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G 77
'''제77전투항공단(Jagdgeschwader 71 Herz As)'''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 공군의 전투항공단.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 대전을 터뜨리기 4개월 전인 1939년 5월에 Breslau-Schöngarten에서 제1비행단(I. Gruppe)이 먼저 창설되었고, 초대 지휘관은 1차 대전 당시 독일 제국 항공대에서 비행사로 근무했던 에이텔 뢰디거 폰 만토이펠(Eitel-Friedrich Roediger Freiherr von Manteuffel : 1895~1984) 중령이 맡았다. 1940년 7월에는 노르웨이 중부의 트론헤임(Trondheim)에서 제2, 3비행단이 덧붙여지면서 항공단의 모양새를 갖추었다. 같은 해 11월 21일에 제4비행단까지 보강되자 '''헤르츠 아스'''의 진짜 창단식이 열렸다.
개전에 앞서 먼저 만들어진 제1비행단은 폴란드 침공 작전에 제3항공함대(Luftflotte 3) 예하 부대로 참전했었다. 이듬해인 1940년 4월에는 베저위붕 작전(Operation Weserübung)에 참가하면서 노르웨이 침공에 앞장서게 된다. 제1비행단은 이어진 프랑스 침공에서는 제5항공함대 소속으로 노르웨이에 발판을 두고 영국 본토의 북쪽에서 작전하며 영국 공군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조공 역할을 떠맡았다. 덴마크에서 제2비행단이 합류했을 때, JG 77은 그때까지 76기를 격추시켰고 그 댓가로 6명의 조종사를 잃었다.
11월에는 유보트 기지로 쓰이는 브레스트 항구를 방어하는 임무에 종사했는데 이때가 이들에게는 가장 한가하고 여유로운 시기였다. 곧이어 그리스를 침공하고 크레타 섬에 공수작전을 감행했을 때도 JG 77은 아군을 엄호해주었다. 크레타 작전 이후에 곧바로 루마니아로 옮겨간 이들은 운용 기종을 Bf 109F형으로 바꾸고 유전지대 방어에 임했다.
1941년 6월 22일에 바르바로사 작전이 개시되자 제2, 3비행단과 본부 비행대는 남부 집단군과 함께 작전을 펼쳤다. 이때 1비행단은 핀란드 전선에 있었지만, 동부전선으로 간 조종사들은 빠른 스피드로 무공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발터 회크너(Walter Hoeckner) 중위는 개전 3일째 되던 날 무려 8대의 투폴레프 폭격기를 추풍낙엽 떨구듯 쓸어버렸고, 쿠르트 우벤(Kurt Ubben) 중위도 폭격기 4대를 하루에 격파했다. 같은 날, 제8비행중대의 라인홀트 슈메처(Reinhold Schmetzer) 상사는 5대의 SB 폭격기를 격추시켰다. 이들은 독소전 개전 후 12월 5일까지 무려 1,166대의 소련공군기를 격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반 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이런 엄청난 전과를 쌓는 동안 JG 77은 지상에서 잃은 2대를 합쳐 52대만을 잃고 있어 소련 공군과의 격추교환비는 22:1로 압도적으로 앞서나가고 있었다.
핀란드에서 다시 노르웨이로 돌아간 제1비행단은 1942년 1월부터는 JG 5에 합류하게 되는데, 이들이 그대로 JG 5의 중핵이 되었고, JG 77의 1비행단은 새로 들어온 신참들로 재편성되었다. 이들은 6월부터 1942년 12월까지 지중해 전역에서 영연방 공군기들과 싸웠던 탓에 동부전선 만큼의 격추 전과는 거둘 수 없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 공군의 전투항공단.
1. 창설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 대전을 터뜨리기 4개월 전인 1939년 5월에 Breslau-Schöngarten에서 제1비행단(I. Gruppe)이 먼저 창설되었고, 초대 지휘관은 1차 대전 당시 독일 제국 항공대에서 비행사로 근무했던 에이텔 뢰디거 폰 만토이펠(Eitel-Friedrich Roediger Freiherr von Manteuffel : 1895~1984) 중령이 맡았다. 1940년 7월에는 노르웨이 중부의 트론헤임(Trondheim)에서 제2, 3비행단이 덧붙여지면서 항공단의 모양새를 갖추었다. 같은 해 11월 21일에 제4비행단까지 보강되자 '''헤르츠 아스'''의 진짜 창단식이 열렸다.
