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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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원
''' FIAT M11/39 CARO-ARMATO '''
2.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 왕국군이 운용했던 중형전차로 M11/39란 명칭은 1939년부터 실전배치된 11톤 중형전차라는 뜻이다. 단 이건 이탈리아군만의 생각이고, 사실상 대전중 배치된 연합국과 추축국의 다른 전차들과 비교해 보면 경전차에 해당된다. '''심지어 같은 일본의 중형전차급보다 더 작았다.''' 당장 안습으로 유명한 일본군의 97식 전차조차도 15톤은 된다.
3. 도입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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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살도 9톤.
1920년대 2개의 포탑을 가진 영국의 비커스 6톤을 목표로 안살도(Ansaldo) 공장에서 비밀리에 개발이 시작되었다. 회사는 처음에 포탑이 없는 참호 돌파용 전차 안살도 9톤을 개발하기 위해 영국에 두 명의 기술자들을 보내서 전차에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였다. 1932년 프로토타입이 완성되고 1933년 보다 큰 차체와 새로운 현가장치로 교체, 1934년 12월에 테스트를 실시하였지만 22.5km라는 느린 속력이 문제가 되었다. 이에 1935년 엔진을 교체하였지만 개발 도중 계획이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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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1/39 프로토타입과 안살도 9톤.
1935년 1월 안살도는 8~9톤 정도의 중량으로 산악지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차를 목표로 다시 개발, 1936년에 10톤으로 무게를 변경한 후 주무장 Vickers Terni de 37/40, 부무장 6.5mm 기관총, 그리고 피아트 634N 트럭에 85hp 엔진을 장착한 M11/39 시제 전차를 완성했다. 1937년 엔진은 105마력짜리 디젤 엔진으로 변경되고 기관총은 브레다 M38 2정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다시 개량을 거쳐 1938년 포탑을 새로 변경하고 무전기를 장착했다. 1938년 5월 16일 무솔리니의 안살도 공장 방문과 함께 국제 언론에 소개되었고 11월 이탈리아 육군이 안살도에 이 전차를 주문했지만 이탈리아의 잉여같은 산업력 때문에 주문은 취소되고 부품을 간략하게 하기 위해서 무전기를 빼버린 채 생산되었다(!!!).
1939년 7월 첫번째 M11/39 전차가 만들어지고 이후 이탈리아군에 정식 채용되어 1940년까지 100대가 납품되어 실전배치되었다.
4. 성능
이 전차의 개발 당시 모델명은 카로 디 로투라(Carro di Rottura), 영어로 번역하면 돌격/돌파용 전차(Breakthrough Tank)다.
일단 당대 기갑전에서 써먹기에는 전면장갑 30mm, 측면장갑 14mm로 장갑부터 종이장, 게다가 리벳 접합식 장갑이라 옆동네 97식 전차나 후에 61식 전차가 아주 제대로 보여주게 될 사태들도 빈발할 뻔 했다. 화력도 37mm 주포 1문으로, 해당 포는 1930년대까지만 해도 대전차전에 쓸만했으나 M11이 전투에 쓰이기 시작한 건 1940년대, 그리고 상대가 하필이면 떡장갑 마틸다 전차라 순식간에 안습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더 문제가 되는 것은 '''37mm라는 작고 약한 주포를 회전포탑이 아닌 차체에 장착하고, 기관총을 회전포탑에 장비하는 뻘짓'''을 감행했다는 점이다. 이론상으로는 대전차전은 차체의 주포가 감당하고, 측면에서 오는 보병을 회전포탑에 달린 기관총으로 상대하겠다는 것이지만, 급조한 개량형인 M13/40이 정상적으로 회전포탑에 주포를 장착한 것을 보면 그냥 자기 위안에 불과한 변명이다. 충분히 그 정도의 주포를 회전포탑에 장착할 기술이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아서 멀쩡한 전차를 사실상 자주포로 만든 이유는 그 때까지 이탈리아가 만든 전차가 다 초경량 전차라서 실제 11톤이나 되는 전차에 회전포탑을 붙인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다는 웃기지도 않는 이유였다고 한다.
영국의 마틸다 가 시속 15km 밟던 시절에 시속 32km를 가능하게 했던 105마력 디젤엔진이 그나마 전차에 대한 디젤엔진 탑재라는 점에서 나름 시대를 앞서가는 설계였다고 할만 하나, 그나마 연비가 영 개떡이고 차체와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평가가 빈발했다. 게다가 주전장이었던 사막지형에서는 과열에 고장나기를 밥먹듯이 했다.
게다가 프로토타입에서는 무전기를 설치했는데 이후 양산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생산성을 핑계로 생략해버리는 괴악한 일까지 벌어졌다(...). 그나마 생산성이라도 향상되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닌 게, 생산량이 겨우 1개월당 9대. '''누가 보면 티거라도 만드는 줄 알 정도였다(...).'''[2]
'''한마디로 총체적인 난국에 빠진 전차였다.'''
5. 운용
이탈리아군은 이 전차를 생산량의 대부분인 약 70대 가량을 이집트 침공작전 당시 운용했는데, 영국군의 당시 주력전차는 대전 초기의 떡장 아줌마로 유명한 마틸다 보병전차 .[3] 와 사막전에서 기동전에 강세를 보였던 크루세이더였다. 당연히 아주 깨끗하게 탈탈 털렸고 호주군이 5대 정도를 노획하여 역으로 이탈리아군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후 이탈리아군은 M11/39를 땜방으로 간주하고 생산을 종결시킨 후, 급조한 신형전차인 M13/40 전차를 주력으로 운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것도 영 성능이 시원찮은 게, 화력 면에서는 500m거리에서 45mm 정도의 강철판을 관통 가능한 32구경장 47mm M35 전차포를 운용하여 다소 나아졌다만 그들이 상대해야 할 마틸다는 전면장갑이 78mm이니 관통이 여전히 불가능하고, 엔진도 125마력 디젤엔진을 탑재했다고는 하지만 전체적인 중량 증가에 맞추질 못해 기동력도 시속 32km로 감소한 데다, 급조한 탓에 M11/39에서 유래한 상당수의 단점까지 이어받아 역시 사막지형에서 운용하기에는 영 적합치 못한 물건이라는 평가를 들은 녀석이라 큰 차이가 없었다.
에르빈 롬멜은 이런 이탈리아군의 전차 현황에 대해 '''"아놔 무솔리니 이님하들은 자기 군대에 무기나 제대로 주고 전쟁에 내보내야 할 거 아냐?!"'''라는 식으로 대차게 깠으며, 애초에 이탈리아군의 안습한(...)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작전을 짤 때 이탈리아 전차를 '''아예 전력으로 간주하지도 않았다.''' 독일군들은 이 전차를 ‘정어리 통조림’이라고 불렀다.
6. 말로
후속기인 M13/40은 그나마 15대가 보존되었지만, M11/39는 살아남은 것이 없다. 일단 생산량도 백여 대 미만인데다가, 앞서 언급했듯이 대부분이 실전에 나가서 고철조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