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달
巴達
생몰년도 미상
후백제의 장군. 935년 3월 견신검이 아버지 견훤을 폐위시키고 금산사에 유폐하자 다른 29명의 장사와 함께 금산사를 지키는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935년 6월[1] 견훤이 금산사에서 탈출해 고려로 귀순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삼국유사에서는 견훤이 파달 등 장사들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한 후 그 틈을 타 탈출했다고 한다.
상당히 무식하면서 우락부락한 느낌의 장수로 본격적으로 극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능환, 능애, 신덕이 견신검을 옹립하기 위한 쿠데타를 획책하면서 부터이다. 파달은 행동대장격으로 쿠데타의 선봉에 섰는데 견금강의 목을 벤 것도 파달이 한 짓이었고 이후 견훤이 금산사에 유폐되었을 때 이를 감시하는 병사들을 관장하는 담당 장수로 금산사에 오게 되었다. 무식하고 거침이 없다보니 견금강을 체포할 때도 어미의 치마폭에 숨었다며 조롱했고 견훤을 호송할 때에도 대놓고 무례하게 대해 견훤이 이를 간 장수였다. 이후 견훤의 사위인 박영규가 고려 측과 몰래 내통해서 견훤을 빼돌릴 당시 마침 금산사에서 있었던 법당 낙성식 축하 잔치가 벌어지면서 파달과 휘하 장수, 병사들은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덕분에 견훤은 무사히 금산사를 탈출할 수 있었다. 다음날 견훤이 탈출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대로 멘붕해 이때 반응은 진짜 "아하이고 맙소사, 우린 이제 죽었어!" 어떻게든 견훤을 다시 찾아나서지만 성과를 내지 못하고 왕도로 돌아온다. 그래도 사실대로 말하고 문책을 받는걸 보면 책임감 하나는 확실하며 처벌을 받지는 않고[4] 일리천 전투와 황산 전투에 참여했지만 결국 황산에서 견신검이 고려에 항복하면서 파달도 능애, 능환과 함께 쿠데타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참형에 처해진다. 죽기 전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어 유감일 뿐이오"라는 말을 남기고 처형대로 끌고 가려는 병사들에게 내 발로 직접 간다면서 놓게 한 다음 직접 처형장으로 가서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몇 화 전의 멘붕하던 모습은 아니라 다행인 편.[5][6] 드라마 후반부부터 등장한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후백제 개국공신들과 함께 처형당했으니 어떻게 보면 출세한 셈. 사실 파달의 경우 황제인 견훤을 금산사에 가두는 나쁜 일을 해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는 했다.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후백제의 장군. 935년 3월 견신검이 아버지 견훤을 폐위시키고 금산사에 유폐하자 다른 29명의 장사와 함께 금산사를 지키는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935년 6월[1] 견훤이 금산사에서 탈출해 고려로 귀순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삼국유사에서는 견훤이 파달 등 장사들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한 후 그 틈을 타 탈출했다고 한다.
2. 대중매체에서
2000년 KBS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극 후반인 운주 전투부터 얼굴을 비치기 시작했으며 배우는 기정수.[3]'''도대체, 도대체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이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냐! 대체! 어느 놈이 간밤에 번을 섰기에! 이 지경이 됐더란 말이냐아아아아!!!'''[2]
- 드라마 태조 왕건 中
상당히 무식하면서 우락부락한 느낌의 장수로 본격적으로 극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능환, 능애, 신덕이 견신검을 옹립하기 위한 쿠데타를 획책하면서 부터이다. 파달은 행동대장격으로 쿠데타의 선봉에 섰는데 견금강의 목을 벤 것도 파달이 한 짓이었고 이후 견훤이 금산사에 유폐되었을 때 이를 감시하는 병사들을 관장하는 담당 장수로 금산사에 오게 되었다. 무식하고 거침이 없다보니 견금강을 체포할 때도 어미의 치마폭에 숨었다며 조롱했고 견훤을 호송할 때에도 대놓고 무례하게 대해 견훤이 이를 간 장수였다. 이후 견훤의 사위인 박영규가 고려 측과 몰래 내통해서 견훤을 빼돌릴 당시 마침 금산사에서 있었던 법당 낙성식 축하 잔치가 벌어지면서 파달과 휘하 장수, 병사들은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덕분에 견훤은 무사히 금산사를 탈출할 수 있었다. 다음날 견훤이 탈출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대로 멘붕해 이때 반응은 진짜 "아하이고 맙소사, 우린 이제 죽었어!" 어떻게든 견훤을 다시 찾아나서지만 성과를 내지 못하고 왕도로 돌아온다. 그래도 사실대로 말하고 문책을 받는걸 보면 책임감 하나는 확실하며 처벌을 받지는 않고[4] 일리천 전투와 황산 전투에 참여했지만 결국 황산에서 견신검이 고려에 항복하면서 파달도 능애, 능환과 함께 쿠데타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참형에 처해진다. 죽기 전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어 유감일 뿐이오"라는 말을 남기고 처형대로 끌고 가려는 병사들에게 내 발로 직접 간다면서 놓게 한 다음 직접 처형장으로 가서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몇 화 전의 멘붕하던 모습은 아니라 다행인 편.[5][6] 드라마 후반부부터 등장한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후백제 개국공신들과 함께 처형당했으니 어떻게 보면 출세한 셈. 사실 파달의 경우 황제인 견훤을 금산사에 가두는 나쁜 일을 해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는 했다.
[1] 삼국유사에서는 935년 4월[2] 견훤이 금산사를 탈출했다는 급보를 받았을 때 제대로 멘붕하면서 보인 대사. 그것도 탈출한 지 한참 지난 후에 받은 것이라 멘붕이 2배가 되었다.[3] 임권택 감독의 1982년도 영화 만다라에서 전무송과 함께 스님 역으로 나왔다. 이 작품 직후 여인천하에서는 윤원형의 당여 이기 역으로 나온다.[4] 파달은 자신의 목을 칠 것을 청했지만 견신검이 자신이 부덕한 탓이라 말하고 이 일은 불문에 붙였다. 즉위를 하려는 차에 괜히 쿠데타의 핵심 인물이기도 했던 부하를 엄벌하다가는 인심도 사나워질 것이 뻔했다. 게다가 자칫하면 견훤이 고려로 망명했다는 것을 사방팔방 떠드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5] 사실 견용검-견양검 형제를 제외하고 능애, 능환, 파달 등은 그래도 마무리는 의연하게 지었으며 견신검은 말없이 묵묵히 있었을 뿐이다.[6] 원래 대본을 보면 '이렇게 되어 유감' 어쩌고 하는 대목은 파달이 아니라 신덕이 하는 대사. 파달이 원래 받은 대사는 '내 발로 갈 것이다'가 전부. 신덕 역의 임병기가 낙마 사고로 인해 두개골에 금이 가는 중상을 당하여 해당 장면 촬영에 나서지 못하였기에 신덕의 대사를 파달이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