2. 초기
개전에 앞서 먼저 만들어진 제1비행단은 폴란드 침공 작전에 제3항공함대(Luftflotte 3) 예하 부대로 참전했었다. 이듬해인 1940년 4월에는 베저위붕 작전(Operation Weserübung)에 참가하면서 노르웨이 침공에 앞장서게 된다. 제1비행단은 이어진 프랑스 침공에서는 제5항공함대 소속으로 노르웨이에 발판을 두고 영국 본토의 북쪽에서 작전하며 영국 공군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조공 역할을 떠맡았다. 덴마크에서 제2비행단이 합류했을 때, JG 77은 그때까지 76기를 격추시켰고 그 댓가로 6명의 조종사를 잃었다.
11월에는 유보트 기지로 쓰이는 브레스트 항구를 방어하는 임무에 종사했는데 이때가 이들에게는 가장 한가하고 여유로운 시기였다. 곧이어 그리스를 침공하고 크레타 섬에 공수작전을 감행했을 때도 JG 77은 아군을 엄호해주었다. 크레타 작전 이후에 곧바로 루마니아로 옮겨간 이들은 운용 기종을 Bf 109F형으로 바꾸고 유전지대 방어에 임했다.
3. 독소전
1941년 6월 22일에 바르바로사 작전이 개시되자 제2, 3비행단과 본부 비행대는 남부 집단군과 함께 작전을 펼쳤다. 이때 1비행단은 핀란드 전선에 있었지만, 동부전선으로 간 조종사들은 빠른 스피드로 무공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발터 회크너(Walter Hoeckner) 중위는 개전 3일째 되던 날 무려 8대의 투폴레프 폭격기를 추풍낙엽 떨구듯 쓸어버렸고, 쿠르트 우벤(Kurt Ubben) 중위도 폭격기 4대를 하루에 격파했다. 같은 날, 제8비행중대의 라인홀트 슈메처(Reinhold Schmetzer) 상사는 5대의 SB 폭격기를 격추시켰다. 이들은 독소전 개전 후 12월 5일까지 무려 1,166대의 소련공군기를 격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반 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이런 엄청난 전과를 쌓는 동안 JG 77은 지상에서 잃은 2대를 합쳐 52대만을 잃고 있어 소련 공군과의 격추교환비는 22:1로 압도적으로 앞서나가고 있었다.
핀란드에서 다시 노르웨이로 돌아간 제1비행단은 1942년 1월부터는 JG 5에 합류하게 되는데, 이들이 그대로 JG 5의 중핵이 되었고, JG 77의 1비행단은 새로 들어온 신참들로 재편성되었다. 이들은 6월부터 1942년 12월까지 지중해 전역에서 영연방 공군기들과 싸웠던 탓에 동부전선 만큼의 격추 전과는 거둘 수 없었다.
4. 역대 지휘관
- 에이텔 뢰디거 폰 만토이펠 중령 : 1939. 10. 1~1940. 12. 22
- 베른하르트 볼덴가(Bernhard Woldenga) 소령 : 1941. 1. 2~1941. 6
- 고트하르트 한드릭 소령 : 1941. 6~1942. 5
- 고든 M. 골롭 소령 : 1942. 5. 16~1942. 9. 30
- 요아힘 뮌헤베르크 소령 : 1942. 10. 1~1943. 3. 23
- 요하네스 슈타인호프 중령 : 1943. 4. 1~1944. 11
- 요하네스 비제 소령 : 1944. 11.~1944. 11. 25
- 지크프리트 프라이탁 소령 : 1944. 11. 26~1945. 1. 15
- 에리히 라이에 소령 : 1944. 12. 29~1945. 3. 7
- 지크프리트 프라이탁 소령 : 1945. 3. 7~1945. 4. 1
- 프릿츠 로지히카이트 소령 : 1945. 4. 1~1945. 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