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포

 




朴苞
(? ~ 1400)
1. 생애
2. 박포 일가족에 대한 조선왕조실록의 처분 내용
3. 창작물에서
3.1. 용의 눈물
3.1.1. 막걸리 미스트
3.2. 코미디빅리그의 브리지 코너 개국공신
3.3. 그 외


1. 생애


조선의 개국공신.
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대장군에 임명되고 죽성군에 봉해졌으며 1393년 사헌중승으로 있다가 현빈 유씨(왕세자 의안대군 이방석의 세자빈)의 일을 함부로 논했다고 해 여러 관리들과 함께 순군옥에 갇혔다가 공신이라 귀양은 면하는 대신에 사저에서 근신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1394년 변중량이회에게 조준, 정도전, 남은 등이 병권을 장악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왕인 이성계가 변중량에게 물었는데 변중량이 사실대로 답하였고 박포가 이성계에게 "전하께서 국정을 잘못해 여러 번의 변고가 일어났습니다."라고 하자 박포는 변중량, 이회 등과 함께 문초됐다. 박포는 이들과 서로 따지면서 자신만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지만 결국 죽주에 유배되었다.
1396년 황주의 수령이 되었고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때 조전 절제사로 있다가 이방원에게 가담해 정도원, 남은, 심효생 등의 동정을 몰래 정탐했으며 이방원의 명령으로 민무질과 함께 조준을 부르려고 했다.
1398년 지중추원사 의흥 삼군부 우군 동지절제사에 임명되었지만 2등공신에 봉해진 논공행상에 불만을 토로했다가 죽주로 유배되었다. 이는 박포의 실책이 맞다. 본래 왕자의 난과 같은 정치 투쟁은 논공행상 역시 어느 정도 정치적인 안배를 하기 마련이다. 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게 무릎꿇고 쩔쩔매기만 했지 한 것도 없는 조준 등의 원로 대신들이 1등공신에 봉해지고 실제로 일을 주도한 실세인 이숙번과 민씨 형제들이 2등공신에 봉해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당연히 이방원 입장에서는 건방진 놈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1400년 회안대군 이방간을 충동질해서 이방원과 싸우게 하면서 제2차 왕자의 난이 벌어졌다. 이방간이 개경 시내에서 이방원에게 패하자 박포는 붙잡혀 관직이 삭탈되고 장형 1백 대를 받아 청해로 유배되었다. 이후 공신녹권이 회수되었다가 이산으로 옮겨 유배되었으며 2월 25일 주살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황희가 박포의 처와 간통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해당 내용을 쓴 사관인 이호문이 지나치게 악의적으로 황희를 비난한 사례가 많기 때문. 실록을 검토하던 정인지성삼문 등도 이 사건의 실체를 부정하며 이호문이 근거도 없이 써놓은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으나 실록을 고의로 고쳤다는 선례를 남길 수는 없다면서 그대로 두기로 결정했다.
사실 2차 왕자의 난은 말이 좋아 박포가 부추긴 것이지, 이방간 본인이 주도적으로 움직인 모습이 역력하며 미리 이방간의 거사를 전해들은 태조 이성계와 이방과 역시 넷째가 철부지처럼 군다며 탐탁치 않게 여겨 말렸다. 이성계는 이때 이방원을 증오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데도 이런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 이를 알고 있던 이방원도 차마 또 형제를 죽이기는 그랬는지 연극까지 펼쳐가면서 이방간 군대의 투항을 유도한 후 이방간을 살리기 위해 박포에게 모든 혐의를 뒤집어씌웠다고 볼 수 있다.
이방원이 1차 무인정사 때와는 다른 반응을 보였던 이유는 무인정사와 2차 왕자의 난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무인정사의 원인이자 최우선 목표였던 세자 이방석은 이방원의 이복동생으로 이방원과 사이가 좋지 않은 계모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2차 왕자의 난의 원인인 회안대군 이방간은 동복형이었는데 이복형제를 죽인 것도 모자라 동복형제의 피까지 보게 된다면 아직 기반이 다져지지 않은 왕실의 정통성이 흔들릴 수 있었다.

2. 박포 일가족에 대한 조선왕조실록의 처분 내용


1423년(세종 5) 7월 25일에는 맹종(孟宗)에게 연좌(緣坐)된 사람과, 박포(朴苞)의 자손들의 노비와 가재(家財)가 형률에 의하여 처벌을 받았다.
1428년(세종 10) 1월 23일에는 박포(朴苞)의 집이 의화궁주(義和宮主)에게 분배되었다.
1464년(세조 10) 12월 26일에 이르러서야 난신(亂臣) 박포(朴苞)의 손자인 죽산 관노(竹山官奴) 박동량(朴同良)과 그의 자녀(子女)들이 모두 석방되었다.
1471년(성종 2) 10월 16일에 죽산(竹山)의 관노비(官奴婢)로 정속(定屬)된 난신(亂臣) 박포(朴苞)의 손자 박덕상(朴德祥), 박시중(朴時中), 박덕윤(朴德閏)과 손녀 막비(莫非)가 풀려났다.
1472년(성종 3) 1월 5일 경기(京畿)의 죽산(竹山)에 정속(定屬)한 박포(朴苞)의 손녀(孫女) 소사(召史), 백견(白犬), 종생(從生)이 방면됐다.

