넷 썰들이 많지만 팬사이트들의 의견을 종합했을 때 액슬과 빈스는 맨몸으로 대결하기로 하였고, 액슬이 총을 소지한 경호원을 대동하여 등장했고 빈스닐이 도주했다는 것이 중론.)
- 89년 10월 10일 / '잇 소 이지' 비디오 촬영장에서 데이빗 보위가 액슬의 '스윗 차일드' 에린 에벌리에게 과도한 관심을 보이자. 액슬이 보위에게 펀치를 날렸다. 보위는 액슬에게 사과했고, 둘은 그날 밤새 술을 마셨다.
- 89년 10월 18일 / 롤링 스톤즈의 오프닝 공연 중에 액슬은 미스터 브라운스톤을 부르기 전에 슬래쉬의 마약남용에 대해 경고했다.
- 90년 1월 2일 / 더프와 슬래쉬는 AMA 시상식 소감 발표 중 술에 취해 F워드를 말해버렸다.
- 90년 4월 28일 / 액슬은 그의 '스윗 차일드' 에린 에벌리와 결혼한다. 그리고 10개월 후 이별한다. 그들은 1986년부터 동거하고 있었다.[59]
- 90년 5월 / 스티븐 애들러는 마약문제로 밴드에서 해고된다. 액슬은 마지막까지 스티븐을 옹오했다고 한다.
- 90년 10월 30일 / Right Next Door to Hell이 쓰여진 이유
- 91년 7월 2일 / 세인트 루이스 사건 (일명 리버포트 폭동 사건)
(1분 9초 부분부터)
- 91년 9월 17일 / '유즈 유어 일루션' 앨범 발매. 겟인더링 가사에서 언론인들을 실명으로 저격.
- 92년 8월 8일 / 메탈리카와 합동 콘서트 중 공연 거부로 인한 폭동
- 92년 여름 / '더블 토킹 자이브'를 부르기전에 웨렌 비티를 저격.
1992년 액슬은 커트에게 합동 투어를 제의 한다. 당연하게도 커트는 단칼에 거절. 그 후 액슬은 무대에 설때마다 얼터너티브 뮤직을 비하하고, 커트와 커트니를 좆같은 약쟁이라 부르고 또 그들의 딸 프랜시스도 둘의 마약문제로 문제가 있을거라는 언급을 하곤 했다. 또 어떤 무대에서는 덕후의 상징 굿즈 너바나 굿즈 모자를 불태우니까지한다. (정말 불을 붙여서 태운다) 뒤에서 연주되는 Smells Like Teen Spirit은 덤.[68] 이런 시기에 커트는 또 커트 대로 커트니와 항상 액슬로즈를 농담삼아 조롱하며 대화하고, 가장 재능없는 밴드가 가장 인기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며 인터뷰하곤 했다.
1992년 9월 둘은 MTV VMA에서 만나게 된다. 액슬 경호원 5명과 카메라맨을 거느리고, 커트앞에 등장했고, 액슬을 본 커트와 커트니는 액슬을 도발하기 시작했다.[69] [70] 화가난 액슬은 욕을 하고 자리를 피했다. 액슬의 능욕 소식을 들은 더프가 빡쳐 너바나 캠프에 뛰어들지만, 경호원들에 의해서 저지당했다. 그리고 너바나는 무대에 올라갔다.
사건 당시의 MTV 어워드 너바나 라이브[71] [72]
무대에서 내려온 커트는 무대 아래 준비된 액슬의 노벰버 레인 피아노를 발견하고 침을 뱉는다. 그리고 건즈의 무대를 본 커트는 "엘튼존 피아노였나봐.." 이후 너바나 캠프를 치러간 더프와 길비 그외 일행들은 트레일러에 프란시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냥 돌아왔다고 한다.
그해 겨울 커트는 LGBT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액슬과의 일화를 얘기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액슬은 성차별주의자이자 인종차별주의자, 동성애혐오자야(존경하는 가수는 프레디 머큐리에 엘튼 존과 함께 공연도 하는 동성애자혐오자?). 그리고 걔넨 좋은 음악도 만들지 못해"
그리고 1994년 커트는 자살하기 몇일전 시애틀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더프 맥케이건을 만난다. 둘은 음악과 재활치료, 중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알고 있는 친구들에 대해서 평화롭게 대화했다고 한다. 더프는 커트가 마지막으로 만난 뮤지션이었다.
