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보(승려)

 

慶甫
869년 ~ 948년
1. 개요
2. 창작물
3. 같이보기


1. 개요


전라남도 영암군 출신의 승려로, 자는 광종(光宗)[1]이고 경보는 법명이다. 본래 알찬(閼粲) 김익량의 아들이었다고 하는데, 이 알찬이라는 벼슬은 태봉의 9품 중 7품에 해당하는 벼슬로 신라로 치면 6등급 아찬에 해당한다. 즉 신라 6두품 집안의 출신이라는 것.
19세에 팔공산 부인사로 출가하여 광양 백계산으로 옮겨 수행했다고 하는 데, 이 무렵 도선의 제자로 가르침을 받았다는 기록으로 보아 도선이 기거하던 옥룡사에서 수행했던 것이 거의 확실해보인다. 이후 월유산 화엄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정식으로 승려가 되어 성주산의 무염, 굴산사의 범일 등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후 892년 당나라로 유학을 가 중국의 선종 5가중 하나인 조동종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중국 각지의 사찰을 돌아다니며 20여년간 수행하였다.
921년에 귀국하여 당시 후백제의 영토인 전라도 임피군에 이르렀는데, 후백제의 견훤이 그를 왕사로 삼아 남복선원(南福禪院)에 머무르게 하였고 후일 도선이 머무르던 옥룡사[2]로 옮겼다. 936년 후백제가 멸망하자 고려의 태조 왕건 역시 그를 왕사로 모셨고, 이후 태조의 아들 혜종정종 대에 이르기까지 왕사로서 개경에 머무르다가 옥룡사로 내려와 그곳에서 세수 79세, 법랍 62세에 입적하였다.

