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와이번스 프런트 퇴진운동
1. 개요
2011년 SK 와이번스 김성근 감독 경질 후 김성근 감독의 팬들이 프런트을 상대로 벌인 퇴진 운동.
처음에는 김성근과의 재계약 촉구하는 운동으로 시작되었으나, 이후 김성근 감독이 시즌(2011년은 계약만료 시즌) 종료 후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다음날 경질되면 프런트에 대한 사퇴를 촉구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이 운동을 주도한 이들은 김성근의 감독 직 복귀를 원하는 게 아니고, 어디까지나 프런트의 행동을 문제 삼아 이를 규탄하기 위함이라고 했으나 실상 노리타라 불리는 김성근의 악질 개인팬덤이 깊숙히 관여해 있었다. 다만 김성근이 2011년까지 SK 감독으로 팬덤의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었기에 이때는 노리타와 SK팬덤이 분리되지 않았다.
2. 배경
2.1. SK 프런트가 지원을 안해줬다?
SK프런트가 KBO 최고의 프런트는 아니지만 기본 이상은 하는 프런트고 이때도 퇴진운동 주동자들 주장과 달리 크게 잘못한게 없었다. 그러나 2011년 당시에는 찬찬히 사실을 살피기 보단 김성근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추종하는 이들이 여론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목소리가 나오지 못했다.
일단 당시 퇴진운동 주동자들의 주장을 살펴보자. 우선 김성근이 SK 와이번스 감독을 맡고 있는 동안 전력 보강이 잘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주장이 있다. 요컨대 FA, 현금 트레이드를 통한 적극적인 전력 보강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스카우터의 무능으로 실력있는 신인지명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주장을 했다. 이때 화살받이가 된 신인은 2010년 1라운드 지명자 서진용 이었다.
하지만 수 년 동안 성적이 바닥을 치는 특별한 상황이라면 모를까, SK는 성적을 잘냈고 강병철-조범현 2대에 걸쳐 쌓은 기반으로 평균연령 20대 중반의 젊은 팀이라 즉각적인 외부수혈이 필요하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이미 SK는 KBO에서 가장 돈 많이 쓰는 구단이었다. 당시 SK구단 총 운영비는 약 300억 원으로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팀 중 최다액이었다.''' 가난한 팀에서 성적을 냈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것과 달리 김성근은 늘 최고 수준의 지원을 요구해 그가 못담은 팀은 페이롤 1위를 가볍게 찍었고 SK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미 돈을 제일 많이 쓰고 있고, 전력도 강하며, 선수단도 젊은데 대대적인 FA 투자와 현금 트레이드를 벌일 구단은 없다.
더욱이 김성근이 재임한 2007~11 사이에는 쓸만한 FA가 매물로 나오지도 않았다. 김성근이 갓 부임해 FA 잡아달라 할때 최향남 제시했다고 SK 프런트가 욕먹었지만 그해에 투수 FA 다 털어봐야 박명환, 전병호, 김수경, 권준헌에 SK 내부 FA인 김원형 이었다. 앞의 4선수 중에 돈과 유망주 주고 잡아야 할 선수가 보이는가? 2007년 이후로도 투수매물은 한동안 손민한, 최원호(이상 2009), 배영수(2011)같이 상징성이 강하거나 선수생활 막바지라 다른 팀이 잡을 수 없는 선수들 뿐 이었다.
신인지명도 마찬가지 최정조차 조범현 시절 2년간 여러 포지션 돌며 1군 경험치를 먹고나서 리그 수위급 3루수로 급부상했다. 그 신인이 김광현, 류현진급이 아닌 한 짧으면 2~3년, 길면 5년 이상 기다려 봐야 결과를 알 수 있는 법이다. 김성근이 전력외 치부한 윤희상이나 아예 트레이드 카드로 쓰려고 했던 박희수 모두 수년간 인고의 시간을 지나 빛을 본 선수들이다.