- 92년 12월 5일 / 아르헨티나의 라이브에서 공연중 관객들이 무언가를 집어 던지자 공연 자체를 중지 시켜 버렸다고 한다. 영상을 보면 액슬 曰 "이런거 던지지 마라. 이딴 게 재밌다고 생각하냐. 한번만 더 그럼 그만둔다. 난 아무도 다치길 바라지 않는다."라고까지 말했으나, 또 물건이 투척되자 공연을 결국 그만두어 버렸다. 공연 스톱이 있었으나 공연을 끝까지 진행했다. 중간에 공연을 중단한 것은 세인트 루이스가 유일하다. (잠깐 멈추고 갈구는건 다반사...)
- 93년 11월 23일 / 커버 앨범인 '스파게티 인시던트' 발매. 그 찰스 맨슨의 곡을 커버했다.
- 94년 1월 / 슬래쉬는 LA의 집에 독사, 고양이 8마리, 새끼 사자로 채웠다.
- 94년 3월 / 액슬은 그의 '스윗 차일드' 에린 에빌리에게 고소당했다. (그년 2013년 이베이에 액슬과 연애하던 시절 편지 사진등을 이베이에 올렸다...)
- 공연을 가던 중, 불법U턴으로 딱지를 떼자 빡친 액슬. 홧김에 공연 자체를 취소시켜버렸다. 똥줄 탄 경찰이 딱지를 돌려주며 공연을 종용했지만 결국 공연은 2시간 지연. 공연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지역언론에선 폭동이 일어났다며 보도하였다. 결국 건즈앤로지스는 몇년간 해당 동네에 출입을 할수 없었다. (액슬의 공연 딜레이의 악명은 너무나 유명하다. 일루션 투어 내내 한두시간은 기본이었다. 멤버들이 문앞에서 제발 나오라고 하소연하는게 다반사였다고. 이건 이유라도 있는 경우니 양반인 케이스..)[73]
9. 인터뷰
1987년 케랑! & 마키클럽 공연 인터뷰
'''이지 스트래들린''' :
머틀리 크루는 10대용 메탈이야. 우린 좀 더 뿌리에 가까운 사운드를 원하지.
'''기자''' :
'''슬래시''' 너 유일하게 가치 있는 메탈 밴드는 W.A.S.P.랑 메탈리카라고 했다며?
'''슬래시''' :
'''액슬 로즈''' :
에어로 스미스와 비교되는 건 좋아. 미국에서 가장 하드한 밴드지. 롤모델이야.
'''액슬 로즈''' :
우릴 글램 메탈에 넣지 말아 줘. 그냥 스타일을 참고했을 뿐이지. '''이지'''가 하노이 락스 사진을 가져왔어. 난 쿨하다고 생각했지. 그때 스타일을 찾느라 보그지도 뒤지고 있었거든.
'''액슬 로즈''' :
난 5-6가지 목소리로 노래해.
'''액슬 로즈''' :
'''액슬 로즈''' :
작년에 난 앨범 사느라 1300달러나 썼어. 슬레이어에서 왬까지. 보컬, 멜로디, 프로듀스 이것저것 참고했지.
'''액슬 로즈''' :
난 인디애나 출신이야. 레너드 스키너드 같은 밴드는 존나 질렸지. 하지만 Sweet child O' Mind 같은 곡에선 스키너드 같은 낡은 정취가 진심으로 우러나.
'''액슬 로즈''' :
우린 모두 섹스 피스톨스의 네버마인드와 에어로 스미스의 록스 앨범을 가지고 있어. 롤링스톤즈의 익사일 앨범도 많이 들었지. '''이지'''와 나는 1978년에 라몬스를 듣고 라이팅을 배웠어. 아 그리고 '''더프'''는 쟈니 썬더스 빠돌이야.
'''액슬 로즈''' :
우리에겐 두 명의 기타리스트가 있어. 80년대 블루스 기타리스트와 키스 리처드와 앤디 맥코이에 환장한 기타리스트. 하지만 우린 그 둘을 조합할 방법을 찾았지.
