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왕후
덕종의 1비. 시호는 덕종 敬강대왕과 敬 자 돌림이다.
아버지는 현종 원문대왕, 어머니는 원순숙비 김씨[1] 이다. 경성왕후의 성씨는 어머니를 따랐으며 남편 덕종과는 이복남매이다. 효사왕후와도 이복자매[2] 이다.
외할아버지는 원성왕의 후손인 경조현 개국남(京兆縣 開國男) 김인위. 외삼촌은 김원충, 외사촌은 용절덕비, 인예태후, 인절현비, 인경현비, 인목덕비이다. 경주 김씨는 원순숙비, 경성왕후의 등장으로 기세가 매우 세진다.
경성왕후는 결혼 전엔 '경흥원(景興院) 장녀(長女)'로 불리었다. 경흥원은 어머니 원순숙비의 관저였다. 비슷하게 목종도 어렸을 적에 어머니의 관저를 본따 '숭덕궁(崇德宮) 적남(嫡男)'으로 불리었다.
경성왕후는 당시 19살이던 덕종과 1034년 2월에 결혼했으며 같은 해 9월에 덕종이 죽음으로써 결혼생활은 7개월 밖에 못 갔다. 당연히 자식이 없었으며 이후 선종 3년에 훙(薨)했다. 능호는 질릉. 태후 존호를 받지 못했다. 남편과는 정반대로 매우 오래 살았는데, 최소 현종 덕종, 정종, 문종, 순종, 선종 여섯 군주의 치세를 보다 갔다.
아버지는 현종 원문대왕, 어머니는 원순숙비 김씨[1] 이다. 경성왕후의 성씨는 어머니를 따랐으며 남편 덕종과는 이복남매이다. 효사왕후와도 이복자매[2] 이다.
외할아버지는 원성왕의 후손인 경조현 개국남(京兆縣 開國男) 김인위. 외삼촌은 김원충, 외사촌은 용절덕비, 인예태후, 인절현비, 인경현비, 인목덕비이다. 경주 김씨는 원순숙비, 경성왕후의 등장으로 기세가 매우 세진다.
경성왕후는 결혼 전엔 '경흥원(景興院) 장녀(長女)'로 불리었다. 경흥원은 어머니 원순숙비의 관저였다. 비슷하게 목종도 어렸을 적에 어머니의 관저를 본따 '숭덕궁(崇德宮) 적남(嫡男)'으로 불리었다.
경성왕후는 당시 19살이던 덕종과 1034년 2월에 결혼했으며 같은 해 9월에 덕종이 죽음으로써 결혼생활은 7개월 밖에 못 갔다. 당연히 자식이 없었으며 이후 선종 3년에 훙(薨)했다. 능호는 질릉. 태후 존호를 받지 못했다. 남편과는 정반대로 매우 오래 살았는데, 최소 현종 덕종, 정종, 문종, 순종, 선종 여섯 군주의 치세를 보다 갔다.