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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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폴레프 TB-3(Туполев ТБ-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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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원
2. 개요
소련의 대형 항공기 메이커로 이름높던 투폴레프 설계국에서 1930년에 발표한 4발 폭격기로, TB란 명칭은 중폭격기(Тяжёлый Бомбардировщик)의 약자에서 따온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을 때 기준으로 일선에 운용되고 있는 폭격기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기체 중 하나였던 TB-3는 이미 속도, 항속거리, 폭탄 탑재량이라는 기준에서 확연하게 시대에 뒤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처음 공개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20년대 말에 독일 융커스 사로부터 배운 물결무늬로 가공한 두랄루민 외피와 인입식 기관총좌 같은 최첨단 기술이 아낌없이 투입된 폭격기였다. 투폴레프 설계국 자체 명칭으로 '''ANT-16'''으로 불린 이 4발 폭격기가 공개되었을때, 설계자 안드레이 투폴레프는 이미 몇 가지 거인기를 공개하여 대형 항공기 개발자로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염려마십시오 서기장 동지! 우리가 가진 600대의 TB-3만으로도 독일의 산업 기반을 하루만에 초토화시킬 수 있습니다." - 소련 공군 서부 군관구 사령관 코페츠 중장'''
3. 기록 도전
1920년대 후반에 설계가 시작된 프로토타입은 1930년 12월 22일에 저명한 테스트 파일럿 미하일 그로모프(Михаи́л Миха́йлович Гро́мов : 1899~1985)가 조종간을 잡아 첫 비행에 성공했다. 거인기를 좋아하던 스탈린은 이 기체가 공산주의의 업적과 체제 선전에 더없이 효과적이라는 것에 주목해 기록 비행에 도전할 것을 지시했다. 첫 번째 양산형인 TB-3-4M-17가 1932년 1월 4일에 안드레이 유마셰프(Андрей Борисович Юмашев : 1902~1988)와 이반 페트로프(Иван Фёдорович Петров)에 의해 날아올랐다. 그 후 엔진을 강화하고 연료 탑재량을 늘리거나 내부 설비를 제거해 중량을 줄이는 개조를 거친 몇 대의 TB-3들은 유마셰프에 의해 당대의 비행기록을 여러 개나 갈아치웠다. 당시 주목할 만한 기록을 손꼽아보면 무착륙으로 18시간 30분 비행, 다양한 하중상태에서 상승고도 기록을 3회나 경신했다.
4. 늙어가는 거인
이처럼 TB-3는 1930년대 초까지만 해도 4발기 중에서는 가장 앞선 기체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적지 않은 문제가 불거지고 있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융커스 특허의 물결형 알루미늄 응력외피는 와류를 일으켜 오히려 항력을 늘리고 있었고, 엔진은 늘 출력이 딸리기 일쑤여서 이 부분에 개량이 집중되었다. 원형기에 장비된 715마력의 미클린 M-17F 엔진은 처음 항공인민병참국에서 요구했던 합계 2,000마력 보다 훨씬 높은 합계 2,860마력을 내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이것으로도 파워가 부족했다.
1937년까지 기체 각부에 걸쳐 다양한 면에서 개량이 계속되었고 이 같은 설계 변경과 개조를 통해 일선기로서의 가치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유지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5. 실전에서
1939년 5월에 일본 육군이 소련과 국경 분쟁을 일으켜 할힌골 전투가 벌어지자 이 거인기는 비로소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되었다. TB-3는 탄생 이래 10년 동안이나 소련 공군 폭격기 부대의 주력을 차지했지만 2차 대전으로 접어들자 도저히 일선에서 전투 임무로는 쓸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각 형식 합쳐 818대나 생산되었고 기체의 구조 수명은 남아있었던 탓에 수송기로 재활용되는 한편 공수부대의 투하 임무도 떠맡게 되었는데, 그 투하 방식이라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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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크기에서 가능성을 엿본 공군 수뇌부에 의해 공중항모 계획인 즈베노 프로젝트라는 기생 전투기의 모기로도 사용되었다. 1941년에는 흑해 함대 소속의 TB-3들이 급강하 폭격기로 개조한 I-16을 2대씩 매달고 날아가 공중에서 발진시켜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에 대한 정밀 폭격을 가하기도 했었다.
1942년 이후 소련군의 제공권 상황이 조금 나아진 뒤에는 그래도 폭격 용도로도 많이 쓰였다. 구식에 단점이 많았지마 어쨌든 폭장량이 5톤이나 되었고, 종전 시까지 폭격용으로도 가끔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