'''액슬 로즈''' :
지금 LA 씬은 망했어. 왜냐면 우리가 빠졌거든. 우린 록시같은 클럽에서 제트보이, 패스터 푸시캣, L.A. 건즈 같은 밴드와 같이 공연했는데 정말 최고였어. 근데 우리가 녹음하느라 빠지고 난 후에, 다른 애들이 공연하는데 걔들은 같이 공연하는 걸 꺼리더라. 그게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우린 항상 다른 애들이랑 하는 게 좋았어. 우린 씬이 존나 멋지길 바랬거든. 뭐 그렇지만 지금은 다시 제트 보이, 패스터 푸시캣이랑 공연하고 있어. 걔들도 메이저 레이블이랑 계약했거든.
'''이지 스트래들린''' :
지금 씬은 죽어가고 있어. 4개의 메인 밴드 (L. A. 건즈 포함)가 다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해서 씬에서 사라졌거든.
'''슬래시''' :
모두 계약했지. 지금 LA 씬은 아주 하찮아졌어.
'''액슬 로즈''' :
거긴 좆 빠지는 뉴욕이나 영국 같은 레벨이 없어.
'''스티븐 애들러''' :
LA에선 수백만이 다 뮤지션이라고 말해. 근데 진짜는 소수지. 포이즌이 다 망쳤어. 모두 유행을 따르려고 하거든.
'''액슬 로즈''' :
지난 10년간 LA에서 진짜 록밴드는 밴 헤일런이 마지막이었어.
'''기자''' :
메이저 계약 전엔 돈을 어떻게 벌었지?
'''스티븐 애들러''' :
여자.
'''이지 스트래들린''' :
우린 마약을 팔고, 여자를 팔았어. 그리고 여자들 지갑을 털었지.
'''게펜 레코드''' :
건즈는 성공할 것이다. 다만 그들이 계속 살아있다면.
10. 여담
- 건즈 앤 로지스가 메이저로 올라오기 전 소규모 클럽 공연장에서 액슬은 멤버들에 닉네임을 붙여 소개했다.
리드 기타 - Half Man, Half Beast, The man called Slash
리듬 기타 - Izzy Stradlin
베이스 - The King of Beer, Duff "Rose" Mckagan
드럼 - Steven 'Popcorn' Adler
이상이 전성기 오리지널 클래식 라인업 (1985~1990)의 멤버이다.
- 건즈 앤 로지스의 첫 공연에는 두 명의 관객이 있었다.
- 1985년 헬투어 중 버스가 고장 났다. 그들은 히치하이킹으로 이동했지만, 공연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 AFD와 LIES 당시 멤버였던 클래식 라인업 드러머 스티븐 애들러는 약물 문제로 Use Your Illusion부터 맷 소럼으로 교체되었는데, 스키드 로우의 Wasted time이 세바스찬 바흐가 스티븐 애들러의 약물중독에 관해 작사한 것이다. 당사자인 스티븐 애들러는 약물은 핑계고 그냥 일방적인 해고였다고 주장한다.
- 영화 '더티 해리: 데드 풀'의 장례식 장면에 건즈 멤버들이 출현한다.
- GN'R, 그리고 UYI2 수록곡인 You Could Be Mine과 터미네이터 2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 존 코너의 친구가 밴드 티셔츠를 입고 있고, 둘이 오토바이[74] 를 타고 갈 때 들고 있던 붐박스에서는 You Could Be Mine이 흘러나오는 데다가 T-800이 존 코너와 처음 조우할 때 장미가 든 상자에서 샷건을 꺼낸다. 결국 감독 제임스 카메론은 차라리 밴드와 계약을 맺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이후 엔딩 크레딧의 곡(You Could Be Mine)에 아놀드의 사진을 붙여서 싱글로 발매하고 뮤직 비디오도 같이 찍었다.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에서도 오마주 된다.
- 뉴 건즈의 기타리스트였던 범블풋은 스카이프를 통해 기타 강습을 한 적이 있다. 가격도 그리 높지 않았다고.
- 록맨 X5의 북미판은 보스 이름들을 개명할 때 이 밴드 멤버들의 이름을 적당히 짜깁기하는 장난을 쳐놓았다. 그리고 18년 뒤, 록맨 X 애니버서리 컬렉션에서 다시 제대로 수정되었다.
- 파이널 파이트의 잡몹인 액슬과 슬래시는 생김새로 보나 뭘로 보나 액슬 로즈와 슬래시이다. 그 외에도 이 게임에는 포이즌, 록시, 소돔, 댐드 등 록 밴드에서 이름을 따온 적 캐릭터들이 한둘이 아니다.