당시 김성근과 김성근 지지자들의 주장한 방식은 선동열 감독 재임기 기아 타이거즈에서 이뤄져 팜을 완전히 황폐화시킨 대졸 선수 위주의 선발이다. 잠재력이 높은 선수들은 고등학교 졸업시 대부분 지명되고, 지명받지 못하거나 저평가받은 선수들은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추세여서 같이 지명한 대졸선수가 고졸선수보다 선수경험이 더 많기 때문에 당장 기용하기는 좋지만 4년의 나이 차이와 병역 문제를 해결하면 20대 후반이 되어 성장가능성과 서비스타임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측면에서 고졸선수 지명하는게 일반적이다. 그 서진용도 2015년부터 1군 주요 선수로 활용되기 시작됐다. 무엇보다 서진용 대신 뽑았어야 할 선수라고 SK팬들이 울부짖던 이현호는 제구가 안 돼서 1군에서 얼굴 보기조차 힘들다.
게다가 김성근은 타 팀에서 방출된 가득염, 안경현, 윤재국을 자유계약으로 데려오고, 최동수, 권용관, 안치용, 이재영을 트레이드로 영입하는 등 노장 선수를 열심히 수집하고 반대급부로 젊은 선수들은 2군에 처박거나 딴 팀에 내줬다. SK 재임기 내내 김광현과 최정이 투수조, 야수조 막내로 있으며 육성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군입대 막아 군문제까지 꼬아버렸는데 이게 어떻게 프런트 잘못인가?
김성근이 한화 이글스로 부임해 신인육성보다 자신의 부임시기에 바로 쓸 수 있는 노장선수 기용에 치중하는 모습이 확연히 드러나면서 몇년간의 호성적으로 최상위급 신인 지명이 어려운 입장에서 장기적인 육성을 생각해야 하는 SK 프런트의 고충이 비로소 받아들여졌다.
2.2. 프런트와 김성근의 대립
또한 자기 팀의 야구를 옹호하고 보호해야 할 프런트가 언론을 통해 앞장서서 김성근의 야구를 비난했으며, SK 와이번스 신영철의 막걸리 야구 발언이 그 대표적인 예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것도 김성근이 어떤 인물인지, 그가 말하는 전권부여가 어떤 것인지 생각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 이미 2008년 첫 재계약 당시부터, 김성근이 프런트는 현장의 요청에 절대적으로 따르며 모든 판단은 현장에 맡길 것을 요구한 탓에 분위기가 상당히 험악했다. 왜냐하면 김성근이 말하는 전권은 단순히 현장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성근이 말하는 전권이란 그냥 감독이 원하는 선수를 다 사주고 돈 달라는데로 다 달라는 뜻이다. 외국인 선수 선발, FA 영입, 트레이드에 코칭 스태프 인선 다 자기 맘대로 하는 것이다. 이렇게 전권과 최고 수준의 지원을 요구한 뒤 성적이 오르면 프런트의 공을 인정하면서 프런트의 지원 덕에 팀이 성과를 거두었음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러기는 커녕 모든 공을 본인 덕으로 포장했다. 만약 프런트가 김성근의 요구를 지원하다가 지쳐서 한두가지 거절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구단과 마찰을 일으키기 시작하고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팀 중 가장 많은 운영비를 쓰는 구단'''에다 지원이 부족하다며 구단을 비난하는 언플을 했다. 막걸리 야구는 이런 심각한 불화를 내포한 말이다.
이에 프런트 측은 차기 감독감으로 키우던 이만수 당시 수석코치에게 보다 빠르게 감독 직을 넘기는 것도 고려했으나, 성적이 위낙 좋았고(우승 3회, 준우승 1회) 계약기간이 2011년으로 끝나며 원래 감독 임기는 철저히 보장해 주는 원칙이 있었기에 두번째 재계약 제의만 하지 않는 선에 머무른다.
