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구장 소요 사태

 


1. 개요
2. 발단
2.1. 팬들과의 갈등
2.2. 김성근과의 갈등
3. 전개
4. 절정
5. 결말
6. 후일담


1. 개요


2011년 8월 18일, 김성근 감독 경질 사태에 분노한 SK 와이번스 팬들이 경기 직후 그라운드에 난입한 사건. 성숙한 관전 문화가 자리잡지 못했던 20세기에나 일어났을 법한 대규모의 관중 난동이 무려 2010년대에도 또 한 번 재현되었다는 점에서 야구팬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꽤 큰 충격을 안긴 사태였다. 대중이 거짓 선동에 넘어가 잘못된 행동을 저질렀고, 거짓 선전의 실체가 밝혀진 뒤에도 구체적인 반성 없이 한때의 소동으로 대강 넘어가버렸다. 노리타 탓이라고 하지만 2011년에 노리타와 SK 강성팬이 얼마나 구분되는 존재였을까? SK 와이번스 프런트 퇴진운동 문서에도 나오지만 노리타와 SK 강성팬덤이 어느 정도 분리된 건 2011시즌 끝날 무렵이나 되어서였다.[1]

2. 발단



2.1. 팬들과의 갈등


김성근 감독과 프런트의 마찰이 외부로 노출되고, 심지어 재계약이 어렵다는 소문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당시 김성근에 더 없이 호의적이었던 SK 와이번스 팬들은 프런트 측에 재계약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한다. 일련의 방법 중 하나가 바로 SK 와이번스 공식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인 '용틀임 마당'에 꾸준하게 재계약 요구 글을 릴레이 형식으로 계속 올린 것. 이른바 도배질.[2] 게시판이 과도하게 과열되기 시작하자 프런트는 게시판인 '''용틀임 마당을 없애는 초강수'''를 두고, 자유 게시판의 기능을 트위터페이스북으로 대체하며, 앞으로도 부활시킬 생각은 없다는 공지를 올린다. 이에 분개한 팬들은 장소를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변경, 재계약과 용틀임 마당 부활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경기장으로 향한다.

2.2. 김성근과의 갈등


이미 2008년 첫 재계약 당시부터, 김성근이 프런트는 현장의 요청에 절대적으로 따르며 모든 판단은 현장에 맡길 것을 요구한 탓에 분위기가 상당히 험악했다. 왜냐하면 김성근이 말하는 전권은 '''단순히 현장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성근이 말하는 전권이란 그냥 '''감독이 원하는 선수를 무조건 다 사주고 돈 달라는 대로 무조건 다 달라는 뜻'''이다. '''외국인 선수 선발, FA 영입, 트레이드에 코칭 스태프 인선 다 자기 맘대로 하는 것'''이다. 이렇게 전권과 최고 수준의 지원을 요구한 뒤 성적이 오르면 프런트의 공을 인정하면서 프런트의 지원 덕에 팀이 성과를 거두었음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러기는커녕 모든 공을 본인 덕으로 포장했다. 만약 프런트가 김성근의 요구를 지원하다가 지쳐서 한두가지 거절하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구단과 마찰을 일으키기 시작하고 구단의 지원이 부족하다면서 구단을 비난하는 언플을 했다.
이에 프런트 측은 차기 감독감으로 키우던 이만수 당시 수석코치에게 보다 빠르게 감독 직을 넘기는 것도 고려했으나, 성적이 위낙 좋았고(우승 3회, 준우승 1회) 계약기간이 2011년으로 끝나며 원래 감독 임기는 철저히 보장해 주는 원칙이 있었기에 두 번째 재계약 제의만 하지 않는 선에 머무른다.[3] 이 과정에서 김성근 감독의 과도한 요구나 프런트 직원이 말실수 등이 대대적으로 보도 되는 등, 양 측 모두 지속적인 언론 플레이를 벌였다.
관례에 의하면 구단이 현재 감독에게 재계약을 제시하려고 할 경우 마지막 시즌 중간 쯤이면 재계약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거나, 감독에게 조용히 구두약속 정도는 한다. 그리고 별 말이 없으면 재계약 의사 없는 걸로 알고 시즌이 끝나면 조용히 임기 마치고 나가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김성근은 달랐다. 구단이 재계약에 적극적이지 않자 결국 시즌이 한창 중인 8월 17일 SK 측과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자기가 먼저 공개선언하는 초강수'''를 둔다. 요약하면 만료가 되는 이번 2011시즌까지 감독직을 수행한 후 물러나겠다는 것.
그 전까지 재계약 안해준다고 이런 식으로 구단을 공격하는 감독은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강수에도 프런트는 물러나긴커녕 전날 공개선언을 이유로 들어, 그 다음날인 8월 18일 바로 '''김성근 감독을 전격 해임시키고, 이만수 2군 감독을 1군으로 끌어올려 감독대행으로 세우는 초강수로 맞대응한다.'''

