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우에 슌지

 

[image]
井上俊次
'''아무것도 없던 회사를 지금의 자리로 끌어올린 남자'''[1]
1. 개요
2. 디스코그래피
2.1. 악곡 제공
2.2. 레코딩 참가
3. 임원직에 재직중인 회사
3.1. 대표이사 직에 재직중인 회사
3.2. 그외 이사직에 재직중인 법인
4. 제작 참가 작품


1. 개요


1960년 5월 15일생. 오사카오사카 시 스미요시 구 출신. 2017년 '''데뷔 40주년'''을 맞이한 LAZY의 키보디스트 겸 프로듀서.
현재 주식회사 반다이 남코 아츠 대표이사 부사장, 주식회사 하이웨이 스타 사내이사 회장. 일본 음악 제작자연맹 이사, 일본 음반 출판사 협회 이사, 일본 2.5차원 뮤지컬협회 이사. 전 주식회사 란티스 대표이사 사장, 전 반다이남코 라이브 크리에이티브 대표이사 사장 → 사내이사 회장.[2]
[3]
열혈모에를 주력상품으로 내세우는 애니메이션/게임 음악 레이블인 란티스의 대표이자 음악 프로듀서. 현재 JAM Project를 비롯한 란티스 계열 가수들의 프로듀스를 맡고 있는 인물. 다이쇼 야구 소녀의 기획 및 마이히메 시리즈에도 음악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원래는 카게야마 히로노부가 속했던 그룹인 LAZY키보디스트로, 당초에는 드럼을 맡고 싶어했으나 '피아노를 다룬 적이 있다'는 이유로 키보디스트가 되었다. 레이지 시절의 애칭포키. 본래 서포트 멤버로써 LAZY의 오디션까지만 함께하고 밴드를 떠날 생각이었으나 LAZY가 합격한 라디오 방송은 오디션 합격 멤버 그대로 방송에 나와야한다는 조건이었기에 이후에도 함께하게 된다.
1981년 LAZY가 해체한 이후 소속사 트라이앵글 프로덕션은 카도마츠 토시키를 새로운 보컬리스트로 삼은 밴드를 조직할 생각이었으나, 성격의 차이로 인해 이노우에 슌지는 거절하고 소속사를 나오게 된다.[4] 이후 네버랜드, HUMAN NATURE, AIRBLANCA[5] 등을 결성/해체했고, 이후 음악 프로듀스에 전념하게 된다. 이 시기에 여러 음악의 프로듀스를 전담하게 되어 여러 인물들과 교류를 하게 된다.
1997년 당시 울트라맨 다이나의 음악 프로듀스를 맡던 도중 레이지의 재결성을 제안해 재결성에 성공했으며[6], 에어즈의 해체로 인해 회사가 없어지자 이토 요시유키, 이토 마스미[7] 부부를 이사로 영입해 1999년 란티스를 세웠다.
현재는 레이지의 키보디스트 및 란티스 대표로 활동 중이지만 음악 활동은 딱히 안 하는 듯. 오히려 최근에는 다른 작품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2010년 4월 1일자로 반다이 남코의 라이브 관련 계열사로 설립되는 반다이 남코 라이브 크리에이티브의 사장으로 선임되었으며, 기존의 란티스 대표 업무도 겸임한다. 그런데 이 새 회사의 위치가 란티스 및 카게야마 히로노부가 사장으로 있는 SOLID VOX의 본사가 있는 그 건물 안이다! [8]
참고로 음악 프로듀서로 활동하던 시절인 1993년경부터 몇년 간 사일런트 뫼비우스의 이미지 음악 및 TV판의 일부 곡을 프로듀싱한 경력이 있는데, 란티스라는 이름은 바로 사일런트 뫼비우스의 작가아사미야 키아가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9]
2009년 란티스 마츠리에서 오랜만에 카게야마 히로노부, 타가사키 아키라와 함께 LAZY로 출격, 2008년의 하룻밤 한정 부활제 이후 오랜만에 화끈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들은 이 콘서트를 통해 맛쿤까지 울렸다.
참고로 회사 소속 아티스트인 하야미 쇼를 란티스로 끌어들인 방법은 그에게 샤브샤브를 사줌으로서 끌어들일 수 있었다고 한다. 잼 프로젝트 공연에 자주 나타나며 한국에도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며 실제로 본 사람도 있다고 한다.
히구치 무네타카 추모 라이브에서 LOUDNESS 멤버들과 함께 한 무대에 서기도 했다.
2010년 9월 17일 JAM Project의 도쿄 라이브 공연에서 말 실수를 한 덕에 팬들에게 한소리 들었다는 골치 아픈 뒷 이야기가 있다. 사장님, 왜 그러셨나요?[10]
2011년 LOUDNESS의 30주년 기념 라이브의 기획 및 제작을 맡게 되었다. 비 란티스 계열 아티스트로서는 아마 LOUDNESS가 1호일 듯[11]. LAZY의 보컬인 카게야마 히로노부가 쓴 일기에 의하면 현재 LAZY의 리더라고 한다. 프로듀서인 그의 특성상 리더가 되는게 맞는 듯.
소속사 아티스트들이 부르는 별칭은 위에서 언급한 레이지 시절의 애칭인 포키. 주동자는 그와 한 밴드에서 활동한 카게야마 히로노부인 듯.
2015년에는 주식회사 하이웨이 스타가 반다이 남코 그룹으로 들어가면서 이 회사의 대표까지 되었다. 또한 잘 안알려져 있는데 반다이 남코 홀딩스의 영상음악 프로듀스 사업부 중 3개사인 선라이즈, 반다이 남코 픽쳐스, 그랜드슬램을 제외한 6개사의 대표이사, 이사, 비상근 이사에 등록되어 있다.
2017년 3월을 기해 반다이 남코 라이브 크리에이티브 대표이사 직에서 물러나 당사 회장으로 보직을 이동했다. 후임은 스즈키 타카아키 주식회사 그랜드슬램 대표이사. 공연 기획은 향후 그랜드슬램 쪽에서 총괄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후 란티스가 반다이 비주얼에 인수되면서 반다이 남코 아츠의 대표이사 부사장에 내정됐다. 사내에서 음악 레이블을 총괄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고. 2018년 경에 반다이남코 라이브 크리에이브 회장직을 사임했다.