- 이빈의 만화 포스트모더니즘 시티의 주인공은 어딜봐도 흑발 액슬. 친구들은 '마덕후(Duff)' '오이지(Izzy)' '설래식(Slash)'(...)
- 박기영의 히트곡 Blue Sky는 건즈 앤 로지스의 명곡 중 하나인 Sweet Child O' Mine을 표절한 곡이다.
- 80년대 밴드임에도 불구하고 유튜브 조회수가 매우 높은 편인데 요즘 가수들도 힘든 10억뷰를 이상 곡을 두 개나 갖고 있고[75] 각각 80년대, 90년대 곡 중 최초 10억뷰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그 밖에도 대부분의 히트곡이 1억뷰를 넘기고 있다.
커트니 러브가 커트 코베인의 애인이던 시절, 커트와 커트니 둘이 MTV 시상식에서 '''액슬 로즈'''와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액슬 로즈'''를 보고는 코베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인 프랜시스의 대부가 되어 달라면서 비아냥을 시전했고 그에 발끈 한 '''액슬 로즈'''가 커트니에게 욕을 퍼부었었다.
다시 커트니 러브가 "이 아이의 진짜 아빠는 아마도 당신일 텐데?" 하면서 강한 아메리칸 조크를 날리자 주먹 다짐 일보 직전의 일촉즉발까지 갔었다. 당연히 흥분한 '''액슬 로즈'''와 커트 코베인, 커트니 러브와의 몸싸움이 일어날 뻔했지만 주위의 만류로 진화되었다.
현재는 이들 사이가 많이 누그러졌다. 그냥 누그러진 정도가 아니라 데이브 그롤이 '''액슬 로즈'''의 다리 부상 소식을 듣고 자신이 다리 다쳤을 당시 공연에서 쓰던 의자를 빌려주고 인터뷰 기자가 '''액슬 로즈'''에게 '그거 데이브 그롤 의자 아님?'이라고 묻자 '''액슬 로즈'''가 '맞아 나의 절친이 빌려준 거야'라고까지 할 정도로 매우 사이가 좋아 보인다.[8] '''액슬 로즈''' vs 커트 코베인 사건이 벌어진 바로 그 1992 MTV 어워드에서 너바나의 Lithum 연주가 끝나고 데이브 그롤이 “Hi, Axl! Where's Axl?”이라고 여러 번 외치며 트롤링을 했었다.[9] 상업적인 면으로 보자면 음반 판매량, 싱글 차트 순위, 투어 수익 및 규모, 머천다이징 상품의 베리에이션이나 판매고 등에서 건즈 앤 로지스와 너바나는 비교 대상 자체가 아니다.[10] 음악적인 면으로 보자면 그런지 열풍을 몰고 오고 90년대 초반을 포스트 펑크와 얼터너티브 록의 물결로 이끈 상징성 면을 볼 때 두 그룹의 위상을 동일 선상으로 볼 수는 있겠다.[11] 1990년대 초, 건즈 앤 로지스의 음악계 위상은 무려 POP 계 Big 4로 불리던 수준이다. 실제로 메탈리카와 공동 진행했던 더블 투어도 메인은 상대적으로 좀 더 빨리 스타디움급 밴드가 된 건즈 앤 로지스였다.[12] 다만, 90년대부터 락씬을 장악하다시피한 얼터너티브 락의 선두주자들이었던 너바나를 당시 전체 락씬의 라이벌로 볼 수 있다.[13] 더프 맥케이건은 이미 시애틀에서 30개 이상의 밴드에 참여했다.[14] 밴드명을 지을 때 Head Of Amazon, Aids 같은 밴드명이 나왔으나 결국 트레이시 건즈와 액슬 로즈의 성을 딴 'Guns n' Roses (건즈 앤 로지스)'로 결정된다.[15] 올레 베이흐는 덴마크 출신 베이스 연주자로서 훗날 자신이 몸담았던 건즈 앤 로지스가 유명해지자 탈퇴를 후회하고 우울증에 걸려서 고향에서 알코올, 약물중독으로 지내다 91년 호수에 빠져 자살하였다.[16] 특히 트레이시 건즈에 대해 액슬 로즈는 자신이 살면서 본 최악의 인간성을 가진 사람으로 평가한 바 있다.[17] 트레이시 건즈는 건즈 앤 로지스 탈퇴후 'L.A. Guns'를 재건해 나름 인기를 누리다 탈퇴하여 현재는 솔로 기타리스트로서 활동하고 있다.[18] 롭 가드너는 건즈 앤 로지스 탈퇴 이후 음악적 활동은 그만두고 공연 기획자로서 활동하고 있다.[19] 사실 1987년도 쯤 인지도가 쌓이기 전까지는 머틀리 크루나 본조비와 비슷하게 외모적으로 글램적인 성향이 짙었다.[20] 외모적으로는 '하노이 락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지 스트래들린의 추천이었다고...