3. 전개


재계약 결렬과 전격 해고라는 갑작스런 사태에 김성근 감독의 팬덤을 중심으로 한 SK 와이번스 팬들은 다른 커뮤니티들과 연합하여 들고 일어났고, 8월 18일 문학야구장 1루 측 외야에서 시위를 벌이기로 결정한다. 당시 운집한 300여 명의 팬은 대형 현수막 8개를 내걸고 SK 프런트를 비난하기 시작했고, 프런트는 이날 소요에 대비해 전경 1개 중대를 요청, 배치했다.
하지만 경기 전 이만수 감독 대행을 비롯한 프런트 측은 이에 직접적 대응을 하지 않았고, 그대로 경기가 시작되자 시위 인원들은 외야에서 준비된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민경삼이 물러가라!"

"신영철도 물러가라!"

"프런트는 사퇴하라!"[4]

당시 시위 구호

해당 시위 진행 중 삼성 채태인 선수의 결승 투런 홈런이 터졌고, 하필이면 그게 또 1루 외야 성난 관중이 있는 곳으로 떨어지자 이성을 잃은 관중들은 만세를 부르며 시작했다. '''팀이 지고 있는데도 도리어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팬이라는 작자들이었다. 이날 상대팀은 다른 팀도 아니고 '''삼성 라이온즈'''였다. 1991~1992년도 당시 삼성 라이온즈를 박살[5]낸 탓에 삼성 팬들은 김성근 감독을 상당히 싫어하며, 반대로 감독 개인팬들 역시 가장 가증스럽게 여기는 구단이기도 했다. 여담으로, 이날은 삼성 라이온즈의 대체 외국인 선수 저스틴 저마노의 KBO 데뷔전이기도 했다. 하필 데뷔전에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6이닝 무실점을 기록한게 놀라울 따름.
이 외에도 경기 도중 관중 난입만 총 네 번이 있었는데, 1회초에 상의를 탈의한 남성이 난입한 후 붙잡혔고, 두 번째는 4회 도중 웃통을 벗은 관중이 그라운드로 난입했으며, 세 번째로 9회 송은범 유니폼을 입은 관중이 외야에서 뛰어내려 홈으로 전력질주하다 제지당했다. 마지막으로 경기 종료 후 덕아웃으로 한 관중이 들어와 인터뷰를 하던 이만수 감독대행에게 욕설을 하다 끌려 나갔다. 물병 등 쓰레기가 그라운드에 떨어져서 수 차례 경기가 일시 중단되었으며, 아예 쓰레기통이 통째로 떨어지는가 하면, 그물에 매달리는 관중까지 등장했다. 이에 일부에선 도원아재들이 문학에서 부활했다는 불명예스러운 비아냥까지 쏟아졌다.[6]

4. 절정


결국 경기는 채태인의 홈런으로 결판이 나, 2-0으로 SK가 패배한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관중들은 순식간에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이기든 지든 선수들은 경기 후 관중을 향해 인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 관례이지만 이 날만큼은 분위기가 지나치게 험악하여 인사도 하지 못한 채 경기장을 빠져나갈 수밖에 없었다. 관중들을 진정, 해산시키기 위해 안전요원이 투입되지만 관중들은 이를 무시하고 오물을 던지기 시작했고, 곧 문학구장은 거대한 야유와 쓰레기에 뒤덮였다.
9시 경 문학구장에 조명이 꺼지자, 마침내 1루 측 익사이팅존의 낮은 펜스를 통해 수 백에 달하는 SK 팬들이 난입하기 시작한다.


[image]
난입한 관중들은 유니폼을 불태우고, 이후 불펜 전기차를 타고 폭주하거나 경기장에 놓여있던 구단 집기나 냉장고 안의 음료수를 무단으로 훔치는 등[7] 심한 난동을 부리다가 20여 분 후 신고를 받고 경찰과 소방차가 출동하자 다시 펜스를 넘어 도주한다.
한편 덕아웃과 구단 전시물 등도 심하게 훼손되었는데, '''민경삼개XX''', '''신영철개XX''', '''프런트는 물러가라''', '''꺼져라 이만수''', '''유다''' 등등의 온갖 낙서의 향연이 펼쳐졌다.# ##