관례에 의하면 구단이 현재 감독에게 재계약을 제시하려고 할 경우 마지막 시즌 중간 쯤이면 재계약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거나, 감독에게 조용히 구두약속 정도는 한다. 그리고 별 말이 없으면 재계약 의사 없는걸로 알고 조용히 임기 마치고 나가는게 보통이다. 그러나 김성근은 달랐다. 구단이 재계약에 적극적이지 않자 2011년 8월 17일 SK 측과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자기가 먼저 공개선언하는 초강수를 둔다. 요약하면 만료가 되는 이번 2011시즌까지 감독직을 수행한 후 물러나겠다는 것. 그전까지 재계약 안해준다고 이런 식으로 구단 공격하는 감독은 없었다.
3. 발단
김성근과의 재계약에 불협화음이 계속되던 2011년 7월 중순 경, SK 와이번스 공식 커뮤니티인 용틀임 마당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사라졌다. 이에 대해 일부 팬들 사이에선 김성근 감독과의 재계약 불발에 따른 파장을 우려하여 커뮤니티를 폐쇄한 것이란 루머가 돌았다.
같은 해 8월 16일, 김성근은 언론을 통해 이번 시즌을 끝으로 감독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밝히며, SK 와이번스 프런트와 계약 과정에서 상당한 잡음이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이에 김성근 사퇴를 두고 곳곳에서 상당한 논란이 일어났다. 하루 뒤인 8월 17일, 구단 측은 구단 측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즌 중 사표를 제출한 것은 물론 이를 언론을 통해 내보내기까지 한 김성근에게 불만을 표시하며 그를 전격 경질하고, 코치였던 이만수를 감독 대행으로 임명하였다. 일련의 사건에 팬들은 크게 분노하였고, 결국 같은 해 8월 18일 문학구장 소요 사태가 벌어졌다.
4. 전개 형태
4.1. 김성근 경질 이전
김성근이 직접 사퇴 의사를 밝히기 이전까지는 현수막을 내걸거나 재계약을 촉구하는 문구가 적힌 부채를 나누어 주는 식으로 김성근 재계약 운동을 벌였으며, 2011년 7월 29일 갑자기 SK 와이번스 공홈 게시판인 용틀임 마당이 갑작스럽게 폐쇄된 이후에는 문학구장 등지에서 이를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김성근이 감독 직에서 경질되면서 일련 운동은 모두 SK 프런트에 대한 규탄과 퇴진으로 변경된다.
4.2. 김성근 경질 이후
4.2.1. 문학구장 소요 사태
4.2.2. 프런트 퇴진운동
문학구장 소요사태 이후 용틀임 마당에서 활동하던 팬들의 주도로 만들어진 네이버의 SK 와이번스 팬카페와 디시인사이드 SK 와이번스 갤러리가 연합하여 프런트 퇴진 운동을 진행했다. 이들은 주로 홈 경기 중 프런트 퇴진 구호를 외치거나 현수막을 거는 방식으로 프런트에 대한 항의했으며, 지하철 무가지[1] 등에 SK 와이번스 프런트의 퇴진을 요구하는 광고를 실기도 했다. 이후 지하철 광고를 추가로 추진하려 했으나 서울메트로 측이 거절해서 무산 되었으며, 몇몇은 SK 본사 등지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여기에 DTD의 원흉인 막장 프론트에 분노한 LG 트윈스도 가담, 버스 등지에 프론트를 비판하는 광고를 싣고 온오프라인으로 프론트를 규탄하는 일명 '''스크루지'''운동을 하기도 했다.
한편 구단 측은 다시금 일어날지 모를 소요 사태에 대비하여 일정 기간 동안 구장 내외부에 전경과 의경을 배치해 두기도 했고, 이런 지속적인 흉흉한 분위기에 위축되어 원정 팬과 가족 단위의 팬이 크게 줄어들자 구단 측에선 퇴진 운동을 주도하는 사람들을 고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4.2.3. 문학구장 현수막 시위
9월 30일 삼성전에서 마지막 대형 현수막 시위를 벌였다.