[21] 망사 나시를 입는다던가 모든 멤버가 스모키 화장에 화려한 분장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심지어 액슬 로즈는 엉덩이가 뚫린 팬츠를 입기도 했다. 물론 튀기 위한 전략이었고 성장하면서 글램 성향을 버렸다.[22] 게펜과 계약 전에 크리 설리스 레코드의 제의도 있었다. 게펜의 두 배를 제시했지만, 그들은 밴드의 이미지와 사운드를 바꾸길 원했고, 게펜은 완전한 예술적 자유를 제공했다.[23] 그는 이전에 팝음반을 주로 녹음하던 프로듀서였다. 최대 히트 앨범은 록키의 아이 오브 타이거[24] 1위는 조지 마이클의 Faith.[25] 우리나라에서는 예능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의 오프닝 곡으로 쓰이고 있어 메탈 팬이 아닌 한국인들에게도 알려진 곡인데, 이는 정글이라는 은유가 배제된 오용일뿐이다. 건즈 앤 로지스의 활동 무대 LA라는 도시 자체가 배경으로 쓰인 GTA: San Andreas 게임의 홍보 영상 속에 BGM으로 적절히 쓰이게 된다.[26] 곡 전체를 통틀어 계속 들리는 기타 리프가 유명하다.[27] Patience은 이지 스트래들린이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작곡, 작사한 곡이다.[28] 그래서 간혹 국내 GNR 팬들 중 일부는 이 앨범을 멜로디만 좋은 불쏘시개 취급하는 사람들도 있다.[29] One in a million의 가사에 나오는 단어들 Immigration Faggot, Nigger. [30] 한국사회에서도 만연한 전형적인 타민족/이민자에 대한 분노.[31] 액슬 로즈가 트럼프를 극혐하고 타 인종 친구들과 가깝게 지내기 때문에 XX 주의자가 아니라고 볼 수도 있을 수도 있다. 근데 그게... 전형적으로 나쁜 XX 에겐 써도 된다는 논리라 또 문제다.[32] 실제로 어느 무대 위에서 액슬 로즈가 노래 시작 전 멤버들에게 Mr. Browstone과 헤어지지 않으면 밴드를 해체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Mr. Brownstone은 멤버들의 마약 중독 얘기를 다룬 노래이다.[33] 데모를 다 연주하고 약물 문제로 쫓겨난 스티븐 애들러는 서운했는지 인터뷰에서 맷 소럼을 비난하다 나중에 사과하기도 했다.[34] Use Your Illusion 앨범은 각각 독립 발매된 음반이지만 그와 동시에 Use Your Illusion 1, Use Your Illusion 2 앨범 각각 더블 앨범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CD를 사서 플레이어에 재생 시키긴커녕 대부분의 음악 리스닝이 스트리밍이나 음원 다운로딩에 의해 이뤄지고 있지만 Use Your Illusion 앨범 발매 시기인 1991년엔 CD 이상으로 카세트 테이프와 LP 판이 팔리던 시절이다.[35] Use Your Illusion 앨범은 1, 2 모두 LP와 카세트테이프로는 2장의 앨범으로 발매됐으며 오로지 CD만 각 1장의 디스크로 발매되었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Use Your Illusion 1은 수록곡 중 Right Next Door to Hell과 Back off Bitch가 심의 통과를 하지 못해 누락될 위기에 처했는데 오리지널 트랙 모두 수록되지 않는 국가에 앨범 판매 자체를 허락하지 않은 그룹의 방침으로 인하여 발매가 지연되는 일이 발생, 결국 국내에는 해적 음반(백판)이 돌기 시작했다. 이에, BMG 코리아는 Use Your Illusion 2를 먼저 판매했으며, Use Your Illusion 1은 게펜과의 협상 끝에 심의를 통과하지 못 한 곡은 삭제되어 판매가 시작됐다. 그로 인해 Use Your Illusion 1은 한구에서 카세트 테이프는 1장으로 발매되었다.