5. 결말


21세기 들어 그라운드에 불을 지른 행위는 처음이며, 이 정도로 많은 인원이 난입한 경우도 1990년 잠실구장 패싸움 사건 이후로 최대 규모였다. 구단 측의 발표에 따르면 소요사태로 인해 약 3500만원 가량의 피해를 입었다.
방화[8]를 포함하여 소요사태 중 벌어진 각종 절도, 손괴, 난동 등은 강력 처벌로 다스려지는 엄연한 범죄이다.
그 외에도 모욕적인 일이 많았다. 한 팬은 김성근 감독의 등번호와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를 마운드에 묻었다. 김성근이 경질되자 (감독으로서의) 그는 죽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달리 보면, 산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꺼림직한 행동이기도 하다.
디시인사이드 등 일부 인터넷 팬덤에서는 재밌다거나 속이 시원하다며 옹호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건 그냥 추악한 범죄일 뿐이다. 절대 옹호해서는 안 된다.[9] 심지어 책임을 프런트 탓으로 돌리며 이를 정당화하려는 파렴치한 이들도 있지만, 프런트 측이 잘못한 일이 있다고 한들 그게 해당 범죄 행위를 무죄로 만들 수는 없다. 실제로 이만수 대행을 비롯한 선수단은 당시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고 술회하고 있다. 팬이라면서 프런트도 아닌 자기네 팀 선수단 겁준 걸 자랑이랍시고 떠벌리는 게 말이 되는가?
해당 소요사태는 그 다음날 저녁 주요 지상파 KBS, MBC, SBS 를 통해 보도되었다.KBS 뉴스9[10] SBS 8뉴스 MBC 뉴스데스크 일부 언론은 이를 스포츠 팬의 양상 변화로 풀이하기도 했다.

6. 후일담


해당 사건 이후 어수선한 분위기로 인해 한동안 관중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이는 SK 와이번스 프런트 퇴진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나마 한 때의 소동으로 여겨지며 그럭저럭 넘어가는 것 같았지만, 김성근이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부임하여 거품이 벗겨지고 추악한 실체를 드러내면서 다시 주목받았다. 다만 노리타들이 김성근따라 다 떠나가면서 SK팬덤도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에 현 SK 팬덤은 이 사건을 SK 팬덤의 잘못으로 보지 않고 노리타들의 깽판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11] 한화 이글스가 김성근의 투수 혹사의 부작용으로 경질 뒤에 심각한 부진에 빠지자 이를 조롱하는 노리타들을 보며 '타 팀 감독으로 취임하지 않는 이상 절대 물이 빠지지 않는다'며 경험에서 우러난 (...) 조언을 해주기도.


[1] 이 사태와 프런트 퇴진운동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지금은 김성근을 세이콘이란 멸칭으로 자연스럽게 부르는 슼갤은 2014년까진 답 없는 노리타 갤러리였다. 2014년 말 김성근이 한화로 간 뒤 모조리 빠져나간 뒤에야 물갈이가 되었다.[2] 2007년에도 같은 방식으로 이호준의 FA를 계약을 요구한 바 있으나 실패했다.[3] SK 프런트는 강병철, 조범현, 이만수, 김용희, 트레이 힐만까지 감독 모두 임기를 보장해주었다. SK에서 임기 못 채우고 잘린 감독은 아직까지 김성근 뿐이다. 역대 프로야구 구단 중 김성근이 경질을 당한적 없는 구단은 마지막 시즌 경질설이 나오고 사이가 멀어졌는데도 임기만은 지켜준, 박용곤 회장이 직접 싸고 돌았던 OB 뿐이다. 김성근이 어떤 사람인지 감이 오지 않는가?[4] 당시의 모습은 4년 뒤 뉴스인 여기서 간접적으로나마 볼 수 있다.[5] 그래도 가을야구를 어찌어찌 하기는 했으나 여기서도(...) 투수 혹사, 시도때도 없는 번트, 내외적 구설수가 잦았음에도 우승에 실패했다. 당시 강팀이었으나 이상하게 우승과 거리가 있던 삼성 입장에서야 당연한 실패. 프랜차이즈 스타 이만수, 류중일과의 대립 역시 빼놓을 수 없다.[6] 실제로 그물망에 매달려 시위했던 관중도 삼미 슈퍼스타즈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삼미 시절때부터 응원해온 올드팬으로 추측.[7] 그 와중에 캐치볼이나 홈플레이트에서의 포수놀이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8] 유니폼을 태우는 과정에서 잔디 등이 소훼됐기 때문에 방화죄 성립이 가능하다. 단, 직접적으로 노린 것은 아니므로 실제로는 방화보다 실화죄로 처벌될 가능성이 좀 더 높다. 물론 어느 쪽이든 범죄 맞다.[9] 디시 수준이 다 거기서 거기라 같은 시간, 3차 청문회를 진행 중이던 LG 트윈스 갤러리 이용자 중 일부는 이왕에 할 거면 우리도 저 정도로 저지르고 보자는 헛소리를 했다.[10] 여담으로 당시 앵커로서 이 사건을 보도한 민경욱은 당시 SK의 단장이었던 민경삼과 사촌 지간이다.[11] 다만 당시 폭동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에서 노리타가 아닌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는 걸 무시할 수는 없기에 무조건적인 꼬리 자르기라고 까는 사람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