2. 디스코그래피



2.1. 악곡 제공



2.2. 레코딩 참가


  • 옴니버스 앨범『SUPER ROCK SUMMIT 〜천국으로의 계단〜』(레드 제플린 커버 앨범)「TRAMPLED UNDER FOOT」
  • 옴니버스 앨범 『SUPER ROCK SUMMIT 〜RAINBOW EYES〜』(레인보우 커버 앨범)「EYES OF THE WORLD」「EYES OF THE WORLD」「STREET OF DREAMS」

3. 임원직에 재직중인 회사



3.1. 대표이사 직에 재직중인 회사



3.2. 그외 이사직에 재직중인 법인


  • 선라이즈 음악출판 - 상근이사, 2002년경~
  • 반다이 남코 라이츠 마케팅 - 비상근이사, 2006년경~
  • 반다이 비쥬얼 - 비상근이사, 2006년경~
  • 반다이 남코 라이브 크리에이티브 - 2010년~2017년 3월까지 대표이사, 2017년 4월 이후 2018년 3월까지 상근이사 회장직 수행.

4. 제작 참가 작품


※ 특별하게 기입하지 않는 한 음악 프로듀서 담당.

[1] 정말 창업 당시에는 의자나 책상 같은 것이 없었다고 한다. 카게야마 히로노부도 사무실에 갔더니 아무 것도 없다고 증언했을 정도.[2] 란티스가 반다이 비쥬얼에 인수되면서 직책이 변경됐다.[3] 카게야마 히로노부 항목 참조.[4] 밴드 데뷔를 앞두고 동거를 시작했는데, "포키, 바다에 가자"라는 말을 듣고나서 음악보다 유흥을 앞세운다는 첫인상이 남았다고 한다.[5] 당시 카게야마 히로노부가 보컬이었던 소프트록 계열의 그룹. 멤버는 카게야마 히로노부, 이노우에 슌지, 타나카 히로유키, 마츠오 요이치, 스도 켄이치, 이와타 "간타" 야스히코였으며, 현재 카게야마 히로노부의 개인 홈페이지인 AIRBLANCA는 이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저 멤버 중 대부분이 JAM Project의 라이브 세션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6] 결국 후기 레이지의 흑막이 된다. 후기 레이지의 녹음 및 활동은 다 이 양반이 주도한 셈. 그리고 결국 2012년에 카게야마 히로노부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이노우에 슌지가 리더라고 인증했다.[7] 이토 마스미는 대놓고 아티스트로도 활동 중. 아즈망가 대왕 의 환청 케이크를 작곡했고, 또한 본 곡을 불렀던 Oranges & Lemons의 멤버이기도 한 인물.[8] 현재는 길 건너에 있는 다른 빌딩으로 옮겼다.[9] 이 덕에 사일런트 뫼비우스 만화책에 보면 이노우에 슌지(Shunji Inoue)와 카게야마 히로노부(Hironobu Kageyama)의 이름이 영문으로 각각 적혀있다. TV판 발표 당시에는 AYERS가 엔트리에 있었는데, 이 회사는 당시 이노우에 슌지가 프로듀서로 있던 회사였다.[10] 상황을 설명하자면 당시 공연에서 마츠모토 리카가 소속사의 사정으로 인해 못 나왔는데 저 상태에서 이 멤버가 최고라는 발언을 했다. 딱 봐도 리카 팬들이 들고 일어날 발언이었다.[11] 하지만 이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사장과 같은 밴드 출신이라는 것이 상당히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