해당 현수막을 발견한 심판진은 외야 쪽으로 이동하여 '타자 시야에 방해'가 되니 현수막을 내리라고 지시했지만, 시위를 벌이던 팬들은 이에 불응하였고, 결국 구단 측 보안 요원과 실랑이로 이어지며 약 10분 정도 경기가 지연되었다.
이 과정에서 구단측의 보안 요원이 시위를 벌이던 팬들에게 폭행을 당하였고, 결국 현장에서 폭행을 가한 2명이 입건되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현장에 있던 팬들은 이는 보안 요원의 헐리우드 액션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펼치는 등 썩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이 사건으로 인해 여론이 크게 악화되어 시위를 벌이는 이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졌음에도, 일부에선 기존까지 큰 이슈가 되지 못했는데 이번 일로 주목을 받을 수 있었으니 도리어 잘 됐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5. 평가
퇴진 운동 초기의 소요사태는 분명히 심각한 범죄였고 그런 범죄를 저질러 놓고도 반성은 안하고 '''김성근의 파행에 상식적으로 대응한''' 프런트의 퇴진까지 요구한 작태는 실로 뻔뻔한 것 이었다.
하지만 이 뻔뻔한 행동이 2011년만 해도 지지를 받았다. 구단에 불지르고 프런트 물러가라 시위 벌이는 행동을 구단의 독단에 맞서 팬의 권리를 찾기 위한 행동이라며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지지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초창기에 각종 광고를 비롯한 시위를 위한 돈을 모으고자 했을 때는 SK팬이 아니면서도 기꺼이 돈을 낸 사람들도 많았던 것이 그 방증이다.
하지만 폭력과 파행으로 시작한 이 운동은 끝까지 파행이었다. 현수막 시위에서 경기에 방해될 수 있음을 인지했으면서 일부러 대형 현수막을 이용한 시위를 벌이고, 폭력 사태까지 일으키기 시작하여 경기를 즐기고자 하는 팬들과 타팀팬들을 방해하고 응원주체인 선수들을 위축시키면서 대부분의 온건한 팬들은 퇴진 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만 매우 커졌다. 그들은 명백히 '''야구 팬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더욱이 이후 시위를 주도했던 이들이 모금한 돈으로 방을 잡고, 친목질을 벌였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2] 시위 주도 세력 간의 알력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분란은 외부로까지 번져 그간 퇴진 운동을 지지하던 타 팀 팬의 의견을 무시, 묵살하며 독선적인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고 응원팀이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지만 그들은 온라인상 무관중 운동, 김성근 감독의 부재가 드러나기 위해 성적부진을 바라거나, 프런트 교체를 넘어서 구단 해체까지 바라는 강경한 모습에 질려 초기 범야구팬의 지지 기반을 모두 잃고 아예 이를 김성근 개인 팬질의 일환으로 취급되었다. 이런 상태까지 오자 결국 2011시즌이 끝나고 흐지부지되었고 중단되었고, 이 사건을 기점으로 SK 와이번스 팬덤은 김성근 감독에 대한 호감과 프런트에 반감을 갖고 있지만 선수들이 있는 한 계속 팀을 응원하는 온건 팬층과 김성근 개인 악성팬으로 분리되었다.
김성근의 민낯이 드러난 지금은 노리타를 제외하면 이 운동에 긍정적인 팬덤은 없다. 김성근의 한화 부임이후 노리타와 완전히 분리된 SK팬덤은 문학구장 소요사태를 비롯한 이 일련의 사건을 노리타의 분탕으로 취급한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것 처럼 그 수많은 사람들이 전부 노리타일리도 없고 또 그 많은 노리타들이 전부 한화로 갔을거라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다. 한 마디로 SK 팬덤의 저런 주장은 사실상 꼬리자르기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