[36] 액슬 로즈에게 이지 스트래들린이 전화하여 탈퇴 의사를 전했고, 액슬 로즈는 전화기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 이후 이지 스트래들린은 'Ju Ju Hounds'라는 밴드를 만든다.[37] 사실 액슬 보다는 슬래쉬와의 불화로 나갔다. 실제로 ‘Appetite for Destruction’ 때부터 슬래쉬와 마찰이 있었고 ‘Appetite for Destruction’의 수록곡들을 잘 들어보면 슬래쉬보다 이지의 기타 사운드가 더 크게 녹음 된 걸 알 수 있다. 후에 이지가 탈퇴 한 뒤 인터뷰에서 기자가 슬래쉬에게 이지를 언급하자 슬래쉬는 "이지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했다.[38] 가입하자마자 수많은 곡을 며칠 만에 다 외워야 해서 힘들었다.[39] 슬래시의 탈퇴 전에 이지 스트래들린의 후임으로 잭 와일드를 염두에 둔 액슬 로즈는 건즈 앤 로지스와 잭 와일드의 합주도 주선했다고 한다. 결국 레이블의 사정으로 불발되었다고는 하지만 만약, 성사되었다면 록 팬들은 유례없이 강력한 하드락 트윈 기타를 보게 되었을 것이다. (90년대 중반의 슬래시와 잭 와일드) 혹은 주도권 싸움으로 둘 중 하나가 탈퇴했을지도 모르지만...[40]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 8 준우승.[41] 얼터 브릿지의 보컬 마일스 케네디가 리드 보컬을 맡고 있다.[42] 디지 리드는 건즈에서 탈퇴하지 않았고 현재까지 활동하므로 전 멤버가 아니라 나름 현역이다.[43] 공연 전날 입국해서 피곤한 관계로 실제로 공연 당일 갑자기 액슬 로즈가 대기실 문을 잠가버리고는 한참 동안이나 나오지를 않았다고 한다.[44] 액슬 로즈는 후에 트윗에 인이어 모니터가 엉망이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보컬 컨디션 자체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 외로 반응은 꽤나 만족한 모양.[45] 데뷔한지 25년이 지나야 자격이 주어진다. 건즈는 Appetite for Destruction 앨범으로 1987년도 데뷔하였으므로 25년째 되는 2012년에 헌액 자격이 주어진 것이다.[46] 마일즈 케네디는 2010년 슬래시의 솔로 앨범에 참여한 바 있으며, 그 후의 모든 앨범과 모든 투어에 리드보컬로 참가하고 있다.[47] 사실, 참여 앨범이 1개뿐이라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지 슬래시보다 재직 기간이 4년 정도 더 길다. 2019년 기준으로 17년차이다.[48] 데뷔앨범부터 스파게티 앨범까지 본인 파트대로 기타 솔로 부분을 연주한다.[49] Chinese Democracy 앨범의 솔로는 리차드가 대부분 연주한다. 재직 기간이 슬래시보다 긴터라 종전의 이지 스트래들린과 폴 휴즈 보다 솔로 연주 비중이 많다.[50] 유일한 홍일점이자 건즈 최초의 여성 멤버 이다.[51] 다만 마샬 앰프는 이미 슬래시가 레스폴 기타와 함께 쓰고 있어서, 본인은 대신 VOX의 AC30 앰프를 썼다고 한다.[52] 창녀였다는 소문이 있다.는 아니고 스트립퍼이자 스티븐 애들러의 여자친구. 애들러가 바람피웠다는 이유로 복수하려고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애들러는 밴드에서 서열이 제일 낮은 느낌.. 청소하다가 쇼파에서 자던 액슬에게 시끄럽다는 이유로 맞은 적도 있다고..[53] 그런데 어차피 이 노래보다는 Welcome to the Jungle에서 간주 들어갈때 액슬이 애드립으로 넣는 신음소리가 훨씬 더 적나라하게 들린다. 뮤비보면 특유의 뱀댄스로 온몸을 배배 꼬면서 교태를 부리는데 이건 뭐... 그러므로 부디 혼자 보고 듣자.[54] 전설적인 음악 형제 그룹인 에벌리 브라더스의 형 돈 에벌리의 딸이다.[55] 전에는 빈스가 리더였다고 써있었는데, 머틀리 크루의 리더는 빈스 닐이 아니라 니키식스.[56] 아이러니하게도 액슬로즈가 존경해마지 않는 밴드가 '하노이 락스' 로 LA메탈의 시조로 평가받는 밴드다. 