2. 창작물


태조 왕건에서는 도선대사의 제자로 나온다. 배우는 서영진.[3] 처음 제자로써 도선대사를 모실 때는 아직 법력(?)이 부족하여 매번 도선대사에게 질문을 하는 역할이었다. 주로 삼한의 미래에 관한 내용이었고 이걸 물어보면 항상 언젠간 다 알게 될 것이라면서 혼나기 일쑤.
도선대사가 옥룡사에 머물 때 최승우가 자신의 미래에 대해 물을 때도 곁에서 수행하였고, 왕건을 데리고 도선비기를 주고 그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하여 송악(개성)을 찾았을 때에도 경보가 함께 있었으며, 도선은 세달사에 상주하며 왕건을 가르치는 대신 왕륭에게 경보를 당나라로 유학을 보낼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했고 왕륭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면서 부탁을 들어준다. 이로써 경보는 잠시 극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후 꽤 오랫동안 등장이 없다가 2부 초반인 137화에 다시 등장하며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다. 본래 도선과 경보가 머물던 백계산 옥룡사가 당시에는 백제의 영토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백제에 몸을 담게 된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노린 것인지 이때의 흐름은 극 초기에 최승우가 귀국했을 때와 거의 판박이다. 당나라 귀국 후 돌아오자 신라 땅에 백제가 건국되어 있었다는 점, 포구를 지키는 관리들이 유명인사를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보내버린 점, 스카우트를 위해 직접 찾아온 견훤에게 일부러 결례로 대한다는 점까지. 그리고 과거 최승우를 직접 찾아가야 한다고 설득했던 능환은 추허조처럼 변해서 황제가 직접 찾아갈 수는 없다고 떨떠름해 하고 최승우는 자신이 스카우트되었을 당시를 상기시키며 견훤을 설득한다. 오랫동안 극을 지켜봐 온 시청자들에게 여러 모로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는 연출.[4]
재등장했을 때 경보 역시 굉장히 성장하여 과거 스승이었던 도선대사가 했던 말들을 떠올리며 과연 스승님은 모든 걸 다 알고 있었다면서 자신도 이제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도선의 제자라는 이름값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법력도 꽤 유명해져서 훗날 옥룡사에서 금산사로 찾아왔을 때 다른 승려들이 구름 같이 몰려들어 법문을 청하기도 하고, 금산사의 주지도 고승의 예로 그를 존대한다. 이 광경을 본 파달은 "나는 무식하여 부처가 뭔지 모르겠지만 저 사람이야말로 마치 부처가 아닌가" 하고 감탄한다. 법력과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최응이 자기 하인을 상전인 장사꾼으로 위장시키고, 자신은 장사꾼의 하인으로 위장하여 경보를 처음 만났을 때 경보는 어렵지 않게 두 사람이 서로 신분을 반대로 위장했음을 알아차리는 통찰력을 보였다.
백제의 견훤은 경보가 백제 땅에 왔다는 소식을 듣자 과거 최승우를 직접 찾아간 것처럼 경보를 나라의 자문역, 즉 국사(國師)로 모시기 위해 태자 및 신료들과 함께 찾아간다. 그 자리에서 경보는 자그마치 황제에게 불제자로서 3번의 절을 시킴으로써 견훤의 넓은 그릇을 확인하였고,[5] 황도 완산주가 아닌 옥룡사에 머무르겠다는 조건으로 백제의 국사 자리를 수용한다. 조언을 부탁하는 견훤에게 경보는 과거 아자개를 고려에 빼앗겼던 실패를 거듭하지 않으려면 급한 성품을 다스리는 것이 급선무임을 주지시키고, 신검에게는 가족 간의 화목을, 금강에게는 능력을 너무 내세우지 말고 낮출 줄도 알아야 한다고 일러준다. 그리고 새로이 삼한의 주인이 누가 되겠냐는 견훤의 질문신 아직 대답을 하기엔 이르다며 견훤 곁에 있는 최승우를 콕 찝어 '최 학사 께서는 아실법도 하십니다만은..'이라며 즉답을 피하는데, 일찍이 도선이 "그대가 머무는 곳에는 주인의 의자가 없을 것"이라 했던 말을 다시 떠올린 최승우는 안색이 흙빛이 된다.
이렇게 백제의 국사가 되었지만 이미 그는 스승이 예언한 대로 삼한통일의 주인은 왕건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백제의 국사를 맡은 건 어느 지역 가리지 않고 백성들을 위함이기도 했지만 그 백제 땅에서 자신이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견훤이 오기 바로 전 왕건의 명을 받고 최응과 그 하인이 먼저 찾아와 왕건과는 따지고 보면 동문지간이 된다며 고려로 갈 것을 설득했지만 고려에는 이미 자신의 스승 도선대사가 할 일을 다 해놨으며 자신은 고려도 백제도 아닌 삼한의 자식으로서 할 일이 있다고 말하며 거절한다.[6]
그렇게 2부 초반에 등장해서 한참 등장이 없다가, 백제가 위기를 맞았을 때 최응의 유언을 새긴 고려의 문신들이 다시 한 번 시국에 대한 조언을 구하면서 오랜만에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견훤이 신검의 쿠데타로 인해 금산사에 유폐되었을 때 견훤을 고려로 망명하도록 설득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오랜 침묵을 깨고 옥룡사에서 하산한다. 이때 경보대사는 견훤을 만나는 명분으로 죽은 금강최승우를 위한 천도제를 지내겠다고 했고 능환과 몇몇 신료들은 이에 반대했지만, 공적인 이유(찬탈이 아닌 선위의 명분, 인심)로든 사적인 이유(부자지간의 관계회복)로든 견훤에게 인정받아 황위에 오르고 싶던 신검이 허락하면서 만나게 된다.
신검에게는 금강과 최승우의 명복을 빌고 견훤의 분노를 달랜다는 명분으로 천도제를 허가받았으나 막상 행사를 주관하면서 경보는 견훤에게 사실 이 천도제가 '''견훤의 욕심과 잘못을 빌고 용서 받기 위한 자리'''임을 주지시킨다. 도선이 궁예를 만났을 때 "나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이 욕심"이라며 그의 독선을 꿰뚫어 보고 질타하였듯이, 견훤도 그 욕심으로 인하여 아들과 충신이 죽었으며 전쟁터에서 죽은 수천 수만 백제의 백성들도 금강과 최승우처럼 다 누군가의 자식이고 소중한 사람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한창 분노에 차 있을 때 후백제의 영화롭고 빛나던 순간만을 추억했던 견훤도 결국 그 이면에 무수한 희생이 있었음을 깨닫고 '''"백성들이여, 나의 잘못이었다. 다 용서하라..."'''라며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7]
천도제를 무사히 마친 뒤 경보는 견훤에게 뿌린 씨앗을 거둘 때가 되었다는 말과 함께 제국을 직접 거두고 왕건과 공동으로 삼한통일의 주역이 되라며 견훤이 고려로 망명하게 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견훤은 처음에 당연히 반발하며 경보가 도선의 제자이니 당연히 왕건의 당여(黨與. 같은 패거리)가 아니겠느냐며 지역감정(...)을 놓지만, 경보는 자신이 신라의 국성(國姓) 김씨라는 것과 도선이 백제 땅 영암 출신이라는 점으로 반박하며 자신은 어느 한 나라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삼한 백성 모두를 똑같이 위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마침내 견훤에게 결심을 받아낸 후 승주의 박영규에게 견훤의 친서를 전달하는 것으로써 경보의 임무는 마무리된다.
태조 왕건 이후를 다룬 제국의 아침에서는 그가 고려 3대 군주인 정종 때까지 왕사로 있었다는 기록이 있음에도 정작 등장이 없다.

3. 같이보기




[1] 고려의 왕 광종(光宗)의 묘호와 같은 글자이다.[2] 도선은 이미 898년에 타계하였는데, 경보가 그의 후계자로서 옥룡사로 갔는지의 여부는 불확실하다.[3] 서영진은 전전작 용의 눈물에서 박포 역을 맡았으며, 다음 다음 작품인 무인시대에서도 정균의 부하인 종참이라는 승려로 출연했는데, 이 때 이의방이 자신의 정책에 반발하는 승려들을 마구 참살하자 그에 원한을 품고 정균의 부하가 되어 이의방 살해에 도참했다가 토사구팽당하는 인물로 나온다. 재미있는 것은 이의방역을 맡은 서인석씨가 이 작품에선 견훤 역을 맡아 경보스님을 왕사로 모셨다는 것. 환생한 뒤에 제자에게 패륜을 당한 셈. 배우분은 안타깝게도 2006년에 세상을 떠나셨다.[4] 젊은 시절 잠시 봤던 최승우를 잊지 않고 인사를 하며 많이 늙으셨다고 말한다.[5] 마찬가지로 경보를 찾아온 최응 역시 '견훤은 영웅이라 할 수 있다.'고 감탄했다.[6] 결국 최응이 경보를 데려가는 걸 단념하고 말만 전하러 돌아갈 때 그 뒷모습을 보며 '재능은 뛰어난데 오래 살지 못하니 안타깝다.'고 속으로 탄식하며 최응의 앞날도 예견한다.[7] 이 명장면은 같은 작가의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죽음을 앞둔 김두한이 자신이 평생 지어 온 잘못을 부처님 앞에 속죄하는 장면과도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