3. 창작물에서



3.1. 용의 눈물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는 인상적인 역할로 나왔다. 1차 왕자의 난 이전부터 대간으로서 정도전 일파에 맞서 여러 번 상소를 올리고 그 결과 유배에 처해지거나 투옥되기도 했으며 투옥되었다가 풀려난 뒤 정도전과 설전을 벌이는 장면은 볼 만 하다. 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 측에 가담하였고 이 과정에서 원래 정도전 파였으나 거사 직전 일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고 이방원 측에 선 이무를 보고 배신자이니 언제 배신할지 모른다며 죽여야 한다고 말하는데 훗날 배신은 자신이 한다.
이후 조준, 이무 등이 1등공신으로 올라서고 자신은 2등공신이 되자 불만을 품고 술자리에서 폭언을 퍼부었다[1] 이방원에 의해 하옥된 뒤 완전히 돌아서게 된다. 이후 이맹종의 중재로 이방간과 접촉하여 이방간을 도와 2차 왕자의 난을 주도하지만 난이 실패하며 붙잡히자 이방원이 직접 고문. 박포는 자신이 죽는건 당연하지만 동복형제끼리 죽여야 쓰겠냐며 이방간은 살려달라 간청하고 자리에 모인 다른 신하들에게 이방원이 다음은 당신들을 숙청할 거라며 돌직구를 던진다. 이숙번에게 뒷처분을 맡기고 떠나던 이방원은 흠칫하여 이방간을 다시 보다가 어차피 죽을 놈 실컷 헛소리하게 하라고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이방원의 행보를 생각하면 정확한 예측으로 실제로 조영무를 비롯해 이방원의 측근들이 박포의 말이 맞았다며 회상하는 장면도 있다.

3.1.1. 막걸리 미스트



한편 처형 장면 때 박포 역을 한 서영진이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연기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는 망나니 역을 한 문창근이 얼굴에 막걸리를 너무 많이 뿜었기 때문. 극중에서는 자신이 처형당하는 순간인데 입꼬리가 떨리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이 장면은 유튜브의 KBS Drama Classic 채널에서 연속 무료 스트리밍을 할 때, 채팅창에서 상당히 화제가 되고, 이 장면이 재연될 때마다 막걸리 미스트라는 말이 유행하며 극의 전개와 무관하게 컬트#s-2적인 인기를 끌었다.
2019년 12월 10일 방영된 불타는 청춘 충청남도 서천편에서는 출연자들끼리 웃음 참기 게임을 했는데, 최성국김광규에게 이 화면을 보여주며 '막걸리 미스트'라고 하여 웃기고야 말았다. 해당 관련 기사
암행어사: 조선비밀수사단 12화에서 이 장면이 재연되는데, 극중에서 홍다인(권나라 분)을 참수하려는 장면은 이 박포의 처형 장면을 오마쥬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장면

3.2. 코미디빅리그의 브리지 코너 개국공신


코미디빅리그의 브리지 코너인 개국공신에서 느닷없이 박포에 대한 내레이션과 함께 등장했다. 개그맨 김용명이 박포[2] 역을 맡았다. 바로 위 항목의 용의 눈물에서의 참수 장면, 이른바 막걸리 미스트 씬에 대한 패러디.


3.3. 그 외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는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박포의 처와 황희의 간통 의혹 사건에서 간접적으로 등장한다. 여기에서는 박포가 막장 남편이어서 박포의 처가 학대를 견디다 못해 집을 나오고 이를 황희가 자신의 집에서 보호해줬다가 간통 누명으로 변질했다는 해석으로 나온다.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이방간 옆에 항상 붙어다니는 무사로 등장한다. 가별초 출신의 무장이라는 이미지 때문인지 주로 함경도 사투리를 쓰는 것으로 나오며, 처음에는 별 존재감은 드러내지 않다가 회안대군의 심복으로 무인정사에 참전하여 무휼과 함께 이름을 크게 외치고 돌진한다. 배우 전석찬이 연기했다.
[1] 분노를 삭이려고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는데, 이 때문에 너무 취했고, 이후 서로 술을 따르는 와중 이무의 얼굴을 보자 분노가 폭발해 폭언을 퍼붓고 말았다. 문제는 그 자리가 정종의 즉위식 후의 술자리였다는 것으로, 너무나 중요한 자리였기에 도저히 망쳐져서는 안되는 자리였다. 여기서 얼굴이 시뻘개진 채 부들부들 떨며 1등공신으로 올라선 이들을 질타하는 모습은 배우의 연기력이 드러나는 장면 중 하나. 끌려나가는 와중에도 기둥까지 붙잡고 할말을 다 하며 끌려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2] 박포라는 명확한 언급은 없으나, 위의 박포 처형씬이나 코너중 흘러나오는 나레이션을 감안하면 영락없는 박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