하노이 락스의 멤버 중 한 명은 머틀리크루의 빈스닐의 차에 동승했다가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57] 액슬이 마이클먼로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존경하는 것은 아니었고 더욱 하노이락스의 멤버가 죽었다는 이유로 빈스와의 사이가 나빠진 것은 아니다. 액슬이 존경한 쪽은 프레디 머큐리와 엘튼 존[58] 이지는 87년 인터뷰에서 머틀리 크루는 10대용 메탈이라고 말한적이 있다.[59] Sweet Child of Mine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던 여자친구 에린 에벌리에게 한 프로포즈는 다음과 같았다. 새벽4시 ①애인을 차로 데려간다. ②서랍에서 총을 꺼낸다. ③총을 머리에 가져다대고 "나랑 결혼 안 해주면 여기서 죽을 거얌"이라고 말한다. 이런 수준이었다고 한다... 액슬답다. )[60] 액슬은 그 여자가 자신의 스토커였다고 주장했다.[61] 90년대에 국내에선 기타로 두드려 팼다고 와전되기도 했다.[62] 신고를 받고 온 경찰을 영장이 없다는 이유로 무단 침입죄로 고소했다는 얘기도 있다.[63] 갈색 곱슬머리에 고전적인 미인이라는 점에서 에린 에벌리와 스테파니 세이모어는 상당히 닮아있다. 또한 엄청난 여성편력을 지녔지만 어쩐지 이 둘에 대해서는 액슬이 더 매달리고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상기 내용처럼 에린 에벌리에게는 협박 수준의 청혼을 한 것도 그렇고, 스테파니와의 교제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가벼운 만남을 원했던 그녀와는 달리 굉장히 진지하게 그녀와 결혼하려고 했다고 하는데.. 결정적으로 'Don't Cry' 뮤직비디오에서 스테파니 세이모어와 찍은 권총 싸움 신은 에린 에벌리와의 실제 부부싸움을 각색한 것이라고 한다. 이런 점들로 보아 이 둘에게서 본인이 갈구하고 집착하는 여성상을 찾았던 모양.[64] 이전 항목에 몸싸움이라고 작성 되어있었는데 그저 말다툼이 있었을 뿐이다. 정확하게는 액슬이 털린 것이지만... 와전된 루머의 대표[65] 진정한 락스타와 진정한 안티락스타의 대립[66] Don't Cry 뮤비에서 누워 있는 액슬 옆에 너바나 야구 모자가 고이 놓여 있고, 심지어 Don't Cry 뮤비 메이킹 영상 중 인터뷰할 땐 그 모자를 쓰고 나오기까지 한다.[67] http://www.feelnumb.com/2009/07/10/proof-axl-rose-actually-loved-nirvana/|Did Axl Rose Actually Love Nirvana??[68] https://www.youtube.com/watch?v=hy0GxcWE_ZM[69] 커트니: 액슬 너 우리애 GOD FATHER가 되고싶니? 주변: 깔깔깔 액슬: 닥쳐 BITCH! 커트: 커트니 너 닥치ㅋ래ㅋ 주변: 깔깔깔 액슬:... 스테파니(액슬여친): 너도 모델이니? 커트니: 아니 넌 뇌외과 의사니? 주변:갈깔깔 액슬:...[70] 대부 테마 연주는 건즈 공연 단골레파토리. 커트는 평소 액슬이 각종차별주의자이며, 재능에 비해 지나치게 성공했고, 심하게 거들먹거린다고 생각했다.[71] 이건 위의 영상을 보면 크리스 노보셀릭이 라이브 후 기타를 집어던지다가 머리에 맞았고, 이때 데이브 그롤이 애꿎은 액슬한테 "Hi Axl~ Where's Axl?"(35초 부분)라고 도발[72] 세월이 흘러 지금은 푸 파이터즈로 활동중인 너바나 전 드러머 데이브 그롤과 같이 공연을 하는 등 당시 하지 못햇던 합동공연을 하고있다. .. 세월...[73] 액슬피셜로 그 이유는 완벽한 컨디션에 올라가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그게 관객들에게도 좋은 것이라며.[74] Honda XR 100[75] Sweet Child O' Mine과 November R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